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7月 14th, 202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락원군바다가양식사업소건설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2025년 7월 14일《로동신문》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7월 13일 락원군바다가양식사업소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조용원동지, 김재룡동지를 비롯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주요간부들이 동행하였다.

김정은동지를 현지에서 건설에 동원된 군부대지휘관들과 설계부문 일군들이 맞이하였다.

우리 나라의 자연지리적특성에 부합되고 그 실리성과 전망성이 확증된 바다가양식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해안지대에 위치한 시, 군들의 경제적자립성을 지속적으로 확대강화하려는 우리 당의 지방발전정책구상과 직접적인 지도에 의하여 락원군바다가양식사업소건설이 강력히 진척되여 마감단계에 들어섰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건설정형을 구체적으로 청취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11차전원회의 결정을 받들고 바다를 낀 모든 시, 군들에 도래할 미래의 변혁상을 그려주는 보람찬 창조투쟁에 뜨거운 진정을 묻으며 련속적인 공격전으로 위훈의 날과 달을 이어가고있는 군인건설자들의 수고를 높이 평가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바다가양식사업소건설장을 돌아보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착공을 선포하던 지난 2월로부터 불과 몇달사이에 많은것이 몰라보게 변하였다고, 말과 글이 아닌 실제적인 이러한 눈앞의 전변상은 지방발전을 강력히 추동해나가려는 우리 당의 웅대한 구상과 확고부동한 의지, 그 실천력을 직관적으로 유감없이 보여주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당중앙이 직접 구상하고 추진하는 현대적인 바다가양식기지건설사업은 바다를 낀 전국의 60여개 시, 군들의 효률적인 진흥과 전망적발전을 확실하게 담보할 혁신적인 창조령역이라고 하시면서 날로 확대심화되고있는 지방발전정책실현에 새로운 동력을 실어주게 될 중대한 건설사업이 드팀없이 다그쳐지고있는데 대해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락원군바다가양식사업소건설이 앞선 경험을 본받는데만 머무르지 않고 보다 제고된 현대성과 선진성, 독창성을 구현하는것과 함께 바다를 낀 지역환경에도 잘 조화되게 높은 수준에서 추진되고있는데 대하여 평가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바다가양식사업소건설은 지방경제와 인민생활향상의 물질적기초를 해당 지역들의 구체적환경과 경제적잠재력에 토대하여 근본적으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적인 창조사업인것만큼 모든것을 전망적, 과학적견지에서 치밀하고 실속있게 작전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바다가양식사업소건설도 다른 지방발전정책대상건설과 마찬가지로 해당 지역의 인구수와 경제적토대, 해양생태학적환경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분석에 기초하여 그 등급을 합리적으로 규정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전국의 지역경제들을 새로운 토대우에서 개발확대하는 중장기적인 사업을 실속있게 실행하자면 앞으로의 투쟁단계에서 년차별에 따르는 시, 군별바다가양식사업소건설계획작성을 선행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를 위한 중요방향을 밝히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바다가양식사업소건설은 산업시설설계에서 또 하나의 혁명적인 발전단계로 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건설이 비약적으로 발전할수록 경제적실리성과 효과성을 보다 중시할데 대한 문제, 농촌살림집구획들의 원림비중을 높일데 대한 문제, 방파제를 비롯한 해안구조물건설에서 가장 합리적이며 최적화된 방안을 적용할데 대한 문제 등 전국적범위에서 바다가양식사업소건설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는데서 나서는 제반 과업과 원칙들을 제시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어촌지구에 훌륭히 일떠선 살림집들을 기쁨속에 돌아보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해안가의 특성에 맞는 살림집건설의 새로운 발전경지가 개척되고 지역환경의 문화성이 높아졌다고, 정말 락원의 바다가, 우리 식의 락원어촌이 태여났다고 하시면서 당창건 80돐을 맞으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포구의 어촌마을을 락원군인민들에게 선물하려는 우리 당의 숙원이 풀리게 된 기쁨을 피력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락원포의 어촌마을은 세월을 앞당기며 완전히 변모되는 지방농촌문화와 우리 건축예술의 새로운 발전국면에 대한 자부스러운 직관이라고 하시면서 전국의 모든 해안연선지역을 인민이 향유하는 새 문명, 새 복리로 눈부신 락원의 바다가로 전변시키자는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우리당 건설정책은 부단히 새것과 발전을 지향하는 정책이며 그 수립과 집행에서는 절대적인 표본이나 기준이라는것이 있으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우리 건설사업이 명실공히 미래에 대한 개척으로 되자면 이미 축적된 건설잠재력을 장려하는것과 함께 선진적인것을 적극 지향하며 끊임없이 투쟁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현대적인 해양산업기지와 우리식 문화어촌건설에서 이룩되고있는 성과들은 당의 위업에 무한히 충직한 우리 군인건설자들만이 창조할수 있는 또 하나의 기적이며 지방의 급진적인 변화와 착실한 발전을 최중대과업으로 내세우고 강력히 실행해나가는 우리 당정책의 정당성과 위력에 대한 힘있는 실증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군인건설자들이 충천한 전투적열의와 과감한 분발력을 배가하여 당창건기념일까지 락원포에 지역인민들의 복리를 길이 담보할 특색있는 창조물, 자랑할만한 사회주의락원의 실체를 완벽하게 펼침으로써 당중앙의 구상을 빛나는 현실로 꽃피우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하시였다.

