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1일《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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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긍지높이 전해가는 25년전의 이야기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졸업생들의 추억담중에서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어도 언제나 마음속에 조국을 안고 살아야 하며 사회주의조국의 절대적인 지지자, 견결한 옹호자가 되여야 합니다.》 1970년대에 진행된 어느한 국제기구회의에서 재일동포학생들이 출연한 음악무용서사시와 집단체조를 찍은 기록영화가 상영된적이 있다.그때 영화를 본 수많은 나라 대표들은 회의에 참가한 총련의 교육자들을 찾아와 《이 아이들이 일본에서 태여난 아이들이 맞는가.상상하기가 어렵다.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큰 집단체조를 한다는것만을 보아도 민족교육이 대단하다는것을 알수 있다.》, 《당신들의 조직이 한 나라도 감히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하고있다.정말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지금으로부터 25년전에도 그런 일이 재현되였다.다른 곳도 아닌 미국에서였다.그때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무용단은 미국의 뉴욕과 로스안젤스에서 특색있는 민족문화예술무대를 펼쳐놓아 깊은 여운을 남기였다. 조국과 총련의 영예를 떨친 주인공들은 오늘도 그 나날을 감회깊이 추억하고있다. * * 2000년 3월 어느날 한대의 려객기가 뉴욕의 한 비행장에 서서히 착륙하였다.승객들중에는 같은 일행이 분명한 5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과 교원, 학부형들이였다. 처음 미국에서의 공연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학생들의 마음은 불안하였다.이전에 학교취주악단이 중국에서 공연한적은 있었다.하지만 미국에서의 공연은 사정이 달랐다.우리 공화국을 제일 적대시하는 나라이기때문이다. 착잡한 마음을 안고있는 학생들에게 교원들은 말하였다. 《일없습니다.어디 한번 미국땅에서 우리 학교의 영예, 우리 총련의 위상, 우리 조국의 존엄을 높이 떨쳐봅시다.》 이렇게 되여 그들은 미국으로 가게 되였다. 비행장에서 입국절차를 밟을 때였다.이들의 사증을 본 수속관계자의 눈이 화등잔같이 되였다.국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한참이나 사증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그는 황급히 주위의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일본에서 조선사람들이 왔다!》 그제서야 영문을 깨달은 총련학생들은 빙그레 웃었다. (미국인들이 우리 조국을 두려워하는구나.우리 조국은 그렇게 강하구나.아무렴, 온 세계가 우러르는 주체조선, 영웅조선이 아닌가.) 순간 가슴이 넓어지고 키가 한뽐이나 커지는듯싶었다.학생들은 어깨를 쭉 펴고 당당히 말하였다. 《그래요.우리는 조선사람이예요.우리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호텔에 도착한 그들은 려장을 푼 후 거리로 나갔다. 조선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무용단성원들은 대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였다.거리가 미여지게 오가던 뉴욕시민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 특이한 행렬을 호기심에 찬 눈길로 지켜보았다. 뉴욕의 한복판에서 그들은 보란듯이 사진을 찍었다.그들은 이렇게 당당한 조선사람으로 자신들을 선보였다.사진을 찍으면서 동포학생들은 굳게 속다짐하였다. (잘해보자! 지금 이 미국땅에서 우리는 총련을 대표하고있다!) 내외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마침내 공연의 막이 올랐다. 먼저 총련민족교육의 력사, 도꾜조선중고급학교의 연혁을 소개하는 록화편집물이 상영되였다. 못잊을 화폭들이 흘러갔다. 총련이 결성될 당시 민족교육의 실태가 화면에 비껴들었다. 예로부터 교육은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한 성스러운 사업이라고 일러왔다.이역땅에서 사는 해외동포들에게 있어서 자기 민족의 말과 글, 력사와 문화를 알게 하는 민족교육은 동포사회의 존망과 관련되는 더없이 중요하고 사활적인 사업이다. 망국의 시절 자기들이 겪은 무지와 몽매의 설음을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으려고 재일동포들은 한푼두푼 돈을 모아 일본각지에 학교들을 세웠다.하지만 동포들 대다수가 최하층의 생활을 하고있다나니 재정난을 면할수 없었다.가까스로 시작한 학교건설이 자금때문에 해를 넘기면서도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있었다.많은 학교들이 여러해째 가교사신세를 면할수 없었다.총련 조선대학교도 도꾜조선중고급학교의 교실 몇개를 빌려쓰고있는 형편이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교원들의 생활비 같은것은 꿈도 꿀수 없었다.많은 교원들이 아침은 건빵에 물 한고뿌, 점심은 학생들이 날마다 번갈아 가져오는 주먹밥으로 끼니를 에웠다.저녁을 번지는것은 보통이였고 잠자리는 학교경비실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 말과 글을 배운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있었다.비바람이 새여드는 판자집교사, 백묵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교단에서 그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교육자들은 눈물을 삼키였다. 