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조일관계/朝日関係’ Category
죄악의 력사는 가리울수 없다
일본반동들의 파렴치한 과거범죄부정책동이 날로 로골화되고있다.
얼마전 일본 도꾜에서 1923년의 간또대지진시 일본의 군대와 우익깡패들에게 학살당한 조선인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추도식이 진행되였다.추도식에서 연설한 일본인실행위원장은 《력사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비참한 과거를 망각하지 않도록 후세에 계속 전해가는것이 우리의 책무이다.》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당국의 반응은 애초부터 쌀쌀하였다.
추도식을 앞두고 도꾜대학과 추도식실행위원회, 일본의 사회계인사들이 도꾜도지사에게 추도문을 보낼것을 요청하였다.
매해 9월 1일을 맞으며 조선인희생자들의 《도꾜동포추도식》을 개최하고있는 총련 도꾜도본부는 도꾜도지사의 추도식참가와 추도문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제출하면서 《력사적사실의 공유와 진상규명에 진지하게 달라붙으며 다시는 101년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도지사의 의지》를 보여줄것을 요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꾜도지사는 조선인학살의 력사적사실에 대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력사가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라는 기존립장을 고집하면서 이를 거부하였다.도꾜도지사로 취임한 다음해인 2017년부터 계속되여오고있는 완고한 태도이다.조선인학살의 력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요지부동의 자세가 바탕에 깔려있다.
간또대지진시 감행된 일본의 조선인대학살만행은 부정할수도 가리울수도 없는 력사의 진실이다.
1923년 9월 간또대지진이 발생하자 일본당국은 《조선인폭동설》을 날조하고 《조선인이 방화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라는 등의 허위소문을 대량 류포시키는 한편 이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전시계엄령》을 공포하여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군대와 경찰은 물론 《자경단》이나 《청년단》과 같은 극우익깡패들까지 조선인학살에로 내몰았다.1923년 9월 6일부 일본륙군성문건 《륙보 3573호》에는 일본왕의 《칙령》으로 도꾜부(당시)와 가나가와현까지 포함한 넓은 지역에 《전시계엄령》이 선포되고 간또일대를 《림전지역》으로 규정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엄청난 자연의 재해앞에 속수무책으로 있는 정부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을 조선인들에 대한 증오심에로 유도하여 무마시키려는 긴급조치였다.혼란의 책임을 재일조선인들에게 넘겨씌우고 일본인들을 조선인숙청에로 부추기려는것이였다.1924년판 《조선총독부 진재관계문서》에 밝혀진 자료에 의하더라도 당시 일본살인광들에 의해 학살된 재일조선인들은 무려 2만 3 000여명에 달하였다.
그때로부터 한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당국은 학살된 조선인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목격자들의 증언과 학살실태, 대다수 희생자들의 이름 등을 밝히지 않고있으며 력사적사실을 은페하고있다.
조선인학살의 력사를 애써 인정하지 않고있는 도꾜도지사의 태도는 과거죄악을 한사코 부인하고 미화하는 극단한 우익정치흐름의 반영이며 그 산물이다.
현 도꾜도지사는 국회의원으로 있던 2007년 과거 일본군이 조선녀성들을 강제련행한 일이 없다고 우기면서 일본군성노예문제가 국제적인 물망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데 앞장섰다.력사상 첫 녀성방위상으로 발탁되였던 그는 핵무장을 선택할수 있다는 등의 망발을 서슴없이 늘어놓아 군국주의후예의 정체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2016년 도꾜도지사선거시에도 극우익단체 《일본회의》의 지원을 받아 출마하였고 우익단체들의 활발한 선거지원운동에 힘을 얻어 당선되였다.
도꾜도지사로 취임한 다음해에는 간또대지진시 《자경단》의 행동은 진재를 리용하여 흉악한 사건을 일으킨 조선인들에 대한 《자위적조치》였다고 강변하면서 도꾜도 요꼬아미공원의 조선인희생자추도비에 새겨져있는 희생자수는 지내 과장된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꼭뒤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로 흐른다고 하였다.
중앙으로부터 지방당국에 이르기까지의 각급 우익정객들속에서 우심해지고있는 력사부정 및 외곡책동은 일본사회전반에 극악한 대조선적대행위들을 조장시키고 그를 부추기는 가짜정보들이 나돌게 하면서 사회환경을 심히 오염시키고있다.
2016년 구마모도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쳤다.》, 《조선인의 폭동에 조심하라.》는 류언비어가 인터네트상에 공공연히 류포되였다.지금도 간또대지진시의 조선인학살을 정당화하는 우익단체가 재일조선인추도비의 철거와 추도식의 중지를 노린 활동을 집요하게 계속하고있다.
일본반동세력이 노리는것은 명백하다.과거죄악을 지워버리고 사회적환경을 군국화하여 재침의 야망을 실현할수 있는 우익적인 사상정신적토대를 마련하겠다는것이다.력사에 새겨진 너무나도 많고 끔찍한 죄악의 흔적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죄악을 다시 새겨넣겠다는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조선인학살로 얼룩진 죄악의 력사는 세월의 이끼가 몇겹으로 덮인다고 해도 지워지지 않으며 그 어떤 술책이나 만용, 광기로는 더욱 묻어버릴수 없다.(전문 보기)
전대미문의 대학살만행-《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
지난 세기초 우리 나라를 날강도적으로 강점한 일제는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저들의 땅에 끌고가 탄광, 광산, 공장과 공사장들에서 짐승처럼 부려먹고는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다.
극악한 살인귀무리인 일제는 패망후에도 해방의 환희에 넘쳐있던 조선사람들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가는 천추에 씻을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그중의 하나가 바로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전대미문의 대학살만행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쑤입니다.》
우리 나라가 해방된지 1주일이 되던 1945년 8월 22일 밤 일본북부의 아오모리현의 어느한 항에서는 해군수송선 《우끼시마마루》가 닻을 올렸다.
배에는 징병, 징용 등의 명목으로 끌려갔던 로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조선사람들이 타고있었다.그리운 부모처자들과 생리별하고 고향산천을 멀리 떠나 타향에서 갖은 민족적멸시와 모욕속에 살아가던 그들모두에게 있어서 귀향은 최대의 희망이고 소원이였다.그래서 목적지까지 무사히 태워다준다고 선심이나 쓰듯이 떠벌이는 일제해군놈들의 말을 곧이 믿고 《우끼시마마루》에 몸을 실었던 그들이였지만 자기들이 탄 배를 폭침시킬 치떨리는 살인흉계가 이미 꾸며져있으리라고는 미처 알수 없었다.
일본의 서부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던 수송선은 8월 24일 마이즈루항근처에 와서 갑자기 물을 싣겠다고 하면서 항으로 배머리를 돌리였다.그리고는 함장놈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황황히 뽀트를 내리워 타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륙지를 향하여 달아나는것이였다.그와 때를 같이하여 수송선의 기관실쪽에서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일제살인백정놈들은 조선사람들을 한꺼번에 물속에 빠뜨려죽이려는 흉심밑에 제놈들의 손으로 배를 폭발시켰던것이다.배밑창에 구멍이 뚫린 수송선은 바다밑으로 서서히 가라앉고말았다.그리하여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수송선에 몸을 실었던 수천명의 사람들이 그 꿈을 이루지 못한채 바다속에 수장되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간악한 일제의 만행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배가 폭발하여 가라앉을 때 일부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하여 간신히 뭍에 오를수 있었다.그러자 일제는 교활하게도 마치나 그들을 위로하는척하면서 마이즈루항의 일본해군숙소에 수용시키였다.
그런데 이 숙소라는 곳에서도 음흉한 살인음모가 꾸며지고있었다.
다음날 숙소안에 설치된 증기탕크가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폭발하였다.이 폭발로 인하여 수십명의 조선사람들은 목숨이나 겨우 붙어있을 정도의 심한 부상을 입게 되였다.
간악한 일제는 살아남은 얼마 안되는 사람들마저 모조리 학살함으로써 저들의 살륙만행의 비밀을 영원히 묻어버리려고 획책하였던것이다.
