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6月 14th, 202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중요군수공업기업소를 현지지도하시였다

2025년 6월 14일《로동신문》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6월 13일 중요군수공업기업소를 현지지도하시였다.

조용원동지, 김덕훈동지, 리히용동지, 오수용동지, 김정식동지를 비롯한 당중앙위원회 지도간부들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상 노광철동지, 외무상 최선희동지, 제2경제위원회 위원장 고병현동지, 국방과학원 원장 김용환동지, 조선인민군 대련합부대 지휘관들과 도당책임비서들이 군수공업기업소를 참관하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프레스직장, 선압직장, 조립직장을 비롯한 기업소의 여러 생산현장들을 돌아보시면서 2025년 상반년도 포탄생산실태와 능력확장 및 현대화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당창건 80돐과 당 제9차대회를 자랑찬 무장장비증산성과로 맞이하기 위해 총분기하여 혁신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고있는 군수공업기업소 로동계급의 높은 애국열, 투쟁열에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우리 국방공업을 세계적인 선진공업으로 비약시킬데 대한 당중앙의 구상을 높이 받들고 전반적생산공정들을 합리적으로 재배치하여 현대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한 기업소의 발전성과를 평가하시고 국방력발전의 전망적수요에 맞게 발전지향적인 목표를 정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기업소가 앞으로 수행하여야 할 새로운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국가방위전략의 제반 요구를 충족시키며 현대전의 요구에 맞는 새형의 위력한 포탄생산을 늘이자면 생산능력을 더욱 확대보강하고 공정배치를 보다 합리적으로 하며 생산의 무인화수준을 부단히 제고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를 위한 과업들을 밝히시였다.

동행한 참관자들은 수림화, 원림화가 높은 수준에서 실현된 기업소의 교양구역에 위치한 사상교양거점들과 생활구역에 그쯘하게 갖추어진 문화회관, 종합적인 문화후생시설들, 현대적인 보육시설들과 아담한 살림집들을 참관하면서 군수로동계급의 문명한 생활기풍을 체감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인민을 매혹시키는 위인의 세계 : 안변벌상공의 사연깊은 비행운

2025년 6월 14일《로동신문》

 

얼마전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주타격전방인 농업전선에서 례년에 없이 불리한 상황이 조성된 속에서도 기본면적의 모내기를 성과적으로 결속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져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주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으며 사람들 누구나 위대한 당의 현명한 령도아래 또다시 찾아올 이해의 풍요한 가을을 흐뭇하게 그려보았다.

파아란 잎새를 펼친 벼포기들이 산들바람에 흐느적거리며 황금파도 설레일 래일을 손저어 부르는듯한 사회주의전야의 아름다운 모습을 대할수록 우리 인민이 가슴뜨겁게 되새겨보는 고장이 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두해전 8월 태풍피해의 흔적을 하루빨리 가셔주시려 한주일동안에 무려 두차례나 찾으시였던 안변군 오계농장과 월랑농장이다.

정녕 위대하신 우리 어버이께서 진행하신 그날의 현지지도는 얼마나 가슴뜨거운 사연을 안고있는것인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업전선은 사회주의수호전의 전초선입니다.농사를 잘 지어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여야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키고 사회주의강국을 성과적으로 건설할수 있습니다.》

2023년 8월 17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안변군 오계농장과 월랑농장을 또다시 찾으시였다.뜻하지 않은 큰물로 하여 피해를 입었던 논들의 상태를 다시금 알아보고 필요한 대책을 세워주시려 천금같이 귀중한 시간을 내신것이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따라서는 일군들의 가슴은 후덥게 달아올랐다.

며칠전 태풍에 의한 폭우와 해일의 영향으로 침수된 농경지를 찾으시여 태풍피해를 속히 가시기 위한 조치를 취해주시며 최대한 농작물을 보호하고 알곡수확고에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시급히 영양관리대책을 따라세우는것을 비롯하여 필요한 농업기술적대책들을 세울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나라의 농사문제를 두고 얼마나 마음쓰시였으면 경애하는 그이께서 안변벌의 평범한 농장들에 거듭 헌신의 자욱을 새기시랴.

