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민족교육/民族教育’ Category
총련소식
미더운 새세대들
지난 3월 총련 조선대학교 교정을 떠나 애국의 초소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자국을 내디딘 졸업생들가운데는 교육분야로 진출한 청년들이 적지 않다.
교육학부 졸업생인 리유정은 총련 와까야마조선초중급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였다.
새세대들을 재일조선인운동의 미래를 담보하는 총련의 어엿한 기둥감들로, 어머니조국에 충정다하는 참된 조선사람으로 키워나가겠다는것이 그의 결심이다.비록 낯선 지방에 가지만 교정을 나서면서 동창생들과 약속한대로 애국운동의 거창한 실천속에서 자기의 의지를 검증받겠다고 그는 힘주어 말하였다.
혹가이도출신이지만 가나가와현에서 교원생활을 하게 된 외국어학부 졸업생 황영휘청년의 심정도 마찬가지이다.외국어검정시험에서 높은 자격을 얻은 그에게 있어서 갈 곳은 많았다.하지만 우리 학교가 더 귀중하다고 하면서 그는 주저없이 교원대렬에 들어섰다.그의 아버지와 형도 도꾜와 혹가이도에서 교원생활을 하고있다.훌륭한 교육자일가이다.
문학력사학부 졸업생인 강리향은 대학기간 연극소조활동을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였다고 한다.졸업공연에서도 그는 4.24교육투쟁을 주제로 한 연극 《약속》에 출연하였다.후대교육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치리라 굳게 결심한 그는 총련 군마조선초중급학교 교원으로 되였다.
동포사회는 이들의 앞날을 열렬히 축복해주었다.당당한 조선사람으로 키워준 어머니조국과 총련조직의 사랑과 믿음을 소중히 간직하고 애국의 길을 걷는 새세대들, 그 모습이 얼마나 미덥고 자랑스러운가.
학교를 위해 바치는 지성
총련 니시도꾜조선제2초중급학교는 도꾜도와 가나가와현이 린접한 곳에 자리잡고있다.
사실 이 학교는 일본당국의 극심한 민족차별정책으로 인한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한때 페교의 위기에까지 몰리웠었다.그때 교직원들은 학교가 없어지면 지역동포사회의 불이 꺼지게 된다고 하면서 강인한 의지로 떨쳐일어나 학교를 지켜냈다.
이 학교에 대한 동포사회의 애착은 남다르다.
2개의 총련지부가 학교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있다.학생인입사업과 학교지원사업을 맡은 교육대책위원회에는 총련지부들과 함께 녀성동맹, 조청, 청상회 등 각 단체들이 망라되여있는데 모두 자기 맡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있다.
조청 마찌다지부가 특히 모범이다.
이곳 조청원들은 모두 젊은 청년들이지만 미래의 학부형이라는 관점에서 학교사업에 늘 왼심을 쓰고있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학생들과의 교류모임을 통하여 자기들의 사명감을 더욱 깊이 자각한 조청원들은 조건은 비록 어렵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학교를 끝까지 지키자고 하면서 교육지원사업에 성심성의를 다하고있다.
대오의 확대강화를 비롯한 조직의 활성화도 바로 이 사업을 통하여 더욱 촉진되고있다.
총련부흥의 새시대에로 향한 영예로운 진군길에서 선봉대, 돌격대의 기치는 마땅히 동포청년들이 들어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이곳 조청원들은 더욱 분발하여 투쟁하고있다.(전문 보기)
《조선학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그만두라!》 -재일동포들 항의행동 전개-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고등학교지원제도의 적용을 요구하는 금요행동이 15일 일본 문부과학성앞에서 진행되였다.
조선대학교와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 교원들과 학부모들을 비롯한 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알려진바와 같이 반공화국적대시책동에 피눈이 되여 날뛰는 일본반동들은 2010년부터 오늘까지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유독 조선학교만을 완전히 배제시키고있다.
그동안 재일동포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당국의 부당한 차별책동에 맞서 항의행동을 벌려왔다.
500번째로 진행된 이날의 항의행동에서 참가자들은 간또대지진당시 일제가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 100년, 재일동포들의 4.24교육투쟁 75년, 일본의 조선학교차별행위 1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집요하게 감행되고있는 일본당국의 조선인차별책동을 규탄하고 민족교육을 보장할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당국의 차별속에서도 가슴펴고 살아갈 힘을 안겨주고 조선사람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준 민족교육을 후대들에게 이어줄 의지를 표명하였다.
아이들을 공격하는 일본정부의 차별정책은 용납할수 없다고 하면서 그들은 학생들의 배움의 권리가 차별없이 보장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투쟁해나갈것을 호소하였다.
조선인차별행위의 근원은 바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청산되지 않은데 있다고 규탄하고 그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그만두라!》,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지원제도를 적용하라!》 등의 구호들을 웨쳤다.
앞서 항의행동참가자들은 문부과학성에 대한 요청활동을 벌렸다.
항의행동에 참가한 한 학생은 당연히 보장되여야 할 권리가 실현되지 못하는 일본사회에 대한 분노를 금할수 없다, 금요행동이 앞으로 1 000번을 넘어 계속되더라도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해 힘차게 투쟁해나갈것이다고 말하였다.
항의행동참가자들은 일본내각부와 문부과학성에 요청문을 보내여 일본당국이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차별행위를 당장 철회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전문 보기)
민족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애국운동 활발히 진행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에서-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제25차 전체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내주신 강령적서한을 높이 받들고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청상회)가 총련애국위업의 생명선인 민족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애국운동을 활발히 진행하고있다.
청상회에서는 《조선학교가 없는 지역의 아이들에게도 우리 학교를!》이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일본각지의 조선학생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기 위한 준정규교육망을 확대해나가고있다.
거주지역에 조선학교가 없거나 통학거리가 멀어 일본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우리 말과 글, 우리 력사와 문화를 배워주는 한편 그들을 조선학교들에 편입시키기 위하여 《청상회학원》을 내와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이바라기조선초중고급학교에서 지난 3월 26일부터 29일까지 제1차 《청상회학원》이 운영되였다.
학원운영기간 국어, 조선력사와 동포학생들이 비록 일본에서 살고있지만 조선사람으로 떳떳이 살아야 한다는 내용의 강의, 문예체육소조활동을 진행하였다.또한 학원에서 배운 우리 말과 우리 노래, 장고장단발표모임도 하였다.
4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우리 말로 서로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하게 된 학생들은 《내가 배운 우리 말중에서 〈우리 학교〉란 말이 제일 마음에 든다.앞으로 우리 말을 자유롭게 할수 있게 열심히 노력하겠다.》, 《집으로 돌아가고싶지 않다.다음해에 꼭 다시 오겠다.》고 흥분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학부형들은 다음해에도 자식들이 《청상회학원》에 보내줄것을 청하는 모습을 보니 감동되였다, 자식들에게 민족성고수의 출발점, 애국의 첫걸음을 떼여주는 귀중한 체험을 마련해준 청상회와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정말 고마왔다고 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특히 오사까부청상회에서는 재일동포들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차별책동이 우심해지고있는 속에서도 3월 1일 제1차 《꽃봉오리올림픽 2023》행사를 가지였다.
오사까부, 와까야마현, 나라현의 조선유치원과 조선학교 초, 중, 고급부 학생 8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속셈, 기억력경쟁 등 18개 종목의 경기는 동포어린이들과 학생들속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오사까부청상회 성원들은 동포어린이들과 학생들의 높은 능력과 그들이 지닌 재능을 실감하면서 동포어린이들과 학생들의 웃음은 청상회활동의 보람이며 우리들의 행복이다, 앞으로 후대교육사업에 적극 기여할것이다고 다짐하였다.
도꾜조선중고급학교에서도 4월 23일 도꾜도청상회의 주최로 《반짝, 반짝 꽃봉오리》행사를 진행하였다.
도꾜도안의 우리 학교 학생들, 총련본부관하 일군들과 동포들 1 300여명이 참가한 행사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우리 꽃봉오리》라는 주제의 공연과 동포들을 위한 도꾜조선가무단공연에 이어 아이들의 즐거운 유희오락경기가 있었다.
행사를 통해 도꾜도청상회 성원들은 유족한 동포사회와 꽃봉오리들의 미래를 위하여 민족교육지원사업에 보다 적극 이바지할 의지를 표명하였다.(전문 보기)
4.24교육투쟁 75돐 기념행사 일본 도꾜에서 진행
총련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권리와 존엄을 지켜낸 4.24교육투쟁 75돐을 맞으며 재일동포들의 기념행사가 일본 도꾜에서 전개되였다.
22일 재일본조선인중앙집회가 도꾜에 있는 조선회관에서 진행되였다.
송근학 총련중앙상임위원회 부의장 겸 교육국장, 윤태길 재일본조선인교직원동맹(교직동) 중앙상임위원회 위원장, 리성철 재일본조선인교육회 중앙상임리사회 회장, 한동성 조선대학교 학장, 간또지방 교직동 동맹원들과 교육회 일군들, 총련 각급 기관의 일군들과 동포들, 조선대학교 학생대표들과 아버지회, 어머니회 성원들이 집회에 참가하였다.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가 보내온 련대사를 송근학부의장 겸 교육국장이 랑독하였다.
윤태길 재일본조선인교직원동맹 중앙상임위원회 위원장이 보고를 하였다.
보고자는 4.24교육투쟁의 빛나는 승리와 그 력사적의의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총련의 민족교육사업을 재일조선인운동의 미래를 책임질수 있는 교육, 동포들이 자녀들을 마음놓고 맡길수 있는 교육으로 강화발전시켜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일본당국의 식민주의적본성은 예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며 오늘의 민족교육의 권리상황은 75년전을 방불케 한다고 하면서 그는 신성한 민족교육의 권리를 반드시 옹호고수할것을 호소하였다.
집회에서는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랑독되였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장내에서는 일본당국의 민족교육차별책동을 반대규탄하고 교육권옹호확대를 위한 투쟁을 힘차게 벌려나갈것을 호소하는 구호들이 울려나왔다.
집회에 앞서 참가자들은 조국사에서 보내온 록화편집물 《투쟁으로 지켜온 민족교육》을 시청하였다.
이날 4.24교육투쟁 75돐기념 력사자료전시회가 있었다.
한편 총련중앙상임위원회는 민족교육권옹호투쟁을 첫 포성으로 하여 권익옹호투쟁의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하여 총련중앙교육권옹호투쟁추진위원회를 재편성하고 현본부들에도 총련본부교육권옹호투쟁추진위원회를 내오기로 하였다.
21일 4.24교육투쟁 75돐기념 금요행동이 일본 문부과학성앞에서 진행되였다.
간또지방의 총련일군들과 동포들, 조선학원 관계자들과 조선유치반보호자련락회 성원들을 비롯한 조선학교 학부모들, 조선대학교와 조선고급학교 학생들과 일본의 련대성단체 성원들이 금요행동에 참가하였다.
총련중앙교육권옹호투쟁추진위원회 성원들인 남승우 총련중앙상임위원회 부의장, 송근학부의장 겸 교육국장, 서충언부의장 겸 국제통일국장과 사무국 성원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금요행동에서는 일본당국의 조선학교차별책동을 규탄하여 재일동포들의 성토발언과 일본인사들의 련대발언이 있었다.
발언자들은 4.24교육투쟁이 있은 때로부터 7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당국에 의한 식민주의적인 민족교육탄압이 계속되고있다고 규탄하였다.
