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31일《로동신문》

 

평화의 암적존재-나토의 범죄행적을 고발한다(3)

식민지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야수적탄압만행

 

제2차 세계대전후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반제반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불길이 세차게 일어났다.

오랜 기간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식민지를 두고 고률리윤을 짜내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나라들은 이 지역들을 잃지 않으려고 나토까지 동원하며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식민지민족해방을 위한 꽁고민주주의공화국(민주꽁고)의 투쟁력사에도 나토가 남긴 죄악의 발자취가 새겨져있다.

20세기초에 벨지끄의 식민지로 전락되였던 민주꽁고의 인민들은 1950년대에 들어와 민족해방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1959년 1월 민주꽁고의 수도에서는 민족적독립을 요구하는 인민들의 폭동이 일어났다.그 불길은 전 지역에로 급속히 확대되였다.

나토성원국인 벨지끄가 무력을 동원하여 탄압과 살륙만행을 감행하였지만 련속적으로 일어나는 폭동과 봉기들을 제압할수 없었다.벨지끄정부는 할수없이 독립에 대한 민주꽁고의 요구를 수락하였다.민주꽁고는 1960년 6월 30일 독립을 선포하였다.그러나 벨지끄는 무력을 그대로 두고 식민지통치를 한사코 유지하려고 획책하였다.

민주꽁고의 군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그것이 각지에로 확대되자 벨지끄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지지밑에 로골적인 무력간섭을 개시하였다.그와 함께 본토에서 무력을 끌어들이는 조치를 취하였다.나토는 서도이췰란드에 전개되여있던 벨지끄무력을 민주꽁고로 파견하였다.

당시 민주꽁고에서 반식민주의투쟁을 이끈 공적으로 하여 민족적영웅, 반제투사로 알려진 루뭄바는 미국의 후원을 받는 반동세력에 의해 체포되였고 그후 무참히 학살당하였다.

이뿐이 아니다.

나토는 1954년-1962년 알제리민족해방전쟁에도 무력으로 간섭해나섰다.

1954년 8월 알제리에서는 민족해방전선이 결성되고 그해 11월에는 프랑스제국주의자들을 반대하는 전국적인 무장봉기가 일어났다.프랑스는 민족해방을 위한 알제리인민의 무장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40만명의 침략군을 들이밀었다.

미국과 나토성원국들은 막대한 군사적지원을 주면서 프랑스가 알제리인민을 탄압, 학살하고 마을을 파괴하는 만행을 감행하도록 부추겼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나토의 《보호지역》에 포함시켰다.미국과 나토는 알제리의 주변나라들에 전개된 저들의 군사기지를 리용하여 알제리에 대한 군사적공격을 감행하군 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미제는 알제리민족해방전쟁기간에 42억US$이상의 자금과 프랑스침략군이 사용한 무기의 70%이상을 공급해주었다.또한 나토는 3만 5 000여명에 달하는 군대를 투입하여 알제리인민들의 투쟁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앙골라, 모잠비끄, 기네-비싸우에도 나토의 범죄행적이 새겨져있다.

뽀르뚜갈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하는 투쟁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이 나라들의 민족해방투쟁은 1960년대초부터 앙양기에 들어섰다.강력한 정치적력량이 마련되면서 민족해방투쟁은 조직적인 무장투쟁으로 벌어지게 되였다.

급해맞은 나토는 성원국인 뽀르뚜갈에 무력을 제공해주고 많은 무기와 자금을 대주었다.

1971년 앙골라인민해방운동 위원장 아고스띠뉴 네뚜는 기자회견에서 뽀르뚜갈식민주의자들이 나토성원국들로부터 받은 살인무기로 무장한 수많은 침략군을 들이밀고있으며 나팜탄과 독가스를 사용하면서 늙은이들과 녀성들, 어린이들을 가리지 않고 마구 학살하고있다고 폭로하였다.

나토는 아시아에서도 식민지지배와 령토강탈을 노린 서유럽식민주의자들의 책동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적극 비호두둔하였다.

20세기전반기 일본과 영국에 이어 네데를란드의 식민지로 전락되였던 인도네시아는 1950년 8월에 공화국을 선포하였다.이어 뉴기니아섬의 서부지역을 네데를란드의 식민지통치에서 해방하기 위한 투쟁을 벌렸다.이 투쟁은 1957년부터 더욱 고조되였다.

나토는 네데를란드에도 각종 무기들을 제공해주었다.1957년과 1958년 나토는 여러 회의에서 인도네시아의 내정에 간섭하는 문제를 공공연히 토의하였다.

나토는 이렇게 성원국들의 식민지들을 한사코 유지하기 위해 대량살륙만행을 서슴없이 부추기고 동맹의 힘으로 독립한 나라들에 대한 무력 및 내정간섭을 일삼으면서 세계제패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

본사기자 리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