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조국의 품보다 더 좋은 곳을 나는 모른다  함흥시 동흥산구역 서운1동에서 사는 황정순녀성의 수기

2026년 1월 30일《로동신문》

 

내 나이 올해 77살이다.

늙으면 추억에 산다고 나는 요즘 지나온 한생을 자주 돌이켜보군 한다.

그러면 두 제도에서 살아온 나의 남다른 인생행로가 어제런듯 떠오르고 인간의 참된 삶과 행복을 꽃피워주는 사회주의 내 조국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슴이 젖어들군 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사회주의제도가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것을 실생활을 통하여 깊이 체험하고있습니다.》

조국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더우기 이역에 태를 묻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자본주의일본땅에서 태여난 나는 한해두해 철이 들면서 바다건너 멀리 있는 조국을 늘 끝없는 동경속에 그려보군 했다.

나에게 있어서 조국은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밤가는줄 모르고 듣던 항일빨찌산들의 이야기였고 전화의 재더미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천리마의 전설이였으며 그 땅에 사는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들의 모습이였다.

그후 13살 나던 해인 1962년 4월 나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꿈결에도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기였다.

아버지는 조국땅에 첫발을 내짚으며 나에게 말했다.

《여기가 바로 조국이다.》

조국, 비록 그 말의 참뜻을 다 알수 없는 나이였지만 무엇이라 이름할수 없는 뜨거운것이 나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저주로운 일본땅에서 6살에 어머니를 여읜데다가 장애자여서 갖은 천대와 수모를 받으며 살아온 나였던것이다.

아버지는 한해두해 커가는 딸의 병을 고쳐주려고 도로공사장과 저수지공사장 등을 찾아다니며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았지만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사회에서 그렇게 번 푼전으로 병을 고친다는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어느날 어머니가 만들어준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지팽이를 짚은채 홀로 울밖에 나섰던 나는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불량배들이 나에게 달려들어 조선계집애, 병신이라고 놀려대면서 야만적인 폭행을 가했던것이다.

나의 유년시절, 소녀시절은 이렇게 흘러갔다.

그러던 내가 마침내 어버이수령님께서 열어주신 귀국의 배길을 따라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기였던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생활에서는 《처음》이라는 말이 떠날줄 몰랐다.

아버지는 존엄높은 공화국공민의 증표인 공민증을 처음으로 가슴에 품고 첫 선거에 참가하였다.집도 처음으로 가져보는 자기 집이였다.장애자인 내가 남들과 꼭같이 새 교복과 학용품을 무상으로 받아안고 배움의 꽃대문에 들어서게 된것도 태여나 처음으로 체험한 현실이였다.

그뿐이 아니였다.학교에 입학한 나는 온 학급, 온 학교의 관심사로 되였다.일본에서는 장애자라는것으로 하여 누구에게서나 외면당하고 놀림거리의 대상이 되였지만 조국에서는 오히려 그 리유로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더 뜨거운 사랑과 정을 부어주었다.영원히 걸을수 없다고 하던 다리도 돈 한푼 내지 않고 고치게 되였다.

더우기 내가 대지를 마음껏 활보하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의료일군들이 자기의 피와 살을 서슴없이 바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 세상에 그토록 아름답고 고상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이 모든것은 자본주의일본땅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들이였다.

진정 나에게 있어서 《처음》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차례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였다.

그것은 암흑속에서 살던 한 인간이 광명을 찾은것과 같은 기쁨과 행복이였다.

그후 일본에서부터 불치의 병을 앓고있던 아버지가 조국이 안겨준 행복을 다 누리지 못하고 눈을 감았을 때에도 나에게 와닿는 사랑과 정은 더욱 뜨거워만졌다.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과정에 알게 된 김귀인어머니가 돌볼 사람이 없는 나의 혈육이 되여준것도 바로 이때였다.

이 사실을 소재로 한 기사가 지금으로부터 근 30년전인 1998년 7월 17일부 《로동신문》에 실리였는데 그 기사가 사회에 준 충격은 대단했다.그후 예술영화 《사랑의 대지》가 나와 사람들의 심금을 더욱 뜨겁게 울려주었다.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겨 다시 대지를 활보할수 있게 된 나는 함경남도인민병원(당시)에서 보람찬 로동생활을 시작했다.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하는 나날에 나는 늘 혁신자의 영예를 떨쳤고 꿈에도 소원하던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내가 김귀인어머니와 함께 살고있는 아담한 살림집에는 늘 따뜻한 사랑과 정이 흘러넘치고있다.

김은경, 한강성동무를 비롯한 함경남도종합병원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때없이 우리 집을 찾아 나와 김귀인어머니의 생활을 친혈육의 정으로 보살펴주고있는것이다.

하기에 나는 잊을수 없는 사연들로 가득찬 한생을 추억깊이 돌이켜볼 때마다 이렇게 소리높이 웨치고싶다.

우리가 사는 사회주의조국의 품이야말로 이 세상 가장 위대하고 따사로운 삶의 보금자리이며 그 품보다 더 좋은 곳을 나는 모른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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