그들은 세대와 세기가 바뀌였으나 조선학교를 말살하려는 미제와 일본당국의 반동적본성에는 변함이 없다고 단죄하면서 참다운 민족권리는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수 있다는 진리를 가슴깊이 새기고 더욱 굳게 단결하여 일본당국의 민족교육에 대한 차별정책을 철회시키고 제반 권리를 쟁취할 때까지 굴함없이 싸워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참가자들은 조선학교차별철회 등을 요구하는 구호들을 웨쳤다.(전문 보기)
재일조선인민족교육말살을 노린 일본반동들의 만고죄악의 력사는 절대로 부정할수 없다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 비망록-
우리 인민의 천년숙적인 일본의 죄악에 찬 력사속에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와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말살하기 위하여 감행한 피비린내나는 범죄의 행적도 무수히 찍혀져있다.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는 민족교육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재일동포들의 4.24교육투쟁 75돐을 맞으며 동서고금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일본반동들의 극악무도한 민족교육말살범죄를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하여 이 비망록을 발표한다.
전대미문의 국가적인 테로행위
일본당국은 패망후부터 오늘까지 재일조선인민족교육말살을 국책으로 삼고 집요하고 악랄하게 추진하여왔다.
일제의 식민지우민화, 《황국신민화》정책으로 현해탄건너 일본땅에서 온갖 민족적멸시와 차별속에 살아온 재일동포들은 해방후 자녀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배워주어 그들을 민족의 넋을 지닌 조선사람으로 키워내기 위하여 피땀에 절은 푼전을 모아 일본도처에 국어강습소들을 일떠세웠다.그후 국어강습소는 점차 학교로 발전하여 1948년초 조선학교수는 무려 500여개, 학생수는 6만여명, 교원수는 1 300여명에 이르게 되였다.
날로 확대되는 재일조선학교의 존재는 조선전쟁준비에 미쳐날뛰던 미일반동들에게 있어서 골치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1948년 1월 6일 미륙군장관 로이얄은 《일본을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방벽으로 만들겠다.그러자면 반미세력을 철저히 제거해버려야 한다.》라고 줴치면서 그 예봉을 재일조선인운동에 대한 전면탄압에 돌리도록 하였다.이자의 객적은 망발은 패망의 분풀이를 하지 못해 몸살을 앓고있던 군국주의광신자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미국상전으로부터 가장 구미동하는 먹이감을 받아문 일본반동당국은 1948년 1월 24일 문부성 학교교육국장의 명의로 《조선인설립학교의 취급에 대하여》라는 지령을 각 도, 도, 부, 현지사들에게 하달하였다.
조선인의 독자적인 학교설치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재일조선인자녀들은 반드시 일본학교에 입학하여야 한다는 강도적인 요구가 담긴 《1.24지령》은 일제가 식민지통치시기 우리 인민에게 동화교육을 강요하였던 악명높은 《조선교육령》의 갱신판이였다.
재일동포들이 황당무계한 《지령》을 당장 철회하며 재일조선인들의 교육을 조선사람들의 독자성에 맡길것을 요구하여 결연히 투쟁에 떨쳐나서자 일본반동들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민족교육을 요람기에 말살하려는 일본반동들의 야만적인 폭거는 재일동포들의 치솟는 격분을 자아내였으며 재일조선인운동사에 4.24교육투쟁으로 기록된 대중적항거를 낳았다.
이에 질겁한 고베주둔 미점령군은 4월 24일 23시 30분 미8군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비상사태선언》을 공포하고 대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미일반동들은 효고와 오사까, 오까야마 등지에서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 효고현본부 위원장을 비롯한 3 076명의 애국적활동가들과 교원들, 동포들을 체포투옥하였으며 4월 25일에는 고베시에서 1 572명의 동포들을 체포련행하였다.미일반동들은 4월 26일 5 000여명에 달하는 방대한 경찰무력을 내몰아 오사까항의집회에 참가한 재일동포들에게 물총을 쏘아대고 총탄까지 란사하였다.
이 류혈적이며 야만적인 탄압으로 수많은 동포들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16살 난 김태일소년은 흉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바로 이것이 패망후 일본당국이 감행한 재일조선인민족교육에 대한 첫 국가적인 테로행위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과 함께 재일동포들의 민심이 더더욱 평양으로 쏠리게 되자 미일반동들은 1949년 9월 8일 《폭력단체》, 《점령정책위반》이라는 당치않은 구실을 붙여 조련을 강제해산시켰으며 10월에는 또다시 조선학교해산결정을 내리였다.
이에 따라 10월 19일부터 일본전역에서 조선학교들에 대한 강제해산이 강행되였으며 340여개에 달하는 재일조선학교가 페쇄몰수되거나 비법화되였다.
재일조선인민족교육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테로행위는 조선전쟁시기에 더욱 살벌하게 감행되였다.
우리 공화국의 존엄높은 해외공민단체인 총련결성이후 일본반동들은 불법무법의 《외국인학교법안》이라는것을 조작하여 총련민족교육을 공개, 합법적으로 말살해보려고 획책하였다.
《외국인학교법안》은 일본정부의 문부상이 재일조선학교의 관리운영권을 틀어쥐고 교육내용의 변경으로부터 교원임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권한을 장악함으로써 총련의 민족교육을 전면적으로 탄압말살하고 동포자녀들에게 동화교육을 강요하려는 파쑈악법이였다.
1948년 12월 10일에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제26조 2항에는 《교육은 인간의 개성을 충분히 발전시키며 인권과 기본자유를 더욱 존중하도록 하는데 이바지하여야 한다.교육은 모든 인민들과 인종들 그리고 종교집단사이의 호상 리해와 량해, 친선을 도모하며 평화유지를 위한 유엔활동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라고 규제되여있다.
그러나 1965년 12월 일본수상 사또는 참의원 특별위원회에서 《식민지에서 해방되여 독립하였다면 독립된 교육을 하여야 하되 그것은 그 나라에서 하여야 하며 여기는 일본이기때문에 일본에서 그것을 요구하여도 그렇게 할수 없다.》는 망발을 늘어놓았다.군국주의괴수의 이 후안무치한 궤변에는 일제의 조선강점과 야만통치가 빚어낸 죄악의 력사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재일조선인문제를 일반 외국인문제속에 용해시키려는 일본당국의 비렬한 정치적속심이 그대로 깔려있었다.
일본반동들이 총련민족교육을 겨냥한 최대악법을 립법화하기 위하여 얼마나 발광하였는가 하는것은 1966년부터 1972년까지 무려 7차례에 걸쳐 《외국인학교법안》성립을 기도하고 국회에 5번이나 상정시킨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하지만 우리 공화국의 강경한 립장과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격렬한 항의투쟁, 내외여론의 규탄에 부딪쳐 《외국인학교법안》은 상정될 때마다 페안되였으며 일본반동정부의 조선학교페쇄기도는 여지없이 파탄되였다.
반공화국, 반조선인감정이 골수까지 꽉 들어찬 일본반동당국은 지난 수십년간 조선학교들에 대한 각종 규제와 탄압을 일삼으면서 재일조선인민족교육말살책동에 집요하게 매여달렸다.
력사적사실은 일본당국의 민족교육탄압책동은 조선민족을 동화시켜 저들의 영원한 노예로 만들려는 정치적야망으로부터 출발한 국가적인 범죄행위였다는것을 명명백백히 립증해주고있다.
살인, 방화, 집단폭행의 주범
일본당국은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을 말살하기 위하여 민족배타주의가 뼈속까지 배여있는 극우익깡패들을 내세워 조선학교들과 재일동포자녀들을 대상으로 살인, 방화, 집단폭행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일본반동들이 손때묻혀 길러낸 우익깡패들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조선학교 학생들을 살해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1962년 7월 규슈조선중고급학교 차철이학생은 조선학교 교복을 입고 조선말을 한다는 리유로 일본불량배의 칼에 찔려 14살 꽃나이에 숨을 거두었다.같은 해 11월 3일에는 가나가와조선중고급학교 신영철(15살)학생이 일본 호세이대학부속 제2고등학교에서 진행되는 문화전시회를 참관하던 도중 이 학교 불량배들의 폭행으로 두개골이 깨여져 절명하였다.
1963년 5월 2일 저녁 도꾜도 시부야역 도요꼬백화점 지하거리에서 일본 고꾸시깡대학부속 고등학교 불량학생 25명은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 5명에게 생트집을 걸어 집단폭행을 가하다 못해 변광식학생의 오른쪽다리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5월 17일 일본 닥쇼꾸제1고등학교 불량배 3명과 그를 배후조종한 극우익분자에 의하여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이 백주에 칼에 찔리우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였다.
일본당국은 이런 극히 위험한 살인사건, 살인미수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살인범, 혐의자들을 적극 비호하였으며 《증거부족》이라느니, 《도망칠 위험이 없다.》느니 하는 미명하에 체포한 범인들을 감싸주거나 놓아주면서 파렴치하게 놀아대였다.
일본반동들은 극우익깡패들을 내몰아 조선학교들에 대한 방화도 공공연히 감행하였다.
1962년 3월 이바라기조선중고급학교가 화재로 불타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중대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찰당국은 증거가 불명확하다는 리유로 화재의 원인을 끝까지 밝히지 않은채 사건을 덮어버리였다.
1968년 1월 2일 밤 나까오사까조선초중급학교에 도적고양이마냥 기여든 악당들은 학교건물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2층교사를 몽땅 불태워버리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재일동포들의 피땀이 스민 조선학교들이 소각되는 엄중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하였지만 일본경찰당국은 화재사건수사를 고의적으로 태공하였다.
총련민족교육에 대한 일본당국의 로골적인 적대감은 재일조선학생들에 대한 집단폭행과 랍치, 협박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하였다.
1965년 2월 6일 고베시의 3명의 경찰들은 지나가는 고베조선중고급학교 고영일, 강하훈학생을 《외국인등록증》을 가지고다니지 않는다는 당치않은 구실밑에 경찰서로 끌고가 옷을 벗기고 때리고 차며 담배불로 지지는 등 갖은 악행을 가하였으며 이러한 인권침해행위에 대하여 학생들이 강력히 항의하자 《너희들 조선놈은 일본에서 큰소리를 치지 못한다.》고 모욕하였다.
꼭뒤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로 흐른다고 경찰들의 무지한 폭거는 일본의 불량배들에게 그대로 전파되여 재일동포학생들의 생명을 노린 위험한 집단폭행사건으로 이어졌다.
1964년 3월 19일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1학년 학생 김준덕에게 달려든 일본깡패들은 몽둥이, 기와장, 콩크리트쪼각 등으로 그를 사정없이 내리쳐 피투성이로 만들어놓고 도망쳐버리였다.김준덕학생이 간신히 일어나 근처에 있는 주재소에 신고하였으나 경찰들은 《범인을 찾는다.》고 하면서 부상을 당해 운신도 제대로 못하는 그를 1시간이상이나 끌고다니는 비인간적인 만행을 감행하였다.
1966년 2월 23일 일본불량배 30여명은 《상대가 조고생이면 누구라도 좋다.해치우라.》고 뇌까리면서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학생 4명에게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몽둥이와 맥주병 등으로 폭행을 가하였다.
일본우익깡패들이 조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감행한 폭력행위는 1962년부터 1972년까지의 사이에만도 무려 100여건이나 된다.
일본반동들은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은 연약한 재일조선녀학생들을 주되는 폭행대상으로 삼고 치졸한 악행을 일삼았다.
