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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8.개선 회고록《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 제 24 장 거족적인 반일항전으로
김일성동지회고록《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
제 24 장 거족적인 반일항전으로
8. 개 선
주체34(1945)년 8월의 조선은 해방의 열파로 진동하였다.
삼천리를 뒤흔드는 감격의 열풍속에서 인민은 민족의 영웅 김일성장군님의 개선을 일일천추로 고대하고있었다.
민족의 령수를 낳은 고도 평양은 김일성장군님의 입성을 기다리느라고 밤에도 잠들줄 몰랐다. 주체14(1925)년에 설한풍을 헤치며 고향을 떠나신 김일성장군. 래일이면 오실가, 모레면 오실가. 그이를 기다리는 40만 평양시민의 간절한 마음 한결같았다.
서울에서는 려운형, 허헌, 홍명희를 비롯한 명망높은 인사들이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서울역전은
김일성장군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떨쳐나온 수천수만명의 시민들로 하여 매일같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3천만의 심장은 김일성장군님께서 개선하실 그 순간을 향해 숨가쁘게 고동치고있었다.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선언했다는 소식이 훈련기지에 날아온 그 순간부터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모두 흥분된 기분으로 조국에 돌아갈 차비를 하였습니다. 스무해동안이나 타향의 이슬비를 맞으며 살아온 나도 고향으로 한시바삐 돌아가고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속에 묻어두고 귀국의 날도 얼마간 미루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조국개선을 학수고대하는 국내인민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우리도 모르는바가 아니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출발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조국에 돌아가더라도 준비를 더 잘해가지고 가자는것이 우리의 욕심이였습니다. 무슨 준비였는가. 새 조국 건설과 관련된 준비였습니다. 조국해방의 전략적과제가 완수된 조건에서 우리는 새 조국 건설과 관련된 시간표를 앞당기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1945년 9월 2일 도꾜만에 정박하고있던 미군전함 《미쑤리》호 함상에서는 일본의 무조건항복을 법적으로 확인하는 국제적인 의식이 거행되였습니다. 그날 일본정부와 군부를 대표하여 외상 시게미쯔와 참모총장 우메즈가 항복서에 서명하였습니다. 시게미쯔는 중국주재 일본공사로 있을 때 윤봉길렬사의 폭탄공격을 받고 외다리쟁이가 된 사람입니다. 우메즈도 일본군부의 명물이였습니다. 그는 1939년 가을부터 1944년 여름까지 관동군사령관을 하였습니다. 일본관동군이 존재한 전기간에 사령관을 여라문사람이 했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두번째 사령관이였습니다. 적들이 《동남부치안숙정특별공작》이라는 어마어마한 간판을 내걸고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대《토벌》소동을 벌린것이 바로 우메즈가 관동군사령관을 할 때입니다.
여러해동안이나 인류를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항복과 더불어 반파쑈력량의 승리로 종결되였습니다.
우리의 숙적이였던 바로 그 우메즈가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패전의 슬픈 고배를 마실 때 우리는 항일혁명에서 승리하고 민족해방혁명의 새 력사를 창조한 주인공들이 되여 조국에 돌아올 차비를 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은 공산주의사상의 발원지인 구라파와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최전방이였던 아세아의 여러 나라들이 민주주의적인 기초우에서 새 사회를 건설할수 있는 전망을 열어놓았습니다.
국내의 형편도 좋았습니다.
조국이 해방되기 바쁘게 우리 나라 각지에서는 인민위원회들이 조직되였습니다. 국내당조직에 망라되였던 혁명가들과 항쟁조직성원들이 핵심이 되여 도처에서 당단체와 군중단체 조직들도 내왔습니다. 평양과 서울을 비롯한 국내의 주요도시들에는 해내외의 문예인들이 민족문화건설의 새로운 꿈을 안고 집결하였습니다. 로동자들은 무장자위대를 조직하고 공장, 기업소들과 탄광, 광산, 항만, 철도 등을 스스로 보위하였습니다. 전민항쟁을 통하여 발양되였던 우리 인민의 구국열은 해방과 함께 건국열로 전환되였습니다.
조선혁명의 당면과업의 견지에서 보나, 종국적인 목적달성의 견지에서 보나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정세는 매우 락관적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도 긴장을 늦출수 없었습니다.
일제는 패망하였지만 반혁명은 혁명에 대한 공세를 단념하지 않고있었습니다. 일본천황이 무조건항복을 선언한후에도 일본군패잔병들은 저항을 계속하였습니다.
친일파, 민족반역자들과 착취계급의 대표자들은 지하에서 새 조국 건설을 방해하기 위한 음모를 준비하고있었습니다. 혁명의 배신자들과 불순이색분자들, 정치적야심가들이 정체를 숨기고 당단체들과 인민정권기관들에 기여들었습니다.
우리는 원동에 있을 때 미군이 38선이남에 진주한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미국군대의 진주가 실현되면 우리 나라에는 두 대국의 군대가 동시에 진주하는것으로 됩니다. 전패국도 아닌 우리 나라 땅에 다른 나라 군대가 둘씩이나 와서 주둔하는것은 그 구실이나 명분여하에 관계없이 재미없는 일이였습니다.
갑오농민전쟁때 일본과 청나라가 각각 우리 나라에 군대를 출병시킨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민은 그들의 덕을 조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량군의 출병은 결국 청일전쟁으로 이어지고 이 나라 강산은 전란에 부대껴 황페화되였습니다.
쏘미 량군의 주둔으로 하여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장으로 될수 있었으며 그 배경밑에서 우리의 민족력량은 좌익과 우익으로, 애국과 매국으로 분렬될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있었습니다. 당쟁이 성행하고 당파와 외세가 결탁하면 그 종착점은 망국으로 되는 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새 조국 건설을 다그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먼저 우리 혁명의 주체적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해야 했습니다.
우리 혁명의 주체란 우리 인민자신을 말합니다.
우리는 혁명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항일혁명의 직접적담당자인 인민을 교양하고 조직하고 동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결전에 참가한 수십수백만에 달하는 항쟁대오는 즉흥적으로 전장에 뛰쳐나온 자연군중이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러해를 두고 가꾸어온 조직군중의 대오였습니다.
우리는 한사람을 혁명동지로 만들기 위해 100리길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불속에도 뛰여들어갔습니다.
항일혁명의 전로정은 인민대중을 력사의 주체로 보고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광복성전의 1선에 내세워준 사랑과 믿음의 력사이며 인민대중자신이 자기의 피와 땀으로써 당당한 력사의 주체임을 과시해온 위대한 투쟁과 창조의 력사입니다. 이 인민과 인민혁명군의 투사들이야말로 새 조국 건설을 담당하게 될 우리 혁명의 주체였습니다. 인민의 사랑과 지지속에서 인민의 힘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여 투쟁할 때 그 어떤 준엄한 시련도 이겨낼수 있으며 그 어떤 어려운 투쟁속에서도 승리할수 있다는것은 우리가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찾아낸 귀중한 진리입니다.
나라가 해방되자 적지않은 사람들은 조국을 찾는 일이 어렵지 일단 찾은 다음에 새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야 무엇이 어렵겠는가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건국이야말로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항일혁명을 우리 인민자신의 힘으로 해낸것처럼 우리는 새 조국 건설도 조선사람자신의 힘으로 해내야 하였습니다. 건당, 건국, 건군은 물론, 민족경제와 민족교육, 민족문화를 건설하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포함하는 모든 분야를 우리 인민자신의 힘으로 개척해나가자는것이 바로 우리의 결심이였습니다. 인민을 새 조국 건설에 불러일으키자면 그들을 교양하고 조직하고 동원할수 있는 혁명의 참모부가 있어야 하고 정권이 있어야 하고 새 사회 건설을 무력으로 담보할수 있는 군대가 있어야 하였습니다.
나는 이런 견해에 기초하여 1945년 8월 20일 훈련기지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의 회의를 소집하고 우리 혁명의 주체적력량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과업으로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제를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3대과업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방향과 방법에 대해서도 토의하고 필요한 조직사업도 하였습니다.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제 수행을 위한 소조들도 조직하고 파견지도 확정하였습니다. 강건, 박락권, 최광, 임철, 김만익, 공정수 등은 중국 동북지방에 파견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조국으로 떠나기전에 소조성원들을 위한 강습을 여러날에 걸쳐 조직하였습니다. 강습에서는 파견지에 가서 수행해야 할 사업내용과 사업방법으로부터 각 지방 풍습에 이르기까지 많은 내용들을 취급하였습니다. 강의는 나와 김책, 안길 등이 담당하였습니다.
우리 동무들은 강습이 끝나자 조국으로 빨리 떠나자고 졸랐습니다. 그때는 누구나 다 조국에 돌아갈 날을 그리며 동심과 같은 심경에 잠겨있었습니다.
우리는 귀국할 때 아이가 달린 녀대원들은 후에 귀국시키기로 하고 훈련기지에 떨궈두었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여러갈래로 나뉘여 조국에 돌아왔습니다. 쏘련군대와의 련합작전계획에 따라 부대별로 제가끔 지정된 계선을 차지하고 전투행동에 진입하다가 불시에 일제가 무조건항복을 했기때문입니다.
국내각지에 락하산으로 출전하기 위하여 훈련기지에서 대기하고있던 부대는 하바롭스크, 목단강, 왕청, 도문을 거쳐 륙로로 조국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정으로 하여 도중에 그 계획을 포기하고 로정을 변경시켜 배를 타고 귀국하였습니다. 그때 관동군패잔병들은 목단강 남쪽에 있는 차굴을 폭파하였습니다. 적들이 우회도로와 잇닿은 교량들과 목단강비행장의 활주로까지 파괴해놓았기때문에 우리는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다 리용할수 없는 형편이였습니다. 그래서 목단강까지 갔다가 원동으로 되돌아와 울라지보스또크에서 군함을 타고 귀국의 길에 올랐습니다.
쏘련 제1원동전선군사령부의 한 대좌가 나를 호위하여 동행하였습니다.
함장은 나를 보고 중속으로 달려도 하루밤 하루낮정도면 원산항에 배를 댈수 있다고 장담하였습니다.
우리가 울라지보스또크를 떠난 날은 파도가 심했습니다. 배의 량켠에 집채같은 파도가 솟아올라 갑판을 후려갈기군하였는데 그 광경이 참으로 장관이였습니다.
대부분이 바다에서 배를 처음 타보는 사람들이여서 멀미때문에 단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 일행은 배에서 하루밤을 지냈습니다. 다음날에는 바다가 잔잔했습니다.
배전너머로 아득하게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볼 때 이상스럽게 가슴이 뛰던 일을 좀처럼 잊을수 없습니다. 내 눈앞에는 어째서인지 열네살때 건느던 압록강이 떠올랐습니다. 망국의 한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그 압록강과 조국의 일만강들이 해방열에 모조리 녹아 이 바다를 펼쳐놓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혈육들과 친지들, 동지들을 이국의 고혼으로 남겨두고 스무해만에 조국으로 돌아가는 내 마음은 참으로 말이나 글로써는 다 설명할수 없는 일희일비의 심정이였습니다.
우리가 원산항에 상륙한것은 1945년 9월 19일이였습니다.
그때 부두에서 우리를 마중해준것은 원산시에 주둔하고있던 쏘련군사령부 성원들이였습니다.
그날 부두에 나온 조선사람들가운데서 기억나는 인물은 그 당시 쏘련군대에서 군관으로 복무하고있던 한일무입니다. 그가 강원도당위원장을 한것은 그후의 일입니다.
쏘련군측이 우리의 움직임을 비밀에 붙였기때문에 부두에는 환영군중이 나와있지 않았습니다.
후날 허헌, 홍명희, 려운형을 비롯하여 우리의 개선을 전렬에서 기다리고있던 국내의 명망높은 인사들은 우리가 원산항에 상륙했을 때 부두에 환영군중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미리 선통이라도 할것이지 행차를 그런 식으로 슬그머니 하면 백성들 체면이 어떻게 되는가고 하면서 섭섭한 소리를 하였습니다. 원산시당의 리주하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하였습니다. 허헌의 말이 우리 귀국일정이 사전에 공개되였더라면 서울역에 나와서 매일같이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물론, 서울시민의 과반수가 도보와 기차로 원산땅에 쓸어들었을것이라는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야단스러운 환영을 조금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투사들은 민족해방을 위해 수천수만날 전장과 교수대에서 바친 피와 로고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때 조국땅에 들어서자마자 조선인민혁명군이 개선했다는 소문을 내지 않고 인민들속에 조용히 들어가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기초작업이나 해놓고 조국의 인민들에게 인사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원산에 도착한후 지방당일군들과 접촉하는 과정을 통하여 인민들속으로 빨리 들어가야 하겠다는것을 다시한번 통감하였습니다.
나는 원산에 상륙한 날 적지 않은 사람들과 담화를 하였습니다. 원산시당에 가서 당일군들과도 담화하고 동양려관에서 로동조합대표를 비롯한 지방유지들과도 담화하였습니다. 그중 많은 품을 들인것은 리주하와의 담화였습니다.
원산사람들과 담화를 하고나서 내가 받은 총적인 인상은 국내의 어느 당파나 어느 조직도 인민들에게 똑똑한 건국로선을 제시하지 못하고있다는것이였습니다.
원산시당의 어떤 일군들은 쏘베트를 꿈꾸고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의 진로에 대한 문제가 화제로 되자 사회주의혁명을 당장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런 주장은 원산시당청사 벽에 걸려있는 《공산주의기치아래 프로레타리아트는 단결하라!》는 구호에도 그대로 반영되여있었습니다.
나는 그 구호를 보고나서 시당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로동계급의 힘만으로 새 조국 건설을 하려 하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야 공산혁명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인데 로동계급밖에 믿을것이 있습니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1920년대 후기 우리가 종종 만나보군하던 초기공산주의자들의 주장과 대동소이한것이였습니다. 스무해가 지나 해방된 조국땅에서 그런 목소리를 다시금 듣게 되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정견이나 주의주장에서는 특별한 진보도 없었고 새로운 시국의 흐름에 발을 맞추려는 진지한 모대김도 별로 없었습니다.
나는 원산시당일군들에게 《공산주의기치아래 프로레타리아트는 단결하라!》고 한 시당청사의 구호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당면과제로 안고있는 우리 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것만큼 민주주의기발아래 단결하라로 바꾸어야 한다, 해방된 조국땅에 인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면 로동계급뿐아니라 그 동맹자인 농민은 물론, 새 사회 건설에 리해관계를 가지고있는 각계각층의 애국적인 군중을 통일전선에 묶어세워 거족적인 힘으로 우리 나라를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원산시당사람들과의 담화는 저녁식사전에도 하고 후에도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꾸 말을 시키는 바람에 나는 자리에서 좀처럼 일어날수 없었습니다.
나를 수행해서 서철이와 함께 시당에 따라갔던 김익현은 나에게 다가와서 자정이 다됐다면서 산에서도 노상 밤을 밝혔는데 해방된 조국에 와서까지 밤을 패겠는가고 하였습니다.
