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5일《로동신문》
|
《사향가》에 어린
참으로 뜻깊은 우리의 명절, 크나큰 감회와 격정으로 가슴높뛰게 하는 력사의 날이다. 조선혁명의 닻을 올리신 때로부터 20성상 우리 그에 대해 생각할 때면 우리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 한없이 유정하고 깊은 서정에 잠기느라니 우리 정녕 《사향가》에는 얼마나 하많은 사연이 실려있는것인가. 불후의 고전적명작 《사향가》는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노래이다. 하지만 노래에는 단순한 그리움만이 아니라 조선혁명의 시원이 어떻게 열리였으며 우리의 눈앞에 14살 나이에 일제의 총칼밑에 신음하는 조국땅을 뒤에 두시고 압록강을 건느시던 강뚝우에 나딩구는 조약돌을 조국의 표적으로 손에 꼭 감싸쥐시고 조선아, 조선아, 나는 너를 떠난다, 너를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수 없는 몸이지만 너를 찾으려고 압록강을 건는다, 압록강만 건느면 남의 나라 땅이다, 그러나 남의 땅에 간들 내 너를 잊을소냐, 조선아, 나를 기다려다오라고 마음속으로 뇌이실 때 우리 잊을수 없는 그날을 돌이켜보시며 《찬바람이 불어대는 두 나라 지경에서 신음하는 조국산천을 돌아보니 사랑하는 고향으로, 고향집으로 다시 달려가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때 우리 조국에서 보낸 세월은 비록 두해밖에 안되였으나 그 기간에 그이께서 간직하신 가장 귀중한 체험은 우리 인민이 어떤 인민인가를 깊이 리해하게 되신것이였다. 소박하고 근면하면서도 용감하고 강의한 인민, 어떤 곤난에도 굴하지 않는 억센 인민, 례절이 바르고 인정이 풍부하면서도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비타협적인 우리 인민, 바로 그들의 모습에서 그 어떤 힘으로써도 훼손시킬수 없는 인민의 존엄과 강철같은 독립의지를 뜨겁게 감수하시며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런 인민을 잘 조직동원한다면 얼마든지 나라를 찾을수 있으리라는 신심이 우리 기어이 조국을 찾고서야 돌아오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신 그날로부터 얼마나 간고하고 시련에 찬 로정이였던가. 국토를 통채로 강탈당한 조건에서, 정규무력의 지원도, 국가적후방도 없는 상태에서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는 일본제국주의자들과 항전을 벌려야 하였다.총 한자루, 식량과 소금 한줌, 천 한쪼박, 성냥 하나를 얻자고 해도 피어린 전투를 벌려야 하였다.천고의 밀림에서 가랑잎을 이불삼아 덮고 풀뿌리를 씹으면서 일제의 정예무력과 오랜 기간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난관의 고비는 얼마나 많았고 그길에서 겪으신 가슴아픈 희생은 또 얼마였던가. 그 혈로를 진두에서 헤치시는 우리 《사향가》를 즐겨부르시며 대원들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을 깊이 새겨주시던 그러면 1936년 봄 만강의 시내가에서 항일의 녀대원들에게 우리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봄이 각별히 그리운 법이라고 하시며 고향을 떠날 때 문앞에서 바래워주던 어머니의 정깊은 목소리와 어린 동생들이 마음껏 뛰노는 모습은 진정 나라를 찾기 위한 싸움길에 나선 항일유격대원들의 가슴을 높뛰게 하는 아름다운 고향, 사랑하는 조국에 대한 감동적인 표상이였다. 밀영의 깊은 밤 우등불가에서 우리 진정 《사향가》는 항일혁명투사들모두에게 있어서 조국을 그려보게 하고 조국을 위해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싸우게 한 힘의 원천이였다.항일무장대오가 간고한 혈전의 길에서 주춤없이 앞으로만 힘차게 나아가게 한 귀중한 정신적원동력이였다. 돌이켜보면 정녕 피어린 길이였다. 적들과의 치렬한 전투, 뼈속까지 얼어드는 혹심한 추위, 겹쳐드는 식량난, 무서운 병마와의 투쟁, 혁명가의 신념을 검증하는 복잡한 정세변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의 언덕들에서 순간의 주춤도 없이 백절불굴의 신념과 의지로 만난을 결연히 맞받아나아가신 혁명의 붉은기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 조국에 무보를 뻗치고 군호를 올리자! 우리 그렇듯 고난에 찼던 나날들에 대한 《라자구등판에서 겪은 고생, 두차례에 걸치는 북만원정과 무송원정은 얼마나 간고한 원정이고 고난의 행군은 또 얼마나 곡절많은 행군입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그 모든것을 다 이겨냈습니다.촉한도 이겨냈고 주림도 이겨냈고 그믐밤처럼 캄캄한 절망도 이겨냈습니다.동지들의 희생으로부터 생기는 슬픔과 심장의 동통도 다 디디고 일어섰습니다.》 그러시면서 항일의 혈전만리, 눈보라만리길에서 지금도 《사향가》의 은은한 노래소리를 들으며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앞에 서있느라면 뜨거운 격정속에 어려오는 하나의 화폭이 있다. 조국인민들과 감격적인 첫 상봉을 하신 후 조부모님들이 계시는 고향 만경대를 찾으신 우리 고향을 떠날 때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올 굳은 맹세를 다지시며 씩씩하게 혁명의 길에 나서신 만경대혁명일가분들이시였다.그러나 그분들가운데서 조국으로 돌아오신분은 력사의 그날 만경대를 찾으신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력사의 새벽길을 헤쳐가신 아버님과 사랑하는 어머님을 이국의 거치른 광야에 묻으시지 않으면 안되시였던 그 비통한 마음, 혁명전사들이 희생될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며 밀림속 우등불가에서 친히 추도사를 쓰실 때의 가슴아픔… 혁명가로서, 인간으로서 상상할수 없는 뼈저린 아픔도 이겨내시고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으시며 조국해방을 위한 길을 꿋꿋이 헤쳐오신 참으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오신 이 노래를 높이 부르며 우리 인민은 조국해방위업의 빛나는 승리를 안아오신 이 노래와 더불어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승리를 향해 용진 또 용진할것이며 본사기자 오은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