하지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자신의 로고에 대하여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피해지역 논들을 돌아보시면서 피해복구실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온통 침수되여 흙탕속에 묻혀있던 농장벌들이 피해흔적을 말끔히 가신 모습을 기쁨속에 바라보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존안에는 환한 미소가 어리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만족하신 어조로 안변군 오계농장과 월랑농장의 논들이 원상대로 복구되였다고, 며칠전만 하여도 강하천제방이 터져 많은 면적의 논들이 물에 잠겨있었는데 이제는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짧은 기간에 침수피해를 입은 농경지들을 원상복구하고 알곡수확고에 영향이 미치지 않게 한것은 커다란 성과입니다.》

자신께서 바치신 크나큰 심혈과 로고는 고스란히 묻어두시는 경애하는 그이의 말씀에 일군들은 머리가 숙어졌다.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이번에 인민군대를 동원한것은 결코 250여정보의 피해면적이 많아서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싸우는 전선에서 한치의 땅도 적들에게 내여줄수 없듯이 자연의 광란으로부터 단 한평의 땅도 잃을수 없다고, 우리 군인들의 애국충심에 의해 자연재해를 입었던 이 논들에도 풍년이삭 설레이는 바다가 펼쳐지게 되였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농장원들이 애써 가꾼 하나의 벼이삭이라도 잃을세라 그리도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심중이 어려와 일군들은 격정을 누를길 없었다.

잠시후였다.

한 일군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다가와 농약살포준비가 다되였다고 보고를 드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러면 농약살포를 진행하라고 명령을 하달하시였다.

잠시후 안변벌상공으로는 여러대의 경수송기와 직승기들이 날아와 푸른 하늘에 비행운을 새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자리를 뜨실념을 하지 않으시고 비행지휘까지 몸소 하시는것 아닌가.

마치도 비행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해주시듯 경수송기들과 직승기들이 비행측선을 잘 잡아야 한다고, 비행고도를 적당한 높이로 유지하며 농약살포를 편대를 지어서도 하고 한대로도 하면서 담당구역이 빠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그이를 우러르는 일군들의 가슴은 불을 안은듯 뜨거워올랐다.

며칠전에는 휘뿌려지는 찬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농장을 찾으시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해주시더니 오늘은 또 이렇게 현지에 나오시여 피해복구정형을 세심히 료해하시고 몸소 농약살포를 위한 비행지휘까지도 하시는것이다.

고금동서 그 어디에 이렇듯 한 나라의 령도자가 태풍피해를 입은 침수논들의 작황을 두고 그리도 마음쓰며 비행기들의 농약살포까지 직접 지도해준 례가 있었던가.

이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올해 농사를 안전하게 결속하기 위한데 모든 힘을 총집중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자연의 피해를 가셔낸 이 지대에 오곡백과 무르익는 풍요한 가을과 행복이 깃들기 바란다고 따뜻이 축복해주시였다.

안변벌상공에 새겨진 사연깊은 비행운, 정녕 그것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시는 위대한 어버이를 모신 우리 조국에서만 태여날수 있는 또 하나의 감동깊은 화폭이였다.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이 어찌 안변군의 오계리와 월랑리에만 새겨져있다고 하랴.

몸소 운전대를 잡으시고 큰물피해를 입은 은파군 대청리의 좁은 포전길을 달리시던 그날의 사연, 혹심하게 피해를 입은 안석간석지논의 허리치는 감탕물속에서 논벼의 생육상태를 헤아려보시던 잊지 못할 화폭, 태풍과 해일이 휩쓴 해안가의 험하디험한 돌서덜길을 밟으시던 모습, 언제 산사태가 날지 모르는 험한 길을 헤치시던 헌신의 자욱…

하늘도 감복할 이렇듯 뜨거운 정과 열로 인민의 행복을 지켜주시고 인민을 위한 만복의 열매를 주렁지우시는 우리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이시다.