나는 김익현에게 나라는 해방됐지만 우리는 지금 새로운 출발진지에 서있다는것을 명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원산시당일군들과의 담화는 귀국후 내가 조국광복회 10대강령의 정신에 기초하여 국내인사들에게 건국로선의 륜곽을 그려보인 조국에서의 첫 대화였습니다. 나는 그날 우리 나라에 세워질 정권형태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되여야 한다는 주장도 공개하였습니다.
리주하를 비롯한 원산시당일군들, 원산의 유지들을 만나보고나서 나는 우리가 8.15해방후 즉시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내용으로 하는 새 조선 건설의 리정표를 작성하고 그것을 마련한 기초우에서 조국행을 한것과 조국에 발을 들여놓는 그길로 지정된 파견지로 떠나갈 결심을 한것이 천만번 정당하였다는것을 다시한번 확인하였습니다.
우리는 원산에 도착한 다음 지체하지 않고 함경남북도에 가서 사업할 소조들중에서 그 일부를 북행렬차에 태워 현지로 떠나보냈습니다. 같은 날 철원방면을 담당한 동무들도 남행렬차를 타고 파견지로 떠나갔습니다.
인간이 겪을수 있는 최악의 고초와 역경을 다 겪으며 혁명을 위해 청춘을 깡그리 바치면서도 한뉘 휴식이라는것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하루의 휴식도 주지 않고 파견지로 떠나가라고 재촉하자니 사실은 나도 마음이 가볍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원산항에 상륙한 그날은 추석전날이였습니다. 원산에서 추석이나 쇠고 피곤이나 푼 다음 전우들을 파견지로 보내고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절박한 국내형편을 보고는 그 미련마저도 털어버렸습니다. 원산을 떠난 함남북방향의 소조들은 렬차안에서 추석명절을 보냈습니다. 그 렬차는 조상들의 묘소를 찾아가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파견원들속에는 김책도 있고 안길도 있고 최춘국, 류경수, 조정철이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와의 작별을 몹시 서운하게 여기였습니다.
나도 역시 허전하였습니다. 항일전쟁때 중상을 당한 최춘국과 조정철이 어깨를 겯고 다리를 절름거리며 렬차승강대에 올라 나를 향해 손을 저어줄 때는 마음이 순편치 않았습니다. 마취제주사도 놓지 못하고 강짜로 수술한 그 다리로 그들은 얼마나 많은 전장과 가시덤불길을 누벼왔습니까.
최춘국과 조정철은 해방된 조국에서 몇해동안 전상자대접을 받으며 항일전장에서 쌓인 피곤을 풀어도 될 사람들이였습니다.
하건만 그들은 그 피곤을 풀 몇시간의 여유도 없이 웃으면서 북방의 파견지로 떠나갔습니다.
앞에는 부강한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생소한 봉우리들과 고개들이 놓여있었습니다. 그 봉우리들과 고개들을 넘자면 피와 땀을 많이 바쳐야 했습니다. 항일대전도 전인미답이였지만 새 조국 건설도 초행길이였습니다. 그 길이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초행길이 아니고 헤아릴수 없는 난관과 시련을 앞에 둔 어려운 길이 아니라면 그처럼 서두르지는 않았을것입니다.
나는 떠나가는 김책에게 짬이 생기거들랑 고향에 꼭 찾아가보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최춘국과 류경수, 조정철, 리을설에게도 같은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고향은 모두 함경남북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 파견지에 갔다가 평양으로 소환되여올 때까지 그들은 모두 고향에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고향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이 높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지니고있었기때문입니다. 동무들은 내가 강선제강소로 갈 때 고향집에도 들리지 않았다고 하면서 만경대갈림길에 대한 노래를 지어부르고있지만 사실 항일혁명투사들은 개선후 누구도 고향에 가보지 않고 건당, 건국, 건군을 위한 기초작업을 하였습니다.
사령관의 명령지시를 관철하기전에는 고향에 갈 권리도 없다는것이 바로 우리 투사들의 사고방식이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조국땅을 밟은 첫날부터 인민들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투사들은 백두산에서 매고온 신들메를 풀사이도 없이 새 전구로 속속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네가 차지할 파견지를 하나의 작전지역처럼 여기였습니다. 우리의 조국개선은 개선이라기보다 혁명의 새 장을 개척하기 위한 전략적이동과 같은것이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1945년 9월 20일 나는 서해지구에서 사업하게 될 동무들과 함께 평양행 렬차를 타고 원산을 떠났습니다.
북조선주둔 쏘련군사령부 대표가 우리를 마중하느라고 평양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부래산역에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는 우리의 조국개선을 열렬히 축하한다고 하면서 나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9월 22일 오전에야 평양에 도착하였습니다.
훈련기지에 떨어졌던 녀대원들은 그해 11월말경에 함경북도 선봉쪽으로 해서 조국에 돌아왔습니다. 김정숙은 청진에 오자마자 전화로 나에게 도착보고를 하였습니다. 일행은 안길, 최춘국, 박영순을 비롯한 청진파견조 성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위한 대중공작을 정열적으로 벌려나갔습니다.
청진에 머물고있던 김정숙은 청진제철소와 고무산세멘트공장, 부령야금공장을 비롯한 많은 공장, 기업소들과 교육, 문화 기관들도 살펴보고 각계각층 군중들과의 정치사업도 하였습니다. 그가 만나본 사람들가운데는 로동자, 농민, 사무원, 가정부인들과 당, 정권기관, 근로단체 책임일군들뿐아니라 나어린 중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청진시민들이 그때 김정숙을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고 합니다. 《새길신문》은 1면에 《김녀사의 반생》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혁명활동을 크게 보도하였습니다.
북방의 도시들에서 겪은 체험이 얼마나 풍부했던지 그는 평양에 돌아와서도 얼마동안은 청진에 대한 말만 하였습니다. 그는 중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던 이야기와 자기네 일행을 위해 오찬을 마련한 라진면옥사람들의 후한 인심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린 김정일도 녀대원들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도 평양에 입성한 다음날부터 전우들과 함께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사업에 착수하였습니다. 내가 8.15해방후 제일 바쁘게 보낸 시기가 바로 그 시기입니다.
개선후의 사업에서도 기본은 사람과의 사업, 인민대중과의 사업이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공장과 농촌, 가두에 내려가 인민들을 만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무실과 숙소에서 백두산시절처럼 전우들과 침식을 같이해가며 국내외에서 나를 찾아오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만나 국사를 의논하였습니다.
전우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고향에 가서 먼저 조부모님한테 인사라도 하고 오는것이 도리가 아닌가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설복을 해도 내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되자 림춘추는 나 모르게 슬그머니 만경대에 가서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린 나그네처럼 행세하면서 가족들의 안부를 다 알아가지고 왔습니다. 그 덕으로 나는 고향집소식을 상세하게 들을수 있었습니다.
9월말경부터는 무슨 경로를 타고 비밀이 새나갔는지 내가 평양에 와있다는 소문이 시내에 쫙 퍼졌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형록삼촌이 평남도당에 찾아와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림춘추는 형록삼촌에게 조카의 특징에 대해 아는것이 있으면 죄다 말해달라고 하였습니다.
형록삼촌은 《우리 조카는 본명을 김성주라고 합니다. 만경대에서 어린시절을 보낼 때에는 증손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웃을 때마다 볼우물이 패이군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날저녁 림춘추는 내가 거처하고있는 집으로 형록삼촌을 데리고왔습니다.
삼촌은 나를 만나자 《얼마나 고생했나!》 하고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이역의 하늘밑에 무주고혼이 되여 누워있는 혈육들 생각에 스무해동안 오는 바람 가는 바람을 다 맞으며 마음을 썩이던 지난날까지 되살아올라 목이 메이는 모양이였습니다. 삼촌으로서야 사실 기막힌 일을 얼마나 많이 겪었습니까.
《조카가 나라를 찾아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나는 집을 지키느라고 형님과 형수님 령전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구만. 우리 가문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명이 짧을가.…》
삼촌은 이런 말을 하고나서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더니 그렇게 말쑥하던 얼굴이 왜 이렇게 거칠거칠해졌나, 백두산바람이 모질긴 모진 모양이야 하고 애달파하였습니다.
그러나 얼굴이 거칠거칠해진것으로 말하면 나보다 형록삼촌이 더 심했습니다. 스무해전보다 곱절이나 더 늙어보이는 삼촌의 모습을 보니 사실은 나도 눈물이 났습니다. 무슨 주름살이 그리도 많던지, 저 무수한 주름살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인생고초가 어려있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두산이 지척이라면 신이라도 삼아 조카네 군대들 뒤시중을 할수 있었겠는데 스무해가 지나도록 이 삼촌은 아무 보탬도 주지 못했어.》
형록삼촌이 이런 말을 하기에 나는 말했습니다.
《작은아버지야 집을 지키지 않았습니까.》
그날 나는 형록삼촌과 온밤 회포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야 삼촌을 만경대로 돌려보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나를 만나보았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더니 삼촌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경대에 돌아가서는 할아버지에게 성주가 평양에 와있다고 가만히 귀띔해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그러면그렇겠지, 백두산이 변하면 변했지 우리 성주야 변할리가 있나. 지금 항간에서 〈전라도 김일성〉이요, 〈함경도 김일성〉이요 하는 말들이 돌아가는데 아무려면 조선땅에 무슨 김일성이 그렇게 많겠는가.》고 하였습니다.
나는 10월 9일 강선제강소를 돌아보고 그후 당을 창건한 다음 10월 14일에야 평양시환영군중대회에서 조국인민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요란스러운 환영군중대회형식을 통해 인민들과 상봉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내인사들과 나의 전우들이 한사코 그런 큰 규모의 행사를 주장하고 고집하였습니다.
내가 한 모임에서 김영환이라는 가명대신 본명을 처음으로 공개하던 날 누구인가 연단에 나서서 나의 조국개선을 환영하는 거족적인 민중대회를 가지자고 제의하였습니다. 모두들 그 제의에 열광적으로 호응해나섰습니다.
그때 벌써 뒤에서는 평안남도당과 평남도인민정치위원회의 공동주최로 나를 환영하기 위한 행사준비가 진척되고있었습니다. 행사전날에는 모란봉기슭의 공설운동장에 경축솔문과 가설무대까지 다 설치해놓았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김용범더러 요란스러운 행사놀음을 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평안남도당사람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들은 시내의 거리와 골목마다에 우리가 평양에 입성했다, 14일 공설운동장에서 조선인민과 상봉한다는 글발들을 내붙이였습니다.
1945년 10월 14일 정오가 가까와오는 때 행사장으로 내정된 평양공설운동장으로 가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거리에 나선 나는 광장과 대통로들에 차고넘치는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회장은 벌써 사람바다를 이루고있었습니다. 운동장밖의 나무꼭대기들에도 사람들이 올라가있었고 최승대와 을밀대쪽에도 사람들이 하얗게 덮여있었습니다. 대회장안팎을 휩쓰는 그 환영의 열파를 타고 나는 군중이 환호를 올릴 때마다 손을 들어 그들에게 답례하였습니다.
그날의 군중대회에는 쏘련 제25집단군 사령관 치스쨔꼬브상장과 레베제브소장도 참가하였습니다.
그날 여러 사람들이 연설을 하였습니다.
조만식이도 연탁에 나섰습니다. 그의 연설가운데서 청중을 웃기던 한 토막이 생각납니다. 그는 아주 건드러진 목소리로 조선이 해방되였다기에 이게 생시인지 꿈인지 알수가 없어서 내팔을 이렇게, 이렇게 꼬집어보았더니 아팠소이다라고 하면서 자기 팔을 꼬집는 시늉까지 하였습니다.
내가 연단에 나설 때 《조선독립 만세!》를 부르는 군중들의 함성과 환호성은 고조에 달하였습니다.
그 환호성을 듣는 순간 나의 심신에서는 스무해동안 쌓이고쌓인 피곤이 한꺼번에 다 날아나버리였습니다. 민중의 환호성은 열풍이 되여 내몸과 마음에 뜨겁게 와닿았습니다.
10여만 군중의 뜨거운 열기와 환호를 한몸에 받으며 단상에 서있을 때 나를 지배한것은 그 어떤 미사려구를 다 동원해도 그려낼수 없는 행복감이였습니다.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어느때였는가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순간이였다고 대답할것입니다. 민중의 아들로서 민중을 위해 싸웠다는 행복감, 민중이 나를 사랑하고 신임한다는것을 느끼는데서 오는 행복감, 그 민중의 품에 안긴 행복감이였을것입니다.
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폭발한 민중의 환호성은 조국과 겨레를 위해 우리가 겪어온 반생의 간난신고에 대한 표창이고 답례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나는 그 답례를 나에 대한 인민의 사랑과 신뢰로 받아들이였습니다.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인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것보다 더 큰 락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인민의 사랑, 인민의 지지, 나는 지금까지 이것을 혁명가의 존재가치와 혁명가가 향유할수 있는 행복을 측정하는 절대적기준으로 삼아왔습니다. 인민의 사랑과 지지를 떼놓으면 혁명가에게 남는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르죠아정객들은 돈으로 인민들을 유혹하지만 우리는 피와 땀을 바쳐 인민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나는 인민이 나에게 주는 이 신임앞에서 감격하였으며 그것을 내가 누릴수 있는 일생일대의 락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날 내가 한 연설의 골자는 민족대단결이였습니다. 나는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애국성업에 이바지하자고, 온 민족이 하나로 굳게 단결하여 이 땅우에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나가자고 호소하였습니다.
군중은 하늘땅을 진감하는 박수와 환호로써 지지를 표시하였습니다.
당시의 신문 《평양민보》는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 펼쳐졌던 정경을 《금수강산을 진동시키는 40만의 환호성》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평양의 력사가 깊어 4천년, 인구가 적지 않아 40만이라 하나니 일찌기 이와 같이도 많은 사람이 모인 일이 있었던가? 이와 같이도 뜻깊은 모임을 가져본 일이 있었던가?…
…특히 대회를 력사적으로 뜻깊게 하고 회중을 감동케 한것은 조선의 위대한 애국자, 평양이 낳은 영웅 김일성장군이 여기에 참석하여 민중에게 반갑고도 열렬한 인사와 격려를 보낸것이다. …조선동포가 가장 숭모하고 고대하던 영웅 김일성장군께서 그 름름한 용자를 한번 나타내이니 장내는 열광적환호로 숨막힐듯 되고 거의 전부가 너무 큰 감동때문에 소리없는 울음을 울었다. …군중에게 준 감동은 강철과 같은것이여서 산야가 떠나갈듯한 환호성가운데 〈이 사람과 같이 싸우고 같이 죽으리라〉는 사람들의 결의는 눈에 보일듯이 고조되였다.》
그날의 군중대회는 우리 인민이 새 조국 건설의 장도를 개척하는 행군의 첫시작이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나는 그날 대회장에서 현양신삼촌어머니와 강룡석외삼촌도 만나보았습니다.
행사가 끝난 다음 주석단에서 내려와 삼촌어머니를 만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군합니다.
한몸의 건사조차 힘든 그 인파속으로 어떻게 비집고 들어왔는지 삼촌어머니는 내가 타고온 승용차에 앉아 눈물을 줄줄 흘리고있었습니다. 주석단쪽을 향해 막무가내로 나오는 삼촌어머니를 주도일이 차에까지 안내하였다는것이였습니다.
