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6일《로동신문》
세력권확대가 초래한 무력충돌사태
랭전이 종식된 후 나토는 동맹확대를 추구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헌신짝같이 줴버리고 1999년부터 현재까지 7차에 걸쳐 16개 나라들을 받아들여 자기의 몸집을 두배로 불구었다. 12개 나라로 발족된 나토가 랭전시기의 40여년동안에 불과 4개 나라를 더 받아들인데 비해볼 때 랭전종식후 30여년간 16개의 동맹국들을 더 끌어들인것 그 자체가 날로 증대되고있는 패권야망을 증시해주고있다. 1991년 나토는 이전 와르샤와조약기구 성원국들을 포함하여 25개국으로 구성된 북대서양협조리사회를 조직하고 다음해 독립국가협동체의 11개 성원국들과 알바니아를 더 끌어들여 37개 성원국으로 확대하였다.전 유럽적인 안보협력기구라는 모자를 씌워 나토확대의 조건을 마련하였다. 이어 1994년에 《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계획이라는것을 내놓고 동유럽나라들과 인도주의원조, 위기대응, 평화수호, 합동군사연습과 같은 측면에서 협력하기로 하였다.로씨야와도 해당 틀거리문서에 조인하였다. 이것은 표면상 로씨야에 양보하는척 하면서 나토의 동쪽에로의 확대를 추진하려는 중간단계, 일종의 절충안이였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거쳐 나토는 1999년 뽈스까, 체스꼬, 마쟈르를 기구에 정식 받아들이였다.2004년에는 발뜨해연안나라들인 라뜨비야, 리뜨바, 에스또니야와 벌가리아, 로므니아, 슬로벤스꼬, 슬로베니아가 나토에 가입하였다. 력사적으로 볼 때 이 동유럽나라들은 서방렬강들과 로씨야사이의 중간지대로서 중요한 전략적의의를 가지였다.때문에 로씨야는 발뜨해로부터 흑해까지의 일대를 나토가 넘어서지 말아야 할 《붉은 선》으로 간주하여왔다. 그러나 이 두 차례의 확대로 나토는 《붉은 선》을 넘어 로씨야의 서북부국경을 직접 위협할수 있게 되였다. 그로부터 5년후인 2009년 서부발칸지역 나라들인 알바니아와 흐르바쯔까가 나토의 27번째, 28번째 성원국으로 되였다.2017년에는 발칸반도의 신생국가인 쯔르나고라가 29번째 성원국으로 나토에 정식 가입하였다. 나토가 이러한 나라들에로 확대의 마수를 뻗친것은 결코 그 나라들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탐나서가 아니였다. 실례로 쯔르나고라는 면적이 1만 3 800㎢, 인구는 60여만명정도이며 주로 관광업에 의거하는 나라이다.군사력을 놓고보면 중시할 필요가 별로 없는 이 작은 나라에 나토가 어째서 눈독을 들이였는가. 외신들은 쯔르나고라의 나토가입은 지중해 북부연안전체가 나토에 속한다는것을 의미하며 나토가 유럽의 지정학적판도에서 로씨야의 마지막못을 뽑아버리는것과 같다고 평하였다. 나토는 2020년에 북마께도니아를 가입시키였으며 이어 로씨야와 접경하고있는 우크라이나까지 자기의 관할권에 끌어들이려고 시도하였다.바로 미국을 위수로 하는 나토의 이 무모한 세력권확대행위로 인해 우크라이나에서 끝내 무력충돌사태가 발생하였다. 나토의 동맹확대전략은 로씨야에 대한 군사적포위환을 완성하고 이 나라를 전략적패배자로 만들자는데 목적이 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사태가 발발한 이후에도 팽창을 멈추지 않았다. 2023년과 2024년에 북유럽나라들인 핀란드와 스웨리예까지 나토성원국으로 받아들이였다. 나토사무총장은 서방이 로씨야와의 《10년간의 대결》을 벌릴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면서 로씨야가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다른 나라들에로 침략의 마수를 뻗치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없다.》고 로씨야의 《위협》설을 고취하면서 나토확대를 정당화하였다. 스웨리예의 가입으로 로씨야를 제외한 발뜨해연안의 모든 나라들이 나토성원국으로 되여 발뜨해가 그야말로 《나토의 호수》로 전변되였다. 발뜨해뿐 아니라 흑해를 포함하여 로씨야와 나토성원국, 그 추종국들의 접경지대에서는 나토의 무분별한 대결책동으로 인해 군사적충돌의 위험이 더욱 짙어가고있다. 현실은 우크라이나를 동맹확대, 세력권확장의 희생물로 만들고 유럽에 더 엄중한 전쟁위험을 조성시키는것도 성차지 않아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비롯하여 전세계적범위에로 대결령역을 계속 넓혀나가는 나토야말로 행성의 평화를 파괴하는 암적존재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본사기자 장 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