1983년 11월 24일 일본 가와사끼시에서는 가나가와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3학년 녀학생을 대상으로 한 폭행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날 한 일본깡패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학교에서 돌아오던 녀학생에게 《조선인은 일본에서 나가라.》 등의 폭언을 퍼부으면서 나무방망이로 그의 머리를 내리쳐 실신시키였다.이로부터 불과 10여일만인 12월 6일에는 요꼬하마에서 조선학교 녀학생이 숨어있던 깡패로부터 칼부림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사건이 발생한 즉시 현지경찰당국을 찾아가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하지만 경찰당국은 고의적으로 사건수사를 질질 끌면서 깡패들의 범죄행위를 눈감아주었을뿐 아니라 《일부 망나니들의 갈갬질》로 밀막아버리였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학교 녀학생들을 겨냥한 폭행사건은 1980년대초부터 1990년대말까지 해마다 수십, 수백건에 달하였으며 21세기에 들어와서도 광기어린 《치마저고리사냥》은 끊임없이 감행되였다.
가장 대표적인것이 조일평양선언채택후인 2003년 1월 29일 도꾜 한복판에서 감행된 조선치마저고리칼부림사건이다.
이 치떨리는 인권말살행위에 경악하여 국제학생동맹과 세계직업련맹 서기국을 비롯한 국제기구들과 단체들은 일본당국에 항의전문을 보내여 조선학교들과 학생들에 대한 야만적인 탄압을 중지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일본의 량심적인 인사들과 교육관계자들까지도 《사회적약자에 대해 폭력이 가해지는 현 사태는 지난날의 간또대지진이나 전후의 흉악한 차별사건을 방불케 한다.》고 하면서 일본사회의 뿌리깊은 민족차별감정을 개탄하였다.
2001년 3월 유엔인종차별청산위원회는 재일조선인들 특히 어린이들과 학생들에 대한 폭행과 이에 대한 일본당국의 불충분한 대응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일본정부가 그런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것을 권고하였다.
국제사회와 일본인민들의 항의규탄에도 불구하고 재일조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본반동들의 갖은 협박과 폭언, 폭행은 끊기지 않았다.
2022년 10월에만도 일본반동들은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인 군사적대응조치들을 구실로 일본사회에 반공화국, 반총련여론을 대대적으로 류포시키면서 살벌한 조선인배타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일본반동들의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책동으로 말미암아 2022년 10월 4일 집으로 돌아가던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중급부 2학년 남학생이 우익깡패로부터 폭행, 폭언을 당한것을 비롯하여 2개월사이에만도 조선학교들과 학생들에 대한 협박과 폭언, 폭행사건이 12건이나 련속적으로 발생하였다.
우에서 언급된 조선학교들과 재일조선학생들을 대상으로 감행된 살인, 방화, 집단폭행자료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인륜이 말라버린 일본땅에서는 지금 이 시각도 조선학교들과 재일조선학생들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형형색색의 방법으로 끊임없이 감행되고있다.
조선학교들과 학생들에 대한 살인, 방화, 집단폭행사건들은 재일조선인민족교육을 반대하는 일본반동들의 극심한 민족배타주의와 차별정책의 로골적인 표현으로서 일본반동당국의 조종하에 력사적으로, 체계적으로 감행되여온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들이다.
수치도 모르는 《법치국가》의 진면모
민족교육의 합법적지위를 고수하기 위한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줄기찬 투쟁에 의하여 1970년대전반기까지 조선학교들이 일본 학교교육법에 따르는 《각종 학교》로 인정되였으나 일본당국은 교육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제도적장치들을 내올 때마다 조선학교들을 고의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저들의 졸렬한 모습을 세계앞에 그대로 드러내보였다.
일본당국이 지방자치체 관리들을 내세워 교육기본법에 따라 조선학교들에 할당하게 되여있는 교육보조금을 각종 리유와 구실을 붙여 삭감하거나 완전정지한것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2010년 3월 12일 오사까조선고급학교에 나타난 당시 오사까부지사 하시모또는 조선학교의 교육내용, 총련과의 관계를 걸고들면서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요구조건》과 교육보조금을 맞바꾸려고 어리석게 놀아댔다.학교측이 이를 강력히 거부하자 하시모또는 2011년 4월에 25년이상이나 지급되여온 교육보조금을 일방적으로 정지해버리였다.
그후 도꾜도지사 이시하라, 가나가와현지사 구로이와, 지바현지사 모리따, 사이다마현지사 우에다를 비롯한 극우익적인 지방자치체 우두머리들이 련달아 조선학교의 교과서내용과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인 국방력강화조치를 구실로 교육보조금을 정지, 삭감하였다.
2016년 3월 일본문부과학성은 아베의 지시에 따라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지급과 관련한 류의점에 대하여》라는 통지를 도, 도, 부, 현지사들에게 보내여 조선학교들에 대한 교육보조금의 삭감과 정지를 공개적으로 강요하였다.
일본당국은 총칼이 못한것을 돈이 해결한다는 저들의 《지론》을 《고등학교무상화》,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제도실행을 통하여 립증해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2009년 9월 일본자민당패거리들은 《국민의 리해》와 《교육내용검토》를 전면에 내걸고 《조선학교는 순수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공화국의 체제를 뒤받침하기 위한 이데올로기학교 및 대일공작기관일 의혹이 있다.》고 헐뜯으면서 조선학교를 《고등학교무상화》제도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것을 결사반대하였다.이에 편승하여 오사까부지사 하시모또를 비롯한 지방자치체들에 틀고앉은 극우보수분자들도 만일 정부가 조선학교를 지원대상으로 결정하는 경우라도 《별도로 판단하겠다.》, 《공금을 지출하지 않겠다.》고 고아댔다.
2012년에 일본문부과학상 시모무라는 아베의 지시에 따라 2013년 고등학교지원대상과 관련한 법률시행규칙에서 조선고급학교에 고등학교지원제도를 적용하는 근거로 되는 조항을 아예 삭제하도록 내리먹이였다.
이와 함께 지방재판소들을 사촉하여 《고등학교무상화》제도적용을 요구하는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정당한 요구와 주장을 아무런 법적론거도 없이 기각해버리는 불법무법의 횡포를 감행하였다.
유엔인종차별청산위원회(당시), 유엔아동권리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이 5차례에 걸쳐 조선고급학교들을 《고등학교무상화》제도에 포함시키며 일본자치체들의 보조금지급을 재개 및 유지할것을 권고하였지만 그때마다 일본당국은 그 무슨 《랍치문제》 등을 걸고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일본당국은 《각종 학교》라는 리유로 조선유치반들을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제도에서도 배제하였다.
이것은 명백히 일본반동들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산물로서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유린말살하기 위한 너절하고 유치한 책동이다.
조선학교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본당국의 차별행위는 세계적인 보건위기상황속에서 더욱 저속하고 유치하게 감행되였다.
일본 사이다마시당국은 2020년 3월 시안의 보육원, 유치원 등에 마스크를 공급하면서 조선학교에 배포한 마스크가 《전매될수도 있다.》고 떠벌이며 사이다마조선초중급학교 유치반만을 제외시키는 차별행위도 서슴없이 자행하였다.일본당국은 2020년 5월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확대와 관련하여 《학생지원긴급지급금》조치를 실시할 때에도 유독 총련 조선대학교만을 제외시켰다.
현재 재일동포들은 일본국민들과 꼭같은 세금납부의무를 걸머지고 성실히 리행하고있으므로 일본당국이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에 해당한 몫의 교육비를 지불하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그러나 일본당국은 재일조선인민족교육에는 동전 한푼도 내지 않겠다는 고약한 심보로부터 총련민족교육에 대한 《국고부담》을 한사코 외면하고있다.
외국인들에게 자국민들과 꼭같이 동등한 교육권리를 보장하는것은 국제인권협약의 주요내용이다.유엔아동권리선언에도 《어린이는 누구나 할것없이 기초교육단계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이것은 모든 나라, 모든 국가의 의무로 된다.》라고 명기되여있다.
일본당국도 2019년 5월에 개정된 유아교육, 보육지원법에서 《모든 어린이들에게 최선의 리익, 재정적지원이 보장되여야 한다.》고 요란하게 광고하였다.하지만 일본당국은 국제법을 란폭하게 위반하고 신성시되여야 할 아동권리에 관한 협약을 민족배타주의로 얼룩진 저들의 법률에 맞추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것도 모자라 《아이키우기지원법》을 모든 아동들에게 공평하게 적용하겠다고 하던 공약마저 헌신짝처럼 줴버리고 순진한 재일조선어린이들의 동심에 무참히 칼질을 하였다.
이것이 바로 소위 《법치국가》로 자처하는 일본의 진면모이다.
이에 대해 이전 일본문부과학성 차관까지도 최근 《일본에서는 차별을 일으키는 언동을 국가가 솔선 하고있다.》, 《권력자가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적감정을 가지고있다.제도로부터 배제한다는 결론이 먼저 있고 후에 배제하기 위한 리유를 붙이고있다.》라고 하면서 만인에게 공정해야 할 법을 차별의 무기로 휘두르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재일동포들의 교육권은 그 누구도 부정할수 없고 빼앗을수도 없는 신성한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흥정물이 될수 없다.
일본속담에 뱀은 자기 독에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일본에 있어서 총련민족교육에 대한 탄압책동은 안으로 문을 닫아걸고 불을 지르는것과 같은 어리석은 자멸행위이다.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익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의 강력한 보호속에 있다.
만일 일본당국이 고삭은 군국주의《몽둥이》로 끝끝내 총련의 민족교육을 말살하려 한다면 천벌을 면치 못할것이며 영원히 미래가 없는 차거운 얼음덩이로 력사에 매장되게 될것이다.
주체112(2023)년 4월 24일
평양
일본반동들의 민족교육말살책동은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다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4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
재일동포들이 조선학교를 요람기에 없애버리려는 일본반동들의 파쑈적탄압책동에 견결히 맞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권리를 피로써 지켜낸 4.24교육투쟁이 있은 때로부터 7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해방후 재일동포들에게 일제식민지시대의 《동화교육》을 끈질기게 강요하던 일본반동들은 미제의 사촉밑에 1948년 1월 24일 조선학교의 설립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미 인가된 학교들에서도 일본어와 일본어교재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는 문부성(당시)의 《지령》을 각지에 시달하였다.
이어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에 《학령에 달한 아이들은 지사의 인가를 받은 학교에 입학시켜야 하며 교과서 및 교과내용은 일본의 학교교육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통고하였다.
이에 따라 각 지방당국이 2월 15일부터 일제히 조선학교들에 문부성의 요구대로 하지 않을 경우 학교들을 페쇄할것이라고 위협하였다.
분노한 재일동포들은 조선인교육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대중투쟁을 전개하였다.
동포들의 투쟁은 4월 24일에 최절정을 이루어 마침내 일본반동들의 광란적인 파쑈적폭압을 분쇄하고 신성한 민족교육의 권리를 지켜냈다.
해외동포들이 거주국에서 진행하는 민족교육은 민족적평등의 리념에 전적으로 맞을뿐 아니라 교포사회의 존립과 장래와도 관련되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4.24교육투쟁이 있은후 일본반동들은 미국의 사촉하에 1949년 10월 조선학교해산결정을 내리고 340여개에 달하는 재일조선학교를 페쇄몰수하거나 비법화한것을 비롯하여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을 말살하기 위해 미쳐날뛰였으며 그러한 책동은 년대와 세기를 이어가며 계속되고있다.
2010년 4월 조선학교에서 진행하는 교육이 일본의 고등학교교육내용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걸고들며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시킨 일본반동들은 2013년에는 고등학교지원대상과 관련한 법률시행규칙에서 조선학교에 고등학교지원제도를 적용하는 근거로 되는 조항을 아예 삭제하도록 하였다.
