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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을 찾아 총련결성 70돐 재일본조선인감사단 경모의 정 표시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을 찾아 20일 총련결성 70돐 재일본조선인감사단이 경모의 정을 표시하였다.
감사단 성원들은 탁월한 사상과 정력적인 령도로 주체형의 첫 해외교포조직인 총련을 무어주시고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에 불멸의 공헌을 하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에 꽃다발들을 진정하고 삼가 인사를 드리였다.(전문 보기)
총련결성 70돐 재일본조선인감사단 도착
총련 혹가이도본부 위원장 정성한동지를 단장으로 하는 총련결성 70돐 재일본조선인감사단이 20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평양국제비행장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김호철동지, 관계부문 일군들이 맞이하였다.(전문 보기)
총련소식
이채로운 미술전시회
얼마전 재일동포녀성들의 미술전시회가 진행되였다.조선신보사 기자로 활동하였던 한 동포가 전시회참가자들앞에서 강연을 진행하였다.
그는 40여년간의 기자생활기간 자기가 취재하였던 수많은 동포녀성들의 애국적인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언젠가》, 《한여름》, 《하늘향해》를 비롯한 조선화, 유화작품 등이 전시되였다.어머니조국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크나큰 민족적자부심, 애국위업과 민족교육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깊은 뜻과 원숙하면서도 활달한 필치로 형상한 작품들은 참관자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다.그 모습을 보면서 녀성미술가들은 긍지와 자부심을 금치 못하였다.
전시회장을 돌아보면서 동포들은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자본주의일본땅에서 우리 동포사회가 오염과 부패를 모르고 아름다운 화원으로 만발하고있는것은 이처럼 민족의 넋과 정서를 적극 살려나가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애국의 마음을 자래운다
총련 도슌조선초급학교는 우리말 교육에서 앞장선 2중모범학교이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열심히 배우고 능숙히 구사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잘하여왔다.
교정의 곳곳에는 국어공부에 도움이 되는 게시물들이 있다.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뜻같은말, 소리같은말, 본딴말 등을 많이 습득하게 하는 한편 받아쓰기훈련과 발음훈련, 글짓기 등을 생활화하게 하였다.회화에서 군더더기를 없애고 각종 친근한 부름말들을 적극 살려쓰게 하였다.또한 우리말 경연과 알아맞추기경연도 특색있게 조직하였으며 소년단방송을 통하여 우리말 학습에서 모범적인 학생들을 적극 소개선전하였다.
자녀들의 우리말 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졌다고 하면서 학부형들 누구나 기쁨을 금치 못하고있다.
새로 입학하는 학생들은 상급생들처럼 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열심히 익혀 어엿한 조선사람으로 자라날 굳은 결의를 다진다.
이역에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우리 말과 글은 생명이나 같다.민족성을 지키고 애국애족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자면 우선 우리 말과 글을 적극 살려써야 한다.
이것이 이 학교 학생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해빛밝은 교정에서 우리 말과 글을 익히며 학생들은 애국의 마음도 자래운다.
민족문화의 향취를 풍기며
총련이 민족성고수를 전조직적, 전동포적인 운동으로 더욱 힘있게 벌려 동포사회에 아름답고 고상한 우리 민족문화의 향취가 짙게 풍기게 하고있다.
얼마전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 제21기 제10차확대회의가 진행되였다.
회의에서는 지난해의 사업이 전면적으로 총화되고 올해 사업목표가 제시되였다.총련결성 70돐을 성대히 기념하기 위한 예술공연준비정형도 보고되였다.
새로 제정된 문예동 공로상과 창작상이 5개의 예술단체와 5명의 예술인들에게 각각 수여되였다.
축하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수상자들은 애국열의가 끓어번지고 민족성이 흘러넘치는 동포사회를 꾸려나가는데 예술의 힘으로 이바지할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한편 오사까 및 와까야마지역 학생들의 민족기악연주회가 얼마전에 진행되였다.
총련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와 와까야마조선초중급학교 학생들이 여러 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작품들을 연주하였다.
공연무대에서 우뢰같은 박수갈채를 받는 학생들의 얼굴마다에는 민족음악예술을 꽃피워간다는 긍지와 영예가 어려있었다.객석에서는 격찬의 환호가 그칠새 없었다.(전문 보기)
《어머니조국을 받들어 애국의 대를 굳건히 이어가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국땅에 있어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아야 하며 위대한 김정일애국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어머니조국의 대지우에 애국충정의 자욱을 뚜렷이 새겨나가야 합니다.》
황금만능과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많은 청년들이 포부도 희망도 없이 부패와 타락의 늪에 빠져들고있다.