당시 마이즈루항가까이에서 살던 사람들은 배가 가라앉은 후 약 두주일간 매일과 같이 시체와 유물들이 물면우로 떠올랐으며 바다가기슭에 밀려나온 시체들은 일제해군놈들이 몰래 끌어가 화장하여 주변의 산골짜기에 매몰해치웠다고 증언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우끼시마마루》가 바다밑에 가라앉은지 9년이 되는 1954년에 와서야 고철로 쓰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배를 끌어올려 해체하였다.그러나 본심은 제놈들이 저지른 학살만행의 범죄증거물을 없애치우자는데 있었다.
당시 해체작업을 취재보도한 어느한 기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였다.
《그들은 비밀리에 해체작업을 함으로써 범죄의 증거소멸을 획책하였다.첩첩히 쌓인 흙속에서 유골과 함께 장화, 로동화, 담요 등이 나왔다.그리고 자세히 보니 시계, 식기 등까지 있었다.동그란 흙덩이를 슬며시 손으로 밀어보니 그것은 고무뽈이였다.고향에 가서 놀겠다고 기뻐하면서 무심히 뛰놀고있었을 어린이들을 생각하니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이처럼 패망한 후에도 조선인대량학살에 피눈이 되여 날뛴 극악한 살인귀들이 바로 일제놈들이다.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어느덧 수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민족앞에 저지른 특대형반인륜적죄악은 절대로 덮어버릴수도 지워버릴수도 없다.
력대로 일본은 《우끼시마마루》에서 감행한 범죄적진상을 감추어왔으며 지금도 전면부정하고있다.
일본이 과거죄악에 대하여 반성하고 사죄할 대신 그것을 부인하고있는것은 마이즈루앞바다에 수장된 희생자들과 우리 인민에 대한 모독이고 우롱이다.
침략전쟁수행을 위해 강제련행해갔던 사람들을 무사히 귀국시켰어야 할 일본정부가 도덕적, 법적책임을 다 줴버리고 오히려 살인만행을 묵인조장하여 수천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한꺼번에 학살하였으니 이 귀축같은 죄행을 어떻게 용서할수 있겠는가.
《우끼시마마루》에 올랐다가 생죽음을 당한 수많은 령혼들은 오늘도 피의 복수를 부르짖고있다.
우리는 살인악마의 무리, 일제의 죄행을 한시도 잊지 않고 지난날 우리 인민이 흘린 피값을 기어이 천백배로 받아내고야말것이다.(전문 보기)
잊지 말자, 천년숙적 일제의 죄악을! -극악한 민족말살책동을 고발하는 한장의 사진앞에서-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중앙계급교양관에 전시된 사진이다.
시꺼먼 말뚝을 향해 흰옷과 군복을 입은자들이 두손을 합장하고 서있는 퇴색된 사진을 보면 종교례식의 한순간을 포착한것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너무도 괴이쩍다.
이 사진에서 유표하게 보이는 흰옷을 입고 제사를 주관하는자가 당시 일본무당이며 일본국교를 숭상하는 종교단체의 우두머리놈이다.
사진은 바로 이자의 주관밑에 우리 나라의 명산에 쇠말뚝을 박아넣은 일제의 죄행을 고발하고있다.이것은 우리 인민의 피로 얼룩진 일제의 죄많은 과거사에 새겨진 지울수 없는 진실이다.
지난 20세기초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극악한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하였다.일제는 그러한 책동의 일환으로 우리 나라의 지맥들에 쇠말뚝을 박는 놀음을 벌리였다.
우리 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이다.
예로부터 산을 사랑하고 자랑하여온 우리 인민은 산의 형세를 잘 살피고 그것을 인간세상의 리치에 맞게 해석적용해왔다.다시말하여 산의 생김새와 지형 등을 잘 관찰하여 생활에 적용하였다.
우리 인민들은 일찍부터 산을 효과적으로 잘 다스려야 곧 천하를 다스릴수 있다고 일러왔다.그와 함께 수려한 산에는 맑은 물이 있기마련이고 산수뛰여난 곳에서는 위인과 장수 등 인재가 배출되기마련이라는 말도 전해왔다.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조선의 모든 지맥을 살아있는 인체로 보고 그 지맥들에 쇠말뚝을 박으면 땅이 병들고 땅이 병들면 사람도 병들어 재앙이 따르게 된다고 하면서 주요산들과 지점들에 쇠말뚝을 박는 전대미문의 망동을 부리였다.
또한 조선에서 인재가 나오지 못하도록 산을 두동강 내거나 그 모퉁이를 없애버리는 등 갖은 비렬하고 악독한 수법도 다 찾아내였다.
개성시의 산발마다에서 드러난 쇠말뚝들이 일제의 이러한 책동의 산증거물이다.
개성에서는 송악산꼭대기와 개성시 삼거리를 비롯한 여러곳에서 일제시기의 쇠말뚝들이 꽂혀있는채로 발견되였다.
송악산꼭대기에는 산의 배꼽부위에 해당되는 장소에 3대의 쇠말뚝이 박혀있었다.
개성시 삼거리에 있는 룡마바위잔등에도 왜놈들은 3대의 쇠말뚝을 박았다.
그와 잇닿은 산줄기의 또 다른 바위에서도 쇠말뚝 3대가 발견되였는데 증언자료에 의하면 왜놈들이 장수가 나올수 있는 산형세라고 하면서 박아놓았다고 한다.
3대의 쇠말뚝을 삼각형모양으로 박은 놈들은 조선사람들이 영원히 뽑지 못하게 하려고 쇠말뚝밑뿌리주변에 끓는 류황을 부어넣고 세멘트다짐까지 하여놓았다.
다른 한 바위에도 쇠말뚝을 박았던 자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쇠말뚝뿐이 아니다.
판문구역 채련리의 한 마을뒤산에는 왜놈들이 산허리를 두동강 낸 자리가 뚜렷하게 남아있다.그 마을에는 또한 10t에 가까운 거대한 바위돌로 산마루를 지질러놓은 곳도 있다.
증언자료에 의하면 왜놈들이 산의 정기를 눌러놓음으로써 장수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는것이다.
이러한 바위들은 이 마을 산등성이의 여러 군데에서도 발견되였다.
왜놈들은 산의 멱을 끊어놓는다고 하면서 먼곳에서부터 그 돌들을 날라왔다.
일제가 우리 나라의 주요산맥들에 쇠말뚝을 박고 산허리를 끊어버리며 산마루에 돌을 지질러놓는것과 같은 비렬한 행위를 감행한 목적은 조선민족의 기를 꺾고 우리 인민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려는데 있었다.
다시말하여 민족재생의 희망, 일제의 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나게 하여줄 뛰여난 위인의 탄생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조선인민의 희망을 짓밟아버림으로써 민족의 넋을 빼앗으려는데 있었다.때문에 놈들은 쇠말뚝을 박거나 산허리를 두동강 낸 사실을 숨긴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놈들이 나서서 소문을 내였다.
왜놈들은 그런짓을 한 후에는 명산의 정기를 다 없애버렸다느니, 이제는 나라를 떠메고나갈 큰 인물이나 장수가 나지 않을것이라는 등 헛소문을 의도적으로 내돌려 우리 인민들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일제가 패망한 때로부터 어느덧 세월은 많이 흘러 이제는 당시의 생존자도 체험자도 우리곁에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조국의 귀중한 명산들을 모독하고 우리 민족의 넋을 말살하려고 미쳐날뛴 일제의 죄악은 그 무엇으로써도 지울수도 가리울수도 없다.
우리는 천년숙적 일제의 죄악을 잊지 않을것이며 기어이 값을 받아내고야말것이다.(전문 보기)
실화 : 《백발소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얼마전 증산군 신흥리를 찾아가는 우리의 뇌리에서는 줄곧 한 로인에 대한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
이제는 아흔을 가까이한 나이인데 건강은 어떠한지, 혈혈단신인 로인이 년로한 지금 생활을 어떻게 꾸려가고있는지…
우리가 한일룡로인을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10여년전 어느한 출판물을 통해서였다.거기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실려있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수난의 그 세월에 태여나 조선사람이라는 하나의 리유로 하여 애어린 6살에 종신불구자가 된 증산군 신흥리에 사는 일흔살 난 한일룡로인이다.어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작은 키, 기형적인 육체, 성장발육부전으로 70나이가 된 오늘까지 〈총각〉으로, 〈여섯살〉의 〈소년〉으로 살아오고있는 한 인간의 불우한 모습…》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만행을 두고 치를 떨고 격분을 금치 못했던가.