이어 지방자치체들에서도 조선학교들에 대한 보조금지급을 중지시키도록 하였다.
이밖에도 조선학교 유치반 어린이들을 《유아교육,보육무상화》제도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인류의 생존에 커다란 위협으로 되고있는 《COVID-19》를 막기 위한 방역조치에서까지 재일조선학생들과 유치반 어린이들을 배제시키는 망동을 부리였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공화국의 정정당당한 자위적조치들을 걸고들며 조선학교의 교직원들과 학생들에 대한 폭언과 폭행,협박을 일삼는 등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인 총련의 민족교육을 송두리채 말살해버리기 위해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다.
총련의 민족교육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끊임없는 말살책동은 일본의 뿌리깊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연장으로서 력사적사실로 보나 국제법적으로 보나 절대로 용납할수 없는 철저한 반인륜적범죄행위이다.
재일동포들은 일제식민지통치의 직접적피해자들이고 그 후손들로서 일본당국은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민족교육발전을 장려하며 조선학교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법적,인도주의적책임을 지니고있다.
특히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권리는 세계인권선언과 경제,사회 및 문화적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등 일본이 수락한 국제법들과 국내법규에도 전적으로 부합되는 권리이다.
일본반동들이 총련의 민족교육에 대한 탄압책동에 끈질기게 매여달리는것은 총련과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을 잘라버리고 나아가서 교포사회의 민족성을 거세해버리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재일동포들의 민족적권리에 대한 침해는 곧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침해로 된다.
일본반동들은 총련과 재일동포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의 강력한 보호속에 있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일본반동들의 민족교육말살책동은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다.(전문 보기)
일본당국은 총련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에 대한 탄압말살책동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조선민주법률가협회 대변인 담화-
력사에 재일동포들의 첫 대중적인 교육권옹호투쟁으로 기록된 4.24교육투쟁이 있은 때로부터 75년의 세월이 흘렀다.
75년이라는 장구한 기간 세기가 바뀌고 세대는 여러번 교체되였으나 오늘도 우리 인민은 일본반동들이 1948년 재일조선인민족교육을 요람기에 말살할 목적밑에 감행한 반인륜적이고 불법무도한 폭압만행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을 겨냥한 일본반동들의 파쑈적탄압망동은 첫시작부터 마감까지 국제법과 인륜에 배치되는 불법무법의 횡포였고 란폭한 도전이였다.
4.24교육투쟁의 발화점으로 된 조선학교들에 대한 《페쇄령》만 놓고보아도 그것은 미점령군의 한갖 위급장교의 훈시에 따라 일본반동당국이 《공산주의교육을 방지》한다는 미명하에 고안해낸 비법적인 민족교육말살지령이였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이역땅에서 온갖 민족적멸시와 차별속에 살아온 재일동포자녀들이 해방후 조선학교에서 자기 민족의 말과 글을 배우는것이 어떻게 폭압의 대상으로 될수 있으며 《학문의 자유와 교육행정에서의 자주성확립》을 제창한 일본학교교육법의 어느 조항을 위반한 행위로 되는가 하는것이다.
세월은 멀리 흘러 4.24교육투쟁은 지나간 과거사로 되였지만 우리 공화국과 총련에 대한 병적거부감과 체질적인 적대감이 골수에 찬 일본당국은 더욱더 교활하고 유치한 방법으로 재일조선인민족교육말살책동에 집요하게 매여달리고있다.
일본당국의 묵인비호밑에 조선학교와 재일동포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반인륜적범죄행위들이 끊기지 않고있으며 과거의 조선학교들에 대한 《페쇄령》과 같은 민족배타주의적인 《선고장》들이 지금도 총련의 각급학교들에 쉬임없이 날아들고있다.
일본당국은 재일동포들이 자국민들과 꼭같은 세금납부의무를 리행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무상화》,《유아교육,보육무상화》제도에서 재일조선학교학생들과 어린이들을 제외시키고 지방자치체들로 하여금 조선학교들에 대한 보조금을 정지,삭감하도록 내려먹이다 못해 나중에는 동포들의 피땀이 스민 조선학교 기부금에도 당치않은 세금을 부과하고있다.
참으로 후안무치하고 비렬한 행위의 극치가 아닐수 없다.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교육권은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의 교육차별반대협약을 비롯한 국제법들과 일본의 교육기본법에도 명백히 규제되여있는 합법적이며 신성불가침의 권리이다.
일본당국이 국제무대에서 유치한 말장난으로 민족교육말살책동을 정당화해보려고 제아무리 간특하게 놀아대도 재일조선학교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감행한 과거와 현재의 반인륜죄악은 결코 부정할수도 감출수도 없다.
법은 일본에만 있는것이 아니다.
재일동포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의 강력한 보호속에 있다.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익에 대한 침해는 곧 존엄높은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과 국권에 대한 침해이다.
우리 공화국은 이미 미국의 동맹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국가의 신성한 존엄과 자주권을 찬탈하려는데 발을 잠그기 시작한 나라들에 경종을 울리였다.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규탄배격에도 불구하고 일본당국이 국제법과 인권을 우롱하면서 재일조선인민족교육말살을 노린 반인륜적범죄행위에 한사코 매여달린다면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다.
일본당국은 이제라도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총련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에 대한 탄압말살책동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주체112(2023)년 4월 24일
평 양
일본당국은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에 대한 배타주의적차별책동을 당장 중지하여야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육위원회 대변인 담화-
지금으로부터 75년전인 1948년에 일본 각지에서 치렬하게 벌어진 4.24교육투쟁은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미일반동들의 야만적인 폭압에 단결된 힘으로 맞서 싸운 첫 권리옹호투쟁이였다.
해방직후 재일동포들은 민족재생의 은인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개선연설을 받아안고 일제에게 빼앗겼던 우리 말과 글,력사와 문화를 되찾고 자녀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려는 일념으로 힘있는 사람은 힘을,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여 일본의 방방곡곡 동포들이 사는 곳마다 500여개의 조선학교들을 설립하였다.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실시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긴 일본반동당국은 미제의 사촉밑에 1948년 조선학교들에 대한 《페쇄령》을 공포하였다.
이에 격분한 재일동포들은 조선학교를 지키기 위해 조선인교육대책위원회를 뭇고 대중적인 투쟁에 떨쳐나섰다.
당황한 미일반동들은 1948년 4월 조선학교들이 집중되여있는 효고현과 오사까부를 비롯한 일본각지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재일동포들의 투쟁을 류혈적으로 탄압하였으나 조국인민들의 뜨거운 지원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성원을 받으면서 재일동포들은 계속 굴함없이 싸워 끝끝내 자기들의 신성한 민족교육의 권리를 지켜내였다.
민족교육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재일동포들의 정의로운 투쟁에 대한 미일반동들의 탄압만행은 국제법을 란폭하게 위반한 용납 못할 범죄행위였다.
일본당국은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사죄할 대신 패망후 재일동포들의 신성한 민족교육권리를 탄압말살하려고 날뛴 죄악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4.24교육투쟁이 있은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적대시하는 일본당국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전 시기보다 더 교활하고 악랄하게 감행되고있다.
조선학교들에 대한 방화사건들과 재일조선학생들에 대한 집단폭행사건들,녀학생들의 치마저고리를 찢어놓는것과 같은 야만적인 폭행사건들은 결코 몇몇 우익깡패들에 의하여 우발적으로 일어난것이 아니라 일본당국의 직접적인 사촉밑에 계획적으로,조직적으로 감행된 범죄행위들이였다.
일본당국이 외국인학교들가운데서 유독 조선학교들과 유치반들만을 《고등학교무상화》와 《유아교육,보육무상화》제도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키고 특히 최근에 대류행전염병위기와 관련한 방역조치에서도 총련학생들과 유치반어린이들만을 배제하는 민족차별행위를 실시하고있는것은 재일조선인민족교육을 어떻게 하나 파탄시키려는 뿌리깊은 흉심의 발로이다.
일본당국이 재일조선인민족교육을 말살해보려고 제아무리 발광하여도 사회주의조국의 각별한 사랑과 조국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성원속에 덕과 정이 차넘치는 민족교육의 대화원을 가꾸어나가는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정의의 투쟁은 절대로 가로막을수도 멈춰세울수도 없다.
오늘 우리 공화국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시여 자주,자존으로 존엄높은 강국으로 위용떨치고있으며 재일동포들은 사회주의조국과 한피줄을 이은 영원한 한식솔들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육위원회는 미국과 일본당국이 재일동포들의 정의로운 4.24교육투쟁을 야수적으로 탄압한데 대하여 반성하고 사죄하며 일본당국이 총련민족교육을 차별박해하는 온갖 치졸한 행위들을 당장 중지할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아울러 우리는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귀중히 여기는 일본의 각계층 인민들과 국제사회가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교육사업에 대한 지지와 련대성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한다.
주체112(2023)년 4월 24일
평 양
민족교육말살책동은 절대로 용납될수 없다
오늘은 재일조선동포들이 조선인학교를 요람기에 없애버리려는 일본반동들의 파쑈적탄압에 견결히 맞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권리를 피로써 지켜낸 4. 24교육투쟁 75돐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으며 우리 겨레는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권리를 침해, 말살하려는 일본반동들의 죄악의 발자취를 커다란 분노를 안고 돌이켜보고있다.
해방후 재일동포들은 이국땅의 어려운 형편에서도 학교를 짓고 교과서를 만들어 우리 말과 글로 자녀들을 교육하는 민족교육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그 누구도 침해할수 없는 그들의 응당한 민족적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의 사촉밑에 일본반동들은 1948년 1월에 조선학교들에 대한 《페쇄령》을 공포하였다.
일본반동들의 일방적인 《조선학교페쇄에 대한 통첩》에 격분한 재일동포들은 《조선인교육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미점령군과 일본정부에 재일조선인자녀교육의 자주권을 보장할데 대한 요구조건을 들이대고 투쟁하였다.
재일동포들의 투쟁이 4월에 들어와 더욱 고조되자 미제는 4월 24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미군과 일본경관들을 동원하여 도꾜를 비롯한 일본각지에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옹호하여 나선 재일동포들을 체포구금하고 수백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지어 나어린 조선학생을 총으로 쏘아죽이는 살인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그러나 재일동포들은 자기들의 신성한 민족교육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투쟁에 떨쳐나섰다. 여기에는 연 110여만명의 재일동포들이 참가하였다.
이에 질겁한 일본반동들은 《조선인학교페쇄령》을 철회하고 그해 5월에는 《조선인의 독자적인 교육을 실시》할것을 명기한 각서에 서명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로부터 7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일본반동들은 년대와 세기를 이어 재일조선학교들과 교원들, 총련일군들과 기관들, 조선학생들과 학부형들을 상대로 협박과 폭력, 살인, 방화 등의 폭력적탄압과 함께 조선학교들에 대한 《규제관리》를 목적으로 한 《외국인학교법안》조작시도를 비롯한 정책적탄압을 끈질기게 감행하여왔다.
지금도 일본반동들의 재일조선인민족교육말살책동은 더욱 교활하고 치졸하게 지속되고있다.
일본반동들이 《고등학교무상화》와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적용에서 유독 조선학교, 조선유치반만을 제외시키고있는것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재일조선인학교는 일본학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있다.
지난세기 일제의 강제징용, 징병으로 끌려갔던 조선사람들의 후손들인 재일조선학생들이 공부하는 조선학교는 일본정부의 승인밑에 운영하는 합법적인 민족교육기관이다.
