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12月, 2019
인공적인 고기생산기술의 세계적발전추세(2)
우리는 인공적인 고기생산기술의 세계적발전추세와 관련하여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식품과학연구소 소장 부교수 송천봉동무와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기자: 인조고기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영은 어떠한가.
소장: 올해 어느 한 나라에서 식물성인조고기로 만든 쌘드위치, 닭튀기, 햄버거 등을 시장에 내놓아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또 다른 나라의 연구집단은 소의 근육세포로부터 배양한 소고기로 만든 밀쌈을 내놓았는데 이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일반소고기와 맛과 질이 매우 류사하다고 말하였다.
인조닭고기도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있다.학자들은 병아리의 줄기세포에 풍부한 량의 산소와 당분, 광물질, 기타 필요한 물질들도 보장해주어 자연조건에 최대한 가까운 환경을 조성해주었다.이렇게 생산한 인조닭고기의 맛은 매우 좋아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기자: 현재 생산되고있는 식물성인조고기가 진짜고기맛을 낼수 있는가.
소장: 고기가 특별한 맛을 내는것은 그속에 헴이라고 하는 일종의 분자가 들어있기때문이다.이 분자는 고기의 고유한 냄새와 맛이 나도록 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연구사들은 유전자기술을 리용하여 식물속에서 일종의 물질을 추출한 다음 발효시켜 헴과 비슷한 물질을 얻어내고 이것을 콩헤모글로빈이라고 하였다.이 콩헤모글로빈이 들어있는 인조고기의 맛은 진짜고기의 맛과 거의 같다고 볼수 있다.
최근 어느 한 나라의 회사에서는 인조닭고기를 만든 다음 사람들에게 진짜고기로 만든 제품과 인조닭고기로 만든 제품을 맛보고 비교해보라고 하였다.모든 사람들이 맛에서 별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현재 식물성인조고기연구에서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기술적난문제는 두가지이다.하나는 식물성단백질의 변성문제로서 콩단백질의 립체분자구조를 고기와 같은 섬유모양분자구조로 바꾸는것이다.다음은 식물성인조고기가 진짜고기와 꼭같은 맛을 가지도록 하는것이다.
물론 아직은 인조고기의 맛이 진짜고기의 맛과 꼭같다고 볼수 없지만 가까운 앞날에 해결될것으로 보인다.
기자: 소, 돼지, 닭, 염소 등을 비롯한 집짐승고기는 사람이 느끼는 맛에서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있다.인조고기도 맛에서 차이가 나게 만들수 있는가.
소장: 자료에 의하면 식물을 원료로 하는 인조고기생산기술은 소, 돼지, 닭, 물고기의 맛을 각이하게 모방하고있다.앞으로는 그 범위가 확대되여 모든 고기의 맛을 내게 될것이다.
앞으로 배양과정을 조종하여 여러가지 기능성고기제품을 만들수 있다.실례로 철이 풍부하게 함유된 고기를 배양하여 철부족성빈혈환자들의 식사료법에 리용할수 있을것이다.
기자: 인조고기연구분야에서 제기되는 문제점들은 무엇인가.
소장: 인조고기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것이다.특히 배양성인조고기의 가격이 전통적인 고기생산원가에 비해 높다.일부 전문가들은 기술이 보다 완성되고 생산규모가 확대되는데 따라 앞으로 인조고기생산원가가 점차 낮아지게 될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또한 환경에 대한 영향 등 여러 분야에서 아직 의문의 여지가 있다.(전문 보기)
전국청년학생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 소연지봉밀영과 무두봉밀영 답사
백두전구에 새겨진 절세위인들의 거룩한 발자취를 따라 항일의 피어린 투쟁사를 심장깊이 체득하며 용기백배, 기세충천하여 답사행군길을 이어가고있는 전국청년학생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가 18일 소연지봉밀영과 무두봉밀영을 답사하였다.
답사행군대원들은 허리치는 눈속에서도 항일혁명투사들이 신념의 표대로 높이 추켜들었던 붉은기를 대오앞에 펄펄 휘날리며 행군길을 다그쳐 소연지봉밀영에 도착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작전적구상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대한 군복, 무장장비보장과 병상자치료를 진행한 소연지봉밀영에 대한 해설을 들으면서 답사행군대원들은 밀영의 여러곳을 돌아보았다.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결사관철한 투사들의 고결한 넋이 어려있는 재봉소, 무기수리소 등을 보면서 그들은 백두밀림에서 타오른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이어받아 오늘의 대진군에서 영웅청년신화를 창조해나갈 결의를 다지였다.
귀뿌리를 도려내는듯 한 강추위속에서 항일혁명선렬들이 지녔던 강인성, 투쟁성, 혁명성을 절감하며 답사행군대원들은 더더욱 끓어솟는 힘과 열정으로 무두봉밀영에로의 행군길을 이어갔다.
행군길에서 답사행군대원들은 간백산밀영에 대한 해설을 통하여 자주의 기치높이 전체 조선인민을 거족적인 조국해방성전에로 불러일으키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가슴뜨겁게 되새기였다.
무두봉밀영에 도착한 답사행군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9(1940)년 9월 사령부직속 소부대성원들과 함께 이곳에 오시여 대원들에게 소할바령회의에서 제시된 방침을 해설해주시고 밀영이 중간련락소의 사명에 맞게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수행해나가도록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사적내용을 들었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발자취가 스며있는 사령부귀틀집과 혁명적구호문헌을 비롯한 사적물들을 보며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야말로 새 세대들의 가슴속에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만장약해주는 《백두산대학》의 교정이라는것을 절감하였다.
