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조일관계/朝日関係’ Category

천년숙적 일본의 만고죄악을 폭로단죄하는 력사학부문 토론회 진행

2025년 11월 13일《로동신문》

 

천년숙적 일본의 만고죄악을 폭로단죄하는 력사학부문 토론회가 12일 사회과학원에서 진행되였다.

과학, 교육, 출판보도부문 등의 일군들, 교원, 연구사들, 기자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토론회에서는 사회과학원 연구사들인 조희승동지, 조명철동지, 조선중앙력사박물관 부관장 김영희동지, 김일성종합대학 소장 윤신영동지가 일제의 반인륜적범죄행위들을 폭로단죄하는 론문들을 발표하였다.

토론자들은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강요한 일제가 국가권력의 대표자에 대한 침해를 통하여 우리 나라의 자주권을 무참히 유린하는 대범죄를 저지른데 대하여 론증하였다.

지금으로부터 백수십년전 일제는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황제를 강압적으로 퇴위시키였으며 군사적위협과 공갈의 방법으로 《을사5조약》과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였다.

조약의 중요한 법적근거로 되는 황제의 서명, 국새날인도 없는 범죄적문서들을 련이어 조작날조한 일제의 파렴치한 특대형범죄행위에 의하여 국가의 자주권은 무참히 유린당하고 우리 인민은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게 되였다.

토론자들은 사상문화분야에서의 파쑈화책동의 일환으로 《황국신민화》정책을 로골적으로 실시하고 우리 인민의 문화전통을 말살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한 일제의 야만성에 대하여 폭로하였다.

일제는 《동조동근》, 《내선일체》의 미명밑에 조선사람의 말과 글, 이름까지도 영영 없애버리고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생활풍습을 말살하기 위해 미쳐날뛰였다.

전통적인 옷차림풍습은 물론 가무와 민속놀이까지 무자비하게 탄압한 일제의 야만적인 만행에 의하여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우리 인민의 문화전통은 거세말살되게 되였다.

토론자들은 우리 인민의 슬기와 창조적재능이 깃들어있는 문화유산들을 강탈한 일제의 문화재파괴략탈만행은 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간악한 대죄악이라는데 대하여 까밝혔다.

일제는 세기를 이어오면서 가장 비렬한 방법으로 우리의 문화유산들을 파괴략탈하는 전대미문의 범죄를 저질렀다.

왕릉은 물론 선조들의 무덤까지 파헤치는 흉악무도한짓을 꺼리낌없이 감행하였을뿐 아니라 력사적사실들을 기록한 귀중한 서적들과 미술작품 등을 마구 략탈한 일제야말로 우리 인민이 수천년을 이어오며 이룩해놓은 문화유산들을 하루아침에 허물어버린 야만의 족속이다.

토론자들은 일제가 우리 인민앞에 저지른 만고죄악은 반드시 결산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지난날 우리 나라에 대한 수십년간에 걸치는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끼친 범죄적만행들은 력사에 전무후무한 만고죄악으로서 절대로 덮어버릴수도 용서할수도 없다.

과거죄행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인정하고 전패국으로서의 국제적의무를 준수할것을 세계앞에 공약하고서도 오늘까지 그 무슨 《적법성》과 《증빙자료결여》, 《전후배상완료》 등을 운운하면서 죄악에 찬 력사를 외곡, 은페하고있는 일제의 파렴치한 행태는 우리 인민과 국제사회에 대한 참을수 없는 우롱이고 정의와 량심에 대한 도전이다.

일제가 저지른 죄악을 끝까지 결산하는것은 지난 세기 국제법과 인륜도덕마저 안중에 없이 사상초유의 특대형범죄를 저지른 전범국 일본을 엄정히 심판하고 우리 인민의 쌓이고쌓인 원한을 풀기 위한 필수적요구이며 력사의 참화를 되풀이하려는 군국주의일본의 무분별한 재침책동을 짓부시고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한 시대적요구이다.

토론자들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천년숙적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남긴 력사의 상처는 절대로 아물수 없으며 복수의 피값을 천백배로 받아내야 할것이라고 강조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귀중한 문화재들을 략탈한 용납 못할 범죄행위  공예전문가와 나눈 이야기

2025년 11월 9일《로동신문》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일제의 만고죄악을 천백배로 결산하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략탈정책과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끼친 불행과 재난은 인류력사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에 침략의 마수를 뻗쳐온 일본침략자들은 그 과정에 우리 인민이 조상대대로 내려오며 창조하여온 귀중한 문화재들을 수많이 파괴하고 략탈해갔다.

이러한 문화재파괴략탈행위는 단순한 강탈행위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준비되고 감행된 국가적범죄이며 조선의 오랜 력사와 문화, 전통을 말살하여 그 존재자체를 력사에서 지워버리려고 한 천추에 용납 못할 반인륜적죄악이다.

우리는 그에 대하여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공예분과위원장인 위국현동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자: 우리 나라의 문화재들을 마구 략탈한 일본의 범죄행위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보다 수백년이나 썩 이전시기인 임진조국전쟁시기에도 감행되지 않았는가.

위국현: 그렇다.1592년-1598년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은 가치있는 우리 나라의 문화재들을 수많이 략탈해갔다.

당시 우리 나라의 발전된 문화 특히 도자기공예기술에 대하여 잘 알고있던 일본침략자들은 조선에 피묻은 발을 들이민 첫 시기부터 산간오지의 가마터까지 다 뒤져가며 가치있는 도자기들을 략탈하였을뿐 아니라 수많은 기술자들과 장공인들을 닥치는대로 랍치해갔다.

이때 끌려간 우리 나라의 기술자들은 《도노》(도자기노예)로 불리우며 도자기를 만드는 일을 강요당했다.

일본도서들에서 일본의 《이름난 자기》라고 서술한것들은 다 조선인기술자들이 일본의 각 지방에서 개발한 도자기들이며 그것은 후날 일본《도자예술》의 조상으로 되였다.

일본인들은 조선사람들이 일상시에 흔히 쓰는 밥그릇과 같은 평범한 자기들도 귀중품처럼 애용하였으며 차그릇으로도 사용하였다.

기자: 우리 나라의 문화재들에 대한 일제의 략탈행위는 식민지통치기간에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되지 않았는가.

위국현: 일제의 문화재략탈행위는 《을사5조약》을 날조하여 우리 나라의 국권을 송두리채 빼앗은 후부터 더 강도적으로 감행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 각지의 왕릉들을 비롯한 수천개의 옛무덤들을 거의 모두 도굴하였다.

개성시에 있는 어느한 왕릉에 대한 도굴만행은 그 단적인 실례로 된다.

일제는 왕릉을 도굴하기 위해 여러곳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수많은 헌병과 경찰대까지 동원하였으며 묘의 출입구를 찾기 위해 화강석으로 된 묘의 병풍석을 폭파하고 그안에 있던 달구지 10여대분의 유물들을 털어갔다.

평양시 락랑구역일대에 있는 우리 나라 옛무덤가운데 일제의 피해를 입지 않은것, 봉분이 성한채로 남아있는것이 거의 없는 사실은 놈들의 문화재략탈행위의 강도성과 악랄성을 낱낱이 고발하고있다.

기자: 《을사5조약》날조이후 감행된 일제의 문화재략탈행위가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국가범죄라는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위국현: 일제의 문화재략탈행위는 철저히 관권과 군권이 총동원되여 조직적으로, 계획적으로 감행된 국가범죄였다.

조선통감부의 첫 통감이였던 이또 히로부미는 국보적가치를 가지는 수많은 문화유물을 략탈하여 일본왕과 왕족, 귀족들에게 섬겨바쳤을뿐 아니라 부하들과 공모하여 일본의 박물관이나 골동품장사군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 폭리를 보았다.

두번째 통감이였던자도 우리 나라의 문화유물들에 대한 략탈을 적극 장려하였다.

일제는 저들의 문화재략탈행위에 《합법성》의 외피를 씌우기 위해 1916년에 조선고적조사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위원회, 연구회와 법령, 규정 등을 조작하고 유적조사로부터 발굴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오직 조선총독부와 일본인들만 관할하게 하였다.

조선총독부의 관리들과 조사위원, 고고학자, 골동품수집가 등의 각종 탈을 쓴 일본강도배들은 헤아릴수없이 많은 가치있는 문화재들을 략탈하여 일본으로 실어갔을뿐 아니라 그 일부를 《연구》, 《진렬》의 명분을 걸고 형식상 비치하였다가 나중에는 그마저도 일본으로 빼돌렸다.

그들중 가루베라는자는 중류급이상의 무덤들을 매해 수백기씩이나 도굴하였는데 이자는 1963년에 일본기자와의 회견에서 《고분 2 000기를 도굴하였으며 거기에서 나온것을 장사군에게 평가시켜보았더니 값이 3억 수천만¥이라고 하였다.》라고 실토하였다.

기자: 현재 일본에 우리 나라의 문화재들이 많이 소장되여있지 않는가.

위국현: 그렇다.일본인들스스로가 밝힌데 의하면 도꾜국립박물관, 네즈미술관을 비롯하여 크고작은 박물관들과 대학, 절간들에 도자기, 금속공예품, 자개박이공예품, 불상, 그림, 도서, 활자 등 우리 나라의 다종다양한 문화재들이 소장되여있고 개인들도 수많이 가지고있다.

기자: 문화재략탈행위에 대한 일본정객들의 립장은 어떠한가.

위국현: 일본정객들은 조상들의 략탈행위를 《가장 볼만한 문화사업》이였다고 찬양하며 추어올리고있다.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략탈한 문화재들을 저들의 《국보》로, 《중요문화재》로, 《중요미술품》으로 등록해놓고 선전하면서 조선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전통을 란도질하고있으며 세계를 우롱하고있다.

그들이 《국보》로 내세우고 자랑하는 문화재들이 과연 어떤것인가에 대해 일본의 한 학자는 이렇게 폭로하였다.

《일본국보라고 세계에 자랑하고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 미를 찬양하고있는 작품의 거의 모두가 대체 누구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인가?

그것은 조선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이것은 력사가들도 립증하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당히 말해서 조선의 국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반동들은 지난날 우리 나라에서 저지른 파렴치한 략탈행위에 대해 사죄 한마디 하지 않고 오히려 조상들의 날강도행위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뻔뻔스럽게 놀아대고있다.

