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한 정치》의 본색

2025년 10월 2일《로동신문》

 

서방의 정객들과 그 대변자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하며 념불처럼 외워대는것이 있다.저들의 정치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국민의 리익을 보장하기 위한것이라는것이다.그들은 서방식민주주의에도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간판을 붙이고 《특수한 계층이나 계급의 리익만을 추구하는것이 아니라 정치인과 민중이 일체적인 감정속에 융합되는 정치,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발양시키는 정치》라고 하면서 세계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고있다.

자본주의제도의 반인민성을 가리우기 위한 황당무계한 궤변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본질에 있어서 소수 특권층을 위한 정치이다.소수는 특권을 누리고 다수는 무권리와 빈궁에 시달리게 하는 정치, 인민대중에 대한 지배층의 억압과 독재를 합법화하는 정치이다.

서방이 표방하는 《국민을 위한 정치》는 어디까지나 대독점자본가들을 위한것이지 광범한 근로대중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지금 자본주의나라 정객들이 요란스럽게 떠들고있는 《만민평등》이니, 《국민의 리익실현》이니 하는것들은 언제 가도 실현될수 없는 빈말공부에 불과하다.

그 어느 사회에서나 진정으로 인민을 위한 정치가 되자면 인민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여야 하며 그들의 의사와 요구가 정책으로 되고 일관하게 실행되여야 한다.

그런데 서방세계에서 국가의 주인은 인민이 아니라 극소수 부유층이다.이들의 특권적지위가 제도적으로 담보될뿐 아니라 《국민을 위한다.》는 너울을 쓰고 반인민적인 정책이 공공연히 실행되고있는 곳이 바로 자본주의나라들이다.

서방에서는 국가의 모든 정책이 부유층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작성되고 정권활동도 그들에게 의거하여 진행되고있다.부와 권력을 독차지한 지배계급은 특권을 부리며 근로인민의 존엄을 마음대로 유린하고있다.근로대중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정권의 존재방식으로 되고있다.근로대중을 정치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배제한 정치는 진정한 인민의 정치로 될수 없다.

원래부터 서방의 정객들이 념두에 둔 국민은 근로인민대중이 아니다.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사회의 극소수를 이루는 자본가들을 비롯한 착취자들이다.정객들자체가 자본가들의 리익의 대변자들이다.

자본주의의 대변자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는 나라의 공민들모두가 의회선거에 참가하거나 정치활동을 하는것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자본가들은 돈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근로자들의 대표들이 국회에서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면서 그들의 정치활동을 억제하고있다.거대한 재부를 가진 억만장자와 가난한 근로대중사이에 사회정치적평등이라는것이 있을수 없다.

《국민을 위한 정치》의 한 형태라고 하는 다당제도 마찬가지이다.이는 부르죠아독재를 가리우기 위한 위장물이다.서방나라들에서 다당제를 실시하고있지만 그 당들은 거의다 착취계급의 정당들이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부르죠아정당들이 엇바꾸어가면서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고 《강령》이라는것을 내흔들면서 평민을 위한 정치를 할것처럼 수선을 떨고있지만 하나의 정치적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

정권을 장악한 정당들은 신통히도 독점자본가들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이다.실지로 정치를 하는것은 정당이 아니라 독점자본가들이다.《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외피를 씌우기 위해 선거놀음도 벌리지만 선거경쟁은 정견경쟁인것이 아니라 금전경쟁이다.선거에서 돈을 많이 뿌리는 독점자본가들과 그 대변자들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이러한 정권에서 근로대중을 위한 정책이 나올리 만무하다.

미국 마사츄세쯔공과대학의 정치평론가이며 사회활동가인 노암 촘스키는 정책작성에 대한 부자들의 영향력과 그들의 재부수준은 정비례관계에 있다고 한바 있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 정치는 말그대로 돈에 의하여 좌우되는 금전정치이다.이 금전정치는 선거와 법제정, 정책실시의 모든 고리에 관통되여 사실상 일반대중은 정치활동에 참가할수 있는 권리를 가질래야 가질수 없다.돈많은자들만이 헌법에 규제된 《정치적권리》를 향유할수 있다.

서방나라들에서 특권층의 수중에 완전히 장악되여있는 권력은 반인민적독재실현의 수단으로 복무하고있다.

자본가계급은 근로대중에게 정치적자유를 절대로 주지 않는다.저들의 특권적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통치기구를 파쑈화하고 폭압무력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있으며 자유와 민주주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있다.

최근에도 프랑스의 각지에서 정부의 긴축정책을 반대하는 100여만명의 시위가 벌어졌는데 당국은 수만명의 경찰과 무인기, 장갑무력까지 내몰아 시위자들에 대한 탄압에 광분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을 체포하였다.

다른 서방나라들의 실태도 다를바 없다.그 어느 자본주의나라나 다 수많은 악법들과 방대한 폭압기구를 동원하여 진보적인 정당, 사회단체들의 활동과 일반주민들의 일거일동을 항시적으로 감시하고 제약하고있다.일단 저들의 리익에 저촉된다고 여겨질 때에는 폭압의 칼을 가차없이 휘두르고있다.