하기에 우리 인민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행복, 이 땅에 마련되는 모든 경이적인 결실들은 위대하신 우리 어버이의 천만로고와 맞바꾸어지는것이라고.(전문 보기)

 

[Korea Info]

 

충성의 한길에서 변치 않는 삶을 조국은 보석같이 빛내여준다  공화국영웅
홍영근동지에 대한 이야기

2025년 6월 14일《로동신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의무감보다 수령의 전사로서의 자각을 깊이 간직한 사람, 개인의 공로와 명예보다 수령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어떤 역경속에서도 드놀지 않는 혁명적신념을 지닌 사람만이 수령에게 끝까지 충성 다할수 있습니다.》

2018년 9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공화국영웅홀에는 공화국영웅 홍영근동지의 사진과 투쟁공적이 새로 전시되였다.

강사로부터 그에 대한 해설을 듣는 참관자들은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이 우리의 빛나는 승리로 결속된 때로부터 45년만에, 평범한 인민반장으로 수십년간 일하다가 세상을 떠난 때로부터 15년후에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남다른 인생행로를 걸어 영생의 언덕에 오른 홍영근동지, 그는 어떤 사람이였고 어떤 공적을 세웠으며 그의 고결한 삶의 자욱자욱이 우리에게 남긴 생의 메아리는 과연 어떤것인가.

 

우리의 생명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평안북도 신의주시에서 살고있는 홍정수로인의 집에는 가보처럼 정히 보관되여있는 색날은 사진첩이 있다.

그 사진첩의 첫장에는 홍안의 모습으로 대좌의 견장을 달고있는 한 내무성(당시) 군관의 사진이 있다.그 군관이 바로 로인의 아버지인 공화국영웅 홍영근동지이다.

해방전의 철공소로동자를 새 조선의 보안서원으로, 당원으로 키워주시고 평양특별시(당시) 정치보위부장의 막중한 직무를 맡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은 홍영근동지에게 있어서 삶의 고마운 은인이실뿐 아니라 목숨바쳐 보위하여야 할 민족의 운명이시였다.

하기에 그는 새 조국건설시기에는 물론 준엄한 전쟁시기에도 수도의 정치적안전을 책임졌다는 높은 자각을 안고 맡은 임무에 언제나 충실하였다.

홍영근동지는 대좌의 견장을 단 정치보위부장이였지만 수령의 신변안전을 위해서라면 평범한 전사의 모습으로 맹호처럼 달려나가 척후에서 용감히 싸웠다.

1951년 4월이였다.

홍영근동지는 정방산부근에 둥지를 틀고있던 《반공동지회》의 원쑤놈들이 5.1절기념행사를 파탄시키기 위해 평양에 기여들었다는 자료를 입수하였다.

네놈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우리 수도의 정치적안전은 절대로 해칠수 없다!

여러명과 함께 현지로 달려나간 홍영근동지는 주변지형을 주의깊게 살피다가 어느한 초가집에 숨어있는 놈들을 발견하였다.그는 주저없이 울바자를 박차고 뛰여들었다.

놈들은 완강히 저항하였다.적간첩두목놈이 마당으로 뛰쳐나오자 한 대원이 그놈을 덮쳤다.놈은 필사적으로 발악하다가 안전고리를 뽑은 수류탄을 꺼내들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홍영근동지는 수류탄을 쥔 그놈의 손목을 비틀어 놈의 배밑으로 꺾어 누르며 힘껏 깔아눕혔다.

순간 수류탄이 터지며 수많은 파편이 홍영근동지의 온몸에 들어박히고 그의 두손을 날려보냈다.

홍영근동지는 자기의 두손이 떨어져나간것을 미처 의식하지 못한채 피흐르는 팔로 허리를 더듬으며 권총을 뽑으려고 했다.

바로 이때 다른 한놈이 또다시 수류탄을 들고 뛰여나왔다.위급한 정황속에서 그는 다시 몸을 날려 부상당한 두팔로 놈의 목을 그러안고 딩굴기 시작하였다.