우리는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일제가 감행한 문화재략탈행위를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그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야 할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インタビュー】約10年ぶり訪朝のデヴィ・スカルノ氏 国力強化の勢いに驚き、原動力はリーダーシップ

2025年10月21日 朝鮮新報

 

【平壌発=金淑美】朝鮮労働党創建80周年に際して、9日から14日まで訪朝したデヴィ・スカルノ氏(85、一般財団法人アース・エイド・ソサエティ代表理事)が12日、平壌高麗ホテルで本紙平壌支局のインタビューに応じた。インドネシアのスカルノ元大統領夫人として、朝鮮と親交を深めてきたデヴィ氏。閲兵式をはじめとする今般の祝賀行事に参加した感想、約10年ぶりに見た朝鮮の発展の様相について語った。

 

【写真−1】インタビューに応じるデヴィ・スカルノ氏(12日、平壌高麗ホテル)

-今回の訪朝の目的、滞在中の日程についてお聞かせください。

朝鮮労働党80周年記念行事にお招きを受けて訪朝しました。また、国際金日成賞理事会および国際
金正日賞理事会の理事として、11日に行われた国際金日成賞第11回会議、国際金正日賞理事会第2回会議に参加しました。国際金正日賞理事会では、これから受賞者を選び、金正日総書記生誕85周年を迎える2027年に賞を授与します。

【写真−2】国際金日成賞第11回会議、国際金正日賞理事会第2回会議の参加者ら(朝鮮中央通信=朝鮮通信)

国際金日成賞および国際金正日賞は、世界の自主化や人類の平和など、政治・経済・文化的に最も国に尽くした人に与えられる賞です。

会議は、まず朝鮮社会科学者協会のキム・ウンジェ副委員長から説明があり、それに対して私たち理事が答える形で行われました。

【写真−3】11日に行われた国際金日成賞第11回会議、国際金正日賞理事会第2回会議(朝鮮中央通信=朝鮮通信)

-党創建80周年祝賀行事はいかがでしたか。

素晴らしいの一言に尽きます。 私と共に日本から来たメンバーもとても感激していました。もし共和国でオリンピックの開会式をするとしたら、世界中の人があっと驚くようなすごいものができると思います。

まず、共和国の国力の勢いを感じました。そして統率力です。音楽、レーザー光線、花火などもすばらしかったけど、十数万人の出演者が誰一人、間違えない。どれくらいの訓練をしたらあんなことができるのでしょう。あんなことができるのは共和国だけだと思います。

市民パレードの最中に全員が一斉に立ち上がるということが3回くらいありました。最初は皆さんがなぜ立ち上がったのかわからなかったのですが、金正恩国務委員長の写真が登場したんです。金委員長が、それぐらい人々から尊敬され、敬愛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がよくわかりました。

-朝鮮とは長い間、親交を深めてきました。久しぶりに朝鮮を訪れた感想は。

私は1965年の4月10日に、インドネシア・ジャカルタのムルデカ大統領官邸におけるレシプションで金日成主席と金正日総書記にお会いしました。

初めて訪朝したのは2002年だったと思います。その頃と比べると平壌の姿は様変わりしました。朝鮮の発展のスピードには毎回、驚きます。

平壌国際空港から市内に入るまで道路の両側がとてもきれいで、世界中いろんな国に行きましたが、こんな国はないと思います。街中に人があふれ、高層ビルがたくさん立ち並んでいます。しかも趣味がいい。東京の新宿や渋谷のような品のない看板やネオンサイン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平壌にくると都という感じがします。それからゴミが一つも落ちていない。とにかく街がとてもきれいです。ずっとそのようにしてくれるといいなと思います。

金正恩委員長が金正日総書記の後を継いだ2012年から、たった十数年で国をこれだけ発展させたことに頭が下がります。ものすごい勢いで国力が上がっている。

原動力はやはり、かつては金日成主席と金正日総書記、そして今は金正恩委員長のリーダーシップだと思います。人々を力強く引っ張り、鼓舞しています。

それから人々が国のために一丸となって尽くす愛国心の強さです。朝鮮という国を偉大な国にしよう、そのために人民が一丸となって闘おうという意気込みがすごく感じられます。朝鮮は、治世がうまくいっているという感じがします。

日本を含め諸外国が、共和国の核・ミサイル開発を非難しますが、何かを成し遂げるためには、多少の犠牲を伴うことは致し方ないと思います。 例えば家族の中でも、一人を成功させるために他の家族が犠牲になることがあります。独裁主義者という言葉は悪い意味で捉えられますが、私は偉大なリーダーという言葉に置き換えればいいと思います。

【写真−4】最高人民会議常任委員会の崔竜海委員長が、国際金日成賞第11回会議、国際金正日賞理事会第2回会議の参加者らと面会した(朝鮮中央通信=朝鮮通信)

-朝鮮を取り巻く国際情勢もめまぐるしく変化しています。

パレスチナやウクライナの問題、インドネシアでも最近、暴動がありましたけど、世界中で力の争いが起こっています。国連は世界で何かが起こったときに、調停をして秩序を取り戻す大事な役割がありますが、その存在感がだんだん弱まっているのが残念です。

今は、非常に大変な時代になっていると思います。

また、どの国は核を持っていい、どの国は持ってはいけないというのは誰が決めたのでしょうか。核を持っていない国は襲われ、そして負けるという流れになっていることは怖いことだと思います。だから共和国は核を手放さなかったのだと思います。共和国は、あれだけ強固に米国から核を持ってはいけないと言われながらも持ち続けました。それは正しかったと思います。核を持っていなかったら、今頃、共和国の存在はどうなっていたかわかりません。

私は金正日総書記が亡くなったとき、とても心配しました。金正日総書記のご遺体が乗った車に手を置いて歩いていた金正恩委員長は、とても悲しそうなお顔をしていました。そのことが非常に印象に残っています。ですが、あの若さで米国とロシア、中国などの大国の首脳に対して、一歩も譲らず主張し、同等に話せる金正恩委員長は、たいへん立派だと思います。日本の政治家も見習うべきです。

-最後に日朝関係に対する見解をお聞かせください。

日朝間のこう着状態が続いているのは日本が悪いからです。小泉純一郎首相と金正日総書記、二つの国の元首が署名した日朝平壌宣言を、日本は勝手に反故にしました。そんなことをして国家間の関係がうまくいくはずがありません。ですからもう共和国は日本に目も向けません。共和国は日本を相手にする必要がないと思います。

拉致問題も、共和国は認めて謝罪したわけですから、そこで終わりなんです。拉致家族を政治利用するだけで、何もしていない日本政府に対しては怒りを覚えます。日本政府が拉致問題を政治利用するのは、共和国を飽くまで敵にしておきたい米国の司令です。米国は絶えず敵が必要ですから。それなのに日本政府は拉致問題で日本人の気持ちを掻き立てています。米国で大統領が変わるたびにホワイトハウスまで行って大統領と拉致家族を会わせたり、駐日米国大使が変わるたびに会わせたり、そういうことを何度もしています。

新しく首相になる高市早苗さんが日朝平壌宣言を守り、履行して、A級戦犯を靖国神社に合祀することをやめれば、共和国との関係はうまくいくと思います。

日本が日朝平壌宣言を守っていれば、日本と共和国の人たちが相互に往来し、民間交流が生まれたと思います。民間交流が深まれば、お互いのことや本当のことが少しずつわかって、理解が深まると思います。

(朝鮮新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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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한 반인륜적죄행은 절대로 지울수 없다  일제가 패망을 전후하여 감행한 증거인멸책동을 놓고

2025년 9월 18일《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지난 세기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들씌운 재난과 고통은 이루 헤아릴수 없다.

식민지통치기간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랍치, 유괴, 강제련행하여 전쟁터와 고역장들에서 무고한 죽음과 강제로동, 일본군성노예살이를 강요하고 우리 나라에 대한 무제한한 경제적략탈을 감행하였으며 유구한 문화적전통을 말살하고 우리의 말과 글까지 빼앗으려 한 일제의 죄행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패망을 전후하여 감행한 범죄적책동은 일제가 얼마나 악랄하고 파렴치한 원쑤인가를 다시금 똑똑히 보여주고있다.그중의 하나가 바로 조선인민앞에 저지른 반인륜적죄악들을 감추고 덮어버리려고 한 증거인멸책동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일제는 패망을 전후한 시기 저들의 죄행을 폭로할수 있는 증거자료를 없애버릴 목적밑에 수많은 비밀문서들을 소각하는 책동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일제의 비밀문서소각행위는 그 어떤 개별적인 기관이나 인물들의 산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정부와 군부의 명령밑에 감행된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범죄행위이다.

일제군부는 패망을 하루 앞둔 1945년 8월 14일 일본국내와 조선을 비롯한 각지에 《서류처리에 관한 건 통첩》이라는 비밀문건을 발송하여 《적의 손에 넘어갈 위험이 있는 례하면 외사, 방첩, 사상, 치안 등의 관계문서… 등은 반드시 될수 있는껏 빨리 소각》할데 대한 지시를 주었다.또한 그로부터 며칠후 발송한 문건에서도 비밀서류소각에 대한 조사를 면밀히 하는것과 함께 《소각후에 청사내부와 외부를 엄밀히 검사하여 비밀서류로서 소각을 필요로 하는것은 한쪼박도 남기지 말고 철저히 소각》하며 책장에 깊숙이 숨겨져있는 문서들이나 지어 책상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책상다리밑에 끼워놓은 종이쪼박들까지 모조리 찾아내여 불태워버리도록 명령하였다.지어 정부나 군부의 상층인물에 대해서도 미리 가택수색을 하여 저들의 유죄를 보여줄수 있는 서한이나 일기까지 모조리 찾아내여 처리하라는 지시도 내리였다.

이것은 당시 정부와 군부가 직접 나서서 비밀문서소각의 구체적인 방도까지 제시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명령과 지시에 따라 일제는 패망을 전후하여 일본과 우리 나라 전 지역에서 저들의 침략전쟁범죄와 식민지통치죄행을 폭로할수 있는 수많은 비밀문서들을 소각했다.

특히 놈들은 수십년간 온갖 반인륜적죄행을 감행한 조선에서 식민지통치와 관련한 주요비밀문서들을 조직적으로 소각하기 위한 책동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일제는 이미 조국해방을 위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이 개시된 1945년 8월 9일부터 저들의 멸망을 예견하고 먼저 함경북도지역에서부터 각급 식민지통치 및 폭압기관들이 보관하고있던 비밀문서들을 없애버리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소부대가 두만강을 건너 토리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였을 때 웅기경찰서장은 즉시 주재소에 있는 비밀문서들을 모조리 소각하도록 명령하였다.또한 놈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이 8월 9일 오전 웅기(오늘의 선봉지구)에 신속히 진출함으로써 문서들을 소각할 시간을 얻지 못하게 되자 비밀문서들이 보관되여있는 경찰서와 헌병대, 세관과 항사무소를 비롯한 폭압 및 략탈기관의 건물들을 흔적도 없이 폭파하도록 하였다.

조선총독은 8월 15일 저들의 패망이 알려지자 즉시 총독부와 산하 각급 관청들에서 일제히 비밀문서들을 소각할것을 명령하였다.

당시의 비밀문서소각상황에 대하여 한 목격자는 《총독부청사의 여러층의 창문들에서 탕탕 소리를 내며 서류를 밖으로 던지였고 기름을 치고 소각》하는 작업이 계속되였으며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다만 기계적으로 서류들을 가운데마당에 던져버렸다.》고 전하였다.

이 과정에 어떤 종류의 비밀문서들이 얼마나 많이 소각되였는가는 알수 없다.하지만 소각된 비밀문서들이 세상에 알려지면 절대로 안되는 극비자료라는것, 그렇기때문에 항복이 발표되자마자 즉시 불태워버렸다는것만은 명백하다.

이처럼 일제는 패망을 전후하여 수많은 비밀문서들을 소각하거나 미처 없애버리지 못한 경우에는 문서들이 있는 건물자체를 폭파해버리였다.

력사적사실은 일제가 저들의 만고죄악을 은페삭제하기 위하여 얼마나 악랄하고 파렴치하게 책동하였는가를 낱낱이 폭로하고있다.

지금도 일본반동들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기간 저들이 저지른 범죄적만행을 인정하지 않고있다.더욱 격분을 자아내는것은 죄악으로 가득찬 과거력사를 외곡, 날조하고있는것이다.

