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잊을수 없고 잊어서도 안된다

주체113(2024)년 8월 21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원들과 군인들, 근로자들속에서 교양사업을 강화하여 그들이 높은 계급의식을 지니고 그 어떤 정황속에서도 혁명적원칙성과 계급적립장을 확고히 지키며 계급적원쑤들과 무자비하게 투쟁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구슬다락》, 《강복리》…

오늘 이 땅에는 날마다 커가는 인민의 행복과 관련한 새로운 대명사들이 끝없이 태여나고있다.

그러나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피눈물나는 과거를 잊지 말라고 절절히 당부하는 원한의 부름들도 있다.거기에는 우리가 순간도 잊어서는 안될 력사의 진실이 있다.

 

《원통골》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미제원쑤놈들은 안변군에서도 피비린 살륙만행을 감행하였다.

안변군에 기여들기 바쁘게 계급적원쑤들을 긁어모아 《치안대》를 조직한 미제침략군놈들은 미현리에서도 남녀로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들여 사과움에 가두어넣고 온갖 악착한 고문을 들이댔다.

그리고도 성차지 않아 놈들은 어른들과 아이들을 미현리의 원택골로 끌고가 구뎅이에 밀어넣고는 돌로 머리를 까고 쇠스랑과 곡괭이, 낫으로 사정없이 내리찍으면서 잔인하고 치떨리는 방법으로 학살하였다.

해방후 난생처음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되여 행복한 새 생활을 꾸려나가던 사람들, 책가방을 메고 즐거움에 넘쳐 학교로 오가던 아이들이 원쑤놈들의 야수적만행에 의해 이처럼 원통하게 학살되였다.

미제와 계급적원쑤놈들은 이렇게 한달 남짓한 기간 리주민수의 5분의 1이상에 달하는 사람들을 원택골에서 무참히 살해하였다.

하여 그처럼 아름답고 기름진 골안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리우던 원택골은 그야말로 피의 골짜기로 변하였고 그때부터 수많은 애국자들과 인민들의 피의 원한이 사무쳐있다고 하여 《원통골》로 불리워지게 되였다.

오늘도 《원통골》에 들어설 때면 미제와 계급적원쑤놈들에 의해 원통하게 숨진 수많은 령혼들의 피의 절규, 복수의 당부가 쟁쟁히 울려오고있다.

 

《수수떡뙈기논》

 

토지정리로 하여 《수수떡뙈기논》이라 불리우던 그 논이 흔적을 찾아볼수 없게 된지도 이제는 수십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철산군의 인민들은 이 이름을 자주 외우군 한다.

여기에는 피눈물나는 사연이 있다.

해방전 철산군에는 정지주놈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허가성을 가진 농민이 있었다.

어느해 이른봄 그는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죽기내기로 자그마한 논을 일구었고 땀흘려 가꾼 보람이 있어 어느덧 그 논에는 벼이삭들이 패기 시작하였다.

이무렵 그의 안해가 해산을 하게 되였다.그러나 안해앞에 당장 죽 한그릇도 내놓지 못할 형편이여서 그는 하는수없이 정지주놈을 찾아가 쌀을 꾸어달라고 사정하였다.

처음 지주놈은 마뜩지 않은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며 듣는둥마는둥하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교활한 웃음을 지으며 수수떡 한사발을 주었다.

선심이나 쓰는듯이 빨리 가져가라며 지주놈이 내주는 그 수수떡 한사발이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 지주놈의 그 선심속에 어떤 흉심이 깔려있는지 농민은 다는 알수 없었다.

이미전부터 허씨농민의 논에 눈독을 들이고있던 지주놈은 벼가을도 하기 전부터 수수떡값을 물어내라고 야단을 쳤다.정 물기 힘들면 논이라도 대신 받겠다고 호통을 쳤다.

결국 허씨농민은 쌀밥 한끼라도 배불리 먹어보자던 소박한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온 가족이 명줄을 걸고있던 그 논을 수수떡 한사발값에 지주놈에게 떼우고말았다.

그후 허씨농민이 일군 그 논은 《수수떡뙈기논》이라고 불리워졌고 오늘도 자라나는 새세대들의 가슴속에 착취계급의 교활성과 악랄성을 깨우치는 원한의 대명사로 깊이 새겨지게 되였다.

 

《인동》

 

연백벌일대에는 《인동》이라고 부르는 제방뚝이 있다.

하다면 이 류다른 부름에 과연 어떤 피맺힌 원한이 깃들어있는것인가.

해방전 일제는 우리 나라에서 더 많은 쌀을 략탈해가기 위하여 연백벌일대의 서해바다가에 제방공사를 벌려놓았다.

놈들은 여기서 일하면 많은 돈을 벌수 있다고 사람들을 꼬드기였다.그 꾀임수에 속아 많은 사람들이 공사장으로 모여왔다.

그들은 멀건 죽물을 먹으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로동에 시달리였다.그러던중 제방공사의 마감작업이 진행되던 어느날이였다.짧은 시간에 바다물곬을 막는 일은 헐치 않았다.

일제놈들은 사람들에게 이 일만 잘하면 품값도 후하게 주고 밥도 거저 먹여주겠다고 하였다.하지만 이것이 놈들의 속임수라는것을 사람들은 알수 없었다.

뚝막이작업이 마감고비에 이르자 일제놈들은 사람들에게 돌을 가득 실은 밀차를 한줄로 세우고 일제히 밀고나가게 하였다.

쇠약한 몸으로 정신없이 밀차를 밀고나가던 사람들은 힘이 진하여 주저앉군 하였다.그러면 뒤에서 들이닥치는 밀차에 떠박질리워 그대로 바다물속에 빠져들어가군 하였다.왜놈들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사람들을 발로 차넣고는 제놈들끼리 산 사람이 제방에 묻혀야 든든하다고 뇌까렸다.

결국 1 000여명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제방에 묻히여 생죽음을 당하게 되였다.

이처럼 《인동》이란 돌이나 흙이 아니라 사람으로 제방뚝을 쌓았다는 뜻으로서 거기에는 일제야수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원한이 어려있다.

원쑤들의 만행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때부터 이 제방을 억울한 사람들의 시체로 쌓여진 뚝이라고 하여 《인동》이라 불렀다.

세월의 흐름속에 모든것이 변하였다.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산천이 변하여도 달라지지 않는것이 제국주의자들과 계급적원쑤들의 본성이며 야망이다.

행복할수록 원쑤를 잊지 말라, 이것이 원한의 부름들이 새세대들에게 새겨주는 피절은 당부이다.

우리는 세월이 흘러도 원쑤놈들의 죄행을 절대로 잊지 말고 계급의 무기를 더욱 날카롭게 벼리며 사회주의 우리 제도를 굳건히 지켜야 할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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