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민족교육/民族教育’ Category
총련소식
애국위업의 명맥을 지켜
다음해 4월 총련 규슈조선초중고급학교가 창립 70돐을 맞이한다.지역애국운동사에 또 한페지의 자랑스러운 기록을 아로새기게 될 이 뜻깊은 날을 성대히 기념하기 위해 지금 학교의 교직원, 학생들과 후꾸오까지역의 동포들이 모두 떨쳐나섰다.
얼마전 총련 규슈조선초중고급학교창립 70돐기념 사업실행위원회가 조직되였다.여기에서는 다음해의 창립기념일행사일정은 물론 앞으로 10년간 학교의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물질기술적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계획도 토의결정되였다.
이어 실행위원회는 맹렬한 활동에 들어갔다.졸업생들이 앞장서고있다.그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학교의 력사는 말그대로 참다운 조국애를 발양하고 단결된 힘을 높이 과시해온 자랑스러운 년대기이다.모두가 모교의 영예를 더욱 빛내이는데 이바지하겠다고 하면서 좋은 일을 계속 찾아하고있다.
한편 총련의 각급 학교교원들의 실력을 높이기 위한 강습이 최근 일본각지에서 진행되였다.오랜 교원들의 풍부한 성과와 경험이 수많이 발표되였다.묵묵히 교육사업에 한생을 바쳐가는 로교원들의 고결한 모습은 새세대 교원들을 크게 감동시키였다.애국위업의 미래를 키우는 사업에 한생을 바칠 의지도 굳세여졌다.
이번 강습에서는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과 장애자학생들을 돌보아주는 문제도 주요하게 론의되였다.총련의 교육자들은 학생들의 고민거리를 함께 떠안고 풀어주기 위해 힘껏 노력할것을 다짐하였다.
애국위업의 강화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자신들이 지닌 성스러운 사명감을 더욱 깊이 간직하고 사랑하는 제자들이 기다리는 학교들에로 돌아간 그들은 지금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나가고있다.
동포들의 사랑을 받는 중주단
총련의 대중예술단체들가운데는 도꾜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악중주단 《민악》도 있다.총련 금강산가극단출신 연주가들과 총련일군, 학생, 학부형 등 각계층 음악애호가들로 구성되여있다.
모두가 우리 학교에서 어머니조국의 사랑이 뜨겁게 어려있는 선물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배운 사람들이다.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무용종합대학에서 전문교육을 받았다.
1990년 3월에 조직된 이 중주단은 지난 35년간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벌려왔다.저대독주 《만경대의 봄》과 소해금독주 《봄맞이》, 기악중주 《환희》 등 수많은 작품들을 무대에 올렸다.《민악》은 결성된지 몇해 안되여 일약 재능있고 우수한 예술단체로 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중주단성원들의 연주기량과 음악형상수준은 상당한 높이에 있다.그들이 연주하는 기악곡들은 언제나 동포들의 절찬을 받는다.아무리 바빠도 《민악》의 공연을 놓치지 않는다는 동포들이 많다.이를 통해서도 중주단에 대한 동포사회의 믿음과 기대,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잘 알수 있다.일본사람들도 《민악》의 연주회를 관람하고나서 절로 마음이 깨끗해지는것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포들이 《민악》을 그토록 사랑하는것은 중주단의 높은 음악형상수준이나 연주기량에 앞서 새세대들이 이역의 어지러운 문화풍토에 오염되지 않고 애국의 넋을 굳건히 이어가고있기때문이다.
얼마전 《민악》은 결성 35돐을 기념하여 또다시 성대한 연주회를 가지였다.이번에도 역시 대절찬을 받았다.동포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는 《민악》성원들의 얼굴마다에는 애국운동의 강화발전에 한몫한다는 긍지와 영예가 어려있었다.(전문 보기)
총련소식
보다 힘있는 청년단체로
1995년 9월에 무어진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청상회)는 동포청년상공인들을 망라하고있는 총련의 큰 대중단체이다.올해 결성 30돐을 맞이하는 청상회가 애국의 열기로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다.
청상회의 활동에서 제일 큰 몫을 차지하는것은 교육지원사업이다.
《유족한 동포사회를 위하여》, 《꽃봉오리들의 미래를 위하여》는 청상회가 불변의 활동지침으로 삼고있는것이다.청상회원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교육조건과 환경을 마련해주자고 하면서 모든 학교들에 보다 현대적인 교육기자재들을 구비해주기 위해 애쓰고있다.학생인입사업과 준정규교육망의 확대에도 힘을 넣고있다.
얼마전 히로시마현에서 열린 제29차 정기총회에서는 교육지원사업에서 이룩된 성과들이 중요하게 언급되였다.
보고와 토론들에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총련결성 70돐에 즈음하여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에게 보내주신 력사적서한을 높이 받들고 청상회의 전반사업을 한단계 끌어올릴 참가자들의 의지가 피력되였다.
동포청년들이 애국의 전위답게, 젊은 주력군답게 용솟는 힘과 슬기를 떨치며 애국의 새로운 본보기를 창조해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르치심을 가슴에 새긴 청상회원들은 결성 30돐을 자랑찬 성과로 맞이하기 위해 더욱 분발하고있다.
어머니들이 앞장선다
지난 5월 총련 제14차 중앙어머니대회의 첫 순서로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에서 도꾜지방어머니대회가 열린데 이어 얼마전에는 니시도꾜지방어머니대회가 니시도꾜조선제2초중급학교에서 진행되였다.주제는 《니시도꾜동포교육을 어머니들의 힘으로!》였다.
각 학교 어머니회들의 활동이 소개되고 우리 학교에 대한 일본당국의 부당한 차별책동을 짓부시며 교육권리를 지키기 위한 문제들이 토의되였다.애국위업을 전진시켜나가는데서 자신들이 지닌 숭고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더욱 깊이 절감한 니시도꾜의 동포녀성들은 교육지원과 자녀교양문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하고 사색과 토론을 거듭하였다.
우리가 앞장서자, 어머니들이 떨쳐나 우리 아이들의 창창한 앞날을 열어나가자!
이런 목소리가 대회장에서 세차게 울려나왔다.
자본주의일본땅에서 아이를 키우는데는 많은 돈이 든다.더우기 항시적으로 차별과 경제적곤난을 겪고있는 재일동포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하지만 그런 어려운 속에서도 동포녀성들은 학교의 창가마다에서 사랑하는 자식들의 랑랑한 글소리, 조국찬가의 메아리가 더 높이 울려퍼지게 하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애쓰고있다.(전문 보기)
충성과 애국의 전통을 꿋꿋이 이어나간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어머니조국과 운명을 함께 하며 창창한 미래에로 가는 총련의 힘찬 보무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수 없을것이며 그 성스러운 려정은 우리 공화국의 높은 존위와 더불어 찬연히 빛나게 될것입니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이 강대한 국가의 일원이 된 자부심높이 가슴을 쭉 펴고 떳떳하게, 당당하게 자기들의 생활과 미래를 개척해나가고있다.어머니조국을 충성으로 받들며 세계해외교포조직의 본보기라는 긍지로운 명함을 빛내여가고있다.
《민족교육에 바쳐온 나날이 참으로 보람찹니다》
장내가 술렁이였다.이제 곧 출연하게 될 강사가 로력영웅, 인민교원인 리정애녀성이라는것이 알려졌기때문이다.강연제목은 《민족교육과 나》.
현재 총련중앙상임위원회에서 교육일군으로 사업하고있는 리정애녀성의 이름을 동포들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자기가 교편을 잡았던 총련 니시도꾜조선제2초중급학교에서 강연하게 된 그의 눈가에는 추억의 빛이 력력하였다.
《어릴 때 우리 집의 형편은 매우 어려웠습니다.하지만 저는 어머니조국에서 보내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으면서, 총련조직과 동포사회의 뜨거운 사랑속에서 마음껏 배우며 성장하였습니다.조선사람의 넋을 지니게 되였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떼고나서 흘러온 나날들을 더듬어보느라니 문득 자기의 교원생활에서 제일 어렵고 간고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가 교장사업을 맡은지 얼마 안되던 어느날 학교교원실에는 숨막힐듯한 정적이 깃들었다.학교의 존망문제가 론의되는 심각한 마당이였다.
그때로 말하면 일본당국의 반총련소동이 나날이 우심해지던 시기였다.설상가상으로 학생수의 급격한 감소와 심각한 경영난 등으로 하여 학교는 페교의 위기에까지 처하게 되였다.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교원들을 마주한 리정애교장은 가슴속에 재가 앉는듯하였다.우리 학교가 정말 없어지게 되는가고 물어보던 학부형들의 근심어린 모습도 떠올랐다.
(60여년의 자랑찬 력사를 수놓아온 우리 학교가 정녕 문을 닫아야 한단 말인가.아니, 절대로 그럴수 없다.기어이 우리 손으로 살려내자.)
교원들을 둘러보며 그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대로 주저앉게 되면 지역동포사회의 불이 꺼지게 됩니다.애국운동의 거점이 없어집니다.모두 힘을 냅시다.애국위업의 미래를 위해, 우리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 떨쳐나섭시다.》
교장의 절절한 호소에 교원들은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우리가 더 무거운 짐을 걸머지자, 한사람이 두몫세몫 하면 얼마든지 할수 있다고 하면서 리정애녀성은 교원집단을 앞장에서 이끌었다.
학생인입대상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던가.총련조직을 멀리하면서 자식들을 우리 학교에 보내기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고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찾아가 꾸준히 해설사업을 진행하였다.민족교육의 우월성에 대하여 알려주면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동포사회의 미래, 미더운 조선사람으로 훌륭히 키우자고 열렬히 호소하였다.
리정애녀성은 일부 동포들이 자식을 우리 학교에 보내고싶어하면서도 통학길이 너무 멀어 주저하고있는 사실을 알고는 총련조직에 제기하여 통학뻐스가 마련되게 하였으며 학교에 구내식당을 내와 학생들이 모두 친형제처럼 단란하게 모여 식사할수 있게 하였다.
학생들이 아름답고 고상한 우리 민족예술의 향취를 한껏 느끼도록 하기 위해 총련 금강산가극단의 재능있는 가수, 연주가, 무용수들을 초빙하여 여러가지 주제의 음악특별과외수업을 자주 진행하게 하였다.동포로인들과의 상봉모임도 조직하여 나어린 학생들이 전세대들이 지녔던 애국의 의지를 굳건히 이어가도록 하였다.
그의 진정에 감동되여 민족교육에 대하여 몰리해를 품고있던 동포들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다.
드디여 학생수는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일본학교에 다니던 학생들까지 련이어 우리 학교에 편입하면서 학생수는 3년사이에 2배이상으로 늘어났다.여러해전에 경영난으로 그 운영을 중지하였던 유치반도 다시 내오게 되였다.학교는 다시 일떠섰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응당 할 일을 한 저에게 크나큰 믿음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저는 분에 넘치게도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리정애녀성은 목이 꽉 메여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한동안 격정으로 가슴들먹이던 그는 이렇게 웨치였다.
《민족교육은 총련의 만년대계를 위한 사업이고 우리 학교는 애국의 역군들을 키워내는 성스러운 곳입니다.민족교육에 총련의 오늘과 래일이 있습니다.우리모두의 보람도 있습니다.학교를 위해 힘을 합칩시다.》
이 열렬한 호소에 동포들은 우렁찬 박수로 화답하였다.
애국의 열기로 설레이는 장내를 둘러보며 리정애녀성은 생각하였다.
(민족교육에 바쳐온 나날이 참으로 보람차구나.이 긍지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어.)
수난의 과거를 잊지 말라
총련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이바라기현 북부에 있는 한 광산을 찾았다.결코 수학려행이 아니였다.
이 광산은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수천명의 우리 동포들이 끌려와 강제로동을 강요당한 곳이다.원한의 고역장에서 억울하게 숨진 사람들의 령혼들이 떠도는 곳에 온 학생들모두의 가슴은 미여지는듯하였다.광산의 《연혁》을 소개하는 《기념관》이라는 곳에 들어가보고 모두가 아연해졌다.조선인강제련행, 강제로동강요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전부 《일본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광산》이라는 식의 요란한 광고뿐이였던것이다.
민족적의분이 솟구쳤다.
이바라기현에서 살면서 동포들의 비참한 과거사를 연구하고있는 장영조로인은 학생들앞에 여러장의 사진을 펼쳐보이였다.
《이것 보시오, 동무들.안전대책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더운 지하막장에서 동포들은 낮이나 밤이나 고역에 시달렸소.그 모습이 얼마나 참혹하였으면 당시 일본인들까지도 〈조선사람들은 노예들이였다.그에 비하면 죄인은 도리여 편안하였다.〉고 하였겠소.》
굶어죽고 지쳐죽고 맞아죽고 병들어죽고 갱이 무너져 죽는 그 지옥같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탈출하였다.하지만 오랜 기간의 고된 강제로동과 영양실조로 기진맥진하였던지라 성공한 사람은 얼마 안되였다고 한다.
당시 동포들이 탈출약속의 표적으로 삼았다는 삼나무쪼각을 비롯한 유물들앞에서 학생들 누구나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였다.
희생된 동포들의 유골이 안치된 곳에서 학생들은 암흑의 세월에 태여나 불우한 운명을 강요당한 선조들을 추모하여 묵상하였다.
누군가 조용히 노래 《아리랑》을 선창하였다.
두고온 고향과 가족을 그리며 수난자들이 눈물속에 불렀을 《아리랑》의 선률이 모두의 가슴을 쳤다.
일본의 력사교과서들에는 의연히 조선에 대한 일제의 군사적침략과 식민지통치가 미화분식되여있다.일제의 조선인학살만행과 강제련행, 랍치 및 중세기적인 강제로동범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되여있지 않다.
일제가 패망한지 80년이 되였지만 이 일본땅에서 조선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여전하다.
이렇게 생각하며 학생들은 수난의 과거사를 청산하는데서 자기들의 역할을 재삼 깨달았다.
교육학부 학생 리지호는 선조들이 겪었던 불행과 고통에 대하여 잘 알게 되였다, 그들이 무참히 숨지면서도 애타게 갈망하였던 독립이 이루어지고 오늘 우리 조국은 위대한 강국으로 존엄떨치고있다, 수난의 과거를 잊지 않고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나가겠다고 말하였다.
조선대학교 학생들에게 있어서 이번 려행은 선조들의 쓰라린 과거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애국의 신들메를 더욱 바싹 조이는 계기로 되였다.모두가 어머니조국을 받들어 힘차게 투쟁해나갈 의지를 굳게 가다듬었다.