하지만 총련의 새세대들은 자본주의일본땅에 살면서도 아름다운 애국의 인생관을 지닌 고상한 인간으로 름름하게, 씩씩하게 자라나고있다.재일조선인운동의 미래를 걸머지고나갈 리상 안고 힘차게 나아가고있다.
어서 가자, 성스러운 애국의 초소로
(악성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던 때 대학에 입학한 우리 애가 벌써 졸업하게 되다니.)
총련 조선대학교구내에 들어서며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 오사까지부 김명혜녀성의 뇌리에 갈마든 생각이였다.
제67회졸업식이 진행되는 교정은 환희와 격정으로 세차게 설레이고있었다.졸업생들모두의 환한 얼굴들에는 열정과 자신감이 넘쳐흐르고있었다.지난해 조국방문의 나날 애국의 자양분을 한껏 받아안으면서 참된 삶의 위치를 찾은 그들이 아닌가.
졸업증을 수여받는 미더운 청년들을 보며 김명혜녀성은 가슴이 뿌듯해짐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조국의 불같은 그 열정, 억세인 그 기상을 닮아 애국의 한길에서 청춘을 빛내일 결의를 다지는 모습도 참으로 대견하였다.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곳은 민족교육의 성스러운 사명을 다해가는 우리 학교의 교단이라고 하면서 멀리 타지방에 있는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와 시고꾸조선초중급학교 교원으로 탄원한 외국어학부의 김지황, 김윤화, 그들의 결의는 참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교육학부의 류미순은 부모의 뒤를 이어 오사까에서 교원생활을 하게 된다.그의 아버지는 현재 오사까조선초급학교 교장으로 사업하고있다.
함뿍 미소를 담고 손을 흔드는 딸과 대견한 눈길을 보내며 못내 흡족해하는 아버지, 그들부녀의 모습을 보며 김명혜녀성은 가슴이 후더워났다.
조청일군으로 사업하게 된 정치경제학부의 허성, 김례아도 얼마나 름름한가.
리공학부의 리종명, 리종성은 쌍둥이이다.함께 대학을 다닌 이들형제도 애국의 초소를 차지하게 된다.리종명은 군마조선초중급학교에서, 리종성은 조선대학교 연구원에서.
와까야마조선초중급학교 부속유치반에서 교양원으로 사업하게 된 교육학부의 김희령, 집을 떠나 멀리로 간다고 걱정하면서도 그의 부모는 동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곤난을 극복하고 억세여지라고 힘을 주었다.
남편을 여읜 후 시어머니의 병구완을 하는 어려운 속에서도 조선대학교로 등을 떠밀어보낸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정을 졸업식장에서 눈물겹게 토로하는 교육학부의 강미례를 보니 정말 생각이 깊어졌다.
(자식은 교양한대로 자란다고 애국의 가풍이 확고히 서있는 저런 가정들이 많아 우리 총련이 굳건한것이 아닌가.)
졸업공연은 그야말로 감동적인 화폭의 련속이였다.대학생활이 얼마나 보람찼고 그 나날에 다진 애국의 의지가 얼마나 굳건한가를 공연 전 과정이 그대로 말해주고있었다.
조청일군, 교육자, 예술인, 체육인…
재일조선인운동을 떠메고나갈 애국인재가 될 굳은 결심 안고 보람찬 초소로 떠나가게 된 졸업생들을 동포사회는 열렬히 축하하였다.
정열적으로 박수를 치면서 김명혜녀성은 생각하였다.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자라난 동무들이야말로 총련의 자랑이고 애국의 골간들이다.이제 갈길은 순탄치 않을것이다.하지만 동무들은 스스로 택한 신념의 그길을 힘차게 걸어갈것이다.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의 뒤를 이어.)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자랐습니다》
총련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 김지세교원은 수업준비를 서둘렀다.
이번에 학생들에게 배워줄 내용은 총련의 이름있는 문필가였던 허남기선생이 민족교육의 초창기에 쓴 시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였다.학창시절 즐겨읊던 시여서 그런지 감회가 새로왔다.
교수안에 제목을 큼직하게 적어넣던 그는 그만 펜을 멈추었다.저도 모르게 시제목에 있는 《이것》을 《이곳》으로 써놓았던것이다.고쳐쓰려고 하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시인은 학교를 이곳이 아니라 이것이라고 표현했을가? 곳은 일정한 자리나 지역을 의미한다.학교를 가리킨다면 곳이 더 적합할텐데…)
수업준비과정 내내 이런 의문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그날 수업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질문하였다.
《왜 허남기선생님은 학교를 두고 〈이곳〉이 아니라 〈이것〉이라고 표현하셨을가요?》
교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학생들은 한참이나 곰곰히 생각하더니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다.