삼촌어머니는 내 손을 부둥켜잡고 《조카, 이게 몇해만이요!》하면서 감격해하였습니다.
《삼촌어머니, 큰 가문의 살림살이를 혼자서 맡아안고 얼마나 고생이 막심했습니까!》
나도 삼촌어머니에게 짤막한 인사를 했습니다.
《고생이야 산에서 싸움을 하며 지낸 조카가 더했지, 춘하추동 뜨뜻한 구들에서야 무슨 고생이였겠소. 나는 이 운동장으로 오면서도 은근히 걱정했다우, 령감이 조카가 왔다고는 했지만 혹시 우리 조카가 아니고 〈전라도 김일성〉이면 어쩌나. 그런데 연단을 쳐다보니 틀림없는 우리 조카가 아니겠소. 얼마나 기쁘던지.…》
삼촌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고나서 또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의 전우들도 다같이 눈물을 흘리였습니다.
《삼촌어머니, 온 평양이 웃고 떠들고 춤을 추는데 이 기쁜날 왜 자꾸 울기만 하십니까.》
《조카를 보니 형님생각, 아주버님생각이 나서 그런다우. 이런 날 형님이랑 아주버님이랑 살아서 조카의 연설을 들었다면 얼마나 기뻐들 하겠나.》
《삼촌어머니, 오늘은 삼촌어머니가 우리 어머니 대신입니다.》
그 말을 듣자 삼촌어머니는 내 가슴에 와락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나는 삼촌어머니의 눈물이 우리 어머니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와 삼촌어머니는 친자매간보다 더 가깝게 지냈습니다. 삼촌어머니가 우리 가문에 시집을 온것이 15살때였다고 합니다. 시집살림살이가 하도 가난해서 삼촌어머니는 처음에 우리 가문에 정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면서부터 시집에 정을 붙이였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생전에 삼촌어머니를 몹시 사랑해주었습니다. 우리 어머니와 삼촌어머니는 밭일을 해도 늘 같이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밭김을 매다가도 쉴참이 되면 늘 잠이 모자라서 고달파하는 삼촌어머니에게 무릎베개를 베여주고 잠간이나마 눈을 붙이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단잠에 든 삼촌어머니의 머리를 조용히 빗어주군했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으면서 시집살이를 시작한 삼촌어머니이니 우리 어머니를 잊을수 없었습니다. 삼촌어머니는 우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안도에 가보지도 못하고 어머니의 령전에 절을 드리지 못한데 대해 무척 애달파하였습니다.
삼촌어머니는 이 못난게 백이 된들 어찌 형님 한분을 대신할수 있겠소, 그렇지만 조카, 오늘은 형님도 혼이 되여 날아와 이 운동장에 계시는것 같구만이라고 하면서 저고리소매로 눈굽을 꾹꾹 찍었습니다. 그리고는 울다가는 웃고 웃다가는 울고 하면서 형록삼촌과 대판 다투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우뭉스런 령감이 글쎄 나도 몰래 혼자서 성안에 들어와 조카를 가만히 만나고 돌아오지 않았겠소, 엽때 입을 가만히 봉하고있다가 어제야 토설합디다, 그래서 내 한바탕 야단을 쳤다우, 령감, 김일성이 뭐 령감 혼자의 조카고 내 조카는 아니란 말이요 하고 들이댔더니 뚱딴지같이 팔은 안쪽으로 굽지 바깥으로 굽지 않는다나 하면서 한바탕 왁작 떠들었습니다.
그날 오후에야 나는 삼촌내외와 함께 만경대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지금 다니는 길로 해서 가지 않고 순화강나루터에 승용차를 댄 다음 배를 타고 고향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감탕판에는 그전처럼 나루배를 탈 때 발을 옮겨디딜수 있게 징검돌들이 듬성듬성 박혀있었습니다. 내가 어린시절에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참게를 잡던곳이였습니다.
그날 고향마을로 들어설 때 나를 맞아주던 다듬이방치소리와 만경봉의 다박솔향기를 나는 지금도 잊을수 없습니다. 그 다듬이방치소리가 왜 그리도 구성지고 그 다박솔향기가 왜 그리도 싱그럽던지 모르겠습니다. 갈매지벌쪽에서 소가 길게 영각을 울릴 때면 오래간만에 맛보게 되는 고향의 향취에 그만 목이 꺽 메이는것 같았습니다.
감옥에 계시는 아버지생각에 쪽잠마저 어설프던 유년시절이 어제같은데 내 나이 어느덧 서른세살이 되였으니 옛 사람들이 어찌 세월의 무정한 흐름을 일촌광음에 비기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망국 40년만에 조국을 찾고 리향 20년만에 고향을 찾았다면 우리는 그 조국과 고향을 위해 너무도 많은 세월을 바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국은 순간이요 복국은 천년이라는것이 항일혁명 20년의 로정을 걸으면서 내가 얻은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였습니다. 잃기는 헐해도 찾기는 힘든것이 바로 조국이라는 뜻입니다. 순간에 잃은 조국을 찾느라고 수십년, 지어는 수백년의 고생을 해야 하는것이 이 세상의 준엄한 리치입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200여년만에 독립했다는것은 잘 알려져있는 사실입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300여년, 알제리는 130여년, 스리랑카는 150여년, 윁남은 근 100년만에야 각각 나라의 독립을 성취할수 있었으니 망국의 대가란 실로 얼마나 비싼것입니까.
그러기에 나는 지금도 종종 젊은 사람들에게 조국을 잃으면 살아도 죽은 목숨과 같다, 망국노가 되지 않으려거든 나라를 잘 지키라, 나라잃은 설음으로 통곡하기전에 조국을 더 부강하게 하고 막돌 한개라도 더 주어다가 성새를 높이 쌓으라고 말해주군합니다.
고향집을 찾던 그날의 풍경가운데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것은 짜개바지를 입은 두세살쯤 되는 사내애가 길가에서 우리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입니다. 그 별치않은 광경이 왜 그런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아담한 향촌, 그 평화로운 세계의 한복판에서 아무 시름도 없이 태평스럽게 손을 저어주는 그 어린것의 모습은 분명 새 조선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삼촌어머니를 앞세우고 고향집뜨락에 들어설 때는 가슴이 막 설레이였습니다. 20년전만 해도 큰 광장처럼 넓어보이던 뜨락이 그때는 손바닥만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스무해에 걸치는 간고무쌍한 행군의 종착점이라고 생각하니 일만장강을 건느다가 뭍에 오른 심정이였습니다.
눈에 익은 고향집추녀를 바라보는 순간 어린시절 자장가를 불러주고 입김으로 언 손을 녹여주던 아버지와 어머니, 봄날의 락화와도 같이 땅속에 묻힌 그 아버지, 어머니가 옛 모습 그대로 소생하여 《성주야!》하고 소리쳐 부르며 달려나와 두팔을 크게 벌리고 나를 부둥켜안는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혀 걸음을 선뜻 옮기지 못하였습니다.
버선발바람으로 마당에 달려나온 할아버지는 나를 얼싸안고 《우리 장손이 돌아오는구나. …어디 보자! 어디…》 하고 눈물속에 뇌이였습니다. 할머니도 나를 만나자 아버지, 어머니는 어데다 두고 이렇게 혼자 왔느냐, …같이 오면 못쓴다더냐 하면서 울음을 터뜨리였습니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 평양에서 가지고온 술을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이 서른살이 넘도록 효도를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런 말은 하지도 말아라. 네 아버지가 하다가 못한 조선독립을 네가 해냈으면 그게 효도지 그보다 큰 효도가 어디 있겠느냐. 나라와 백성을 잘 돌보면 그게 효도니라.》
할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면서 가볍게 잔을 냈습니다. 그리고나서는 웃음을 지으며 오늘은 술맛이 참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손만은 가볍게 떨고있었습니다. 그날은 할머니도 어렵지 않게 잔을 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지 못한 송구스러운 심경에서 헤여날수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너무도 많은 걱정을 끼쳐드렸다는 생각이 잠시도 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잘 돌보는것이 효도라고 한 할아버지의 말을 생각할수록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남리사람들은 다 우리 집에 모였습니다. 내가 귀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단리와 추자섬에서도 사람들이 떼를 지어 찾아왔습니다. 소꿉시절의 나의 동무들도 음식을 해가지고 줄레줄레 모여들었습니다.
소박한 가족연회가 수십명을 망라하는 군중연회로 번져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환영하여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주었습니다. 김응우증조할아버지대부터 우리 집 신세를 많이 지고 산 최로인도 《꿍니리타령》에 맞추어 춤을 추었습니다. 삼촌어머니는 우리 아버지가 지은 자장가를 불렀습니다.
그날밤 나는 20년만에 고향집에서 자게 되였습니다.
그때 우리 고향집은 구들을 뜯어놓고 문도 채 달지 못하고 지내는 형편이였습니다. 채 마르지 않은 구들에는 밀짚과 벼짚을 깔고 그우에 멍석을 펴고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른 집 사랑방에 잠자리를 정해놓았으니 오늘밤은 궁색한대로 거기 가서 자야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우리는 산에서 호강을 하다가 온게 아닙니다, 풍찬로숙을 하다가 왔습니다, 하늘을 지붕삼고 초목을 이불삼아 덮고 살았습니다, 좋은 제 집에 와서야 왜 구차스럽게 남의 집에 가서 자겠습니까, 나는 우리 집에서 자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말을 듣더니 희색이 만면해서 네 마음이 그렇다면 그집 사랑방은 물리겠다, 하기야 스무해만에 찾아온 고향집인데 남의 집 사랑방신세를 진다는것도 멋적긴 멋적다고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멍석우에 대를 두고 물려오는 무명이불을 펴주었습니다. 그 이불거죽은 우리 할머니가 무명낳이를 하여 만든것이였습니다.
깊은 밤중에 할머니는 내 베개밑으로 팔을 밀어넣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산에서 장가를 갔대지? 색시도 산에 있었나?》
《예, 나하고 같이 빨찌산투쟁을 한 녀자입니다.》
《아들애는 너를 닮았느냐?》
《닮았다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됐다.》
할머니는 그밖에도 많은것을 물었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팔이 아파할것 같아 할머니, 내 머리가 무겁지 않아요 하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무겁기야 뭘 하면서 내 목밑으로 팔을 더 깊숙이 밀어넣었습니다. 서른이 넘은 손자를 위해 유년시절에 그래주었던것처럼 팔베개로 내 목을 고여주는 할머니의 사랑이 가슴을 후덥게 해주었습니다.
《해방이 됐으니 이제는 만주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의 산소도 옮겨야겠다.》
그것은 그날밤 할머니가 맨 마지막으로 꺼낸 화제였습니다. 할머니로서는 응당 관심을 가질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타향의 진토속에 묻힌 자식들의 유해를 고향에 옮겨다 묻고싶어하는 그 심정이야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할머니, 천묘도 천묘지만 나한테는 그보다 먼저 찾아야 할 은인들이 있습니다. 연포리주막집에서 아버지를 빼돌린 황씨와 가둑령의 전주 김씨로인, 촉한에 걸린 나를 사경에서 구원해준 조씨로인을 찾아내고싶습니다. 그분들을 찾아낸 다음에야 천묘도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그러면 양지촌의 아버지도 좋아할게다.》
나는 할머니에게 길림시절과 간도시절, 백두산시절에 나를 도와준 은인들과 전우들, 친지들에 대하여 밤새도록 말해주었습니다. 때로는 이국의 산야와 타향의 이름모를 언덕받이에서 고혼이 되여 잠들고있는 아버지, 어머니와 형권삼촌, 철주동생에 대해서도 추억하며 소리없이 눈물을 지었습니다. 그러면 할머니도 소리를 죽여가며 간간이 흐느끼였습니다.
할머니는 오열을 멈추고 내 팔을 어루만지며 위로하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갔지만 그대신 정숙이가 가문에 들어오지 않았느냐. 그리구 정일이가 태여나서 집안의 대를 잇게 되지 않았니.》
나는 백두의 산상과 만주설원에서 겪어온 행적을 조용히 더듬어보며 나와 함께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의 얼굴도 그려보고 은인들도 생각하고 어린시절도 추억하고 우리가 건설하게 될 새 조국의 미래도 설계해보았습니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스무해만에 맛보게 되는 만경대의 밤, 그 밤은 참으로 평화로운 밤이였습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조국이 광복된지도 만 두달, 그러나 3천만 조선민족은 그때까지도 해방의 열광속에 그냥 깊이 잠겨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3천만가운데 조국해방이 곧 국토분단과 민족분렬을 낳고 그 분단과 분렬이 근 반세기의 대국난으로 이어지게 되리라는것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김일성전집》증보판 제36권 출판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년대순에 따라 수록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총서인 《김일성전집》증보판 제36권을 출판하였다.
전집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1959년 11월부터 1960년 2월까지의 기간에 하신 력사적인 연설과 담화, 결론을 비롯한 37건의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여야 우리앞에 나선 방대한 혁명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로작 《평안남도당단체들의 과업에 대하여》, 《새 환경에 맞게 군당단체의 사업방법을 개선할데 대하여》, 《강서군당사업지도에서 얻은 교훈에 대하여》등에서 당조직들이 정치사업을 확고히 앞세우며 군당위원회의 집체적지도체계를 튼튼히 세워 군내의 모든 사업들을 성과적으로 진행해나갈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증산하고 절약하며 예비를 마련하는 전인민적운동을 힘있게 벌리고 생산과 건설에서 중심고리에 력량을 집중하며 일군들이 경제조직사업을 빈틈없이 진행하여 일별, 월별, 분기별계획을 어김없이 수행해나가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이 로작 《1960년 인민경제계획수행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나서는 당면한 몇가지 과업들에 대하여》에 명시되여있다.
로작 《농촌경리부문에서 해결하여야 할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농업협동조합들에서 축산업을 발전시킬데 대하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촌경리부문에서 기계화를 다그치며 밀밭에 관수를 하고 질좋은 퇴비를 많이 내여 밀수확고를 결정적으로 늘이는것과 함께 축산업을 발전시켜 고기생산을 증대시킬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 《생물학발전에서 나서는 당면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에는 과학연구사업의 모든 분야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워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게 풀어나갈데 대한 사상이 담겨져있다.
《로동신문》이 당정책관철에로 대중을 불러일으키는 선전자, 교양자로서의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다해나가기 위한 방도적문제들이 로작 《당면한 사론설편집방향에 대하여》에 천명되여있다.
전집에는 이밖에도 간부들이 정치리론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꾸준히 학습할데 대한 문제, 전사자, 피살자가족들의 생활을 잘 돌봐줄데 대한 문제, 삼석구역소재지를 평양의 위성도시로 잘 꾸릴데 대한 문제, 총련사업에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몇가지 문제, 질좋은 도자기를 더 많이 생산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혁명과 건설의 여러 분야에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들에 명확한 해답을 주는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김일성전집》증보판 제36권에 수록된 로작들은 실천을 통하여 그 정당성과 진리성, 생활력이 확증된 혁명과 건설의 대백과전서로서 새 승리에 대한 자신심에 넘쳐 당 제9차대회로 향한 총진군을 더욱 가속화해나가는 온 나라 인민의 투쟁에 무한한 힘과 고무를 더해주는 위력한 사상정신적무기로 될것이다.(전문 보기)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조국해방업적은 세기와 더불어 길이 빛날것이다》 국제사회계가 높이 칭송
일제의 발굽밑에 신음하던 우리 조국땅에 해방의 기쁨, 환희의 격정이 넘쳐흐른 력사의 그날로부터 어언 80년의 년륜이 아로새겨졌다.
