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1일《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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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메아리쳐오는 신념의 웨침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혁명적지조를 굳건히 지킨
《신념과 의리로 하는것이 혁명이며 신념과 의리로 하여 빛나는것이 혁명가의 인생행로입니다.혁명적신념과 의리는 목숨바쳐 지켜야 할 혁명가의 가장 고상한 품성입니다.》 전승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온 나라 인민의 가슴마다에 전화의 불비속에서 조국을 지켜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싸운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우리 인민이 가렬처절하였던 3년간의 전쟁, 진정 그것은 불과 불이 오가는 사생결단의 판가리결전인 동시에 사상과 리념, 신념과 의지의 준엄한 대결이였다.하기에 세상을 놀래우는 전승신화가 창조된 조국해방전쟁사의 갈피마다에는 조국의 한치땅을 지켜 용감하게 싸운 인민군전사들의 불멸의 위훈과 함께 최후의 순간까지 혁명적지조를 굽히지 않은 애국렬사들의 투쟁사실도 빛나게 아로새겨져있다. 그들의 군상속에는 오늘도 우리 당의 품속에서 값높은 영생의 삶을 누리는 한 애국렬사가 있다.황해도인민위원회(당시) 위원장이였던 리룡진동지이다. 그는 자기의 불굴의 최후로 조선로동당원이 지닌 혁명적신념이란 과연 어떤것이며 원쑤들과는 어떻게 맞서싸워야 하는가를 우리 후대들앞에 떳떳이 보여준 참된 혁명가이다. 리룡진동지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자 도안의 정권기관들과 인민들의 조직적인 후퇴를 보장하고 뒤늦게야 구월산으로 향하던중 불행하게도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리룡진동지를 체포한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은 인간의 두뇌로써는 상상할수조차 없는 가장 야만적인 방법으로 고문을 가하였다. 원쑤놈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온몸에 바늘을 꽂았으며 어깨에 못을 박고 총창으로 두눈을 도려냈다.그것도 모자라 쇠줄로 코를 꿰여 마구 끌고다니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하지만 그 어떤 악착한 고문과 회유도 그의 혁명적신념과 절개를 꺾을수 없었다. 악에 받친 놈들은 그를 사형장으로 끌어내고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공화국정부가 나쁘고 미국이 좋다는 선전만 하면 살려주겠다고 떠벌이였다.최후를 각오한 리룡진동지는 온몸의 힘을 깡그리 모아 하다면 그는 어떻게 되여 꺾이면 꺾일지언정 굽힐줄 모르는 신념의 강자, 불굴의 투사로 자라날수 있었는가.원쑤들의 모진 악행으로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면서도 자기의 혁명적지조를 끝까지 지킨 신념의 억센 뿌리는 과연 무엇이였던가. 원쑤놈들의 요구에 단 한걸음만 양보해도 얼마든지 목숨을 살릴수 있었지만 고동을 멈추지 않는 심장이란 없고 끝나지 않는 생이란 없다.그러나 비록 오랜 삶은 아니여도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죽음도 두렴없이 나아가고 신념을 지켜 단두대에도 웃으며 오르는 그런 생은 설사 심장의 고동이 멎었어도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길이 남아 빛나게 되는것이다. 불굴의 혁명적신념과 의지로 원쑤놈들을 전률케 한 애국렬사가 어찌 리룡진동지만이랴. 전화의 나날 당과 《저는 조선로동당원으로 죽습니다.당이 있는한 우린 이깁니다!》 최후를 앞두고 영웅이 남긴 이 말은 그의 가슴속에 간직된 드틸줄 모르는 신념의 기둥이였고 자기의 실생활로 체득한 삶과 투쟁의 진리였다. 조옥희녀성은 해방전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여나 남의 집 아이보개로, 삯빨래로 잔뼈가 굵었다.그후 악착한 일제놈들을 피하여 깊은 산골로 도망쳤던 그는 그곳 광산에서 일하는 청년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하지만 행복은 한순간이였다.굴이 무너지는 바람에 남편이 한많은 세상을 떠났던것이다. 얼마후 유복자가 태여났지만 어린애가 달린 그에게는 일자리도 차례지지 않았다.산을 톺으며 나무열매와 풀뿌리로 연명해가던 그는 몇번이나 죽으려고 하였으나 험악한 세상에 홀로 남을 어린것때문에 마음을 고쳐먹군 하였다. 이런 그의 생활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것은 건국사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쳐가던 나날 조옥희동지는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으며 얼마후에는 중앙당학교(당시)에서 공부하게 되였다.이처럼 공화국의 품속에서 꿈같이 흘러간 행복의 5년은 그에게 있어서 절대로 빼앗길수도 배반할수도 없는 목숨보다 더 귀중한것이였다. 조옥희동지는 최후의 순간 사랑하는 혈육들과 동지들에게 남길 말이 많았지만 그 모든것을 대신하여 이렇게 목청껏 웨쳤다. 사람의 한생에는 기쁨과 행복도 있고 고난과 시련도 있으며 지쳐 쓰러질 때도 있다.그 모든 희로애락중에서도 자신의 본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보일수 있는 순간은 아마도 죽음을 눈앞에 둔 때일것이다.하기에 더없이 귀중한 생명, 단 한번밖에 없는 삶을 아무러한 후회나 주저도 없이 바친다는것은 누구나 쉽게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삶과 죽음을 판가리하는 가장 준엄한 시련속에서 조선로동당원의 불굴의 기개, 혁명가의 신념과 지조를 지켜 한목숨 서슴없이 바친 렬사들의 삶을 놓고 우리는 생각해본다. 신념이란 죽음앞에서도 굴함없는 강철같은 의지와 지조이며 신념의 인간이란 그 어떤 시련과 고난속에서도 자기의 삶을 긍지높이 자부하며 생을 가장 깨끗하게 마무리할수 있는 참된 인간이라는것을. 자기가 선택한 사상과 위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며 설사 그길에서 쓰러지거나 숨이 진다고 해도 혁명앞에 다진 맹세를 지켜 추호의 변심도 모르는것이 죽어도 변치 않을 혁명가의 굳센 신념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생을 값있고 빛나게 살았는가 아니면 헛되고 무의미하게 살았는가는 생의 길고짧음이나 쌓아둔 재산의 높이, 직위와 명예로 결정되는것이 아니라 바로 그가 지닌 신념에 의하여 판별된다. 신념이 굳건하면 평범했던 사람도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이 기억하는 값높은 생을 누릴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리룡진동지와 조옥희동지만이 아닌 전화의 나날에 배출된 수많은 애국렬사들의 투쟁모습을 통하여 다시금 가슴깊이 절감할수 있다. 한뽐도 넘는 대못을 들고 비밀을 대지 않으면 머리에 못을 박겠다고 위협하는 원쑤들에게 《이 인간백정놈들아, 못을 박을테면 박아라.그 못을 박는다고 나의 사상이 변할줄 아느냐.승냥이같은 네놈들이 그 대못을 내 머리에 박는다면 나의 사상을 표시하는 붉은 피만이 흐를것이다. 이들이 지닌 불굴의 신념은 결코 한순간의 충동이나 즉흥적인 감정에서 나온것이 아니다. 렬사들은 자기가 누려온 해방후 5년간의 행복속에서 식민지노예살이가 얼마나 비참한것인가를 그리고 인간의 참된 존엄과 권리를 안겨준 전화의 나날 애국렬사들이 그 영원한 메아리와 더불어 애국렬사들의 불굴의 혁명정신은 본사기자 안성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