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쟁의 철리를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전쟁로병의 수기를 펼치고

2025년 7월 11일《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원들과 군인들, 근로자들속에서 교양사업을 강화하여 그들이 높은 계급의식을 지니고 그 어떤 정황속에서도 혁명적원칙성과 계급적립장을 확고히 지키며 계급적원쑤들과 무자비하게 투쟁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얼마전 취재길을 이어가던 우리는 한권의 색날은 수기집을 마주하게 되였다.모란봉구역 민흥동 93인민반에 사는 리근혁동무의 아버지 리흥익전쟁로병이 남긴 수기였다.

전화의 나날 후방에서 계급의 무기를 억세게 틀어잡고 원쑤들과 용감히 싸운 로병, 이제는 수십년세월속에서 보풀이 일고 색이 바랜 책이였지만 우리는 로병의 수기를 통하여 또 하나의 준엄한 계급투쟁의 진리를 가슴깊이 새겨안을수 있었다.

수기의 앞부분에는 나라를 빼앗긴탓에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해야만 했던 리흥익로병의 피눈물나는 과거사가 씌여져있었다.

리흥익로병은 1920년대중엽 함경남도 장진군의 화전민가정에서 태여났다.그의 가정에는 언제나 가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뼈도 채 굳기 전에 그는 지주집머슴으로 끌려가야 했고 그후 원한의 처서판에서 대소한의 엄동설한때에도 몸에 홑잠뱅이 하나만을 걸치고 고역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였다.하지만 그 모든것중에서도 제일 참기 힘든것은 나라가 없고 제땅 한뙈기 없는탓에 당하는 모욕과 멸시였다.

지주놈은 그를 마소같이 부려먹으면서도 조금이라도 제놈의 비위에 거슬리면 목을 잘라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작두앞으로 끌어내군 하였다.더는 참을수 없어 지주놈의 집에서 뛰쳐나와 어느한 목재소에서 로동을 시작하였지만 그에게 차례지는 천대와 멸시는 더해만졌다.

어느날 함께 일하던 한고향사람이 왜놈감독에게 억울한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된채로 쓰러졌다.그는 치솟는 격분을 금할수 없어 조선사람들을 짐승취급하는 그 감독놈을 단매에 때려눕혔다.놈들의 탄압을 피하여 여기저기에 몸을 숨겨오던 그는 끝내 살길을 찾아 이역땅으로 가지 않으면 안되였다.하지만 나라없던 세월 그 어디에 가나 차례지는것은 천대와 멸시, 고역과 눈물뿐이였다.해방후에야 그는 비로소 고향에 돌아와 보람차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었고 면민청위원장으로 건국사업의 앞장에 설수 있었다.

그후 전쟁이 일어났다.비록 5년밖에 안되는 짧은 나날이였지만 김일성장군님의 품속에서 누린 행복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그는 고향땅을 목숨바쳐 지킬 각오를 안고 군내무서에 입대하였다.…

《아버지는 원쑤들의 준동으로부터 조국과 인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습니다.그런데 그 나날속에는 계급투쟁의 준엄한 철리를 다시금 뼈저리게 새겨안게 된 중요한 계기도 있었습니다.그것은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던 1950년 가을 어느날 공화국을 반대하여 무장폭동을 일으킨 악질반동들과 계급적원쑤들을 소탕하던 때에 있은 일입니다.》

리근혁동무는 이렇게 말하며 수기집의 한 갈피를 번져 우리앞에 내놓았다.

《…우리가 반동놈들의 소굴에 도착하였을 때 그놈들은 수십명의 당원들과 애국자들에게 악착한 고문을 들이대고있었다.우리는 놈들을 모조리 체포하였다.

그런데 체포된 놈들을 하나하나 주시해보던 나는 소스라치듯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놈들속에 며칠전 소요를 일으킨것으로 하여 내무서에 붙잡혀왔던자들도 있었던것이다.

그놈들은 이미전부터 풋낯이나 아는자들이였는데 자기들은 강압에 못이겨 끌려왔을뿐이지 소요를 일으키는데 가담하지 않았다고, 한번만 용서해주면 다시는 공화국앞에 죄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손이야발이야 빌었었다.나는 그제서야 설마 하는 생각에 다짐을 받아내는것으로 그치고 그놈들을 놔주었던것이 뼈저리게 후회되였다.그놈들을 보는 나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이때였다.기회를 엿보던 놈들이 무기를 꺼내들고 반항하려는 순간 사격명령이 내려졌다.그날 우리는 계급적원쑤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무자비하게 처단하고 수많은 당원들과 애국자들을 구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로병은 내무원으로 계속 복무하였다.우리 제도에 반감을 품은 원쑤놈들의 책동이 계속되는한 놈들과의 치렬한 계급투쟁은 결코 끝날수 없었던것이다.…

로병의 수기에는 그가 자식들을 계급의 억센 투사들로 자라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준 사실도 적혀있었다.

리근혁동무가 조국보위초소로 떠날 때 로병은 당부했다.

《계급적원쑤들에게는 자비나 용서란 있을수 없다.계급투쟁의 이 철리를 절대로 잊지 말고 앞으로 사나운 맹수가 되여 원쑤들과 무자비하게 싸우기 바란다.》

가장 훌륭한 계승은 넋의 계승이다.

리근혁동무를 비롯한 자식들은 혁명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잡고 계급투쟁의 전초선에 섰으며 손자, 손녀들도 전세대들의 뒤를 이어 조국보위초소로 련이어 떠나갔다.하여 로병의 가정에는 입대증이 수십개로 늘어났다.

한 전쟁로병이 남긴 수기집을 덮으며 우리는 다시금 가슴깊이 새기였다.

조국과 인민의 원쑤들에게는 추호의 자비나 용서도 있어서는 안되며 오직 무자비하게, 철저하게 소탕해야 한다는 계급투쟁의 준엄한 철리를.(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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