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1일《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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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기억하고 끝까지 결산하라!》 강계시 부창동에 살고있는 장련봉전쟁로병의 체험담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뀔수록 순간도 늦추거나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입니다.》 얼마전 우리는 새세대들과의 상봉모임에 자주 참가하여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원쑤놈들이 감행한 야수적만행을 폭로하고있는 강계시 부창동의 장련봉전쟁로병에 대해 알게 되였다. 아흔살이 지난 오늘까지도 스스로 계급교양의 길을 변함없이 걷고있는 로병의 체험담은 우리의 가슴을 미제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펄펄 끓게 하였다. 장련봉로병의 고향은 신천이다.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남긴 신천, 장련봉로병도 고향마을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자기 가정이 당한 참상과 함께 철천지원쑤 미제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슴끓이군 한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던 1950년 가을 어느날이였다. 두 동생과 함께 집에서 부모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16살의 장련봉은 무서움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포성이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오고있었던것이다. 이때 동생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귀전에 울렸다. 《언니, 모범농민들이였던 《인차 오실게다.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련봉은 무서움에 떠는 어린 동생들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 이때 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대문을 열던 련봉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보기에도 흉물스러운 낯짝을 한 미국놈들과 《치안대》놈들이 서있었던것이다. 놈들은 다짜고짜로 이들을 마을의 어느한 창고로 끌고갔다. 그런데 창고로 들어서던 련봉은 다시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거기에는 그의 부모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갇혀있었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놈들은 사람들을 마당으로 끌어냈다.그곳에는 이미 당세포위원장과 농민동맹위원장을 비롯한 리일군들이 끌려와있었다. 얼마나 악착한 고문을 받았는지 그들은 온통 피투성이였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있었다. 놈들은 악질빨갱이들이 어떻게 죽는가를 보라고 하면서 그들을 나무에 묶어놓고 불을 달았다. 애국자들이 최후의 순간에 웨치는 《조선로동당 만세!》의 함성이 하늘가에 높이 울려퍼졌다. 놈들은 이번에는 련봉의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는 모른다는 대답만이 울려나왔다. 악에 받친 놈들은 그날 악질빨갱이들은 모두 멸족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련봉의 부모와 두 동생을 강가로 끌고가 구뎅이에 밀어넣고 생매장하여 무참히 학살하였다. 놈들은 중학교시절 민청열성자를 하면서 좋은 일을 하는데 앞장섰던 련봉은 더 고통을 주다가 죽여야 한다며 어느한 방공호에 다시 가두어넣었다. 이튿날부터 방공호에 갇힌 사람들에 대한 고문이 시작되였다. 이렇게 모진 고통속에 날이 흐르던 어느날 총소리가 울리더니 놈들이 방공호에 뛰여들었다.그리고는 다급히 수류탄을 집어던지고 달아빼는것이였다.인민유격대가 마을에 대한 습격전투를 벌리자 놈들은 도망치는 속에서도 방공호에 갇힌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하였던것이다. 의식을 잃었던 련봉은 다행히도 유격대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원되였다. 원쑤놈들에게 하루아침에 가족들을 잃고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후 웃음많던 처녀는 영 딴 사람이 되여버렸다.미국놈소리만 나와도 그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고 앉으나서나 가슴속에는 복수심이 끓어번졌다. 그는 인민유격대에 입대하여 총쏘는 법을 배웠다. 인민군대의 재진격이 시작되자 고향마을을 해방하는 전투에 참가한 그는 대오의 맨 앞장에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눕혔다. 그후 련봉은 원쑤들에 대한 더욱 강렬해지는 복수심을 안고 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 어느덧 전쟁도 끝나고 승리한 이 땅에 또다시 새 생활이 찾아왔다. 그는 제대후 인민군군관에게 시집을 갔고 자식들을 조국보위초소에 세웠다.하지만 이것으로 자기의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지 않았다.지난 수십년간 그는 스스로 원쑤들의 만행에 대한 고발자, 산증인이 되여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증오와 멸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주었다. 사람들앞에 나설 때마다 로병은 자기 가족이 당한 참상을 들려주고나서 이렇게 절절히 당부하군 한다. 이 땅의 전세대들이 겪은 피의 력사를 영원히 잊지 말고 대를 이어서라도 끝까지 복수해야 한다고. 본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