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일《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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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총을 잡았는가 신의주시 남송동에서 살고있는 리용녀전쟁로병의 수기집을 펼치고
얼마전 신의주시 남송동 42인민반에서 살고있는 리용녀전쟁로병의 집을 찾았던 우리는 한권의 수기집을 마주하게 되였다. 전화의 나날 계급의 무기를 억세게 틀어잡고 원쑤들과 용감히 싸운 로병, 이제는 수십년세월속에서 보풀이 일고 색이 바랜 책이였지만 우리는 로병의 수기를 통하여 준엄한 계급투쟁의 진리를 다시금 가슴깊이 새겨안을수 있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반제계급교양의 도수를 높여 그들이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의 침략적, 략탈적본성에 대하여 똑똑히 알도록 하여야 합니다.》 로병의 고향은 은천군 제도리이다. 전쟁이 일어날 당시 그의 나이는 15살이였다.그러던 그가 결연히 손에 총을 잡고 원쑤들과의 판가리싸움에 나서게 된 사연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의 가정에 서린 피맺힌 원한이였다.그에 대하여 로병은 수기의 첫 페지에 이렇게 썼다. 《지금도 75년전 10월의 그날을 잊을수 없다.바로 그날은 내가 그처럼 정깊은 1950년 10월 어느날 포성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오고있었다.그 소리를 불안하게 들으며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후퇴준비를 서두르던 용녀의 눈앞에는 흔연히 웃으며 집을 나서던 전쟁이 일어난 후 당시 리일군이였던 그의 하여 용녀의 집식구들은 대문밖에 귀를 강구며 이제나저제나 이때 별안간 밖에서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상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대문짬으로 밖을 내다보던 용녀는 그만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보기에도 흉물스러운 미국놈들이 어느새 마을에 기여들었는지 《치안대》놈들을 앞세우고 집집마다 싸다니며 사람들을 끌어내고있었던것이다.이어 그의 집대문을 열어제낀 놈들은 무서움에 떨고있는 용녀와 그의 가족을 다짜고짜 끌어냈다. 이렇게 되여 그들은 사람들과 함께 마을의 어느한 공지로 끌려가게 되였다. 공지에는 온몸을 결박당한 여러명의 애국자들이 있었다.그런데 그들속에 뜻밖에도 그처럼 애타게 기다리던 용녀는 이윽고 놈들은 악질빨갱이들이 어떻게 되는가를 똑똑히 보라고 고아대며 물고기를 잡을 때 리용하던 창으로 순간 자기에게 진정한 새삶을 안겨준 조국, 목숨보다 귀중한 그 품을 어찌 욕되게 할수 있으랴. 나라없던 세월 한뙈기의 땅도 없어 죽지 못해 살아왔고 나중에는 살길을 찾아 머나먼 이역땅에까지 가지 않으면 안되였던 용녀의 이렇듯 공화국의 품은 그에게 있어서 절대로 빼앗길수 없고 잃을수 없는 삶의 전부와도 같은것이였다.하기에 그는 원쑤들을 향해 추상같이 웨쳤다. 《이놈들아, 네놈들이 아무리 발악하여도 우리 공화국은 반드시 승리할것이다!》 그러자 놈들은 또다시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물고기창으로 그의 온몸을 찌르며 마구 때리기 시작하였다. 얼마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는 사람들속에서 울고있는 딸을 알아보았다. 《어서 가거라.그리고 기어이 복수하거라.》 이것이 그가 본 그가 마을로 돌아온 용녀는 사람들로부터 그날 놈들은 용녀의 가슴속에서는 원쑤에 대한 증오심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 원한을 기어이 총대로 풀리라 굳게 마음다지며 그달음으로 내무서에 찾아갔다.그리고는 여러날동안이나 떼를 쓰다싶이 하여 손에 총을 잡았고 전쟁 전 기간 계급투쟁의 전초선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어느덧 전쟁도 끝나고 승리한 이 땅에 또다시 새 생활이 찾아왔다.하지만 그는 자기의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지 않았다. 앉으나서나 그의 뇌리에서는 원쑤들을 증오에 찬 시선으로 노려보던 하기에 지난 수십년간 로병은 피맺힌 원한에 대한 고발자가 되여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증오와 멸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주었다. 로병은 수기마감에 이렇게 썼다. 《이것은 결코 한 가정이 당한 불행만이 아니다.철천지원쑤 미제가 지구상에 남아있는한 우리 후대들모두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이 땅의 공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결산해야 할 피맺힌 원한인것이다. 새세대들에게 당부하고싶다. 행복이 커갈수록 이 땅에 스민 피의 력사를 가슴에 더 깊이 새겨안고 계급의 총대, 혁명의 총대로 기어이 원쑤를 복수하라고!》 수기의 글줄들은 로병의 피젖은 당부로 우리의 귀전에 끝없이 메아리쳐왔다. 박춘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