《시인은 창문유리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교사가 아니라 우리 학교에 어려있는 애국의 지향을 묘사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습니다.조국해방후 우리의것을 되찾고 지키려는 마음이 모여 우리 학교가 생겨났습니다.그래서 학교를 이것이라고 표현하였다고 봅니다.》
《위대한 조국을 알고싶어하는, 민족교육사수를 위한 피어린 투쟁의 산아인 우리 학교를 긍지스럽게 대하는 아이들의 절절한 마음을 노래한것입니다.》
《우리 학교가 있는 곳은 일본땅입니다.그러나 학교에서 배워주는것은 우리의것입니다.바로 그래서 이것이 우리 학교라고 하였을것입니다.》
흥분하여 웨치듯 말하는 그들속에는 평소에 국어과목을 몹시 어려워하던 학생도, 장난꾸러기로 소문나 교원들의 애를 태우던 학생도 있었다.
김지세교원은 가슴이 뻐근하도록 놀랐고 기뻤다.학생들모두를 끌어안아주고싶은 심정이였다.
얼마나 대견한 아이들인가.얼마나 름름하게 성장하였는가.
(민족교육의 초창기에는 아이들이 초라한 교사때문에 마음쓰는 선생님을 오히려 위로하여 눈물흘리게 하더니 오늘은 이 아이들의 순결한 마음이 나를 울리는구나.)
김지세교원은 격동된 심정으로 추억깊은 시를 다시금 읊어보았다.
아이들아 너희들은
우리도 앞으로 일본학교보다
몇배나 더 큰집
지을수 있잖느냐고
되려 이 눈물많은 선생을 달래고
그리고 또 오늘도 가방메고
씩씩하게 이 학교를 찾아오는구나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비록 교사는 빈약하고 작고
큼직한 미끄럼타기 그네 하나
달지 못해서
너희들 놀 곳도 없는
구차한 학교지만
아이들아
이것이 단 하나
조국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서자란 너희들에게
다시 조국을 배우게 하는
단 하나의 우리 학교다
…
조국의 기대에 기어이 보답하리
지난 3월 8일 조선신보사 평양지국 기자 김숙미녀성은 온 하루 축하의 인사속에 묻혀있어야 하였다.그날은 그가 조국에서 사업을 시작한지 5일째 되는 날이였다.
무릇 녀성이라면 3월 8일에 류다른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숙소인 평양호텔의 호실에서 아름다운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활기에 넘쳐 거리로 오가는 녀성들을 바라보니 생각이 깊어졌다.
3월 8일을 국제적명절로 기념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1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그런데 세계를 둘러보면 오늘도 수많은 녀성들이 정치적무권리와 사회적불평등속에서 고통을 겪고있다.
하지만 우리 조국에서는 이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고 아름답고 행복한 녀성들의 명절로 되고있다.한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조국이라는 넓은 뜨락에서 나라위한 크고작은 일감을 도맡아해제끼는 녀성근로자, 혁신자들,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내는 어머니들이 가장 열렬한 축하의 꽃다발을 받고있다.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이 세상 제일 위대하신 어버이의 품에 안겨사는 더없는 영광과 긍지를 안고 국가의 전면적부흥발전을 위한 줄기찬 투쟁에서 조선녀성의 본때와 강의한 정신력을 남김없이 발휘해갈 불같은 열의가 넘쳐있다.
문득 울리는 초인종소리에 김숙미녀성은 상념에서 깨여났다.
(이른아침에 누구일가?)
문을 열어보니 미소를 머금은 평양호텔 종업원들이 꽃송이와 기념품을 들고 서있는것이 아닌가.
《3.8국제부녀절을 축하합니다!》
순간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이렇게 시작된 하루였다.이른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축하의 인사가 그칠새 없었다.바람세찬 이역땅에서 조국을 옹호하고 총련조직을 사수하며 민족성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총련동포들이야말로 애국자들이라고 하면서 진심으로 위해주는 그 모습에서 김숙미녀성은 총련에 대한 조국인민들의 뜨거운 정을 느낄수 있었다.
(세계에는 수많은 해외교포들이 있다.하지만 우리처럼 조국으로부터 이토록 뜨거운 사랑과 환대를 받고있는 해외교포들이 또 어디에 있는가.조국인민들의 이 뜨거운 기대에 보답하자.기어이 보답하자.)