하지만 력사의 진실은 그 누가 감추거나 지운다고 하여 달라지거나 없어지는것이 아니다.일본반동들이 아무리 저들의 범죄행적을 흑막속에 묻어두려고 해도 그 범죄적진상은 력사의 갈피에 뚜렷이 새겨져있다.

일본은 유치한 오그랑수에 매여달릴것이 아니라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온갖 반인륜적죄행과 관련한 모든 자료들을 공개하고 그에 대하여 철저히 배상하여야 한다.(전문 보기)

 

[Korea Info]

 

피로 얼룩진 죄악의 력사는 덮어버릴수 없다

2025년 9월 1일《로동신문》

 

얼마전 일본 도꾜도지사는 간또대지진시 학살된 조선인들을 추도하는 의식에 올해에도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밝히였다.도꾜도지사로 취임한 다음해인 2017년부터 련 9년째 계속되는 집요한 력사부정태도이다.

추도식실행위원장은 《조선인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싶지 않은것같다.》라고 하면서 항의를 표시하였다.

간또대지진시 조선인대학살사건은 절대로 지워버릴수 없는 력사적사실이며 그 직접적인 책임은 일본당국에 있다.

일본당국이 뜻밖의 대지진이 발생하자 《조선인폭동설》을 날조하고 전시계엄령을 공포하여 군대와 경찰은 물론 《자경단》과 같은 우익깡패들까지 조선인학살에 내몬데 대한 자료들은 지금까지 수많이 발굴고증되였다.

1923년 9월 6일부 일본륙군성문건 《륙보 3573호》에는 일본왕의 칙령으로 도꾜부(당시)와 가나가와현까지 포함한 넓은 지역에 전시계엄령이 선포되고 계엄사령부가 조직되였으며 간또일대를 림전지역으로 규정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계엄사령부의 지휘밑에 도꾜와 요꼬하마지구에만도 군대검문소가 70개, 경찰들의 2차검문소가 수백개나 설치되였다.이 제복입은 살인악당들은 검문소를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발음하기 까다로운 일본말을 시켜보고는 조금이라도 정확치 않으면 조선사람이라고 단정하고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목을 자르거나 배를 갈라 죽였다.《자경단》과 같은 우익깡패들도 장총, 일본도, 단도, 날창, 참대창, 곤봉, 쇠갈구리와 같은 각종 흉기를 들고 거리와 마을, 산속과 강기슭, 초원까지 샅샅이 뒤지면서 조선인《사냥》에 미쳐날뛰였다.

이렇게 열흘 남짓한 기간에 희생된 조선동포들은 《조선총독부 진재관계문서》(1924년판)에 밝혀진것만 하여도 무려 2만 3 000여명에 달하였다.

이 천인공노할 조선인대학살만행은 철두철미 일본당국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감행된 집단살륙범죄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일본정부나 도꾜도는 마땅히 과거의 조선인대학살만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그러나 정부는 아예 모르쇠를 하고 도꾜도지사는 사죄와 배상은커녕 추도문조차 보내지 않겠다고 생떼를 쓰고있는데 이야말로 후안무치한 행위이며 지독한 력사부정의 극치라고밖에 달리 말할수 없다.

도꾜도지사는 도꾜도위령협회가 주최하는 대법회에서 간또대지진으로 인한 모든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있다고 그 리유를 들고있는데 자연재해에 의한 사망과 고의적인 살해를 어떻게 한저울에 올려놓을수 있겠는가.

조선인학살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느니, 력사가들이 풀어야 할 문제라느니 하고 시종일관 왼새끼를 꼬고있는데 이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는 일개 지방당국자에 한한것이 아니다.

일본렬도에 만연하고있는 극단한 우익정치흐름의 반영이며 그 산물이다.

일본정부자체가 한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르도록 목격자들의 증언과 학살실태, 대다수 희생자들의 이름 등 사건의 진상조차 밝히지 않고있으며 력사적사실을 한사코 은페하고있다.

이러한 정치풍토가 사회환경을 심히 오염시키다보니 2011년 동일본대지진시 《조선인을 죽이자》라는 구호가, 2016년 구마모도대지진시에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쳤다.》라는 류언비어가, 2019년 교또부의 만화쎈터화재때에는 《방화는 조선인의 습성》이라는 글이 인터네트상에서 공공연히 나돌았다.우익단체들도 재일조선인추도비의 철거와 추도식의 중지를 노린 활동을 집요하게 계속하고있다.

지난 2023년 일본당국자들은 국회마당과 기자회견들에서 간또대지진시 조선인대학살 100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질문을 받았지만 매번 《사실관계를 파악할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외마디대답만 되풀이하였다.

그러나 피로 얼룩진 죄악의 력사는 그 무엇으로도 덮어버릴수 없다.

일본당국은 집요한 력사부정책동으로 죄악을 덧쌓을것이 아니라 엄연한 력사앞에 솔직하고 성근해야 할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력사를 직시하고 과거를 청산하는것은 전범국 일본의 회피할수 없는 도의적책임이며 국제법적의무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소장 담화

2025년 6월 16일《로동신문》

 

아시아대륙을 피로 물들이며 지역나라 인민들에게 미증유의 참혹한 재난과 불행을 강요한 일제가 무릎을 꿇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때로부터 80년이 되는 력사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일본내에서 패망 80년을 맞으며 과거 침략전쟁과 관련하여 수상담화를 발표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론난이 분분하다고 한다.

량심적인 단체들과 인사들이 중요한 력사적시점에 정부가 사죄립장을 똑똑히 밝힐것을 요구하고있는 반면에 극우보수정객들은 전후 70년을 계기로 발표한 아베담화로 《사죄외교》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강변하면서 이를 극구 반대해나서고있다.

간과할수 없는것은 현 일본수상이 이와 관련하여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검증을 거쳐 개인적인 견해를 발표하는것으로 적당히 굼때려 하고있는것이다.

일본이 벌려놓으려는 《전쟁검증》이라는것은 과거에 감행한 침략전쟁범죄에 대한 검증이 아니라 정부가 군부의 독주를 막지 못한 제도적문제와 무모한 전쟁에 뛰여들어 민간인피해를 산생시킨 경위와 같은 극히 비본질적이며 본말전도적인 검증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특히 얼마전 수상이 담화발표와 관련한 국회론의시 현행헌법하에서 《자위관》이 국회에 출두하지 못하게 되여있는 문민통제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발언한것은 《전쟁검증》을 통해 《자위대》의 합법화를 위한 포석을 깔려는 불순한 기도를 그대로 드러내놓은것으로 된다.

일본이 국제사회의 면전에서 그 무슨 《사죄외교의 종결》을 운운하며 《전쟁검증》이니, 《평화국가로서의 행적》이니 하는따위의 침발린 타령으로 패망 80년을 어물쩍해넘겨보려 하는것은 일제의 만고죄악으로 영원히 아물수 없는 상처를 안고있는 우리 공화국과 아시아나라 인민들에 대한 용납할수 없는 우롱이고 모독이며 국제적정의와 량심에 대한 로골적인 도전이 아닐수 없다.

장구한 력사의 갈피에는 다른 나라와 민족에 대한 침략을 도락으로 일삼으며 인류의 평화와 문명을 무참히 파괴한 전범국들의 행적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지만 집요한 력사외곡과 과거청산회피로 국제적인 지탄의 대상으로 되고있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일본의 우익보수세력들이 《과거 침략력사의 총화작》으로 삼으려는 아베담화는 과거범죄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성근한 사죄는커녕 오히려 다음세대에 사죄를 계속해야 하는 숙명을 지워서는 안된다느니, 침략력사에 대한 사죄가 더는 없다느니 하는 파렴치한 궤변들로 일관되여있다.

세월이 흘러 세기가 바뀌였지만 우리 인민은 과거 일제가 조선을 총칼로 강점하고 40여년간 야만적인 식민지파쑈통치를 감행하면서 막대한 인적, 물적, 정신문화적피해를 들씌운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들을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일제가 100여만명의 조선사람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고 840만여명의 청장년들을 강제로 랍치련행하여 침략전쟁터들과 고역장들에 내몰았으며 20만명의 녀성들을 일본군성노예로 전락시켜 꽃나이청춘을 무참히 짓밟은 특대형반인륜범죄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이였다.

《동조동근》, 《내선일체》를 떠들며 수천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을 지구상에서 영영 없애버리기 위해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 말과 글까지 빼앗으려고 극악무도하게 날뛰였으며 우리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부들과 풍부한 자연부원을 닥치는대로 파괴, 략탈하는 만행도 서슴없이 행한것이 바로 일제이다.

패망후 장장 80년간 일본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한사코 거부하고 시종일관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추구하면서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과 발전권, 생존권을 엄중히 위협하였으며 강제련행피해자들의 후손들인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권리를 침해함으로써 이중삼중으로 죄악을 덧쌓아왔다.

언제인가 일본의 한 언론은 조선과 아시아나라들에서 감행한 일제의 범죄적만행들을 고발하는 문건들을 쌓아놓으면 무려 2만m나 된다고 까밝힌바 있으며 악명높은 731부대의 세균전만행자료를 비롯하여 오늘도 계속 발견되고있는 유력한 증거물들은 인두겁을 쓴 일제의 반인륜범죄행위들을 만천하에 폭로하고있다.

력사는 먹으로 지울수도 없고 불로 태울수도 없으며 검으로 찢을수도 없다.

일본이 아무리 갖은 권모술수로 과거죄행을 말소하고 그 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모지름써도 침략자, 전범국의 력사는 후세토록 남아있게 되여있으며 특대형반인륜범죄에는 80년, 800년이 흘러도 시효란 있을수 없다.

일제의 피비린 행적이 집중조명되는 패망 80년의 분기점에서 력사를 직시하고 과거를 청산하는것, 이는 전범국 일본이 시대와 인류앞에 지닌 회피할수 없는 도의적책임이며 국제법적의무이다.

