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6일《로동신문》
세기를 이어 높이 울리는 전인민적송가들을 들으며
《참으로
반만년민족사에 처음으로 높이 모신 걸출한
세상에 아름다운 노래는 많고많아도
송가는 비범한 위인,
인류력사에 위인도 많고 영웅도 많았지만 조국과 인민을 위한 만고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신
겨레의 간절한 념원을 담은 첫 위인송가 《조선의 별》
《조선의 별》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인민의
일제에게 나라를 통채로 빼앗기고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해야 했던 그 시절 우리 인민은 자기들을 구원해줄 운명의 구세주,
만국평화회의장에서 스스로 자기의 배를 갈라 제국주의렬강대표들에게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보여준 렬사가 그러하였고 조선침략의 괴수를 처단하고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웨쳐 조선민족의 항거정신과 기개를 시위한 렬사가 그러하였으며 3.1인민봉기의 혈전장에서 일제침략자들에게 희생된 유명무명의 애국자들이 또한 그러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타도제국주의동맹의 결성으로 자주의 기치밑에 나아가는 조선혁명의 새 출발을 선언하신
10대의 시절에 벌써
《우리 조선에 대통운이 텄다.》 《캄캄칠야인 조선의 하늘에 새별이 솟았다.새별이 뜨면 새날이 밝는다.》
그 당시 전설처럼 파다하게 전해진 이 이야기들에는
그리하여 뜻있는 애국자들과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조선과 만주를 비롯한 각지에서
혁명시인 김혁동지는 온 겨레가 그처럼 갈망하던 민족재생의 구성을 드디여 맞이한 비길데 없는 행운을 안고 온 민족의 크나큰 격정을 담아 혁명송가 《조선의 별》을 창작하였다. 혁명송가 《조선의 별》! 오선지우에 새겨진 단순한 선률의 흐름이 아니였다.
우리
그때
하지만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자기들의 불변의 신념으로부터 혁명송가보급사업을 중단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벌려나갔다.혁명에 다진 그 마음을 변치 않고 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는 확신으로 원쑤들과의 싸움에서 숨지는 마지막순간까지 혁명가의 지조를 지키였다.
진정 《조선의 별》은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탁월한 위인을 맞이한 조선민족의 더없는 영광과 행복을 담은 우리 인민의 첫
조선의 밤하늘에 높이 솟은 새별을 우러르며 인민들 누구나 일일천추로 바라던 그날은 드디여 오고야말았으니
해방조선을 진감시킨
수도 평양에 높이 솟아 빛나는 개선문에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
새겨볼수록 우리
적들의 끈질긴 추격과 치렬한 전투, 뼈속까지 얼어드는 혹심한 추위, 겹쳐드는 식량난, 무서운 병마와의 투쟁, 전우들의 가슴아픈 희생, 혁명가의 신념을 검토하는 복잡한 정세변화…
사선의 고비를 무수히 넘고헤쳐야 하는 준엄한 길이였지만 바로 그길이 조국의 운명, 도탄에 빠진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는 길이였기에
혁명가로서, 인간으로서 상상할수 없는 뼈저린 아픔을 이겨내시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시며 우리
백두산 줄기줄기, 압록강 굽이굽이에 력력한 우리
하여 우리 인민은 민족의 영웅, 절세의 애국자를 맞이한 열광을 안고 수많은 편지들을 보내여왔다. 《…목이 쉬게 부르는 만세만으로는 겨레의 열화같은 심정을 대변할수 없는것이 우리모두의 그지없는 안타까움입니다.