김정은동지의 전투적격려와 대해같은 믿음을 받아안은 전체 건설자들은 당중앙의 명령지시에 절대충실한 우리 군대의 명예를 걸고 더욱 과감히 매진분투함으로써 전국도처에 확대도입할수 있는 우리당 지방발전정책실행의 귀중한 창조적모범을 반드시 제기일에 이루어낼 충성의 결의를 다짐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로씨야련방 외무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고 출발

2025년 7월 14일《로동신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의 초청에 따라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던 로씨야련방 외무상 쎄르게이 라브로브동지가 13일 출발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상 최선희동지, 외무성 일군들과 우리 나라 주재 로씨야련방 특명전권대사 알렉싼드르 마쩨고라동지, 대사관 성원들이 원산갈마비행장에서 외무상과 일행을 전송하였다.

방문기간 외무상일행은 원산시에 있는 쏘련군추모탑에 화환을 진정하였으며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여러곳을 돌아보았다.(전문 보기)

 

 

[Korea Info]

 

정치용어해설 : 군중교양

2025년 7월 14일《로동신문》

 

군중교양은 한마디로 군중을 대상하여 진행하는 교양이다.

군중교양의 목적은 군중을 교양개조하여 당의 두리에 묶어세움으로써 혁명대오를 튼튼히 꾸리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자는데 있다.

군중교양에서 기본은 군중을 수령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혁명화하는것이다.

군중교양에서는 혁명전통교양, 애국주의교양, 반제계급교양, 도덕교양을 비롯하여 사람들에게 우리 당의 혁명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의 정당성, 필승불패성을 깊이 인식시키는데 기본을 두고 진행하여야 한다.

해설과 설복, 긍정적모범으로 감화시키는것은 군중교양의 기본방법이다.사람의 사상은 행정적지시나 통제의 방법으로는 개조할수 없다.사상은 어디까지나 해설과 설복을 통하여 자기의 신념으로 받아들이게 하여야 한다.그리고 대중속에서 발휘되는 긍정적소행들을 널리 소개선전하여 집단안에 건전한 분위기가 차넘치도록 함으로써 군중자신이 스스로 나쁜 점을 고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군중교양에서 중요한것은 이 사업을 군중의 지향과 목적, 성격과 취미, 준비정도에 맞게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을 잘 배합하여 실속있게 하는것이다.대상을 잘 파악하고 그에 알맞는 교양형식과 방법을 적용하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진공적으로 하여야 한다.