조선사람들에 대한 일본의 강제련행범죄가 없었다면 구태여 재일조선인교육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을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일제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도의적책임으로 보나, 교육학적견지에서 보나, 인권보장의 견지에서 보나 일본당국은 응당 재일조선학생들의 민족교육권리를 법적으로, 도의적으로 존중하고 차별없이 보장해주어야 하는것이다.
일본에서 수십개의 외국인학교들이 자기 식의 력사를 배워주고있지만 유독 조선학교의 력사교육만을 문제시하고있는 사실, 재일동포들이 일본국민들과 꼭같이 조세납부의무를 지고있지만 고의적으로 교육지원제도에서 조선학교들을 제외시키는 사실 등은 명백히 조선민족에 대한 차별이 아닐수 없다.
하기에 유엔인종차별청산위원회는 재일조선학교를 고등학교지원대상에서 제외시킨 일본당국의 행위가 국제법에 대한 란폭한 위법이라는것을 인정하였으며 《외국인학교, 민족학교의 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유지의 회》를 비롯하여 일본의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각계층까지도 당국이 조선학교를 차별적으로 대하는것은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비난하고있다.
이 모든것은 4. 24교육투쟁이 진행된지도 75년이 되였지만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강요하는 일본반동들의 죄악의 력사는 계속되고있음을 보여주고있다.
지금 총련을 비롯한 재일조선동포들이 일본반동들의 민족교육말살책동을 반대하여 교육권옹호투쟁을 힘있게 벌리며 민주주의적민족권익을 지켜내기 위한 활동을 힘있게 전개하는것은 너무도 응당하다.
일본반동들의 반인권적이고 비인도주의적이며 불법적인 민족교육말살책동은 절대로 용납될수 없다.(전문 보기)
총련부흥의 휘황한 설계도따라 전진해온 긍지높은 한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에서는 애국애족으로 불타는 광범한 동포군중의 무궁한 힘을 유일무이한 원동력으로 하여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승리적으로 열어나가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0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탄생 80돐을 경축한 뜻깊은 올해에 해외교포운동의 믿음직한 선구자, 애국위업의 견결한 수호자들인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총련 제25차 전체대회를 성과적으로 진행하고 그 기세로 애국의 진군을 더욱 힘차게 다그쳐 자기의 년대기에 또 한페지 자랑찬 기록을 새기였다.
지나온 날과 달들을 긍지높이 돌이켜보고 달려갈 앞길을 신심드높이 내다보는 지금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가슴가슴은 애국의 열정으로 세차게 달아오르고있다.
애국의 대강을 받아안고
비범한 예지와 천재적인 지략, 강철의 신념과 무비의 배짱을 지니시고 주체조선의 국력과 지위를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우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천출위인상을 우러르며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위대한 강국의 위업을 실현해나가는 조국인민들과 심장의 박동을 함께 하면서 온 한해 애국충정의 주로를 줄기차게 이어왔다.
올해 2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6차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이 채택된 소식은 동포들을 격동시키였다.나라의 전반적국력이 최상의 높이에 올라서고있는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에 상응하게 해외교포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키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웅지에 떠받들려 채택된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은 재일동포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조국과 한피줄을 이은 영원한 한식솔임을 다시금 절감하게 해주었다.
주체적해외교포운동사에 특기할 력사적사변인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의 채택, 그것은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단순히 새로운 법의 탄생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조국에서 오는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였다.이역의 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와 존엄을 끝까지 책임적으로 지켜주려는 어머니조국의 후더운 숨결이였다.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안겨주신 또 하나의 특전이며 최상의 영광이라고 하면서 조국의 하늘을 향하여 큰절을 올린 총련중앙상임위원회의 일군들, 재일조선인운동의 휘황한 래일이 눈앞에 보인다고 하면서 총련조직을 찾아와 흥그러운 마음을 나눈 동포들…
위대한 수령, 위대한 조국이 지켜주는 우리 재일동포들처럼 존엄높은 해외공민은 세상에 없다,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이 채택됨으로써 우리는 공화국의 법적보호밑에 성스러운 투쟁을 더욱 과감히 전개해나갈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게 되였다, 이것이 동포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어머니조국의 은덕에 기어이 보답할 일념 안고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총련 제25차 전체대회를 향한 전조직적인 투쟁에 떨쳐나섰다.
뜻깊은 태양절과 광명성절을 맞으며 진행된 재일본조선인중앙대회, 총련중앙사진전시회, 총련중앙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들에서 이역의 아들딸들은 총련의 결성과 강화발전에 쌓아올리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업적을 더욱 깊이 체득하였으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사상과 뜻을 받들어 총련애국위업에 한몸 다 바쳐갈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애국의 열기가 끓어번지는 속에 총련 제25차 전체대회가 열리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대회참가자들에게 강령적서한《각계각층 동포군중의 무궁한 힘으로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를 보내주시여 총련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동포사회는 감격의 도가니로 세차게 끓어번지였다.
사회주의조국과 운명의 피줄을 잇고 이역의 모든 곤난을 강인하게 인내하며 그 어떤 명예와 보수도 바람이 없이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기 위한 성스러운 길에 깨끗한 량심과 의리를 보석처럼 수놓아가고있는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낸다고 하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말씀에 이역의 아들딸들은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보내주신 강령적서한은 재일조선인운동을 끊임없는 앙양에로 떠밀어주는 강력한 추동력, 애국애족의 자양분으로 되였다.
비상히 앙양된 정치적분위기속에서 진행된 총련 제25차 전체대회에서는 사상의 위력으로 애국애족운동을 힘있게 전진시켜나갈데 대한 문제, 각급 조직의 기능과 역할을 한층 제고하고 동포들이 사는 모든 곳에 기층조직을 빠짐없이 꾸릴데 대한 문제, 새세대 동포청년들을 총련의 대를 이어나갈 믿음직한 계승자, 교대자들로 키우는데 큰 힘을 넣을데 대한 문제, 동포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그들의 생활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봉사활동을 전조직적으로 힘있게 벌릴데 대한 문제, 민족교육을 강화발전시키고 재일동포들속에서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한 사업에 모든 힘을 기울일데 대한 문제, 조국의 통일과 사회주의강국건설에 특색있게 기여하며 대외사업을 활발히 벌릴데 대한 문제 등이 토의되였다.
전체대회이후 각 지방본부대회들과 중앙단체들의 대회, 총회들이 련이어 진행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총련 제25차 전체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내주신 강령적서한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총련중앙단체, 사업체 궐기모임에서는 조직의 위력을 백배로 발휘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의 전면적발전기,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승리적으로 열어나갈 동포들의 억센 의지가 피력되였다.
전총련적으로 강령적서한관철을 위한 전형창조운동이 힘있게 벌어졌다.
총련 도꾜도본부에서는 분회를 비롯한 기층조직들을 애국애족의 성돌로 더욱 굳건히 다져나갔으며 오사까부본부에서는 핵심대렬을 늘이는것을 조직강화, 군중적지반확대를 위한 중요과업으로 틀어쥐고나갔다.
자기 단위를 각계층 동포들속에 든든히 발을 붙인 조직으로 만든 총련 효고현 고베지부 일군들의 사업경험은 동포사회의 주목을 끌었다.총련 지바현 세이부지부를 비롯한 많은 조직들에서는 무진막강한 주체조국의 위력을 소개하는 강연회를 정상적으로 진행하여 동포들의 가슴마다에 필승의 신심이 차넘치도록 하였다.
거세차게 타오른 대중운동의 불길속에서 총련 후꾸이현 쥬오지부를 비롯한 많은 기층조직들이 면모를 일신하고 더욱 생기발랄한 조직으로 강화되였다.
휘황한 설계도따라 달려온 성스러운 애국의 길에서 총련은 참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충성의 대를 굳건히 이어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 있는한 자기들의 운명과 미래는 끝없이 밝고 창창하다는 재일동포들의 굳은 신념의 메아리, 한없이 열렬한 조국찬가가 올해에도 높이 울려퍼지였다.
지난 9월 공화국창건 74돐에 즈음하여 총련에서는 다채로운 경축행사들이 진행되였다.행사들은 동포사회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록화강연편집물 《덕과 정의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조국》을 시청한 동포들의 감동이 컸다.
편집물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헤쳐오신 혁명의 길은 인민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과 뜨거운 정으로 일관된 성스러운 길이였다는것과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한평생 지니시고 구현해오신 숭고한 뜻을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빛나게 이어가고계신다는것을 감명깊게 보여주었다.
우리 조국의 력사가 수령과 인민이 혈연의 정으로 굳게 뭉쳐 만난을 헤쳐온 력사라는것을 보여준 편집물은 이역의 동포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리였다.
편집물을 시청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조국인민들의 고상한 정신세계를 본받아 단결의 위력, 덕과 정의 힘으로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기어이 펼쳐나갈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권위있는 해외교포예술단체로 이름떨치고있는 총련 금강산가극단 예술인들은 애국투쟁에 떨쳐나선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을 예술의 힘으로 적극 고무할것을 결심하고 순회공연활동을 전개하였다.가극단은 언제나 조국을 그리워하며 온갖 난관을 뚫고나가는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의 투쟁기상을 담아 순회공연의 주제를 《저 하늘에》로 정하고 그 첫막을 기후현에서 올렸다.순회공연은 동포사회를 열렬한 조국애, 민족애로 끓어번지게 하였다.
올해 총련은 동포청년들을 애국애족의 대를 이어나갈 믿음직한 계승자, 교대자들로, 조선사람의 근본을 잊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나가는 억센 인간으로 키워주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리였다.결과 새세대들속에서 아름다운 소행들이 수많이 발휘되였다.
애국의 전통을 훌륭히 계승해나가는 모범학교로 동포사회에 소문나있는 총련 히로시마조선초중고급학교의 졸업생들은 오까야마, 시마네, 돗도리, 에히메, 가가와, 고찌 등 여러 지역을 돌면서 민족교육지원을 위한 선전활동을 적극 전개하였다.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 미에현본부산하 조청원들은 대류행전염병으로 인한 세계적인 보건위기속에서 동포들의 생명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업에 큰 힘을 넣으면서 총련 욕가이찌조선초중급학교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도 적극 전개하였다.
지난 11월하순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청상회)의 주최하에 《우리 민족연단 2022》가 성대히 진행되였다.각지에서 모여온 수천명의 동포들로 행사장은 흥성거리였다.
동포사회와 민족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한 도꾜도 청상회, 도꾜도 아다찌지역 청상회, 이바라기현 청상회, 교또부 후시미지역 청상회, 효고현 청상회 일군들의 경험토론은 참가자들속에서 깊은 감명을 자아냈다.
전체 참가자들은 《유족한 동포사회를 위하여》, 《꽃봉오리들의 미래를 위하여》를 청상회운동의 영원한 주제로 틀어쥐고 민족교육지원사업을 주도해나갈 의지를 표명하였다.
《조선청년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는 청상회원들의 얼굴마다에는 애국의 열정을 더욱 높이 발휘하여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앞장에서 열어나갈 억센 기개가 어려있었다.
민족교육사업에서도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였다.
민족교육을 지키고 살리는 길이자 곧 민족의 넋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길이라는것을 깊이 명심하고 총련 나고야조선초급학교 새 교사를 일떠세운 나고야지역 동포들, 집을 떠나 외지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더 좋은 교육 및 생활환경을 마련해주자고 하면서 아이찌조선중고급학교 기숙사를 훌륭히 개건한 아이찌지역 동포들을 비롯하여 각지 동포들이 발휘한 아름다운 소행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민족의 대, 애국의 대는 꿋꿋이 이어지고있음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광풍은 세차도 신념은 끄떡없다
올해 우리 공화국에서는 세상을 놀래우는 사변들이 련이어 일어났다.비상히 강화된 우리 공화국의 종합적국력과 전략적지위앞에 기절초풍하여 아우성을 치는 적대세력의 가련한 몰골을 보면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가슴속에는 승리의 신심이 넘쳐났다.