 

2025년 6월 15일

평 양

(전문 보기)

 

[Korea Info]

 

外務省日本研究所所長が談話発表

2025年 6月 16日 朝鮮中央通信

 

【平壌6月16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外務省の日本研究所所長が15日に発表した談話「歴史を直視し、過去を清算するのは戦犯国の日本の回避することのできない道義的責任であり、国際法的義務である」の全文は次の通り。

アジア大陸を血で染め、地域諸国の人民に未曽有の残酷な災難と不幸を強いた日帝が膝を屈して無条件降伏を宣言した時から80年になる歴史の日が一日一日近づいている。

最近、メディアの報道によると、日本内で敗北80年に際して過去の侵略戦争に関連して首相談話を発表する問題を巡って論難が紛々としていると言う。

良心的な団体と人士が重要な歴史的時点に政府が謝罪の立場をはっきり明らかにすることを求めている反面、極右保守政客らは戦後70年を契機に発表した安倍談話で「謝罪外交」に終止符を打ったと強弁を張りながらこれに口を極めて反対している。

看過できないのは、現在の日本首相がこれに関連して曖昧(あいまい)な態度を取りながら第2次世界大戦に対する検証を経て個人的な見解を発表することで適当に間に合わせようとしていることである。

日本が行おうとする「戦争検証」というものは、過去に働いた侵略戦争犯罪に対する検証ではなく、政府が軍部の独走を止められなかった制度的問題と無謀な戦争に飛び込んで民間人被害を生じさせた経緯のようなごく非本質的で本末転倒的な検証以外の何物でもない。

特に、先日、首相が談話発表に関連する国会論議の際、現行憲法の下で「自衛官」が国会に出頭できなくなっている文民統制方式に問題があるというふうに発言したのは、「戦争検証」を通じて「自衛隊」の合法化のための布石を敷こうとする不純な企図をそのままさらけ出したことになる。

日本が国際社会の面前でいわゆる「謝罪外交の終結」をうんぬんして「戦争検証」だの、「平和国家としての行跡」だのというなどの甘言のうんぬんで敗北80年をうやむやにしようとするのは、日帝の希世の罪悪によって永遠に癒せない傷を抱いているわが共和国とアジア諸国の人民に対する許せない愚弄、冒瀆(ぼうとく)であり、国際的正義と良心に対する露骨な挑戦だと言わざるを得ない。

長きにわたる歴史の節目には他の国と民族に対する侵略を道楽とし、人類の平和と文明を無残に破壊した戦犯国の行跡が少なからず記録されているが執拗(しつよう)な歴史歪曲(わいきょく)と過去清算の回避によって国際的な指弾の対象となっている国は日本だけである。

日本の右翼保守勢力が「過去侵略史の総括作」にしようとする安倍談話は過去犯罪に対する率直な認定と心からなる謝罪どころか、むしろ次世代に謝罪を続けなければならない宿命を担わせてはならないだの、侵略史に対する謝罪がもはやないだのという破廉恥な詭弁(きべん)で一貫している。

歳月が流れて世紀が変わったがわが人民は、過去に日帝が朝鮮を銃剣で占領し、40余年間、野蛮な植民地ファッショ統治を強行しながら莫大な人的・物的・精神的・文化的被害を浴びせかけた天人共に激怒する犯罪行為をはっきり記憶している。

日帝が100余万人の朝鮮人を野獣のように虐殺し、840万余人の青壮年を強制的に拉致、連行して侵略の戦場と苦役場に駆り出したし、20万人の女性を日本軍性奴隷に転落させてうるわしい青春を無残に踏みにじった特大型の反人倫犯罪はそれこそ前代未聞のものであった。

「同祖同根」「内鮮一体」を唱えて、数千年の悠久な歴史と燦爛(さんらん)たる文化を誇るわが民族を地球上で永遠になくすために朝鮮人の姓と名前、言葉と文字まで奪おうと極悪非道にのさばったし、わが国の貴重な文化財と豊かな天然資源を手当たり次第に破壊、略奪する蛮行もためらわずに働いたのがまさに日帝である。

敗北以降長々80年間、日本はわが人民に働いた犯罪に対する謝罪と賠償をあくまでも拒否し、終始一貫対朝鮮敵視政策を追求しながらわが共和国の自主権と発展権、生存権を甚だしく脅かしたし、強制連行被害者の子孫である在日朝鮮人の民族権利を侵害したことで二重三重に罪悪を上塗りしてきた。

いつか日本のあるメディアは、朝鮮とアジア諸国で働いた日帝の犯罪的蛮行を告発する文書を積んで置けばおおよそ2万メートルに及ぶと暴いたことがあり、悪名高い731部隊の細菌戦蛮行資料をはじめこんにちも引き続き発見されている有力な証拠物は人間の皮を被った日帝の反人倫犯罪行為を全世界に暴露している。

歴史は墨で消すことも、火で燃やすことも、剣で裂くこともできない。

日本がいくら権謀術数の限りを尽くして過去の罪科を抹消し、その責任から逃れようとやっきになっても侵略者、戦犯国の歴史は後世に残っているようになっており、特大型の反人倫犯罪には80年、800年が流れても時効はあり得ない。

日帝の血なまぐさい行跡が集中照明される敗北80年の分岐点で歴史を直視し、過去を清算すること、これは戦犯国の日本が時代と人類に対して担った回避することのできない道義的責任であり、国際法的義務である。(記事全文)

 

[Korea Info]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2025년 5월 28일《로동신문》

 

죽음의 고역장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강점하고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를 실시하였으며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들씌웠습니다.》

지난날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수많은 조선의 청장년들을 탄광, 광산, 군수공장, 군사기지건설장들에 끌고가 강제적인 노예로동을 강요하고 무참히 살해하는 만행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일제가 숱한 조선사람들을 끌어다가 마소처럼 부려먹으면서 악착하게 고혈을 짜낸 하리마조선소도 그중의 하나이다.

하리마조선소주식회사(당시)는 1912년 일본 효고현에 있었다.

구일본정부와 군부는 1944년 1월 침략전쟁이 확대됨에 따라 날로 늘어나는 군함에 대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민수선박생산에 종사하던 이 회사를 제1차 군수회사로 지정하고 침략전쟁수행에 필요한 군함 및 수송선제조에로 내몰았다.

일제는 또한 일본국내의 부족되는 로동력을 충당하기 위하여 조선에서 수많은 청장년들을 집단적으로 끌어다가 가혹한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는데 하리마조선소에도 조선에서 끌려간 많은 청장년들이 있었다.

일제의 강제징발범죄는 우리 나라 그 어디에서나 감행되였다.피해자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에게도 위협과 강제가 동반되였다.

하리마조선소에 끌려간 사람들의 경우도 결코 례외가 아니였다.

이에 대하여 한 피해자는 《1944년 5월경 어느날 면서기의 지시를 받은 구장이 집에 들이닥쳐 징용에 나가라고 하였다.구장은 나에게 〈네가 징용에 가지 않으면 가족을 모조리 멸살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당시 결혼한 몸이였지만 집에 화가 미치는것이 두려워 끌려가지 않으면 안되였다.》라고 증언하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화물자동차에 물건짝처럼 걷어싣고 역까지 끌고가 그곳에서 기차에 태웠다.호송인들은 일본사민들이나 순사들이였으며 그들은 저들의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사정을 보지 않고 마구 때리였다.조선사람들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폭행과 감시속에 배를 타고 일본으로 끌려갔다.

일제는 조선청장년들을 하리마조선소에 끌고가 합숙에 들이밀었는데 조선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조선인합숙》으로도 불리웠다.

왜놈들은 조선사람들을 한방에 40~50명씩 들이밀고 노예제도를 방불케 하는 강압적인 규률을 적용하였다.

사감은 이전 일본군 중위였는데 강제징발되여온 조선사람들로 편성한 대대의 대대장도 겸하고있었다.중대장들은 일제침략군에서 복무한 전적을 가지고있는 일본인들이였다.

이자들은 조선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게 행동하면 뺨후려갈기기, 야구방망이로 치기, 각목을 끼우고 꿇어앉히기, 바께쯔를 든채로 오래동안 서있기 등 벌칙을 적용하면서 관리통제하였다.

조선사람들의 식사조건 역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아침과 저녁은 합숙에서 먹고 점심은 작업현장에서 먹었는데 주는것은 2~3번 숟가락질을 하면 바닥이 나는 콩찌끼였다.이에 대해 항의하면 일본놈들은 《먹고싶지 않으면 먹지 말라!》라고 줴쳤다.

하리마조선소에서 일한 한 일본인이 지은 시에는 황토색얼굴의 조선사람이 작업복바지에서 다시마인지 미역인지를 꺼내여 련속 입안에 넣자 수염쟁이감독이 기름걸레를 그의 입안에 밀어넣고 곤봉으로 그의 잔등을 두들겨팼다는 구절이 있다.

왜놈들이 얼마 되지도 않는 점심밥도 현장에서 먹게 한것은 어떻게 하나 시간을 짜내여 더 많은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에게 야만적인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조선사람들이 도착하자마자 보름동안 군사훈련을 주고 그후 보름동안은 작업실습을 주어 현장에 내몰았다.

아무런 로동보호시설도 갖추어놓지 않아 매일과 같이 사상자가 났다.

그런데도 왜놈감독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싸다니며 조금이라도 쉬는 기미만 보이면 달려가 채찍으로 마구 때리였다.감독놈들에게 매맞아죽거나 그 어혈로 병들어죽은 청장년들이 그 얼마인지 모른다.

그때 하리마조선소에서 일하던 일본인들도 《도크건설을 위하여 해안부를 메우는 공사를 하면서 여기에 쓸 흙과 모래때문에 발파를 하여 산을 허물었는데 이때 조선사람들이 생매장당하여 함께 온 동료들이 통곡하였다.》, 《제동조작을 잘못하여 즉시 밀차가 전복되군 하였는데 도크건설공사때에 정말 많은 조선사람들이 죽었다.》라고 증언하였다.

조선사람들을 강제징발하여 하리마조선소를 비롯한 죽음의 고역장들에 끌고가 노예로동을 강요하고 무참히 살해한 일제의 죄행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절대로 묵인될수 없는 반인륜적범죄행위이다.

지난날 일제가 강요한 온갖 불행과 고통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천추의 한으로 응어리져있으며 그 피맺힌 원한의 대가를 천백배로 받아내고야말 새세대들의 복수심은 날이 갈수록 더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다.

본사기자 백광명

 

반경화앞에서

 

중앙계급교양관 반일교양편에는 참관자들이 쉬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반경화가 있다.간또대지진당시 일제에 의한 조선인집단대학살만행을 보여주는 반경화이다.

원쑤들의 치떨리는 만행을 고발하는 강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참관자들은 치솟는 격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간또대지진당시 일제가 감행한 조선인집단대학살만행은 그 잔인성과 야만성에 있어서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피비린 참극이였습니다.》

강사는 놈들의 살륙만행이 얼마나 극악무도한것이였는가를 력사적사실을 통하여 폭로단죄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02년전인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간또지방에서 리히터척도로 7.9의 강한 지진이 일어나 순식간에 모든것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행방불명자가 산생되였다.하지만 일제는 엄혹한 사태앞에서 아무런 구호대책도 세우지 않고 오히려 파산에 직면한 자본가들을 살려주는데만 급급하였다.그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불만이 극도로 야기되자 급해맞은 놈들은 자국민들의 불만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사람들이 고의적으로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치고있으며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터무니없는 헛소문을 지어내고 그것을 극구 여론화하였다.

《조선인폭동설》이 전혀 무근거한 날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당국의 살인지령에 따라 군대와 경찰, 《자경단》을 비롯한 살인귀들은 각종 무기들과 흉기들을 동원하여 짐승도 낯을 붉힐 잔인한 수법으로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무참히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참상을 방불하게 보여주는 반경화앞에서 참관자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사람들의 등과 가슴에 박힌 대검과 날창, 참대창들, 전주대에 매달린 사람의 발에 박혀있는 대못이며 바닥을 질벅하게 적시는 피, 참혹한 주검의 바다우에서 광기어린 야성을 터뜨리는 인간백정들의 몰골…

들으면 들을수록, 보면 볼수록 증오와 분노만으로는 정녕 가셔낼수 없는 사무친 원한이여서 참관자들 누구나 이윽토록 자리를 뜰줄 몰랐다.

그들모두가 불끈 틀어쥔 주먹, 거기에 비낀것은 천년숙적 일본군국주의자들과는 대를 이어서라도 끝까지 결산하고야말 철석의 의지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반인륜적만행은 반드시 계산될것이다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 대변인담화-

2025년 3월 10일《로동신문》

 

우리 나라가 일제의 야만적인 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된 때로부터 근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일제의 강제랍치범죄로 차디찬 이역땅에 끌려가 원한품고 쓰러진 령혼들의 피의 절규는 오늘도 거세차게 메아리치고있다.

