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날 《맨발소년》의 인생총화 -한 전쟁로병의 수기집을 펼치고-

2025년 4월 23일《로동신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은 인민들에게 참된 삶과 행복을 안겨주는 진정한 조국입니다.》

며칠전 만경대구역 선내동에서 살고있는 라의천전쟁로병의 집을 찾았던 우리는 한권의 색바랜 수기집을 마주하게 되였다.갈피마다에 피맺힌 과거와 함께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국의 한치땅을 지켜 1211고지에서 대대장으로 용감히 싸운 위대한 전승세대의 넋이 력력히 살아숨쉬는 수기집이였다.

올해 나이가 95살인 로병의 수기집 첫장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해방전에 사람들은 나를 부모가 지어준 이름으로가 아니라 〈맨발소년〉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렀다.》

그의 고향은 오늘의 평안북도 피현군이다.산골마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난 라의천로병은 일찌기 부모를 잃고 잔뼈가 채 굳기도 전에 지주집머슴으로 팔려갔다.

지주집에서 그에게 차례진것이란 짐승보다 못한 생활이였다.바쁜 농사철에는 어른들과 꼭같이 논밭에서 등뼈가 휘도록 일을 했고 여가시간에는 들판에서 소를 방목해야 했으며 해질 때는 꼴단을 한짐 지고 들어오고 해뜨기전 어뜩새벽에는 남먼저 일어나 집짐승먹이를 끓여야 했다.

어느날 고된 머슴살이에 시달리던 그는 더는 참을수가 없어 남몰래 지주집 담을 넘어 도망쳤다.

그러나 나라없던 세월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그에게 차례진것은 천대와 멸시, 추위와 굶주림뿐이였다.고정된 잠자리는커녕 한겨울에도 몸에 걸칠 옷 한벌 변변한것이 없었기에 그는 남들이 다 신는 짚신마저도 신을수가 없었다.그러다보니 그에게는 이름대신 《맨발소년》이라는 별명이 붙어다니게 되였다.

엄동설한에도 다 해져 살이 드러난 옷을 입고 신발도 신지 못한채 거리를 헤매는 그의 발은 늘 동상을 입어 험하게 부르텄고 온몸은 성한데가 하나도 없었다.

매일과 같이 남의 집앞에서 밥을 동냥하고 거처할 곳이 없어 한지에서 쪽잠을 자야만 하는 어린 그에게 있어서 제일 그리운것은 부모의 사랑이였고 포근한 잠자리와 따끈한 밥 한그릇이였다.

어느해 설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그는 하루종일 동냥을 다니다가 허기져 남의 집 처마밑에 쓰러지고말았다.그런데 새 신발에 새옷을 떨쳐입고 연을 날리며 히히닥거리던 부자집자식들이 험상하게 된 그의 맨발을 보며 놀려대기 시작하였다.

그는 명절의 하루를 눈물로 보내였다.일찌기 돌아간 부모가 그리워 울었고 자그마한 발에 짚신조차 신을수 없는 저주로운 세상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였다.

이렇게 한해두해 세월이 흘러 15살 나던 해에 드디여 그의 운명은 극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찾아주시였던것이다.해방된 조국은 헐벗고 굶주리던 그에게 새옷과 신발, 따뜻한 보금자리를 안겨주었을뿐 아니라 배움의 길도 활짝 열어주었다.

난생처음 사람대접을 받으며 꿈같은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그는 방송에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이 침략전쟁준비에 광분하고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다.놈들의 책동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증오의 피가 끓어번지고 눈앞에는 해방전의 피눈물나는 생활이 생생히 떠오르군 하였다.

어린 나이에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해야만 했던 한많은 세월, 자기를 놀려대는 부자집자식들에게 항변 한마디 못하고 눈물만 흘려야 했던 세상…

망국노의 설음과 조국의 귀중함을 실생활로 뼈저리게 체험했기에 그는 용약 손에 총을 잡고 조국보위초소에 섰다.

그로부터 몇년후 이 땅에 전쟁의 불구름이 밀려왔다.라의천로병은 수기에서 가렬처절하였던 전화의 나날에 대해 이렇게 회상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은 침략자들과의 판가리결전인 동시에 위대한 수령님의 품, 우리의 공화국이야말로 내 삶의 전부이고 행복의 요람이라는것을 더욱 사무치게 절감하게 한 나날이였다.》

제2전선부대에서 싸우던 어느날 로병은 뜻밖의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적후에서 활동하는 제2전선부대 장병들에게 사랑의 솜옷과 내의, 신발 등을 보내주시였던것이다.

해방전 나라가 없었던탓에 《맨발소년》으로 불리우며 갖은 천대와 멸시속에 살아온 그는 가렬한 전화의 나날 그것도 적후에서 자애로운 어버이사랑이 어린 두툼한 솜옷과 신발을 받아안고 솟구치는 격정으로 눈굽을 뜨겁게 적시였다.

그후 라의천로병은 대대장으로 임명되여 1211고지방위전투에 참가하게 되였다.

로병은 그때를 돌이켜보며 수기에 이렇게 썼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파도식공격을 가해오는 원쑤놈들을 볼 때마다 치솟는 증오심을 금할수 없었다.목숨보다 소중한 품, 고마운 조국을 빼앗고 또다시 노예살이를 강요하려는 원쑤들을 절대로 용서할수 없기에 우리 대대의 전체 전투원들은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싸움으로써 조국의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로병은 1211고지를 지켜싸우는 나날 화선입당의 영예를 지니고 3개의 국기훈장을 수여받았다.

로병은 전후에도 혁명의 군복을 벗지 않고 조국수호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왔다.…

로병의 수기는 길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였다.

로병은 오늘도 자손들을 비롯한 새세대들에게 수기집을 자주 펼쳐보이며 이렇게 이야기하군 한다.

《조국은 목숨보다 귀중하다.조국이 있고야 가정의 행복도, 꿈과 희망도 있음을 가슴깊이 새기고 고마운 사회주의제도를 목숨바쳐 지켜야 한다.이것은 내가 한생을 살아오면서 실체험으로 간직한 진리이며 전세대로서 후대들에게 하고싶은 당부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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