군중교양에서 중요한것은 또한 당조직들이 핵심군중과의 사업을 잘하여 그들의 선봉적역할을 높여나가도록 하는것이다.

다음으로 근로단체조직들이 자기의 사명과 임무에 맞게 동맹원들을 교양개조하여 당의 두리에 묶어세우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리도록 하는것이다.

군중교양에서 특히 청소년교양에 큰 힘을 넣어야 한다.

군중교양을 실속있게 하자면 사상사업에서 형식주의를 뿌리빼고 참신하고 다양한 교양방법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전문 보기)

 

[Korea Info]

 

우리 당이 보석처럼 빛내여주는 전승세대의 삶은 어떤것인가  전승 70돐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공화국영웅홀에 새로 전시된 길창년동지의 위훈자료를 놓고

2025년 7월 14일《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1950년대에 전승세대가 세운 특출한 위훈과 후대들에게 남긴 정신적재부와 유산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고귀한것으로 깊이 간직되고있습니다.》

두해전 전승 70돐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공화국영웅홀에는 아홉명 공화국영웅의 초상사진과 위훈자료가 새로 전시되였다.그들가운데는 근위 서울김책제4보병사단 포병련대에서 후방일군으로 활동한 길창년동지도 있다.

적과의 싸움에서 무훈을 떨친 유명한 군사지휘관도 아니고 육탄용사도 아닌 후방일군이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았으며 더우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영생의 모습으로 빛나고있는 수백명 공화국영웅들가운데 전문 후방사업을 맡아본 사람은 길창년동지 한명뿐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과 여운은 대단히 크다.

하다면 그는 어떤 사람인가.전승의 그날로부터 70여년이 흐른 오늘 우리 세대는 그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새기게 되는가.

 

명성높은 당원사단의 후방일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공화국영웅홀에는 길창년동지의 전쟁시기 위훈이 이렇게 기록되여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군사후방보장방침을 높이 받들고 전쟁 제1계단시기 식량 40t을 비롯한 수많은 후방물자를 로획하여 보장하였으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는 련대의 군기를 보위하고 적후투쟁에 참가하여 적 100여명을 살상하였다.》

하지만 이 글줄만으로는 그의 위훈에 대하여 다 알기 어렵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길창년동지가 복무한 근위 서울김책제4보병사단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품들여 꾸려주신 당원사단이다.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어주신 승리의 붉은 화살표의 맨앞에서 폭풍처럼 내달리며 세상에 명성떨친 이 전설적인 근위사단에서 그의 직무는 진격의 돌파구를 열어제끼는 포병련대의 량식공급장이였다.

그에게도 야전부대지휘관으로 용맹떨치며 싸우고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후날 제2전선부대에서 싸울 때 후방부련대장이였던 그가 락동강도하전투에서 희생된 련대장을 대신해 여러 전투를 잘 지휘하여 국기훈장 제2급을 수여받은 사실은 그에게 군사지휘관으로서의 자질과 실력도 갖추어져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후방일군의 직무를 무겁게 받아안았다.

나라없던 그 세월 막벌이로동자로 비참하게 살다가 원한의 징용살이까지 강요당했던 그는 해방후 민청일군, 당일군으로 성장하였다.길창년동지가 남긴 수기에는 그의 입당날자가 1946년 8월 28일로 적혀져있다.그리고 그가 1948년 2월 8일의 뜻깊은 열병식에 참가한 사실도 기록되여있다.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당원으로, 군관으로 자라난 그였기에 량식공급장의 임무를 당과 조국이 자기에게 주는 과업으로, 둘도 없는 믿음으로 간주하였던것이다.

지난해 4월 5일 군보에는 길창년동지가 전화의 나날에 세운 영웅적위훈이 소개되였다.그 기사의 첫번째 소제목은 《전방에서 나를 찾으라》였다.

실지로 그는 결코 우에서 후방물자를 보장해주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였다.전투가 진행될 때 련대의 뒤에 있다가 전투가 끝난 다음 전장을 뒤따라가며 로획물자를 거두는 사람도 아니였다.

