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6月 26th, 2013
사 설 : 침략과 전쟁책동을 짓부시고 나라의 평화와 조국통일을 이룩하자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1950년 6월 25일은 침략자 미제에 대한 피맺힌 원한과 천백배의 복수심을 새겨주는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63년전 미제가 남조선의 리승만도당을 사촉하여 도발한 조선전쟁은 우리 인민을 식민지노예로 만들고 아시아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가장 파렴치하고 날강도적인 침략전쟁, 몸서리치는 대살륙만행이였다.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이 전쟁은 자주적인민으로 사느냐, 아니면 또다시 외세의 발굽밑에 짓밟히느냐 하는 판가리싸움이였다.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마다에는 창조의 마치소리높이 새 생활이 약동하던 조국강토를 우리 인민의 피로 물들이고 오늘도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해 새 전쟁책동에 미쳐날뛰는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보복의 의지가 용암처럼 끓어번지고있다.
미제는 조선전쟁에 자기 침략군은 물론 15개 추종국가군대, 남조선괴뢰군 등 200여만명의 대병력과 수많은 살인무장장비들을 투입하고 3년간에 걸치는 나날 우리 인민을 굴복시키려고 피에 주린 승냥이처럼 미쳐날뛰였다.(전문 보기)
정 론 : 6. 25를 기억하라!
기억의 힘은 세월보다 강하다. 반세기에서 13년이나 또 흘렀다. 많은것이 지워져가도 전쟁의 이날은 더 생생히 우리를 이끌어 그앞에 세우고있다.
도발자는 누구였는가.
누가 전쟁을 원했고 누가 평화를 사랑했는가.
낱낱이 기억하고 천추만대에 새겨놓으라. 오늘과 래일에 있어 6. 25의 목소리는 피어린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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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시작은 그 6월의 마지막일요일이 아니였다.
금방 해방을 맞아 신생의 대지에 희망의 씨앗을 한창 뿌리던 조선이였다. 기나긴 식민지망국에서 벗어나 이제는 가슴을 펴고 살아보자던 꿈도 많던 인민이였다.
허나 누구도 알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기도 전에 조선은 벌써 렬강들의 칼도마우에 올라있었다. 8. 15가 보름도 넘어서지 못한 29일의 밤 미합동참모본부의 2명의 당직장교에게 공산주의의 남하를 막기 위한 경계선을 30분안에 급히 확정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였다.(전문 보기)
진상고발장:력사의 진실은 감출수 없다 -반제민족민주전선중앙위원회 선전국 고발장-
남조선인터네트 《구국전선》싸이트에 6. 25전쟁 63년을 맞으며 반제민족민주전선중앙위원회 선전국이 발표한 고발장 《력사의 진실은 감출수 없다》가 실리였다.
고발장은 6. 25전쟁 63년을 맞는 온 겨레의 가슴은 《한》반도를 재더미로 만들고 무고한 주민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침략자 미제에 대한 분노로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6. 25전쟁은 세계제패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이 일으킨 북침전쟁이다.
그러나 미국은 6. 25전쟁을 북의 《남침》으로 매도하면서 6. 25를 계기로 군부호전광들과 침략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리고있다. 이에 편승하여 현 보수당국은 6. 25를 북의 《남침의 날로 정해야 한다.》느니 뭐니 하며 관제언론들까지 총발동시켜 대대적인 반북소동에 열을 올리고있다.
반제민족민주전선중앙위원회는 력사를 외곡하면서 외세와 함께 침략전쟁연습과 동족대결에 혈안이 되여 날뛰는 현 보수당국을 전국민의 이름으로 단호히 규탄하면서 6. 25전쟁의 진상중에서 그 일부를 공표한다.(전문 보기)
조선전쟁에서 감행한 미제의 야수적만행
미제는 침략과 살인, 파괴와 략탈로 자기의 더러운 잔명을 유지하며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유린하는 인류공동의 원쑤이다.
지난 조선전쟁시기 우리 나라 삼천리강토에서 살인귀 미제가 감행한 귀축같은 살륙만행은 오늘도 우리 민족뿐아니라 세계의 량심을 분노로 치솟게 하고있다.
조선전쟁시기 미제가 우리 인민에게 감행한 살륙만행은 히틀러도배들을 훨씬 릉가하는것이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전쟁 전기간 공화국북반부의 1㎢의 땅에 평균 18개의 폭탄을 떨구었고 평양시에는 인구수에 맞먹는 폭탄을 투하하였다.
미제는 1950년 9월 28일부터 불과 3일동안에 남조선의 서울시내에서만도 근 4만명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서울의 네거리에서 백주에 산 사람을 묶어놓고 머리가죽을 벗겨 《기념품》으로 나누어가진 살인마가 바로 미제침략군이다. 남조선에서만 보더라도 미제는 전쟁도발후 1년동안에 무려 100만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이에 대하여 당시 외신들은 《미군이 지나간 남조선의 마을은 해일이 지나간것과 같았다.》라고 보도하였다.
《닥치는대로 죽이라!》, 《움직이는것은 무엇이든 죽이라!》 …(전문 보기)
남조선괴뢰들은 미국의 조선침략전쟁의 사환군
심각한 통치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전쟁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조작에서 출로를 찾는것은 제국주의의 본성인 동시에 그 주구들의 변함없는 생존방식이다.
그것은 1950년대 미국의 지령으로 조선전쟁도발의 돌격대역할을 한 리승만매국역적의 반민족적죄악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조선전쟁은 미제의 정치경제적위기의 산물인 동시에 리승만역도의 심각한 통치위기의 결과였다.