우리는 모두다 한식솔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 일군인 서정인동포는 인상이 그리 밝지 못하였다.며칠간 련속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때문에 어느한 초급학교에서 진행되게 되여있던 운동회가 연기되였기때문이다.꼭 참가하여 좋은 작품을 쓰리라 벼르고벼르댔는데 참 아쉬웠다.하늘만 원망하고있는데 한 친구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권투선수들의 경기소식이 곧 방영되게 되네.꼭 보시오.》
(그래, 《조선신보》에서 본 생각이 난다.이 학교 권투소조가 요즘 두각을 나타낸다고 했었지.)
서둘러 TV를 켜니 군마현에서 진행되고있는 일본 간또고등학교권투대회소식이 전해지고있었다.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은 이 대회에 도꾜지역을 대표하여 참가하였다.
경기는 치렬하였다.긴장하게 공방전을 지켜보고있는데 문득 우리말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들었는가.아니 잘못 들은것이 아니다.분명 우리 말이였다.
《이겨라! 이겨라! 우리 선수 이겨라!》
어린 학생들의 새된 목소리도 섞여있었다.
이제는 경기장면보다도 그 웨침소리에 더 신경이 갔다.
참다 못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는 무척 놀랐다.대회개최지인 군마현안의 우리 학교 학생들과 교직원,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이 응원하고있다는것이 아닌가.
가슴이 뭉클하였다.타지방에서 경기를 하게 된 우리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모두가 떨쳐나선 군마현의 동포들이 참으로 고마왔다.
어찌 그들뿐이랴.아마 이 경기를 보고있을 모든 동포들이 다 목소리를 합칠것이다.
《우리 선수 이겨라!》
경기장에서 이토록 열렬한 성원을 받는 선수들의 심정은 또 어떠하랴.
서정인동포는 흥분된 심정으로 붓을 달리였다.
《화목하고 단합된 동포사회, 우리는 모두 한식솔이다! 충성과 단결의 전통을 이어 총련의 영예를 더욱 빛내이자!》(전문 보기)
총련소식
이채로운 미술전시회
얼마전 재일동포녀성들의 미술전시회가 진행되였다.조선신보사 기자로 활동하였던 한 동포가 전시회참가자들앞에서 강연을 진행하였다.
그는 40여년간의 기자생활기간 자기가 취재하였던 수많은 동포녀성들의 애국적인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언젠가》, 《한여름》, 《하늘향해》를 비롯한 조선화, 유화작품 등이 전시되였다.어머니조국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크나큰 민족적자부심, 애국위업과 민족교육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깊은 뜻과 원숙하면서도 활달한 필치로 형상한 작품들은 참관자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다.그 모습을 보면서 녀성미술가들은 긍지와 자부심을 금치 못하였다.
전시회장을 돌아보면서 동포들은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자본주의일본땅에서 우리 동포사회가 오염과 부패를 모르고 아름다운 화원으로 만발하고있는것은 이처럼 민족의 넋과 정서를 적극 살려나가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애국의 마음을 자래운다
총련 도슌조선초급학교는 우리말 교육에서 앞장선 2중모범학교이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열심히 배우고 능숙히 구사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잘하여왔다.
교정의 곳곳에는 국어공부에 도움이 되는 게시물들이 있다.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뜻같은말, 소리같은말, 본딴말 등을 많이 습득하게 하는 한편 받아쓰기훈련과 발음훈련, 글짓기 등을 생활화하게 하였다.회화에서 군더더기를 없애고 각종 친근한 부름말들을 적극 살려쓰게 하였다.또한 우리말 경연과 알아맞추기경연도 특색있게 조직하였으며 소년단방송을 통하여 우리말 학습에서 모범적인 학생들을 적극 소개선전하였다.
자녀들의 우리말 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졌다고 하면서 학부형들 누구나 기쁨을 금치 못하고있다.
새로 입학하는 학생들은 상급생들처럼 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열심히 익혀 어엿한 조선사람으로 자라날 굳은 결의를 다진다.
이역에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우리 말과 글은 생명이나 같다.민족성을 지키고 애국애족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자면 우선 우리 말과 글을 적극 살려써야 한다.
이것이 이 학교 학생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해빛밝은 교정에서 우리 말과 글을 익히며 학생들은 애국의 마음도 자래운다.
민족문화의 향취를 풍기며
총련이 민족성고수를 전조직적, 전동포적인 운동으로 더욱 힘있게 벌려 동포사회에 아름답고 고상한 우리 민족문화의 향취가 짙게 풍기게 하고있다.
얼마전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 제21기 제10차확대회의가 진행되였다.
회의에서는 지난해의 사업이 전면적으로 총화되고 올해 사업목표가 제시되였다.총련결성 70돐을 성대히 기념하기 위한 예술공연준비정형도 보고되였다.
새로 제정된 문예동 공로상과 창작상이 5개의 예술단체와 5명의 예술인들에게 각각 수여되였다.
축하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수상자들은 애국열의가 끓어번지고 민족성이 흘러넘치는 동포사회를 꾸려나가는데 예술의 힘으로 이바지할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한편 오사까 및 와까야마지역 학생들의 민족기악연주회가 얼마전에 진행되였다.
총련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와 와까야마조선초중급학교 학생들이 여러 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작품들을 연주하였다.
공연무대에서 우뢰같은 박수갈채를 받는 학생들의 얼굴마다에는 민족음악예술을 꽃피워간다는 긍지와 영예가 어려있었다.객석에서는 격찬의 환호가 그칠새 없었다.(전문 보기)
《어머니조국을 받들어 애국의 대를 굳건히 이어가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국땅에 있어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아야 하며 위대한 김정일애국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어머니조국의 대지우에 애국충정의 자욱을 뚜렷이 새겨나가야 합니다.》
황금만능과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많은 청년들이 포부도 희망도 없이 부패와 타락의 늪에 빠져들고있다.
하지만 총련의 새세대들은 자본주의일본땅에 살면서도 아름다운 애국의 인생관을 지닌 고상한 인간으로 름름하게, 씩씩하게 자라나고있다.재일조선인운동의 미래를 걸머지고나갈 리상 안고 힘차게 나아가고있다.
어서 가자, 성스러운 애국의 초소로
(악성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던 때 대학에 입학한 우리 애가 벌써 졸업하게 되다니.)
총련 조선대학교구내에 들어서며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 오사까지부 김명혜녀성의 뇌리에 갈마든 생각이였다.
제67회졸업식이 진행되는 교정은 환희와 격정으로 세차게 설레이고있었다.졸업생들모두의 환한 얼굴들에는 열정과 자신감이 넘쳐흐르고있었다.지난해 조국방문의 나날 애국의 자양분을 한껏 받아안으면서 참된 삶의 위치를 찾은 그들이 아닌가.
졸업증을 수여받는 미더운 청년들을 보며 김명혜녀성은 가슴이 뿌듯해짐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조국의 불같은 그 열정, 억세인 그 기상을 닮아 애국의 한길에서 청춘을 빛내일 결의를 다지는 모습도 참으로 대견하였다.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곳은 민족교육의 성스러운 사명을 다해가는 우리 학교의 교단이라고 하면서 멀리 타지방에 있는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와 시고꾸조선초중급학교 교원으로 탄원한 외국어학부의 김지황, 김윤화, 그들의 결의는 참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교육학부의 류미순은 부모의 뒤를 이어 오사까에서 교원생활을 하게 된다.그의 아버지는 현재 오사까조선초급학교 교장으로 사업하고있다.
함뿍 미소를 담고 손을 흔드는 딸과 대견한 눈길을 보내며 못내 흡족해하는 아버지, 그들부녀의 모습을 보며 김명혜녀성은 가슴이 후더워났다.
조청일군으로 사업하게 된 정치경제학부의 허성, 김례아도 얼마나 름름한가.
리공학부의 리종명, 리종성은 쌍둥이이다.함께 대학을 다닌 이들형제도 애국의 초소를 차지하게 된다.리종명은 군마조선초중급학교에서, 리종성은 조선대학교 연구원에서.
와까야마조선초중급학교 부속유치반에서 교양원으로 사업하게 된 교육학부의 김희령, 집을 떠나 멀리로 간다고 걱정하면서도 그의 부모는 동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곤난을 극복하고 억세여지라고 힘을 주었다.
남편을 여읜 후 시어머니의 병구완을 하는 어려운 속에서도 조선대학교로 등을 떠밀어보낸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정을 졸업식장에서 눈물겹게 토로하는 교육학부의 강미례를 보니 정말 생각이 깊어졌다.
(자식은 교양한대로 자란다고 애국의 가풍이 확고히 서있는 저런 가정들이 많아 우리 총련이 굳건한것이 아닌가.)
졸업공연은 그야말로 감동적인 화폭의 련속이였다.대학생활이 얼마나 보람찼고 그 나날에 다진 애국의 의지가 얼마나 굳건한가를 공연 전 과정이 그대로 말해주고있었다.
조청일군, 교육자, 예술인, 체육인…
재일조선인운동을 떠메고나갈 애국인재가 될 굳은 결심 안고 보람찬 초소로 떠나가게 된 졸업생들을 동포사회는 열렬히 축하하였다.
정열적으로 박수를 치면서 김명혜녀성은 생각하였다.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자라난 동무들이야말로 총련의 자랑이고 애국의 골간들이다.이제 갈길은 순탄치 않을것이다.하지만 동무들은 스스로 택한 신념의 그길을 힘차게 걸어갈것이다.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의 뒤를 이어.)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자랐습니다》
총련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 김지세교원은 수업준비를 서둘렀다.
이번에 학생들에게 배워줄 내용은 총련의 이름있는 문필가였던 허남기선생이 민족교육의 초창기에 쓴 시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였다.학창시절 즐겨읊던 시여서 그런지 감회가 새로왔다.
교수안에 제목을 큼직하게 적어넣던 그는 그만 펜을 멈추었다.저도 모르게 시제목에 있는 《이것》을 《이곳》으로 써놓았던것이다.고쳐쓰려고 하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시인은 학교를 이곳이 아니라 이것이라고 표현했을가? 곳은 일정한 자리나 지역을 의미한다.학교를 가리킨다면 곳이 더 적합할텐데…)
수업준비과정 내내 이런 의문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그날 수업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질문하였다.
《왜 허남기선생님은 학교를 두고 〈이곳〉이 아니라 〈이것〉이라고 표현하셨을가요?》
교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학생들은 한참이나 곰곰히 생각하더니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다.
《시인은 창문유리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교사가 아니라 우리 학교에 어려있는 애국의 지향을 묘사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습니다.조국해방후 우리의것을 되찾고 지키려는 마음이 모여 우리 학교가 생겨났습니다.그래서 학교를 이것이라고 표현하였다고 봅니다.》
《위대한 조국을 알고싶어하는, 민족교육사수를 위한 피어린 투쟁의 산아인 우리 학교를 긍지스럽게 대하는 아이들의 절절한 마음을 노래한것입니다.》
《우리 학교가 있는 곳은 일본땅입니다.그러나 학교에서 배워주는것은 우리의것입니다.바로 그래서 이것이 우리 학교라고 하였을것입니다.》
흥분하여 웨치듯 말하는 그들속에는 평소에 국어과목을 몹시 어려워하던 학생도, 장난꾸러기로 소문나 교원들의 애를 태우던 학생도 있었다.
김지세교원은 가슴이 뻐근하도록 놀랐고 기뻤다.학생들모두를 끌어안아주고싶은 심정이였다.
얼마나 대견한 아이들인가.얼마나 름름하게 성장하였는가.
(민족교육의 초창기에는 아이들이 초라한 교사때문에 마음쓰는 선생님을 오히려 위로하여 눈물흘리게 하더니 오늘은 이 아이들의 순결한 마음이 나를 울리는구나.)
김지세교원은 격동된 심정으로 추억깊은 시를 다시금 읊어보았다.
아이들아 너희들은
우리도 앞으로 일본학교보다
몇배나 더 큰집
지을수 있잖느냐고
되려 이 눈물많은 선생을 달래고
그리고 또 오늘도 가방메고
씩씩하게 이 학교를 찾아오는구나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비록 교사는 빈약하고 작고
큼직한 미끄럼타기 그네 하나
달지 못해서
너희들 놀 곳도 없는
구차한 학교지만
아이들아
이것이 단 하나
조국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서자란 너희들에게
다시 조국을 배우게 하는
단 하나의 우리 학교다
…
조국의 기대에 기어이 보답하리
지난 3월 8일 조선신보사 평양지국 기자 김숙미녀성은 온 하루 축하의 인사속에 묻혀있어야 하였다.그날은 그가 조국에서 사업을 시작한지 5일째 되는 날이였다.
무릇 녀성이라면 3월 8일에 류다른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숙소인 평양호텔의 호실에서 아름다운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활기에 넘쳐 거리로 오가는 녀성들을 바라보니 생각이 깊어졌다.
3월 8일을 국제적명절로 기념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1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그런데 세계를 둘러보면 오늘도 수많은 녀성들이 정치적무권리와 사회적불평등속에서 고통을 겪고있다.
하지만 우리 조국에서는 이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고 아름답고 행복한 녀성들의 명절로 되고있다.한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조국이라는 넓은 뜨락에서 나라위한 크고작은 일감을 도맡아해제끼는 녀성근로자, 혁신자들,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내는 어머니들이 가장 열렬한 축하의 꽃다발을 받고있다.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이 세상 제일 위대하신 어버이의 품에 안겨사는 더없는 영광과 긍지를 안고 국가의 전면적부흥발전을 위한 줄기찬 투쟁에서 조선녀성의 본때와 강의한 정신력을 남김없이 발휘해갈 불같은 열의가 넘쳐있다.
문득 울리는 초인종소리에 김숙미녀성은 상념에서 깨여났다.
(이른아침에 누구일가?)
문을 열어보니 미소를 머금은 평양호텔 종업원들이 꽃송이와 기념품을 들고 서있는것이 아닌가.
《3.8국제부녀절을 축하합니다!》
순간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이렇게 시작된 하루였다.이른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축하의 인사가 그칠새 없었다.바람세찬 이역땅에서 조국을 옹호하고 총련조직을 사수하며 민족성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총련동포들이야말로 애국자들이라고 하면서 진심으로 위해주는 그 모습에서 김숙미녀성은 총련에 대한 조국인민들의 뜨거운 정을 느낄수 있었다.
(세계에는 수많은 해외교포들이 있다.하지만 우리처럼 조국으로부터 이토록 뜨거운 사랑과 환대를 받고있는 해외교포들이 또 어디에 있는가.조국인민들의 이 뜨거운 기대에 보답하자.기어이 보답하자.)