지난 세기 일제가 감행한 전고미문의 반인륜범죄사의 갈피에는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병탄한 이후 840만여명의 조선인청장년들을 강제로 끌어가 침략전쟁터들과 고역장들에 총알받이, 로동노예로 내몰았을뿐 아니라 미군의 대공습시 무리죽음을 당하게 만든 력사적사실도 력력히 기록되여있다.

일제가 도발한 태평양전쟁말기인 1945년 3월 10일과 13일 수백대에 달하는 미군의 《B-29》대형폭격기들이 일본 도꾜와 오사까에 날아들어 소이탄을 비롯한 폭탄들을 마구 퍼부으면서 대대적인 공습을 들이댔다.

당시 일제는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위험하고 고된 로동에 시달려온 조선사람들이 공습의 혼란된 틈을 타서 도주할수 있다고 줴쳐대면서 그들을 집단적으로 가두어놓고 오도가도 못하게 하였으며 결과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억울하게 생죽음을 당하는 대참사를 빚어냈다.

도꾜대공습시 조선사람들의 피해상황만 보더라도 일본의 전쟁책임자료쎈터기관지 《전쟁책임연구》 제53호에 명기된데 의하면 전재민은 4만 1, 300명이며 그중 사망자는 1만명을 훨씬 넘을것이라고 한다.

대공습직후 일제는 《천황》이 이 지역을 행각한다는 구실밑에 사망자들에 대한 신원도 조사하지 않은채 67개소의 공원과 사원, 학교마당 등에 토장하였다가 다시 파내여 조선사람들의 유골을 제멋대로 처리하는 극악무도한 반인륜적악행을 자행하였다.

사랑하는 부모처자가 기다리는 고향산천에 백골이 되여서도 돌아오지 못하고 산설고 물설은 타향에서 무주고혼이 되여버린 조선인희생자들의 비참한 운명은 전적으로 일제의 조선강점과 식민지통치에 기인된것이며 강제랍치범죄의 직접적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대적으로 일본당국은 티끌만한 량심상가책도 없이 당시의 반인륜적만행에 대한 진상규명은 물론 조선인희생자들의 신원확인에조차 낯을 돌리지 않았으며 강제련행사실자체를 력사의 흑막속에 묻어버리려고 모지름을 써왔다.

일본은 조선인강제련행에 대해 《강제로동》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을 정부적립장으로 공식화하였는가 하면 력사교과서들에 《강제련행》을 《동원》, 《징용》으로 표기할데 대한 지침까지 하달하면서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에 시퍼런 칼질을 해대고있다.

일본은 반인륜범죄에 대한 국가적책임을 회피하면서 과거의 침략행적을 말소하고 후대들에게 외곡된 력사관을 주입할수록 국제사회에 인륜도덕도 모르는 파렴치한 나라로 남아 죄악의 빚더미만 덧쌓게 될것이라는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조선인강제련행 및 강제로동은 구일본정부와 군부가 모든 권한을 총발동하여 감행한 범죄로서 중대한 인도에 대한 범죄, 노예범죄, 전쟁범죄로 되며 법적시효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성문법은 이러한 기본인권과 관련한 범죄에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제하고있다.

전범국 일본은 조선인희생자들의 유골이 80년동안 방치되여있는 실상을 전면적으로 조사하여 진상을 공개하는것과 동시에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에로 내몬 만고죄악에 대해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철저히 사죄하고 배상하는것이 마땅하다.

일제의 강제련행으로 꽃다운 청춘과 아까운 생을 무참히 짓밟힌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의 구천에 사무친 원한을 기어이 풀고야말겠다는것은 전체 조선인민의 확고부동한 의지이다.

미군의 도꾜, 오사까대공습시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반인륜적만행은 반드시 계산될것이다.

2025년 3월 9일

평 양

(전문 보기)

 

[Korea Info]

 

朝鮮人強制連行被害者・遺族協会の代弁人が談話発表

2025年 3月 10日 朝鮮中央通信

 

【平壌3月10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人強制連行被害者・遺族協会のスポークスマンが9日、発表した談話「日帝がわが人民に働いた反人倫的蛮行は必ず計算されるであろう」の全文は、次の通り。

わが国が日帝の野蛮な植民地支配から解放された時からほぼ80年という歳月が流れたが、日帝の強制拉致犯罪によって冷たい異国の地に連行され、恨みを抱いて倒れた霊魂の血の絶叫は、今日も激しくこだましている。

20世紀に日帝が強行した前代未聞の反人倫的犯罪史の節目には、わが国を軍事的に併呑した後、840万余人の朝鮮人青壮年を強制的に連行して侵略戦争の場や苦役場に弾除け、労働奴隷として駆り出したばかりか、米軍の大空襲の際、大量殺傷を余儀なくされた歴史的事実も歴々と記録されている。

日帝が挑発した太平洋戦争の末期である1945年3月10日と13日、数百機に及ぶ米軍のB29大型爆撃機が日本の東京と大阪に飛来して焼夷弾などの爆弾をやたらに投下して大々的な空襲を加えた。

当時、日帝は人間以下の冷遇と蔑視を受け、危険でつらい労働に虐げられていた朝鮮人が空襲の混乱した隙を利用して逃走しうると言い散らし、彼らを集団的に閉じ込めて行き来できないようにし、その結果、多くの朝鮮人が無念やるかたない非業の死を遂げる大惨事をもたらした。

東京大空襲の際、朝鮮人の被害状況だけを見ても、日本の戦争責任資料センターの機関紙「戦争責任研究」第53号に明記されたことによると、戦災民は4万1300人であり、そのうち死者は1万人をはるかに超えるという。

大空襲直後、日帝は「天皇」がこの地域を訪問するという口実の下、死者に対する身元も調査しないまま67カ所の公園と寺院、学校の運動場などに土葬し、再び掘り出して朝鮮人の遺骨を意のままに処理する極悪非道な反人倫的悪行を働いた。

愛する父母妻子が待つ故郷の山河に白骨になっても帰られず、なじみのない他国で無縁仏になってしまった朝鮮人犠牲者の悲惨な運命は全的に、日帝の朝鮮占領と植民地支配に起因し、強制拉致犯罪の直接的所産である。

にもかかわらず、歴代日本当局はいささかの良心の呵責もなしに当時の反人倫的蛮行に対する真相究明はもちろん、朝鮮人犠牲者の身元の確認さえ関心を払わず、強制連行事実自体を歴史の闇に葬ろうとやっきになってきた。

日本は、朝鮮人強制連行について「強制労働」と表現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政府の立場として公式化した一方、歴史教科書に「強制連行」を「動員」「徴用」として表記する指針まで下達し、被害者と遺族の癒えない傷に真っ青な刃物を突きつけている。

日本は、反人倫犯罪に対する国家的責任を回避し、過去の侵略行跡を抹消し、次世代に歪曲された史観を注入するほど、国際社会に人倫・道徳も知らない破廉恥な国として残り、罪悪の賠償金だけを積み重ねるということを銘記すべきである。

朝鮮人強制連行および強制労働は、旧日本政府と軍部が全ての権限を総発動して働いた犯罪であり、人道に対する重大な犯罪、奴隷犯罪、戦争犯罪であり、法的時効に関する国際慣習法と成文法はこのような基本人権に関する犯罪には時効が適用されないと規制している。

戦犯国の日本は、朝鮮人犠牲者の遺骨が80年間放置されている実状を全面的に調査して真相を公開すると同時に、罪のない人々を死へ駆り出した希世の罪悪に対して被害者と遺族に徹底的に謝罪し、賠償するのが当然である。

日帝の強制連行によってうるわしい青春と惜しい生を無残に踏みにじられた被害者と遺族の骨髄に徹する恨みをなんとしても晴らしてやまないというのは、全ての朝鮮人民の確固不動の意志である。

米軍の東京、大阪大空襲の際、日帝がわが人民に働いた反人倫的蛮行は必ず計算されるであろう。(記事全文)

 

[Korea Info]

 

죄악의 력사는 가리울수 없다

주체113(2024)년 9월 6일 로동신문

 

일본반동들의 파렴치한 과거범죄부정책동이 날로 로골화되고있다.

얼마전 일본 도꾜에서 1923년의 간또대지진시 일본의 군대와 우익깡패들에게 학살당한 조선인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추도식이 진행되였다.추도식에서 연설한 일본인실행위원장은 《력사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비참한 과거를 망각하지 않도록 후세에 계속 전해가는것이 우리의 책무이다.》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당국의 반응은 애초부터 쌀쌀하였다.

추도식을 앞두고 도꾜대학과 추도식실행위원회, 일본의 사회계인사들이 도꾜도지사에게 추도문을 보낼것을 요청하였다.

매해 9월 1일을 맞으며 조선인희생자들의 《도꾜동포추도식》을 개최하고있는 총련 도꾜도본부는 도꾜도지사의 추도식참가와 추도문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제출하면서 《력사적사실의 공유와 진상규명에 진지하게 달라붙으며 다시는 101년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도지사의 의지》를 보여줄것을 요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꾜도지사는 조선인학살의 력사적사실에 대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력사가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라는 기존립장을 고집하면서 이를 거부하였다.도꾜도지사로 취임한 다음해인 2017년부터 계속되여오고있는 완고한 태도이다.조선인학살의 력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요지부동의 자세가 바탕에 깔려있다.

간또대지진시 감행된 일본의 조선인대학살만행은 부정할수도 가리울수도 없는 력사의 진실이다.

1923년 9월 간또대지진이 발생하자 일본당국은 《조선인폭동설》을 날조하고 《조선인이 방화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라는 등의 허위소문을 대량 류포시키는 한편 이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전시계엄령》을 공포하여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군대와 경찰은 물론 《자경단》이나 《청년단》과 같은 극우익깡패들까지 조선인학살에로 내몰았다.1923년 9월 6일부 일본륙군성문건 《륙보 3573호》에는 일본왕의 《칙령》으로 도꾜부(당시)와 가나가와현까지 포함한 넓은 지역에 《전시계엄령》이 선포되고 간또일대를 《림전지역》으로 규정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엄청난 자연의 재해앞에 속수무책으로 있는 정부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을 조선인들에 대한 증오심에로 유도하여 무마시키려는 긴급조치였다.혼란의 책임을 재일조선인들에게 넘겨씌우고 일본인들을 조선인숙청에로 부추기려는것이였다.1924년판 《조선총독부 진재관계문서》에 밝혀진 자료에 의하더라도 당시 일본살인광들에 의해 학살된 재일조선인들은 무려 2만 3 000여명에 달하였다.

그때로부터 한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당국은 학살된 조선인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목격자들의 증언과 학살실태, 대다수 희생자들의 이름 등을 밝히지 않고있으며 력사적사실을 은페하고있다.

조선인학살의 력사를 애써 인정하지 않고있는 도꾜도지사의 태도는 과거죄악을 한사코 부인하고 미화하는 극단한 우익정치흐름의 반영이며 그 산물이다.