이런 마음 안고 총련의 녀성기자는 오늘도 취재길을 이어가고있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시여 강국의 존엄을 떨치는 사회주의조국, 부강번영하는 어머니조국의 현실을 한시바삐 동포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전문 보기)
오늘도 긍지높이 전해가는 25년전의 이야기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졸업생들의 추억담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어도 언제나 마음속에 조국을 안고 살아야 하며 사회주의조국의 절대적인 지지자, 견결한 옹호자가 되여야 합니다.》
1970년대에 진행된 어느한 국제기구회의에서 재일동포학생들이 출연한 음악무용서사시와 집단체조를 찍은 기록영화가 상영된적이 있다.그때 영화를 본 수많은 나라 대표들은 회의에 참가한 총련의 교육자들을 찾아와 《이 아이들이 일본에서 태여난 아이들이 맞는가.상상하기가 어렵다.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큰 집단체조를 한다는것만을 보아도 민족교육이 대단하다는것을 알수 있다.》, 《당신들의 조직이 한 나라도 감히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하고있다.정말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지금으로부터 25년전에도 그런 일이 재현되였다.다른 곳도 아닌 미국에서였다.그때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무용단은 미국의 뉴욕과 로스안젤스에서 특색있는 민족문화예술무대를 펼쳐놓아 깊은 여운을 남기였다.
조국과 총련의 영예를 떨친 주인공들은 오늘도 그 나날을 감회깊이 추억하고있다.
* *
2000년 3월 어느날 한대의 려객기가 뉴욕의 한 비행장에 서서히 착륙하였다.승객들중에는 같은 일행이 분명한 5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과 교원, 학부형들이였다.
처음 미국에서의 공연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학생들의 마음은 불안하였다.이전에 학교취주악단이 중국에서 공연한적은 있었다.하지만 미국에서의 공연은 사정이 달랐다.우리 공화국을 제일 적대시하는 나라이기때문이다.
착잡한 마음을 안고있는 학생들에게 교원들은 말하였다.
《일없습니다.어디 한번 미국땅에서 우리 학교의 영예, 우리 총련의 위상, 우리 조국의 존엄을 높이 떨쳐봅시다.》
이렇게 되여 그들은 미국으로 가게 되였다.
비행장에서 입국절차를 밟을 때였다.이들의 사증을 본 수속관계자의 눈이 화등잔같이 되였다.국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한참이나 사증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그는 황급히 주위의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일본에서 조선사람들이 왔다!》
그제서야 영문을 깨달은 총련학생들은 빙그레 웃었다.
(미국인들이 우리 조국을 두려워하는구나.우리 조국은 그렇게 강하구나.아무렴, 온 세계가 우러르는 주체조선, 영웅조선이 아닌가.)
순간 가슴이 넓어지고 키가 한뽐이나 커지는듯싶었다.학생들은 어깨를 쭉 펴고 당당히 말하였다.
《그래요.우리는 조선사람이예요.우리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호텔에 도착한 그들은 려장을 푼 후 거리로 나갔다.
조선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무용단성원들은 대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였다.거리가 미여지게 오가던 뉴욕시민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 특이한 행렬을 호기심에 찬 눈길로 지켜보았다.
뉴욕의 한복판에서 그들은 보란듯이 사진을 찍었다.그들은 이렇게 당당한 조선사람으로 자신들을 선보였다.사진을 찍으면서 동포학생들은 굳게 속다짐하였다.
(잘해보자! 지금 이 미국땅에서 우리는 총련을 대표하고있다!)
내외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마침내 공연의 막이 올랐다.
먼저 총련민족교육의 력사, 도꾜조선중고급학교의 연혁을 소개하는 록화편집물이 상영되였다.
못잊을 화폭들이 흘러갔다.
총련이 결성될 당시 민족교육의 실태가 화면에 비껴들었다.
예로부터 교육은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한 성스러운 사업이라고 일러왔다.이역땅에서 사는 해외동포들에게 있어서 자기 민족의 말과 글, 력사와 문화를 알게 하는 민족교육은 동포사회의 존망과 관련되는 더없이 중요하고 사활적인 사업이다.
망국의 시절 자기들이 겪은 무지와 몽매의 설음을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으려고 재일동포들은 한푼두푼 돈을 모아 일본각지에 학교들을 세웠다.하지만 동포들 대다수가 최하층의 생활을 하고있다나니 재정난을 면할수 없었다.가까스로 시작한 학교건설이 자금때문에 해를 넘기면서도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있었다.많은 학교들이 여러해째 가교사신세를 면할수 없었다.총련 조선대학교도 도꾜조선중고급학교의 교실 몇개를 빌려쓰고있는 형편이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교원들의 생활비 같은것은 꿈도 꿀수 없었다.많은 교원들이 아침은 건빵에 물 한고뿌, 점심은 학생들이 날마다 번갈아 가져오는 주먹밥으로 끼니를 에웠다.저녁을 번지는것은 보통이였고 잠자리는 학교경비실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 말과 글을 배운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있었다.비바람이 새여드는 판자집교사, 백묵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교단에서 그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교육자들은 눈물을 삼키였다.