우리 후방일군들의 걸음이 순간이라도 늦추어지면 사단의 전진이 떠진다.나에게 있어서 후방일군이란 단순한 직무이기 전에 당원사단의 전투력을 백방으로 담보해야 하는 당적분공이다.

이런 좌우명을 안고 그는 언제나 련대와 어깨나란히 전방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서울해방전투시에 자동차 7대를 비롯한 군수물자 로획, 금강도하전투와 대전해방전투때에는 연유 55t과 식량 40t 로획, 락동강도하전투때에도 식량과 포탄 등 많은 량의 군수물자 보장…

위대한 전승사를 빛나게 장식한 전투마다에서 혁혁한 군공을 세운 근위부대들, 전투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하지만 그 전투승리에 고여진 후방일군들의 위훈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총포탄이 작렬하는 전장을 종횡무진하며 목숨걸고 군수물자를 보장한 후방일군들이 없이 어찌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기어이 관철한 영용한 전투부대들의 무비의 위훈이 있을수 있겠는가.

길창년동지가 전화의 나날에 세운 하많은 위훈들가운데서 특출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련대의 군기를 끝까지 수호한것이다.

후퇴명령을 받은 그가 락동강을 건너 부대와 약속한 지점에 이르렀을 때 군기소대장이하 대원들은 거의다 희생되고 련대지휘부도 없었다.련대의 군기를 어떻게 무사히 호송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심중한 토의가 오갈 때 길창년동지는 단호히 선언했다.

《군기는 내가 품고가겠소.》

그에게 군기호송임무를 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그 임무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것을 길창년동지자신도 잘 알고있었다.

그때 그의 눈앞에는 잊지 못할 1948년 2월 8일의 뜻깊은 열병식장이 선히 어려왔다.김일성장군님의 사열을 받으며 굽이쳐흐르는 열병대오의 선두마다에서 휘날리는 영광의 군기들을 바라보던 때의 그 격정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군기는 부대의 넋으로서 군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목숨보다 더 귀중하다.더우기 우리 군기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조직해주신 당원사단의 한개 련대의 군기가 아닌가.그것을 끝까지 지켜내는것은 당원사단의 한 성원인 나의 임무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주저없이 군기를 가슴에 품었다.그 순간부터 그에게는 죽을 권리조차 없었다.

불의에 조우한 적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려야 했고 간고한 로정에서 신념을 잃은 비겁분자, 나약분자들과도 맞서야 했던 그 나날에 길창년동지가 겪은 간난신고에 대하여 여기에 다는 전할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수 있는것은 련대의 넋을 품은 당원이라는 자각을 안고 수십일동안 1 000여리를 걸은 끝에 길창년동지가 제2전선부대와 감격적인 상봉을 하고 자기 부대와도 만나 군기를 바쳤다는것이다.

그때 지휘관들을 더 놀라게 한것은 그가 품에서 정히 꺼내놓은 희생된 19명 당원들의 당원증이였다.그 19명 당원들가운데는 군기를 무사히 호송하기 위한 전투에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당세포비서도 아니였고 정치일군도 아니였다.그러나 숨지는 순간까지도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참된 당원들의 당성에 대하여 당중앙위원회에 보고할 의무를 스스로 걸머졌던것이다.

그의 수기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그때 나를 맞아준 항일혁명투사 최현동지를 비롯한 여러 지휘관들이 내가 270여명의 인원과 함께 련대군기와 19명 당원들의 당원증까지 무사히 호송해온 과정을 다 듣고나서 내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동문 진짜 영웅감이야!〉》

오직 우리 당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억척불변의 신념을 지니고 수백명 군인들과 인민들뿐 아니라 련대의 넋과 19명 당원들의 정치적생명까지 지켜낸 길창년동지,

그 위훈을 값높이 여겨 우리 당과 조국은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였다.