현 도꾜도지사는 국회의원으로 있던 2007년 과거 일본군이 조선녀성들을 강제련행한 일이 없다고 우기면서 일본군성노예문제가 국제적인 물망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데 앞장섰다.력사상 첫 녀성방위상으로 발탁되였던 그는 핵무장을 선택할수 있다는 등의 망발을 서슴없이 늘어놓아 군국주의후예의 정체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2016년 도꾜도지사선거시에도 극우익단체 《일본회의》의 지원을 받아 출마하였고 우익단체들의 활발한 선거지원운동에 힘을 얻어 당선되였다.

도꾜도지사로 취임한 다음해에는 간또대지진시 《자경단》의 행동은 진재를 리용하여 흉악한 사건을 일으킨 조선인들에 대한 《자위적조치》였다고 강변하면서 도꾜도 요꼬아미공원의 조선인희생자추도비에 새겨져있는 희생자수는 지내 과장된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꼭뒤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로 흐른다고 하였다.

중앙으로부터 지방당국에 이르기까지의 각급 우익정객들속에서 우심해지고있는 력사부정 및 외곡책동은 일본사회전반에 극악한 대조선적대행위들을 조장시키고 그를 부추기는 가짜정보들이 나돌게 하면서 사회환경을 심히 오염시키고있다.

2016년 구마모도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쳤다.》, 《조선인의 폭동에 조심하라.》는 류언비어가 인터네트상에 공공연히 류포되였다.지금도 간또대지진시의 조선인학살을 정당화하는 우익단체가 재일조선인추도비의 철거와 추도식의 중지를 노린 활동을 집요하게 계속하고있다.

일본반동세력이 노리는것은 명백하다.과거죄악을 지워버리고 사회적환경을 군국화하여 재침의 야망을 실현할수 있는 우익적인 사상정신적토대를 마련하겠다는것이다.력사에 새겨진 너무나도 많고 끔찍한 죄악의 흔적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죄악을 다시 새겨넣겠다는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조선인학살로 얼룩진 죄악의 력사는 세월의 이끼가 몇겹으로 덮인다고 해도 지워지지 않으며 그 어떤 술책이나 만용, 광기로는 더욱 묻어버릴수 없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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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대학살만행-《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

주체113(2024)년 8월 25일 로동신문

 

 

지난 세기초 우리 나라를 날강도적으로 강점한 일제는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저들의 땅에 끌고가 탄광, 광산, 공장과 공사장들에서 짐승처럼 부려먹고는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다.

극악한 살인귀무리인 일제는 패망후에도 해방의 환희에 넘쳐있던 조선사람들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가는 천추에 씻을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그중의 하나가 바로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전대미문의 대학살만행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쑤입니다.》

우리 나라가 해방된지 1주일이 되던 1945년 8월 22일 밤 일본북부의 아오모리현의 어느한 항에서는 해군수송선 《우끼시마마루》가 닻을 올렸다.

배에는 징병, 징용 등의 명목으로 끌려갔던 로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조선사람들이 타고있었다.그리운 부모처자들과 생리별하고 고향산천을 멀리 떠나 타향에서 갖은 민족적멸시와 모욕속에 살아가던 그들모두에게 있어서 귀향은 최대의 희망이고 소원이였다.그래서 목적지까지 무사히 태워다준다고 선심이나 쓰듯이 떠벌이는 일제해군놈들의 말을 곧이 믿고 《우끼시마마루》에 몸을 실었던 그들이였지만 자기들이 탄 배를 폭침시킬 치떨리는 살인흉계가 이미 꾸며져있으리라고는 미처 알수 없었다.

일본의 서부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던 수송선은 8월 24일 마이즈루항근처에 와서 갑자기 물을 싣겠다고 하면서 항으로 배머리를 돌리였다.그리고는 함장놈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황황히 뽀트를 내리워 타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륙지를 향하여 달아나는것이였다.그와 때를 같이하여 수송선의 기관실쪽에서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일제살인백정놈들은 조선사람들을 한꺼번에 물속에 빠뜨려죽이려는 흉심밑에 제놈들의 손으로 배를 폭발시켰던것이다.배밑창에 구멍이 뚫린 수송선은 바다밑으로 서서히 가라앉고말았다.그리하여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수송선에 몸을 실었던 수천명의 사람들이 그 꿈을 이루지 못한채 바다속에 수장되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간악한 일제의 만행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배가 폭발하여 가라앉을 때 일부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하여 간신히 뭍에 오를수 있었다.그러자 일제는 교활하게도 마치나 그들을 위로하는척하면서 마이즈루항의 일본해군숙소에 수용시키였다.

그런데 이 숙소라는 곳에서도 음흉한 살인음모가 꾸며지고있었다.

다음날 숙소안에 설치된 증기탕크가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폭발하였다.이 폭발로 인하여 수십명의 조선사람들은 목숨이나 겨우 붙어있을 정도의 심한 부상을 입게 되였다.

간악한 일제는 살아남은 얼마 안되는 사람들마저 모조리 학살함으로써 저들의 살륙만행의 비밀을 영원히 묻어버리려고 획책하였던것이다.

당시 마이즈루항가까이에서 살던 사람들은 배가 가라앉은 후 약 두주일간 매일과 같이 시체와 유물들이 물면우로 떠올랐으며 바다가기슭에 밀려나온 시체들은 일제해군놈들이 몰래 끌어가 화장하여 주변의 산골짜기에 매몰해치웠다고 증언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우끼시마마루》가 바다밑에 가라앉은지 9년이 되는 1954년에 와서야 고철로 쓰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배를 끌어올려 해체하였다.그러나 본심은 제놈들이 저지른 학살만행의 범죄증거물을 없애치우자는데 있었다.

당시 해체작업을 취재보도한 어느한 기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였다.

《그들은 비밀리에 해체작업을 함으로써 범죄의 증거소멸을 획책하였다.첩첩히 쌓인 흙속에서 유골과 함께 장화, 로동화, 담요 등이 나왔다.그리고 자세히 보니 시계, 식기 등까지 있었다.동그란 흙덩이를 슬며시 손으로 밀어보니 그것은 고무뽈이였다.고향에 가서 놀겠다고 기뻐하면서 무심히 뛰놀고있었을 어린이들을 생각하니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이처럼 패망한 후에도 조선인대량학살에 피눈이 되여 날뛴 극악한 살인귀들이 바로 일제놈들이다.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어느덧 수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민족앞에 저지른 특대형반인륜적죄악은 절대로 덮어버릴수도 지워버릴수도 없다.

력대로 일본은 《우끼시마마루》에서 감행한 범죄적진상을 감추어왔으며 지금도 전면부정하고있다.

일본이 과거죄악에 대하여 반성하고 사죄할 대신 그것을 부인하고있는것은 마이즈루앞바다에 수장된 희생자들과 우리 인민에 대한 모독이고 우롱이다.

침략전쟁수행을 위해 강제련행해갔던 사람들을 무사히 귀국시켰어야 할 일본정부가 도덕적, 법적책임을 다 줴버리고 오히려 살인만행을 묵인조장하여 수천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한꺼번에 학살하였으니 이 귀축같은 죄행을 어떻게 용서할수 있겠는가.

《우끼시마마루》에 올랐다가 생죽음을 당한 수많은 령혼들은 오늘도 피의 복수를 부르짖고있다.

우리는 살인악마의 무리, 일제의 죄행을 한시도 잊지 않고 지난날 우리 인민이 흘린 피값을 기어이 천백배로 받아내고야말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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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 천년숙적 일제의 죄악을! -극악한 민족말살책동을 고발하는 한장의 사진앞에서-

주체113(2024)년 8월 14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중앙계급교양관에 전시된 사진이다.

시꺼먼 말뚝을 향해 흰옷과 군복을 입은자들이 두손을 합장하고 서있는 퇴색된 사진을 보면 종교례식의 한순간을 포착한것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너무도 괴이쩍다.

이 사진에서 유표하게 보이는 흰옷을 입고 제사를 주관하는자가 당시 일본무당이며 일본국교를 숭상하는 종교단체의 우두머리놈이다.

사진은 바로 이자의 주관밑에 우리 나라의 명산에 쇠말뚝을 박아넣은 일제의 죄행을 고발하고있다.이것은 우리 인민의 피로 얼룩진 일제의 죄많은 과거사에 새겨진 지울수 없는 진실이다.

지난 20세기초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극악한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하였다.일제는 그러한 책동의 일환으로 우리 나라의 지맥들에 쇠말뚝을 박는 놀음을 벌리였다.

우리 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이다.

예로부터 산을 사랑하고 자랑하여온 우리 인민은 산의 형세를 잘 살피고 그것을 인간세상의 리치에 맞게 해석적용해왔다.다시말하여 산의 생김새와 지형 등을 잘 관찰하여 생활에 적용하였다.

우리 인민들은 일찍부터 산을 효과적으로 잘 다스려야 곧 천하를 다스릴수 있다고 일러왔다.그와 함께 수려한 산에는 맑은 물이 있기마련이고 산수뛰여난 곳에서는 위인과 장수 등 인재가 배출되기마련이라는 말도 전해왔다.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조선의 모든 지맥을 살아있는 인체로 보고 그 지맥들에 쇠말뚝을 박으면 땅이 병들고 땅이 병들면 사람도 병들어 재앙이 따르게 된다고 하면서 주요산들과 지점들에 쇠말뚝을 박는 전대미문의 망동을 부리였다.

또한 조선에서 인재가 나오지 못하도록 산을 두동강 내거나 그 모퉁이를 없애버리는 등 갖은 비렬하고 악독한 수법도 다 찾아내였다.

개성시의 산발마다에서 드러난 쇠말뚝들이 일제의 이러한 책동의 산증거물이다.

개성에서는 송악산꼭대기와 개성시 삼거리를 비롯한 여러곳에서 일제시기의 쇠말뚝들이 꽂혀있는채로 발견되였다.

송악산꼭대기에는 산의 배꼽부위에 해당되는 장소에 3대의 쇠말뚝이 박혀있었다.

개성시 삼거리에 있는 룡마바위잔등에도 왜놈들은 3대의 쇠말뚝을 박았다.

그와 잇닿은 산줄기의 또 다른 바위에서도 쇠말뚝 3대가 발견되였는데 증언자료에 의하면 왜놈들이 장수가 나올수 있는 산형세라고 하면서 박아놓았다고 한다.

3대의 쇠말뚝을 삼각형모양으로 박은 놈들은 조선사람들이 영원히 뽑지 못하게 하려고 쇠말뚝밑뿌리주변에 끓는 류황을 부어넣고 세멘트다짐까지 하여놓았다.

다른 한 바위에도 쇠말뚝을 박았던 자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쇠말뚝뿐이 아니다.

판문구역 채련리의 한 마을뒤산에는 왜놈들이 산허리를 두동강 낸 자리가 뚜렷하게 남아있다.그 마을에는 또한 10t에 가까운 거대한 바위돌로 산마루를 지질러놓은 곳도 있다.

증언자료에 의하면 왜놈들이 산의 정기를 눌러놓음으로써 장수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는것이다.

이러한 바위들은 이 마을 산등성이의 여러 군데에서도 발견되였다.

왜놈들은 산의 멱을 끊어놓는다고 하면서 먼곳에서부터 그 돌들을 날라왔다.

일제가 우리 나라의 주요산맥들에 쇠말뚝을 박고 산허리를 끊어버리며 산마루에 돌을 지질러놓는것과 같은 비렬한 행위를 감행한 목적은 조선민족의 기를 꺾고 우리 인민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려는데 있었다.

