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를 이어오는 가풍-조국보위 -동대원구역 삼마2동에서 살고있는 조성준로인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

주체113(2024)년 6월 29일 로동신문

 

 

동대원구역 삼마2동 61인민반에서 살고있는 조성준로인의 가정은 사람들로부터 애국자가정이라고 불리우고있다.그의 안해 리복희녀성은 일흔이 지난 나이이지만 자주 중요대상건설장들과 사회주의전야에 나가 건설자들과 농장원들의 일손을 적극 도와주고있으며 세 자식은 물론 손자들까지도 나라를 위한 여러가지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하고있다.

사람들의 존경속에 사는 애국자가정, 알고보니 그 가정은 3대를 이어 군사복무를 하고있는 가정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보위에 최대의 애국이 있습니다.조국이 있어 당도 정권도 있고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도, 인민의 행복한 생활도 있는것입니다.》

조성준로인의 집에 들어서면 한 벽면을 꽉 채운 영광의 기념사진들이 제일먼저 눈에 띄운다.

그들의 집벽면에 모셔져있는 뜻깊은 기념사진들이야말로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가정의 더없는 자랑이고 가장 큰 재부인것이다.

뜻깊은 기념사진들앞에서 사람들이 감동을 금치 못할 때면 리복희녀성은 남편이 군관으로 복무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은데 대해서와 군인가족이였던 자기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은데 대하여 긍지높이 되새기군 한다.그리고 세 아들도 다 군사복무를 했거나 하고있는데 군관인 두 아들은 벌써 여러 차례나 위대한 장군님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자기 집안은 참으로 복받은 가정이라고 긍지에 넘쳐 이야기한다.

이 가정에서 제일먼저 군복을 입은 사람은 조성준로인의 아버지였다.

해방전 조성준로인의 가정은 평범한 농민가정이였다고 한다.나라가 해방되여서야 비로소 제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지으며 조국의 귀중함을 뼈에 사무치게 새겨안았기에 그의 아버지는 해방후 남먼저 민청일군이 되여 건국사업에 앞장섰다.침략자 미제가 전쟁의 불을 질렀을 때에도 나라가 있어야 우리모두의 행복도 있다고 하면서 군복을 입고 한몸바쳐 싸웠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생토록 변함없는 군사복무의 길을 걸었다.

늘 새벽별을 이고 나갔다가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들어오군 하는 아버지, 언제한번 자식들에게 따뜻한 정을 기울인적없이 늘 바쁘게 살아온 아버지였지만 군복입은 아버지의 모습은 자식들의 가슴속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참된 인간의 모습으로 새겨졌다.

아버지처럼 자기들도 군복을 입으리라 결심한 자식들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리복희녀성도 제대군관이였다.

눈에 흙이 들어간대도 계급적원쑤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고, 행복에 도취되여 근본을 잊으면 그 순간부터 또다시 원쑤들의 노예가 된다고 하던 어머니의 당부를 늘 가슴에 깊이 새기고 군사복무를 한 그였기에 제대후에는 군관의 안해가 되였다.

한생 마음속군복을 벗지 않고 조국보위, 조국수호의 길에 자신을 깡그리 바치리라 결심한 그는 군인들을 위해 한가지 좋은 일이라도 더 찾아하느라 이른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젖은 손이 마를새없이 일했다.그러다나니 그의 집에는 세 아들만 있을 때가 적지 않았다.

외지에 나가살다싶이 하는 군관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늘 바쁜 시간을 보내는 어머니를 도와주느라 나어린 자식들은 다른 애들보다 일찌기 철이 들었다.이른아침이면 집짐승먹이를 마련하느라 온 마을을 돌고 저녁이면 먹이풀을 뜯기 위해 산기슭과 강기슭을 누볐다.

앓는 몸으로 호미를 찾아쥐고 부업지로 나가려는 어머니의 앞을 가로막던 때를 추억하며 맏이인 군관 조현철동무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우리 자식들은 어머니라도 자기 몸을 돌보고 가정을 돌보아야 하지 않겠는가고 막 엇드레질을 하였습니다.그런 우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군대가 강해야 우리 가정의 행복도 있다고 하며 밭으로 향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군사복무시절의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군인들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고 서해갑문건설장과 안변청년발전소건설장 등 조국이 부르는 대건설장마다에서 애국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오는 나날 리복희녀성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였으며 높은 국가수훈을 받아안았다.

한생 변함없이 애국의 자욱만을 새겨온 리복희녀성의 인생길을 우리는 여기에 다 적지 못한다.허나 군사복무의 나날에 이어 그가 제대후에도 6개의 훈장과 메달을 더 받았다는 사실은 그가 걸어온 참된 삶의 자욱을 어렵지 않게 더듬어볼수 있게 한다.

가정을 위해 따로 모아둔 재부는 없어도 조국보위를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는 나날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은 부모의 모습은 자식들의 성장에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수 없는 귀중한 자양분으로 되였다.

맏아들 조현철동무와 둘째아들인 조명철동무는 어깨우에 별을 달고 복무의 길을 꿋꿋이 이어가고있으며 막내아들인 조기철동무는 군사복무를 마치고 일터에서 성실한 애국의 구슬땀을 바쳐가고있다.

두 아들의 어깨우에 별이 늘어날 때마다 조성준로인은 이렇게 말해주고있다.군관이란 조국을 위해 자기의 한생을 깡그리 바칠것을 각오한 사람이다, 어깨우의 별의 무게가 아니라 보답의 무게에 따라 군관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조성준, 리복희부부는 자식들을 조국보위초소에 세웠다고 하여 자기들의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지 않는다.70고개를 넘어섰지만 그들은 오늘도 자식들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바라시는대로 복무의 나날을 위훈으로 새겨가도록 하기 위해 부대싸움준비와 후방사업개선을 위한 일을 적극 도와주고있다.뿐만아니라 손자들의 가슴속에도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심어주며 그들이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하도록 이끌어주고있다.

그들이 살아온 년대와 새겨온 자욱은 서로 다르다.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들의 모습이 하나의 모습으로 안겨왔다.조국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을 안고 방선의 전호가에 청춘시절을 바쳤으며 한생 조국을 위해 성실한 복무의 자욱을 새긴 사람들, 지금도 생의 순간순간 나라를 위한 일에 자기를 깡그리 바쳐가는 그 순결한 마음은 수십년세월이 지난 오늘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는것이다.

조성준로인은 오늘도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시계의 초침소리에 늘 귀를 기울이며 삶을 이어가고있다.그 시계초침소리와 더불어 애국의 바통, 보답의 가풍이 변함없어야 한다는것을 자식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주며.

우리 나라에는 이런 가정이 수없이 많다.3대, 4대를 이어오는 애국자가정, 군인가정이 많기에 그 어떤 원쑤도 이 땅을 감히 넘보지 못하는것이며 우리 조국은 사회주의지상락원으로 날을 따라 전변되고있는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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