바라건대 우리 민족에게 인민이 바라마지않는
《…우리는 해방을 맞이한 조국과 인민의것이 된 공장과 탄광, 농촌에 대한 노래에 앞서 이 모든것을 찾아주신
붓으로도 쓰고 펜으로도 썼으며 연필로도 쓴 편지는 각양각색이였어도 바라는 소원은 하나
그때 항일의 녀성영웅
그후
시인의 격정은 드디여 분화구를 찾은 화산마냥 세차게 분출하였다.창작적흥분으로 달아오르는 가슴을 안고 힘차게 펜을 달리였다. …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아 그 이름도 빛나는
해방조선을 진감시킨
언제인가
억센 신념의 메아리
우리 당력사에 1956년은 참으로 준엄한 해로 기록되여있다. 미제가 일으킨 3년간의 전쟁으로 온 나라가 페허가 되고 인민들의 생활은 령락될대로 령락되였다.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또다시 우리를 먹겠다고 전쟁책동에 광분하였는가 하면 사회주의진영에 대두한 현대수정주의자들이 저들의 로선을 내리먹이려고 압력을 가해오고있었다.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로골적으로 우리 당을 반대하여 머리를 쳐들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이 땅에서는 그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오직
이 력사적과제를 스스로 맡아안고 지도해주신분은
강도 일제의 발굽밑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우리 인민이 자기 조국을 가진 떳떳한 민족으로 될수 있은것은 무엇때문이던가.
정녕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인민군대에서 창작한
그러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해가 동쪽에서 뜨지 어데 백두산에서 뜨는가, 무슨 노래가 이렇게 길게 늘어졌는가고 잡소리를 줴치면서 노래가 빛을 보지 못하게 정면으로 반대하여나섰다. 그때 항일혁명투사들은 돼먹지 않은것들, 너희들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허튼수작이냐고 소리치며 놈들을 호되게 답새겼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얼마후 조선인민군협주단(당시)에서는 이 노래를 합창으로 형상하여
백두의 밀림에서 밝아온 이 아침
우리는
이 노래 억눌렸던자 용사로 키워 언제나 승리에로 고무해주네 …
그날에 울린 장엄한 메아리는
불멸의 송가
인민의 진정이 그대로 가사가 된 노래
행복의 요람속에 인민을 잠재우시고 자신께서는 끝없는 헌신의 길을 이어가시는
이 땅에 사회주의가 일떠서고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부르건만 주신 사랑 적으신듯 밤을 새워 헌신하시는
가사의 구절구절을 외울수록 뜨거움속에 돌이켜진다.
항일의 나날에는 이제 나라가 해방되면 발편잠을 자보자고 하시며 사령부귀틀집의 등잔불밑에서 온밤을 지새우군 하시고 조국을 찾으신 다음에는 당을 창건하고 인민정권을 세우시느라 낮과 밤이 따로 없는 분망한 나날을 보내시던 우리
총포탄 울부짖는 가렬한 전화의 나날에는 전쟁을 이끄시느라 바쁘시고 전후에는 또 복구건설로 우리
어느해인가
자정도 지난지 오랬건만 좀처럼 쉬실 생각은 하지 않으시고 헌신하시는
《솔직히 말하면 우리 나라 국가수반은 1년에 한두번 국가행사에나 나타나고는 늘 휴양지에 가있기때문에 우리 정부성원들도 좀처럼 그를 만나보기가 어렵다.우리는 쌓아올리신 공적으로 보나 년세로 보아
자료를 다 보고나신
일군은 그이를 우러르며
우리
평양대극장무대에서 인민의 념원속에 태여난 노래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울려퍼지고있던 그 시각 수도의 거리로는
일군들이 먼길에 쌓인 피로를 잠시나마 푸실것을 절절히 말씀올렸건만
우리
찬이슬 내리는데 또 어데 가시옵니까, 언제면 그 언제면 편히 쉬시렵니까라고 절절한 마음을 담아 우리 인민들도, 세계의 진보적인민들도 노래를 부르고불렀건만 오히려 그것을 자신에 대한 고무로, 기대로 여기시며 헌신의 자욱을 끝없이 이어가신
진정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생애의 마지막날까지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조국을 떠올리시고 인민의 행복을 꽃피워주신
* *
퍼내고퍼내도 마를줄 모르는 샘과도 같이 몇천편을 쓰고 몇만곡을 불러도 다 노래할수 없는것이 우리
전인민적송가들과 더불어 오늘도 우리는
반만년민족사에 처음으로 높이 모신 걸출한 위인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노래-전인민적수령송가,
이는 정녕
본사기자 백영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