전우들이 달려왔을 때 홍영근동지는 놈의 모가지를 꽉 그러안은채 의식을 잃고있었다.

한주일후 의식을 회복한 그는 동지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원쑤놈들을 다 잡았습니까?》

홍영근동지는 바로 이런 사람이였다.두손이 떨어져나간 육체적고통보다도 수령의 신변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참된 보위전사, 수도의 정치적안전에 드리워진 위험을 제거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조차 없다는 무한한 책임감을 간직한 불사신!

과연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듯 한몸 아낌없이 내대게 하였는가.

항일빨찌산들은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사수한 전투마다에서 지휘관과 대원이 따로없이 모두가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였다.그는 해방후 항일투사들로부터 그 모범을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새기였던것이다.

《저는 오직 김일성장군님만을 믿고 따르며 그길에서 뼈가 부서지고 가루가 되는한이 있어도 장군님을 목숨으로 옹호보위하겠습니다.》

홍영근동지는 해방의 첫 기슭에서 다진 충성의 이 맹세를 실천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우리의 생명은 수령결사옹위를 위해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 수령결사옹위를 이 나라 공민의 의무이기 전에 혁명전사의 량심과 의리로 간직한 홍영근동지의 인생관이 비껴있고 조선로동당이 키워낸 첫세대 혁명전사들의 참인간상과 고결한 풍모가 있다.

그 이후 홍영근동지의 생은 어떻게 흘러갔는가.

 

두손이 없어도 혁명은 끝까지 해야 한다

 

수령옹위전에서 영웅적위훈을 세우고 몸에 심한 부상을 당한 홍영근동지는 제대되여 군복을 벗었다.

당의 신임으로 피현군에 위치한 영예군인제1통계부기학교(당시)에서 1952년 여름부터 교장으로 사업하던 그는 축포가 터져오르는 전승의 날도 그곳에서 맞이하였다.

3년간의 전쟁을 빛나는 승리로 결속한 전우들이 군화끈을 풀새없이 피로써 지킨 조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복구전역으로 용약 달려나가 땀을 동이채로 흘릴 때 격동된 그의 마음도 수도 평양으로 달리고있었다.

전쟁이 승리하였다고 하여 혁명이 끝났는가.

두손을 잃었다고 하여 복구건설에서 뒤전에 물러나야 하는가.

성한 몸이 아니여서 어제날의 전우들과 함께 다시 보위초소에 설수 없고 두손이 없어 벽돌 한장 제힘으로 쌓을수 없는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서운했다.

하지만 그는 수령의 전사된 본분이 끝났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영예군인학교의 교장, 그 직무를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으로, 당의 신임으로 대단히 무겁게 받아들였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학교의 모든 영예군인학생들이 수령의 사상과 정신을 공기처럼 호흡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들모두가 부상당한 몸이라 하여도 절대로 비관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락천적으로 생활하게 하여야 하며 가만히 앉아서 국가의 혜택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무엇이든 보탬을 주는 인간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조국의 서북변의 한 산골군에서 영예군인들의 정신적성장을 맡은 책임적인 혁명초소의 일군이 된 그는 이런 각오를 가지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크나큰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억척같이 일했다.

전쟁시기에는 물론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도 당과 국가에 손을 내밀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영예군인학생들을 발동하여 학교주변에 염소와 돼지, 닭과 오리를 키우는 목장을 만들어놓고 자체로 부식물을 생산하여 보장하였고 가야금, 바이올린, 피리, 탁구채를 만들어주어 그들모두가 신심과 랑만에 넘쳐 생활하게 하였다.