이런 실태를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짓는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나라형편이 그토록 어려운 속에서도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였다.
낡을대로 낡고 비좁던 학교대신 사랑의 교육원조비로 건설된 현대적인 학교로 씩씩하게 등교하는 자식들의 환희에 넘친 모습을 보며 동포들은 격정으로 가슴들먹이였다.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생명수와도 같이 동포들모두의 몸과 마음을 뜨겁게 적셔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그것은 거치른 이역땅에서 민족의 혈통, 애국의 넋이 꿋꿋이 이어지게 한 사랑의 젖줄기였다.
그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아래 자본주의일본땅에 민족교육의 대화원이 펼쳐졌다.…
참으로 놀라운 력사와 현실이 반영된 편집물이였다.감동과 충격으로 장내는 물뿌린듯 고요하였다.
이윽고 흥겨운 춤무대가 펼쳐졌다.서장 《봄맞이》에 이어 장고춤, 탈춤 등 다채로운 민족무용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조선무용의 흥취나는 률동은 관중을 고상한 조선민족문화의 세계에로 이끌어갔다.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어도 민족의 향기를 고이 간직한 조선의 꽃으로 피여나려는 학생들의 순결한 마음이 작품마다에 그대로 어려있었다.
군무 《회오리》가 무대에 펼쳐졌다.일명 《조선치마저고리칼질사건》으로 불리우는 일본우익반동들의 비렬하고 야만적인 테로행위에 굴하지 않고 민족적존엄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재일동포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였다.민족적차별과 탄압의 회오리가 아무리 세차도 민족의 넋이 어려있는 조선치마저고리를 결코 벗을수 없다는 재일동포학생들의 의지가 격렬한 춤가락을 통해 관중에게 전달되였다.
객석에서는 격찬과 환호가 그칠새 없었다.
《잘한다!》
당시 공연상황에 대해 미국의 한 언론은 《관중의 우렁찬 박수소리는 마치도 뉴욕과 로스안젤스전체를 흔들어주는듯하였다.》고 전하였다.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이 민족의상을 차려입고 마음껏 춤추는 모습에 정말 경탄을 금할수 없다.》, 《민족적인 화려한 무대이다.》, 《보면볼수록 더 보고싶은 공연이다.》…
랭담한 미국인들이였지만 우리 동포학생들의 청신한 자태, 뛰여난 재능에 반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조선민족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재미동포들의 심정은 더욱 류달랐다.
(어쩌면 저렇게 자신만만하고 생기발랄한가.민족배타주의가 가장 심한 일본에서 살면서도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민족의 넋을 지켜나가는것이 정말 놀랍구나. )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럴만도 하였다.재미동포들에게 있어서 큰 고민거리는 자식들이 자기 민족도 모르고 완전히 미국인화되여가는것이였다.부모자식간에 우리 말로 의사소통을 할수 없는 가정이 대다수였다.그런데 재일동포학생들은 우리 말을 류창하게 하고 보란듯이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상을 입고 흥겹게 춤추고 노래부르고있다.그것이 놀랍고 그래서 생각이 깊어지는것이였다.
뉴욕에서 예술학교를 운영한다는 한 재미동포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춤을 추는것만 같았다, 재일동포들이 일본에서 민족성을 굳건히 고수하고 민족문화를 꽃피워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놀랍다, 정말 부럽다고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가슴이 뜨거워져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이역땅에서 살지만 어쩌면 그렇게도 정신상태가 깨끗한가.》, 《강압과 차별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지켜낸 총련조직이 정말 놀랍다.》, 《정말 가슴이 흐뭇하다.총련은 해외동포들모두의 자랑이다.》…
재미동포들은 이렇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그 말을 들으며 총련학생들은 크나큰 긍지로 가슴들먹이였다.우리 학교의 소중함을 사무치게 느끼였다.
공연을 마친 출연자들은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교가를 자랑스럽게, 우렁차게 불렀다.관중이 모두 일어나 열렬한 박수로 호응하였다.그들속에는 미국에 와있던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졸업생도 있었다.그는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혼자 조용히 불러보군 하던 교가를 이 미국땅에서 들을줄 정말 몰랐다고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무용단이 미국의 뉴욕과 로스안젤스에서 펼쳐놓은 공연은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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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 그때의 어린 무용단성원들은 어느덧 교육자, 학부형이 되여 민족교육의 강화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있다.그들중에는 총련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도꾜조선중고급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김화미녀성도 있다.어제날의 무용소조원이 오늘은 지도교원이 되여 아이들의 재능을 꽃피워주고있다.