《바로 이 집에서 한일룡로인이 살고있습니다.》
마을어구에서 만난 리의 일군이 아담한 농촌살림집의 대문을 열어젖히며 우리에게 하는 말이였다.
인기척에 한 중년녀인이 물젖은 손을 문대기며 토방에 내려섰다.
알고보니 그는 의지가지할데 없는 한일룡로인을 집에 모셔다 함께 살고있는 김용란동무였다.
리일군에게서 우리가 찾아온 사연에 대해 전해들은 녀인은 난색을 지었다.
《어쩌나, 아버님은 방금 집에 찾아왔던 학생들을 바래주러 나가셨는데…》
그 말에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로인이 아직 정정한것같다고 하는 우리에게 온 마을이 관심사가 되여 돌봐준다고 하던 김용란동무는 로인과 함께 지내면서보니 어느 하루도 발편잠을 이루지 못하더라고, 가슴에 쌓인 원한이 얼마나 크면 그러겠는가고 하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생전에 자주 동년배인 한일룡로인이 당한 불행에 대해 가슴아프게 추억하군 하였습니다.》
…1936년 봄, 찌그러져가는 농가에서 한일룡이 태여났다.
그의 출생은 한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온 마을의 경사로 되였다.한것은 태여날 당시 갓난아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만치 몸집이 크고 울음소리 또한 우렁찼던것이다.태여나 1년이 되기 전에 형들보다 키가 더 컸고 힘도 셌다.
이 소식은 일제경찰놈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였다.놈들은 때없이 집에 달려들어 그의 옷을 벗긴 다음 거꾸로 들고 얼마나 견디는가 시간을 재여보기도 했고 이걸 들어봐라, 저걸 들어봐라 하면서 못살게 굴었다.
그가 여섯살 잡히던 해였다.형들과 함께 들판을 뛰여다니던 그는 와뜰 놀랐다.험상궂게 생긴 일제경찰놈이 그앞에 떡 버티고서있는것이 아닌가.놈은 일룡이를 군화발로 툭툭 건드리며 자기를 한번 들어보라고 손시늉을 했다.일룡이 머뭇거리자 놈은 그의 팔을 붙잡고는 서툰 조선말로 《너 내 말 안들으면 죽인다.》라고 엄포를 놓았다.일룡은 하는수없이 경찰놈의 혁띠를 한손으로 잡고 힘을 썼다.순간 놈이 통채로 버쩍 들리우며 두다리가 허공에서 버둥댔다.낯짝이 금방 구운 벽돌장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놈은 땅에 내려서기 바쁘게 황황히 뺑소니를 쳤다.
주변에서 일하던 마을사람들은 입을 딱 벌렸다.
《우리 마을에 장사가 났수다.》, 《일룡아, 어서 자라서 왜놈들의 목대를 모조리 분질러놓거라.》
하지만 누구나 희한해한 그날의 일로 하여 일룡이에게 어떤 불행이 닥쳐오게 될지 마을사람들은 알수 없었다.…
김용란동무의 집마당가에서 《계십니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매일과 같이 집에 들려 로인이 앓을세라 따뜻이 돌봐준다는 리병원원장이 찾아온것이였다.로인의 건강상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던 원장은 추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왜놈들은 세상에서 제일 악독한 놈들입니다.》
알고보니 그도 이 고장내기여서 로인의 래력에 대해 잘 알고있었다.
…어린 한일룡이 억대우같은 경찰놈을 한손으로 들었다놓은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그의 집으로 흰 위생복을 입은 왜놈들이 들이닥쳤다.
《여기 한일룡이 누군가?》
불길한 예감을 감촉한 어머니가 아들을 치마폭에 꼭 감싸안았다.
《걱정이나 말아.아들이나 튼튼하게 자라라고 예방주사를 놓으려고 한다.》
놈들은 이렇게 이죽거리며 주사기를 뽑아들고는 발버둥치는 한일룡에게 다짜고짜 주사를 놓았다.
《악-》
한일룡은 비명을 지르며 의식을 잃었고 이튿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한겨울에 홑베잠뱅이를 걸치고도 감기 한번 앓지 않던 막내였던지라 속이 덜컥해난 부모는 여기저기 병원들을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알수 없었다.한일룡은 《예방주사》를 맞은 후부터 자주 앓았고 키도 더 자라지 못하였다.
그 주사약에 깃든 흉계는 시일이 흐른 뒤에야 알려지게 되였다.병원에서 일하는 한 조선사람을 통해 왜놈들이 한일룡에게 놔준 그 주사약이 성장발육을 억제시키는것이며 주사를 맞고도 아이가 다른 일이 없이 계속 튼튼하게 자라면 독주사를 놓아 아예 없애치우기로 하였다는것을 알게 된 마을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일제놈들의 책동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놈들은 마을뒤산에 올라가 정기를 막는다고 하면서 쇠말뚝까지 박았다.
마을사람들은 일제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었다.허나 나라없던 그 세월 어디에 가서 놈들의 만행을 하소하랴.…
원장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데 김용란동무가 《저기 아버님이 오십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대문이 열리더니 한일룡로인이 마당에 들어섰다.수십년전이나 다름없는 120㎝정도의 작은 키, 다른것이 있다면 머리의 흰서리와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뿐이였다.
로인의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아이나 다름없는 자기의 신체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덜 미치는 오솔길을 찾아다녔다는 이야기며 일생 목욕탕에도 못가고 겨울이면 집에서 함지목욕을 하고 여름이면 한밤중에 개울에 나가 몸을 씻군 하였다는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가슴아프게 되새겨졌다.
한일룡로인은 목갈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사실 죽자고 모진 마음을 먹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수다.하지만 그때마다 네가 목숨을 끊으면 좋아할건 쪽발이놈들뿐이라고 하던 부모님과 형들의 당부가 떠올라 강잉히 마음을 다잡군 했습니다.나를 종신불구자로 만들고 내 인생을 망쳐놓은 왜놈들을 이 손으로 탕쳐죽일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우리는 그의 모습을 처절한 아픔속에 바라보았다.
《백발소년》, 결코 한 인간의 불우한 인생이 비낀 부름만이 아니였다.우리 민족을 멸살시키기 위해 미쳐날뛴 일제의 야수성과 잔인성에 대한 진실한 고발이며 수십년세월 쌓이고쌓인 증오와 복수의 대명사였다.
정녕 한일룡로인처럼 영원히 아물수 없는 상처를 안고 일생 분노로 가슴을 태웠고 오늘도 원한에 떠는 수난자들이 이 땅에는 그 얼마나 많은가.
로인은 헤여지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나의 피눈물나는 과거사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해주시오.그래서 후대들이 왜놈들이야말로 얼마나 악독하고 비렬한 족속들인가를 잘 알고 복수의 칼날을 더 억세게 벼리도록 해주시오.》
《백발소년》의 피타는 목소리는 메아리를 일으키며 우리의 귀전에 계속 들려왔다.(전문 보기)
죄악의 력사는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
얼마전 일본의 도꾜에서 간또대지진때 무참히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추도문제와 관련한 모임이 있었다.
여기에서 일본의 한 작가는 《추도비는 희생자들과 마주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하는 출발점으로 된다.》라고 하면서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도꾜도 스미다구에는 간또대학살희생자들을 위한 추도비가 있다.작가의 말은 간또대학살만행을 정당화하는 주장이 아직도 울려나오고 추도비를 철거시키려는 우익단체들의 망동이 우심해지고있는것을 념두에 둔것이다.
인류력사에는 미국의 인디안살륙만행, 파쑈도이췰란드의 인종멸살행위 등 몸서리치는 만행들이 기록되여있다.하지만 간또대지진때 일제가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은 그 잔혹성에 있어서 가장 야수적인 민족배타주의적참살행위였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인 1923년 9월 1일 간또지역에서 리히터척도로 7.9의 강한 지진이 일어났다.10여개 도시들과 마을들이 불바다로 되고 숱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파괴적인 지진의 후과로 한지에 나앉은 주민들속에서 시급한 구제대책을 취하지 않는데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바빠맞은 일본당국은 민심의 분노의 화살을 재일조선인들에게 돌릴 음모를 꾸미였다.