파렴치한 일본반동들은 우리의 자위적조치들을 감히 걸고들면서 렬도전역을 조선인배척의 란무장으로 만들었다.당국의 묵인비호밑에 우익깡패들은 총련과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갖은 협박과 폭행, 폭언들을 일삼았다.
이것은 민족차별과 조선인탄압 등 반공화국, 반총련적대시정책을 일삼아온 일본당국에 의해 빚어진 계획적이며 조직적인 국가범죄였다.
일본반동들은 끊임없는 박해와 살벌한 탄압소동으로 총련조직과 동포사회를 와해분렬시키려고 꾀하였지만 주체조선의 해외공민된 긍지와 영예를 안고 꿋꿋이 살며 싸워나가는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를 꺾을수 없었다.(전문 보기)
주체조선의 태양이시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드립니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탄생 110돐을 민족사적대경사로 경축하고 조국인민들이 뜻깊은 올해를 혁명발전의 일대 분수령으로 빛내이기 위한 총진군에 용약 떨쳐나서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재일동포자녀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위하여 보내주신 일본돈 2억 5 118만¥에 달하는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커다란 감격과 기쁨속에 받아안았습니다.
전후복구건설을 위하여 한푼의 돈이 귀중했던 1957년에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은 력사의 그날로부터 조국이 시련을 겪던 나날에도 끊임없이 이어진 사랑의 생명수는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에 의하여 변함없이 이어지고있습니다.
절세위인들께서 재일동포자녀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사업을 위하여 보내주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총액은 168차에 걸쳐 일본돈으로 491억 3 057만 390¥에 달합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귀중한 돈은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선 주체위업과 더불어 재일조선인운동의 전면적발전을 위한 력사적진군을 과감히 벌리고있는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에게 천백배의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우리의 성스러운 애족애국운동을 크게 고무해주고있습니다.
더우기 사회주의강국건설과 국가의 존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돌려야 할 그토록 귀중한 외화를 재일동포자녀들에게 또다시 보내주시였으니 우리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후대사랑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금할수 없습니다.
총련중앙상임위원회는 조국과 인민의 미래를 믿음직하게 지키시고 사상의 위력으로 혁명의 줄기찬 전진을 강력히 추동하시는 그토록 분망하신 속에서도 재일동포자녀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하해같은 은총을 거듭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최대의 영광과 가장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우리들의 가슴은 총련과 재일조선인운동에 쌓아올리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길이 빛내이고 옹호고수해나가며 우리의 운명이시고 미래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결사옹위해나갈 불같은 결의로 충만되여있습니다.
우리들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보내주신 새해축전에 담겨진 숭고한 의도를 높이 받들고 총련 제25차 전체대회를 일심단결의 대회, 계승과 혁신의 대회로 빛나게 장식하겠습니다.
우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만 계시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억척불변의 신념과 의지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총련조직안에 주체의 사상체계와 령도체계를 철저히 세워 애족애국운동의 추동력인 총련의 정치사상적위력을 부단히 높여나가겠습니다.
우리들은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서 재일동포자녀들에게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 때로부터 65돐이 되는 올해에 민족교육사업을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 조직건설과 애국활동의 출발점으로 더욱 확고히 틀어쥐고 학생대렬을 증대시키기 위한 사업을 전 기관적, 전 동포적인 사업으로 힘있게 조직전개해나가며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민족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해나감으로써 자라나는 새세대들을 주체의 수령관, 인생관이 확고히 선 참다운 애국자, 유능한 민족인재들로 훌륭히 키워나가겠습니다.
우리들은 위대한 대원수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권위를 백방으로 옹위해나가며 조국통일의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고 사회주의강국건설을 이룩하는데 특색있게 이바지해나가겠습니다.
주체위업과 총련애족애국위업을 현명하게 이끄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안녕은 우리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크나큰 행복입니다.
총련중앙상임위원회는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한결같은 충성의 마음을 담아 주체조선의 태양이시고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은혜로운 스승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부디 옥체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주체111(2022)년 4월 14일 일본 도꾜
총련민족교육의 력사에 어려있는 어버이사랑
우리 조국의 력사는 아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내세우시고 보살펴주신 절세위인들의 열화같은 후대사랑의 서사시로 수놓아져왔다.
엄혹한 도전과 난관을 끊임없이 뚫고나가야 하는 어려운 속에서도 나라의 재부를 아낌없이 기울여 조국의 소중한 미래를 가꿔주는 그 숭고한 후대사랑이 있어 아이들의 명랑하고 구김살없는 웃음소리가 이 땅에 세세년년 울려퍼지고있다.
어찌 이 땅뿐이랴.
총련민족교육력사의 갈피갈피에도 절세위인들의 한없이 숭고한 후대사랑을 전하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수없이 새겨져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력사에는 총련을 전체 재일동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대표하는 주체적해외공민단체로 강화발전시켜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와 크나큰 심혈과 로고가 깃들어있습니다.》
재일동포사회에서 중등교육이 실시된 때로부터 75년세월이 흘렀다.주체35(1946)년 10월 5일 도꾜조선중학교(당시)의 창립과 더불어 재일조선인중등교육이 시작되였다.이는 자녀들에게 우리 말과 글, 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배워주고싶어하던 재일동포들의 간절한 념원이 실현되고 자라나는 새세대들을 숭고한 정신과 풍부한 지식을 겸비한 애국인재들로 튼튼히 키워 재일조선인운동의 명맥을 굳건히 이어나갈수 있게 한 뜻깊은 계기로 되였다.
긍지와 자부심이 넘쳐나는 그 75년사를 더듬어보며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해빛을 주고 자양분을 주시여 총련의 민족교육을 세계해외교포교육의 본보기로 내세워주시고 창창한 미래를 펼쳐주신 절세위인들에 대한 한없는 감사의 정을 금치 못하고있다.
자본주의일본땅에서 자라나는 재일동포자녀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고 애국의 길로 꿋꿋이 걸어나가게 하는데서 민족교육의 역할은 그 무엇으로써도 대신할수 없다.
일찌기 민족교육문제를 재일동포들의 운명과 관련되는 근본문제로 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민족의 기본징표에 관한 과학적인 해명과 재일조선인문제발생의 력사적근원에 대한 명철한 분석에 기초하시여 이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공화국이 창건된 후 조국을 찾아온 재일조선인경축단 성원들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재일동포들이 민족교육사업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높이 평가하시고 그를 보다 확대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민족교육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깊은 관심과 세심한 보살피심은 총련이 결성된 직후 더욱 뜨거워졌다.일본반동들의 가혹한 탄압책동으로 하여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던 민족교육의 실태에 대해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사랑의 생명수를 부어주신분이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당시 전후의 재더미를 털고 갓 일어선 우리 조국앞에는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았으며 어느 부문에서나 요구되는것이 자금이였다.사회주의의 기초를 다지며 5개년계획의 기본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자고 해도, 새 전쟁의 불을 지르려고 미쳐날뛰는 원쑤들의 책동에 대처하여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자고 해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살림이 어려워도 이역에서 고생하는 동포자녀들을 위해 꼭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는것이 우리 수령님의 뜻이였다.
항일전의 나날 강반석어머님에 대한 못잊을 추억이 어려있는 귀중한 돈으로 헐벗은 마안산아동단원들에게 새옷을 해입혀주시던 그 뜨거운 후대사랑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토록 어려운 속에서도 대용단을 내리시였다.이렇게 되여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동서고금에 없는 예산항목이 생겨나게 되였다.
세상에는 나라가 많지만 전쟁의 피해를 가셔야 하는 그 엄혹한 시기에 해외교포자녀들의 교육을 걱정하여 그처럼 귀중한 자금을 보내준 령도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재일동포사회는 눈물바다로 되였다.허리띠를 졸라매고 복구건설을 다그치고있는 조국에서 돈을 보내여올줄을 재일동포들중 과연 그 누가 꿈결에도 생각해보았겠는가.
사랑과 인정이 말라버린 거치른 이역땅에서 살아오던 재일동포들은 어버이수령님의 그 은정이 너무도 고마와 어깨를 들먹이였다.
한덕수의장이 북받치는 감격을 누르지 못하며 지은 노래는 온 동포사회를 또다시 울리였다.
은혜로운 소생의 빛발은 민족교육의 발전을 힘있게 추동하였다.곳곳에 조선학교들이 보란듯이 일떠서고 해빛밝은 배움의 창가마다에서는 우리 글을 읽는 재일동포자녀들의 랑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지였다.
재일동포들의 운명을 그토록 귀중히 여기고 그 자녀들에게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까지 보내준 이야기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우리 조국에서만 태여날수 있는 사랑의 서사시였다.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우리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총련의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문제가 자리잡고있었다.공장과 농촌에 대한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그이께서는 늘 재일동포자녀들을 생각하시며 그들에게 해마다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자고 하여도 생산을 더 늘여야 한다고 우리 일군들과 근로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하군 하시였다.
주체63(1974)년 재일동포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그 전해의 두배나 되는 막대한 자금을 보내주신것이다.바로 그해에 우리 공화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세금을 없애고 공업상품값을 대폭 낮추는 조치를 취하였다.남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런 인민적시책들을 실시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요구되였다.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심한 경제적파동과 위기가 휩쓸고있는 일본에서 살고있는 동포들의 교육사업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런 사랑의 조치를 취해주시였다.수십년세월 이런 감격적인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수놓아졌다.
이토록 하늘같은 은덕을 베풀어주시고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련일군들에게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사업에서의 성과는 전적으로 동무들이 사업을 잘한 결과에 이룩된것이라고, 그 성과는 동무들이 애국사업에서 거둔 커다란 성과인 동시에 우리 조국의 크나큰 자랑이라고 하시였다.(전문 보기)
《꽃송이》의 어제와 오늘 – 우리 말과 글로 동포들을 묶어세우자 –
조선신보사에서 출판한 초기의 《꽃송이》문집
올해는 재일동포들의 자랑스러운 중등교육실시 75돐과 조선대학교창립 65돐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우리 동포들이 이국땅 일본에서 대를 이어 민족교육을 지켜올수 있었던 비결은 우리 학교가 초등교육에 그치지 않은 교육체계를 갖추고 그것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왔기때문이다.
조선신보사가 1978년이래 오늘까지 주최하여온 재일조선학생《꽃송이》현상모집.이는 우리 학교의 우리 말 글짓기교육의 성과를 과시하는 마당인 동시에 총련의 대중적 우리 말운동의 한 부분으로서 우리 글을 볼수 있는 동포들의 각별한 시선을 모아왔다.
학생현상모집의 시작
재일조선학생《꽃송이》현상모집은 197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30돐에 즈음하여 시작하였다.
총련결성이래 우리 일군들과 동포들은 주체를 확고히 세우고 모국어로 민족적애국운동을 줄기차게 벌려왔다. 총련중앙 고 한덕수의장은 몸소 총련의 각급 학교 교원들과 일군들에게 매일과 같이 우리 말 지도를 하였으며 발음과 틀린 말들을 일일이 바로잡아주면서 우리 말 운동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60~80년대에는 일본 방방곡곡 동포들이 사는 모든 지역에 우리 학교이외에도 동포들과 아이들이 우리 말을 배우기 위한 성인학교, 청년학교, 오후야간학교, 하기학교, 민족학급, 문화교실들을 다양한 형태로 설치하여 우리 말 운동을 왕성히 전개하였다.