이런 마음 안고 총련의 녀성기자는 오늘도 취재길을 이어가고있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시여 강국의 존엄을 떨치는 사회주의조국, 부강번영하는 어머니조국의 현실을 한시바삐 동포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전문 보기)
오늘도 긍지높이 전해가는 25년전의 이야기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졸업생들의 추억담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어도 언제나 마음속에 조국을 안고 살아야 하며 사회주의조국의 절대적인 지지자, 견결한 옹호자가 되여야 합니다.》
1970년대에 진행된 어느한 국제기구회의에서 재일동포학생들이 출연한 음악무용서사시와 집단체조를 찍은 기록영화가 상영된적이 있다.그때 영화를 본 수많은 나라 대표들은 회의에 참가한 총련의 교육자들을 찾아와 《이 아이들이 일본에서 태여난 아이들이 맞는가.상상하기가 어렵다.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큰 집단체조를 한다는것만을 보아도 민족교육이 대단하다는것을 알수 있다.》, 《당신들의 조직이 한 나라도 감히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하고있다.정말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지금으로부터 25년전에도 그런 일이 재현되였다.다른 곳도 아닌 미국에서였다.그때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무용단은 미국의 뉴욕과 로스안젤스에서 특색있는 민족문화예술무대를 펼쳐놓아 깊은 여운을 남기였다.
조국과 총련의 영예를 떨친 주인공들은 오늘도 그 나날을 감회깊이 추억하고있다.
* *
2000년 3월 어느날 한대의 려객기가 뉴욕의 한 비행장에 서서히 착륙하였다.승객들중에는 같은 일행이 분명한 5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과 교원, 학부형들이였다.
처음 미국에서의 공연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학생들의 마음은 불안하였다.이전에 학교취주악단이 중국에서 공연한적은 있었다.하지만 미국에서의 공연은 사정이 달랐다.우리 공화국을 제일 적대시하는 나라이기때문이다.
착잡한 마음을 안고있는 학생들에게 교원들은 말하였다.
《일없습니다.어디 한번 미국땅에서 우리 학교의 영예, 우리 총련의 위상, 우리 조국의 존엄을 높이 떨쳐봅시다.》
이렇게 되여 그들은 미국으로 가게 되였다.
비행장에서 입국절차를 밟을 때였다.이들의 사증을 본 수속관계자의 눈이 화등잔같이 되였다.국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한참이나 사증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그는 황급히 주위의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일본에서 조선사람들이 왔다!》
그제서야 영문을 깨달은 총련학생들은 빙그레 웃었다.
(미국인들이 우리 조국을 두려워하는구나.우리 조국은 그렇게 강하구나.아무렴, 온 세계가 우러르는 주체조선, 영웅조선이 아닌가.)
순간 가슴이 넓어지고 키가 한뽐이나 커지는듯싶었다.학생들은 어깨를 쭉 펴고 당당히 말하였다.
《그래요.우리는 조선사람이예요.우리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호텔에 도착한 그들은 려장을 푼 후 거리로 나갔다.
조선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무용단성원들은 대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였다.거리가 미여지게 오가던 뉴욕시민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 특이한 행렬을 호기심에 찬 눈길로 지켜보았다.
뉴욕의 한복판에서 그들은 보란듯이 사진을 찍었다.그들은 이렇게 당당한 조선사람으로 자신들을 선보였다.사진을 찍으면서 동포학생들은 굳게 속다짐하였다.
(잘해보자! 지금 이 미국땅에서 우리는 총련을 대표하고있다!)
내외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마침내 공연의 막이 올랐다.
먼저 총련민족교육의 력사, 도꾜조선중고급학교의 연혁을 소개하는 록화편집물이 상영되였다.
못잊을 화폭들이 흘러갔다.
총련이 결성될 당시 민족교육의 실태가 화면에 비껴들었다.
예로부터 교육은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한 성스러운 사업이라고 일러왔다.이역땅에서 사는 해외동포들에게 있어서 자기 민족의 말과 글, 력사와 문화를 알게 하는 민족교육은 동포사회의 존망과 관련되는 더없이 중요하고 사활적인 사업이다.
망국의 시절 자기들이 겪은 무지와 몽매의 설음을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으려고 재일동포들은 한푼두푼 돈을 모아 일본각지에 학교들을 세웠다.하지만 동포들 대다수가 최하층의 생활을 하고있다나니 재정난을 면할수 없었다.가까스로 시작한 학교건설이 자금때문에 해를 넘기면서도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있었다.많은 학교들이 여러해째 가교사신세를 면할수 없었다.총련 조선대학교도 도꾜조선중고급학교의 교실 몇개를 빌려쓰고있는 형편이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교원들의 생활비 같은것은 꿈도 꿀수 없었다.많은 교원들이 아침은 건빵에 물 한고뿌, 점심은 학생들이 날마다 번갈아 가져오는 주먹밥으로 끼니를 에웠다.저녁을 번지는것은 보통이였고 잠자리는 학교경비실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 말과 글을 배운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있었다.비바람이 새여드는 판자집교사, 백묵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교단에서 그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교육자들은 눈물을 삼키였다.
이런 실태를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짓는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나라형편이 그토록 어려운 속에서도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였다.
낡을대로 낡고 비좁던 학교대신 사랑의 교육원조비로 건설된 현대적인 학교로 씩씩하게 등교하는 자식들의 환희에 넘친 모습을 보며 동포들은 격정으로 가슴들먹이였다.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생명수와도 같이 동포들모두의 몸과 마음을 뜨겁게 적셔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그것은 거치른 이역땅에서 민족의 혈통, 애국의 넋이 꿋꿋이 이어지게 한 사랑의 젖줄기였다.
그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아래 자본주의일본땅에 민족교육의 대화원이 펼쳐졌다.…
참으로 놀라운 력사와 현실이 반영된 편집물이였다.감동과 충격으로 장내는 물뿌린듯 고요하였다.
이윽고 흥겨운 춤무대가 펼쳐졌다.서장 《봄맞이》에 이어 장고춤, 탈춤 등 다채로운 민족무용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조선무용의 흥취나는 률동은 관중을 고상한 조선민족문화의 세계에로 이끌어갔다.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어도 민족의 향기를 고이 간직한 조선의 꽃으로 피여나려는 학생들의 순결한 마음이 작품마다에 그대로 어려있었다.
군무 《회오리》가 무대에 펼쳐졌다.일명 《조선치마저고리칼질사건》으로 불리우는 일본우익반동들의 비렬하고 야만적인 테로행위에 굴하지 않고 민족적존엄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재일동포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였다.민족적차별과 탄압의 회오리가 아무리 세차도 민족의 넋이 어려있는 조선치마저고리를 결코 벗을수 없다는 재일동포학생들의 의지가 격렬한 춤가락을 통해 관중에게 전달되였다.
객석에서는 격찬과 환호가 그칠새 없었다.
《잘한다!》
당시 공연상황에 대해 미국의 한 언론은 《관중의 우렁찬 박수소리는 마치도 뉴욕과 로스안젤스전체를 흔들어주는듯하였다.》고 전하였다.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이 민족의상을 차려입고 마음껏 춤추는 모습에 정말 경탄을 금할수 없다.》, 《민족적인 화려한 무대이다.》, 《보면볼수록 더 보고싶은 공연이다.》…
랭담한 미국인들이였지만 우리 동포학생들의 청신한 자태, 뛰여난 재능에 반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조선민족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재미동포들의 심정은 더욱 류달랐다.
(어쩌면 저렇게 자신만만하고 생기발랄한가.민족배타주의가 가장 심한 일본에서 살면서도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민족의 넋을 지켜나가는것이 정말 놀랍구나. )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럴만도 하였다.재미동포들에게 있어서 큰 고민거리는 자식들이 자기 민족도 모르고 완전히 미국인화되여가는것이였다.부모자식간에 우리 말로 의사소통을 할수 없는 가정이 대다수였다.그런데 재일동포학생들은 우리 말을 류창하게 하고 보란듯이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상을 입고 흥겹게 춤추고 노래부르고있다.그것이 놀랍고 그래서 생각이 깊어지는것이였다.
뉴욕에서 예술학교를 운영한다는 한 재미동포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춤을 추는것만 같았다, 재일동포들이 일본에서 민족성을 굳건히 고수하고 민족문화를 꽃피워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놀랍다, 정말 부럽다고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가슴이 뜨거워져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이역땅에서 살지만 어쩌면 그렇게도 정신상태가 깨끗한가.》, 《강압과 차별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지켜낸 총련조직이 정말 놀랍다.》, 《정말 가슴이 흐뭇하다.총련은 해외동포들모두의 자랑이다.》…
재미동포들은 이렇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그 말을 들으며 총련학생들은 크나큰 긍지로 가슴들먹이였다.우리 학교의 소중함을 사무치게 느끼였다.
공연을 마친 출연자들은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교가를 자랑스럽게, 우렁차게 불렀다.관중이 모두 일어나 열렬한 박수로 호응하였다.그들속에는 미국에 와있던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졸업생도 있었다.그는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혼자 조용히 불러보군 하던 교가를 이 미국땅에서 들을줄 정말 몰랐다고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무용단이 미국의 뉴욕과 로스안젤스에서 펼쳐놓은 공연은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기였다.
* *
세월은 흘러 그때의 어린 무용단성원들은 어느덧 교육자, 학부형이 되여 민족교육의 강화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있다.그들중에는 총련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도꾜조선중고급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김화미녀성도 있다.어제날의 무용소조원이 오늘은 지도교원이 되여 아이들의 재능을 꽃피워주고있다.
25년전 미국땅을 뒤흔들었던 총련의 재간둥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애국의 싹을 자래워준 우리 학교를 정녕 잊을수 없다고, 우리들의 보람찬 인생좌표는 바로 그곳에서 그어졌다고.
어머니조국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새세대들에게 민족의 넋, 애국의 넋을 심어주는 총련의 민족교육은 더욱 강화발전되고있다.(전문 보기)
재일조선인들의 신성한 민주주의적민족교육권리는 그 누구도 침해할수 없다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담화
재일조선인운동사에 1948년 4월 24일은 조선인학교를 요람기에 없애버리려는 미일반동들의 파쑈적탄압책동에 재일동포들이 대중적인 투쟁으로 견결히 맞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권리를 피로써 지켜낸 날로 아로새겨져있다.
1945년 8월 패망한 이후에도 일본반동정부는 재일동포들에게 일제식민지시기의 《동화교육》을 끈질기게 강요하였으며 1948년 1월에 들어와 미제의 사촉밑에 조선학교들에 대한 《페쇄령》을 내리였다.
뿐만아니라 조선사람들의 독자적인 학교설치는 절대로 인정할수 없으며 재일조선인자녀들은 반드시 일본학교에 입학하여야 한다는 강도적인 요구가 담긴 지령을 전국의 지사들에게 하달하였다.
이에 분노한 수많은 재일동포들이 떨쳐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옹호하여 항의투쟁을 벌리였으나 일본반동들은 그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해버린채 1948년 4월 24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방대한 경찰무력을 내몰아 물총을 쏘아대고 총탄까지 란사하며 체포구금하는 등 류혈적인 탄압책동에 광분하였다.
일제가 패망한 때로부터 어언 80년이 되여오지만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교육을 말살하려는 일본당국의 극심한 민족배타주의와 반인륜적인 차별정책에서는 자그마한 변화도 없다.
2019년 8월 일본당국이 조선학교 유치반들을 념두에 두고 각 지방자치체들에 보육시설허가신청을 받지 말며 접수한 신청도 모두 기각하라는 지시를 하달한것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재일동포들이 자녀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는것은 너무도 응당한것이며 아동들에게는 최선의 리익, 재정적지원이 보장되여야 한다는것은 국제법의 초보적인 요구이다.
유엔에서 채택된 아동권리에 관한 협약 제28조에는 모든 당사국들은 교육에 관한 어린이의 권리를 인정하며 이 권리를 점진적으로 그리고 평등하게 실현시켜야 한다고 규제되여있다.
그러나 일본당국은 아동권리에 관한 협약도 배타주의로 얼룩진 저들의 법률에 맞춰 해석하려고 어리석게 놀아대고있으며 《아이키우기지원법》을 모든 아동들에게 공평하게 적용하겠다고 하던 공약마저 지키지 않고있다.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모국어를 배워주려는 초보적인 권리마저 빼앗으려는것은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의 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특대형인권침해로 된다.
일본당국은 재일조선인들에게 일본인들과 꼭같은 세금납부의무를 걸머지우면서도 그 자녀들이 다니는 조선학교들만은 부당한 구실을 붙여 《고등학교무상화》와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적용을 비롯한 각종 교육지원제도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천진란만한 어린이들의 가슴에까지 못을 박고있다.
재일조선인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실시는 아동권리협약을 비롯한 국제인권협약들과 유네스코의 교육차별반대협약 등 일본도 수락한 수많은 국제법들과 일본의 헌법, 교육기본법과 같은 국내법규에도 전적으로 부합되는 마땅한 권리행사이다.
일본정부는 조선에 대한 일제식민지통치의 직접적피해자들과 그 자녀들인 재일조선인들에게 응당 교육권, 생활권 등 민족적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도의적책임과 함께 법률적의무를 지니고있다.
재일조선인들의 정정당당한 민족교육권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부정할수 없고 그 누구도 침해할수 없는 신성한것이다.