다시말하여 민족재생의 희망, 일제의 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나게 하여줄 뛰여난 위인의 탄생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조선인민의 희망을 짓밟아버림으로써 민족의 넋을 빼앗으려는데 있었다.때문에 놈들은 쇠말뚝을 박거나 산허리를 두동강 낸 사실을 숨긴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놈들이 나서서 소문을 내였다.

왜놈들은 그런짓을 한 후에는 명산의 정기를 다 없애버렸다느니, 이제는 나라를 떠메고나갈 큰 인물이나 장수가 나지 않을것이라는 등 헛소문을 의도적으로 내돌려 우리 인민들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일제가 패망한 때로부터 어느덧 세월은 많이 흘러 이제는 당시의 생존자도 체험자도 우리곁에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조국의 귀중한 명산들을 모독하고 우리 민족의 넋을 말살하려고 미쳐날뛴 일제의 죄악은 그 무엇으로써도 지울수도 가리울수도 없다.

우리는 천년숙적 일제의 죄악을 잊지 않을것이며 기어이 값을 받아내고야말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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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 《백발소년》

주체113(2024)년 8월 1일 로동신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얼마전 증산군 신흥리를 찾아가는 우리의 뇌리에서는 줄곧 한 로인에 대한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

이제는 아흔을 가까이한 나이인데 건강은 어떠한지, 혈혈단신인 로인이 년로한 지금 생활을 어떻게 꾸려가고있는지…

우리가 한일룡로인을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10여년전 어느한 출판물을 통해서였다.거기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실려있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수난의 그 세월에 태여나 조선사람이라는 하나의 리유로 하여 애어린 6살에 종신불구자가 된 증산군 신흥리에 사는 일흔살 난 한일룡로인이다.어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작은 키, 기형적인 육체, 성장발육부전으로 70나이가 된 오늘까지 〈총각〉으로, 〈여섯살〉의 〈소년〉으로 살아오고있는 한 인간의 불우한 모습…》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만행을 두고 치를 떨고 격분을 금치 못했던가.

《바로 이 집에서 한일룡로인이 살고있습니다.》

마을어구에서 만난 리의 일군이 아담한 농촌살림집의 대문을 열어젖히며 우리에게 하는 말이였다.

인기척에 한 중년녀인이 물젖은 손을 문대기며 토방에 내려섰다.

알고보니 그는 의지가지할데 없는 한일룡로인을 집에 모셔다 함께 살고있는 김용란동무였다.

리일군에게서 우리가 찾아온 사연에 대해 전해들은 녀인은 난색을 지었다.

《어쩌나, 아버님은 방금 집에 찾아왔던 학생들을 바래주러 나가셨는데…》

그 말에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로인이 아직 정정한것같다고 하는 우리에게 온 마을이 관심사가 되여 돌봐준다고 하던 김용란동무는 로인과 함께 지내면서보니 어느 하루도 발편잠을 이루지 못하더라고, 가슴에 쌓인 원한이 얼마나 크면 그러겠는가고 하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생전에 자주 동년배인 한일룡로인이 당한 불행에 대해 가슴아프게 추억하군 하였습니다.》

…1936년 봄, 찌그러져가는 농가에서 한일룡이 태여났다.

그의 출생은 한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온 마을의 경사로 되였다.한것은 태여날 당시 갓난아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만치 몸집이 크고 울음소리 또한 우렁찼던것이다.태여나 1년이 되기 전에 형들보다 키가 더 컸고 힘도 셌다.

이 소식은 일제경찰놈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였다.놈들은 때없이 집에 달려들어 그의 옷을 벗긴 다음 거꾸로 들고 얼마나 견디는가 시간을 재여보기도 했고 이걸 들어봐라, 저걸 들어봐라 하면서 못살게 굴었다.

그가 여섯살 잡히던 해였다.형들과 함께 들판을 뛰여다니던 그는 와뜰 놀랐다.험상궂게 생긴 일제경찰놈이 그앞에 떡 버티고서있는것이 아닌가.놈은 일룡이를 군화발로 툭툭 건드리며 자기를 한번 들어보라고 손시늉을 했다.일룡이 머뭇거리자 놈은 그의 팔을 붙잡고는 서툰 조선말로 《너 내 말 안들으면 죽인다.》라고 엄포를 놓았다.일룡은 하는수없이 경찰놈의 혁띠를 한손으로 잡고 힘을 썼다.순간 놈이 통채로 버쩍 들리우며 두다리가 허공에서 버둥댔다.낯짝이 금방 구운 벽돌장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놈은 땅에 내려서기 바쁘게 황황히 뺑소니를 쳤다.

주변에서 일하던 마을사람들은 입을 딱 벌렸다.

《우리 마을에 장사가 났수다.》, 《일룡아, 어서 자라서 왜놈들의 목대를 모조리 분질러놓거라.》

하지만 누구나 희한해한 그날의 일로 하여 일룡이에게 어떤 불행이 닥쳐오게 될지 마을사람들은 알수 없었다.…

김용란동무의 집마당가에서 《계십니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매일과 같이 집에 들려 로인이 앓을세라 따뜻이 돌봐준다는 리병원원장이 찾아온것이였다.로인의 건강상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던 원장은 추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왜놈들은 세상에서 제일 악독한 놈들입니다.》

알고보니 그도 이 고장내기여서 로인의 래력에 대해 잘 알고있었다.

…어린 한일룡이 억대우같은 경찰놈을 한손으로 들었다놓은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그의 집으로 흰 위생복을 입은 왜놈들이 들이닥쳤다.

《여기 한일룡이 누군가?》

불길한 예감을 감촉한 어머니가 아들을 치마폭에 꼭 감싸안았다.

《걱정이나 말아.아들이나 튼튼하게 자라라고 예방주사를 놓으려고 한다.》

놈들은 이렇게 이죽거리며 주사기를 뽑아들고는 발버둥치는 한일룡에게 다짜고짜 주사를 놓았다.

《악-》

한일룡은 비명을 지르며 의식을 잃었고 이튿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한겨울에 홑베잠뱅이를 걸치고도 감기 한번 앓지 않던 막내였던지라 속이 덜컥해난 부모는 여기저기 병원들을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알수 없었다.한일룡은 《예방주사》를 맞은 후부터 자주 앓았고 키도 더 자라지 못하였다.

그 주사약에 깃든 흉계는 시일이 흐른 뒤에야 알려지게 되였다.병원에서 일하는 한 조선사람을 통해 왜놈들이 한일룡에게 놔준 그 주사약이 성장발육을 억제시키는것이며 주사를 맞고도 아이가 다른 일이 없이 계속 튼튼하게 자라면 독주사를 놓아 아예 없애치우기로 하였다는것을 알게 된 마을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일제놈들의 책동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놈들은 마을뒤산에 올라가 정기를 막는다고 하면서 쇠말뚝까지 박았다.

마을사람들은 일제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었다.허나 나라없던 그 세월 어디에 가서 놈들의 만행을 하소하랴.…

원장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데 김용란동무가 《저기 아버님이 오십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대문이 열리더니 한일룡로인이 마당에 들어섰다.수십년전이나 다름없는 120㎝정도의 작은 키, 다른것이 있다면 머리의 흰서리와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뿐이였다.

로인의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아이나 다름없는 자기의 신체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덜 미치는 오솔길을 찾아다녔다는 이야기며 일생 목욕탕에도 못가고 겨울이면 집에서 함지목욕을 하고 여름이면 한밤중에 개울에 나가 몸을 씻군 하였다는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가슴아프게 되새겨졌다.

한일룡로인은 목갈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사실 죽자고 모진 마음을 먹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수다.하지만 그때마다 네가 목숨을 끊으면 좋아할건 쪽발이놈들뿐이라고 하던 부모님과 형들의 당부가 떠올라 강잉히 마음을 다잡군 했습니다.나를 종신불구자로 만들고 내 인생을 망쳐놓은 왜놈들을 이 손으로 탕쳐죽일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우리는 그의 모습을 처절한 아픔속에 바라보았다.

《백발소년》, 결코 한 인간의 불우한 인생이 비낀 부름만이 아니였다.우리 민족을 멸살시키기 위해 미쳐날뛴 일제의 야수성과 잔인성에 대한 진실한 고발이며 수십년세월 쌓이고쌓인 증오와 복수의 대명사였다.

정녕 한일룡로인처럼 영원히 아물수 없는 상처를 안고 일생 분노로 가슴을 태웠고 오늘도 원한에 떠는 수난자들이 이 땅에는 그 얼마나 많은가.

로인은 헤여지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나의 피눈물나는 과거사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해주시오.그래서 후대들이 왜놈들이야말로 얼마나 악독하고 비렬한 족속들인가를 잘 알고 복수의 칼날을 더 억세게 벼리도록 해주시오.》

《백발소년》의 피타는 목소리는 메아리를 일으키며 우리의 귀전에 계속 들려왔다.(전문 보기)

 

[Korea Info]

 

죄악의 력사는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

주체113(2024)년 6월 12일 로동신문

 

얼마전 일본의 도꾜에서 간또대지진때 무참히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추도문제와 관련한 모임이 있었다.

여기에서 일본의 한 작가는 《추도비는 희생자들과 마주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하는 출발점으로 된다.》라고 하면서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도꾜도 스미다구에는 간또대학살희생자들을 위한 추도비가 있다.작가의 말은 간또대학살만행을 정당화하는 주장이 아직도 울려나오고 추도비를 철거시키려는 우익단체들의 망동이 우심해지고있는것을 념두에 둔것이다.

인류력사에는 미국의 인디안살륙만행, 파쑈도이췰란드의 인종멸살행위 등 몸서리치는 만행들이 기록되여있다.하지만 간또대지진때 일제가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은 그 잔혹성에 있어서 가장 야수적인 민족배타주의적참살행위였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인 1923년 9월 1일 간또지역에서 리히터척도로 7.9의 강한 지진이 일어났다.10여개 도시들과 마을들이 불바다로 되고 숱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파괴적인 지진의 후과로 한지에 나앉은 주민들속에서 시급한 구제대책을 취하지 않는데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바빠맞은 일본당국은 민심의 분노의 화살을 재일조선인들에게 돌릴 음모를 꾸미였다.

《조선인이 방화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 《조선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집단방화하고있다.》라는 거짓여론을 내돌리고는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였다.이에 따라 군대, 헌병, 경찰 등 무장집단과 《자경단》, 《청년단》을 비롯한 우익깡패들이 총동원되였다.그리하여 2만 3 000여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무참히 학살당하였다.이것이 간또대학살만행의 진상이다.

간또조선인대학살, 그것은 일본반동들의 체질적인 민족배타주의와 사무라이고유의 잔인성과 야만성이 결합되여 빚어낸 대류혈참극이였다.

그에 대해 속죄의 감정을 품고있는 일본의 일부 량심적인 사람들에 의해 도꾜한복판에 추도비가 세워졌다.하지만 일본반동들은 령혼들을 위로하는 그 소박한 추도비마저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며 그것을 들어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여왔다.지난해만 놓고보아도 간또대학살만행 100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조선인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련이어 진행되자 우익깡패들은 《거짓력사를 후세에 남길수 없다.끊어야 한다.》라고 고아대며 란동을 부리였다.

당국의 태도는 더욱 파렴치하였다.

대학살만행과 관련한 국가적책임문제가 물망에 오르자 그를 모면하려고 실로 뻔뻔스럽게 놀아댔다.