그가 5년간 교장으로 사업하는 기간에 이룩한 공적에 대하여서는 력사에 불과 몇토막의 단편적인 사실로밖에 알려져있지 않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조국을 위한 투쟁도 중단하지 않은 그의 투철한 혁명적신념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당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영예군인들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뜻대로만 사는 그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각방으로 압력을 가하던 끝에 두손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교장을 계속할수 있는가, 건강도 좋지 못한데 국가에서 보조금이나 받으며 휴식하게 하라고 하면서 끝내 해임시켰다.그때 홍영근동지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나에게는 우리 수령님과 당의 믿음이면 되오.교장이면 어떻고 로동자면 뭐라오.》

그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든 오직 수령밖에는 그 누구도 모르며 수령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투철한 각오와 일념으로 가슴끓인 혁명전사,

이런 전승세대가 바로 준엄한 전쟁을 이겼고 재더미우에서 전후복구건설의 우렁찬 동음을 울리며 내 조국땅에 전설속의 천리마가 나래치게 했다.이렇듯 훌륭한 혁명가, 애국자들이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을 단호히 쳐갈겼고 언제한번 피흘린 대가를 바람이 없이 국가의 번영과 후손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줄기차게 분투하고 또 분투해왔다.

그 세대를 대표하는 애국자들중의 한 사람으로서 홍영근동지는 조선로동당이 키워낸 첫세대 혁명전사의 혁명성이 어떤것인가를 자기의 신념과 원칙으로,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림없는 실천행동으로 증명했다.

목숨이 붙어있는한 두손이 없어도 혁명은 끝까지 해야 한다.직무가 높든낮든, 어느 위치에 세우든 나는 항상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이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오직 수령님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를것이며 수령님의 뜻을 충직하게 받들것이다.

이것이 홍영근동지의 투철한 인생관, 혁명관이였다.

전후 그가 변함없이 이어간 충성의 삶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본능으로 간직한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언제나 참된 혁명전사로 생을 빛내이게 된다는 고귀한 진리를 새겨주었다.

 

인민반장으로 수십년

 

홍영근동지가 세상을 떠난지 15년이 지난 1998년 6월 24일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

《평안북도 신의주시 마전동 인민반장》이라는 글발이 새겨진 영웅증서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그가 걸어온 흔치 않은 인생길을 더듬어보았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그처럼 어렵던 전후복구건설시기 남성인민반장은 그가 처음이였다.

근 30년간 인민반장으로 사업한 그가 전쟁시기에 대좌의 군사칭호를 지니고 평양특별시(당시) 정치보위부장으로 사업하였다는것과 수령옹위의 제1선에서 영웅적위훈을 세운데 대하여서는 그의 자식들과 한인민반에서 사는 이웃들조차 다 모르고있었다.단 한번도 자기의 공적을 내놓고 자랑해보거나 그에 따르는 평가를 바란적이 없는 그였던것이다.

그런 그가 인민반장으로 사업하게 된데는 어떤 사연이 있는가.

신의주시 마전동(당시)으로 이사한 홍영근동지는 1956년 여름에 동초급당위원으로 선거되였다.

동초급당일군과 이야기하는 과정에 인민반장사업이 무척 힘들다는것을 알게 된 홍영근동지는 서슴없이 자기에게 그 일을 맡겨달라고 제기하였다.

몸의 수십곳에 상처자리가 있고 두손을 잃은 영예군인전쟁로병인 그가 인민반장사업을 하겠다고 제기했을 때 동초급당일군은 몸도 불편한데 동초급당위원으로서 자기들을 잘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홍영근동지는 누구나 선뜻 맡아나서기 어려워하는 인민반장사업을 스스로 떠안았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직분은 많아도 인민반장이라는 말처럼 인민과 제일 가깝게, 제일 정겹게 이어진 부름은 흔치 않다.

하지만 그때의 인민반장사업은 오늘날의 인민반장사업과 대비조차 할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으나 인민생활은 여전히 어려웠고 부족되는것이 너무도 많았다.

아직 반토굴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생활상곤난은 좀처럼 가셔지지 않고있었다.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도 지금처럼 진행되지 못하고있었고 복구건설의 노래가 곳곳마다에서 울려나오면서 새 생활이 약동하고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지 않았다.

그가 인민반장이 되였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의수를 한 그를 측은한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았고 또 일부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설복해도 집단을 위한 일에 선뜻 몸을 적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홍영근동지는 아무리 힘들고 괴로와도 언제나 기수가 되여 인민반원들과 동주민들을 이끌었다.