조선법률가위원회는 일본당국이 총련과 재일조선인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침해하는 온갖 불법무법의 제도적, 행정적차별조치들을 지체없이 철회하고 법률적, 도의적의무를 다할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2025년 4월 23일
평 양
朝鮮法律家委員会代弁人が談話発表
【平壌4月24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法律家委員会のスポークスマンが23日に発表した談話「在日朝鮮人の神聖な民主的民族教育権利は誰も侵害することはできない」の全文は、次の通り。
在日朝鮮人運動史に1948年4月24日は朝鮮人学校を揺籃(ようらん)期になくそうとする米・日反動層のファッショ的弾圧策動に在日同胞が大衆的な闘争で断固と立ち向かって民主的民族教育の権利を血潮を流して守り抜いた日に記されている。
1945年8月、敗北した後にも日本の反動政府は在日同胞に日帝植民地時期の「同化教育」をしつこく強いたし、1948年1月に入って米帝のそそのかしの下で朝鮮学校に対する「閉鎖令」を下した。
それだけでなく、朝鮮人の独自的な学校の設置は絶対に認められず、在日朝鮮人子女は必ず日本学校に入学すべきだという強盗さながらの要求が盛り込まれた指令を全国の知事に下達した。
これに憤激した数多くの在日同胞が決起して民主的民族教育を擁護して抗議闘争を展開したが、日本の反動層は彼らの正当な要求を無視してしまったまま1948年4月24日、「非常事態」を宣布し、膨大な警察武力を駆り立てて水鉄砲を発射し、銃弾まで乱射しながら逮捕、拘禁するなど流血の弾圧策動に狂奔した。
日帝が敗北してからいつの間にか80年になるが、在日朝鮮人の民族教育を抹殺しようとする日本当局の甚だしい民族排外主義と反人倫的な差別政策においてはいささかの変化もない。
2019年8月、日本当局が朝鮮学校の幼稚班を念頭に置いて各地方自治体に保育施設の許可申請を受けず、受け付けた申請も全て棄却しろという指示を下達したのがその代表的実例である。
在日同胞が子女に朝鮮の言葉と文字を教えるのはあまりにも当然なことであり、児童には最善の利益、財政的支援が保障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は国際法の初歩的な要求である。
国連で採択された児童の権利に関する条約第28条には、全ての当事国は教育に関する児童の権利を認め、この権利を漸進的に、そして平等に実現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と規制されている。
しかし、日本当局は児童の権利に関する条約も排外主義で染まった自分らの法律に合わせて解釈しようと愚かに振る舞っており、「子ども・子育て支援法」を全ての児童に公平に適用すると言っていた公約さえ守っていない。
育ちゆく新世代に母国語を教えようとする初歩的な権利さえ奪おうとするのは、この世のどの国の歴史にも見られない特大型の人権侵害である。
日本当局は、在日朝鮮人に日本人と同じ税金納付義務を負わせながらもその子女が通う朝鮮学校だけは不当な口実を設けて「高等学校無償化」と「幼児教育、保育無償化」の適用をはじめとする各種の教育支援制度から除外させることで天真爛漫(てんしんらんまん)な子供たちの胸にまで釘を打ち込んでいる。
在日朝鮮人の民主的民族教育の実施は、児童の権利に関する条約をはじめとする国際人権条約とユネスコ(UNESCO=国連教育科学文化機関)の教育差別反対協約など日本も受諾した数多くの国際法と日本の憲法、教育基本法のような国内法規にも全的に合致する当然な権利行使である。
日本政府は、朝鮮に対する日帝植民地支配の直接的被害者とその子女である在日朝鮮人に当然、教育権、生活権など民族的権利を保障すべき道義的責任と共に法律的義務を負っている。
在日朝鮮人の正々堂々たる民族教育権利は、いかなる場合にも否定することはできず、誰も侵害することはできない神聖なものである。
朝鮮法律家委員会は、日本当局が総聯(在日本朝鮮人総聯合会)と在日朝鮮人の民主的民族権利を侵害するあらゆる不法無法の制度的・行政的差別措置を遅滞なく撤回し、法律的・道義的義務を果たすことを強く求める。(記事全文)
《애국의 길에 바쳐온 나날이 참으로 보람찹니다》 -총련의 한 시인의 수기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국땅에 있어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아야 하며 위대한 김정일애국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어머니조국의 대지우에 애국충정의 자욱을 뚜렷이 새겨나가야 합니다.》
지난해말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결성 65돐기념 문예발표모임 《한마음》이 진행될 때 있은 일이다.
문예동 오사까지부 고문인 허옥녀로인은 무대옆에서 울렁이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있었다.이제 몇분후이면 자기가 저 무대로 걸어나가 시를 랑송해야 하기때문이였다.
수백편의 시작품을 창작하여 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져있는 로시인이지만 매번 무대에 나설 때면 처녀시절 동포들앞에서 자기의 첫 작품을 발표하던 그때의 심정이였다.
(내가 문예동에서 사업해온지도 어느덧 57년이 되였구나.민족의 넋을 심어주고 참다운 삶의 보람과 긍지를 안겨준 고마운 조국, 미더운 총련조직과 인정많은 동포사회에 무슨 말로 감사의 정을 표현할것인가.)
마침내 로시인은 무대에 나섰다.그를 바라보는 장내의 시선은 뜨거웠다.허옥녀로인은 머지않아 총련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의 교단에 서게 될 손녀에 대한 대견한 심정을 담은 자작시 《이런 날이 올줄이야…》를 읊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 저도 모르게 두볼로는 눈물이 흘러내리였다.동포들은 로시인이 손녀의 성장과정을 담은 시를 읊으면서 다름아닌 자신의 인생길을 더듬고있다는것을 알수 없었다.
허옥녀로인의 뇌리에는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혜택으로 초, 중, 고급학교에서 공부하던 나날들, 우리 말과 글, 노래와 춤을 배우며 생기발랄하게 자라나던 그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공화국창건 20돐을 맞으며 5개 학교의 새 교사건설에 떨쳐나선 오사까지역의 애국동포들을 고무격려하고싶어 처음으로 시작품을 창작하던 일도 떠올랐다.
불현듯 수십년간 지켜섰던 교단이 눈앞에 우렷이 안겨왔다.
허옥녀로인이 교원이 될 결심을 가지게 된것은 총련의 교양선전대 성원으로 일본의 한 지역에 파견되였던 오빠에게서 한장의 편지를 받은 후였다.외진 산간벽지에서 아직 조국이 해방된줄도 모르고 숨어사는 동포들을 찾아냈다는 놀라운 소식과 함께 오랜 세월 뼈저리는 고통을 강요당하였던 그들을 위해 한생 교단에 서겠다는 오빠의 편지는 누이동생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그후 그는 오빠의 뒤를 따라 성스러운 교단에 섰다.
서로 멀리 떨어져 바쁜 나날을 보내는 속에서 어쩌다 만날 때에도 오누이는 교육사업에서 얻은 경험을 나누는것으로 상봉의 기쁨을 대신하였다.허옥녀로인에게 있어서 교단은 삶의 전부였고 사랑의 대명사였다.때로 힘들어 주저앉으려는 자기를 꾸짖는 오빠의 엄한 질책을 누이동생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사랑으로 받아들이였다.이렇게 힘과 용기를 주고받으면서 오빠는 공훈교원으로, 누이동생은 2중모범교수자로 성장하였다.제자들이 애국위업의 일선에서 한몫 단단히 맡아하고있다는 소식은 그들오누이에게 있어서 기쁨중의 가장 큰 기쁨이였다.
벅찬 생활이 있는 곳에는 흥겨운 노래와 아름다운 시가 있기마련이다.훌륭한 노래와 시들은 인간생활의 향기를 풍만하게 해주고 사람들에게 억센 기상과 용기를 안겨준다.특히 바람세찬 이역땅에서 모진 시련과 난관을 뚫고헤치며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나가는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애국적인 시작품들은 귀중한 사상정신적량식으로 된다.
허옥녀로인은 가슴속에 차오르는 애국의 긍지와 영예, 동포들을 애국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고싶은 자기의 심정을 시작품에 담기 시작하였다.
《나래쳐라 푸른 하늘에》, 《살뜰한 그대여 고개를 드시라》, 《계주봉》, 《우리 교장선생님》, 《노래자랑모임》, 《하나의 꼴문을 향하여》 등 그가 창작한 시작품들은 오래동안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새세대들을 키워내는 과정에 겪은 가지가지의 자랑스럽고 잊지 못할 사실들을 아름다운 운률에 담아 노래한것이다.민족중등교육실시 60돐을 맞으며 출판된 그의 시집 《출발의 날에》는 오늘도 동포들속에서 널리 애독되고있다.
허옥녀로인은 공화국의 기치따라 조국과 운명을 같이해온 총련의 투쟁로정과 일본반동들의 악랄한 민족차별책동속에서도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사수하고 민족문화를 꽃피워온 동포사회의 력사, 고상한 민족성이 흘러넘치는 동포생활을 실감있게 반영한 시작품들도 수많이 창작하였다.어머니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크나큰 민족적자부심, 민족교육에 대한 애착심이 어려있는 그의 작품들은 《조선신보》와 《이어》, 《종소리》 등 총련의 출판물들에는 물론 일본의 문예잡지들에도 널리 소개되였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도 같아 어느덧 백발을 얹었지만 로시인은 아무런 여한이 없었다.한생을 민족교육에, 민족성고수에 바친 삶이 참으로 긍지스러웠다.
(혼자힘으로는 결코 넘을수 없는 시련의 고비들이 많았지.총련조직이 있어, 화목한 동포사회가 있어 나의 오늘이 있다.애국의 길에서 누려온 삶이야말로 얼마나 보람찬가.)
이렇게 생각하며 그는 시랑송을 마치였다.
순간 장내에서는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변함없이 애국의 꽃을 피우는 로시인에게 동포들은 열렬한 존경의 인사를 보내였다.
물기어린 눈으로 객석을 바라보며 허옥녀로인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내 인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애국의 붓을 놓지 않으렵니다.애국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렵니다.)
허옥녀로인을 비롯한 문예동성원들은 이역의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동포사회에 민족의 향기를 부어주고 동포들의 애국열의를 고조시키는 사업을 순간도 멈추지 않고있다.시련과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동요함이 없이 애국의 화원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미더웁다.(전문 보기)
《민족의 긍지를 안고 조선사람으로 당당히 살겠습니다》 -이역땅에서도 민족성을 꿋꿋이 지켜가는 총련동포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의 새세대들이 단결력과 개척정신이 강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조선민족의 억센 기질과 웃어른을 존경하고 이웃들과 화목하며 부모처자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미풍량속을 순결하게 이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자기의 민족성을 지켜나간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민족배타주의의 회오리바람이 살벌하게 몰아치고 동화, 귀화책동이 우심한 자본주의일본땅에서 사는 재일동포들인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하지만 위대한 조국의 은혜로운 손길이 닿아있는 재일동포사회에서 총련동포들은 우수한 우리의 민족성을 꿋꿋이 지켜가고있다.
애국으로 사는 시간
…
왼발도 아니였어요
오른발도 아니였어요
눈물이 먼저 조국땅에 내렸어요
…
총련 니시도꾜조선제2초중급학교 교원들의 우리 문화감상모임에서는 이런 절절한 시구가 울려퍼지였다.조국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나어린 학생들의 심정을 방불하게 그려보인 이 시는 한 동포가 오래전에 창작한 작품이다.그의 이름은 최영진, 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져있는 이름있는 시인이다.그의 작품들은 우리 학교 국어교과서들에도 적지 않게 올라있다.
시를 들으며 교원들모두가 눈물이 글썽해서 못잊을 자기들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모임이 끝난 후 한 교원이 느닷없이 이렇게 말하였다.
《최영진선생님에게 우리 작품들에 대한 지도를 부탁하는것이 어떻습니까?》
약속이나 한듯이 모두가 《좋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니시도꾜조선제2초중급학교는 우리 말을 잘 배우고 늘 쓰는 2중모범학교로 자랑높은 학교이다.이 학교 교원들은 우리 말을 적극 살려쓰기 위한 사업을 잘하고있다.그 일환으로 학생교양에 이바지하는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였다.
우리 말이란 무엇입니까
끝없이 솟구치는 샘물입니다
우리 말이란 무엇입니까
조국과 나를 이어주는 태줄입니다
우리 학교란 무엇입니까
흔들림없는 대지입니다
우리 학교란 무엇입니까
희망의 나래를 활짝 펼치는 곳입니다
…
자문자답형식으로 된 단 두행짜리 시들이지만 교원들은 거기에 민족교육의 화원에 대한 열렬한 사랑, 민족성고수의 절박성을 담았다.하지만 너무나도 소박한 시작품들이여서 그 사상미학적수준에 대해 단언할수 없었다.그러던중 잊지 못할 시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 그것을 창작한 시인선생의 지도를 받을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교원들은 서둘러 최영진동포에게 편지를 보내였다.인차 회답이 왔다.시인은 작품창작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을 친절히, 세세히 지적해주었다.
편지마감에 반가운 대목이 있었다.
《빠른 시일내에 학교로 찾아가겠습니다.》
교원들은 아이들처럼 환성을 올렸다.유명한 시인선생이 우리 학교에 온다.그것도 효고현에서 니시도꾜까지 천여리길을 달려.
마침내 상봉모임이 열리였다.
《안녕하십니까.선생님들!》
자신이 창작한 시작품들처럼 시인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따뜻하였다.
온화한 분위기속에서 시작된 그의 강연은 차츰 격조가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인력은 바로 우리 조국의 인력입니다.우리 조국은 참으로 위대합니다.일편단심 조국을 그리며 이역의 칼바람을 이겨내고있는 우리들이 아닙니까.어머니조국을 받들어 우리 동포사회를 끝까지 지켜냅시다.민족성을 굳건히 고수합시다.조국멀리 이역땅에서 사는 동포들에게 있어서 민족의 혈통을 고수하는데 애국의 참모습이 있으며 우리 말을 하는 시간은 곧 애국으로 사는 시간이라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르치심을 우리모두 가슴깊이 새깁시다.》
그의 호소에 열렬한 박수로 화답하면서 교원들은 마음속으로 뇌이였다.
(애국으로 사는 시간!)
참으로 뜻깊은 상봉모임이였다.
《우리말 자랑하세》
도꾜에서 살고있는 홍지행동포는 우리말을 몰랐던 사람이다.그러다가 청년학교에서 《가갸거겨》, 《아야어여》부터 배웠다.
꾸준히 배웠다.무척 재미났다.
우리 말과 글이 얼마나 우수하고 과학적인가.《졸졸》, 《솨솨》, 《철철》 등 물의 흐름을 나타내는 말을 익힐 때에도 그렇고 《반짝반짝》, 《초롱초롱》, 《깜빡깜빡》 등 별이 비치는 모양을 형상한 말을 배울 때에도 탄복을 금할수 없었다.억양도 좋으며 어휘와 표현이 풍부하고 섬세하며 다양하다.례의관계를 명백히 표현할수 있는것도 좋다.
문법구조는 또 얼마나 째여있는가.정말 그 우수성과 유구성, 순결성에 있어서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만한 언어이다.
아름답고 슬기로운 문화를 창조한 조선민족의 한 성원이라는것이 정말 자랑스러웠다.몸도 마음도 흰눈처럼 순결해지는것같았다.이처럼 우수한 우리 말을 뒤늦게야 배운다는 후회감도 밀물쳐왔다.
그후 《조선신보》분국 성원으로 활동하게 된 홍지행은 동포들과 자주 소통하면서 우리말 실력을 더욱 높여나갔다.
그 과정에 깨달았다.이역에서 민족성을 고수해나가는데서 우리 말과 글을 적극 살려쓰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일본땅 곳곳에 있는 우리 학교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그는 자기의 잘못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두 자식 다 우리 학교에 보내였다.당당한 조선사람으로 씩씩하게 자라나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느라니 정말 가슴이 뿌듯해졌다.
아직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 우수한 우리 말과 글에 대하여 잘 모르고있는 동포들에게 똑똑히 알려주고싶었다.