국제사회계는 백두의 험산준령을 넘고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조국의 해방을 안아오시고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본보기를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을 세기를 이어 열렬히 칭송하고있다.
조국해방의 은인, 사회주의조선의 시조
전인디아조선친선협회 서기장, 인디아 델리주체사상연구회 위원장은 지난 20세기초 일제의 식민지노예화정책으로 하여 조선은 커다란 인적, 물적피해를 입었으며 인민들은 생에 대한 희망을 잃고 고통과 불행속에 헤매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가 끊기우고있던 시기 조선인민의 구세주로 나서신분이 바로 김일성주석이시였다고 강조하였다.
베닌사회주의당 위원장은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시고 조국땅을 떠나신 김일성주석께서는 1926년 조선의 새세대 혁명가들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무으시였다고 하면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나라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는것을 당면과업으로 내세운 《ㅌ.ㄷ》의 결성은 조선혁명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되였다고 말하였다.
브라질조선친선협회 뷸레찐은 두자루의 권총을 유산으로 남기신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김일성주석께서는 1930년 카륜회의에서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조선혁명의 진로를 밝혀주시였다, 그후 주석께서는 《무장은 우리의 생명이다! 무장에는 무장으로!》라는 구호를 내놓으시고 무장투쟁준비를 다그치시였으며 1932년 4월 25일 조선의 우수한 아들딸들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였다고 지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항일무장투쟁로선에 대해 로씨야의 한 신문은 남의 힘에 의거하거나 평화적방법으로는 제국주의강도배들을 타승할수 없으며 식민주의자들이 야만적인 폭력에 매달리고있는 조건에서 손에 총을 잡고 무장투쟁을 하여야만 민족해방을 성취할수 있다는것을 엄숙히 선언한 로선이였다고 평하였다.
방글라데슈인민련맹 위원장은 김일성주석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전 기간 독특한 전략전술과 림기응변의 지략으로 련전련승하시여 조국해방의 결정적국면을 마련해나가시였다고 하면서 이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이 강대한 일본제국주의군대와의 싸움에서 언제나 적들을 수세에 몰아넣고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맞이할수 있게 한 근본비결이였다고 격찬하였다.
우루과이신문 《라 후벤뚜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1945년 8월 9일 김일성주석께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명령을 내리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일제와의 최후결전을 개시하였으며 인민들은 도처에서 전민항쟁의 불길로 호응하였다.
일제가 무조건 항복한 력사의 그날 조선의 남녀로소모두가 떨쳐나 〈김일성장군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에짚트아랍예술문화공보협회 행정리사회 위원장은 《조선의 해방, 이것은 자주의 새시대가 도래하게 한 력사적사변이였다.김일성주석께서는 해방된 조국땅우에 모든 사람들이 고르롭게 사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시였다.조국의 해방과 사회주의제도의 수립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조선인민에게 넘겨주신 크나큰 재부이다.하기에 조선인민은 그이를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라고 높이 칭송하고있다.이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일이다.》라고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여러 나라의 인사들은 1945년 8월 15일 조선이 해방됨으로써 수난의 암흑시대가 끝장나고 조선인민은 자주독립국가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새 생활을 창조해나갈수 있게 되였다고 하면서 조국해방은 조선인민의 운명개척에서 극적인 전환점으로 되며 사회주의조선의 탄생을 안아온 력사적사변이였다, 김일성주석은 조선인민의 구세주,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다고 격찬하였다.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훌륭한 본보기를 창조하신분
네팔아시아아프리카인민단결위원회 위원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예속에서 벗어났지만 왜서 조선의 해방을 특별히 중시하며 세계와 련관시켜보는가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였다.
《그것은 조선의 해방이 조선인민의 자주적발전만이 아니라 세계의 변화에 결정적영향을 미쳤기때문이다.이러한 력사적변화의 중심에는 김일성주석께서 서계시였다.20세기는 주석의 사상으로 세계가 변화되여온 과정이였다.》
1920년대에 이르러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통치를 뒤집어엎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있었다.
당시 선행리론가들은 식민지나라들에서의 민족해방위업은 종주국에서의 혁명승리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식민지민족해방운동에 관한 기성리론의 제한성을 과학적으로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누구도 식민지인민들에게 독립을 가져다줄수 없으며 식민지나라 인민들은 오직 자체의 투쟁에 의하여서만 민족해방위업을 이룩할수 있다는 새로운 사상을 내놓으시고 그 기치밑에 항일혁명투쟁을 정력적으로 조직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혁명투쟁은 민족해방투쟁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동시에 세계피압박인민들의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의 새시대를 열어놓은 성스러운 혁명투쟁이였다.
하기에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우리 인민의 항일혁명투쟁승리에 의하여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빛나는 교범, 본보기가 마련되게 되였다고 격찬하고있는것이다.
나이제리아신문 《뉴 나이제리언》은 김일성주석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을 통하여 식민지나라 인민들이 능히 자체의 힘으로 제국주의식민지통치를 뒤집어엎고 민족해방위업을 이룩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시였다고 서술하였다.
민주꽁고신문 《라브니르》는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김일성주석의 령도밑에 조직전개된 항일무장투쟁의 승리는 식민지나라 인민들이 반혁명적폭력에는 혁명적폭력으로 맞서야 하며 오직 조직적인 무장투쟁으로써만 제국주의침략자들을 타승하고 나라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할수 있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었다.조선에서의 항일무장투쟁승리후 세계피압박인민들의 반제민족해방투쟁은 새로운 앙양의 길에 들어섰다.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새시대를 개척하신 김일성주석의 업적은 인류자주위업의 력사에 찬연히 아로새겨져있다.》
인디아의 한 인사는 김일성주석께서 조선의 해방을 안아오신것은 조선인민의 운명개척에서 력사적전환의 계기로 되였을뿐 아니라 세계적판도에서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의 급격한 앙양을 가져온 중요한 사변으로 되였다고 격찬하였다.
네팔인터네트잡지 《네팔 투데이》는 《김일성주석은 일본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전쟁을 선포하시고 유격전을 기본으로 하는 무장투쟁로선을 제시하신 동서고금에 다시 없는 천하제일장군이시다.식민지민족해방투쟁에 관한 옳바른 리론이나 경험도 없었던 당시에 제시된 유격전을 기본으로 하는 주체적인 무장투쟁로선은 오직 절세의 위인이신 그이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로선이였다.주석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조선인민은 그처럼 간고한 속에서도 포악한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수 있었다.》라고 서술하였다.
정녕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의 새시대를 개척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은 그 세계사적의의로 하여 인류자주위업의 력사에 력력히 아로새겨져있으며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후세에 길이 전해질것이다.(전문 보기)
열화와 같은 동지애로 헤쳐오신 혈전의 길
조국해방의 위대한 은인, 만고절세의 애국자를 우러러
강도 일제의 총칼밑에 신음하며 망국의 비운속에 잠겼던 땅에 조국해방의 력사적승리를 안아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혁명의 20성상,
그것은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와의 혈전을 승리에로 이끄신 우리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의 력사인 동시에 가장 숭고하고 열렬한 동지애의 력사였다.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했던 그 세월 반일의 열망은 높았으나 갈길 몰라 헤매이던 이 나라의 아들딸들을 한품에 안으시여 참다운 애국자로, 견결한 혁명가로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한명한명의 동지들을 품어안아 걸음걸음 보살피시며 불같은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아래 얼마나 많은 이 나라 청년들이 항일의 맹장으로 자라나 간고한 혈전사에 빛나는 위훈의 자욱을 새기였던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동지들과 생사운명을 같이하며 동지적믿음과 사랑에 기초한 대오의 사상의지적통일을 이룩하심으로써 혁명적동지애의 고귀한 전통을 마련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열화와 같은 동지애는 항일혈전의 나날 그이와 전사들사이에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연적뉴대를 이룩하고 조선인민혁명군이 그 어떤 천지풍파속에서도 필승불패하는 강철의 대오로 강화발전되게 한 원동력이였다.
일찌기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으로부터 동지획득에 대한 사상을 귀중한 유산으로 물려받으시고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활동을 시작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대전의 불길속에서 혁명적동지애의 고귀한 전통을 이룩하시였다.
뜻을 같이하고 생사를 함께 할 열혈의 동지들을 찾아내고 묶어세워 그 힘으로 조선혁명을 전진시키고 완성해나가시려는 원대한 포부와 혁명적의지를 안으시였기에 그이께서는 카륜에서 조직하신 첫 당조직의 명칭도 《건설동지사》라고 이름지으시였다.
하나의 사상과 뜻, 혁명적의리와 정으로 굳게 뭉친 새세대의 혁명가들로 무장대오의 골간을 꾸리시고 확대해나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시여 강력한 혁명무장력에 의거하는 주체혁명의 새시대를 펼치시였다.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며 갖은 횡포를 부리던 강도 일제였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친 조선인민혁명군의 불패의 힘을 깨뜨릴수도 당해낼수도 없었다.
항일혈전사에 새겨진 우리 수령님의 한없이 열렬한 동지애의 화폭들이 못잊을 추억속에 어리여온다.
1938년 겨울 고난의 행군이 진행되던 시기였다.혈전속에 해가 지고 행군속에 날이 밝군 하던 어느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오랜 기간의 행군과정에 식량이 다 떨어지게 되였다.사령부의 전령병들은 식량난으로 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식사를 보장해드리지 못하는것이 너무도 가슴에 걸려 어느날 아침 배낭을 털어 모은 미시가루를 수령님께 올리였다.
그 미시가루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사령관동지의 건강을 념려하여 넘겨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령병들이 마지막미시가루를 자신에게만 권한다는것을 알고계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문지에 미시가루를 쏟아놓으시고 그들을 옆에 둘러앉으라고 하시였다.전령병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머뭇거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저하는 그들의 손목을 끌어당겨 앉게 하시였다.그러시고는 이것을 한말쯤 되는것으로 생각하고 먹으면 배가 부를거라고 하시면서 종이숟가락을 만들어 그 미시가루를 한사람한사람에게 나누어주시였다.
한홉을 한말로 생각하라고 하셨지만 수천말의 식량도 그이의 말씀속에 담겨있는 무한한 사랑을 대신할수 없다는것을 대원들은 잘 알고있었다.후날 항일혁명투사들은 산해진미가 쌓여진 호화로운 성찬도 그때의 한홉의 미시가루의 맛보다 나을수는 도저히 없다고 감명깊게 회상하였다.
참으로 혁명전사들을 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친어버이의 사랑그대로였다.그 사랑이 천백배의 힘이 되였기에 항일의 투사들은 엄혹한 자연과의 투쟁, 극심한 식량난과 피로와의 투쟁, 무서운 병마와의 투쟁, 간악한 적들과의 투쟁이 하나로 엉켜진 고난의 행군의 모진 시련과 난관을 이겨낸 승리자가 되여 조국진군의 길에 힘찬 보폭을 내짚을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생단》문서보따리를 불태워버리신 이야기는 또 얼마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것인가.
조선인민혁명군의 새 사단을 편성하시기 위하여 1936년 봄 마안산으로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00여명 대원들의 《유죄》를 증명하는 어마어마한 증거물인 《민생단》문서들과 맞다들리게 되시였다.
오랜 시간 《민생단》문서들을 한장한장 검토하시던 그이께서는 그것을 덮어버리시고 《민생단》혐의자들을 찾아가시였다.
《민생단》혐의를 받는 대원들을 한명한명 둘러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연 동무들이 일제를 위하여 여러해동안이나 일부러 사서 고생해왔는가고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시며 억울함과 절망으로 차갑게 식어버렸던 그들의 가슴마다에 불을 지펴주시였다.그러시고는 《민생단》문서보따리를 가져오게 하시고는 100여명 《민생단》혐의자들의 무죄를 선언하시고 그들의 주력부대입대를 선포하신 다음 《민생단》문서장들을 몽땅 불살라버리시였다.
그이께서 지피신 그 불길은 《민생단》문서장들만 태운것이 아니였다.그것은 대원들의 가슴속에 얼어붙어있던 응어리를 순간에 녹여버리고 새로운 삶의 숨결을 안겨주는 재생의 열원이였다.
후날 그때를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참으로 뜻깊은 교시를 남기시였다.
돈이나 리윤추구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리념의 공통성에 의해서 사상의리적으로 결합된 혁명가들의 집단에서 믿음은 그 집단의 통일단결과 공고한 발전을 담보하는 첫째가는 생명으로 된다고 말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혁명대오안에서 조선혁명의 령도핵심에 대한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충성이 보편화되고 그 령도핵심을 중심으로 한 참다운 사상의리적단결이 투쟁과정에 한층 공고화된것은 이런 믿음의 덕이였다고 말할수 있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
항일혁명투쟁사에 무수히 새겨진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 정과 의리의 감동깊은 이야기들을 어찌 한두마디로 다 전할수 있으랴.
열병에 걸린 대원들이 있는 미혼진밀영을 몸소 찾으신 이야기, 2년동안 간수했던 산삼을 넣어 만든 닭곰을 쇠약한 대원에게 먹이도록 하신 이야기, 숙영할 때면 대원들의 신발도 말리워주시였으며 행군중에 지친 대원들의 총과 배낭도 자신께서 몸소 벗겨메시고 걸으신 이야기, 자신의 몫으로 차례진 강냉이알도 들지 않으시고 앓는 대원들에게 주도록 하신 이야기…
어버이수령님께 있어서 전사들은 그 한명한명이 다 자신의 살붙이였다.그이께서는 대원들을 단순히 사령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군직관계에서가 아니라 사상과 뜻, 생사를 같이하는 동지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존재로 여기시였다.때로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한지에서 잠든 대원들을 위해 자신의 모포를 덮어주시고 자신께서는 눈우에서 밤을 새우시였으며 적후에 나간 대원을 기다리시며 식사도 제대로 들지 못하시던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바로 이렇듯 크나큰 사랑과 믿음, 불보다 더 뜨거운 정과 의리를 가슴깊이 간직하였기에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설한풍과 탄우속도 두렴없이 헤치였고 단두대우에 서도 혁명만세를 높이 부르며 적들을 전률케 하였으며 두눈을 잃고도 혁명의 승리를 확고히 내다본것이였다.