이런 실태를 헤아리신 낡을대로 낡고 비좁던 학교대신 사랑의 교육원조비로 건설된 현대적인 학교로 씩씩하게 등교하는 자식들의 환희에 넘친 모습을 보며 동포들은 격정으로 가슴들먹이였다.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생명수와도 같이 동포들모두의 몸과 마음을 뜨겁게 적셔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그것은 거치른 이역땅에서 민족의 혈통, 애국의 넋이 꿋꿋이 이어지게 한 사랑의 젖줄기였다. 그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아래 자본주의일본땅에 민족교육의 대화원이 펼쳐졌다.… 참으로 놀라운 력사와 현실이 반영된 편집물이였다.감동과 충격으로 장내는 물뿌린듯 고요하였다. 이윽고 흥겨운 춤무대가 펼쳐졌다.서장 《봄맞이》에 이어 장고춤, 탈춤 등 다채로운 민족무용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조선무용의 흥취나는 률동은 관중을 고상한 조선민족문화의 세계에로 이끌어갔다.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어도 민족의 향기를 고이 간직한 조선의 꽃으로 피여나려는 학생들의 순결한 마음이 작품마다에 그대로 어려있었다. 군무 《회오리》가 무대에 펼쳐졌다.일명 《조선치마저고리칼질사건》으로 불리우는 일본우익반동들의 비렬하고 야만적인 테로행위에 굴하지 않고 민족적존엄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재일동포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였다.민족적차별과 탄압의 회오리가 아무리 세차도 민족의 넋이 어려있는 조선치마저고리를 결코 벗을수 없다는 재일동포학생들의 의지가 격렬한 춤가락을 통해 관중에게 전달되였다. 객석에서는 격찬과 환호가 그칠새 없었다. 《잘한다!》 당시 공연상황에 대해 미국의 한 언론은 《관중의 우렁찬 박수소리는 마치도 뉴욕과 로스안젤스전체를 흔들어주는듯하였다.》고 전하였다.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이 민족의상을 차려입고 마음껏 춤추는 모습에 정말 경탄을 금할수 없다.》, 《민족적인 화려한 무대이다.》, 《보면볼수록 더 보고싶은 공연이다.》… 랭담한 미국인들이였지만 우리 동포학생들의 청신한 자태, 뛰여난 재능에 반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조선민족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재미동포들의 심정은 더욱 류달랐다. (어쩌면 저렇게 자신만만하고 생기발랄한가.민족배타주의가 가장 심한 일본에서 살면서도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민족의 넋을 지켜나가는것이 정말 놀랍구나. )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럴만도 하였다.재미동포들에게 있어서 큰 고민거리는 자식들이 자기 민족도 모르고 완전히 미국인화되여가는것이였다.부모자식간에 우리 말로 의사소통을 할수 없는 가정이 대다수였다.그런데 재일동포학생들은 우리 말을 류창하게 하고 보란듯이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상을 입고 흥겹게 춤추고 노래부르고있다.그것이 놀랍고 그래서 생각이 깊어지는것이였다. 뉴욕에서 예술학교를 운영한다는 한 재미동포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춤을 추는것만 같았다, 재일동포들이 일본에서 민족성을 굳건히 고수하고 민족문화를 꽃피워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놀랍다, 정말 부럽다고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가슴이 뜨거워져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이역땅에서 살지만 어쩌면 그렇게도 정신상태가 깨끗한가.》, 《강압과 차별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지켜낸 총련조직이 정말 놀랍다.》, 《정말 가슴이 흐뭇하다.총련은 해외동포들모두의 자랑이다.》… 재미동포들은 이렇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그 말을 들으며 총련학생들은 크나큰 긍지로 가슴들먹이였다.우리 학교의 소중함을 사무치게 느끼였다. 공연을 마친 출연자들은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교가를 자랑스럽게, 우렁차게 불렀다.관중이 모두 일어나 열렬한 박수로 호응하였다.그들속에는 미국에 와있던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졸업생도 있었다.그는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혼자 조용히 불러보군 하던 교가를 이 미국땅에서 들을줄 정말 몰랐다고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무용단이 미국의 뉴욕과 로스안젤스에서 펼쳐놓은 공연은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기였다. * * 세월은 흘러 그때의 어린 무용단성원들은 어느덧 교육자, 학부형이 되여 민족교육의 강화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있다.그들중에는 총련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도꾜조선중고급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김화미녀성도 있다.어제날의 무용소조원이 오늘은 지도교원이 되여 아이들의 재능을 꽃피워주고있다. 25년전 미국땅을 뒤흔들었던 총련의 재간둥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애국의 싹을 자래워준 우리 학교를 정녕 잊을수 없다고, 우리들의 보람찬 인생좌표는 바로 그곳에서 그어졌다고. 어머니조국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새세대들에게 민족의 넋, 애국의 넋을 심어주는 총련의 민족교육은 더욱 강화발전되고있다. 본사기자 허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