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설 : 불타는 애국의 의지를 새겨주는 6.15통일시대
어버이장군님을 뜻밖에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으로 온 겨레가 오열을 터뜨리던 피눈물의 12월을 맞이한 우리 겨레는 장군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백두산대국의 위대한 영상이신 김정일대원수님의 불멸의 업적을 심장속에 깊이 새겨안는다.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채택으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을 이룩해나가는 환희의 6.15통일시대를 열어주신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시대와 민족앞에 쌓아올리신 특출한 업적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선군정치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정책과 민족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6.15북남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채택공포됨으로써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이 열리게 되였습니다.》
6.15통일시대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과 탁월하고 세련된 령도를 떠나서는 결코 생각할수 없다.위대한 장군님께서 21세기를 민족사의 새시대,평화와 통일,민족번영의 시대로 빛내이실 확고한 의지를 지니시고 애국의 대용단을 내리시여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진행하시고 6.15공동선언을 마련하여주심으로써 자주통일의 새 력사가 시작되게 되였다.6.15공동선언의 발표는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새로운 신심과 희망을 안겨준 민족적경사였으며 통일운동에서 획기적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은 일대 사변이였다.
6.15통일시대는 조국통일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으로,사상과 정견,소속의 차이를 초월하여 광범한 각계층 인민들을 망라한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대발전시켰다.6.15와 8.15 등 주요계기들에 북과 남,해외의 여러 단체와 인사들이 평양과 금강산,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를 열고 겨레의 통일의지를 힘있게 과시하였다.6.15이후 북과 남,해외의 부문별,계층별통일운동도 활발히 진행되여 6.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북남로동자들의 통일대회를 비롯하여 북과 남의 농민,청년학생,녀성,학자,언론인,문화인,종교인들의 계층별통일대회들과 상봉모임,토론회가 광범히 벌어졌다.북과 남의 작가들이 2005년 처음으로 평양에 모여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를 진행한데 이어 그 다음해에는 6.15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되였다.특히 2005년 3월 북과 남,해외의 정당,단체,인사들을 폭넓게 망라한 전민족적통일운동기구인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6.15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되여 우리 민족은 겨레의 통일지향과 의지를 하나로 결합시킬수 있는 강력한 조직적추진체를 가지게 되였으며 북과 남,해외의 3자련대를 적극화하면서 시대의 전진을 힘있게 추동해나갔다.
6.15통일시대는 북남관계에서 획기적인 전진을 가져왔다.6.15가 열어준 길로 2000년 8월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이어 조선로동당창건 55돐을 계기로 남조선의 14개 정당,단체 대표들과 각계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하였다.특히 2000년 9월 남조선의 철창속에서 신념과 의지를 지켜싸운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공화국의 품에 안긴것은 6.15가 안아온 또 하나의 사변이였다.2002년 9월 우리의 대규모선수단과 응원단이 부산에 나가 남조선땅을 뒤흔들어놓았는가 하면 2003년 제주도에서 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이 성대히 개최되고 백두산과 한나산에서 채화된 성화가 하나로 합쳐져 부산과 제주도의 경기장봉화대에 통일의 홰불로 타올라 온 겨레를 격동시키였다.
6.15이후 북남사이에 체육분야에서의 교류도 활발해졌으며 우리 국립교향악단의 서울공연,남조선의 《KBS》교향악단과 《MBC》공연단의 평양방문공연을 비롯하여 북남예술인들의 합동공연과 합동연주회 등 통일음악무대들도 펼쳐졌다.2005년에는 수많은 남녘동포들이 평양에서 성대히 진행되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였고 남조선의 한 녀성이 평양산원에서 딸을 낳은 기쁜 소식도 전해졌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