너무도 아까운 조선의 청춘들이, 애되고 열정에 넘친 젊은이들이 간고한 투쟁속에서 원쑤의 흉탄에 맞아 쓰러질 때마다 누구보다도 절통해하시며 눈물도 많이 흘리신 우리 수령님,
혈전에 바쳐진 혁명가들의 생명이 너무도 값비싼것이여서 항상 응어리진 마음을 안고 사신분, 한사람한사람 귀중한 전우들이 희생될 때마다 너무 애석하시여 밤새워 눈물속에 추도사를 쓰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실로 항일혁명은 인류가 아직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혁명, 간고성과 치렬성에서 그 어느 시대의 혁명과도 대비할수 없는 풍파사나운것이였다.그 장구한 로정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항일의 투사들이 철통같이 굳게 뭉쳐 투신하였기에 조선인민혁명군은 력량상 대비도 안되는 일제와 맞서 걸음걸음 승리만을 떨치며 조국해방의 력사적성업을 이룩하는 세계사적기적을 창조할수 있었다.바로 그길에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가장 고상한 공산주의적륜리가 이룩되고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한 일심단결은 곧 승리라는 귀중한 진리가 확증되였으며 동지애의 고귀한 전통이 마련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동지애는 해방후에도, 사회주의건설의 년대들에도 뜨겁게 이어지였다.혁명전우들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동지적사랑과 의리는 해방후 조국땅우에 혁명가유자녀학원을 세우시여 혁명렬사들의 자손들이 부모들의 대를 꿋꿋이 이어가도록 하신 사실에도 어려있고 먼저 간 선렬들의 령전에 비문을 쪼아박는 심정으로 집필하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갈피갈피에도 깃들어있으며 항일혁명렬사들의 유해들을 찾아 묘소를 바로잡도록 하여주신 가슴뜨거운 사연들에도 비끼여있다.
대성산혁명렬사릉건설의 나날 수십년세월 심중에 고이 간직하시였던 렬사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되살리시여 100여명의 자료들을 적어 일군들에게 넘겨주신 우리 수령님,
준엄한 싸움의 길에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오래전에 떠나간 혁명렬사들의 형상을 두고 창작가들이 안타까이 모대기고있을 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얼굴생김의 특징들과 성격상특징까지 기록한 자료를 친히 보내주시였고 어느 동무는 지금 살아있는 누구와 비슷하니 참고하라는것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항일혁명렬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우리 당과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
김일성 1985.10.10.》
정녕 대성산혁명렬사릉 친필비에 새겨진 이 글발은 동지애로 전진하고 승리떨치는 성스러운 력사를 창조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동지적사랑과 믿음의 정화인것이다.
동지애로 시작되고 승리하여온 우리 혁명의 력사는 혁명의 년대들을 이어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두리에 천만이 하나의 사상과 뜻으로, 숭고한 도덕의리로 굳게 뭉쳐있기에 우리 혁명의 승리적전진은 확고히 담보되여있으며 백승의 전통은 영원히 이어질것이다.
희세의 위인이시며 동지애의 최고화신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따라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개척하시고 전진시켜오신 주체혁명위업을 동지애로 끝까지 완성해가리라!
이것이 조국해방 80돐을 마중가는 우리 인민모두의 가슴속에 만장약된 신념이고 의지이며 주체조선의 드높은 숨결이다.(전문 보기)
절세위인의 조국해방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주체혁명의 백승의 력사와 전통을 줄기차게 이어나가자 조국해방 80돐기념 중앙연구토론회 진행
탁월한 사상과 백절불굴의 투쟁실천으로 조선혁명의 정로를 개척하시고 자주, 자력의 기치높이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만고의 애국업적은 주체로 존엄높은 공화국의 발전사와 더불어 영원한 생명력을 발휘하고있다.
우리 조국의 자주적발전과 인민의 운명개척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온 뜻깊은 해방의 날을 청사에 특기할 전인민적대경사로 맞이하는 격정과 환희가 세차게 굽이치는 속에 조국해방 80돐기념 중앙연구토론회가 7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최동명동지와 당중앙위원회 부장 주창일동지, 중앙과 평양시안의 당, 행정, 근로단체 일군들, 무력기관, 과학, 교육, 문학예술, 출판보도, 혁명사적부문, 당간부양성기관의 리론선전일군들이 연구토론회에 참가하였다.
우리 인민의 해방성전을 빛나는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여 조선혁명의 백승의 전통을 창조하시고 부강조국건설을 위한 튼튼한 토대를 마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심도있게 해설한 론문들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강윤석동지, 사회과학원 원장 태형철동지, 조선로동당출판사 사장 겸 책임주필 김성찬동지, 내각부총리 전승국동지가 발표하였다.
토론자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혁명의 강위력한 주체적력량을 마련하시여 우리 조국의 제1해방의 날을 안아오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라는데 대하여 론술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은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시고 강화발전시키시여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던 일본제국주의를 격멸하심으로써 조국해방의 력사적대업을 이룩하신 만고의 영웅이시다.
무장한 적과는 오직 무장으로 맞서싸워야 하며 제국주의의 반혁명적폭력은 혁명적폭력으로써만 압승할수 있다는 력사의 진리를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은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수행하여야 한다는 투철한 자주사상과 함께 무장투쟁로선을 제시하시고 주체형의 혁명무력창설로 영웅적인 반일항쟁사의 첫 페지를 써나가시였다.
항일혁명투쟁의 주도적력량인 첫 무장대오의 결성으로 조선혁명의 출발동력이 마련되고 주체형의 공산주의투사들의 진정한 력사적사명이 시작되였으며 제국주의폭제를 타승할 불요불굴의 정신과 강철의 힘이 벼려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전체 조선인민을 망라하는 반일항쟁력량을 축성하시여 조국해방의 력사적대업을 이룩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다.
혁명무력과 함께 전체 인민을 항일혁명투쟁의 주체적력량으로 튼튼히 준비시키고 전민항쟁으로 조국해방위업을 이룩하는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활동의 첫 시기부터 무르익혀오신 구상이고 전략적의도였다.
조국광복회를 창립하시여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을 조국해방투쟁에 힘있게 조직동원할수 있는 튼튼한 담보를 마련해주시고 전민항쟁준비를 위한 전략적방도가 뚜렷이 명시된 호소문을 발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흥, 풍산일대에까지 나가시여 온 강토에 반일의 거세찬 기운이 고조되도록 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무장투쟁과 전민항전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시여 조국해방의 력사적대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고귀한 업적은 주체혁명위업의 승승장구함과 더불어 천추만대에 길이 빛을 뿌릴것이다.
토론자들은 조국해방은 우리 인민의 운명에서 근본적전환을 가져오고 부강조국건설의 새 력사를 열어놓은 거대한 정치적사변이라는데 대하여 해설하였다.
조국해방은 우리 인민이 식민지노예살이에서 벗어나 나라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이고 행복한 새 생활을 창조할수 있도록 한 정치적사변으로 된다.
8.15를 력사적분기점으로 하여 침략자의 발굽에 짓밟혀 망국노의 생활을 강요당하던 우리 인민은 자기 운명을 자기 손으로 개척해나가는 자주적인민으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소중한 조국을 다시는 잃지 않으려는 우리 인민의 열렬한 애국의 마음에 떠받들려 해방후 짧은 기간에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이 성과적으로 수행되고 세인을 놀래우는 전승신화가 창조되였으며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국가가 일떠서게 되였다.
조국해방은 이 땅우에 근로하는 인민이 주인된 진정한 인민의 나라, 부강한 자주독립국가건설의 광활한 길을 열어놓았다.
해방과 함께 우리 나라의 사회발전을 역행시키려던 반혁명세력과 그 사회적지반이 허물어지고 새 조선건설의 강력한 주체가 마련되였다.
조국해방을 계기로 우리 인민들의 구국열의가 건국열의로 승화됨으로써 전체 인민이 애국의 기치아래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더욱 굳게 단결되게 되였으며 이로 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반혁명세력에 비한 혁명력량의 압도적우세가 확고히 보장되게 되였다.
참으로 조국의 해방은 식민지노예의 쇠사슬에 얽매여 불행과 고통을 강요당하던 우리 인민에게 존엄과 권리를 안겨주고 우리 국가의 장성발전사를 자주, 자력으로 줄기차게 수놓아갈수 있는 발판, 도약대를 마련한 거대한 정치적사변이다.
토론자들은 만고의 항쟁사를 개척한 1세대 혁명가들의 고귀한 넋은 영원히 계승하여야 할 정신적유산이라는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오늘 만방에 떨쳐지는 우리 국가의 존위와 명성, 과감하고도 줄기찬 투쟁으로 주체위업의 필승불패성을 립증해나가는 우리 인민의 위대한 정신력은 천고의 밀림속에서 풍찬로숙하며 피로써 혁명을 개척하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한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녔던 숭고한 리상과 투철한 신념,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과 하나로 잇닿아있다.
주체혁명의 계승세대들이 영원히 이어나가야 할 명맥은 만고의 항쟁사를 개척한 1세대 혁명가들이 지녔던 숭고한 리상이다.
백두의 설한풍을 맞받아 력사의 생눈길을 헤치며 혁명을 개척하고 전진시킨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녔던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의 숭고한 리상은 계승자들의 정신적성장의 밑거름이며 우리 혁명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래일의 보다 큰 승리에로 이어놓는 혈맥이다.
선렬들의 숭고한 넋을 이어 누구나 위대한 당중앙의 사상과 로선으로 철저히 무장할 때 그 어떤 시련속에서도 세기를 넘어 나래치는 원대한 리상을 안고 공산주의승리를 향하여 굳세게 싸워나가는 진정한 혁명가가 될수 있다.
주체혁명의 계승세대들이 영원히 이어나가야 할 정신적유산은 1세대 혁명가들이 발휘한 투철한 신념과 불굴의 혁명정신이다.
오직 사령관동지께서만 계시면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 자생자결의 의지로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혁명가들이 항일혁명투사들이며 그 불굴의 넋을 순결하게 계승하여 언제나 승리만을 아로새겨온것이 바로 우리 혁명이다.
누구나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녔던 불굴의 신념을 만장약하고 원대한 리상과 드높은 자신심, 최대의 분발력과 투신력으로 당결정들을 어느 하나도 놓침이 없이, 미결점이 없이 완벽하게 관철할 때 우리식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발전국면은 줄기차게 이어지게 될것이다.
토론자들은 주체혁명의 백승의 력사와 전통을 이어 위대한 김정은강국의 영웅전기를 줄기차게 써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강국념원을 현실로 꽃피워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와 영원히 사상과 뜻을 함께 하는 열혈의 충신이 되여야 한다.
오늘 우리 조국땅우에 펼쳐지고있는 존엄높은 강국시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빛내여주신 이 조선을 천하제일강국으로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웅대한 구상과 확고부동한 결심에 의하여 탄생하고 그이의 심원한 사색과 탁월한 혁명사상에 의하여 전진하며 승리하는 영웅적이고도 거창한 대변혁시대이다.
강국에로 향한 투쟁은 의연히 간고하고 험난하여도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어주신 화살표따라 조국해방의 새 아침을 안아오고 주체의 사회주의를 빛내여온 혁명선렬들처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사상을 백승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애국충성, 부국강병의 한길로 굴함없이 나아가는데 후세토록 무궁할 강국의 진정한 존위와 강자의 명예가 있다.
우리는 간고한 항일전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에 대한 학습을 선차적인 혁명사업으로 내세우던 투사들처럼 총비서동지의 혁명사상을 전면적으로 체득하기 위한 학습열풍을 끊임없이 고조시켜나가야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성스러운 혁명령도에 발걸음을 따라세우며 당중앙의 결정과 지시를 무조건 관철하기 위함에 순결한 량심과 애국적열정을 깡그리 바쳐야 한다.
혁명을 알기 전에 조국과 인민을 알고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애국자가 되여야 한다는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혁명투쟁사가 가르치는 철리이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숭고한 뜻이다.
애국을 떠난 혁명에 대하여 생각해본적이 없으신 절세의 애국자, 애국헌신의 위대한 귀감으로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전인민적투쟁을 진두에서 이끄시는분이 우리의 총비서동지이시다.
모두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거룩한 령도자욱, 애국헌신의 보폭에 자신들을 따라세울 때 주체혁명의 전진과 상승기세를 더욱 고조시켜 거창한 창조와 변혁의 새 전기를 끝없이 빛내여나갈수 있다.
토론자들은 모든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원쑤들과 판가리결전을 벌린 항일선렬들의 투쟁기풍, 애국의 전통을 이어 계속혁신, 련속도약해나감으로써 뜻깊은 올해를 의의있는 성과들이 가득찬 새로운 변혁의 해로 만들어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전체 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만고의 애국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일심전력으로 받들어 주체혁명의 승리적전진과 전면적국가부흥을 위한 오늘의 성스러운 투쟁행정에서 맡겨진 책무를 다해나갈 굳은 결의를 새겨안았다.(전문 보기)
주체의 기치높이 안아오신 위대한 승리
조국해방의 위대한 은인, 만고절세의 애국자를 우러러
력사적인 조국해방 80돐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다.
일제의 총칼밑에 신음하던 이 나라 인민들의 마음에 끝없는 격정과 환희를 불러일으키며 찾아온 조국해방,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자주적인 사상과 로선, 현명한 령도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지금 온 나라 인민은 주체의 기치밑에 조선혁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시고 항일혁명투쟁의 전 기간 자주적립장과 자력독립의 정신을 철저히 구현하시여 우리 인민자체의 힘으로 조국해방의 대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뜨겁게 돌이켜보며 자주는 력사의 정의이고 혁명의 승리이라는 철의 진리를 다시금 가슴깊이 새기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자주의 기치밑에 우리 혁명을 백승의 한길로 이끄시여 현대력사를 새롭게 개척하고 빛내이신 탁월하고 세련된 혁명의 령도자이시다.》
풍치수려한 대동강반에 하늘높이 솟아 빛나는 주체사상탑!
활활 타오르는 주체사상탑의 봉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귀전에 95년전 카륜에서 울리던 위대한 수령님의 힘있는 력사적선언이 들려오는것만 같다.
경험은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기 위하여서는 인민대중속에 들어가 그들을 조직동원하여야 하며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여 해결하려고 할것이 아니라 자신이 책임지고 자기의 실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우리는 이 교훈으로부터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며 조선혁명은 어디까지나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확고한 립장과 태도를 가지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인정한다.
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된 카륜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력사적인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는 명실공히 자주의 리념으로 일관된 불멸의 대강이였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과정에 우리 인민이 겪은 모든 비극은 투쟁의 진로를 밝혀줄 과학적인 지도사상을 가지지 못한탓에 빚어진것이였다.
조선혁명의 성격과 기본임무, 혁명의 동력과 대상, 독창적인 무장투쟁로선을 비롯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카륜회의에서 밝혀주신 모든 로선과 방침들은 조선혁명의 구체적현실로부터 출발한것으로서 혁명실천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담고있으면서도 하나하나가 아직 그 어느 나라에서도 내놓은적이 없는 새로운 정식화들이였으며 우리 인민에게 투쟁의 앞길을 휘황히 밝혀준 등대였다.
세계의 그 어느 위인사를 보아도 우리 수령님처럼 혁명의 개척기에 벌써 혁명투쟁의 전 기간에 지침으로 삼아야 할 정확한 지도사상과 혁명로선을 명시한 그런 위인은 없다.
설사 고전에 없는 정식화이고 남들에게 없는 규정이라도 그것이 자기 나라의 실정에 부합되는 과학적인것이라면 혁명가들은 그것을 서슴없이 선택할줄 알아야 한다는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확고한 결심이고 의지였다.
남들이 다 유격전을 정규전의 보조수단으로 보고있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것을 무장투쟁의 기본적인 투쟁형식으로 확정하신것도 주권도 령토도 자원도 다 빼앗기고 이국에서 혁명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선혁명가들의 실정에 전적으로 맞는 창조적인 결단이였다.