《조선인이 방화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 《조선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집단방화하고있다.》라는 거짓여론을 내돌리고는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였다.이에 따라 군대, 헌병, 경찰 등 무장집단과 《자경단》, 《청년단》을 비롯한 우익깡패들이 총동원되였다.그리하여 2만 3 000여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무참히 학살당하였다.이것이 간또대학살만행의 진상이다.
간또조선인대학살, 그것은 일본반동들의 체질적인 민족배타주의와 사무라이고유의 잔인성과 야만성이 결합되여 빚어낸 대류혈참극이였다.
그에 대해 속죄의 감정을 품고있는 일본의 일부 량심적인 사람들에 의해 도꾜한복판에 추도비가 세워졌다.하지만 일본반동들은 령혼들을 위로하는 그 소박한 추도비마저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며 그것을 들어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여왔다.지난해만 놓고보아도 간또대학살만행 100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조선인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련이어 진행되자 우익깡패들은 《거짓력사를 후세에 남길수 없다.끊어야 한다.》라고 고아대며 란동을 부리였다.
당국의 태도는 더욱 파렴치하였다.
대학살만행과 관련한 국가적책임문제가 물망에 오르자 그를 모면하려고 실로 뻔뻔스럽게 놀아댔다.
집권자는 참의원 예산위원회회의에서 간또대지진당시 조선인학살문제에 대한 언급을 한사코 회피하였고 내각관방장관이라는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할수 있는 기록을 찾을수 없다.》, 《정부의 견해는 재판기록이 없어 현시점에서 파악하려고 하여도 곤난하다는것이다.》라고 뇌까렸다.
외상 역시 《사실관계를 파악할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력사의 진실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일본의 《도꾜신붕》은 《대진재와 학살, 현시대를 위해 교훈으로 삼으라》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선인학살은 결코 허구가 아니라고 하면서 민족배타주의적인 류언비어를 구실로 일본각지에서 관헌들과 《자경단》이 조선인들을 대대적으로 살해한 사실을 까밝혔다.그러면서 《무엇이 명백한 사실인가 하는것은 력사가들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뇌까리면서 과거죄악을 회피, 부정하려드는 당국자들을 비난하였다.
죄를 지었으면 그를 인정하고 사죄하는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일본은 보는바와 같이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조선인학살만행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죄배상은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고있다.피로 얼룩진 과거사를 지워버리지 못해 모지름을 쓰고있는 그자체가 침략의 력사를 답습하겠다는것이다.
일본반동들은 그 어떤 술책으로써도 력사의 한 페지에,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피맺힌 원한으로 남아있는 천인공노할 대학살범죄를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전문 보기)
세계평화교란자의 파렴치한 넉두리
얼마전 미국대통령 바이든이 나토가 조작된지 75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성명을 발표하였다.여기에서 그는 나토를 《세계력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동맹》으로 추어올리며 《우리가 더욱 강해질 때 세계는 보다 안전해진다는것을 우리모두가 알게 되였다.》라고 횡설수설하였다.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찬 역스러운 넉두리이다.세계제패를 위한 미국의 침략적인 대외정책, 동맹전략이 어떤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는가는 세상사람들이 다 알고있기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부터 2001년까지의 기간에만도 세계의 153개 지역에서 248차의 전쟁 및 무장분쟁이 발생하였는데 그중 미국이 일으킨것이 201차였다.절대다수이다.이것은 미국이야말로 침략과 략탈을 떠나 단 한시도 생존할수 없는 악의 제국이고 그 패권주의적인 정책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근본요인이라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지난 세기말엽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이 《21세기 미국의 계획》이라는것을 고안해낸적이 있다.그 내용을 보면 시기를 정함이 없이 앞으로 전쟁을 계속한다는것, 군비를 끊임없이 늘인다는것, 우주를 완전히 정복하고 차지한다는것, 미국의 리익에 맞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린다는것, 미국의 정책과 리익에 맞지 않는 국제협약이나 그 어떤 국제적협조도 거부한다는것, 국제무대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일방적으로 처리한다는것, 미국에 대한 도전과 위협을 막기 위해 각종 수단들을 리용한다는것 등이다.세계를 미국의 의도에 맞게 개조하겠다는것이 이 계획의 골자이다.
이 악마의 각본은 오늘도 여전히 실행되고있다.
로씨야의 한 언론은 《미국이 자기의 채무를 털어버리기 위해 도처에서 전쟁을 일으키고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난 수십년간 전지구적인 혼란이 일어났는바 그 주요한 원인은 미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가는 곳마다에서 전쟁을 일으켰기때문이라고 까밝혔다.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시기 기타 전쟁참가국들과는 달리 많은 리득을 챙긴 미국은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리윤을 추구하고있다고 주장하였다.
세계도처에서 힘의 불균형과 군사적대치상태를 조성하고 그것이 물리적충돌로 이어지게 하고는 《평화수호자》랍시고 뻐젓이 분쟁지역에 저들의 무력을 들이미는것은 미국의 상투적인 수법이다.이 악랄한 책동으로 하여 많은 나라들에서 사회정치적혼란과 경제침체, 피난민위기가 발생하고있다.행성의 평화가 엄중히 위협당하고 인류가 고통을 겪고있다.
참혹한 사태가 빚어지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쟁광신자들은 미국인들이 《오만하고 비타협적이며 무자비한 립헌적패권주의자》로 되여야 최고위층이 결심을 내릴 때 《일방적인 무력사용도 자유롭게 선택》할수 있다고 내놓고 떠벌이고있다.미국은 《특권적인 지위》를 가지고있고 《항상 정의의 편》에 서있기때문에 법적으로 구속되거나 자기가 서명한 국제조약들의 리행의무도 걸머지지 말아야 한다는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야말로 뿌리깊은 패권주의적야망, 파렴치한 오만성의 발로이다.미국의 한 력사가가 자기가 쓴 도서에서 주장했듯이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취하는 행동은 《제국적판도의 철면피성》이다.
바이든이 이번에 《나토의 단합》을 열성껏 력설하였는데 그것 역시 파렴치성의 극치이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닥치는대로 짓밟고 빼앗는 미국의 전횡으로 동맹국들까지 피해를 입는것이 례상사이다.미국은 정세긴장을 부추기고 공포를 조성하여 동맹국들을 저들의 리익에 비끄러매놓고 미국의 패권을 위해 복무하도록 하고있다.
미국은 저들의 쇠퇴를 모면하기 위해 나토성원국들이 군사비를 국내총생산액의 2%로 올릴것을 끈질기게 요구하여왔으며 우크라이나사태를 기화로 그 강도를 더욱 높이고있다.동맹국들이 자국민의 혈세를 더 많이 짜내여 값비싼 미국제무기들을 사게 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미국의 강요대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들을 넘겨준 적지 않은 나토성원국들은 부족되는 량을 채우기 위해 미국산무기를 구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더우기 미국은 하수인들의 궁색한 처지같은것은 안중에도 없이 통화팽창삭감법을 채택함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빠져든 동맹국들의 경제에 또다시 폭탄을 던지였다.
보는바와 같이 미국은 자기의 리해관계를 놓고는 추호의 타협도 모르는 승냥이같은 《벗》이다.
총적으로 말하여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고 혼란을 조성하는 장본인은 다름아닌 미국이다.시대착오적인 동맹전략에 집착하여 세계를 편가르기하고 이르는 곳마다에서 침략을 감행하고 분쟁을 사촉하는 미국의 망동은 명백히 행성의 평화를 파괴하는 범죄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살찌고 전쟁으로 유지되는 이 악의 제국은 바로 그 전쟁때문에 멸망의 시각을 맞게 될것이다.(전문 보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선희 외무상 담화
기시다 일본수상이 《랍치문제》를 또다시 언급하며 조일사이의 여러 현안해결을 위해 종래의 방침아래 계속 노력하겠다는 립장을 밝혔다.