해방된 이듬해 입당한 때로부터 세상을 떠난 1992년까지 길창년동지의 당생활년한은 46년을 헤아린다.

길창년동지에게 수여된 공화국영웅칭호는 그의 46년 당생활년한중에서 가장 빛나는 구간인 전화의 3년, 조선로동당원으로서의 숭고한 당성이 신념으로 체질화되게 한 그 3년에 대한 우리 당의 값높은 평가였다.

 

초소는 달라져도 당원의 의무는 변할수 없다

 

길창년동지의 공화국영웅칭호수여날자는 1965년 11월 17일이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세운 위훈이 전쟁이 끝난 때로부터 10여년세월이 지나 영웅의 금별메달로 값높이 평가되게 된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그리고 여기에도 길창년동지의 참인간상이 비껴있다.

전후에도 길창년동지는 인민군대의 어느한 부대에서 후방일군으로 사업하였다.후방사업은 곧 정치사업이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그는 자체의 힘으로 부대의 후방토대를 튼튼히 꾸려나갔다.

군인들의 식생활개선과 부대의 전투력강화에 크게 이바지한 그의 공적이 상급에 보고되였는데 그를 평가하기 위한 료해를 진행하던 과정에 일군들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였다.다름아닌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그가 세운 위훈에 대한 자료였다.그에 대하여 왜 이야기하지 않았는가고 지휘관들이 나무라자 길창년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때에야 다들 그렇게 싸우지 않았습니까.더우기 저는 당원이 아니였습니까.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제가 어떻게…》

그때까지도 그의 마음속에는 전쟁시기 희생된 전우들의 모습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다.

군공메달 하나 남기지 못한채 적후의 차디찬 땅속에 누워있는 그들모두가 그렇게 용감하게 싸워 전승에로 가는 길을 피로써, 목숨으로써 열지 않았던가.그들의 몫까지 합쳐 당과 조국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한다는것은 10여년세월 그가 스스로 받아안고 말없이 집행해온 또 하나의 당적분공이였다.

길창년동지는 자기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는 소식도 련대부업밭에서 전해들었다.마가을의 쌀쌀한 바람에도 아랑곳않고 군복상의를 훌 벗어놓은채 땀을 흘리며 거름을 져나르고있는데 그 소식이 방송으로 전해졌던것이다.함께 일하던 지휘관들이 방송에서 나오는 이름을 들으면서 혹시 후방부련대장동지가 아닌가고 하며 법석 끓을 때 그는 내가 영웅이 될만한 일을 해놓은게 뭐가 있는가고 범상하게 말했다.

그는 이렇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는 순간까지도 자기가 영웅이 되리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못하였다.당과 조국이 부를 때 제일먼저 일어나 자기의 고귀한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우는것을 당원으로서, 군인으로서 응당 리행해야 할 본연의 사명으로 여겼으며 그는 한생토록 그 의무앞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공화국영웅이 된 후 길창년동지는 당의 신임에 의하여 보다 중요한 초소에서 후방일군사업을 계속하였다.평화시기이고 총포성은 울리지 않았지만 그는 불비쏟아지는 전장에서 적들의 군수물자를 로획하던 근위사단의 후방일군, 스스로 군기호송임무를 걸머지고 피어린 천여리길을 헤쳐가던 련대지휘관의 보무로 당과 조국을 위한 복무의 길을 꿋꿋이 이어갔다.

사실 그는 전쟁시기에 머리와 몸의 여러 부위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그런것으로 하여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제대되였을 때 영예군인수속을 하고 여생을 편안히 보내라고 권고하였다.하지만 그때마다 길창년동지는 이렇게 팔다리가 성한데 무슨 영예군인인가, 제발로 걸을수 있고 제손으로 일할수 있는한, 당원증을 품고있는한 당원답게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집에서 축산도 하고 터밭농사도 하며 군인들의 생활에 보탬을 주는 일을 스스로 찾아하였다.