25년전 미국땅을 뒤흔들었던 총련의 재간둥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애국의 싹을 자래워준 우리 학교를 정녕 잊을수 없다고, 우리들의 보람찬 인생좌표는 바로 그곳에서 그어졌다고.
어머니조국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새세대들에게 민족의 넋, 애국의 넋을 심어주는 총련의 민족교육은 더욱 강화발전되고있다.(전문 보기)
총련소식
귀중한 경험을 공유하며
얼마전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녀성동맹) 교또부본부가 분회교류모임을 개최하였다.지난해에 진행된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4》(새 전성기 4차대회)에서 종합모범분회, 부문별모범분회칭호를 수여받은 5개 분회의 경험을 따라배우자는데 목적을 둔 모임이였다.
간또지방의 녀성동맹 분회장들이 보내여온 축하동영상편집물이 상영되였다.이어 본부의 년간사업방향과 모범창조운동에 대한 해설이 진행되였다.
모범분회의 분회장, 부분회장들이 동포제일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동포봉사활동을 힘있게 벌리는 과정에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활기있는 동포사회를 꾸려놓은 경험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모범분회들의 사업에서 공통적인것은 분회위원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대중행사를 년중 꾸준히 조직하며 동포가정방문사업을 중단없이 벌려온것이다.
눈내리는 날에도 어린 자식을 자전거에 태우고 동포가정들을 방문하였다는 한 부분회장의 토론은 깊은 감명을 자아냈다.
모임참가자들은 애로와 난관이 많으나 동포들과의 련계를 긴밀히 하여 살아움직이는 분회를 만든 모범분회장들의 경험에서 많은것을 배웠다고 말하였다.그러면서 자녀교양사업과 민족교육지원사업, 우리 학교 사랑하는 운동에서 자기들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나갈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애국의 자랑찬 성과를 안고 총련결성 70돐을 떳떳하게 맞이할 의지가 어리여있었다.
모든 기층단위들을 총련의 믿음직한 성돌로 반석같이 다져나가려는 이런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교또지역의 녀성동맹사업에서는 날로 큰 전진이 이룩되고있다.
애국의 나팔소리를 더욱 힘차게
오사까조선취주악단은 재일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져있다.
50여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관록있는 예술집단이다.단원들은 직업을 가지고있는 동포들로서 사업과 생활의 여가에 한데 모여 연주훈련과 공연활동을 벌리는 음악애호가들이다.모두가 스스로 이길에 나선 사람들이다.
조직된이래 취주악단은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진행하여 동포들의 생활에 풍만한 정서와 랑만을 주는데 적지 않게 기여하였다.이 악단에 대한 동포사회의 사랑과 믿음은 언제나 열렬하다.
연주회가 진행될 때면 극장은 초만원이다.
지난 2021년 정기연주회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악성전염병사태로 여러 차례 연기되다가 오래간만에 마련된 공연이였다.
공연시작전에 한 녀성동맹 고문이 찾아와 연주가들의 손을 꼭 잡고 《동무들의 공연을 애타게 기다렸다.》고 말하는것이였다.순간 취주악단성원들의 두볼로는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동포들이 늘 자기들의 연주회를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절감한 그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애국의 나팔소리를 멈출수 없다고 결의다지였다.그리고 그길을 변함없이 이어가고있다.
그들은 결코 무대에서만 활동하지 않는다.자기들이 사는 곳에 있는 총련지부의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있다.학생들의 예술소조활동에 대한 방조, 학생인입사업 등 여러 활동이 진행되는 장소들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전문 보기)
《조국의 사랑, 조국의 숨결이 애국의 자양분이였습니다》 -한 총련일군의 딸이 쓴 수기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주체와 애국으로 자랑높은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열렬한 조국애, 민족애의 력사는 승리와 영광으로 가득찬 우리 공화국의 어제와 오늘, 광명한 래일과 더불어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입니다.》
재일조선인운동사의 갈피마다에는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애국위업의 강화발전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친 총련일군들의 값높은 생의 자욱이 수놓아져있다.
총련이 형언할수 없는 고난속에서도 좌절을 모르고 승리와 영광만을 수놓을수 있은것은 이런 애국자들이 많았기때문이다.
한 총련일군의 딸이 쓴 수기를 통하여서도 그들의 고결한 인생관을 느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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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희녀성은 때없이 한장의 색날은 사진을 들여다본다.비록 손바닥만한것이지만 볼 때마다 하많은 추억이 밀물쳐와 감회를 금할수 없다.사진에는 애기차를 탄 어린애가 공화국기를 손에 들고 인파에 묻혀있는 모습이 찍혀있다.두살때의 그이다.
