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안겨준 고마운 품

2025년 6월 22일《로동신문》

당은 나의 어머니

 

우리 집에는 지금으로부터 60여년전 천리마동상제막식에 참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의 아버지 오성삼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는 력사적화폭을 담은 영상사진문헌이 정중히 모셔져있다.

집안의 제일 소중한 가보로 되고있는 이 영상사진문헌앞에 서면 나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아버지와 우리 가정에 안겨주신 사랑과 은정에 대한 생각으로 눈굽이 뜨거워오른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은 앞으로도 무한한 활력과 왕성한 열정으로 인민을 위해 정을 다하는 헌신의 당, 변함없는 어머니당으로 자기의 무겁고도 성스러운 사명을 다해나갈것이며 어떤 천지풍파가 닥쳐와도 인민들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자기의 본분에 무한히 충실할것입니다.》

1961년 4월 15일, 수도 평양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49돐을 맞으며 천리마동상제막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이날 제막식장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조각분과위원장 겸 조각창작단 단장이였던 아버지를 비롯하여 천리마동상제작에 참가하였던 조각가들을 자신의 곁으로 불러주시였다.그들과 함께 천리마동상을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단히 수고하였다고, 조각을 잘한데도 의의가 있지만 우리의 위력을 시위하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은 다 영웅들이라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평범한 조각가들을 영웅이라고 값높이 불러주시며 온 세계앞에 우리 인민의 영웅적기상을 보여줄수 있는 기념비가 태여났다고 그리도 기뻐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을 우러르던 그 순간은 아버지의 한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였다.

돌이켜보면 나의 아버지는 나라없던 그 세월 가난한 소작농의 가정에서 태여나 갖은 천대와 멸시속에 살아오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신 후에야 그리도 소원하던 조각창작의 세계에 뛰여들었다.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총을 잡고 전선에 달려나갔던 아버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승리할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며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소환되여 미술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재능의 나래를 활짝 꽃피웠다.정녕 아버지가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명작들을 창조해나가는 조각가로 성장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품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지를 비롯한 조각가들을 영웅이라고 불러주시며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으니 그때의 환희와 감격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었겠는가.아버지는 그날 한생토록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해갈 충성의 결의, 영원히 우리 당만을 믿고 따르려는 신념의 맹세를 더욱 굳게 다지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버지에 대한 당의 믿음은 더더욱 커만 갔다.

우리 나라에서 첫 혁명전통주제의 대기념비인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을 건립할 때 아버지는 또다시 그 영예로운 사업에 참가하게 되였던것이다.

하지만 당시 당안에 기여들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직권을 악용하여 기념탑의 제작을 반대해나섰다.

그자들은 창작현장에 나타나 기념탑의 명칭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였고 지어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모시지 못하게 하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였다.

허나 아버지를 비롯한 조각가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권위와 위신을 훼손시키려는 그자들의 《지시》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의 창조과정은 곧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고 백두의 혁명전통을 고수하기 위한 심각한 투쟁과정이였다.

당시 아버지에게는 붉은 천으로 정히 뚜껑을 씌우고 그우에 《공산주의를 향하여》라는 글발을 새긴 한권의 책이 있었다.아버지는 그 책에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날자와 수령님으로부터 받아안은 교시들을 자자구구 새겨넣고 조각창작사업에 철저히 구현하기 위하여 불같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러한 아버지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긴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당의 령도를 거부하였다는 천만부당한 궤변을 내대며 아버지를 현직에서 해임하여 어느한 광산으로 내려보내였다.놈들의 책동으로 하여 아버지는 더는 조각창작사업을 할수 없게 되였지만 당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간직하고 묵묵히 맡은 일에 헌신하였다.

그때로부터 몇년후 위대한 장군님의 천재적예지와 정력적인 령도에 의해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훌륭히 건립되였다는 소식에 접했을 때 아버지는 크나큰 감격에 휩싸여 어쩔바를 몰라하였다.그러면서도 종파놈들때문에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갈 력사적인 기념비의 건립사업에 끝까지 참가하지 못한것을 두고 못내 가슴아파하였다.

이렇게 20여년세월 괴로움속에 모대기던 아버지의 운명을 재생의 길로 손잡아 이끌어준것은 당의 은혜로운 품이였다.

당에서는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책동에 의하여 아버지가 억울함을 당한 사연을 구체적으로 료해하고 아버지가 들쓰고있던 오명을 벗겨주었다.

그로부터 몇년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가족에게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을 수여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아버지와 우리 가정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내가 2008년에 출판된 회상실기도서 《인민들속에서》의 제75권에 《천리마동상이 시대의 기념비로 솟아오르기까지》라는 제목으로 된 아버지의 회상실기를 싣도록 하여주신데 대한 다함없는 고마움을 담아 삼가 편지를 올리였을 때 편지의 첫장에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친필을 새겨주시였다.

참으로 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변함없이 이어지는 그 사랑과 은정이 있어 아버지의 한생은 우리 당과 인민의 추억속에 영원히 빛나게 되였다.

천리마동상이 이 땅에 솟아오른 때로부터 이제는 어느덧 60여년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오늘도 여전히 천리마동상을 조각한 창작가의 한 사람으로 살아있다.그것은 흘러가는 세월이 아버지에게 준 영예와 긍지가 아니다.

한번 품어안은 자식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 삶을 빛내여주고 시련을 겪을 때에는 마음속상처까지도 깨끗이 가셔주며 지어 죽어서도 영생하는 삶을 안겨주는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품에서만 받아안을수 있는 특전이고 영광인것이다.

함흥시 동흥산구역 운흥2동 10인민반 오기동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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