만약 그가 전쟁시기 적의 군수물자를 로획하기 위해 포연탄우 쏟아지는 전장을 누비던 무비의 헌신성과 부대살림살이를 윤택하게 하기 위해 신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던 불같은 열정의 백분의 일이라도 자기자신과 가정을 위하여 기울였더라면 보다 안락한 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혁명과업수행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쳤다.그가 자기 가정과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남긴것은 그 어떤 물질적부가 아니였다.

맏아들에게 남긴것은 자기가 수여받은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져있는 시계와 그 시계의 초침처럼 한생 당과 조국에 충성다해야 한다는 절절한 당부였다.그리고 군사대학에 다니던 둘째아들에게 종종 편지를 보내군 했는데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당원이라는 그 부름을 쉽게 부르지 말아라.당원은 명예도 간판도 아니며 출세의 밑천도 아니다.전쟁시기 당원들처럼 당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남먼저 자기 한몸을 내대는 사람, 말보다 실천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참된 당원, 조선로동당원이라고 생각한다.》

당원증을 처음으로 가슴에 품던 그때로부터 수십년세월 어느 초소에서 일하든, 어떤 직무를 맡든, 어떤 정황에 처하든 숭고한 당적자각, 당적량심을 지니고 그에 무한히 충실했을뿐 아니라 생의 마지막까지 참된 당원의 모습을 조금도 흐트리지 않은 공화국영웅 길창년동지,

그가 세상을 떠난 때로부터 30여년세월이 흘렀다.하지만 전승세대의 불멸할 위훈을 세월이 흘러도 보석처럼 빛내여주는 고마운 어머니당은 전승 70돐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길창년동지의 초상사진과 위훈자료를 전시하고 그의 유해를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에 안치하도록 해주었다.

 

* *

 

혁명앞에 준엄한 난관이 가로놓일 때마다, 조국이 큰 산을 넘어야 할 때마다 우리 당은 제일먼저 당원들을 불렀으며 매 세대 로동당원들은 그 부름앞에 언제나 충실하였다.그 수범이 바로 길창년동지와 같은 전세대 당원들이다.

전진하는 대오에 식량과 피복을 공급하라고 하면 맹폭격속에서도 그 임무를 기어이 수행하고 시련의 시기에 군기를 호송해야 할 과업이 나서면 목숨걸고 군기를 지키며 보이지 않는 초소에서 일하라고 하면 누가 알아주건말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다시말하여 당에서 맡겨준 임무, 혁명의 요구가 곧 나에게 제일 알맞고 보람찬 일감이며 그것이 한생을 바쳐 수행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여도 후회없이 끝까지 한길을 가는 사람이 참된 당원이다.

그 정신이 오늘 수백만 당원들의 가슴속에 그대로 높뛰고있으며 그 위대하고 우수한 특질을 자기의 유전성으로 가지였기에 우리 혁명은 그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새로운 승리를 향하여 줄기차게 전진해나가고있는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파산을 면할수 없는 서방의 신식민주의정책

2025년 7월 14일《로동신문》

 

얼마전 프랑스가 세네갈에 네번째 군사시설에 대한 통제권을 이관하였다.

지난해 11월 세네갈대통령은 자기 나라는 독립국가이며 국가의 주권과 외국군사기지의 존재는 서로 량립될수 없다고 하면서 프랑스군의 철수를 단호히 요구하였다.그에 따라 이번에도 프랑스군은 짐을 싸들고 도망길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였다.머지않아 세네갈에서 프랑스군사기지가 없어지게 된다.

서방의 군사기지를 철페시키는것은 아프리카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되였다.이미 지역의 여러 나라가 자국에 둥지를 틀고있는 서방나라들의 군대에 추방령을 내렸다.

미군이 니제르에서 쫓겨났다.프랑스는 말리, 부르끼나 파쏘, 니제르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챠드에서도 밀려나고있다.다른 서방나라들도 아프리카에서 무력을 긴급히 빼내가고있다.

