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1일《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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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대당사업의 획기적전환이 마련된 잊지 못할 회의
지난 조국해방전쟁은 우리 당이 창건된지 다섯해, 우리 혁명무력이 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된지 겨우 2년밖에 안되던 때에 우리 조국과 인민이 겪은 가장 엄혹한 시련이였다.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을 단호히 물리치고 조국해방전쟁의 빛나는 승리를 안아오시기 위해 우리 나라에는 속사골이라고 불러오는 지명이 많다.하지만 그중에서도 수천년세월 산속깊이 묻혀 소문도 없던 평안북도 동창군의 속사골이 우리 당력사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리정표가 세워진 뜻깊은 곳으로 될줄 그때에는 그 누구도 몰랐다. 1950년 10월 21일이였다. 이날 새벽 이곳 속사골에 이르신 흙벽에 벼짚이영을 하고 노전을 깐 너무도 수수하고 소박한 방이였다.머나먼 전선길에서 쌓이고쌓인 피로가 그토록 크시였건만 그때 우리 가렬처절한 전투마다에서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돌진하면서 자기를 조선로동당원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하던 인민군전사들의 영웅적인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어려오시는듯 보고서를 준비하시는 사실 인민군대내에 당단체를 내올데 대한 문제는 20여일전인 1950년 10월 1일에는 인민군대안의 정치사업을 맡은 일군들이 군인들과 지휘관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무규률적이며 관료주의적인 편향들을 바로잡지 못하고있는 실태를 헤아리시고 최고사령부로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그날 인민군대에 대한 당시까지만 하여도 인민군대안에는 군관학교와 일부 부대들에만 당조직들이 있었고 전반적부대들에서는 문화부가 군인들에 대한 교양사업과 당원들과의 사업을 하여왔다. 이렇듯 인민군대내에 조선로동당 단체와 정치기관을 조직하기 위한 사업을 구상하여오신 10월 21일 오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가 소집되였다. 회의참가자들은 인민군대안에 당단체와 정치기관을 내오도록 해주신 성대한 대회장도 아니였고 요란한 격식도 없었다.하지만 조선인민군이 명실공히 자기의 성격을 더욱 뚜렷이 밝히고 새롭고도 장쾌한 고고성을 울리는 력사적인 회의였다. 회의참가자들은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이후 짧은 기간에 인민군대안의 문화부들이 정치부들로 개편되였으며 부대, 구분대안에는 조선로동당 단체들이 체계정연하게 조직되고 새로 조직된 당조직들은 모든 당원들과 군인들을 그리하여 우리 인민군대는 조국해방전쟁의 그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자기 사명과 역할을 보다 훌륭히 수행할수 있게 되였으며 군인들속에서는 인민군군인들이 싸우는 모든 곳에는 언제나 당조직이 살아움직이였으며 가장 어려운 곳에는 언제나 로동당원들이 서있었다. 참으로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령도를 강화하고 군인들속에서 당정치사업을 활발히 벌리도록 힘있게 이끌어주신 인민군대는 우리 당에 의하여 조직되고 당의 위업을 무장으로 받들어가는 혁명적무장력이다. 인민군대가 당의 령도에 충실할 때 자기의 혁명적성격을 고수하고 사명과 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다. 당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모든 군사사업과 군사활동을 당중앙의 명령집행에로 지향시켜나가는 우리 인민군대의 오늘의 자랑찬 모습은 70여년전 속사골에서 진행된 잊지 못할 그날의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떠나 생각할수 없다. 전화의 나날 산간벽촌에서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는 인민군대당사업에서 획기적전환이 마련된 의의깊은 회의로 우리 당력사에 길이 빛날것이다. 본사기자 오영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