그에게 있어서 인민반장사업은 인민을 당의 두리에 하나로 묶어세우는 사업이였고 인민반을 충성과 애국으로 굳건한 일심의 대가정으로 꾸리는 혁명투쟁이였다.

인민반장인 그는 언제나 인민반원들과 동주민들을 당정책관철에로 이끌었다.전야에 더 많은 거름을 마련하여 보내줄 때에도 홍영근동지는 자신이 앞장서군 하였다.그 몸으로는 일을 못한다고 만류하는 동일군들에게 그는 전쟁시기에 부상당했다고 참호에 앉아있은 병사는 없었다고 하며 거름지게를 남먼저 지고 인민반원들을 이끌어갔다.

사람들은 그의 불굴의 모습에서 두팔을 잃고도 턱으로 중기의 압철을 누르던 조군실영웅과 수류탄을 입에 물고 적진으로 뛰여들던 강호영영웅을 다시 보는것만 같았다.

그의 며느리인 전명화동무는 시아버지가 불편한 몸이지만 매일같이 이른새벽에 남먼저 겨드랑이에 비자루를 끼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지지도를 하실 때마다 지나가시는 길을 쓸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추억하군 한다.

홍영근동지는 그때 단순히 길만 깨끗이 쓴것이 아니였다.

수령을 받드는 길에서 티검불 하나라도 앉을세라 자기의 량심을 어루쓸었고 인민반원들의 마음이 오직 수령을 진심으로 받들고 나라를 위하는데 지향되도록 그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흐리터분한것들을 말끔히 쓸어냈다.

사람들은 점차 그를 동정의 눈빛이 아니라 존경의 시선으로 보았고 영예군인인민반장처럼 순결하게 살고 그처럼 헌신적으로 일해나가기 위해 애썼다.

이렇게 홍영근동지는 여러개의 수류탄파편이 곳곳에 박혀있는 몸으로 인민반원들을 한사람같이 단합시켜 동적으로 제일 우수한 인민반으로 만들었다.

나라에서 강철증산을 호소할 때에는 인민반원들을 발동시켜 파철수집을 하고 알곡증산을 해야 한다고 하면 또 그들을 거름생산에로 불러일으키였다.때로는 동네아이들의 인자한 할아버지가 되여 구수한 옛말도 들려주었고 마을녀인들이 가정사를 하소연하면 집집마다 찾아가 그 애로까지 풀어주며 온 인민반의 대소사를 다 맡아안고 화목을 도모하기 위해 애쓴 동네의 큰아버지가 바로 그였다.

그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사람들은 그가 인민반장일을 그만두고 전쟁로병으로서, 영예군인으로서 병치료에 힘을 넣고 국가의 혜택과 사회적우대를 받으며 여생을 편히 지냈더라면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정말 그랬더라면 그는 대좌의 견장을 단 군복을 입고 가슴에 영웅메달을 번쩍이며 성대하게 진행되는 전국로병대회에도 참가하는 영광을 지녔을수도 있다.

근 30년세월 궂은날, 마른날 가리지 않고 인민반사업에 헌신하던 그는 1983년 여름 동에서 진행되는 인민반장회의에 참가하였다가 전쟁시기에 입은 상처의 후과로 63살에 순직하였다.

눈을 감는 최후의 순간까지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로 불같이 산 그에게 당과 국가에서는 묻혀있던 전화의 나날의 공적까지 다 찾아내여 1998년 6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었다.

한생토록 변함없고 사심없이, 견실하고 대바르게 조국을 위해 헌신하며 후손들에게 애국적삶의 본보기를 가르쳐준 전승세대를 그처럼 높이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전승 60돐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에 그의 유해를 안치하도록 해주시고 온 나라가 다 알도록 그를 내세워주시였다.

 

* *

 

가렬한 전쟁시기만이 아니라 전후복구건설시기와 사회주의건설시기에도 그는 생의 순간순간을 수령을 위한 복무, 조국을 위한 복무로 빛내여왔다.

