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7일《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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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들에게 차례질것은 시체와 죽음뿐이다 계급교양주제 미술전시회장을 돌아보고(3)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이 땅에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긴 미제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을 안고 우리는 참관자들과 함께 다음미술작품들이 전시되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의 인민군대와 인민들은 숭고한 애국주의와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영웅적으로 투쟁함으로써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침략자들에게 정치군사적패배를 안기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영예롭게 수호하였습니다.》 참관을 이어가던 우리의 눈앞에 가슴후련한 화폭이 펼쳐졌다.침략자 미제가 어떤 비참한 운명에 처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유화 《함정골이야기》였다. 작품은 1211고지방위전투에서 우리 인민군대의 드세찬 불벼락에 얻어맞고 만신창이 되여 쫓겨가는 미제침략군놈들의 가련한 몰골을 풍자적으로 형상하고있었다. 유개화차에 올라앉아 제놈이 전투에서 겪은 무시무시한 참변을 이야기하는 부상병과 그놈의 이야기를 공포속에서 듣고있는 그 주변놈들의 겁에 질린 낯짝들,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를 고대하며 기차가 떠날 시간을 재촉하는 패잔병놈의 형상은 조선전쟁에서 미제가 당한 패배와 수치스러운 운명을 그대로 보여주고있었다. 작품의 제목으로 된 조국해방전쟁시기의 함정골이야기, 그것은 과연 어떻게 생겨난것인가. 미제는 《하기공세》에서 당한 심대한 패배를 만회해보려고 전선서부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벌릴것처럼 기만하면서 전선동부에 대병력을 집결하여 우리의 방어선을 단숨에 돌파해보려고 《추기공세》를 감행해나섰다. 우리 인민군용사들은 당시 적들은 어찌나 혼비백산하였던지 1211고지를 바라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상한다고 하여 《상심령》이라고 불렀고 고지아래의 골짜기를 한번 들어서면 살아나오지 못한다고 하여 《함정골》이라고 부르면서 공포에 떨었다. 1211고지는 적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무서운 악몽이고 죽음의 함정이였다. 이뿐이 아니다. 판화 《중앙계급교양관에서》에 형상된 무수한 십자가들과 무덤장군의 오명을 쓴 스미스의 비참한 몰골, 펜화 《침략자의 말로》와 유화 《락엽》이 보여주는 침략군무리의 가련한 몰골들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1211고지만이 아닌 이 땅의 어디나 다 미제침략자들의 비참한 패배와 죽음의 함정골이였음을 말해주고있었다. 미제는 전선에서만 수치스러운 운명에 처한것이 아니였다. 전시회장에는 자기 고향과 마을을 재더미로 만든 원쑤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를 안고 침략자를 소탕하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우리 인민의 모습과 미제의 패배상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었다. 수채화 《가련한 신세》와 판화 《가련한 몰골》은 녀성들과 나어린 소년들에게 붙잡혀 벌벌 떠는 미군비행사놈의 비겁한 몰골을 생동하게 형상하고있었다. 작품들을 보며 한 미술가는 이렇게 말했다. 전화의 나날 조국을 지키는 싸움에서는 남녀로소가 따로 없었다.모두가 병사였고 누구나 방위자들이였다.침략자들에 대한 불같은 증오와 복수심을 안고 원쑤와의 판가리결전에 나선 그들속에는 녀성들과 나어린 소년들도 있었다.그들의 투쟁이야기를 듣는 과정에 원쑤격멸의 의지를 안고 떨쳐일어난 인민의 힘을 당할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새겨안게 되였다.앞으로 전화의 나날 우리 인민의 투쟁모습을 담은 작품을 더 많이 형상하기로 결심하였다.… 조선전쟁을 도발할 당시 미제는 저들의 방대한 군사력앞에서 태여난지 불과 2년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 청소한 조선이 쉽게 굴복할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망상에 불과하였다. 전쟁승리의 결정적요인은 무장장비의 우세에 있는것이 아니라 탁월한 작은 나라라 하더라도 오늘 우리 인민은 더욱 억세여졌고 우리의 국력은 70여년전에 비할바없이 강해졌다. 만일 미제가 패배의 력사를 망각하고 이 땅에 또다시 파괴와 죽음, 불행을 강요하려 한다면 우리는 다지고다져온 강대한 힘으로 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할것이다. 침략자들에게 차례질것은 시체와 죽음뿐이다. 우리는 력사의 이 진리를 다시금 가슴깊이 새기며 계급교양주제 미술전시회참관을 마치였다. 본사기자 백광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