현실을 애써 거부하고 외면하면서 실현할수 없는것,해결할것이 없는 문제에 집착하고 끝까지 고집하는 리유에 대하여 리해할수 없다.
우리는 일본이 말하는 그 무슨 《랍치문제》와 관련하여 해결해줄것도 없을뿐더러 노력할 의무도 없고 또한 그러할 의사도 전혀 없다.
다시한번 명백히 강조한다.
조일대화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며 우리는 일본의 그 어떤 접촉시도에 대해서도 허용하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의 주권행사를 방해하며 간섭하는데 대하여서는 항상 단호히 대응할것이다.
이것이 우리 공화국정부의 립장이다.
주체113(2024)년 3월 29일
평 양
崔善姫外相が談話発表
【平壌3月29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の崔善姫外相は29日、次のような談話を発表した。
日本の岸田首相が「拉致問題」にまたもや言及し、朝日間の諸懸案解決のために従来の方針の下、引き続き努力を続けるという立場を明らかにした。
現実をわざわざ拒否し、顔をそむけながら実現できないこと、解決すべきことのない問題に執着し、あくまで固執する理由について理解できない。
われわれは、日本が言ういわゆる「拉致問題」に関連して解決してやることもないばかりか、努力する義務もなく、またそのような意思も全くない。
再度明白に強調する。
朝日対話はわれわれの関心事ではなく、われわれは日本のいかなる接触の試みに対しても許さないであろう。
そして、日本がわれわれの主権行使を妨害し、干渉することに対しては常に断固と対応するであろう。
これが、わが共和国政府の立場である。(記事全文)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일본측은 25일 오후 내각관방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하여 랍치문제가 해결되였다는데 대해서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다는 립장을 명백히 하였다.
또한 저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 무슨 핵 및 미싸일현안이라는 표현을 꺼내들며 우리의 정당방위에 속하는 주권행사를 간섭하고 문제시하려들었다.
일본은 력사를 바꾸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며 새로운 조일관계의 첫발을 내디딜 용기가 전혀 없다.
해결될래야 될수도 없고 또 해결할것도 없는 불가극복의 문제들을 붙잡고있는 일본의 태도가 이를 말해준다.
최근에 여러차 주위의 이목을 끈 기시다수상의 조일수뇌회담관련발언은 자기의 정치적목적에 따른것이라고 볼수 있다.
사상최저수준의 지지률을 의식하고있는 일본수상의 정략적인 타산에 조일관계가 리용당해서는 안된다.
《전제조건없는 일조수뇌회담》을 요청하면서 먼저 문을 두드린것은 일본측이며 다만 우리는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 출발을 할 자세가 되여있다면 환영할것이라는 립장을 밝혔을뿐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태도를 다시한번 명백히 파악하였으며 따라서 결론은 일본측과의 그 어떤 접촉도,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것이다.
조일수뇌회담은 우리에게 있어서 관심사가 아니다.
주체113(2024)년 3월 26일
평 양
金與正党副部長が談話発表
【平壌3月26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労働党中央委員会の金與正副部長が26日、次のような談話を発表した。
日本側は25日午後、内閣官房長官の記者会見で、拉致問題がすでに解決されたとの主張は全く受け入れられないという立場を明白にした。
また、自分らと何の関係もないいわゆる核・ミサイルといった諸懸案という表現を持ち出して、われわれの正当防衛に属する主権行使に干渉し、それを問題視しようとした。
日本は、歴史を変えて地域の平和と安定を図り、新たな朝日関係の第一歩を踏み出す勇気が全くない。
解決不可能で、また解決することもない不可克服の問題に執着している日本の態度が、これを物語っている。
最近、数回にわたって周囲の耳目を集めた岸田首相の朝日首脳会談関連の発言は、自分の政治目的によるものであると見られる。
史上、最低水準の支持率を意識している日本首相の政略的な打算に、朝日関係が利用されてはならない。
「前提条件なしの日朝首脳会談」を要請して先に戸を叩いたのは日本側であり、ただわれわれは日本が過去に縛られず、新しい出発をする姿勢を取っているのなら、歓迎するという立場を明らかにしただけである。
わが政府は、日本の態度を今一度明白に把握したし、したがって結論は日本側とのいかなる接触にも、交渉にも顔を背け、それを拒否するであろう。
朝日首脳会談は、われわれにとって関心事ではない。(記事全文)
金與正党副部長が談話発表
【平壌3月25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労働党中央委員会の金與正副部長が25日、次のような談話を発表した。
先月、私は日本の岸田首相が国会で朝日首脳会談問題に意欲を示したことについて個人的な所見を述べたことがある。
最近も岸田首相は、異なるルートを通じて可能な限り早いうちに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国務委員長に直接会いたいという意向をわれわれに伝えてきた。
先日にも言ったように、朝日関係改善の新しい活路を開く上で重要なのは日本の実際の政治的決断である。
単に首脳会談に乗り出すという心構えだけでは不信と誤解でいっぱいになった両国関係を解決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のが、過ぎ去った朝日関係の歴史が与える教訓である。
日本が今のようにわれわれの主権的権利の行使に干渉しようとし、これ以上解決すべきことも、知るよしもない拉致問題に依然として没頭するなら首相の構想が人気取りにすぎないという評判を避けられなくなるであろう。
明白なのは、日本が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をあくまでも敵視して主権的権利を侵害する際には、われわれの敵と見なされて標的に入るようになるだけであって、決して友人にはなれ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心から日本が両国関係を解決し、われわれの親しい隣国になって地域の平和と安定を保障することに寄与したいなら、自国の全般利益に合致する戦略的選択をする政治的勇断を下すことが必要である。
公正で平等な姿勢でわれわれの主権的権利と安全利益を尊重するなら、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の自衛力強化はいかなる場合にも日本にとって安保脅威にならないであろう。
首相はわが政府の明白な立場を知った上で発言すべきである。
自分が願うからといって、決心したからといってわが国家の指導部に会うことができ、また会ってくれる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首相は知るべきである。(記事全文)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발표
최근 기시다 일본수상이 국회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조간의 현 상황을 대담하게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고 하면서 자기자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과 주동적으로 관계를 맺는것이 매우 중요하며 현재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계속 노력하고있다고 발언하였다고 한다.
나는 기시다수상의 발언과 관련하여 일본언론들이 조일관계문제에 대해 종전과는 다른 립장을 표시한것으로 된다고 평가한데 대해서도 류의한다.
기시다수상의 이번 발언이 과거의 속박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조일관계를 전진시키려는 진의로부터 출발한것이라면 긍정적인것으로 평가되지 못할 리유는 없다고 본다.
지금까지 일본이 이미 다 해결된 랍치문제나 조일관계개선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핵,미싸일문제를 전제부로 계속 들고나온것으로 하여 두 나라 관계가 수십년간 악화일로를 걷게 되였다는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일본이 시대착오적인 적대의식과 실현불가한 집념을 용기있게 접고 서로를 인정한 기초우에서 정중한 처신과 신의있는 행동으로 관계개선의 새 출로를 열어나갈 정치적결단을 내린다면 두 나라가 얼마든지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나갈수 있다는것이 나의 견해이다.
과거가 아니라 앞을 내다볼줄 아는 현명성과 전략적안목,그리고 정치적결단을 내릴수 있는 의지와 실행력을 가진 정치가만이 기회를 잡을수있고 력사를 바꿀수 있다.
일본이 우리의 정당방위권에 대하여 부당하게 걸고드는 악습을 털어버리고 이미 해결된 랍치문제를 량국관계전망의 장애물로만 놓지 않는다면 두 나라가 가까워지지 못할 리유가 없을것이며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수도 있을것이다.
다만 현재까지 우리 국가지도부는 조일관계개선을 위한 그 어떤 구상도 가지고있지 않으며 접촉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는것으로 알고있다.
앞으로 기시다수상의 속내를 더 지켜봐야 할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 개인적인 견해일뿐 나는 공식적으로 조일관계를 평가할 위치에 있지는 않다.
