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0일《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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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보옥처럼 보살펴주시는 -조선대학교창립 70돐을 맞으며-
이국땅 일본에서 조선대학교의 개교종이 울린 1956년의 그날로부터 어언 70년이 흘렀다. 조선대학교의 70년, 이것은 그저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흘러온 세월이 아니다. 절세위인들의 하늘보다 높고 태양보다 따사로운 사랑속에 대를 이어 주체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온 영광의 로정이였으며 민족적박해와 차별이 뒤따르는 일본 한복판에서 자주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재일동포들의 피와 땀, 백절불굴의 투쟁이 응축된 기적의 력사이다. 이역의 아들딸들 한품에 안으시고 모든것 다 주시는 시련의 광풍이 모질게 막아서도 순간도 뗄수 없는 우리의 명줄이라네 … 한식솔로 우릴 품어 그늘을 가셔주고 애국의 먼길 갈 신념의 기둥 주셨네 세상 제일 온넋을 다해 따를 우리의 조국이라네 아 한없는 그 정에 마음이 끌리여 아 오늘 우리 조선대학교 교정에 랑랑히 울려퍼지고있는 어머니조국에 드리는 고마움의 노래 《그 품밖에 우리는 몰라라》이다. 난생처음 조국땅을 밟아본 학생들이 스스로 지어부른 이 노래 구절마다에는 주체적민족교육의 최고전당에서 리상과 포부를 마음껏 무르익혀나가는 전체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꾸밈없는 진심, 이역의 아들딸들의 뜨거운 마음이 어려있다. 대학창립 70돐을 맞는 이 시각 나는 조선대학교 학장으로서 우리 교직원들과 학생들, 졸업생들과 동포학부모들이 언제나 가슴에 안고 잊지 못해하는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들을 새겨보게 된다. 재일조선인대학을 내오자고 하시며 조선대학교의 탄생은 해방후에도 일본에서 계속 살지 않으면 안되였던 조선사람들로 하여금 대를 이어가며 민족성을 고수하고 빛내여나갈수 있게 한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학교문전에도 가볼수 없어 자기 이름 석자마저 쓸줄 몰라 눈물을 삼켜야만 했던 우리 1세 동포들은 자신들이 겪은 노예살이의 설음을 자식들에게는 절대로 물려줄수 없다고 하면서 너도나도 푼돈을 모아 학교건설에 떨쳐나섰다. 조선사람사는 곳마다 민족교육의 화원을 가꾸어나가는 나날에 동포들마음속에는 고등교육에 대한 소원이 저절로 부풀어올랐다. 당시 일본에서 조선학생들의 대학진학은 말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았다. 이 랭혹한 현실앞에서 우리 동포들은 주저앉은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방된 민족의 성원들답게 자녀들에게 자주적인 고등교육을 줄수 있는 자체의 대학창설을 절실히 바라고있었다. 자체의 대학창설은 그 어떤 외부적요구에서가 아니라 일본땅에서 자기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조선사람으로 당당히 살아나가려는 동포들스스로가 갈망한 요구였으며 이들의 숙원을 풀어주는 사업은 총련조직이 떠맡아야 할 최우선적인 과제였다. 멀리 사는 자식들이 감히 아뢰지 못한 사정을 남먼저 헤아려주신분이 바로 대학창립의 로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반동들은 《수도 도꾜에 평양의 공화국기가 날리는 조선대학이 서다니, 무슨 괴괴망측한 일인가.》고 떠들어대면서 《조선대학건설반대기성동맹》이라는것까지 조작하고 대학창립을 로골적으로 가로막아나섰다. 더욱 분노스러운것은 제힘을 믿지 않고 남을 쳐다보는데 습관된 사대주의, 민족허무주의자들이 《주제넘게 대학이 다 무엇인가.》, 《재일조선인에게 무슨 대학운영경험이 있는가.》라고 줴치며 《대학무용론》, 《시기상조론》을 동포사회에 류포시킨것이였다. 