그의 생의 매 구간중에서 어느 한 구간을 보아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참된 교본의 글줄이 빛발친다.

그에게 수여된 공화국영웅칭호는 단 한순간의 공백도 없이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변함없이 충실하여온 고결한 생에 대한 총적인 평가인것이다.

어떤 사람이 영웅인가.이 물음에 조선로동당이 키운 첫세대 혁명전사인 홍영근동지가 고귀한 삶의 모범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명백한 대답을 주고있다.

수령을 받드는 충성의 마음을 한생토록 변치 않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을 위한 복무를 계속하는 사람이 참된 애국자이며 영웅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전쟁로병동지들이 한생 발휘해온 충실성과 용감성, 애국심은 오늘 수천만 인민들속에 그대로 높뛰고있으며 1950년대 준엄한 포화속에서 탄생한 위대하고 우수한 그 특질을 자기의 유전성으로 가지였기에 우리 혁명은 세대를 이어서도, 그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좌절과 후퇴도 없이 자기 위업을 자기의 힘으로 굴함없이 개척해나가고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 땅의 새세대들이여,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위대한 전승세대의 고결한 인생관을 따라배우자!

바로 그들처럼 생의 시작부터 마감까지 오직 수령밖에 모르는 절대적인 충실성을 체질화, 인생관화할 때 우리 당과 조국은 충성의 한길에서 순간도 변치 않은 그 삶을 보석같이 빛내여준다.(전문 보기)

 

[Korea Info]

 

끝나지 않는 수업

2025년 6월 14일《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성과 야수성을 바로 알게 하고 영원히 잊지 않게 한 조국해방전쟁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부모와 형제자매들, 귀중한 전우들과 벗들을 앗아가고 참혹한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얼마전 룡연군계급교양관을 찾았던 우리는 한통의 편지를 보게 되였다.그것은 평성시에서 살고있는 한 녀성이 몇해전 새세대들에 대한 계급교양사업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자기 어머니가 겪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의 이야기를 적어보낸것이였다.

《저의 어머니 로용애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원이였습니다.하지만 전쟁때 원쑤놈들에 의해 입은 상처로 교원생활을 10년밖에 더 할수 없었습니다.…》

로용애녀성의 고향은 황해남도 룡연군 석보리였다.

해방전 그의 아버지는 일곱식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품팔이를 하였다.그러던 아버지는 해방된 조국땅에서 일군들을 키우는 학교를 졸업하고 면인민위원장(당시)으로 일하게 되였다.

나라없던 세월 인간이하의 천대를 받던 자기를 어엿한 일군으로 키워준 그 품이 너무도 고마와 그는 새 조국건설에 모든 힘을 다 바쳤다.

조국앞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왔던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그는 중요한 문건들을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느라 뒤늦게 후퇴의 길에 올랐다가 미국놈들에게 체포되여 무참히 학살당하였다.

아직은 아버지의 최후를 모르고있는 로용애녀성의 집으로 해방전의 지주놈과 녀편네가 나타났다.놈들은 5년동안 《제땅》에서 농사지은 쌀을 다 내놓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가족을 멸살시키겠다고 행패질을 하던 끝에 집재산을 몽땅 걷어갔다.놈들의 만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후 그의 집으로 《치안대》놈들이 달려들었다.놈들은 19살 난 그와 어머니, 남동생을 다짜고짜 고문장으로 끌고갔다.

놈들은 남편이 문건을 어디에 숨겼는지 대라고 악을 쓰며 어머니에게 뭇매질을 가하였다.그래도 어머니가 입을 열지 않자 방법을 바꾸어 그들을 서로 다른 감방에 가두어넣고 고문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어느날 감방에서 로용애녀성을 끌어낸 놈들은 그가 문건을 감춘 장소를 모른다고 잡아떼자 사정없이 발로 걷어차며 모진 악형을 들이대였다.매질을 할 때마다 신음소리를 낸다고 놈들은 그의 발에서 버선을 벗기여 입을 틀어막고 계속 고문을 들이댔다.

