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4일《로동신문》

 

천년이 간들 잊을수 있으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략탈정책과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끼친 불행과 재난은 인류력사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입니다.》

일제가 불법비법의 《을사5조약》의 강도적인 날조로 우리 나라를 식민지화한 때로부터 120년,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일제의 식민지파쑈통치가 끝장나고 이 땅에 해방의 새 아침이 밝아온 때로부터도 어느덧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흐르는 세월은 많은것을 망각의 이끼속에 덮어버린다.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절대로 잊을수 없는것이 있다.그것은 바로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만고죄악이다.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통치기간 일제가 저지른 죄악중에서도 가장 큰 죄악은 우리 인민들을 잔인무도하게 학살한것이다.

극도의 인간증오사상과 민족배타주의정신이 골수에 찬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제놈들을 《우수한 민족》이라고 자처하는 한편 조선사람은 응당 제놈들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떠벌이며 극악한 무단통치, 《문화통치》, 파쑈테로통치를 실시하여 수많은 조선사람을 학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반인륜적범죄를 감행하였다.

《조선인은 일본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조선사람들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의 기본방식이였다.이에 따라 일제는 《범죄즉결령》, 《조선감옥령》, 《국가보안법》 등 수많은 파쑈살인악법들을 만들어내고 악착하게 시행하였다.

일제는 우선 제놈들의 식민지통치에 항거하여 반일투쟁에 떨쳐나선 애국자들과 군중을 대대적으로 탄압학살하는데 미쳐날뛰였다.

일제는 1906년 여름부터 1911년까지의 기간에 방대한 무력을 《토벌》작전에 투입하여 수많은 의병들을 학살하였다.

또한 3.1인민봉기와 6.10만세시위투쟁을 비롯하여 제놈들의 파쑈적폭압통치에 항거해나선 군중들도 야수적으로 살해하였다.우리 인민에 대한 놈들의 학살만행의 잔인성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였다.

3.1인민봉기진압당시 나어린 한 녀학생이 시위대렬에서 국기를 들고 행진하는것을 본 일제살인귀들은 기발을 든 그의 오른팔을 일본도로 내리쳐 자르고 그가 다시 기발을 왼손으로 추켜들고 앞으로 나가자 왼팔마저 잘라버렸다.녀학생이 그래도 굴하지 않고 《조선독립 만세!》를 부르며 전진하자 놈들은 그의 몸을 칼로 마구 찔러죽이는 야수적학살만행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이뿐이 아니다.

일제는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사르고 모조리 빼앗으라는 《3광정책》을 떠들면서 간도일대에서만도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간또대지진당시 2만 3 000여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가장 야만적인 방법으로 마구 학살하였다.

일제의 학살만행은 강제련행한 조선사람들속에서도 감행되였다.

일제는 강점기간 《징병》, 《징용》 등의 명목으로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랍치, 련행하였다.일제야수들에게 붙잡혀 전쟁터와 고역장으로 끌려간 조선사람들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침략전쟁의 대포밥이 되거나 고된 로동과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고 꿈결에도 보고싶은 부모형제들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채 이국의 광야에서 무주고혼이 되고말았다.

그때의 비참상에 대하여 징용에 끌려갔던 한 생존자는 이렇게 회상하였다.

《영양실조로 동료들은 하나, 둘 쓰러져 죽어갔으며 아침에 일어나보면 옆의 사람이 없어지군 하였다.일본놈들은 우리 사람들을 버러지목숨만도 못하다고 하면서 갈구리같은것으로 찍어서 콩크리트타입장에 처넣군 하였다.지금까지도 그 모습이 꿈에 나타나서 잠들수 없다.》

일제가 감행한 전대미문의 대학살은 철저히 아시아와 세계제패를 위해 우리 인민을 완전히 멸살시킬것을 획책한 일본당국의 침략정책과 야망의 로골적인 발현이였다.

일제는 식민지통치기간 우리 나라에 대한 무제한한 경제적략탈을 감행하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의 풍부한 자원에 눈독을 들이고있던 일제는 우리 나라를 강점하자마자 경제적략탈에 미친듯이 광분하였다.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지배초시기부터 토지강탈에 매여달린 일제는 《토지조사령》을 선포하고 《수속위반》, 《증거불명》 등의 구실을 붙여 100여만정보에 달하는 막대한 토지를 비법적으로 강탈하였다.한편 《산미증식계획》, 《공출》 등의 간판으로 강점 전 기간 우리 나라에서 수천만t의 쌀을 략탈해갔고 조선농민들이 자기 살붙이처럼 중히 여기던 소까지 수많이 끌고가 도살해버렸다.

일제의 악랄한 농촌략탈행위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의 농촌들은 만성적인 아사지대로 변해버렸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다 못해 정든 고향을 버리고 거치른 이국땅으로 류랑의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는 또한 《조선광업령》, 《어업령》을 비롯한 식민지략탈법들을 조작공포하여 우리 나라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수산자원들을 가장 악착한 방법으로 긁어갔다.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강탈해간 물적자원은 액상으로 볼 때 그야말로 천문학적수자였다.

조상전래로 물려오던 놋으로 만든 초대와 놋그릇, 놋수저까지 빼앗으며 경제적략탈에 미쳐날뛴 일제야말로 우리 나라의 자원과 우리 인민의 고혈을 무자비하게 짜낸 흡혈귀들이였다.

일제가 저지른 특대형반인륜범죄중에서 또한 엄중한것은 우리 인민의 넋과 자부심, 우수한 문화와 미풍량속을 말살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한것이다.

이 책동의 중요한 고리가 바로 우리 인민의 슬기와 재능이 비낀 문화재들에 대한 대대적인 략탈이였다.일제는 헌병, 경찰, 불량배들을 내몰아 고분들을 도굴하여 수많은 문화재들을 파괴략탈하였으며 《연구》라는 명목밑에 불상들과 석탑 등 불교유물들과 공예품들을 닥치는대로 훔쳐갔다.

자료에 의하면 일본에 소장되여있는 조선문화재는 수만점으로 추정되며 개별적인 일본인들이 소유하고있는것까지 합하면 무려 수십만점에 달한다고 한다.

일제는 사상문화분야에서의 악랄한 파쑈화책동의 일환으로 《황국신민화》정책을 로골적으로 실시하였다.

일제가 우리 인민을 《황국신민화》하는데서 중요하게 노린것은 《내선일체》와 《동조동근》사상을 강제로 불어넣는것이였다.

일제는 이를 위해 력사적사실까지 날조하다 못해 나중에는 우리 말과 글까지 빼앗으려고 미쳐날뛰였다.

세계전쟁사에는 남의 나라를 강점한 침략자들의 죄행이 수많이 기록되여있지만 그 나라 인민의 말과 글을 빼앗고 자기네 식으로 성과 이름까지 갈라고 강요한것은 일본제국주의자들밖에 없다.

수십년동안에 걸치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로 하여 우리 인민이 당한 정신적, 인적, 물적피해는 그 형태와 내용, 규모에 있어서 인류력사상 있어보지 못한 최악의것이였다.

그러나 간특한 일본반동들은 아직까지도 저들의 과거범죄를 부정하면서 그에 대한 배상을 한사코 거부하고있다.

력사는 그 누가 우기거나 부정한다고 하여 달라지는것이 아니다.

우리 인민은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일제의 천인공노할 죄악의 력사를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그 값을 천백배로 받아내고야말것이다.

박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