우리 동포들 누구나 이역에서 산다 해도 절대로 동화되지 않는 조선의 얼굴, 민족의 얼굴로 각광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이 제일이고 우리의 민족성이 제일 고상하며 우리 말과 글이 제일 우수하다.이런 내용의 가사를 짓자.
그는 붓을 들었다.그리고 큼직하게 제목을 써나갔다.
《우리말 자랑하세》
이렇게 창작된 노래는 지금 동포사회에서 널리 불리워지고있다.
《나의 희망, 나의 꿈》
《선생님, 꼭 부탁합니다.》
총련 조선대학교 리공학부 준교수 한창도동포는 도꾜조선제9초급학교 음악교원의 이 간절한 목소리가 계속 뇌리에 맴돌아 마음이 개운하지 못하였다.동일본지방 조선초급학교 학생예술경연대회에서 부를 노래의 가사를 지어달라는것인데 정말 난감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나야 자연과학자이고 가사창작분야에서는 그야말로 생둥이가 아닌가.)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가슴에 마쳐오는것이 있었다.
나어린 우리 학생들이 자기들의 꿈과 희망을 세상에 터칠수 있는 노래가 아직 없지 않은가.
문득 어릴적생각이 났다.그는 학창시절 이름난 동물학자가 되기를 소원하였다.어떤 때는 그 희망을 노래에 담아 부르고싶었지만 그런 노래가 없었다.얼마나 서운하였던지.
노래를 짓자.우리 아이들이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보게 하는 그런 노래를.
이렇게 생각하니 절로 제목이 떠올랐다.
《나의 희망, 나의 꿈》, 이것이다.
그는 가사를 그야말로 단숨에 엮어나갔다.붓을 놓고보니 무려 8개 절이나 되였다.하지만 조금도 가사가 길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총련일군, 교육자, 과학자, 체육인, 건축가, 영화연출가, 만화제작자, 도안가…
우리 아이들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되여있는 꿈과 희망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토록 많고많은 희망을 바로 우리 학교, 민족교육의 화원이 안겨주었다.바람세찬 이역땅에서 그들이 마음놓고 공부할수 있는것은 위대한 조국과 미더운 총련조직이 있기때문이 아니랴.
활기에 넘쳐 학교로 가는 학생들의 발랄한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며 한창도동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저 아이들도 우리 조선대학교에 오겠지.희망의 나래를 활짝 펴기 위해.)
총련소식
애국의 종소리를 더 힘차게 울리리
최근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이 시집 《종소리》 제100호를 발행하였다.《종소리》는 애국애족에 사는 재일동포들의 정서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말없는 길동무이다.뜻깊은 계기를 맞이한 동포들은 류다른 감회에 잠겨있다.
1990년대말 동포시인들의 생각은 깊었다.
(애국위업의 명맥을 고수하고 민족성을 지켜나가는데서도 시문학이 앞장서야 한다.동포들의 지향에 맞는 새로운 시문학을 창작하자.)
이렇게 결심한 그들은 동포들의 가슴속에 애국의 종소리를 울려준다는 의미에서 《종소리》시인회를 뭇고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벌려나갔다.거의 모두가 관록있는 시인들이였지만 시의 서정성, 종자문제 등 시문학창작의 기초적인 문제들부터 초학도의 심정으로 새로이 학습해나갔다.수시로 열린 창작발표회에서는 새로운 작품들에 대한 기탄없는 의견이 제기되고 합평이 이루어졌다.그들의 불같은 창작적열정과 노력에 의해 2000년 1월 마침내 《종소리》의 창간호가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
그후 25년간 130여명의 동포시인들이 창작한 근 2 300편의 시작품이 《종소리》에 게재되였다.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 화목한 동포사회와 민족교육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다.동포들의 심금을 울리고 새세대들이 즐겨읊을수 있는 참신한 시작품들을 더 많이 창작하겠다는 확고한 의지 안고 총련의 재능있는 시인들은 오늘도 창작의 길을 이어가고있다.
민족교육지원사업에 힘을 넣어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은 총련과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이며 재일동포사회의 존립과 장래가 달려있는 만년대계의 애국사업이다.총련의 각급 조직들이 민족교육사업을 제1순위에 놓고 학교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운동을 일관하게 벌려 민족교육의 정당성과 생활력이 남김없이 과시되도록 하고있다.말단기층조직인 분회들이 큰 몫을 담당수행하고있다.
총련 혹가이도 삿뽀로지부 미나미분회가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를 도와주기 위한 사업에 힘을 넣고있다.조청, 청상회활동을 통하여 단련된 핵심동포들로 구성된 분회위원회는 학교를 위한 일들을 수많이 찾아하고있다.분회위원들은 학생들에게 학교에 대한 동포들의 사랑의 마음, 우리 분회의 지성을 보여주자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푸짐한 점심식사를 자주 보장해주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하고있다.학생인입사업에도 힘을 넣고있다.
총련 아이찌현 미나미지부 미도리도요이에분회에서도 민족교육을 고수발전시켜나가는 사업을 자기 활동의 첫자리에 놓고 학생인입사업과 학교에 대한 지원사업을 적극화하고있다.지난해 새 교육시설을 준공하는데도 이 분회가 한몫 단단히 하였다.지난해말에 진행된 어느한 회의에서 이곳 분회장은 새시대의 요구에 맞게 동포대중주인형, 동포대중참가형으로 민족교육지원사업을 적극 벌려나가겠다고 결의다지여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최근에 재건된 총련 교또부 미나미야마시로지부 후지오구아분회에서도 학교를 위한 사업에 온갖 지성을 바치고있다.
일본각지에서 경쟁적으로 벌어지고있는 학교지원사업은 분회들을 더욱 활성화시키고있다.(전문 보기)
총련소식
어머니조국의 숨결을 느끼며
최근 총련의 여러 단위와 학교들에서 조국을 방문하였던 동포들의 강연이 진행되고있다.
지난해 졸업학년학생조국방문단성원으로 그리운 조국땅을 밟았던 총련 조선대학교 정치경제학부 학생이 강사로서 니시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 학생들앞에 나섰다.
그는 급속도로 변모되는 조국의 모습을 자기들이 찍어온 사진과 동영상으로 소개하면서 조국에서 받아안은 사랑, 보고 듣고 느낀 모든것에 대하여 절절하게 이야기하였다.
《우리 조국의 미래는 참으로 창창합니다.》
강사의 이 격조높은 목소리는 장내를 환희로 설레이게 하였다.
소년단사업을 잘하는 모범학교의 영예를 계속 빛내이며 지덕체를 겸비한 민족인재로 튼튼히 준비해가라는 강사의 부탁에 학생들은 열렬한 박수로 화답하였다.
지난해 9월 공화국창건 76돐경축 재일본조선인축하단에 망라되여 조국을 방문하였던 재일본조선청년동맹 중앙상임위원회 위원장도 같은 날 이 학교 교원들앞에서 강연을 진행하였다.
그는 교원들에게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을 지켜간다는 영예와 긍지감을 안고 학생들을 애국위업의 미더운 역군으로 키워달라고 호소하였다.
한편 지난해 조국을 방문하였던 조선신보사 기자는 도꾜조선제9초급학교에서 조국방문소감을 발표하였다.조국에 대하여 잘 알아야 참된 조선사람으로 자라날수 있다는것이 그의 이야기의 골자였다.
웅장화려한 거리들, 대규모온실농장, 인민의 기쁨이 넘쳐나는 문화정서생활거점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조국의 현실을 방불하게 그려보인 그의 이야기는 나어린 학생들에게 깊은 감흥을 주었다.
학생들은 《어서빨리 조국에 가고싶다.》, 《조국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여 정말 기쁘다.》라고 흥분된 심정을 터치였다.
관심을 모으는 학교창립기념행사
오는 4월 총련 도호꾸조선초중급학교는 창립 60돐을 맞이한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 지역동포사회가 들끓고있다.정다운 모교를 위해, 자식들을 훌륭한 민족의 아들딸들로 키워주는 학교를 위해 온갖 지성을 다 기울여온 이곳 동포들이다.
학교창립기념일때면 행사장이 민족교육의 화원을 세세년년 아름답게 가꾸어갈 동포들의 드높은 애국열의로 끓어번지군 하였다.
이번에도 학교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자고 하면서 모두가 떨쳐나서고있다.
현상공회 부회장과 학교련합동창회 회장을 비롯하여 총련과 녀성동맹, 상공회, 청상회 등의 대표들로 학교창립 60돐 기념사업실행위원회가 조직되였다.
실행위원회는 기념공연부문, 기금부문, 력사자료수집부문, 선전부문 등으로 구성되여있는데 각기 활발하게 움직이고있다.
학교에 새로 꾸리게 될 력사자료실에는 동포사회의 력사와 학교의 연혁이 심도있게 반영되게 된다고 한다.새 통학뻐스와 조명설비들을 마련해주기 위한 사업도 잘 진척되고있다.
이곳 동포들은 학교창립기념행사를 민족교육에 대한 지원열의를 더욱 고조시키는 계기로 만들려 하고있다.
민족교육을 위해 바치는 동포들의 이런 뜨거운 진정은 새세대들의 가슴속에 애국의 마음을 심어주고 이역땅에서 민족의 대가 변함없이 이어지게 하고있다.(전문 보기)
순결한 량심으로 애국의 화원을 가꾸어가는 사람들 -조국을 방문한 총련의 교육자들을 만나보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민족교육사업은 총련의 존망과 애국위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이며 천하지대본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자기들의 교육년한에 대해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어줍게 웃으며 옆에 앉은 조선대학교 동창생이라는 교원에게 졸업년도를 확인해보는 사람, 손가락을 꼽으면서 해수를 세여보는 사람, 다사다난하였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는듯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사람…
한참만에야 《28년, 25년, 19년…》이라는 말이 그들의 입에서 튀여나왔다.단장인 총련 교또조선중고급학교 교장 문봉수선생은 25년, 가나가와조선중고급학교 국어교원인 윤기순선생은 28년, 고베조선고급학교 국어교원인 양금녀선생은 19년, 규슈조선초중고급학교 물리교원인 김미우선생은 10년이였다.황금만능의 자본주의이역땅에서, 민족교육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우심한 일본땅에서 애국의 화원을 가꾸어가는데 여념이 없었던 그들이였으니 자기들의 교육년한에 대해 제꺽 대답할수 없었던것이다.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을 인솔하고 조국에 온 총련의 교육자들과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였다.동포자녀들을 우리 말과 글, 민족의 찬란한 력사와 문화를 알고 어머니조국에 충정다하는 참된 조선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민족교육의 성스러운 교단을 지켜가고있는 한없이 순박하고 결곡한 사람들을 우리는 보았다.그 어떤 보수나 평가도 바람이 없이 오로지 애국위업의 명맥을 잇기 위해 남모르는 헌신의 길을 걸어가고있는 그들의 고결한 인생관을 첫 대화에서부터 느낄수 있었다.
그들이 교단에 서게 된 동기는 각이하였다.
문봉수선생은 학교시절 스승의 모습부터 떠올렸다.제자들에게 조선사람된 긍지감을 새겨주고 언제나 바른길로 이끌어주던 선생님을 보면서 교원이 될 결심을 굳히였다는 그였다.
윤기순선생은 조선대학교에 진학할무렵 선택이 변경되였다고 웃으며 추억하였다.그의 희망은 조선대학교 정치경제학부나 외국어학부에서 공부하여 경제학이나 외국어전문가가 되는것이였다.
어느날 담임교원이 그를 가까이로 불렀다.
《기순이가 전망문제를 놓고 생각이 많다지?》
《선생님, 아직 결심이 서지 못하였습니다.》
이윽토록 사랑하는 제자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던 담임교원은 나직이 말을 이었다.
《난 기순이가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는 국어교원이 되였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한장의 종이를 내놓는것이였다.언제인가 기순이 지었던 작문이였다.본인도 잊어버린 작문이였지만 기순의 문학적재능을 헤아려본 담임교원은 그것을 몇년세월 간수하고있었던것이다.기순은 그때 뜨거운것을 삼키며 존경하는 선생님처럼 교단에 설 결심을 다지였다.인생의 목표를 다시 정하였다.
양금녀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한 1994년 설맞이공연에 참가하였던 사람이다.꿈만 같은 무상의 영광을 받아안으며, 어머니조국의 따뜻한 품속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며 나어린 금녀는 생각이 깊었다.세상에 부럼없이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는 조국의 학생소년들을 보면서 앞으로 꼭 교원이 되여 이역의 학생소년들도 훌륭하게 키울 결심을 품게 되였다.
우리가 만나본 일행중 제일 나이가 젊은 김미우선생은 교단에 선지 꼭 10년째만에 조국을 방문하였다.고급학교시절 고등학교지원대상에서 재일조선학교를 제외시킨 일본반동들의 민족차별책동을 반대하여 투쟁에 나선 그는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인 민족교육을 굳건히 고수하고 발전시켜나갈 굳은 의지를 가다듬고 조선대학교로 진학하였고 졸업후 교단에 섰다.
이렇게 시작한 인생길이였다.어려운 길을 헤쳐왔지만 그들은 언제한번 자기들의 선택을 후회한적이 없었다.무엇때문인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저의 뇌리에는 제14차 전국교원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던 때가 떠오르군 합니다.우리 원수님의 하늘같은 믿음과 기대에 얼마나 보답했던가 하고 되새겨보게 됩니다.》
문봉수선생은 이렇게 말하며 5년전 총련교육일군대표단의 한 성원으로 조국에서 진행된 전국교원대회에 참가하였던 때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대회기간 그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을 받아안으면서 그리고 몸은 비록 바람세찬 이역땅에 있어도 마음은 아버지원수님께서 계시는 조국에 두고 주체교육의 대, 애국의 대를 꿋꿋이 이어가는 총련의 교육자들을 소리높이 자랑한다는 조선소년단축하단의 축하시를 들으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꿈결에도 뵙고싶던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던 그날 촬영대의 맨 앞줄 중심에 서서 열광적인 환호를 올리던 총련의 교육일군들은 일순 굳어졌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자기들을 알아보시고 반색하시는것이 아닌가.그이께서는 이번에 몇명 왔는가, 단장은 어데 있는가고 다정하게 물으시며 매 사람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총련의 교육자들은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한생을 묵묵히 애국의 뿌리가 되고 밑거름이 되여 부강번영할 조국의 미래를 가꾸어가는 수많은 교육자들에 비해볼 때 별로 한 일이 없는 자기들에게 이토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니 이 감격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이역의 교육자들이 받아안은 영광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전체 대회참가자들과의 기념촬영이 끝난 후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역땅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민족교육사업의 강화발전을 위해 헌신분투하며 애국충정의 바통을 굳건히 이어가고있는 총련교육자들의 남모르는 수고를 헤아려주시며 총련교육일군대표단 성원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였다.이렇게 되여 총련교육일군대표단 성원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또다시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게 되였다.