때는 1960년대초, 장소는 조국에서 온 귀국선이 정박해있는 일본의 니이가다항이다.분명 이역땅의 한 부분이지만 항구는 환희에 넘친 조선사람들로 흥성거리고있었다.동포들은 천대와 학대속에 구부러졌던 허리를 환생의 기쁨으로 곧게 펴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만시름을 가시고 덩실덩실 추는 그들의 춤가락에 검푸른 파도도 넘실넘실 호응하는듯싶었다.
어린 숙희는 그때 그 광경의 의미를, 자기가 손에 든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리 없었다.자라면서 사연을 알게 되였다.
그의 아버지 김순흠은 총련중앙상임위원회에서 사업하였다.총련의 첫 세대 일군이였다.애국사업으로 밤낮없이 뛰여다니느라 딸이 태여난것도 뒤늦게 알게 되였다고 한다.숙희라는 이름은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일군들이 지어준것이다.
멀리 출장길에 있던 아버지가 금옥같은 딸에게 보내준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공화국기발이였다.
그는 안해에게 이렇게 당부하였다고 한다.
《숙희의 가슴속에 애국의 넋을 심어줍시다.자랑스러운 우리 국기를 소중히 안고 살게 합시다.…》
당시 애국운동은 한창 고조되고있었다.
동해의 파도너머로 들려오는 조국의 자랑찬 소식, 민족의 존엄을 온 세계에 떨쳐가는 사회주의조국의 드높은 숨결은 숙희의 아버지를 비롯한 총련일군들에게 있어서 투쟁의 활력소였다.
아버지는 늘 바빴다.언제 들어오고 언제 나가는지 알수 없었다.
이런 총련일군들을 동포들은 무한히 존경하고 따랐다.
숙희가 학교갈 나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어머니는 기쁨도 컸지만 걱정도 많았다.집세를 물고나면 얼마 남지 않는 돈으로 학생복과 학용품 등을 마련해야 하였기때문이다.어느 총련일군가정이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애국사업을 하느라 수고하는분들에게 무엇을 아끼겠는가고 하면서 동포들이 도와나섰다.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나직이 말하였다.
《아버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구나.조국의 믿음, 동포들의 기대에 보답해야겠는데.숙희야, 공화국기가 펄펄 휘날리는 우리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거라.꼭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숙희가 입학한 총련 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있는 곳에 위치하고있는데 동포자녀들이 줄지어 씩씩하게 학교로 가는 광경은 총련기록영화에도 수록되였다.
첫 등교를 하는 날 숙희의 마음은 마냥 날아갈듯하였다.은정어린 교육원조비로 훌륭히 꾸려진 학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20주년기념칭호를 받은 학교, 조국에서 보내준 민족악기를 처음으로 받은 학교 등 자랑이 많았기때문이다.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원수님의 사진은 언제 봐도 기뻐요 우리들이 어느때나 보고싶은 원수님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숙희네는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삼가 인사드리군 하였다.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조국의 사랑이 얼마나 따사로운지, 왜 아버지를 비롯한 총련일군들이 애국사업에 그토록 헌신적인지 숙희는 다소나마 알게 되였다.
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되여 숙희는 조국에서 이역의 학생소년들에게 보내준 왕밤을 한아름 받아안게 되였다.
조국의 향취를 한껏 느끼라는 사려깊은 뜻이 어려있는 열매였다.
왕밤이 가득찬 가방을 멘 소녀는 동네동포들에게 《조국에서 왕밤을 보내왔어요!》라고 웨치며 나는듯이 집으로 달려갔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딸에게 갈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직 조국의 형편은 어렵다.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이역의 동포자녀들을 위해 이토록 마음쓰고있구나.너희들이 언제나 조국을 잊지 않고 조선사람으로 당당히 살아가라는것이다.이 사랑, 이 기대를 늘 가슴에 새겨야 한다.》
어느날 집으로 돌아온 숙희는 학교에서 배운 노래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를 청아한 목소리로 불렀다.
노래를 마치고 무심히 뒤돌아보던 숙희는 그만 굳어졌다.언제 들어섰는지 자기의 노래를 들은것이 분명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것이 아닌가.
언제인가 조국에서 총련일군들의 가정에 식료품과 옷감을 보내주었을 때에도 아버지는 좋아라 환성을 올리는 자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렇게 눈시울을 적시였었지.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일본땅에서 조국을 마음속으로 우러르며 애국의 발걸음을 순간도 멈추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총련일군들이다.
자기들의 남모르는 수고를 속속들이 헤아려주는 조국의 사려깊은 은정이 너무도 고마와 아버지가 어깨를 들먹이였다는것을 숙희는 퍽 후날에야 알게 되였다.
