2025년 3월 16일《로동신문》

 

수령결사옹위에 인생의 가장 큰 영광과 행복이 있다

조선혁명박물관에 전시되여있는 항일혁명투사 리권행동지의 편지를 보며

 

오늘도 우리 인민에게 참된 삶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슴깊이 새겨주는 주작봉마루의 대성산혁명렬사릉에는 혁명의 사령부를 옹위하여 꽃나이청춘을 바친 항일혁명투사 리권행동지의 반신상이 있다.

나이는 19살,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았던 애젊은 나이에 혁명을 위하여 한목숨 서슴없이 바친 그의 모습을 경건히 우러르며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한다.

어찌하여 투사는 후세토록 우리의 마음속에 삶의 거울로 영원히 살아있는것인가.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투사가 남긴 유물인 타다남은 편지를 통하여 찾으려고 한다.비록 몇문장 안되고 글줄도 길지 않지만 바로 여기에 투사의 한생이 집약되여있고 우리 후대들에게 하고싶었던 그의 간곡한 당부가 어려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닌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은 혁명가들이 지녀야 할 사상정신적풍모의 빛나는 귀감입니다.》

1950년대 중국 동북지방을 편답하였던 항일무장투쟁전적지답사단은 10여년전 조선인민혁명군이 리용하던 어느한 후방병원자리에서 흙속에 묻혀있던 타다남은 편지의 일부를 발견하게 되였다.

그것은 사령부전령병이였던 리권행동지가 꿈결에도 뵙고싶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한자두자 적은 편지였다.

《…존경하는 사령관동지!

그동안 험한 길, 위험한 전투에서 얼마나 고생하고계십니까?

저는 사령관동지의 깊은 사랑속에서 오늘도 병치료에 전력을 다하고있습니다.병석에 누우니 사령관동지의 품속에서 배우며 자라던 지난날이 생각에 사무쳐 잠들수 없습니다.

어려서 악독한 일제원쑤놈들에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여 사령관동지의 품에 안겨 자라며 부모의 원쑤를 갚고 나라를 찾는 혁명투쟁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배운 제가 손에서 총을 놓고 누워있게 되였으니 지금 저의 가슴에서는 불이 일어나는것만 같습니다.》

총상으로 오는 육체적고통보다 위대한 수령님을 곁에서 호위해드리지 못하는것을 더 큰 괴로움으로 생각했던 리권행동지, 하다면 애오라지 위대한 수령님만을 못견디게 그리는 리권행동지의 불같은 충성심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것인가.

1921년 함경남도 단천군(당시)의 빈농가에서 출생한 그는 일제《토벌대》놈들의 만행에 의해 학살된 부모의 원쑤를 갚을 복수의 맹세로 피를 끓이며 13살 어린 나이에 손에 무장을 잡고 항일전에 나섰다.그런 리권행동지를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여 백절불굴의 혁명투사로 키워주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그를 전령병으로 자신의 가까이에 두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글도 배워주시고 계급의 눈, 혁명의 눈도 하나하나 틔워주시며 감기에라도 걸릴세라 육친의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진정 리권행동지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은 사령관이시기 전에 친어버이이시였고 혁명의 진리를 깨우쳐준 위대한 스승이시였다.

생을 준 부모를 잘 모시는것은 자식의 마땅한 도리이고 지식을 가르쳐준 스승을 잘 섬기는것은 제자의 응당한 륜리이다.하물며 일찌기 혈육잃은 자기를 사랑의 한품에 안아 정을 다해 보살피시며 어엿한 혁명가로 키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어찌 운명의 은인으로 따르며 한몸 다 바쳐 받들지 않을수 있으랴.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드리며 사령부의 명령지시를 관철하는데서 전령병인 자기가 1번수가 되여야 한다는 비상한 자각을 안고 그 어떤 어렵고 힘든 임무도 주저없이 수행하였다.

그 나날에는 추운 겨울날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위해 진펄에서만 자라는 울로초를 한줌두줌 마련하여 그이의 신발바닥에 깔아드린 일도 있었고 사령관동지의 명령관철을 위해 한밤중에도 자리를 차고일어나 총탄이 비발치는 격전장을 누벼나가던 때도 있었다.

그의 남다른 충성심은 1939년 봄에 있은 장백현 15도구전투에서 남김없이 발휘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맹렬한 공격에 질겁한 적들은 나팔소리가 울리는 곳에 사령부가 있으리라고 타산하고 집중사격을 가해오기 시작했다.적의 기관총탄이 위대한 수령님의 앞뒤와 량옆으로 비발치듯 날아왔다.순간 리권행동지는 나는듯이 위대한 수령님의 앞으로 달려가 성벽처럼 버티고서서 두팔을 벌리고 한몸으로 막아나섰다.가증스러운 적탄은 그의 다리뼈를 부셔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를 잊지 못하시며 이렇게 회고하시였다.