이런 책동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속에서도 애국 1세들은 돈이면 돈, 쌀이면 쌀, 자기에게 있는 모든것을 바치여 대학창립의 밑거름을 마련하였다. 《우리 힘으로 우리 대학을 세우자!》 1956년 4월 10일 마침내 조선대학교의 첫 종소리가 일본 도꾜의 상공에 울려퍼졌다. 그런데 초창기의 대학모습은 너무도 초라해 눈물없이는 볼수 없었다고 한다. 교사가 없어 도꾜조선중고급학교구내에 곁방살이로 대학간판은 달았지만 교실에는 책걸상 하나 변변한것이 없었다. 학생들의 생활형편 역시 말이 아니였다. 지독한 생활고는 배움에 대한 소박한 꿈마저 무자비하게 앗아갔다.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밤잠을 아끼며 일하고도 끝내 교정을 떠날수밖에 없었던 학생들, 그들의 등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수밖에 없었던 교직원들의 심정은 쓰리고 아팠다. 조선대학교는 대학운영을 포기하는가 마는가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정녕 이역땅에서의 대학교육은 허황한 꿈이란 말인가. 모두가 절망의 심연에 잠겨 대학운영을 거의나 포기한 그때 바다너머 조국에서 꿈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조국에서는 전쟁의 포화가 멎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벽돌 한장, 세멘트 한포대가 정말 귀하였다. 공장 하나 짓자고 해도 온 나라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그처럼 간고한 시기였다. 1957년 4월 그 귀한 돈을 받아안던 날, 우리 동포들모두가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조국에서 보내온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조국인민들의 피와 땀이 스민 사랑의 결정체였으며 숨져가던 민족교육을 소생시킨 생명수였다. 이렇게 되여 우리 대학생들에게 해마다 조국의 장학금이 안겨지는 해외교포운동력사에 그 류례가 없는 조선대학교는 조선대학교가 있기에 애국자들이 자란다 조선대학교는 조국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총포성없는 전쟁이 벌어지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나는 지금도 1996년 1월의 조국방문나날을 더듬어볼 때면 북받치는 격정으로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 대표자회에 재일본조선청년동맹축하단과 함께 내가 인솔한 재일조선청년학생대표단도 참가하도록 하여주신 우리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한 총련일군이 이어 내가 이 자리에 참가한 정치경제학부 졸업학년 학생들속에 대지진으로 어머니를 잃은 학생이 있다는것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학생은 우리모두는 친어버이의 대지진으로 인한 아픔을 가셔주기 위해 베풀어주신 그 은정은 우리 조선대학교 교직원, 학생들로 하여금 그 어떤 풍파에도 흔들림없이 애국의 한길만을 걸어나가게 하는 마음의 기둥, 억센 추동력이 되였다. 우리 대학에 대한 2002년 2월 《조선대학교가 이렇게 주체의 사상체계가 튼튼히 서있기때문에 신진핵심들이 믿음직하게 자라나고 애국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 조선대학교 학장이 나의 건강을 축원하였는데 총련의 미래를 위하여 축배를 듭시다.조선대학교는 애국위업의 대를 이을 계승자들을 키워내는 총련의 유일한 신진핵심육성기지입니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 총련사업을 지도하면서 큰 충격을 받은적이 두번 있다고 하시며 그 하나는 총련에서 대집단체조 《조국에 드리는 노래》를 창작하였을 때이고 또 하나는 이번에 조선대학교 대합창공연을 보았을 때라고 하시며 거액의 자금까지 배려해주시였다. 그 사랑에 의하여 우리 대학도서관이 오늘처럼 웅장하게 개건현대화되게 되였다. 