서방의 정객들이 저들의 독재통치를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장난으로 분칠하려는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민의 정치를 바라는 근로대중에 대한 우롱이고 모독이다.

서방이 표방하는 《국민을 위한 정치》는 근로대중을 자본의 노예, 재벌들에게 피땀을 깡그리 빨리우는 말하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반인민적인 정치이다.

특권층을 위한 서방의 정치제도에서 근로대중의 리익에 맞는 그 어떤 정책에 대하여 기대할수 없다.서방에서는 정치가 치부의 수단으로 되고있다.특권계층은 립법, 행정, 사법계를 장악하고 저들에게 유리한 각종 법들과 결정들을 제멋대로 만들어내면서 근로자들을 악착하게 착취하고있다.이는 절대다수 근로대중의 인권이 심히 침해당하는 결과를 낳고있다.

서방나라들은 한때 위선적으로나마 실시하여오던 《복지》정책들을 내던지고있다.리유는 오직 하나 《복지》정책들이 정치적통제주를 장악한 대독점체들의 리윤을 감소시킨다는것이다.근로자들의 생명권과 로동권, 사회적약자들의 생존권이 《민주주의적합의》로 가볍게 무시당하고있다.

싱가포르신문 《련합조보》는 한 기사에서 서방의 정치는 이미전부터 썩은것이였다고 하면서 재부가 날을 따라 소수의 사람들의 수중에 집중되고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더 가난해지고 부자들은 더욱더 부유해지고있다, 정치가 부자들과 정객들의 수중에 쥐여져 개인의 리익에 복무하고있다, 인민들은 정치분야에서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수 없다, 이러한 무력감, 전통적인 정당들과 정부에 대한 실망감은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되고있다고 전하였다.

인민대중에 대한 착취와 략탈은 자본주의의 변함없는 본성이다.자본주의는 말그대로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이며 리윤획득을 통한 자본의 증식을 생존방식으로 하고있다.자본주의력사자체가 무제한한 리윤추구와 자본의 증식을 위해 인간에 대한 착취를 확대강화하여온 과정이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는 수천만 근로자들이 기아와 빈궁에 허덕이고있으며 류랑걸식하는 사람들의 대렬이 날로 늘어나고있다.생활고에 시달리던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집단자살하는 참극까지 빚어지고있다.

서방의 정객들이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예산을 확대하고 투자를 하면 생산력이 보다 발전하여 근로자들에게 생산물의 많은 몫이 가닿게 되며 부유한 사회가 될것이라고 하고있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되고있다.

서방나라들에서는 과학기술의 성과와 근로대중의 창조적로동의 결과가 특정한 계층에게 점유되고 치부와 향락에 도용되고있다.돈이 인간을 타락시키고 인민의 존엄을 짓밟고있다.

과학기술과 생산력이 발전하면 근로자들의 생활이 개선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과거에도 자본주의나라들에서 기술의 도입으로 상품생산이 늘어났으나 사람들은 빈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거리에는 항시적으로 실업자들이 차고넘치였다.

인공지능기술까지 받아들이고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하였다고 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이전보다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가속화되였다.빈부의 차이는 유사이래 있어본적이 없는 극한점에 이르렀다.

근로하는 사람들이 유족하게 살려면 사회경제적조건이 마련되여야 한다.즉 근로자들자신이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의 주인이 되여야 한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대독점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틀어쥐고 모든것을 좌우지하고있다.그들은 사람을 상품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황금에 의하여 지배되는 무기력한 존재로밖에 여기지 않는다.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장악하고있는한 근로자들에 대한 자본주의적착취는 필연이며 온갖 지배와 예속에서 벗어나 평등하고 유족한 생활을 누리려는 근로대중의 요구가 실현될수 없다는것은 명백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실업은 곧 죽음이다.자본가들은 이를 악용하여 근로자들을 성능이 높은 기계에 얽매이게 하고 로동강도를 높이고있다.많은 근로자들이 기형화되고 정신육체적불구자로 되여가고있으며 과도한 로동으로 죽어가고있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는 여러가지 경제적공간을 리용하여 근로자들의 피땀을 악착하게 빨아내고있다.응당 주어야 할 임금을 줄이는 방법으로 더 많은 리윤을 짜내는가 하면 상업과 신용, 국가예산을 통해서도 근로자들을 착취하고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년간에 더욱 우심해지고있다.

서방의 어용나팔수들이 《민주주의》와 《민생》을 운운하며 《국민을 위한 정치》에 대하여 떠들고있지만 자본주의국가제도의 반동성과 반인민성은 그 무엇으로도 가리울수 없다.

근로인민대중에게 무권리와 불행만을 강요하는 자본주의국가제도의 반인민적성격은 날이 갈수록 더욱 적라라하게 드러나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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