주체113(2024)년 2월 15일
평 양
金與正党副部長が談話発表
【平壌2月15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労働党中央委員会の金與正副部長は15日、次のような談話を発表した。
最近、日本の岸田首相が国会衆院予算委員会で、日朝関係の現状に照らし、大胆に現状を変えなければならない必要性を強く感じると述べ、自分自身が主体的に動いて、トップ同士の関係を構築すると述べ、現在、さまざまなルートで引き続き努力していると発言したという。
私は、岸田首相の発言に関連して、日本のメディアが朝日関係問題について従来とは異なる立場を示したことになると評価したことについても留意する。
岸田首相の今回の発言が、過去の束縛から大胆に脱して朝日関係を前進させようとする真意から発したものであるなら、肯定的なものに評価されない理由はないと思う。
今まで、日本がすでに解決済みの拉致問題や朝日関係改善とは何の縁もない核・ミサイル問題を前提に引き続き持ち出したことによって、両国関係が数十年間、悪化一路をたどるようになったことは誰もが認める事実である。
日本が、時代錯誤の敵対意識と実現不可能な執念を勇気をもって捨てて、相互を認めた基礎の上で丁重な振る舞いと信義ある行動で関係改善の新しい活路を切り開く政治的決断を下すなら、両国がいくらでも新しい未来を共に開くことができるというのが私の見解である。
過去ではなく、先を見通せる賢明さと戦略的眼識、そして政治的決断を下せる意志と実行力を持つ政治家だけが、機会を得ることができ、歴史を変えることができる。
日本が、われわれの正当防衛権について不当に言い掛かりをつける悪習を捨て、解決済みの拉致問題を両国関係展望の障害物としてのみ据えない限り、両国が親しくなれない理由がなく、首相が平壌を訪問する日もあり得るであろう。
ただ、現在までわが国家指導部は朝日関係改善のためのいかなる構想も持っておらず、接触にも何の関心もないと知っている。
今後、岸田首相の内心を見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であろう。
これはあくまでも、私個人の見解であって、私は公式に朝日関係を評価する立場ではない。(記事全文)
력사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일본의 군마현당국이 현립공원에서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추도비를 강압적으로 없애버린 폭거는 강제련행의 직접적피해자들과 그 후손들의 상처에 두번다시 칼질하는 용납 못할 반인륜적인 만행이다.
희생자들의 령혼을 모독하면서까지 추악한 과거를 가리워보려고 발광하는 비렬한 력사외곡망동은 마땅히 천벌을 받아야 할 일이다.
이 추도비는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과거 일제에 의해 강제련행되여 군마현에서 중세기적인 노예로동과 생죽음을 강요당한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을 추모하고 과거죄악을 반성하며 조일간의 우호를 념원하여 20년전에 세운 량심과 정의의 소박한 상징물이였다.
이번 사건은 편견과 증오, 차별이 성행하는 렬도의 어느한 구석에서 일어난 우발적인것이 아니라 군국주의망령과 극우민족주의가 검질기게 배회하는 일본의 정치풍토가 빚어낸 필연적인 귀결이다.
일본당국자들이 일개 지방당국의 판단이라고 딴전을 피우고있지만 사건의 배후를 조금만 들추어보아도 그 진위를 쉽게 가려볼수 있다.
사건을 강행주도한 군마현지사는 반공화국, 대조선적대감이 골수에 찬 극우익정객으로서 국회의원으로 있을 당시 우리 나라와 일본을 오가던 인도주의적사명의 화객선 《만경봉-92》호의 입항금지법조작에 앞장섰으며 지금도 렬도각지의 조선인희생자추도비들을 철거시키려고 책동하고있는 우익세력들과 결탁되여있다.
그리고 2014년 군마현의회가 추도비의 설치기간연장을 불허하는 결의를 채택하도록 조종한것은 일본최대의 우익조직으로 악명높은 《일본회의》의 지방의원련맹성원들이였다.
이 《일본회의》가 력사수정주의와 배타주의를 기본사조로 내들고 자기 소속의 국회의원간담회와 지방의원련맹을 통하여 중앙과 지방의 정치를 막후조종하고있으며 군마현의회의 40%이상에 달하는 의원들이 이 조직에 가담하고있다는것은 비밀이 아니다.
군마현당국이 2012년경부터 정치적발언이라고 걸고든 《강제련행》표현도 일본정부가 이미 2011년부터 력사교과서들에서 일체 사용금지령을 내린 핵심용어이다.
이 몇가지 사실만 련결시켜보아도 이번의 추도비철거사건은 우익보수사상으로 물들여진 일본의 시정배들이 교과서개악의 다음목표로 치밀하게 타산한 의도적인 력사외곡책동의 결과물이라고밖에 달리 말할수 없는것이다.
때문에 이번 사건이 시발점으로 되여 일본렬도 각곳에 잠들고있는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들의 령혼이 잇달아 란도질당할수 있는 매우 험악한 상황이 조성되고있으며 이 심상치 않은 광란의 전주곡이 내외의 분노를 더욱 끓게 하고있다.
일본의 위정자들은 발돋움을 해서라도 세상을 바로 보아야 한다.
력사는 지울수도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다.
가령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원자탄자료관이 문을 닫는다고 하여 일본이 당한 원자탄피해의 수난사가 없어지겠는가.오끼나와의 마부니언덕에 세워진 위령비가 철거된다고 하여 미군과의 격전에서 20만여명의 무고한 현민들이 목숨을 잃은 류혈의 력사가 사라지겠는가.
근대일본의 철학자 다나베 하지메는 《참회도로의 철학》에서 나쁜짓을 했다면 그것을 감출것이 아니라 자기가 한짓을 뉘우치고 반성함으로써만 옳바로 살아갈수 있다고 하였다.
일본의 우매한 위정자들은 선인들의 훈시에서 이제라도 리치를 깨달아야 할것이다.(전문 보기)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추도비의 강제철거는 절대로 용서받을수 없는 반인륜적폭거이다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 성명-
새해벽두부터 일본의 패덕한들이 우리의 가슴에 칼을 박는 미친짓을 벌리였다.
이미 보도된바와 같이 일본의 군마현당국은 내외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군마현립공원에 세워진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추도비를 강제철거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감행하였다.
이것은 지난날 일본에 의해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 희생과 손실을 강요당하고 아직도 그 아픔을 씻지 못한 우리 피해자들과 유가족들 아니 우리 인민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고 우롱이며 정의와 인륜을 짓밟는 야만적인 행위가 아닐수 없다.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안고 군마현당국의 망동을 반인륜적인 폭거로, 패륜패덕의 극치로 준렬히 규탄한다.
군마현의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추도비는 그 이름이 뜻하는바와 같이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 식민지지배의 억울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함께 평화와 우호에 대한 인류의 념원이 실린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의 비이다.
마땅히 법적, 사회적관심과 보호를 받아야 했고 그 누구보다도 나라와 지역의 정사를 맡은 당국이 먼저 나서서 세웠어야 할 비이지만 오히려 량심적인 일본시민들과 재일조선인들에 의해 세워지고 오늘까지 지켜져왔었다.
더우기 일본은 지난 세기 우리 나라를 불법강점하고 수백만의 조선사람들에게 강제련행과 강제로동, 일본군성노예의 고통을 강요하였으며 귀중한 목숨을 빼앗는 반인륜적범죄를 저지른데 대하여, 우리 나라와 우리 인민에게 천문학적수자의 정신문화적, 경제적피해를 준데 대하여 똑똑한 인정도 아무런 청산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슨 《정치적발언》이요, 《분쟁》이요 하는 당치않은 구실을 붙여 감히 추도비를 없애버렸으니 군마현당국의 행위가 도덕도 인륜도 모르는 깡패짓과 무엇이 다를바 있는가.
추도비강제철거야말로 지난 세기 일본이 저지른 반인륜적범죄의 진상과 그에 대한 자국민들의 죄의식을 지워버리고 우리와의 과거청산의무를 기어이 회피하며 나아가서 우리 공화국을 걸고 군사대국화의 야망을 실현해보려는 파렴치한 재침책동의 일환이다.
지금 일본우익반동들은 군마현뿐 아니라 도꾜의 요꼬아미공원에 세워진 간또대지진조선인희생자추도비를 비롯하여 다른 지방의 추도비들까지도 모두 철거시키려고 광기를 부리고있으며 총련과 우리 공화국을 해치는짓이라면 그 무엇도 가리지 않고있다.