자주의 신념을 지키는 길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길이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구원하고 혁명이 승리하는 길이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것을 각오하시고 주저없이 그길을 선택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홍왜회의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주의 기발을 들고 조선혁명의 주체로선을 견지하고 그 권리를 옹호고수하기 위하여 벌린 대사상전이였다고 쓰시였다.
당시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은 일제의 악랄한 책동에 말려들어 동만에 사는 조선사람들의 70%, 조선혁명가들의 80~90%가 《민생단》이거나 그 혐의자들이라는 극단적인 억지주장을 내흔들며 견실한 조선의 혁명가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수많이 제거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조선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는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자주적권리이다》라는 력사적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민생단》의 발생근원과 그 혐의자문제, 조선혁명의 주체적로선과 투쟁구호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에서 나타난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반혁명적견해와 책동, 그 해독성을 그 누구도 론박할수 없는 철의 론리와 확고한 주견으로 준렬히 단죄하시였으며 이 문제에 대한 혁명적립장, 조선혁명가들의 자주적립장을 명백히 천명하시였다.
온종일 회의를 하고 밤늦게 숙소로 돌아오시여 북만원정에서 만난 촉한의 후유증으로 신고하시다가도 아침이 되면 또다시 론쟁마당으로 나가군 하신 우리 수령님,
만일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결사의 정신으로 좌경분자들의 철권을 짓부시지 않으시였더라면 미친듯이 질주하는 좌경의 무한궤도밑에서 조선혁명은 지리멸렬되고말았을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드팀없는 자주의 신념과 의지가 다시금 천명된 이 회의를 계기로 우리 혁명은 위기에서 구원되고 항일무장투쟁은 주체의 기치따라 힘차게 전진하게 되였다.
몽강현 남패자의 수림속에 억세게 나붓긴 혁명의 붉은기, 신념의 붉은기가 오늘도 우리의 눈앞에 어려온다.
주체의 기치를 추켜들고 무장투쟁의 피어린 길을 헤치며 전진해온 조선혁명의 앞길에 시련과 난관이 겹쌓이지 않은 때가 없었으나 이 시기처럼 전반적투쟁환경과 조건이 엄혹한 때는 일찌기 없었다.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에 한층 박차를 가하였고 《문화토벌》의 간판밑에 《귀순공작》도 대대적으로 벌리였으며 도처에서 혁명조직과 애국적인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책동을 감행하였다.
좌경모험주의가 빚어낸 열하원정의 후과로 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은 백두산서남부일대에 증강된 적의 대병력과 거의 단독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가 믿을것은 장기간의 항일혁명투쟁과정을 통하여 마련한 주체적혁명력량이라는 철석의 의지를 안으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8년 11월 25일부터 10여일간 남패자에서 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을 시급히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일대에 진출시킬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남패자회의를 계기로 하여 조선혁명은 질적으로 한걸음 더 비약하였다.
남패자의 하늘가에 휘날린 신념의 붉은기는 항일의 투사들을 자주정신이 투철하고 백절불굴을 체질화한 혁명가들로 더욱 억세게 자래우고 험난한 혁명의 길을 굴함없이 헤쳐나갈수 있게 한 또 하나의 원동력으로 되였다.
우리가 믿을것은 인민대중의 힘밖에 없다!
인민의 힘을 믿고 그 힘을 하나로 묶어세워 일본제국주의자들과의 혈전을 벌리자!
이런 불변의 의지를 지니시고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조국해방을 이룩할 주체적력량을 튼튼히 꾸리시기 위해 끊임없는 로고를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
소할바령에서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전략적로선과 그 실현을 위한 방침을 제시하신것도 혁명의 준엄한 폭풍속에서 주체적핵심력량이 믿음직하게 준비되였다는 확신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소할바령회의에서 필승의 신심에 넘쳐 혁명승리의 앞길을 휘황히 밝혀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지금도 들려오는것만 같다.
최후승리는 우리의것이며 멸망할자는 오직 일본제국주의강도들이다.모두다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전개하여나가자.
그후 조국해방을 위한 결전을 앞두고 수많은 공작원들을 국내에로 파견하시여 국내항쟁조직들을 철저히 준비시키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는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에서 주체적혁명력량이 일시에 일떠서게 한 근본원천이였다.
1945년 8월 9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과 전체 지휘관, 병사들에게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을 개시할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아안은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총공격에로 넘어가 일제침략군을 격멸소탕하면서 노도와 같이 조국으로 진격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맹렬한 공격과 적극적인 전민항쟁에 의하여 결정적타격을 받은 일제는 총공격전이 시작된지 한주일만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조국해방은 이렇듯 항일대전의 전 기간 확고히 견지하고 강화하여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자주적인 혁명사상과 로선의 빛나는 승리였다.주체적혁명력량의 과감한 투쟁에 의하여 이룩된 고귀한 결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의 불길속에서 마련하시고 우리 혁명의 년대마다에서 필승의 기치로 되여온 자주의 기치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손길아래 오늘 우리 인민의 생명으로, 우리 인민의 넋으로 더욱 힘차게 나붓기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자주의 길에 번영이 있고 승리가 있다.자기 힘을 믿고 제힘으로 앞길을 개척해나가려는 투철한 신념과 의지를 지닌 국가와 인민의 도도한 진군은 그 무엇으로써도 돌려세우거나 멈춰세우지 못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대전의 나날에 높이 드신 자주의 기치는 오늘도 우리 혁명의 영원한 승리의 진로를 밝혀주고있다.
자기의 근본을 잃지 않는 혁명은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한다 해도 좌절을 모르며 언제나 승승장구한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따라 우리 인민은 자주의 기치, 신념의 붉은기를 펄펄 휘날리며 강대하고 존엄높은 내 조국의 창창한 미래를 힘차게 앞당겨올것이다.(전문 보기)
조선혁명의 주체적로선을 확고히 틀어쥐시고 항일혁명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전하는 백두산밀영 사령부귀틀집
《사향가》에 어린 위대한 애국의 세계
조국해방의 위대한 은인, 만고절세의 애국자를 우러러
위대한 조국해방 80돐이 바야흐로 다가온다.
참으로 뜻깊은 우리의 명절, 크나큰 감회와 격정으로 가슴높뛰게 하는 력사의 날이다.
조선혁명의 닻을 올리신 때로부터 20성상 우리 수령님께서 백두의 험산준령을 넘고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항일혁명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안아오신 조국해방의 위대한 사변,
그에 대해 생각할 때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평생 그토록 사랑하시던 한편의 가요가 귀전을 울린다.
우리 수령님께서 친히 지으시고 즐겨부르시던 불후의 고전적명작 《사향가》!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
한없이 유정하고 깊은 서정에 잠기느라니 우리 수령님 항일의 혈전만리에 새기신 성스러운 자욱자욱이 숭엄히 어려오고 그 자욱마다에 어려있는 그이의 열화같은 애국의 세계가 사무쳐와 격정을 금할수 없다.
정녕 《사향가》에는 얼마나 하많은 사연이 실려있는것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혈전의 나날 밀영의 우등불가에서 사랑하는 고향 만경대를 그리시며 대원들의 가슴속에 조국애를 심어주시던 못잊을 이야기, 눈보라 울부짖는 백두광야에서 쓰러진 대원들을 한명한명 불러일으키시며 일제를 무찌르고 기어이 조국을 되찾고야말 의지를 굳히시던 순간들 그리고 한홉의 미시가루도 대원들과 나누시며 고난의 행군을 진두에서 이끄시던 날과 날들…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속에 언제나 세차게 불타오르던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을 떠나 조국해방의 위대한 사변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기에 오늘도 불후의 고전적명작 《사향가》와 더불어 항일전의 나날을 돌이켜보는 우리 인민의 마음은 그토록 뜨거운것 아니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기나긴 세월 인간이 당할수 있는 모진 슬픔과 괴로움을 다 겪으시면서도 오직 혁명만을 생각하시였으며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사향가》는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노래이다.
하지만 노래에는 단순한 그리움만이 아니라 조선혁명의 시원이 어떻게 열리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헤쳐오신 장장 20성상의 항일혈전의 길, 그 자욱마다에 어떤 고결하고 열렬한 사상감정이 놓여있는가에 대한 심원한 대답이 담겨져있다.
우리의 눈앞에 14살 나이에 일제의 총칼밑에 신음하는 조국땅을 뒤에 두시고 압록강을 건느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이 숭엄히 어려온다.
강뚝우에 나딩구는 조약돌을 조국의 표적으로 손에 꼭 감싸쥐시고 조선아, 조선아, 나는 너를 떠난다, 너를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수 없는 몸이지만 너를 찾으려고 압록강을 건는다, 압록강만 건느면 남의 나라 땅이다, 그러나 남의 땅에 간들 내 너를 잊을소냐, 조선아, 나를 기다려다오라고 마음속으로 뇌이실 때 우리 수령님의 심중에 넘치던 열화의 감정과 만단사연을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잊을수 없는 그날을 돌이켜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감회깊이 하신 교시를 우리 삼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갈피에서 더듬어본다.
《찬바람이 불어대는 두 나라 지경에서 신음하는 조국산천을 돌아보니 사랑하는 고향으로, 고향집으로 다시 달려가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때 우리 수령님의 눈앞에 삼삼히 떠오른것은 사립문밖까지 따라나오시면서 옷깃을 여며주고 먼길을 걱정하며 눈물지으시던 할아버님과 할머님의 모습만이 아니였다.
조국에서 보낸 세월은 비록 두해밖에 안되였으나 그 기간에 그이께서 간직하신 가장 귀중한 체험은 우리 인민이 어떤 인민인가를 깊이 리해하게 되신것이였다.
소박하고 근면하면서도 용감하고 강의한 인민, 어떤 곤난에도 굴하지 않는 억센 인민, 례절이 바르고 인정이 풍부하면서도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비타협적인 우리 인민, 바로 그들의 모습에서 그 어떤 힘으로써도 훼손시킬수 없는 인민의 존엄과 강철같은 독립의지를 뜨겁게 감수하시며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런 인민을 잘 조직동원한다면 얼마든지 나라를 찾을수 있으리라는 신심이 우리 수령님의 심중을 꽉 채우고있었다.
기어이 조국을 찾고서야 돌아오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신 그날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진 고생을 겪으시며 항일의 눈보라만리, 혈전만리길을 진두에서 헤치시였다.
얼마나 간고하고 시련에 찬 로정이였던가.
국토를 통채로 강탈당한 조건에서, 정규무력의 지원도, 국가적후방도 없는 상태에서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는 일본제국주의자들과 항전을 벌려야 하였다.총 한자루, 식량과 소금 한줌, 천 한쪼박, 성냥 하나를 얻자고 해도 피어린 전투를 벌려야 하였다.천고의 밀림에서 가랑잎을 이불삼아 덮고 풀뿌리를 씹으면서 일제의 정예무력과 오랜 기간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난관의 고비는 얼마나 많았고 그길에서 겪으신 가슴아픈 희생은 또 얼마였던가.
그 혈로를 진두에서 헤치시는 우리 수령님의 가슴속에 항상 끓어넘친것은 열화같은 조국애였고 그이의 심중에서 세차게 뿜어진 격정의 분출이 바로 불후의 고전적명작 《사향가》였다.
《사향가》를 즐겨부르시며 대원들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을 깊이 새겨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그려볼 때면 잊지 못할 만강의 봄날도 떠오른다.
그러면 1936년 봄 만강의 시내가에서 항일의 녀대원들에게 우리 수령님 배워주시던 《사향가》의 은은한 선률이 귀전에 들려오는듯싶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봄이 각별히 그리운 법이라고 하시며 위대한 수령님 부르신 《사향가》, 그것은 그대로 투사들의 가슴에 흘러들어 빨찌산의 노래로 되였다.
고향을 떠날 때 문앞에서 바래워주던 어머니의 정깊은 목소리와 어린 동생들이 마음껏 뛰노는 모습은 진정 나라를 찾기 위한 싸움길에 나선 항일유격대원들의 가슴을 높뛰게 하는 아름다운 고향, 사랑하는 조국에 대한 감동적인 표상이였다.
밀영의 깊은 밤 우등불가에서 우리 수령님께서 불러주시던 《사향가》는 대원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사랑과 정을 하나로 합쳐주는 그리움의 메아리였다.아름다운 만경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어서 빨리 조국을 되찾고 부모형제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절절한 말씀에서 투사들은 힘과 용기를 백배하며 한목숨 바쳐서라도 기어이 조국해방위업을 성취할 굳은 결의를 가다듬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향가》의 뜻깊은 선률과 함께 가슴마다에 굳게 새겨주신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안고 항일혁명투사들은 사나운 눈보라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역경을 맞받아나갔으며 원쑤들에게 두눈을 잃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소리높이 웨치였다.
진정 《사향가》는 항일혁명투사들모두에게 있어서 조국을 그려보게 하고 조국을 위해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싸우게 한 힘의 원천이였다.항일무장대오가 간고한 혈전의 길에서 주춤없이 앞으로만 힘차게 나아가게 한 귀중한 정신적원동력이였다.
돌이켜보면 정녕 피어린 길이였다.
적들과의 치렬한 전투, 뼈속까지 얼어드는 혹심한 추위, 겹쳐드는 식량난, 무서운 병마와의 투쟁, 혁명가의 신념을 검증하는 복잡한 정세변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의 언덕들에서 순간의 주춤도 없이 백절불굴의 신념과 의지로 만난을 결연히 맞받아나아가신 위대한 수령님의 억척의 의지, 그것은 우리가 주저앉으면 조선이 다시는 소생하지 못한다는 자각이였고 일제를 기어이 조국땅에서 내쫓고 나라의 해방을 반드시 이룩하시려는 비상한 사명감이였다.
혁명의 붉은기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
조국에 무보를 뻗치고 군호를 올리자!
우리 수령님의 가슴속에 간직된 이렇듯 억센 신념은 대원들의 가슴마다에서 그대로 맥박쳤고 그 불굴의 정신에 떠받들려 조국에로의 진격로가 열리였다.
그렇듯 고난에 찼던 나날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감회깊은 추억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계승본)에 이렇게 수록되여있다.
《라자구등판에서 겪은 고생, 두차례에 걸치는 북만원정과 무송원정은 얼마나 간고한 원정이고 고난의 행군은 또 얼마나 곡절많은 행군입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그 모든것을 다 이겨냈습니다.촉한도 이겨냈고 주림도 이겨냈고 그믐밤처럼 캄캄한 절망도 이겨냈습니다.동지들의 희생으로부터 생기는 슬픔과 심장의 동통도 다 디디고 일어섰습니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은 어떤 정황에서도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조국앞에 지닌 사명과 책임, 혁명가의 량심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기때문이라는데 대하여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항일의 혈전만리, 눈보라만리길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억척의 신념으로 간직하고계신 혁명에 대한 책임감과 필승의 의지, 그것은 곧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의 분출이였다.
지금도 《사향가》의 은은한 노래소리를 들으며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앞에 서있느라면 뜨거운 격정속에 어려오는 하나의 화폭이 있다.