《꽃송이》가 시작한 78년에는 일본각지 1,300여개소에서 7,000여명의 각계각층 동포들이 성인학교에 망라되였으며 79년에는 8,000여명의 수강생들을 망라하고 4,980명을 수료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또 그 이듬해인 80년이후로는 조선사람찾기운동의 한 형태로 청년학교 1천개설치운동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해방이래 1세들을 위주로 하여 진행하여온 재일동포들의 운동은 동포들이 사는 모든 지역에서 이국에서 나서자란 2세, 3세들에게로 계주봉을 넘기려 하고있었다.
바로 그런 시기에《꽃송이》현상모집은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우리 말과 글로 어린 학생들과 광범한 동포대중을 우리 조직과 조국, 민족두리에 묶어세워야 한다는 1세들의 뜻이 담겨져있다.
현상모집사업을 전적으로 맡아나선것이 조선신보사였다.
이 사업을 78년에는 상공련, 중앙교육회, 조신협, 문예동, 학우서방이 후원해나섰으며 79년부터는 조청, 교직동이 합세, 현재는 녀성동맹, 청상회, 금강보험을 포함한 9단체가 협찬하고있다.
초기 심사위원은 리은직, 박종상, 김두권, 정화흠, 정화수 등의 재일조선인 작가, 시인들이 맡았다. 이들 1세 심사위원들은 일본에서 나서자란 어린 학생들이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것자체에 크게 감동하여 원고지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아이들이 우리 글을 쓰는것도 대단한데 시를 짓는다니 얼마나 기특한가!》 하며 모든 작품을 다 좋다고 하여 입선작품 고르기가 어려움을 겪었다는 일화가 있다.
총련중앙회관에서 진행된 시상식(2002. 2. 23)
일군, 교원들의 헌신과 노력
현상모집시작 당시 조선신보사의 담당자에 의하면 이 사업이 알림기사 하나 내놓고 쉽게 이루어진것이 아님을 확인할수 있었다.
78, 79년. 조선신보사 일군들은 일본각지에 있는 우리 학교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학생 글짓기 작품을 보내달라는 련락을 하였다. 그것은 교장선생님 한명뿐 아니라 기자들이 직접, 간접적으로 아는 학교 교원들에게 그야말로 《닥치는대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교원들도 난처해 하였다. 학생들이 쓴 글이 조선신보에 게재할 수준이 못된다고 사양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많은 독자들앞에 내놓을수 있을만하게 글을 다듬고 완성시킨다는것이 힘에 부치는 일인상싶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자들은 어떤것이라도 좋으니 학생들이 쓴 글을 보내달라고 이악하게 달라붙은것이다. 그들이 열성을 기울인만큼이나 학교 교원들이 호응해나섰고 교원들은 아이들과 원고지앞에서 씨름하면서 글을 다듬어나갔다.
1년, 2년, 3년을 그렇게 보내니 각지 우리 학교들에서 아이들의 글이 조선신보사에 보내오게 되였고 그 글마다에는 동포들의 생동한 삶이 거울처럼 비껴있어 보는 사람들을 웃게도 하고 눈굽을 적시게도 하였으며 이 아이들을 더 잘 키우자는 새 힘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남녘아이, 해외동포들의 반향
서울에서 진행된 《꽃송이》출판기념모임
1978년 일본에서 시작한 《꽃송이》현상모집의 입선작품집이 약 40년후 남녘땅에서 출판된것은 획기적인 일이였다. 2019년 《꽃송이》1집 《우리는 조선학교 학생입니다》가 출판된 후 2020년에 2집 《우리는 조선사람입니다》, 2021년에 3집 《우리는 통일로 달려갑니다》가 련이어 출판되였다.
남녘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우리 학교 아이들과 동포들을 《독립투사》로 칭하기도 하였고(《꽃송이》1 집 10페지) 《7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조국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온 동포사회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자주시보2019. 9. 5)고도 하였다.
《전국교직원로동조합》에 소속하는 교원들은 《꽃송이》출판이후 불과 3개월만에 《꽃받침》이라는 모임을 새로 내오고 남조선전역의 학교와 지역도서관에 《꽃송이》를 비치하기 위한 활동, 《꽃송이》 읽기모임, 민족교육의 력사학습, 《꽃송이》를 부교재로 활용한 교육실천, 재일동포자녀들의 민족교육권옹호를 위한 일본대사관앞 금요행동들을 활발히 벌렸다.
남조선에서 《꽃송이》를 펴낸 《우리 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의 관계자들은 우리 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읽은 남녘 아이들의 반향을 전해주었다.
나까오사까초급 3학년 김희정학생의 《학교 가는 길》(《꽃송이》1집 60페지)을 읽은 강원초등학교 2학년 꼬마는 독서감상문에 《희정은 신기하다. 나는 학교 가는게 싫은데 희정이 학교 가는게 좋나보다.》라고 썼다. 두 아이의 몸은 비록 바다를 사이에 끼고 떨어져있지만 《꽃송이》를 매개로 하여 마음은 한걸음 다가갔다.
이외에도 남녘 초등학생들은 《꽃송이》를 읽고 《무섭고 힘들었을텐데 끝까지 학교를 지켜줘서 고맙다》, 《어려움을 이겨낸 우리 학교 학생이 멋있고 같은 민족인것이 자랑스럽다》, 《슬펐어요. 여러가지 일들을 당하고 상처받았을 우리 민족의 마음이 생각나서》, 《이거 읽고 감동 먹었다》, 《처음 알게 된 조선학교.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줘야겠다》 등의 감상을 남겼다.
우리 학교 아이들의 글을 담은 책은 남조선사회뿐 아니라 미국, 유럽에 거주하는 해외동포들에게도 널리 보급되였다.
《시민모임》의 대표가 《꽃송이》를 들고 도이췰란드의 각지를 다녔다. 그곳 동포들은 대부분 70년대에 간호사, 광부로 남조선을 떠난 사람들인데 이국살이의 서러움을 아는 그들은 재일동포 아이들이 차별받는 사실에 더욱 분노하였고 《꽃송이》1, 2집을 꼼꼼히 읽은 뒤 새로 나온 3집을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등에 사는 동포들과 함께 보겠다고 《시민모임》의 대표에게 도서구입을 신청, 송금을 하고서는 책값과 발송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큼의 《꽃송이》를 조선학교로 보내달라고 당부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는 올해 7월 《우리학교와 함께하는 동포모임》이 결성되였다. 9월에는 재미동포들이 미주전역의 일본령사관과 일본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일제히 《조선학교 차별반대》행동을 벌렸다.
남조선 각지 도서관에 《꽃송이》가 신청되였다.
* *
《꽃송이》의 힘-재일동포 1세로부터 4세, 5세 아이들에게로 계승되는 귀중한 이 재부에는 민족자주가 있지, 외세가 없다.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우리 말은 빼앗긴 민족의 얼을 되찾고 삶의 축을 바로 세우며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계속 련마해나가야 할 소통의 수단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가 소통의 수단이겠지만 이국에서 사는 동포들에게 있어서 모국어는 특별한것이다. 우리 말은 우리의 넋이고, 존엄이며, 자존심이고 사상이다.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 재일동포들의 못다한 이야기를 각자의 입으로 전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통일의 주체로 떳떳이 서기 위해서도 계속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말은 지켜야만 하는 보물이 아니라 새시대를 열어나가는 민족의 생명선이다. 이역에서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뀔수록 우리 말 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가자!
(김윤순, 문예동중앙 문학부위원)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일본당국의 차별행위에 항의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일본당국의 차별과 인권침해행위에 항의하는 재일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의 투쟁이 계속되고있다.
지난 2월 유엔의 인권특별보고관들이 공동서한을 통해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확대와 관련하여 학생지원금지불대상에서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배제시킨 일본당국의 차별행위를 경고하고 시정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당국은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지원에서 제외한데 대해 《차별이 아니다.》, 《지원제도가 이미 종료되였다.》고 하며 저들의 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지금도 일본 문부과학성과 외무성은 《차별은 없으며 유엔 인권특별보고관들의 공동서한은 유엔의 견해가 아닌 개인의 견해이다.》는 나발을 불어대며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고있다.
지어 사법당국을 내세워 차별행위를 합법화하려고 책동하고있다.
이에 분노한 조선대학교 학생들과 교직원들 그리고 일본의 시민단체들의 련대조직인 조선학원을 지원하는 전국네트워크 대표들은 9월 7일 도꾜에 있는 참의원의원회관에서 모임을 가지고 일본당국의 조선학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제도의 시정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일본당국이 학교지원제도를 시행함에 있어서 외국인학교중 조선학교만을 제외하는것은 명백히 민족차별책동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어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조선대학교 학생들에 대한 차별을 시정할것을 요구한 유엔의 인권특별보고관들의 공동서한의 취지를 리행하고 지원제도시행에 있어서 공평성을 보장할것을 주장하여 일본 문부과학상과 외상에게 보내는 요망서가 랑독되였다.
유엔의 인권특별보고관들에게 보내는 요청서도 랑독되였다.(전문 보기)
재일조선학교지원문제에 대한 일본의 차별책동에 항의
재일조선학교지원문제에 대한 일본최고재판소의 부당한 판결을 규탄하는 히로시마현동포긴급항의집회가 7일 히로시마조선초중고급학교에서 진행되였다.히로시마조선초중고급학교 학생들과 조선학교관계자들, 동포들, 일본시민들이 참가하였다.
집회에서 발언자들은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조선고급학교를 제외한 일본국가를 상대로 히로시마조선학원과 히로시마조선초중고급학교 졸업생들이 낸 배상청구소송에 대해 일본최고재판소가 지난 7월 27일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규탄하였다.
일본당국의 조선학교차별책동은 일본의 식민주의의 발로로서 절대로 용납될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히로시마현의 동포들이 그동안 조선학교만을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제외한 일본정부의 차별책동의 위법성을 폭로하고 옳바른 문제해결을 위해 투쟁하여왔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유엔의 인권단체들도 일본정부가 조선학교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거듭 요구하고있다고 하면서 그러나 일본사법당국이 이를 외면하고 정부의 차별책동에 편승하고있다고 그들은 단죄하였다.그들은 조선학교 학생들의 배울 권리가 일본정부와 사법당국의 책동에 의해 침해당하고있다고 말하였다.
이번 법정투쟁을 통하여 조선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더욱 굳게 간직하게 되였다고 하면서 그들은 일본당국의 부당한 행위에 맞서 민족교육권리옹호를 위해 끝까지 투쟁해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전문 보기)
일본 각지에서 조선학교차별책동을 규탄하는 항의행동 전개
일본당국의 조선학교차별책동에 적극 편승해나선 일본사법당국의 부당한 판결에 항의하는 투쟁들이 일본 각지에서 힘차게 전개되고있다.
보도된바와 같이 그동안 재일동포들은 도꾜도와 오사까부, 아이찌현, 후꾸오까현, 히로시마현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정부의 차별책동에 맞서 법정투쟁을 벌려왔다.
그러나 일본최고재판소는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을 요구하는 동포들의 소송투쟁을 전부 가로막는 판결들을 내렸다.
지난 3일 오사까에서 《조선고급학교지원제도를 요구하는 련락회》의 주최로 일본사법당국을 규탄하는 화요항의행동이 진행되였다.
435번째로 진행된 이날 투쟁에서 오사까지역의 재일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은 일본정부와 사법당국이 비렬한 민족차별책동의 칼날을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들이대고있다고 규탄하였다.
당국의 차별책동에 굴하지 않고 조선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보람찬 학창생활을 누릴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나갈것이라고 그들은 밝혔다.