숙희가 총련의 주요행사에 재일본조선소년단축하단 성원으로 뽑히였을 때였다.축하시랑송련습을 하면서 제일 난해한것이 바로 《주체적해외교포운동》이라는 말이였다.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딸의 초롱초롱한 눈을 들여다보며 아버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들려주었다.
암담한 세월 우리 동포들이 일본땅에 끌려오게 된 피눈물나는 사연으로부터 조국이 해방된 후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주체의 대로따라 보람찬 애국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기를.
어느날 숙희는 학급동무들과 함께 총련중앙회관을 구경하였다.회관은 도꾜 지요다구의 높은 둔덕에 위치하고있어 멀리서도 펄펄 휘날리는 공화국기를 확연하게 알아볼수 있었다.
회관을 돌아보던 숙희네는 조국에서 보내온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배분문제를 토의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였다.
그날 밤 딸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아버지는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동서고금에 없는 예산항목이 우리 공화국의 국가예산에 포함되게 된 사연에 대하여 눈물겹게 이야기해주었다.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일본땅에서 돈을 벌지 않고서는 생계조차 유지할수 없었지만 총련일군들은 돈벌이가 아니라 애국사업을 선택하였다.온갖 유혹과 협박을 물리치며 조국을 위해 묵묵히 일하였다.
늘 아침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군 하던 아버지가 하루는 가족사진을 찍자고 약속한적이 있다.
숙희는 신새벽부터 마음이 들떠 노상 시계만 쳐다보았다.그런데 야속하게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제기된 중요한 사업때문에 자식들과 모처럼 한 약속을 지킬수 없었던것이다.목빠지게 기다리던 숙희의 남매는 그만 울상이 되였다.
사진을 찍으면서 숙희는 애꿎은 어머니에게 투정질하였다.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하지 않겠는가고.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숙희는 물었다.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우리가 없나요?》
철없는 딸의 투정질에 한동안 묵묵해있던 아버지는 조용히 말하였다.
《조국은 우리 총련일군들에게 일본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존엄과 운명을 맡기였다.그래서 아버지는 늘 동포들속에 들어가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거란다.》
아버지가 자주 출장길에 있다나니 자식들과의 간격이 생겨나게 되였다.
이에 왼심을 쓰던 어머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당과류를 미리 장만해놓고 아버지가 돌아오면 슬쩍 손에 들려주군 하였다.
총련일군의 안해들은 누구보다도 걱정이 많았으며 부담도 컸다.
더우기 숙희의 어머니는 남편의 뒤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하는 속에서 녀성동맹사업도 하고 총련에서 처음으로 세운 유치원에서 원장사업까지 하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루는 퇴근시간이 훨씬 지났으나 어머니가 오지 않았다.숙희의 남매는 허기증을 달래면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런데 밤늦게 집에 들어선 어머니가 하는 말은 숙희를 아연케 하였다.
이제부터 매일 늦어지니 맏딸인 네가 구실을 잘하여 동생들을 돌봐주어야 한다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또 투정질하였다.유치원아이들이 자기 자식들보다 더 중한가고.
하지만 동포들로부터 《우리 원장선생님》으로 존경받는 어머니를 보며 생각을 달리하게 되였다.
숙희의 부모는 총련일군자녀들은 화려한 생활을 부러워하지 말고 소박하고 검박하게 살아야 한다고 늘 말하군 하였다.
딸이 등교할 때에는 물론이고 그 어디에 갈 때에도 무조건 조선치마저고리를 입도록 하였다.
깡패들의 란동이 무서워 그가 치마저고리를 입는것을 삼가하려 할 때 아버지는 준절하게 말하였다.
《우리는 조선사람이다.우리에게는 위대한 조국이 있다.무엇이 무서우냐.당당하게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니거라.》
…
이것은 오래동안 총련일군으로, 교육자로 사업한 부모에 대한 김숙희녀성의 추억의 일부이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손자를 둔 할머니가 되였지만 그는 애국의 길에서 언제나 변함없던 아버지를 비롯한 총련의 첫 세대 일군들의 모습을 잊을수 없어한다.
그리고 말한다.조국의 사랑, 조국의 숨결이 바로 애국의 자양분이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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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서 천만금의 재부보다 귀중한것은 믿고 의지할 운명의 품이다.
그 품이 있을 때 인간은 외롭지 않고 어떤 고난속에서도 비관을 모르며 긍지높고 떳떳한 삶을 누릴수 있다.
총련의 전세대 일군들이 바로 그렇게 살았고 오늘의 총련일군들도 그렇게 생을 이어가고있다.
황금만능이 지배하는 거치른 이역땅에서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과 열렬한 애국심을 지니고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헌신분투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총련이 그처럼 강하고 애국의 대가 굳건히 이어지고있는것이다.(전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