문봉수선생은 그날의 그 감격을 평생 잊지 못할것같다고 하면서 경애하는 원수님의 따사로운 품이 있기에 사나운 광풍이 불어도 애국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려는 신념은 확고부동하다고, 원수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참다운 삶의 자욱을 새겨나가겠다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다른 교원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지켜선 학교를 조국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후대들을 위해 뿌리가 되고 토양이 되겠다는 윤미순선생, 비록 몸은 이역에 있어도 마음은 늘 조국과 함께 있다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조국의 따뜻함, 조국의 귀중함을 새겨주겠다는 양금녀선생, 머지않아 자기가 졸업시킨 첫 제자가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원으로 배치되여온다고 하면서 제자와 함께 민족교육의 대를 꿋꿋이 이어나가겠다고 한 김미우선생, 그들의 말속에는 하나같이 총련의 학생들을 애국위업의 역군으로 억세게 키워나가려는 굳은 신념이 어려있었다.
만나보니 하나같이 소박한 사람들이였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다.
황금만능의 이역땅에서 일신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오로지 민족교육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헌신하고있는 이런 미더운 동포교육자들이 있기에 총련애국위업의 바통이 굳건히 이어지고있는것이다.(전문 보기)
《우리는 앞을 본다, 미래를 확신한다》 -총련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의 연극창조과정에 있은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어도 언제나 마음속에 조국을 안고 살아야 하며 사회주의조국의 절대적인 지지자, 견결한 옹호자가 되여야 합니다.》
1983년 총련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를 졸업하게 된 학생들은 애국위업의 억센 기둥으로 자라날 결의를 담아 학교구내에 나무를 심었다.40여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 그 나무들은 푸르른 거목으로 자라나 설레이고있다.
한 학생이 이를 가지고 작문을 썼다.작문이 제45차 재일조선학생글짓기현상모집경연 《꽃송이》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후 교정의 그 나무들에 대한 학생들의 사랑의 감정은 더욱 깊어갔다.
어느날 선생님이 작문을 지은 학생을 가까이로 불렀다.
《학생이 썼던 작문을 소재로 삼아 연극을 만들려고 합니다.푸르러 설레이는 나무들과 더불어 민족교육과 동포사회의 창창한 래일을 내다본다는것이 작품의 주제입니다.머지않아 문화축전을 열게 되는데 잘 만들어보자요.주인공은 물론 학생입니다.》
나어린 학생의 가슴속에서는 환희의 회오리가 일었다.
(야! 참 멋지겠구나.우리가 연극을 하다니.)
대본은 인차 만들어졌고 출연자들은 연극창조에 달라붙었다.무대가 따로 없었다.교실에서도 집에서도 통학길에서도 모두가 대사를 익히고 연기훈련을 하였다.전차안에서 혼자 대사를 중얼거리다가 뭇사람의 의아한 시선을 받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어느날 오랜 세월 교육자로 사업한 주인공학생의 외할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왔다.
《너희들이 민족교육과 관련한 연극을 만든다지.참 용타.》
머루알같은 눈을 깜빡이는 학생들에게 로인은 민족교육의 력사, 총련의 력사에 대하여 자상히 이야기하여주었다.
그는 조국해방직후 일본 각지에 세워진 국어강습소들, 비록 유리창 하나 변변한것 없는 낡은 교사이지만 우리 말과 글을 배우니 정말 좋다고 웃고떠들던 아이들의 모습부터 떠올렸다.
당시 판자집이라도 자체의 교사를 가지고있는 교육단위는 몇개 안되였고 대다수가 일본학교의 교실들이나 초라한 건물들에서 불편한 곁방살이를 하고있었다고 한다.교구비품도 변변한것이 없었다.소학교 1학년생이나 앉을 작은 걸상에 중학생들이 웅크리고앉아 공부하는 형편이였다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게다가 일본반동들은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교육에 대한 지원은 고사하고 그를 말살하기 위해 총칼탄압도 서슴지 않았다.그에 항거하여 일어난것이 바로 재일동포들의 4.24교육투쟁이라고 하면서 로인은 말을 이었다.
《차디찬 방에서 곱아드는 손가락을 입김으로 녹이며 우리말 교과서를 한권한권 만들고 눈물겨운 돈 한푼한푼을 모아 판자집교사의 지붕이나마 얹으며 쓰라린 마음을 달래던 우리 동포들이였다.그런데 허리띠를 졸라매고 복구건설을 다그치고있는 조국에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여올줄을 그 누가 꿈에도 생각해보았겠느냐.》
낡을대로 낡고 비좁던 학교대신 사랑의 교육원조비로 건설된 현대적인 학교로 씩씩하게 등교하는 자식들의 환희에 넘친 모습을 보며 동포들은 《이 세상에 우리 수령님처럼 은정깊고 위대하신분은 없다.》, 《어버이수령님의 하늘같은 은덕으로 이제는 우리 애들이 마음껏 공부하게 되였다.》고 격정을 터치였다.
그 광경이 오늘도 눈에 선한듯 물기에 젖은 눈을 슴벅이며 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조국의 은혜로운 손길이 있어 어지러운 잡바람이 스며들지 못하는 청신한 교정에서 너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아버지, 어머니들이 배움의 글소리 랑랑히 울리며 민족의 넋을 새겨안고 어엿하게 성장하였다.애국의 대를 꿋꿋이 이어왔다.우리 동포들처럼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민족적차별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민족성을 잃지 않고 존엄있게 살아가는 해외동포들이 어디에 있느냐.조국의 사랑이 어려있는 민족교육의 화원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키웠다.
오늘은 너희들이 이곳에서 씩씩하게 자라나고있다.부디 잊지 말아라.애국의 바통을 굳건히 이어가야 한다는것을.》
로인이 돌아간 후 선생님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일부 학생들이 동포사회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품고있습니다.하지만 총련의 력사를 돌이켜봅시다.총련에 대한 탄압, 민족교육에 대한 차별이 단 하루도 그치지 않았지만 선대들은 미래를 확신하며 애국의 화원을 가꾸고 지켜오시였습니다.
우리모두 앞을 봅시다. 위대한 조국이 있는한 우리에게는 언제나 밝은 미래만이 있습니다.이런 마음 안고 달라붙는다면 연극이 잘될수 있습니다.》
흥분된 학생들은 서로 손과 손을 굳게 맞잡았다.
《잘해보자.미래를 확신하며.》
마침내 연극 《앞을 보리라》의 막이 올랐다.
…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
앞날을 그려본 사람들이 있었다
줄기차게 이어온 애국의 력사가
우리에게 있다
그 긍지와 자랑 안고
우리 여기에 서있다
앞날을 밝히는 씩씩한 사람으로
우리 자라나리라
우리 앞을 보리라
전체 출연자들의 합창시로 마감한 연극은 관중의 심금을 틀어잡았다.장내가 떠나갈듯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처음으로 연극에 출연하여 대절찬을 받은 학생들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이때 주인공학생의 외할아버지가 교장선생님과 함께 무대로 올라왔다.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외할아버지를 보며 주인공학생도 울었다.모든 학생들이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로인의 미소에는 미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후대들에 대한 대견함이, 흘리는 눈물에는 애국의 대가 굳건히 이어지는데 대한 환희가 비껴있었다.
격정이 굽이치는 무대에서 학생들은 애국위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온 선대들의 고상한 정신세계를 본받아 조국과 총련을 떠받드는 미래의 역군으로 튼튼히 준비해갈 마음속결의를 다지였다.
로인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서 그들은 사진을 찍었다.약속이나 한듯 모두 불끈 쥔 주먹을 쳐들었다.
애국의 의지가 어린 억센 주먹, 활력이 넘치는 주먹을.(전문 보기)
총련소식
미더운 새세대들
지난 3월 총련 조선대학교 교정을 떠나 애국의 초소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자국을 내디딘 졸업생들가운데는 교육분야로 진출한 청년들이 적지 않다.
교육학부 졸업생인 리유정은 총련 와까야마조선초중급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였다.
새세대들을 재일조선인운동의 미래를 담보하는 총련의 어엿한 기둥감들로, 어머니조국에 충정다하는 참된 조선사람으로 키워나가겠다는것이 그의 결심이다.비록 낯선 지방에 가지만 교정을 나서면서 동창생들과 약속한대로 애국운동의 거창한 실천속에서 자기의 의지를 검증받겠다고 그는 힘주어 말하였다.
혹가이도출신이지만 가나가와현에서 교원생활을 하게 된 외국어학부 졸업생 황영휘청년의 심정도 마찬가지이다.외국어검정시험에서 높은 자격을 얻은 그에게 있어서 갈 곳은 많았다.하지만 우리 학교가 더 귀중하다고 하면서 그는 주저없이 교원대렬에 들어섰다.그의 아버지와 형도 도꾜와 혹가이도에서 교원생활을 하고있다.훌륭한 교육자일가이다.
문학력사학부 졸업생인 강리향은 대학기간 연극소조활동을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였다고 한다.졸업공연에서도 그는 4.24교육투쟁을 주제로 한 연극 《약속》에 출연하였다.후대교육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치리라 굳게 결심한 그는 총련 군마조선초중급학교 교원으로 되였다.
동포사회는 이들의 앞날을 열렬히 축복해주었다.당당한 조선사람으로 키워준 어머니조국과 총련조직의 사랑과 믿음을 소중히 간직하고 애국의 길을 걷는 새세대들, 그 모습이 얼마나 미덥고 자랑스러운가.
학교를 위해 바치는 지성
총련 니시도꾜조선제2초중급학교는 도꾜도와 가나가와현이 린접한 곳에 자리잡고있다.
사실 이 학교는 일본당국의 극심한 민족차별정책으로 인한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한때 페교의 위기에까지 몰리웠었다.그때 교직원들은 학교가 없어지면 지역동포사회의 불이 꺼지게 된다고 하면서 강인한 의지로 떨쳐일어나 학교를 지켜냈다.
이 학교에 대한 동포사회의 애착은 남다르다.
2개의 총련지부가 학교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있다.학생인입사업과 학교지원사업을 맡은 교육대책위원회에는 총련지부들과 함께 녀성동맹, 조청, 청상회 등 각 단체들이 망라되여있는데 모두 자기 맡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있다.
조청 마찌다지부가 특히 모범이다.
이곳 조청원들은 모두 젊은 청년들이지만 미래의 학부형이라는 관점에서 학교사업에 늘 왼심을 쓰고있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학생들과의 교류모임을 통하여 자기들의 사명감을 더욱 깊이 자각한 조청원들은 조건은 비록 어렵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학교를 끝까지 지키자고 하면서 교육지원사업에 성심성의를 다하고있다.
대오의 확대강화를 비롯한 조직의 활성화도 바로 이 사업을 통하여 더욱 촉진되고있다.
총련부흥의 새시대에로 향한 영예로운 진군길에서 선봉대, 돌격대의 기치는 마땅히 동포청년들이 들어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이곳 조청원들은 더욱 분발하여 투쟁하고있다.(전문 보기)
《조선학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그만두라!》 -재일동포들 항의행동 전개-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고등학교지원제도의 적용을 요구하는 금요행동이 15일 일본 문부과학성앞에서 진행되였다.
조선대학교와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 교원들과 학부모들을 비롯한 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알려진바와 같이 반공화국적대시책동에 피눈이 되여 날뛰는 일본반동들은 2010년부터 오늘까지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유독 조선학교만을 완전히 배제시키고있다.
그동안 재일동포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당국의 부당한 차별책동에 맞서 항의행동을 벌려왔다.
500번째로 진행된 이날의 항의행동에서 참가자들은 간또대지진당시 일제가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 100년, 재일동포들의 4.24교육투쟁 75년, 일본의 조선학교차별행위 1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집요하게 감행되고있는 일본당국의 조선인차별책동을 규탄하고 민족교육을 보장할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당국의 차별속에서도 가슴펴고 살아갈 힘을 안겨주고 조선사람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준 민족교육을 후대들에게 이어줄 의지를 표명하였다.
아이들을 공격하는 일본정부의 차별정책은 용납할수 없다고 하면서 그들은 학생들의 배움의 권리가 차별없이 보장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투쟁해나갈것을 호소하였다.
조선인차별행위의 근원은 바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청산되지 않은데 있다고 규탄하고 그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그만두라!》,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지원제도를 적용하라!》 등의 구호들을 웨쳤다.
앞서 항의행동참가자들은 문부과학성에 대한 요청활동을 벌렸다.
항의행동에 참가한 한 학생은 당연히 보장되여야 할 권리가 실현되지 못하는 일본사회에 대한 분노를 금할수 없다, 금요행동이 앞으로 1 000번을 넘어 계속되더라도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해 힘차게 투쟁해나갈것이다고 말하였다.
항의행동참가자들은 일본내각부와 문부과학성에 요청문을 보내여 일본당국이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차별행위를 당장 철회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전문 보기)
민족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애국운동 활발히 진행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에서-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제25차 전체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내주신 강령적서한을 높이 받들고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청상회)가 총련애국위업의 생명선인 민족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애국운동을 활발히 진행하고있다.
청상회에서는 《조선학교가 없는 지역의 아이들에게도 우리 학교를!》이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일본각지의 조선학생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기 위한 준정규교육망을 확대해나가고있다.
거주지역에 조선학교가 없거나 통학거리가 멀어 일본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우리 말과 글, 우리 력사와 문화를 배워주는 한편 그들을 조선학교들에 편입시키기 위하여 《청상회학원》을 내와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이바라기조선초중고급학교에서 지난 3월 26일부터 29일까지 제1차 《청상회학원》이 운영되였다.
학원운영기간 국어, 조선력사와 동포학생들이 비록 일본에서 살고있지만 조선사람으로 떳떳이 살아야 한다는 내용의 강의, 문예체육소조활동을 진행하였다.또한 학원에서 배운 우리 말과 우리 노래, 장고장단발표모임도 하였다.
4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우리 말로 서로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하게 된 학생들은 《내가 배운 우리 말중에서 〈우리 학교〉란 말이 제일 마음에 든다.앞으로 우리 말을 자유롭게 할수 있게 열심히 노력하겠다.》, 《집으로 돌아가고싶지 않다.다음해에 꼭 다시 오겠다.》고 흥분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학부형들은 다음해에도 자식들이 《청상회학원》에 보내줄것을 청하는 모습을 보니 감동되였다, 자식들에게 민족성고수의 출발점, 애국의 첫걸음을 떼여주는 귀중한 체험을 마련해준 청상회와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정말 고마왔다고 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특히 오사까부청상회에서는 재일동포들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차별책동이 우심해지고있는 속에서도 3월 1일 제1차 《꽃봉오리올림픽 2023》행사를 가지였다.