조국인민들과 감격적인 첫 상봉을 하신 후 조부모님들이 계시는 고향 만경대를 찾으신 우리 수령님, 눈에 익은 고향집추녀를 바라보시며 어린시절 자장가를 불러주고 입김으로 언손을 녹여주시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신듯 선뜻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였다.
고향을 떠날 때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올 굳은 맹세를 다지시며 씩씩하게 혁명의 길에 나서신 만경대혁명일가분들이시였다.그러나 그분들가운데서 조국으로 돌아오신분은 어버이수령님뿐이시였다.
력사의 그날 만경대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을 부둥켜안으시고 《아버지, 어머니는 어데다 두고 이렇게 혼자 왔느냐. …같이 오면 못쓴다더냐.》라고 하시며 울음을 터뜨리시던 리보익할머님의 모습이 눈물겹게 안겨온다.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력사의 새벽길을 헤쳐가신 아버님과 사랑하는 어머님을 이국의 거치른 광야에 묻으시지 않으면 안되시였던 그 비통한 마음, 혁명전사들이 희생될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며 밀림속 우등불가에서 친히 추도사를 쓰실 때의 가슴아픔…
혁명가로서, 인간으로서 상상할수 없는 뼈저린 아픔도 이겨내시고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으시며 조국해방을 위한 길을 꿋꿋이 헤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의 만단사연이 《사향가》에 그대로 담겨있어 오늘도 사람들 누구나 추억깊이 노래를 되새기며 뜨거움에 목메이는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은 항일전의 장장 20성상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욱자욱을 애국의 넋과 희생적인 분투로 이어오시며 혁명앞에, 인민앞에, 후손만대앞에 영원불멸할 업적을 쌓아올리신 위대한 해방의 은인, 절세의 애국자, 불세출의 위인이시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고귀한 한생을 관통하고있는 혁명의 노래, 영원한 투쟁의 노래 《사향가》!
이 노래를 높이 부르며 우리 인민은 조국해방위업의 빛나는 승리를 안아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세세년년 칭송하고 전해갈것이다.
이 노래와 더불어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승리를 향해 용진 또 용진할것이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따라 위대한 내 조국을 기어이 온 세계가 우러러보는 사회주의강국으로 일떠세울것이다.(전문 보기)
항일의 나날 숙영지에서 투사들이 부르던 《사향가》의 노래소리
오늘도 우리 가슴에 끝없이 울려온다.
– 삼지연대기념비에서
《김일성전집》증보판 제35권 출판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년대순에 따라 수록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총서인 《김일성전집》증보판 제35권을 출판하였다.
전집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1959년 6월부터 10월까지의 기간에 하신 력사적인 연설, 담화, 결론을 비롯한 48건의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사업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 당의 로선과 정책을 깊이 해설침투시키며 그들을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고 당정책관철에로 불러일으키는 조직정치사업입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로작 《강선제강소당단체사업에서 개선하여야 할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모든 문제해결에서 중심고리를 튼튼히 틀어잡고 거기에 력량을 집중하자》등에서 당사업에서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를 철저히 극복하며 당원들의 당생활을 강화하여 그들이 당결정집행을 위한 사업에서 대중의 모범이 되도록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대규모의 중앙공업과 중소규모의 지방공업을 병행하여 발전시켜 사회주의건설을 촉진하고 인민생활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한 과업들이 《지방공업의 가일층의 발전을 위하여》를 비롯한 로작들에 명시되여있다.
로작 《평양시건설사업과 관리운영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 《세멘트를 더 많이 생산하자》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도건설에서 건설부문 지도일군들과 평양시인민위원회 책임일군들의 역할을 높이며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절실히 필요한 세멘트생산을 늘이는데서 나서는 방도적문제들을 밝혀주시였다.
토지리용률을 높이고 가축을 많이 길러 농민들의 생활을 추켜세우며 수산부문에서 여러가지 어로방법을 적용하여 사철 물고기를 많이 잡을데 대한 사상이 로작 《농산과 축산을 발전시켜 조합원들의 생활을 빨리 향상시켜야 한다》, 《수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등에 담겨져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작 《학생들을 기술혁명과 문화혁명에 이바지하는 일군으로 키우자》, 《원산농업대학앞에 나서는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에서 학생들에 대한 사상교양과 기술교육사업을 강화하여 그들을 당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참다운 과학자, 기술자로 튼튼히 준비시킬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사회주의예술의 우월성을 온 세상에 널리 시위하자》, 《병원관리운영사업을 잘하여 근로자들의 건강증진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의 로작들에는 광범한 대중을 예술활동에 널리 참가시키며 유능한 의료일군들을 많이 양성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이 제시되여있다.
전집에는 이밖에도 보통강유원지를 근로자들의 문화휴식터로 잘 꾸릴데 대한 문제, 교통운수부문 일군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결함들을 결정적으로 퇴치할데 대한 문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정신을 가지고 봉사성을 부단히 높일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혁명과 건설의 여러 분야에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들에 명확한 해답을 주는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김일성전집》증보판 제35권에 수록된 로작들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12차전원회의 결정을 높이 받들고 우리식 사회주의의 전면적발전을 앞당기기 위한 총진군에 떨쳐나선 전체 인민의 영웅적투쟁을 힘있게 고무하는 사상리론적무기로 될것이다.(전문 보기)
전승의 력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 사연깊은 고장 서포혁명사적지를 찾아서
서포혁명사적지는 평양시의 교외에 자리잡고있다.세개의 산봉우리가 마주보며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삼봉리(당시)로 불리워진 이 골안은 자연지세가 묘한 곳이였는데 바로 이곳에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가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혁명사적지들을 원상대로 꾸려놓고 새세대들에게 수령님께서 어떤 곳에 계시면서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력사상 처음으로 미제가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시초를 열어놓은 기적을 창조하시였는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사적지를 찾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박미영강사는 어버이수령님의 전승업적을 세상에 널리 전하시려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현명한 손길에 의하여 사람들속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곳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혁명사적지로 빛을 뿌리게 되였다고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서포혁명사적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1950년 12월 27일부터 1951년 1월 5일까지 계시면서 전쟁승리를 위한 전략전술적방침들을 제시하시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시였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1950년 7월 10일부터 9월 21일까지 계시면서 백두령장의 비범한 예지와 슬기를 보여주신 뜻깊은 곳이다.
강사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먼저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업하시던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를 찾았다.당시 어디서나 볼수 있던 소박한 벽돌집이였다.
이곳에 들어선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1951년 신년사를 하신 집무실에도 들리였다.신년사의 내용을 담은 당시의 《로동신문》과 수수한 침대와 책상, 보통의 원탁이 놓여있는 크지 않은 방안을 둘러보느라니 너무나 검소한 이곳에서 위대한 전승사를 마련하신 우리 수령님의 걸출한 위인상이 가슴벅차게 안겨왔다.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건물안에 꾸려진 이곳 집무실에서 우리 수령님께서는 전쟁 제3계단 3차작전의 빛나는 승리를 마련하시였다.그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승리를 안아오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50여건의 내각결정과 최고사령관명령을 비준하여주시면서 전선과 후방의 모든 사업을 조직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51년 1월 1일 작전국장을 집무실로 부르시고 적들의 기도를 분석해주시면서 전선주타격방향에서 행동하는 제1군단에 전투임무를 주어 서울을 해방하고 공격성과를 계속 확대할데 대한 작전적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든 인민군군인들은 1월 1일 18시에 공격으로 이전하여 적들의 반돌격을 격퇴한 다음 린접부대들과의 협동작전밑에 1월 4일 16시에 서울을 해방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이 집무실에서 우리 수령님께서는 전쟁수행에서 제기되는 문제들과 그 집행방도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으며 인민군대 후방부문앞에 나서는 과업들은 물론 위생방역사업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우리는 강사를 따라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 회의실도 돌아보았다.
평범하게만 보이는 책상과 걸상 몇개가 놓여있는 크지 않은 회의실에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사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중요회의들이 진행되였다.
건물을 나선 우리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갱도였다.
콩크리트충진을 하지 못해 석수가 떨어지는 험한 갱도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도 지도하시고 영화도 관람하시였다고 한다.
좁고 습기찬 갱도를 돌아보느라니 제국주의침략세력을 때려부시고 조국의 위대한 승리를 안아오신 우리 수령님께서 너무나 험한 곳에서 크나큰 로고를 바치셨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짐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곳에 계신 나날은 얼마 안되지만 그 기간은 실로 력사에 길이 새겨야 할 잊지 못할 나날이였다.
서포혁명사적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걸출한 위인상이 빛발친 곳이기도 하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 생활하시던 집에 전시되여있는 지도와 라지오, 일과표와 교과서 등 귀중한 혁명사적물들은 우리를 숭엄한 감정에 휩싸이게 하였다.
이 집에 계시는 기간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책상우에 있는 라지오를 통해 최고사령부의 보도를 꼭꼭 들으시는것을 어길수 없는 일과로 삼으시였으며 보도에서 우리 인민군대가 새로운 지역들을 해방하였다는 소식이 나오면 벽에 걸린 지도에서 해방된 지역들을 빠짐없이 찾아내시여 동생분과 함께 빨간 오각별들을 따붙이군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동무들에게 우리 인민군대가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세계전쟁사에 없는 기적을 창조하고있는데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가르치심도 주시고 조국의 귀중한 재부를 소중히 여기는 애국의 마음도 심어주시였으며 우리 인민군대가 지닌 고귀한 희생정신을 따라배우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강사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때 벌써 보여주신 희세의 령장으로서의 뛰여난 천품과 고매한 풍모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1950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곳을 찾으시였다.어리신 우리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수수하게 꾸려진 방안에로 들어가시여 매일 아침 최고사령부의 보도를 들으시고 별표식을 하신 지도를 보여드리시였다.
방안벽에 붙여진 지도에는 빨간 별과 여러가지 수자, 화살표들이 표시되여있었다.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확신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신념이 비껴있는 지도를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채살처럼 뻗어나간 화살표들을 가리키시며 그것은 무엇인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이 부산으로 공격해가는 길이라고 하시면서 부산까지 밀고나가면 띤보다 더 큰 놈을 잡을수 있다고 힘있는 목소리로 대답하시였다.
고개를 끄덕이시며 호탕하게 웃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방에 대단한 전선사령관이 있다고, 벌써 부산해방작전까지 준비하고있다고 하시며 못내 기뻐하시였다.
어리신 나이에 싸우는 조국을 한가슴에 안고계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에서 큰 힘과 고무를 받아안으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사적물마다에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천출위인상이 어리여있고 조국해방전쟁의 하많은 사연들이 뜨겁게 슴배여있는 참으로 뜻깊은 곳이였다.
절세위인들의 체취와 숨결이 력력히 어려있는 이곳 서포혁명사적지야말로 제국주의련합세력과의 가렬처절한 대결전에서 우리가 무슨 힘으로 싸워 위대한 승리를 쟁취할수 있었는가를 생동한 사실자료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력사의 증견자가 아니랴.
우리 조국을 더욱 강대하고 번영하게 하시려 성스러운 혁명령도의 날과 날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승리의 전통은 변함없이 굳건히 이어지며 이 조선은 억년 솟아 빛나리라.
이런 확신을 안고 우리는 서포혁명사적지를 떠났다.(전문 보기)
후손만대에 길이 빛날 인민의 수령의 불멸할 영상 존엄높은 사회주의 우리 국가의 시조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온 나라가 경건히 추모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거 31돐에 즈음하여 온 나라 전체 인민은 존엄높은 사회주의 우리 국가의 시조이시고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이신 어버이수령님을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하였다.
당중앙의 향도따라 주체혁명의 새로운 부흥발전기를 펼쳐나가는 성스러운 려정에서 어버이수령님의 고귀한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여갈 전체 인민의 충성과 애국의 강렬한 열망이 7월의 조국강산에 세차게 굽이쳤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온 민족과 전세계가 우러러받드는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신것은 우리 인민의 최대의 영광이고 자랑이며 후손만대의 행복이다.》
민족최대의 추모의 날인 8일 전국각지의 기발게양대들과 기관, 기업소, 공장, 농장, 학교들에 조기가 드리워졌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주체의 최고성지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그리움의 대하가 끝없이 흘렀다.
위대한 어버이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을 안고 광장에 들어선 근로자들과 인민군장병들, 청소년학생들은 한평생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추켜드시고 전인미답의 험난한 초행길을 헤치시며 주체혁명위업, 반제자주위업의 빛나는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불세출의 대성인들을 우러러 가장 숭고한 경의를 드리였다.
만수대언덕을 비롯한 각지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과 절세위인들의 영상을 모신 모자이크벽화를 찾아 군중들은 영생축원의 꽃바구니와 꽃다발, 꽃송이들을 진정하였다.
전국각지의 일군들과 당원들, 근로자들, 인민군군인들, 청소년학생들이 일터와 초소, 가정들에서 기록영화 《만민이 우러러 칭송하는 우리 수령님》, 《한평생 인민들속에서》, 《인민들은 수령을 노래합니다》를 시청하였다.
기록영화들을 보면서 군중들은 이민위천을 숭고한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위대한 혁명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인민을 위한 사랑의 려정을 끊임없이 이어가신 어버이수령님의 헌신과 로고를 다시금 뜨겁게 되새겨보았다.
각지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고귀한 혁명생애와 만고불후의 업적을 칭송하는 덕성발표모임과 덕성이야기모임이 있었다.
모임들에서 출연자들은 자주, 자립, 자위로 승승장구하는 조선혁명의 백승의 력사에 불멸의 생명력을 주시고 강대하고 무궁번영할 국가건설의 만년기틀을 마련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한평생을 격찬하였다.
그들은 혁명적도덕의리의 최고화신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시여 위대한 수령의 력사가 줄기차게 흐르고있다고 하면서 당중앙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우리식 사회주의의 전면적부흥발전을 위한 총진군을 과감히 다그쳐나갈 결의를 피력하였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위업을 천추만대에 길이 빛내이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당중앙전원회의들의 결정을 철저히 관철하여 당 제9차대회를 승리자의 대회, 영광의 대회로 맞이할 철석의 의지를 가다듬었다.(전문 보기)
숭고한 덕망으로 만민을 품어안으신 자애로운 어버이
인류자주위업에 불멸할 업적을 쌓아올리신 걸출한 위인
오늘 우리 인민과 진보적인류는 온 세계의 자주화를 위해 한평생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면불휴의 로고와 불멸의 업적을 가장 숭엄한 마음으로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은 인류사상사에서 가장 높고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여 인민대중이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개척하며 세계를 개조변혁할수 있는 길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사람, 인민대중을 얼마나 귀중히 여기며 얼마나 그들의 힘을 믿고 발동하는가 하는데 진정한 정치가, 국가지도자의 진가가 있다.그런데 나는 여태까지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을 만나보았으나 좀처럼 그러한 인민의 지도자를 찾아볼수 없었다.그러나 주체사상의 창시자이시며 주체의 령도예술을 체현하고계시는 김일성주석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닌 나는 세계의 정치가, 국가지도자들가운데서 가장 훌륭한분이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주저없이 대답할수 있다.그분은 바로 김일성주석이시라고.》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에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일본의 한 인사의 진심의 고백이다.
참된 생의 길을 찾는 사람이라면 과거경력도, 신앙과 국적의 차이도 불문하고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너그럽고 고결한 인간적풍모는 사람들을 매혹시키였고 그들을 주체사상의 열렬한 신봉자, 자주위업의 투사로 살게 한 자양이였다.