《그가 장백현 15도구전투때 몸으로 나를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지 못하였을것이다.》

이처럼 한몸이 방패가 되여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을 지켜드리고 생명이 경각에 달했을 때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던가.

그것은 자기 운명에 대한 걱정이 아니였다.그의 뇌리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은것은 자기때문에 더욱 근심많으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생각뿐이였다.

하기에 그는 《넌 죽지 않아!》, 《넌 죽지 않아!》라고 거듭 되풀이하며 고무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사령관동지, 저는 죽지 않습니다.제 걱정은 말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쪼록 건강하십시오.》라고 자기의 소원을 아뢰였던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항일혁명투사들은 사령관동지의 신변안전보위를 삶과 투쟁의 총적목표로 내세우고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진짜배기충신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는 법, 난관을 딛고 일어서는 법, 생을 참답게 사는 법을 배운 그들에게 있어서 수령결사옹위는 곧 자신들의 운명, 혁명의 전도와 직결되여있는 가장 중차대한 문제였고 삶의 제1차적요구였다.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들의 생명이 필요하며 사령부의 안전을 목숨바쳐 보장하는 길에 인생의 제일 큰 영광과 행복이 있다는것이 바로 항일빨찌산들이 지닌 확고한 신조였고 투철한 인생관이였다.

수령옹위를 떠난 자신의 삶에 대하여 순간도 생각해본적 없었기에 리권행동지는 편지의 다음글줄에서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터놓았다.

《가장 위대한 애국사업인 강도 일제놈들에게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한 성스러운 혁명투쟁에 이 한몸을 다 바치지 못하고 특히는 사령관동지를 곁에서 호위하지 못하게 된 저의 마음의 고통은 정말로 참기 어렵습니다.

사령관동지! 저는 한시바삐 완치되여 사령관동지의 곁으로 돌아가고싶습니다.…》

자신의 온넋과도 같고 온 생애가 집약되였다고도 할수 있는 이 편지를 리권행동지는 사령부에 보낼수 없었다.1940년 초봄 뜻밖에 들이닥친 적들의 포위속에서 그는 다음번에 후방병원에 오는 통신원에게 보내려고 품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그 편지를 불속에 집어넣고 용감히 싸우다 체포되였던것이다.

악독한 일제교형리들은 그에게 사령부의 위치를 대라고 하면서 혹독한 고문과 함께 끈질긴 회유와 유혹을 련거퍼 들이대였다.그러나 수령결사옹위를 제일생명으로 간직한 그의 혁명절개를 꺾을수 없었다.

《나는 김일성장군님을 위하여, 조선의 해방을 위해 싸웠다.그런데 내가 어떻게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어기고 배신한단 말이냐.나는 사령관이신 김일성장군님의 부하가 되여 조선인민혁명군에서 싸운것을 제일 큰 자랑으로 생각한다.》

이런 불같은 신념을 안고 투사는 적들의 악형속에서도 혁명가의 지조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으며 생의 마지막순간에도 위대한 수령님만을 그리며 장렬한 최후를 마쳤던것이다.

우리는 리권행동지가 적들을 얼마나 쓸어눕혔는지 다는 알수 없다.그러나 그가 항일혁명사에 쌓은 최고의 위훈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안다.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자기의 꽃나이청춘을 아낌없이 바침으로써 조선혁명의 명맥을 지키는데 큰 기여를 한것이다.

편지는 불에 타고 력사의 이끼속에 묻혀 다는 남지 않았지만 우리는 투사가 이렇게 썼을것이라고 확신한다.

사령관동지를 지켜싸우는 길에 인생의 가장 큰 영광과 행복이 있습니다.나는 영원히 사령관동지를 옹위하는 길에서 억척의 방탄벽, 친위병으로 살겠습니다.

그렇다.인생의 더없는 영광과 행복, 빛나는 영생은 결코 나이나 직무에 따르는것이 아니다.그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수령결사옹위를 제일생명으로 삼고 수령의 안녕을 지키고 그이의 사상과 뜻을 관철하기 위해 피와 땀, 지혜와 열정, 목숨까지도 주저없이 바친다면 누구나 인생의 최절정, 영광의 단상에 올라서게 된다.

이것이 19살의 수령결사옹위의 전형이 우리에게 남긴 삶의 메아리이다.

본사기자 김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