참으로 권위있는 명문대학으로 이끄시는 믿음의 손길 영광스러운 계속하시여 황금만능의 이역땅에서 누구나 쉽게 선택할수 없는 애국의 한길을 변함없이 꿋꿋이 걸으며 일신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오로지 민족교육과 총련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분투하고있는 이런 미더운 애국자들이 있기에 우리 조국이 더욱 존엄높고 총련애국위업의 바통이 굳건히 이어지고있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세계에 유일무이한 해외교포대학인 조선대학교는 진정 우리 조국과 민족의 크나큰 자랑이고 긍지이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귀중한 재부라고 내세워주시며 시대와 조국앞에 지닌 력사적사명과 본분에 맞게 모든 학생들을 숭고한 정신과 풍부한 지식을 겸비한 재일조선인운동의 핵심골간으로, 애국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들로 키움으로써 존엄높은 공화국의 해외교포대학으로서의 권위와 명성을 계속 떨쳐나가야 한다고 우리 대학이 틀어쥐고나갈 강령적지침을 안겨주시였다. 오늘도 잊을수 없는 2024년 6월 우리 당시 대학에서는 졸업학년 학생들의 긴급모임을 조직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우렁찬 환호성이 온 장내를 진감하였다. 꿈속에서만 그려보던 조국방문이 현실로 다가오다니! 우리가 조국으로 간다! 뜻밖의 희보에 학생들은 울고웃으며 격정을 터뜨렸다. 따뜻이 품어안아 만가지 희망을 다 실현시켜주는 그토록 가고싶었던 조국에서 인민사랑의 대기념비들을 자기 발로 찾고 자기 눈으로 본 참관의 나날에, 바라고 바라던 혁명의 성산 백두산답사행군길에서, 그리고 어디를 가나 《우리 아들딸들이 왔구나.》하며 정답게 손잡아주던 조국인민들의 모습에서 학생들은 강대한 어머니조국의 크나큰 품이 동포자녀모두의 운명을 지켜주고있다는 신념을 간직하게 되였다. 조국청년들과 팔을 끼고 어깨겯고 애국의 인생길을 함께 걸어나갈 결심을 가다듬고 돌아온 졸업학년 학생들, 조국의 정기를 머금은 그들의 모습에 자기 미래를 겹쳐보는 하급생들… 오늘 우리 조선대학교 교정에는 랑만과 신심이 넘쳐나고있다. 일본 방방곡곡에서 모여온 우리 학생들은 모두가 부모슬하를 떠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있다. 그들의 보금자리인 기숙사창가에선 명랑한 웃음소리 흘러나온다.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안아올 리상과 포부를 안고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며 지식의 탑을 쌓아나가는 학생들, 그들이 마주한 탁상등은 온밤 꺼질줄 모른다. 이것이 우리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이역의 온갖 유혹과 풍파에도 흔들림이 없이 활기있고 명랑하고 대바르게 성장하며 숭고한 정신과 애국애족의 뜻을 지닌 자주적인 민족인재, 풍부한 지식과 응용능력을 가진 창조적인 인재, 집단주의정신과 실력을 겸비한 실천형의 인재로 준비해나가고있다. 동포학부모들은 어렵고 복잡한 정치경제적환경속에서도 우리 대학을 믿고 자녀들을 보내면서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있으며 대학교직원들은 학생들을 친혈육의 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고있다. 진정 * * * 주체로 빛나는 조선대학교의 미래는 창창하며 부강번영하는 사회주의조국과 함께 모든 영광을 맞이하는 승리의 그날을 마중해나갈것이다. 걸어온 70년을 자부하면서 다가올 100년을 내다보며 출발하는 조선대학교는 재일조선인운동의 현실적요구와 세계적인 교육발전추세에 맞게 학제를 합리적으로 정비개편하는 한편 학생위주의 교육조건, 학습조건, 생활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에서도 눈에 띄는 개변을 가져옴으로써 동포학생들 누구나 지망하는 권위있는 명문대학으로 크게 비약할것이다. 전통의 계승은 정신의 계주이며 보다 훌륭한 력사의 창조라고 하신 2026년 4월 조선대학교 학장 한동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