집권자는 참의원 예산위원회회의에서 간또대지진당시 조선인학살문제에 대한 언급을 한사코 회피하였고 내각관방장관이라는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할수 있는 기록을 찾을수 없다.》, 《정부의 견해는 재판기록이 없어 현시점에서 파악하려고 하여도 곤난하다는것이다.》라고 뇌까렸다.

외상 역시 《사실관계를 파악할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력사의 진실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일본의 《도꾜신붕》은 《대진재와 학살, 현시대를 위해 교훈으로 삼으라》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선인학살은 결코 허구가 아니라고 하면서 민족배타주의적인 류언비어를 구실로 일본각지에서 관헌들과 《자경단》이 조선인들을 대대적으로 살해한 사실을 까밝혔다.그러면서 《무엇이 명백한 사실인가 하는것은 력사가들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뇌까리면서 과거죄악을 회피, 부정하려드는 당국자들을 비난하였다.

죄를 지었으면 그를 인정하고 사죄하는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일본은 보는바와 같이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조선인학살만행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죄배상은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고있다.피로 얼룩진 과거사를 지워버리지 못해 모지름을 쓰고있는 그자체가 침략의 력사를 답습하겠다는것이다.

일본반동들은 그 어떤 술책으로써도 력사의 한 페지에,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피맺힌 원한으로 남아있는 천인공노할 대학살범죄를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전문 보기)

 

[Korea Info]

 

세계평화교란자의 파렴치한 넉두리

주체113(2024)년 4월 19일 로동신문

 

얼마전 미국대통령 바이든이 나토가 조작된지 75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성명을 발표하였다.여기에서 그는 나토를 《세계력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동맹》으로 추어올리며 《우리가 더욱 강해질 때 세계는 보다 안전해진다는것을 우리모두가 알게 되였다.》라고 횡설수설하였다.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찬 역스러운 넉두리이다.세계제패를 위한 미국의 침략적인 대외정책, 동맹전략이 어떤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는가는 세상사람들이 다 알고있기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부터 2001년까지의 기간에만도 세계의 153개 지역에서 248차의 전쟁 및 무장분쟁이 발생하였는데 그중 미국이 일으킨것이 201차였다.절대다수이다.이것은 미국이야말로 침략과 략탈을 떠나 단 한시도 생존할수 없는 악의 제국이고 그 패권주의적인 정책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근본요인이라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지난 세기말엽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이 《21세기 미국의 계획》이라는것을 고안해낸적이 있다.그 내용을 보면 시기를 정함이 없이 앞으로 전쟁을 계속한다는것, 군비를 끊임없이 늘인다는것, 우주를 완전히 정복하고 차지한다는것, 미국의 리익에 맞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린다는것, 미국의 정책과 리익에 맞지 않는 국제협약이나 그 어떤 국제적협조도 거부한다는것, 국제무대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일방적으로 처리한다는것, 미국에 대한 도전과 위협을 막기 위해 각종 수단들을 리용한다는것 등이다.세계를 미국의 의도에 맞게 개조하겠다는것이 이 계획의 골자이다.

이 악마의 각본은 오늘도 여전히 실행되고있다.

로씨야의 한 언론은 《미국이 자기의 채무를 털어버리기 위해 도처에서 전쟁을 일으키고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난 수십년간 전지구적인 혼란이 일어났는바 그 주요한 원인은 미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가는 곳마다에서 전쟁을 일으켰기때문이라고 까밝혔다.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시기 기타 전쟁참가국들과는 달리 많은 리득을 챙긴 미국은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리윤을 추구하고있다고 주장하였다.

세계도처에서 힘의 불균형과 군사적대치상태를 조성하고 그것이 물리적충돌로 이어지게 하고는 《평화수호자》랍시고 뻐젓이 분쟁지역에 저들의 무력을 들이미는것은 미국의 상투적인 수법이다.이 악랄한 책동으로 하여 많은 나라들에서 사회정치적혼란과 경제침체, 피난민위기가 발생하고있다.행성의 평화가 엄중히 위협당하고 인류가 고통을 겪고있다.

참혹한 사태가 빚어지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쟁광신자들은 미국인들이 《오만하고 비타협적이며 무자비한 립헌적패권주의자》로 되여야 최고위층이 결심을 내릴 때 《일방적인 무력사용도 자유롭게 선택》할수 있다고 내놓고 떠벌이고있다.미국은 《특권적인 지위》를 가지고있고 《항상 정의의 편》에 서있기때문에 법적으로 구속되거나 자기가 서명한 국제조약들의 리행의무도 걸머지지 말아야 한다는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야말로 뿌리깊은 패권주의적야망, 파렴치한 오만성의 발로이다.미국의 한 력사가가 자기가 쓴 도서에서 주장했듯이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취하는 행동은 《제국적판도의 철면피성》이다.

바이든이 이번에 《나토의 단합》을 열성껏 력설하였는데 그것 역시 파렴치성의 극치이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닥치는대로 짓밟고 빼앗는 미국의 전횡으로 동맹국들까지 피해를 입는것이 례상사이다.미국은 정세긴장을 부추기고 공포를 조성하여 동맹국들을 저들의 리익에 비끄러매놓고 미국의 패권을 위해 복무하도록 하고있다.

미국은 저들의 쇠퇴를 모면하기 위해 나토성원국들이 군사비를 국내총생산액의 2%로 올릴것을 끈질기게 요구하여왔으며 우크라이나사태를 기화로 그 강도를 더욱 높이고있다.동맹국들이 자국민의 혈세를 더 많이 짜내여 값비싼 미국제무기들을 사게 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미국의 강요대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들을 넘겨준 적지 않은 나토성원국들은 부족되는 량을 채우기 위해 미국산무기를 구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더우기 미국은 하수인들의 궁색한 처지같은것은 안중에도 없이 통화팽창삭감법을 채택함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빠져든 동맹국들의 경제에 또다시 폭탄을 던지였다.

보는바와 같이 미국은 자기의 리해관계를 놓고는 추호의 타협도 모르는 승냥이같은 《벗》이다.

총적으로 말하여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고 혼란을 조성하는 장본인은 다름아닌 미국이다.시대착오적인 동맹전략에 집착하여 세계를 편가르기하고 이르는 곳마다에서 침략을 감행하고 분쟁을 사촉하는 미국의 망동은 명백히 행성의 평화를 파괴하는 범죄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살찌고 전쟁으로 유지되는 이 악의 제국은 바로 그 전쟁때문에 멸망의 시각을 맞게 될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선희 외무상 담화

주체113(2024)년 3월 29일 조선중앙통신

 

기시다 일본수상이 《랍치문제》를 또다시 언급하며 조일사이의 여러 현안해결을 위해 종래의 방침아래 계속 노력하겠다는 립장을 밝혔다.

현실을 애써 거부하고 외면하면서 실현할수 없는것,해결할것이 없는 문제에 집착하고 끝까지 고집하는 리유에 대하여 리해할수 없다.

우리는 일본이 말하는 그 무슨 《랍치문제》와 관련하여 해결해줄것도 없을뿐더러 노력할 의무도 없고 또한 그러할 의사도 전혀 없다.

다시한번 명백히 강조한다.

조일대화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며 우리는 일본의 그 어떤 접촉시도에 대해서도 허용하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의 주권행사를 방해하며 간섭하는데 대하여서는 항상 단호히 대응할것이다.

이것이 우리 공화국정부의 립장이다.

 

주체113(2024)년 3월 29일

평 양

(전문 보기)

 

[Korea Info]

 

崔善姫外相が談話発表

チュチェ113(2024)年 3月 29日 朝鮮中央通信

 

【平壌3月29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の崔善姫外相は29日、次のような談話を発表した。

日本の岸田首相が「拉致問題」にまたもや言及し、朝日間の諸懸案解決のために従来の方針の下、引き続き努力を続けるという立場を明らかにした。

現実をわざわざ拒否し、顔をそむけながら実現できないこと、解決すべきことのない問題に執着し、あくまで固執する理由について理解できない。

われわれは、日本が言ういわゆる「拉致問題」に関連して解決してやることもないばかりか、努力する義務もなく、またそのような意思も全くない。

再度明白に強調する。

朝日対話はわれわれの関心事ではなく、われわれは日本のいかなる接触の試みに対しても許さないであろう。

そして、日本がわれわれの主権行使を妨害し、干渉することに対しては常に断固と対応するであろう。

これが、わが共和国政府の立場である。(記事全文)

 

[Korea Info]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주체113(2024)년 3월 26일 조선중앙통신

 

일본측은 25일 오후 내각관방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하여 랍치문제가 해결되였다는데 대해서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다는 립장을 명백히 하였다.

또한 저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 무슨 핵 및 미싸일현안이라는 표현을 꺼내들며 우리의 정당방위에 속하는 주권행사를 간섭하고 문제시하려들었다.

일본은 력사를 바꾸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며 새로운 조일관계의 첫발을 내디딜 용기가 전혀 없다.

해결될래야 될수도 없고 또 해결할것도 없는 불가극복의 문제들을 붙잡고있는 일본의 태도가 이를 말해준다.

최근에 여러차 주위의 이목을 끈 기시다수상의 조일수뇌회담관련발언은 자기의 정치적목적에 따른것이라고 볼수 있다.

사상최저수준의 지지률을 의식하고있는 일본수상의 정략적인 타산에 조일관계가 리용당해서는 안된다.

《전제조건없는 일조수뇌회담》을 요청하면서 먼저 문을 두드린것은 일본측이며 다만 우리는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 출발을 할 자세가 되여있다면 환영할것이라는 립장을 밝혔을뿐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태도를 다시한번 명백히 파악하였으며 따라서 결론은 일본측과의 그 어떤 접촉도,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것이다.

조일수뇌회담은 우리에게 있어서 관심사가 아니다.

 

주체113(2024)년 3월 26일

평 양

(전문 보기)

 

[Korea Info]

 

金與正党副部長が談話発表

チュチェ113(2024)年 3月 26日 朝鮮中央通信

 

【平壌3月26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労働党中央委員会の金與正副部長が26日、次のような談話を発表した。

日本側は25日午後、内閣官房長官の記者会見で、拉致問題がすでに解決されたとの主張は全く受け入れられないという立場を明白にした。

また、自分らと何の関係もないいわゆる核・ミサイルといった諸懸案という表現を持ち出して、われわれの正当防衛に属する主権行使に干渉し、それを問題視しようとした。

日本は、歴史を変えて地域の平和と安定を図り、新たな朝日関係の第一歩を踏み出す勇気が全くない。

解決不可能で、また解決することもない不可克服の問題に執着している日本の態度が、これを物語っている。

最近、数回にわたって周囲の耳目を集めた岸田首相の朝日首脳会談関連の発言は、自分の政治目的によるものであると見られる。

史上、最低水準の支持率を意識している日本首相の政略的な打算に、朝日関係が利用されてはならない。

「前提条件なしの日朝首脳会談」を要請して先に戸を叩いたのは日本側であり、ただわれわれは日本が過去に縛られず、新しい出発をする姿勢を取っているのなら、歓迎するという立場を明らかにしただけである。

わが政府は、日本の態度を今一度明白に把握したし、したがって結論は日本側とのいかなる接触にも、交渉にも顔を背け、それを拒否するであろう。

朝日首脳会談は、われわれにとって関心事ではない。(記事全文)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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