아프리카에서 서방무력의 철수는 오랜 세월 지속되여온 외세의 간섭에 종지부를 찍고 자체의 힘으로 자주적인 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지역나라 인민들의 완강한 투쟁의 결실이다.

지난 시기 미국을 비롯한 서방나라들은 《원조》와 《협력》의 간판밑에 아프리카나라들에 예속과 략탈의 마수를 뻗치고 많은 인적 및 물적자원을 가혹하게 빼앗아갔다.

서방식민주주의를 대대적으로 전파시키며 대륙의 전통적인 문화를 파괴하고 사회적혼란과 무질서, 테로와 보복의 악순환을 몰아왔다.그리고는 이를 구실로 무력을 들이밀고 비위에 맞지 않는 정권들을 전복하는짓도 서슴지 않았다.

2011년 미국과 프랑스의 주도밑에 나토는 리비아에 군사적으로 간섭하면서 반대파가 합법적인 정권을 전복하도록 도와주었다.그 후과로 리비아는 물론 주변지역에서도 혼란이 지속되고 극단적인 테로조직들이 세력을 급속히 확장하게 되였다.

미국은 지역의 극단주의조직들을 타격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2013년부터 니제르에 무력을 주둔시키기 시작하였다.프랑스는 2014년에 사헬지역에서 《반테로》를 구실로 《바르칸》이라는 명칭을 단 군사행동을 개시하고 부르끼나 파쏘, 챠드, 말리, 모리따니, 니제르에 병력을 파견하였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세력이 가져다준것은 평화와 안정이 아니였다.그들이 목적한것은 애초에 평화가 아니라 주둔군을 수단으로 하여 아프리카나라들에 대한 내정간섭과 자원략탈을 더 손쉽게 실현하자는것이였다.

니제르언론들이 미국이 아프리카에 군대를 주둔시킨 진짜목적의 하나가 바로 니제르의 풍부한 우라니움과 일부 아프리카나라들의 원유, 광물자원을 틀어쥐는것이라고 주장한것은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실제로 서방은 아프리카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리권을 따냈으며 저들의 정치방식과 경제방식을 강요하여 지역나라들을 원료원천지, 상품시장으로 만들었다.아프리카나라들에서 략탈한 자원을 가공하여 다시 팔아먹는 방법으로 지역나라들의 경제적예속을 더욱 심화시켰다.

서방의 신식민주의정책으로 아프리카는 막대한 피해만 보았다.

아프리카는 각성하기 시작하였다.지역의 적지 않은 나라들이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여 일떠섰다.서방의 군사기지들을 쫓아내면서 자립적인 경제건설을 우선으로 내세우고 그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지금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다른 대륙의 나라들도 서방의 내정간섭과 정치경제적지배를 끝장내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들을 취하고있다.

현실은 제국주의자들이 신식민주의정책을 실시하면서 다른 나라 인민들을 제마음대로 억압하고 략탈하던 시기가 막을 내리고있는 반면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있다는것을 확증해주고있다.

이러한 사태발전에 겁을 먹은 서방세력은 저들의 종래의 지위를 유지해보려고 발악하고있다.발전도상나라들에 위협과 압력을 가하고 내부분렬과 파괴, 정부전복 등을 시도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고있다.

하지만 서방세력의 그 어떤 책동도 자주의 기치밑에 자기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개척해나가려는 인류의 힘찬 전진을 가로막을수 없다.

제국주의자들의 신식민주의정책은 파산되고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웹 우리 동포》후원 안내
カレンダー
2025年7月
« 6月   8月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31  
最近の記事
バックナンバー
  • 2025
  • 2024
  • 2023
  • 2022
  • 2021
  • 2020
  • 2019
  • 2018
  • 2017
  • 2016
  • 2015
  • 2014
  • 2013
  • 2012
  • 2011
  • 2010
  • 2009
  • 2008
  • 2007
  • 2006
  • 2005
  • 2004
  • 2003
  • 2002
  • 2001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