오사까부, 와까야마현, 나라현의 조선유치원과 조선학교 초, 중, 고급부 학생 8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속셈, 기억력경쟁 등 18개 종목의 경기는 동포어린이들과 학생들속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오사까부청상회 성원들은 동포어린이들과 학생들의 높은 능력과 그들이 지닌 재능을 실감하면서 동포어린이들과 학생들의 웃음은 청상회활동의 보람이며 우리들의 행복이다, 앞으로 후대교육사업에 적극 기여할것이다고 다짐하였다.
도꾜조선중고급학교에서도 4월 23일 도꾜도청상회의 주최로 《반짝, 반짝 꽃봉오리》행사를 진행하였다.
도꾜도안의 우리 학교 학생들, 총련본부관하 일군들과 동포들 1 300여명이 참가한 행사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우리 꽃봉오리》라는 주제의 공연과 동포들을 위한 도꾜조선가무단공연에 이어 아이들의 즐거운 유희오락경기가 있었다.
행사를 통해 도꾜도청상회 성원들은 유족한 동포사회와 꽃봉오리들의 미래를 위하여 민족교육지원사업에 보다 적극 이바지할 의지를 표명하였다.(전문 보기)
4.24교육투쟁 75돐 기념행사 일본 도꾜에서 진행
총련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권리와 존엄을 지켜낸 4.24교육투쟁 75돐을 맞으며 재일동포들의 기념행사가 일본 도꾜에서 전개되였다.
22일 재일본조선인중앙집회가 도꾜에 있는 조선회관에서 진행되였다.
송근학 총련중앙상임위원회 부의장 겸 교육국장, 윤태길 재일본조선인교직원동맹(교직동) 중앙상임위원회 위원장, 리성철 재일본조선인교육회 중앙상임리사회 회장, 한동성 조선대학교 학장, 간또지방 교직동 동맹원들과 교육회 일군들, 총련 각급 기관의 일군들과 동포들, 조선대학교 학생대표들과 아버지회, 어머니회 성원들이 집회에 참가하였다.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가 보내온 련대사를 송근학부의장 겸 교육국장이 랑독하였다.
윤태길 재일본조선인교직원동맹 중앙상임위원회 위원장이 보고를 하였다.
보고자는 4.24교육투쟁의 빛나는 승리와 그 력사적의의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총련의 민족교육사업을 재일조선인운동의 미래를 책임질수 있는 교육, 동포들이 자녀들을 마음놓고 맡길수 있는 교육으로 강화발전시켜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일본당국의 식민주의적본성은 예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며 오늘의 민족교육의 권리상황은 75년전을 방불케 한다고 하면서 그는 신성한 민족교육의 권리를 반드시 옹호고수할것을 호소하였다.
집회에서는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랑독되였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장내에서는 일본당국의 민족교육차별책동을 반대규탄하고 교육권옹호확대를 위한 투쟁을 힘차게 벌려나갈것을 호소하는 구호들이 울려나왔다.
집회에 앞서 참가자들은 조국사에서 보내온 록화편집물 《투쟁으로 지켜온 민족교육》을 시청하였다.
이날 4.24교육투쟁 75돐기념 력사자료전시회가 있었다.
한편 총련중앙상임위원회는 민족교육권옹호투쟁을 첫 포성으로 하여 권익옹호투쟁의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하여 총련중앙교육권옹호투쟁추진위원회를 재편성하고 현본부들에도 총련본부교육권옹호투쟁추진위원회를 내오기로 하였다.
21일 4.24교육투쟁 75돐기념 금요행동이 일본 문부과학성앞에서 진행되였다.
간또지방의 총련일군들과 동포들, 조선학원 관계자들과 조선유치반보호자련락회 성원들을 비롯한 조선학교 학부모들, 조선대학교와 조선고급학교 학생들과 일본의 련대성단체 성원들이 금요행동에 참가하였다.
총련중앙교육권옹호투쟁추진위원회 성원들인 남승우 총련중앙상임위원회 부의장, 송근학부의장 겸 교육국장, 서충언부의장 겸 국제통일국장과 사무국 성원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금요행동에서는 일본당국의 조선학교차별책동을 규탄하여 재일동포들의 성토발언과 일본인사들의 련대발언이 있었다.
발언자들은 4.24교육투쟁이 있은 때로부터 7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당국에 의한 식민주의적인 민족교육탄압이 계속되고있다고 규탄하였다.
그들은 세대와 세기가 바뀌였으나 조선학교를 말살하려는 미제와 일본당국의 반동적본성에는 변함이 없다고 단죄하면서 참다운 민족권리는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수 있다는 진리를 가슴깊이 새기고 더욱 굳게 단결하여 일본당국의 민족교육에 대한 차별정책을 철회시키고 제반 권리를 쟁취할 때까지 굴함없이 싸워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참가자들은 조선학교차별철회 등을 요구하는 구호들을 웨쳤다.(전문 보기)
재일조선인민족교육말살을 노린 일본반동들의 만고죄악의 력사는 절대로 부정할수 없다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 비망록-
우리 인민의 천년숙적인 일본의 죄악에 찬 력사속에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와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말살하기 위하여 감행한 피비린내나는 범죄의 행적도 무수히 찍혀져있다.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는 민족교육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재일동포들의 4.24교육투쟁 75돐을 맞으며 동서고금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일본반동들의 극악무도한 민족교육말살범죄를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하여 이 비망록을 발표한다.
전대미문의 국가적인 테로행위
일본당국은 패망후부터 오늘까지 재일조선인민족교육말살을 국책으로 삼고 집요하고 악랄하게 추진하여왔다.
일제의 식민지우민화, 《황국신민화》정책으로 현해탄건너 일본땅에서 온갖 민족적멸시와 차별속에 살아온 재일동포들은 해방후 자녀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배워주어 그들을 민족의 넋을 지닌 조선사람으로 키워내기 위하여 피땀에 절은 푼전을 모아 일본도처에 국어강습소들을 일떠세웠다.그후 국어강습소는 점차 학교로 발전하여 1948년초 조선학교수는 무려 500여개, 학생수는 6만여명, 교원수는 1 300여명에 이르게 되였다.
날로 확대되는 재일조선학교의 존재는 조선전쟁준비에 미쳐날뛰던 미일반동들에게 있어서 골치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1948년 1월 6일 미륙군장관 로이얄은 《일본을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방벽으로 만들겠다.그러자면 반미세력을 철저히 제거해버려야 한다.》라고 줴치면서 그 예봉을 재일조선인운동에 대한 전면탄압에 돌리도록 하였다.이자의 객적은 망발은 패망의 분풀이를 하지 못해 몸살을 앓고있던 군국주의광신자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미국상전으로부터 가장 구미동하는 먹이감을 받아문 일본반동당국은 1948년 1월 24일 문부성 학교교육국장의 명의로 《조선인설립학교의 취급에 대하여》라는 지령을 각 도, 도, 부, 현지사들에게 하달하였다.
조선인의 독자적인 학교설치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재일조선인자녀들은 반드시 일본학교에 입학하여야 한다는 강도적인 요구가 담긴 《1.24지령》은 일제가 식민지통치시기 우리 인민에게 동화교육을 강요하였던 악명높은 《조선교육령》의 갱신판이였다.
재일동포들이 황당무계한 《지령》을 당장 철회하며 재일조선인들의 교육을 조선사람들의 독자성에 맡길것을 요구하여 결연히 투쟁에 떨쳐나서자 일본반동들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민족교육을 요람기에 말살하려는 일본반동들의 야만적인 폭거는 재일동포들의 치솟는 격분을 자아내였으며 재일조선인운동사에 4.24교육투쟁으로 기록된 대중적항거를 낳았다.
이에 질겁한 고베주둔 미점령군은 4월 24일 23시 30분 미8군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비상사태선언》을 공포하고 대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미일반동들은 효고와 오사까, 오까야마 등지에서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 효고현본부 위원장을 비롯한 3 076명의 애국적활동가들과 교원들, 동포들을 체포투옥하였으며 4월 25일에는 고베시에서 1 572명의 동포들을 체포련행하였다.미일반동들은 4월 26일 5 000여명에 달하는 방대한 경찰무력을 내몰아 오사까항의집회에 참가한 재일동포들에게 물총을 쏘아대고 총탄까지 란사하였다.
이 류혈적이며 야만적인 탄압으로 수많은 동포들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16살 난 김태일소년은 흉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바로 이것이 패망후 일본당국이 감행한 재일조선인민족교육에 대한 첫 국가적인 테로행위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과 함께 재일동포들의 민심이 더더욱 평양으로 쏠리게 되자 미일반동들은 1949년 9월 8일 《폭력단체》, 《점령정책위반》이라는 당치않은 구실을 붙여 조련을 강제해산시켰으며 10월에는 또다시 조선학교해산결정을 내리였다.
이에 따라 10월 19일부터 일본전역에서 조선학교들에 대한 강제해산이 강행되였으며 340여개에 달하는 재일조선학교가 페쇄몰수되거나 비법화되였다.
재일조선인민족교육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테로행위는 조선전쟁시기에 더욱 살벌하게 감행되였다.
우리 공화국의 존엄높은 해외공민단체인 총련결성이후 일본반동들은 불법무법의 《외국인학교법안》이라는것을 조작하여 총련민족교육을 공개, 합법적으로 말살해보려고 획책하였다.
《외국인학교법안》은 일본정부의 문부상이 재일조선학교의 관리운영권을 틀어쥐고 교육내용의 변경으로부터 교원임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권한을 장악함으로써 총련의 민족교육을 전면적으로 탄압말살하고 동포자녀들에게 동화교육을 강요하려는 파쑈악법이였다.
1948년 12월 10일에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제26조 2항에는 《교육은 인간의 개성을 충분히 발전시키며 인권과 기본자유를 더욱 존중하도록 하는데 이바지하여야 한다.교육은 모든 인민들과 인종들 그리고 종교집단사이의 호상 리해와 량해, 친선을 도모하며 평화유지를 위한 유엔활동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라고 규제되여있다.
그러나 1965년 12월 일본수상 사또는 참의원 특별위원회에서 《식민지에서 해방되여 독립하였다면 독립된 교육을 하여야 하되 그것은 그 나라에서 하여야 하며 여기는 일본이기때문에 일본에서 그것을 요구하여도 그렇게 할수 없다.》는 망발을 늘어놓았다.군국주의괴수의 이 후안무치한 궤변에는 일제의 조선강점과 야만통치가 빚어낸 죄악의 력사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재일조선인문제를 일반 외국인문제속에 용해시키려는 일본당국의 비렬한 정치적속심이 그대로 깔려있었다.
일본반동들이 총련민족교육을 겨냥한 최대악법을 립법화하기 위하여 얼마나 발광하였는가 하는것은 1966년부터 1972년까지 무려 7차례에 걸쳐 《외국인학교법안》성립을 기도하고 국회에 5번이나 상정시킨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하지만 우리 공화국의 강경한 립장과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격렬한 항의투쟁, 내외여론의 규탄에 부딪쳐 《외국인학교법안》은 상정될 때마다 페안되였으며 일본반동정부의 조선학교페쇄기도는 여지없이 파탄되였다.
반공화국, 반조선인감정이 골수까지 꽉 들어찬 일본반동당국은 지난 수십년간 조선학교들에 대한 각종 규제와 탄압을 일삼으면서 재일조선인민족교육말살책동에 집요하게 매여달렸다.
력사적사실은 일본당국의 민족교육탄압책동은 조선민족을 동화시켜 저들의 영원한 노예로 만들려는 정치적야망으로부터 출발한 국가적인 범죄행위였다는것을 명명백백히 립증해주고있다.
살인, 방화, 집단폭행의 주범
일본당국은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을 말살하기 위하여 민족배타주의가 뼈속까지 배여있는 극우익깡패들을 내세워 조선학교들과 재일동포자녀들을 대상으로 살인, 방화, 집단폭행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일본반동들이 손때묻혀 길러낸 우익깡패들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조선학교 학생들을 살해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1962년 7월 규슈조선중고급학교 차철이학생은 조선학교 교복을 입고 조선말을 한다는 리유로 일본불량배의 칼에 찔려 14살 꽃나이에 숨을 거두었다.같은 해 11월 3일에는 가나가와조선중고급학교 신영철(15살)학생이 일본 호세이대학부속 제2고등학교에서 진행되는 문화전시회를 참관하던 도중 이 학교 불량배들의 폭행으로 두개골이 깨여져 절명하였다.
1963년 5월 2일 저녁 도꾜도 시부야역 도요꼬백화점 지하거리에서 일본 고꾸시깡대학부속 고등학교 불량학생 25명은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 5명에게 생트집을 걸어 집단폭행을 가하다 못해 변광식학생의 오른쪽다리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5월 17일 일본 닥쇼꾸제1고등학교 불량배 3명과 그를 배후조종한 극우익분자에 의하여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이 백주에 칼에 찔리우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였다.
일본당국은 이런 극히 위험한 살인사건, 살인미수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살인범, 혐의자들을 적극 비호하였으며 《증거부족》이라느니, 《도망칠 위험이 없다.》느니 하는 미명하에 체포한 범인들을 감싸주거나 놓아주면서 파렴치하게 놀아대였다.
일본반동들은 극우익깡패들을 내몰아 조선학교들에 대한 방화도 공공연히 감행하였다.
1962년 3월 이바라기조선중고급학교가 화재로 불타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중대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찰당국은 증거가 불명확하다는 리유로 화재의 원인을 끝까지 밝히지 않은채 사건을 덮어버리였다.
1968년 1월 2일 밤 나까오사까조선초중급학교에 도적고양이마냥 기여든 악당들은 학교건물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2층교사를 몽땅 불태워버리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재일동포들의 피땀이 스민 조선학교들이 소각되는 엄중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하였지만 일본경찰당국은 화재사건수사를 고의적으로 태공하였다.
총련민족교육에 대한 일본당국의 로골적인 적대감은 재일조선학생들에 대한 집단폭행과 랍치, 협박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하였다.
1965년 2월 6일 고베시의 3명의 경찰들은 지나가는 고베조선중고급학교 고영일, 강하훈학생을 《외국인등록증》을 가지고다니지 않는다는 당치않은 구실밑에 경찰서로 끌고가 옷을 벗기고 때리고 차며 담배불로 지지는 등 갖은 악행을 가하였으며 이러한 인권침해행위에 대하여 학생들이 강력히 항의하자 《너희들 조선놈은 일본에서 큰소리를 치지 못한다.》고 모욕하였다.