백두의 혁명정신을 삶과 투쟁의 교과서, 자양분으로 받아안으며 청년학생들은 답사행군길을 계속 다그치고있다.(전문 보기)
혁명가의 심장은 언제나 혁명열로 불타야 한다
혁명을 위하여 자신을 깡그리 바치는것을 더없는 영예로, 보람으로 여기는 참된 인간인 혁명가,
혁명가는 하루를 살아도 혁명을 위하여 심장이 용암처럼 끓어야 하며 일생 혁명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집단의 혁명열, 투쟁열을 고조시켜야 할 일군들에게 있어서 혁명열은 더욱 필수적이다.
일군의 실천력을 담보하는 원천은 혁명열이다.
생눈길을 헤쳐나가는 척후병, 화선에 나가 대오를 이끌어나가는 기관차,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 일군들에게 지정하여주신 이 위치를 한치의 에누리도 없이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 당의 핵심골간이며 혁명의 지휘성원인 일군들은 응당 혁명열로 충만되여야 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일은 자기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립장에서 맡은 사업을 혁명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일군의 혁명열, 이는 모든 사업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게 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우리 인민들의 비상한 투쟁열의에 일군들의 대담하고 과학적인 작전과 능숙한 지휘, 이신작칙의 일본새가 안받침되면 점령 못할 요새와 뚫지 못할 난관이 없다는것이 일군들에 대한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의 믿음이고 기대이다.
우리 일군들이 전진하는 대오의 척후병, 기관차의 영예로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자면 생에 대한 관점부터 바로가져야 한다.한것은 생에 대한 옳바른 관점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일생동안 자기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살지만 생에 대한 혁명적인 관점을 지닌 사람은 오직 혁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기때문이다.
생에 대한 혁명적관점이 없이는 시련과 사선의 고비를 무수히 넘어야 하는 혁명의 길에 나설수도, 목숨을 내대고 그 길을 꿋꿋이 걸어갈수도 없으며 자기의 한생을 끝까지 빛내일수는 더욱 없다.
항일혁명투사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한생을 다 바쳐 싸우는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행복으로 여기였으며 어느 한순간도 자기의 생을 혁명과 떼여놓고 생각해보지 않았다.바로 여기에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닌 생에 대한 혁명적관점의 근본특성이 있으며 한생을 값높이 빛내일수 있은 근본요인이 있다.
이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는 기회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일 그들이 혁명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정치적생명보다 육체적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였더라면 눈보라세찬 백두광야에서 풍찬로숙할수 없었을것이며 조국해방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영웅적으로 싸울수 없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항일혁명투사들의 빛나는 생은 생에 대한 혁명적인 관점을 가지고 혁명의 한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워나갈 때 혁명앞에 닥쳐온 난관과 시련이 극복되고 혁명의 승리가 이룩된다는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하시였다.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은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혁명의 한길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워온 항일혁명투사들의 숭고한 넋을 안고있는것으로 하여 혁명가들에게 불타는 혁명열, 투쟁열을 안겨주는 귀중한 활력소로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는것이다.(전문 보기)
한별, 그이는 조선의 위대한 태양! -혁명투사 차광수동지의 한생에서-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외세에 국권을 강탈당하고 2천만겨레가 망국노의 치욕을 강요당하던 민족수난의 그 암담하던 시기 조선의 새 세대 혁명가들은 어떻게 되여 불패의 통일단결이라는 위대한 력사적성업을 이룩할수 있었는가.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하였던 혁명투사 차광수동지의 혁명가적한생을 통하여 이에 대한 웅변적인 대답을 찾아보게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길림시절을 회상할 때면 잊을수 없는 얼굴들이 수없이 떠오르군 한다.그 얼굴들의 전렬에는 항상 차광수가 서있다.》
차광수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뵙게 된것은 주체16(1927)년 봄이였다.
그 나날의 인상깊은 상봉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속을 터놓고 사귀여보니 차광수는 대단한 멋쟁이였다.…
그는 글도 잘 쓰고 연설도 잘했지만 마음씨가 무한정 좋아서 청년들을 많이 끌었으며 맑스주의전문가로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
차광수의 출현으로 하여 《ㅌ.ㄷ》의 핵심력량은 새롭게 보강되였다.우리의 운동권에는 조선공산당 상층부의 거물들과도 실력을 겨룰수 있는 쟁쟁한 리론가가 등장한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감회깊이 회고하신것처럼 차광수동지는 활달한 성격과 뜨거운 인정미를 지닌 열혈청년이였을뿐아니라 쟁쟁한 리론가, 보기 드문 재사였다.
이러한 차광수동지가 어떻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의 심장을 통채로 맡기고 그이를 조선혁명의 지도자로, 민족재생의 유일한 구성으로 충직하게 받들어모실수 있은것인가.
일찌기 청운의 뜻을 품고 이국땅에 건너가 온갖 고역을 치르며 지식의 탑을 쌓았으나 투쟁의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의 길을 헤매이지 않으면 안되였던 차광수동지였다.
그 길에서 차광수동지가 수없이 목격한것은 3인1당, 5인1파식으로 갈라져 파벌싸움에 피눈이 되여 테로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종파분자들의 너절한 행위였다.
남의 나라 땅에서까지 파쟁과 범죄행위를 일삼는 종파분자들에게 환멸을 느낀 차광수동지는 시골훈장이 되여 아이들의 머리에 민족의 정기나 넣어주며 조용히 살아가리라 마음먹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게 된 차광수동지는 그이께 온넋이 자석처럼 끌리게 됨을 금할수 없었다.
특히 차광수동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것은 모든 문제를 조선의 구체적현실에 기초하여 판단하시며 공리공담이 아니라 혁명실천을 중시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투철한 자주적립장, 주체적이며 혁명적인 사고방식이였다.(전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