부언하건대 비나 하나 없앤다고 일본의 범죄행적이 가리워지는것이 아니며 전범국의 지위가 달라지는것은 더더욱 아니다.
추도비강제철거는 일제의 강제련행범죄의 억울한 희생자들을 두번다시 학살하는 천추에 용서받지 못할 대죄이며 그 죄는 무엇으로써도 씻을수 없다.
군마현당국은 이제라도 리성과 분별을 되찾고 우리 강제련행피해자들과 유가족들, 모든 관계자들앞에 진심으로 사죄하여야 하며 추도비원상복구에 스스로 발벗고나서야 할것이다.
우리는 군마현당국은 물론 일본이 세기를 두고 우리 나라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온갖 죄악에 대하여 끝까지 결산할것이다.
주체113(2024)년 2월 6일
평 양
朝鮮人強制連行犠牲者追悼碑の強制撤去は絶対に許されない反人倫的暴挙 朝鮮人強制連行被害者・遺族協会
【平壌2月7日発朝鮮中央通信】先日、日本の群馬県当局は内外の強力な抗議にもかかわらず、群馬県立公園に設置された朝鮮人強制連行犠牲者追悼碑を強制撤去する天人共に激怒する犯罪を働いた。
朝鮮人強制連行被害者、遺族協会は6日、声明を発表して群馬県当局の妄動を反人倫的な暴挙、不倫・背徳の極致として峻烈に糾弾した。
声明は、次のように強調した。
追悼碑の強制撤去こそ、20世紀に日本が働いた反人倫的犯罪の真相とそれに対する自国民の罪意識を消してしまい、われわれとの過去清算義務をどうしてでも回避し、ひいてはわが共和国にかこつけて軍事大国化の野望を実現してみようとする破廉恥な再侵略策動の一環である。
現在、日本の右翼反動勢力は群馬県だけでなく、東京の横網公園にある関東大震災朝鮮人犠牲者追悼碑をはじめ、他の地方の追悼碑までも全て撤去させようと狂奔しており、総聯(在日本朝鮮人総聯合会)とわが共和国を害することなら、何も選ばずにいる。
付言するが、碑を一つなくすとして日本の犯罪の行跡が覆われるのではなく、戦犯国の地位が変わるのではない。
追悼碑の強制撤去は、日帝の強制連行犯罪の無念の犠牲者を再び虐殺する千秋に許されない大罪であり、その罪は何によってもすすげない。
群馬県当局は、今からでも理性と分別を取り戻し、われわれの強制連行被害者と遺族、全ての関係者に心から謝罪すべきであり、追悼碑現状復旧に自ら進んで乗り出すべきであろう。
われわれは、群馬県当局はもちろん、日本が世紀をまたいでわが国とわが人民に働いたあらゆる罪悪に対して最後まで決算するであろう。(記事全文)
과거범죄를 부정하고 조선인희생자들을 모독하는 용납못할 파쑈적폭거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2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
얼마전 일본 군마현당국이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추도비를 강제철거하는 파쑈적폭거를 감행하였다.
이 추도비는 과거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죄행을 기억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며 아시아의 평화와 조일간의 우호를 도모할것을 념원하여 2004년 4월 군마현립공원에 세워진것으로서 근 20년간 력사의 교훈을 전하는 상징물로 되여왔다.
그러나 현당국은 2012년 추도비앞에서 진행된 추도모임과정에 《강제련행》발언이 있은것을 《정치적중립성의 상실》,《설치목적위반》 등으로 걸고들면서 추도비의 설치허가기간갱신을 거부하고 철거처분을 결정하였다.
이에 항의하는 총련과 일본 시민사회의 거세찬 투쟁으로 지난 기간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던 군마현당국은 올해에 들어와 급기야 《행정대집행》이라는 강제적인 방법으로 끝끝내 추도비를 없애버리고야말았다.
이것은 우리 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많은 나라와 민족들에 커다란 고통과 불행을 들씌운 일제의 과거죄행을 부정하고 식민지통치를 미화하는 비렬한 망동이며 강제련행의 직접적피해자들과 그 후손들의 상처에 두번 다시 칼질하는 용납못할 반인륜적인 만행이다.
지난세기 우리 인민을 상대로 감행한 일본의 강제련행,강제로동범죄는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
일제는 1938년 4월 1일 침략전쟁에 요구되는 인적,물적자원을 강제로 동원하기 위하여 《본법의 시행은 외지(식민지나라들)에도 적용한다.》는 날강도적인 문구를 박아넣은 《국가총동원법》을 조작공포한데 이어 《국민징용령》,《장년전원에 대한 징용령》,《녀자정신대근로령》 등 악법들을 조작개정하여 우리 인민들을 나이,성별에 관계없이 강제련행,랍치하여 죽음의 고역장들에 내몰았다.
군마현에만 하여도 군수공장,지하공장,비행장,발전소,광산 등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강제련행되였으며 많은 조선인들이 가혹한 로동과 비참한 생활을 강요당하다가 억울하게 이국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범죄에 대해 배상하며 과거의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것은 가해당국의 법적의무이며 응당한 도리이다.
그러나 군마현당국은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추도비를 강제철거하는 천만부당한 망동으로 저들의 반력사적이고 반인륜적인 진면모,복수주의야망을 그대로 드러냈다.
더욱 엄중시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이번 사건을 주도,지휘한 군마현지사가 대조선적대감이 골수에까지 들어찬 악질적인 극우익정치가로서 도꾜에 있는 간또대진재조선인희생자추모비를 비롯한 렬도각지에 설치되여있는 추도비들을 철거시키려고 책동하고있는 배후세력과 결탁되여있다는것이다.
과거를 덮어버리려는것은 그것을 되풀이하려는것이다.
지금 총련과 재일동포들,일본의 정당,사회단체들은 이 부당한 폭거를 단호히 규탄하면서 추도비의 복원을 요구하는 투쟁을 강력히 벌리고있다.
군마현당국은 내외의 참을수 없는 분노를 폭발시킨 현 사태가 초래하게 될 후과를 숙고해야 하며 당장 추도비를 복원해야 한다.
군마현당국은 파쑈적폭거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전문 보기)
過去の犯罪を否定し、朝鮮人犠牲者を冒涜する許せないファッショ的暴挙 朝鮮中央通信社論評
【平壌2月6日発朝鮮中央通信】先日、日本の群馬県当局が朝鮮人強制連行犠牲者追悼碑を強制撤去するファッショ的暴挙を働いた。
この追悼碑は、過去、日帝が朝鮮人民に犯した罪科を記憶し、心から反省し、アジアの平和と朝日間の友好を図ることを願って2004年4月、群馬県立公園に建てられたもので、ほぼ20年間、歴史の教訓を伝える象徴物となってきた。
しかし、県当局は2012年、追悼碑の前で行われた追悼式で「強制連行」の発言があったことを中立的な性格を失った、(設置)条件に反した、などと言い掛かりを付けて追悼碑の設置許可期間の更新を拒否し、撤去処分を決定した。
これに抗議する総聯(在日本朝鮮人総聯合会)と日本の市民社会の激しい闘いによってこれまで目的を達成できなかった群馬県当局は、今年に入ってついに「行政代執行」という強制的な方法で追悼碑を撤去してしまった。
これは、わが国をはじめとするアジアの多くの国と民族に大きな苦痛と不幸を浴せかけた日帝の過去の罪科を否定し、植民地支配を美化する卑劣な妄動であり、強制連行の直接的被害者とその子孫を再び傷つけた許せない反人倫的な蛮行である。
20世紀に、わが人民を相手にして働いた日本の強制連行、強制労働の犯罪は、絶対に覆い隠せない。
日帝は1938年4月1日、侵略戦争に必要な人的・物的資源を強制に動員するために、本法の施行は外地(植民地諸国)にも適用するという白昼強盗さながらの文句を記した「国家総動員法」をつくり上げて公布したのに続いて、国民徴用令、壮年全員に対する徴用令、女子挺身隊勤労令などの悪法をつくり上げ、改正して、わが人民を年齢、性別を問わず強制連行、拉致して死の苦役場に駆り出した。
群馬県にだけでも、軍需工場、地下工場、飛行場、発電所、鉱山などに数千人の人々が強制連行されたし、多くの朝鮮人が過酷な労働と悲惨な生活を強いられ、無念に異国の地で命を落とした。
犠牲者を追悼し、犯罪に対して賠償し、過去の不幸が繰り返されないようにするのは、加害当局の法的義務であり、当然な道理である。
しかし、群馬県当局は朝鮮人強制連行犠牲者追悼碑を強制撤去する不当極まりない妄動で、自分らの反歴史的かつ反人倫的な真面目、報復主義野望をそのままさらけ出した。
特に重大視せざるを得ないのは、今回の事件を主導、指揮した群馬県知事が対朝鮮敵対感が骨髄にまで徹している悪質な極右政治家で、東京にある関東大震災朝鮮人犠牲者追悼碑をはじめ列島の各地に設置されている追悼碑を撤去させるために策動している背後勢力と結託していることである。
過去を覆い隠そうとするのは、それを繰り返そうとすることである。
現在、総聯と在日同胞、日本の政党、社会団体はこの不当な暴挙を断固糾弾し、追悼碑の復元を求める闘いを強力に繰り広げている。
群馬県当局は、内外の我慢できない憤怒を爆発させた今回の事態が招くことになる悪結果について熟考すべきであり、直ちに追悼碑を復元しなければならない。
群馬県当局は、ファッショ的暴挙の責任から絶対に逃れられない。(記事全文)
절대로 용납될수 없는 반인륜적폭거
일본의 군마현당국이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있던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추도비를 끝끝내 강제철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추도비는 현의 한 시민단체가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일본의 군수공장들과 광산들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조선사람들의 령혼을 위로할뿐 아니라 당국이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가해의 력사를 기억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며 다시는 되풀이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2004년에 세운것이다.