꼭뒤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로 흐른다고 경찰들의 무지한 폭거는 일본의 불량배들에게 그대로 전파되여 재일동포학생들의 생명을 노린 위험한 집단폭행사건으로 이어졌다.
1964년 3월 19일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1학년 학생 김준덕에게 달려든 일본깡패들은 몽둥이, 기와장, 콩크리트쪼각 등으로 그를 사정없이 내리쳐 피투성이로 만들어놓고 도망쳐버리였다.김준덕학생이 간신히 일어나 근처에 있는 주재소에 신고하였으나 경찰들은 《범인을 찾는다.》고 하면서 부상을 당해 운신도 제대로 못하는 그를 1시간이상이나 끌고다니는 비인간적인 만행을 감행하였다.
1966년 2월 23일 일본불량배 30여명은 《상대가 조고생이면 누구라도 좋다.해치우라.》고 뇌까리면서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학생 4명에게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몽둥이와 맥주병 등으로 폭행을 가하였다.
일본우익깡패들이 조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감행한 폭력행위는 1962년부터 1972년까지의 사이에만도 무려 100여건이나 된다.
일본반동들은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은 연약한 재일조선녀학생들을 주되는 폭행대상으로 삼고 치졸한 악행을 일삼았다.
1983년 11월 24일 일본 가와사끼시에서는 가나가와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3학년 녀학생을 대상으로 한 폭행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날 한 일본깡패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학교에서 돌아오던 녀학생에게 《조선인은 일본에서 나가라.》 등의 폭언을 퍼부으면서 나무방망이로 그의 머리를 내리쳐 실신시키였다.이로부터 불과 10여일만인 12월 6일에는 요꼬하마에서 조선학교 녀학생이 숨어있던 깡패로부터 칼부림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사건이 발생한 즉시 현지경찰당국을 찾아가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하지만 경찰당국은 고의적으로 사건수사를 질질 끌면서 깡패들의 범죄행위를 눈감아주었을뿐 아니라 《일부 망나니들의 갈갬질》로 밀막아버리였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학교 녀학생들을 겨냥한 폭행사건은 1980년대초부터 1990년대말까지 해마다 수십, 수백건에 달하였으며 21세기에 들어와서도 광기어린 《치마저고리사냥》은 끊임없이 감행되였다.
가장 대표적인것이 조일평양선언채택후인 2003년 1월 29일 도꾜 한복판에서 감행된 조선치마저고리칼부림사건이다.
이 치떨리는 인권말살행위에 경악하여 국제학생동맹과 세계직업련맹 서기국을 비롯한 국제기구들과 단체들은 일본당국에 항의전문을 보내여 조선학교들과 학생들에 대한 야만적인 탄압을 중지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일본의 량심적인 인사들과 교육관계자들까지도 《사회적약자에 대해 폭력이 가해지는 현 사태는 지난날의 간또대지진이나 전후의 흉악한 차별사건을 방불케 한다.》고 하면서 일본사회의 뿌리깊은 민족차별감정을 개탄하였다.
2001년 3월 유엔인종차별청산위원회는 재일조선인들 특히 어린이들과 학생들에 대한 폭행과 이에 대한 일본당국의 불충분한 대응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일본정부가 그런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것을 권고하였다.
국제사회와 일본인민들의 항의규탄에도 불구하고 재일조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본반동들의 갖은 협박과 폭언, 폭행은 끊기지 않았다.
2022년 10월에만도 일본반동들은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인 군사적대응조치들을 구실로 일본사회에 반공화국, 반총련여론을 대대적으로 류포시키면서 살벌한 조선인배타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일본반동들의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책동으로 말미암아 2022년 10월 4일 집으로 돌아가던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중급부 2학년 남학생이 우익깡패로부터 폭행, 폭언을 당한것을 비롯하여 2개월사이에만도 조선학교들과 학생들에 대한 협박과 폭언, 폭행사건이 12건이나 련속적으로 발생하였다.
우에서 언급된 조선학교들과 재일조선학생들을 대상으로 감행된 살인, 방화, 집단폭행자료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인륜이 말라버린 일본땅에서는 지금 이 시각도 조선학교들과 재일조선학생들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형형색색의 방법으로 끊임없이 감행되고있다.
조선학교들과 학생들에 대한 살인, 방화, 집단폭행사건들은 재일조선인민족교육을 반대하는 일본반동들의 극심한 민족배타주의와 차별정책의 로골적인 표현으로서 일본반동당국의 조종하에 력사적으로, 체계적으로 감행되여온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들이다.
수치도 모르는 《법치국가》의 진면모
민족교육의 합법적지위를 고수하기 위한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줄기찬 투쟁에 의하여 1970년대전반기까지 조선학교들이 일본 학교교육법에 따르는 《각종 학교》로 인정되였으나 일본당국은 교육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제도적장치들을 내올 때마다 조선학교들을 고의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저들의 졸렬한 모습을 세계앞에 그대로 드러내보였다.
일본당국이 지방자치체 관리들을 내세워 교육기본법에 따라 조선학교들에 할당하게 되여있는 교육보조금을 각종 리유와 구실을 붙여 삭감하거나 완전정지한것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2010년 3월 12일 오사까조선고급학교에 나타난 당시 오사까부지사 하시모또는 조선학교의 교육내용, 총련과의 관계를 걸고들면서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요구조건》과 교육보조금을 맞바꾸려고 어리석게 놀아댔다.학교측이 이를 강력히 거부하자 하시모또는 2011년 4월에 25년이상이나 지급되여온 교육보조금을 일방적으로 정지해버리였다.
그후 도꾜도지사 이시하라, 가나가와현지사 구로이와, 지바현지사 모리따, 사이다마현지사 우에다를 비롯한 극우익적인 지방자치체 우두머리들이 련달아 조선학교의 교과서내용과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인 국방력강화조치를 구실로 교육보조금을 정지, 삭감하였다.
2016년 3월 일본문부과학성은 아베의 지시에 따라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지급과 관련한 류의점에 대하여》라는 통지를 도, 도, 부, 현지사들에게 보내여 조선학교들에 대한 교육보조금의 삭감과 정지를 공개적으로 강요하였다.
일본당국은 총칼이 못한것을 돈이 해결한다는 저들의 《지론》을 《고등학교무상화》,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제도실행을 통하여 립증해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2009년 9월 일본자민당패거리들은 《국민의 리해》와 《교육내용검토》를 전면에 내걸고 《조선학교는 순수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공화국의 체제를 뒤받침하기 위한 이데올로기학교 및 대일공작기관일 의혹이 있다.》고 헐뜯으면서 조선학교를 《고등학교무상화》제도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것을 결사반대하였다.이에 편승하여 오사까부지사 하시모또를 비롯한 지방자치체들에 틀고앉은 극우보수분자들도 만일 정부가 조선학교를 지원대상으로 결정하는 경우라도 《별도로 판단하겠다.》, 《공금을 지출하지 않겠다.》고 고아댔다.
2012년에 일본문부과학상 시모무라는 아베의 지시에 따라 2013년 고등학교지원대상과 관련한 법률시행규칙에서 조선고급학교에 고등학교지원제도를 적용하는 근거로 되는 조항을 아예 삭제하도록 내리먹이였다.
이와 함께 지방재판소들을 사촉하여 《고등학교무상화》제도적용을 요구하는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정당한 요구와 주장을 아무런 법적론거도 없이 기각해버리는 불법무법의 횡포를 감행하였다.
유엔인종차별청산위원회(당시), 유엔아동권리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이 5차례에 걸쳐 조선고급학교들을 《고등학교무상화》제도에 포함시키며 일본자치체들의 보조금지급을 재개 및 유지할것을 권고하였지만 그때마다 일본당국은 그 무슨 《랍치문제》 등을 걸고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일본당국은 《각종 학교》라는 리유로 조선유치반들을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제도에서도 배제하였다.
이것은 명백히 일본반동들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산물로서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유린말살하기 위한 너절하고 유치한 책동이다.
조선학교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본당국의 차별행위는 세계적인 보건위기상황속에서 더욱 저속하고 유치하게 감행되였다.
일본 사이다마시당국은 2020년 3월 시안의 보육원, 유치원 등에 마스크를 공급하면서 조선학교에 배포한 마스크가 《전매될수도 있다.》고 떠벌이며 사이다마조선초중급학교 유치반만을 제외시키는 차별행위도 서슴없이 자행하였다.일본당국은 2020년 5월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확대와 관련하여 《학생지원긴급지급금》조치를 실시할 때에도 유독 총련 조선대학교만을 제외시켰다.
현재 재일동포들은 일본국민들과 꼭같은 세금납부의무를 걸머지고 성실히 리행하고있으므로 일본당국이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에 해당한 몫의 교육비를 지불하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그러나 일본당국은 재일조선인민족교육에는 동전 한푼도 내지 않겠다는 고약한 심보로부터 총련민족교육에 대한 《국고부담》을 한사코 외면하고있다.
외국인들에게 자국민들과 꼭같이 동등한 교육권리를 보장하는것은 국제인권협약의 주요내용이다.유엔아동권리선언에도 《어린이는 누구나 할것없이 기초교육단계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이것은 모든 나라, 모든 국가의 의무로 된다.》라고 명기되여있다.
일본당국도 2019년 5월에 개정된 유아교육, 보육지원법에서 《모든 어린이들에게 최선의 리익, 재정적지원이 보장되여야 한다.》고 요란하게 광고하였다.하지만 일본당국은 국제법을 란폭하게 위반하고 신성시되여야 할 아동권리에 관한 협약을 민족배타주의로 얼룩진 저들의 법률에 맞추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것도 모자라 《아이키우기지원법》을 모든 아동들에게 공평하게 적용하겠다고 하던 공약마저 헌신짝처럼 줴버리고 순진한 재일조선어린이들의 동심에 무참히 칼질을 하였다.
이것이 바로 소위 《법치국가》로 자처하는 일본의 진면모이다.
이에 대해 이전 일본문부과학성 차관까지도 최근 《일본에서는 차별을 일으키는 언동을 국가가 솔선 하고있다.》, 《권력자가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적감정을 가지고있다.제도로부터 배제한다는 결론이 먼저 있고 후에 배제하기 위한 리유를 붙이고있다.》라고 하면서 만인에게 공정해야 할 법을 차별의 무기로 휘두르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재일동포들의 교육권은 그 누구도 부정할수 없고 빼앗을수도 없는 신성한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흥정물이 될수 없다.
일본속담에 뱀은 자기 독에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일본에 있어서 총련민족교육에 대한 탄압책동은 안으로 문을 닫아걸고 불을 지르는것과 같은 어리석은 자멸행위이다.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익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의 강력한 보호속에 있다.
만일 일본당국이 고삭은 군국주의《몽둥이》로 끝끝내 총련의 민족교육을 말살하려 한다면 천벌을 면치 못할것이며 영원히 미래가 없는 차거운 얼음덩이로 력사에 매장되게 될것이다.
주체112(2023)년 4월 24일
평양
일본반동들의 민족교육말살책동은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다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4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
재일동포들이 조선학교를 요람기에 없애버리려는 일본반동들의 파쑈적탄압책동에 견결히 맞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권리를 피로써 지켜낸 4.24교육투쟁이 있은 때로부터 7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해방후 재일동포들에게 일제식민지시대의 《동화교육》을 끈질기게 강요하던 일본반동들은 미제의 사촉밑에 1948년 1월 24일 조선학교의 설립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미 인가된 학교들에서도 일본어와 일본어교재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는 문부성(당시)의 《지령》을 각지에 시달하였다.
이어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에 《학령에 달한 아이들은 지사의 인가를 받은 학교에 입학시켜야 하며 교과서 및 교과내용은 일본의 학교교육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통고하였다.
이에 따라 각 지방당국이 2월 15일부터 일제히 조선학교들에 문부성의 요구대로 하지 않을 경우 학교들을 페쇄할것이라고 위협하였다.
분노한 재일동포들은 조선인교육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대중투쟁을 전개하였다.
동포들의 투쟁은 4월 24일에 최절정을 이루어 마침내 일본반동들의 광란적인 파쑈적폭압을 분쇄하고 신성한 민족교육의 권리를 지켜냈다.
해외동포들이 거주국에서 진행하는 민족교육은 민족적평등의 리념에 전적으로 맞을뿐 아니라 교포사회의 존립과 장래와도 관련되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4.24교육투쟁이 있은후 일본반동들은 미국의 사촉하에 1949년 10월 조선학교해산결정을 내리고 340여개에 달하는 재일조선학교를 페쇄몰수하거나 비법화한것을 비롯하여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을 말살하기 위해 미쳐날뛰였으며 그러한 책동은 년대와 세기를 이어가며 계속되고있다.
2010년 4월 조선학교에서 진행하는 교육이 일본의 고등학교교육내용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걸고들며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시킨 일본반동들은 2013년에는 고등학교지원대상과 관련한 법률시행규칙에서 조선학교에 고등학교지원제도를 적용하는 근거로 되는 조항을 아예 삭제하도록 하였다.
이어 지방자치체들에서도 조선학교들에 대한 보조금지급을 중지시키도록 하였다.
이밖에도 조선학교 유치반 어린이들을 《유아교육,보육무상화》제도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인류의 생존에 커다란 위협으로 되고있는 《COVID-19》를 막기 위한 방역조치에서까지 재일조선학생들과 유치반 어린이들을 배제시키는 망동을 부리였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공화국의 정정당당한 자위적조치들을 걸고들며 조선학교의 교직원들과 학생들에 대한 폭언과 폭행,협박을 일삼는 등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인 총련의 민족교육을 송두리채 말살해버리기 위해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다.
총련의 민족교육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끊임없는 말살책동은 일본의 뿌리깊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연장으로서 력사적사실로 보나 국제법적으로 보나 절대로 용납할수 없는 철저한 반인륜적범죄행위이다.
재일동포들은 일제식민지통치의 직접적피해자들이고 그 후손들로서 일본당국은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민족교육발전을 장려하며 조선학교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법적,인도주의적책임을 지니고있다.
특히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권리는 세계인권선언과 경제,사회 및 문화적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등 일본이 수락한 국제법들과 국내법규에도 전적으로 부합되는 권리이다.
일본반동들이 총련의 민족교육에 대한 탄압책동에 끈질기게 매여달리는것은 총련과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을 잘라버리고 나아가서 교포사회의 민족성을 거세해버리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재일동포들의 민족적권리에 대한 침해는 곧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침해로 된다.
일본반동들은 총련과 재일동포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의 강력한 보호속에 있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일본반동들의 민족교육말살책동은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다.(전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