력사가 고발하는것처럼 1949년부터 크게 표면화된 남조선의 정치경제적위기는 1950년 5월에 이르러 극한점에 도달하게 되였다.
우선 남조선경제가 전면파탄상태에 놓이게 되였다.
해방직후 남조선에서 5년간의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과 전쟁준비책동, 리승만역도의 반인민적통치로 말미암아 기업수는 급격히 감소되였다. 수많은 공장들이 원료, 자재, 자금난으로 하여 제대로 가동하지 못함으로써 생산능력의 50%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여 그야말로 인민생활은 최악의 상태에 놓였다.(전문 보기)
경애하는 김 정 은원수님께서 자강도의 로동계급들과 함께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관람하시고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제1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자강도의 로동계급들과 함께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관람하시였다.
최룡해동지, 박태성동지, 강관일동지, 황병서동지, 홍영칠동지, 윤동현동지, 박정천동지, 김택구동지와 자강도당위원회 책임비서 류영섭동지가 공연을 함께 보았다.
공연이 진행되게 될 강계뜨락또르종합공장 체육관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세심한 지도속에 국보적인 예술단체로 자라나 우리 군대와 인민들의 사랑과 대절찬을 받고있는 모란봉악단공연을 자기들의 일터에서 직접 보게 된 관람자들의 감격과 환희로 세차게 설레이고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공연관람에 앞서 강계뜨락또르종합공장의 로동계급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관람석에 나오시자 전체 관람자들은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를 올리면서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관람자들의 환호에 따뜻한 답례를 보내시였다.(전문 보기)
경애하는 김 정 은원수님께서 장자강공작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제1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장자강공작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최룡해동지, 박태성동지, 강관일동지, 황병서동지, 홍영칠동지, 윤동현동지, 박정천동지, 김택구동지가 동행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현지에서 공장의 일군들이 맞이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혁명사적교양실을 돌아보시였다.
1969년 7월 25일에 창립된 이 공장의 발전력사속에는 위대한 대원수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아로새겨져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혁명사적교양실 홀에 모셔진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사진문헌을 보시면서 어버이장군님을 모시고 이 공장을 찾아오시였던 잊지 못할 그날을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공장에는 어버이장군님의 하늘같은 은정이 곳곳에 슴배여있다고 하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시기인 2011년 10월 무인화된 기계가공직장을 돌아보시고 너무도 만족하시여 공장에는 김일성훈장을, 직장에는 김일성상을 수여하도록 친히 제의하시는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다고 말씀하시였다.(전문 보기)
미국은 조선전쟁을 도발한 침략자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 비망록 –
우리 군대와 인민이 3년간의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에서 세계사적인 승리를 이룩하고 영웅조선, 영웅인민의 기개를 온 세상에 높이 떨친 때로부터 60년이 되여온다.
조선전쟁은 미국이 우리 공화국을 무력으로 압살하고 전조선을 타고앉으며 나아가서 아시아와 전세계를 손아귀에 틀어쥐려는 타산밑에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도발한 범죄적인 침략전쟁이였다.
침략자들은 오늘까지도 조선전쟁도발의 진상을 한사코 은페하고있을뿐아니라 적반하장격으로 우리 공화국을 《도발자》로 매도하면서 반공화국압살책동에 광분하고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는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을 맞으며 조선전쟁도발자로서의 미제의 흉악한 정체를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하여 이 비망록을 발표한다.
1. 미제는 북남대결과 동족상쟁의 불씨를 안아온 침략의 원흉
조선전쟁은 미국에 의하여 산생된 민족분렬과 동족대결의 비극적산물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은 범죄적인 조선침략정책, 세계제패정책에 따라 조선의 절반땅을 강점하고 하나의 민족을 둘로 갈라놓았으며 동족대결을 부추기면서 우리 겨레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였다.(전문 보기)
론 설 : 조선전쟁은 미국의 세계제패야망실현의 산물
조선반도를 발판으로 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군사적패권을 장악하며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려는것은 미국의 변함없는 전략적기도이다.
미국이 근 70년동안이나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새 전쟁도발책동에 매달리면서 힘에 의한 방법으로 조선반도 전지역을 지배하려 하고있는것은 바로 이러한 전략적목표를 기어이 달성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1950년대 조선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후 미제가 세계제패전략실현을 추구하여 감행한 첫 침략전쟁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기간 전쟁의 직접적피해를 입지 않고 막대한 리득을 얻어 경제, 군사적으로 팽창됨으로써 세계제국주의우두머리로 등장한 미국은 세계지배야망실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미국대통령 트루맨이 1945년 12월 19일 국회에 보낸 《교서》에서 오만하게도 《우리는 그것을 원하건 원하지 않건간에 우리가 얻은 승리는 미국인들에게 앞으로 세계를 지도할데 대한 무거운 책임을 맡기였다는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줴쳐대고 1947년 3월 6일 베이라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전세계는 아메리카적인 제도를 수용해야 한다.》고 떠벌인 사실, 특히 1947년 3월 12일 미국회 상하원합동회의에서 《… 위협을 받는 곳이 세계의 어디이든간에 <자유민주주의전선>을 옹호하는것을 정책으로 삼고있음을 세계만방에 알려야 한다.》라고 폭언한것은 미제가 《자유민주주의옹호》의 미명하에 세계제패야망실현을 미국대외정책의 기본강령으로 공공연히 선포하였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준 단적인 실례들이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