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5일《로동신문》

 

군국주의부활에로 끊임없이 질주해온 일본의 행적(7)

《비핵화》의 면사포에 가리워진 핵무장화야망

 

일본은 자국이 세계에서 유일한 원자탄피해국이며 《비핵화》는 국가의 기본정책이라고 선전하고있다.

하지만 그들이 표방하는 정책과 취해온 행동은 근본적으로 상반된다.

돌이켜보면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핵무장화에 시동을 건 나라들중의 하나가 바로 일본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일본은 헌법에 륙해공군무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을 가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쪼아박았으며 1967년 12월에 일본수상 사또는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3원칙》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끈질긴 핵야심을 가리우기 위한 비단보자기에 불과하였다.

핵무기개발에서 성공하지 못한탓에 《대동아공영권》야망을 실현하지 못하였다고 간주한 복수주의자들은 1950년대부터 핵무장화에 달라붙기 시작하였다.

1956년 과학기술청에 원자력부문을 통일적으로 장악지휘하는 부서를 내오고 산하기구들을 창설한 때로부터 일본은 새로운 핵계획을 암암리에 추진시켰다.

무엇보다 핵무장화를 위한 법적기틀이 필요하였다.

1957년 5월 당시 일본수상이 사람들은 핵무기라는 말만 나와도 헌법위반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석하는것은 정확치 않다.》라고 발언한것을 비롯하여 력대 집권자들이 핵무기보유의 정당성에 대해 력설한것은 핵무장화의 법적기반을 마련하는데 유리한 포석을 깔기 위한것이였다.

일본당국은 1978년에 《평화헌법》이 존재하는 한에서도 《핵무기를 가질수 있다.》는 《정부답변서》를 발표하고 공식문건들에 핵무기보유의 필요성을 쪼아박았으며 원자력기본법도 핵무기개발에 써먹을수 있게 조작해놓았다.

일본반동들의 핵무장화계획이 실천단계에 들어선것은 제1차 방위력정비계획이 실행된 때부터였다.륙상 《자위대》간부학교에서 핵무기사용을 위한 극비훈련교육이 진행되고 화학학교에서 핵작전에 필요한 인원들이 양성되였다.

핵융합연구소, 핵연료순환공학연구소, 원자력과학연구소를 비롯한 각종 연구집단과 연구시설들에서 핵에네르기를 군수부문에서 리용하기 위한 연구가 맹렬히 진행되였다.

1970년에 발표한 《방위백서》에서는 《핵무기를 자체로 개발보유》하며 핵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을 확보할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일본의 핵기술과 운반수단의 개발은 오늘에 와서 핵무장화를 실현할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일본의 무기급핵물질비축량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정도이다.

전후 원자로건설과 병행하여 플루토니움생산시설을 꾸려놓고 무기급핵물질을 생산할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그와 함께 다른 나라들에서 방대한 량의 플루토니움을 끌어들이는데도 박차를 가하였다.

그에 대해 미국신문 《크리스챤 싸이언스 모니터》를 비롯한 서방언론들은 일본의 플루토니움구매량은 《평화적리용의 목적을 훨씬 초과》하고있다고 비난하였으며 일본의 물리학자들까지도 《에네르기문제라고 보기에는 리치상 맞지 않는것》이라고 까밝혔다.

1990년대에 일본의 핵문제전문가는 자국이 21세기초에는 미국과 로씨야보다 더 많은 플루토니움을 가지게 될것이라고 예측한바 있다.

임의의 순간에 수천개의 핵무기를 보유할수 있는 모든 물질기술적토대를 구축해놓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있는 일본이 《비핵화》에 대하여 운운하는것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일본당국은 《비핵3원칙》을 재검토하여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떠들면서 원자력잠수함개발에 달라붙는 등 핵무장화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고있다.

사실상 일본은 비핵국가가 아니라 지난 세기부터 장구한 기간에 걸쳐 핵무장화의 행보를 끊임없이 이어오며 아시아태평양지역에 핵시한탄을 묻어온 핵범인이다.

본사기자 은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