그들은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의 구호를 들고 활동을 보다 줄기차게 벌려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일본당국의 조선학교차별책동을 규탄하는 화요항의행동은 10일에도 전개되였다.
앞서 6일에는 일본문부과학성앞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고등학교지원제도의 적용을 요구하는 조선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 교원들을 비롯한 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의 금요행동이 진행되였다.
투쟁참가자들은 일본정부의 조선학교차별책동에 추종해나선 일본사법당국의 판단은 일본사회에 존재하는 타민족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의식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일본당국의 민족교육차별책동에 강력히 맞서 싸워나갈것이라고 그들은 밝혔다.
한편 7월 31일 삿뽀로에서 민족교육권리옹호를 위한 가두선전활동과 시위가 있었다.
총련 혹가이도의 일군들과 조청원들, 교원들과 어머니회 회원들, 혹가이도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회소속 일본인사들이 투쟁에 참가하였다.
그들은 일본정부와 최고재판소의 조선학교차별행위의 엄중성을 폭로하였다.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일본당국의 차별행위는 날이 갈수록 더욱 로골화되고있다고 하면서 그들은 정당한 민족교육권리쟁취를 위해 끝까지 투쟁해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전문 보기)
민족의 참된 아들딸들로 키워주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재일동포자녀들에게 베풀어주신 뜨거운 사랑을 전하며-
후대들에 대한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언제나 우리 어린이들과 학생들속에 계시면서 그들모두를 따뜻이 보살펴주신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그이의 성스러운 한평생은 후대들을 위한 고귀한 혁명생애였다.후대들을 사랑한다는것은 곧 미래를 사랑한다는것이며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후대들을 더 잘 돌보아주자는것이 바로 우리 수령님께서 지니신 숭고한 후대관이였다.그 열화같은 사랑과 은정속에 경치아름다운 명당자리마다에 학생소년들을 위한 궁전과 야영소들이 솟아났고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와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가 끝없이 울려퍼지지 않았던가.
어찌 이 땅의 아이들뿐이랴.이역의 동포자녀들도 그 다심한 사랑의 품에 안겨 민족의 아들딸들로 무럭무럭 자라났다.세세년년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랑랑히 울려퍼지는 배움의 글소리에는 한평생 총련의 후대들을 위하여 그처럼 마음쓰시던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와 그리움의 정이 세차게 맥박치고있다.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생애를 한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더듬어보게 되는 이 7월, 이역의 아들딸들은 자기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 어엿하게 키워주신 절세위인에 대한 한없는 경모의 정으로 가슴끓이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자주시대 해외교포운동의 개척자, 총련의 창건자이시며 재일동포들의 삶의 은인,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재일동포들은 오늘도 눈물겹게 노래부른다.
수령님의 높고 큰 이 사랑을 산이나 바다에 그 어이 비기랴고, 주시고주신 그 사랑 총련의 세월을 펼치여 우리 아들딸들을 하나같이 키워주셨다고.
전후의 그 어려운 시기에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해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이역에서 나서자라는 아들딸들도 지덕체를 갖추어 사회주의조국의 역군이 되기를 바라시는 친어버이심정으로 그이께서 해마다 보내주신 막대한 액수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재일조선인운동의 어제와 오늘을 주체의 피줄기로 꿋꿋이 이어준 애국의 생명수, 영원히 마를줄 모르는 은혜로운 사랑의 젖줄기였다.
재일동포들을 조국인민들과 꼭같이 한식솔로 여기신 어버이수령님의 육친적인 사랑속에 총련은 이역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초급학교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적민족교육체계를 정연하게 세워놓고 새 세대들을 애국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튼튼히 키워낼수 있었다.
이역의 후대들을 위해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재일동포들이 잊지 못해하는 하나의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있다.
조국으로 오는 재일동포들을 위해 《만경봉》호가 건조되였을 때의 일이다.
완성된 배의 외형과 내부구조를 찍은 사진들을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였다.재일동포들을 태워올 이 배는 조국의 한부분이라고,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공업을 다 동원해서 외형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훌륭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건조과정을 구체적으로 지도해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혹 미진된것이 없겠는지 좀더 생각해보자고 하시며 다시금 사진을 펴놓으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귀국선이 한번 올 때 동포자녀들이 몇명씩이나 타고오는가, 배를 무을 때 어린이들의 놀이터를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문제인지라 누구도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해빛이 잘 들고 사방을 다 볼수 있는 곳에 어린이실을 널직하게 잘 꾸려주자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그리하여 다 무어진 배의 일부 구조를 변경하여 어린이실을 아담하게 꾸려주는 공사가 급히 진행되게 되였다.
아이들을 제일로 사랑하시는 우리 수령님의 심중에는 이토록 이역의 동포자녀들도 늘 자리잡고있었다.
그후 《만경봉》호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여러곳을 돌아보시다가 문득 이 배를 무을 때 배의 구조를 변경시켜 꾸려놓은 어린이놀이터가 있겠는데 한번 보자고 하시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어린이실에 들리시여 세발자전거며 목마를 손수 밀어보시던 그이께서는 여기서 아이들이 잘 노는가고 물으시였다.동포자녀들이 이 방을 떠날줄 모르며 즐겁게 논다는것과 그것을 보면서 그들의 부모들이 더 기뻐한다는 보고를 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럴거라고, 어린아이들의 마음에도 조국의 따뜻한 품이 느껴질것이라고 하시며 앞으로 평양에서 장난감도 더 많이 가져오고 놀이시설도 더 꾸려주자고 하시였다.
력사는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적지 않게 전하고있다.하지만 그 사랑은 한가정의 뜨락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우리 수령님처럼 나라의 미래인 후대들에 대한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시고 제일 좋은것을 어린이들에게 주는데서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찾으신분, 더우기 이역의 동포자녀들에게까지 이토록 친어버이사랑을 부어주신 그런 위인을 력사는 알지 못하고있다.
얼마나 많은 이역의 아들딸들이 어버이수령님의 따사로운 품에 안겨 조국을 알고 민족을 아는 참된 조선사람으로 성장하였던가.(전문 보기)
재일동포들 조선학교차별책동에 항의하는 투쟁 전개
일본각지에서 일본당국의 조선학교차별책동의 부당성을 까밝히고 조선학교지원문제해결을 위한 재일동포들의 투쟁이 활발히 전개되고있다.
각 지역마다에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단체를 결성하고 일본시민들과의 련대활동을 강화하여 일본당국의 조선학교차별행위를 폭로, 단죄하고있다.
21일 일본 히로시마현의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단체는 히로시마시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조선학교지원문제에 대한 일본법원당국의 공정한 판결을 요구하였다.
알려진바와 같이 2017년 7월 19일 히로시마지방재판소가 고등학교지원대상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한 일본정부에 항의하여 제기한 재일동포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기각하였다.
이에 분노한 재일동포들은 련대단체들과 협력하여 히로시마시에서 일본정부와 히로시마현, 시당국이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고등학교지원제도를 적용하고 보조금지급을 재개할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려왔다.
기자회견에서 단체는 조선학교차별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리고있는 일본당국을 규탄하였다.
일본최고재판소가 조선학교지원문제에 대한 공평하고 옳바른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단체는 강조하였다.
한편 이날 조선학교관계자들과 재일동포들은 일본최고재판소를 찾아가 조선학교에 대한 고등학교지원제도의 즉시적인 적용을 요구하는 서명문을 전달하였다.(전문 보기)
꽃송이 제3집 :《우리는 통일로 달려갑니다》 남측에서 출판 -남녘의 《우리 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에서-
8천만 겨레와 온 세계의 눈길이 판문점에 집중되였던 2018년4월27일.
그날로부터 3년이 지났다.
꿈만 같았던 북, 남 수뇌분들의 거듭되는 상봉과 한 식솔처럼 환하게 웃는 관계자들의 화목한 광경에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설레였던가…
그 나날을 떠올리며 3년이 지난 오늘 어설프고 허전한 느낌에 젖어드는것은 단지 나 하나뿐은 아닐것이다.
다시 태여난 《꽃송이》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의 우리 글 문집 《꽃송이》가 2019년 4월, 바다 건너 서울에서 출판된 배경에는 4.27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 발표에 보는 조국통일 기운의 앙양이 있었다.
당시 일본국내에서는 로골적인 민족차별로 인한 조선학교의 《고교무상화》제외, 《교육보조금의 삭감, 정지》가 심각했으며 조선학교와 학생들이 일으킨 각지 재판투쟁들도 어려움을 겪고있었다.
(이래서는 안된다, 일제식민지시기 마소와 같이 일본으로 끌려와 갖은 고역을 치르고 천대와 멸시속에 살아온 재일동포의 후손들이 이렇게 일본 정부에 또다시 짓밟히우고 자존심을 꺾이우며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아이들의 글짓기현상모집을 주최하던 조선신보사 《꽃송이》사무국에 우리 학교 학생들의 문집인 《꽃송이》를 남측에서 출판할것을 제기하였다.
어려움을 겪는 우리 학교를 지키기 위하여 하루빨리, 한사람이라도 더 우리 학교를 응원하고 지지해줄 사람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때문이였다.
거듭되는 토의끝에 조직적인 승인을 얻고 내가 찾은것은 수년째 우리 학교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힘쓰고있는 남측 시민단체였다.
때마침 해외동포들을 이끌고 일본을 방문중이였던 손미희대표를 도꾜 우에노에서 만났다.
남측에서 이 제안을 받아줄지 어떨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일단 부닥쳐봐야…
때는 2018년11월3일.
이듬해에는 3.1인민봉기 100돐과4.27판문점선언1돐을 앞두고있었다.
《〈꽃송이〉를 아십니까?》
이렇게 말문을 떼기 시작한 나는 일본에서는 오늘도 어린 학생들이 조선이름을 부르고 우리 말과 글을 배우기 위해 하루하루를 투쟁으로 이어가고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 학교 아이들과 선생님, 학부모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남측에서 《꽃송이》를 출판할수 없겠는가고 제안하였다.
서울에서 집체적인 토의를 한끝에 12월초에는 조선신보사와 정식으로 합의하여 《꽃송이》 제1집 편집작업이 시작하였다.
조국통일 주제 작품 모은 제3집
남측에서 출판된 《꽃송이》 부제목은 1집(2019년) 《우리는 조선학교 학생입니다》, 2집(2020년) 《우리는 떳떳한 조선사람입니다》 그리고 새로 나온 3집은 《우리는 통일로 달려갑니다》로 달았다.
파란 하늘색 표지는 마치 통일기를 상징하는듯 하다.
3집에는1982년부터 2020년까지 조국통일을 주제로 한 시와 작문 52편이 수록되였고 재일동포들이 지은 8곡의 노래와 우리 학교 학생들의 그림, 사진이 빼곡이 담기였다.
《밀물썰물인듯 멀어지고는 가까와지고, 가까와지고는 또 멀어지는 조국통일… 언제면 통일의 그날이 오겠는지 그것은 나에게는 모르지만 비록 시간은 걸려도 언젠가 통일은 꼭 온다고 믿는다. 그것은6.15의 그때부터4.27의 그 순간까지 통일을 지향하는 강한 의지, 통일을 바라고바라는 절실한 마음이 우리 동포들속에 그대로 고스란히 이어져있다는것을 알게 되였기때문이다.》(2020년, 이바라기조선초중고급학교 중급부 1학년 장윤주)
재일동포 아이들이 흔들림없이 믿는 조국통일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가?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약속을 어겨서는 안된다고도 가르친다.
조국통일의 약속중의 약속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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