그런데 군마현당국은 추도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속에서 울려나온 《조선인강제련행사실을 고소하려고 한다.》는 등의 발언들이 정치적인 색채를 띤다고 걸고들면서 추도비철거령을 내리고 해당 시민단체에 그 집행을 끈질기게 강요해왔다.그러던 끝에 추도비를 행정대리집행으로 철거할것을 결정하고 강행하였다.
경악을 자아내는 군마현당국의 무지몰각한 행태는 피로 얼룩진 과거의 죄악사를 옳바르게, 진지하게 대할데 대한 일본의 진보적인민들과 우리 총련, 우리 전체 조선인민의 강한 요구에 로골적으로 도전해나선 망동이며 절대로 용납될수 없는 반인륜적폭거이다.
20세기전반기 특히 태평양전쟁시기 일본의 전쟁경제, 군수공업이 조선사람들의 피와 땀, 죽음을 밑거름으로 가동하였다는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조선청장년들의 존엄과 인권을 말끔히 빼앗고 그들을 본토로 끌고가 노예처럼 부려먹고 실컷 쓰고 내버리는 도구처럼 리용하다가 마구 학살한 일본의 과거범행은 그 무엇으로도 씻을수 없는 만고죄악이다.
군마현에도 조선사람들을 상대로 감행한 일본의 죄악이 서려있다.
간또대지진때만도 이 현에서 적지 않은 조선사람들이 일본살인범들에 의해 야수적으로 학살당하였다.현의 후지오까에서는 톱을 가지고 조선사람의 목을 잘라죽이고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여 밟아죽이는 등 치떨리는 살륙만행들이 거리낌없이 감행되였다.
군마현당국은 지난날 일본이 저지른 반인륜적범행에 대한 심각한 반성의 견지에서 보나 인도주의적견지에서 보나 이 추도비의 유지와 관리에 응당한 관심을 돌리고 해당한 조건을 보장해주었어야 할것이였다.
하지만 군마현당국은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추도비의 건립문제가 상정될 때부터 체질화된 비인간성과 대조선적대감을 음으로양으로 드러내놓았다.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추도비를 건립하는 회》가 결성되고 구일본군의 화약공장의 자취가 남아있는 현립공원의 한 구획을 부지로 제공해줄데 대한 신청이 제기되였을 때에는 도시공원법의 제약이 있어서 어렵다고 왼새끼를 꼬았으며 신청단체의 이름도 《로무동원조선인희생자추도비를 건립하는 회》로 바꿀것을 강요하였다.《일본에 강제련행된 사람들은 100만명을 훨씬 넘었다.》는 문구가 들어있는 비문의 초안이 제출되였을 때에는 모집, 관알선, 징용이라는 말도 있는데 어떤것을 강제련행이라고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기록도 없고 규모도 명확하지 않아 정부로서는 강제련행이라고 파악하지 않고있다는 견해이다, 정부가 인정하지 않고있기때문에 인정할수 없다고 하면서 비문의 내용을 고치라고 압력을 가하였다.결국 초안에서 력사적경위가 삭제된것이 그대로 비문에 새겨지게 되였으며 단체의 이름도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회》(《지키는 회》)로 바뀌여졌다.
일은 이것으로 끝난것이 아니다.군마현당국은 추도행사가 진행될 때마다 끼여들어 그 무슨 정치행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참가자들에게 정신적압박감을 주었으며 행사에서 《강제련행》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것을 정치적발언이라고 트집잡아 설치허가기간도 갱신해주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행태가 군마현에만 국한된것이 아니며 일본당국의 묵인비호하에 렬도의 곳곳에서 뻐젓이 감행되고있다는것이다.
일제의 마쯔시로대본영이 있던 나가노현에서 설명판에 새긴 강제련행이라는 문자가 지워진것, 나라현에서 조선인강제련행과 일본군《위안소》가 있었다고 씌여져있는 설명문이 철거된것을 비롯하여 일본의 전국각지에서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시대에 있었던 력사적사실들을 없애버리려는 움직임이 공공연히 자행되고있다.일본당국은 이런 불순한 행위들을 못본척, 못들은척 하고있다.
어떻게 하나 과거죄행을 은페하고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미화분식해보려는 비렬한 행위이며 강제련행의 직접적피해자들과 그 후손들의 상처에 칼질을 해대는 비인도적처사이다.
일본은 과거죄악을 덮어버리려고 비렬하게 놀아댈수록 우리 인민의 분노도 그만큼 격앙된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전문 보기)
《조선학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그만두라!》 -재일동포들 항의행동 전개-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고등학교지원제도의 적용을 요구하는 금요행동이 15일 일본 문부과학성앞에서 진행되였다.
조선대학교와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 교원들과 학부모들을 비롯한 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알려진바와 같이 반공화국적대시책동에 피눈이 되여 날뛰는 일본반동들은 2010년부터 오늘까지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유독 조선학교만을 완전히 배제시키고있다.
그동안 재일동포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당국의 부당한 차별책동에 맞서 항의행동을 벌려왔다.
500번째로 진행된 이날의 항의행동에서 참가자들은 간또대지진당시 일제가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 100년, 재일동포들의 4.24교육투쟁 75년, 일본의 조선학교차별행위 1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집요하게 감행되고있는 일본당국의 조선인차별책동을 규탄하고 민족교육을 보장할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당국의 차별속에서도 가슴펴고 살아갈 힘을 안겨주고 조선사람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준 민족교육을 후대들에게 이어줄 의지를 표명하였다.
아이들을 공격하는 일본정부의 차별정책은 용납할수 없다고 하면서 그들은 학생들의 배움의 권리가 차별없이 보장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투쟁해나갈것을 호소하였다.
조선인차별행위의 근원은 바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청산되지 않은데 있다고 규탄하고 그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그만두라!》,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지원제도를 적용하라!》 등의 구호들을 웨쳤다.
앞서 항의행동참가자들은 문부과학성에 대한 요청활동을 벌렸다.
항의행동에 참가한 한 학생은 당연히 보장되여야 할 권리가 실현되지 못하는 일본사회에 대한 분노를 금할수 없다, 금요행동이 앞으로 1 000번을 넘어 계속되더라도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해 힘차게 투쟁해나갈것이다고 말하였다.
항의행동참가자들은 일본내각부와 문부과학성에 요청문을 보내여 일본당국이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차별행위를 당장 철회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