그가 실신하여 쓰러진 바닥에는 피가 질벅하였다.

로용애녀성에게서 더는 비밀을 알아낼수 없다고 단정한 놈들은 빨갱이족속들에게는 총알도 아깝다고, 깨깨 말리워죽여야 한다고 뇌까리며 그와 어머니, 남동생을 지하감방에 처넣었다.

놈들의 만행은 그의 가족들에게만 국한된것이 아니였다.

원쑤놈들은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끌어다 잔인한 고문을 하고는 감옥안에 가두고 물 한모금도 주지 않았다.하루에도 몇명씩 감방에서 숨을 거두었으나 놈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후 놈들은 그의 남동생과 함께 수많은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을 끌어내다가 생매장하고 총으로 쏘아죽이는 몸서리치는 살륙만행은 매일이다싶이 계속되였다.

그러나 원쑤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인생의 참된 진리를 체득한 인민들의 의지를 꺾을수 없었으며 얼마 안있어 인민군대의 재진격과 함께 마을은 해방되고 감옥에 남아있던 인민들도 모두 구원되였다.

로용애녀성은 전화의 나날 원쑤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전쟁승리를 위한 사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였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고향마을에서 얼굴에 늘 웃음꽃이 피여있는 명랑한 처녀였다.그러나 원쑤들에게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그때부터 그는 아예 딴사람이 되였다.

구천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전에는 한시도 마음편히 살수 없기에, 날로 행복이 꽃펴나는 이 땅에 어떤 처절한 피의 력사가 새겨져있는가를 후대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의무를 자각했기에 전후 그는 교단에 섰다.하지만 원쑤들의 고문의 후과로 그는 10년만에 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그의 수업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그가 교단에서 들려준 피맺힌 이야기를 어제는 그의 제자들이, 오늘은 그 자식들이 대를 이어가며 후대들의 가슴속에 새겨주고있다.래일에는 또 다른 세대들이 그날의 수업을 계속하여 받을것이다.

그렇다.복수자의 수업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넘보며 미쳐날뛰는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이 살아있는한 이 땅에서 계급투쟁의 진리를 만장약한 복수자들의 대오는 끝없이 자라날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로씨야대통령 조국에 대한 충실성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강조

2025년 6월 14일《로동신문》

 

로씨야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이 12일 국경절(로씨야의 날)을 맞으며 크레믈리에서 진행된 로력영웅칭호와 국가상을 수여하는 의식에 참가하여 연설하였다.

그는 《로씨야의 날》이라는 이 위대한 말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간직되여있는 숭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더 높은 성과와 승리에로 모두를 고무하여준다고 말하였다.

로씨야는 예로부터 다민족국가로 형성되였으며 로씨야의 다민족인민은 언제나 공동의 리익, 나라의 리익을 위하여 복무하였다고 하면서 그는 조국에 대한 진실한 충실성은 로씨야의 힘과 자주성, 주권을 강화해준다고 언명하였다.

그는 로력영웅칭호와 국가상을 수여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더 큰 성과를 거두기를 축원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충돌이 강요된다면 모든 미군기지들이 타격권안에 들게 될것이라고 경고

2025년 6월 14일《로동신문》

 

이란국방 및 무력병참상이 1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군사적위협에 굴하지 않을 자기 나라의 립장을 밝혔다.

그는 미국이 이란과의 핵협상에서 결실을 보지 못할 경우 충돌이 일어날것이라고 위협하고있는데 대해 언급하면서 《만일 우리에게 충돌이 강요된다면 모든 미군기지들은 우리의 타격권안에 들게 되며 우리는 주둔국들에 있는 미군기지들을 과감하게 공격할것이다.》고 언명하였다.

한편 이보다 앞서 10일 그는 이란정보계가 이스라엘정탐모략기관인 모싸드의 과장된 신화를 깨버렸을뿐 아니라 음흉한 유태복고주의정권의 허세를 꺾어놓음으로써 또 한차례의 강타를 안겼다고 강조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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