절세위인의 고결한 인품에 매혹된 사람들가운데는 일본로동조합총평의회 의장까지 지낸바 있는 이찌가와 마꼬도도 있다.그는 자본가들의 착취와 억압속에서 로동자들의 생존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일본의 로동운동가였다.
그러나 자본의 전횡으로부터 로동자들의 권리를 지킨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국민의 대표자》임을 표방하는 정부각료들이 하루밤연회비로 수천만금을 탕진하면서도 생의 막바지에서 허덕이는 근로대중의 고통에는 곁눈조차 돌리지 않는것이 자본주의일본의 랭혹한 현실이였다.이러한것들을 보면서 마꼬도는 참다운 인민의 정치가를 찾아 세계 여러곳에 눈길을 돌리였다.
그러던 그가 우리 나라를 처음으로 방문한것은 1958년이였다.
아직 전쟁의 후과를 가시지 못하였건만 사람들은 신심과 랑만에 넘쳐있었고 사회에는 화목한 인간관계가 지배하고있었다.
과연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허리띠를 졸라매는 어려운 실정에서도 그처럼 긍지와 희망을 가지고 생활하게 하는것인가.
그의 이러한 의문은 만경대갈림길에 깃든 이야기에서 어렴풋이나마 풀리였다.백두산에서 풍찬로숙하시며 항일대전을 승리에로 이끄시고 평양에 개선하신 위대한 수령님, 사랑하는 고향집과 조부모님들을 지척에 두시고 강선의 로동계급부터 찾으시였다는 어버이수령님의 고매한 풍모는 그의 가슴에서 크나큰 격정이 끓어넘치게 하였다.
그는 후날 이렇게 말하였다.
《항상 조국과 인민을 먼저 생각하시며 그를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김일성장군님이시야말로 인민들이 우러러모시고 따르는 어버이이시였다.나는 감동에 휩싸여 흐느껴울고 또 울었다.그때의 감격을 정녕 잊을수가 없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기들과 로작들을 탐독하면서 그이의 인품과 덕성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였다.인민의 행복을 위해 온 나라 농촌과 공장을 쉬임없이 찾고찾으신분, 이른새벽 농촌을 찾으시여서는 인민들의 단잠을 깨울세라 밖에서 기다리시고 포전머리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농민들과 농사일을 의논하신 자애로운 스승, 학교를 찾으시면 학생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시고 공장을 찾으시여서는 식당에서 로동자들이 먹는 음식의 맛까지 보신 인자한 어버이, 정녕 그이께서 지니신 인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그 어떤 가식이나 위선으로써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수 없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고매한 인민적풍모에 매혹된 마꼬도는 여러 국제회의에서 우리의 위업을 지지성원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조선방문단을 뭇고 단장으로서 16년만에 우리 나라를 또다시 방문하게 되였다.
그 나날 마꼬도에게는 인생의 더없는 영광이 차례졌다.
마음속으로 흠모하여마지 않던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게 되였던것이다.어버이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가던 마꼬도일행은 깜짝 놀랐다.어버이수령님께서 몸소 현관까지 나오시여 그들을 기다리고계시였던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였다.외국의 평범한 로동자대표단을 위하여 한 나라의 국가주석께서 현관에까지 나와계신다는 사실앞에서 그들모두는 격정에 넘쳐 저도 모르게 만세를 불렀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매 사람과 따뜻이 악수를 나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존안을 우러를수록 그이의 위인적풍모에 완전히 매혹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그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주석께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따뜻함이 있다.주석께서 고생을 많이 해오시였기에 엄하리라고 생각했건만 그런 면은 전혀 없고 대단히 온화하고 곁에 계시기만 해도 안도감을 준다.정말 그이는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이러한 품성을 지니고계시는 령도자는 세상에 없을것이다.》
이것이 어찌 그 한사람에게만 한한것이겠는가.
유럽의 한 인사도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집에 정중히 모시고 주체사상의 신봉자로 한생을 바치였고 아프리카의 한 투사도 《김일성주석의 위대한 령도에 의하여 인류력사의 영광스러운 시대, 주체시대에 살며 투쟁할수 있는 특전과 행운이 우리 세대에게 차례지게 된것이다.진정 김일성주석의 령도를 받는것은 우리모두의 최대의 행복이며 최고의 영예이다.》라고 진정을 터치였다.
세계의 많은 나라 정객들과 인사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세계혁명의 탁월한 수령으로, 한생의 스승으로 우러러따르며 자주의 길에서 삶을 빛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뜨거운 인간애는 그 깊이와 끝을 헤아릴수 없는 가장 열렬하고 진실한 사랑의 정화였고 그 한량없이 넓은 품은 대륙과 대양을 넘어 세상사람들모두를 안아 품어주는 숭고한 인덕의 요람이였다.
하기에 진보적인류는 오늘도 어버이수령님을 자주시대의 영원한 수령으로 우러르면서 끝없이 흠모하고 따르고있다.(전문 보기)
당의 조직사상적강화를 위한 획기적리정표를 마련한 회의
성스러운 우리 당력사의 갈피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당의 조직적사상적강화는 우리 승리의 기초》의 친필원고
우리 당이 수놓아온 성스러운 80년사를 감회깊이 돌이켜볼수록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5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우리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강화하는데서 획기적리정표를 마련해주신 불멸의 업적이 뜨겁게 되새겨진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생애, 혁명력사에서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당중앙위원회 제5차전원회의는 전화의 나날에 세번째로 진행된 당중앙전원회의였다.
1952년말에 이르러 정세는 안팎으로 매우 긴장하였다.
당시 미제침략자들은 대병력으로 모험적인 《신공세》를 감행하여 전쟁에서의 거듭되는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미쳐날뛰였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내부에 잠입한 종파분자들은 암암리에 반당적, 반국가적음모를 꾸미고 당과 정부의 지도적지위를 탈취하려고 더욱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당안의 이러한 형편과 조성된 긴박한 정세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파주의를 청산하고 당을 강화하기 위하여, 적들의 새로운 군사적공세를 짓부시고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하여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할것을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당중앙위원회 제5차전원회의의 준비사업을 하고계시던 어느날이였다.
이날 한 인민군지휘성원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의 악명높은 《신공세》계획을 파탄시키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혁명의 참모부인 당을 강철같은 전투적조직으로 꾸리는데 전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당을 강화하고 전투적조직으로 튼튼히 꾸리기 위해서는 당의 통일단결을 파괴하며 혁명을 내부로부터 좀먹고있는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책동을 철저히 분쇄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그러시면서 어떤자들은 미제가 발광적으로 달려드는 이 엄혹한 시기에 당안에서 사상투쟁을 벌려놓으면 혼란이 생길것이라고 시비질을 하고있는데 우리는 정세가 복잡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또 우리가 더 크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때일수록 당을 강화해야 결정적인 승리를 이룩할수 있다고 단호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사실 엄혹했던 당시의 내외환경으로 보아 적들의 면전에서 당내투쟁을 한다는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더욱 힘있게 벌려야 하며 바로 그렇게 할 때만이 전쟁의 최후승리를 앞당길수 있다는것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철석의 의지였다.
엄혹한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시고 전선과 후방의 모든 부문을 다 돌보셔야 하는 그처럼 긴장하고 바쁘신 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직접 전원회의보고문을 준비하시였다.그리고 쉴새없이 퍼붓는 미제공중비적들의 야만적인 폭격에 단 한명의 손실도 없이 전원회의를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모란봉지하극장을 회의장소로 정해주시고 회의참가자들의 숙식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지도밑에 1952년 12월 15일부터 18일까지 모란봉지하극장에서 당중앙위원회 제5차전원회의가 진행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날회의에서 《당의 조직적사상적강화는 우리 승리의 기초》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보고에서 먼저 국내외정세와 당중앙위원회 제4차전원회의이후 거둔 성과와 나타난 부족점들을 전면적으로 분석총화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더욱 강화하기 위한 강령적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여기에서 당원들의 당성을 강화하며 자유주의적경향과 종파주의잔재를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로선과 당중앙을 겉으로는 받들고 뒤돌아서서는 배반하며 입으로는 다 좋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딴꿈을 꾸며 대면해서는 의리를 지키는척하고도 뒤에서는 딴장난을 하는 종파분자들의 책동에 격분을 금치 못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종파분자들의 이와 같은 행동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그것이 자라서 분파적인 행동으로 발전할수 있다.우리는 오늘 이러한 요소들을 더는 묵과할수 없다.특히 미제국주의무력침범자들과 가렬한 전쟁을 하고있는 오늘 우리는 이러한 종파적행동을 추호도 허용할수 없다.
이날 당강화를 위한 원칙적문제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를 마치시면서 오늘 조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조선인민의 해방전쟁에서 승패는 오직 우리 당의 단결된 위력과 그 향도적역할에 달려있다고,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종국적승리를 위하여, 조선인민의 자유와 광명한 미래를 위하여 우리 당을 조직적으로, 사상적으로 더욱 공고히 하는데 모든 힘을 다하자고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전원회의에서는 보고에 이어 토론들이 진행되였다.
지금도 귀기울이면 당내에서의 종파적행위에 대하여 신랄히 비판하며 종파분자들에 대한 분격을 터치던 토론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여오는듯싶다.
회의참가자들 누구나 한결같이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이 아무리 악랄하게 책동한다 해도 위대한 수령님을 중심으로 한 당의 통일과 단결은 허물수도 깨뜨릴수도 없다고 절절한 심정을 피력하면서 그 어느때보다 수령님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종파분자들의 책동을 분쇄하고 전쟁의 승리를 앞당겨 힘차게 싸워갈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마지막날인 12월 18일에 하신 력사적인 결론에서 우리는 적들의 어떠한 발악적인 만행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굴할수도 없으며 또 굴하지도 않을것이라고 하시면서 현시기 우리 당앞에 나선 중심임무는 당, 정권기관과 인민군대를 강화하는것이라고 엄숙히 천명하시였다.
당중앙위원회 제5차전원회의는 우리 당을 반대해나선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에게 준엄한 철추를 내리고 당의 조직사상적강화와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기는데 적극 기여한 력사적인 회의였다.
전원회의후 전당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제5차전원회의 문헌접수토의사업이 진행되였다.그 과정에 당원들의 당성이 비상히 높아지고 종파주의와 온갖 자유주의적경향을 반대하는 투쟁이 강화됨으로써 오래동안 정체를 숨기고있으면서 우리 당과 혁명에 막대한 해독을 끼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이 청산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제5차전원회의는 혁명이 아무리 준엄하고 그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혁명의 참모부인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강화하고 그 전투적기능과 령도적역할을 백방으로 높여나간다면 혁명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는 고귀한 철리를 깊이 새겨주고있다.
오늘 우리 당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강력하고 세련된 향도의 당으로 그 위용을 더욱 만방에 떨치고있다.
우리 인민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두리에 조직사상적으로, 도덕의리적으로 굳게 뭉쳐 영원히 주체의 한길만을 가고갈것이며 그 성스러운 길우에서 모든 승리와 영광을 맞이할것이다.(전문 보기)
잊을수 없는 향하리의 밤
성스러운 우리 당력사의 갈피에서
오늘 우리 당은 주체혁명위업을 줄기찬 승리와 영광에로 강력히 인도해나가고있으며 불패의 전투력과 원숙한 령도력으로 하여 세계 그 어느 나라 당도 지닐수 없는 절대적권위와 위신을 지니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혁명대오의 굳건한 결속을 수비해온 규률, 당중앙의 령도체계를 확립하고 전당의 조직사상적통일을 지켜온 엄격한 정치도덕적계률과 비타협적인 투쟁이 없었다면 80년의 영광스러운 집권사와 그의 계승과 혁신을 설계하는 오늘도 없었을것이라는 참으로 의미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가르쳐주신바와 같이 우리 당은 창건된 첫 시기부터 당안에 강철같은 기강을 세우기 위함에 언제나 양보를 몰랐으며 무규률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현상에 대하여서는 추호의 타협도 없이 견결히 투쟁하여왔다.
그 빛나는 투쟁사에 대해 생각할 때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향하리의 수수한 산골집에서 이틀밤을 새워가시며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 보고문을 집필하시고 회의에서 당규률강화의 획기적리정표를 마련해주시던 잊지 못할 이야기가 숭엄히 되새겨진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의 통일단결을 백방으로 강화하며 당중앙의 유일적령도밑에 전당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강철같은 조직규률을 확립하여야 한다.》
1950년 12월 어느날 찬바람부는 북방산골의 밤은 소리없이 깊어가고있었다.
허나 그 시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물거리는 초불을 마주하시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보고문을 쓰고계시였다.
창밖에서는 겨울바람이 기승을 부리고 랭기서린 방구석의 구멍들과 틈새들에서는 내굴이 슴새여나왔지만 불빛이 희미한 상우에 수북이 쌓인 원고지들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주옥같은 친필이 나래치고있었다.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시다가 다시 글줄을 달리시기를 그 몇번…
사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도 불멸의 로작을 집필하시던 밤은 한두번이 아니였건만 향하리의 이밤 그이의 심중에는 참으로 하많은 생각이 갈마들고있었다.
당시 모든것이 한방향으로만 지향되여야 할 전시환경에서 우리 당내에는 무규률적이며 자유주의적인 현상들이 배회하고있었으며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경향이 좀처럼 극복되지 못하고있었다.
이자들은 방송시설을 복구하여 방송을 내보낼데 대한 당적과업을 뒤전에 밀어놓고 부화방탕한 생활만 추구하는가 하면 우리 당의 중요문건들도 제멋대로 다 태워버리는 망동도 꺼리낌없이 감행하였다.
당의 요직에 박혀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원회의보고요강을 만들어주시며 회의준비를 하라고 한달이나 먼저 이곳에 보내시였지만 회의준비는 하지 않고 큰 기와집에 틀어박혀 밤낮 술만 퍼마시고 안일하게 지내고있었다.
이러한 무규률적이며 자유주의적인 행동을 방임해둔다면 전쟁에서 승리를 이룩할수 없는것은 물론 우리 당을 백전백승의 향도적력량으로 강화하는 전략적견지에서 보아도 막대한 해독적후과를 가져올수 있었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규률을 약화시키는 온갖 경향들과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실 단호한 결심을 내리시고 이렇게 향하리의 수수한 산골집에서 밤을 새워가시며 직접 보고문을 집필하시는것이였다.
나라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제국주의강적과의 전쟁을 지휘하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우리당 규률강화의 획기적전환점을 마련해주시려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쳐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색을 지켜드리며 일군들은 뜨거움과 죄책감을 금치 못하였다.
새벽이 되여서야 보고문을 완성하신 그이께서는 부관을 찾으시여 벌써 4시가 되였는데 8시부터 회의를 시작하여야 하므로 빨리 이 보고문을 정서시켜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
12월 21일 8시,
우리 당력사에 빛나는 페지를 아로새긴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가 시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회의참가자들에게 뜨거운 답례를 보내시고 《현정세와 당면과업》이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보고에서는 전쟁개시후 매 계단의 군사정치정세와 시기마다 당이 취한 대책 그리고 당의 령도밑에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가 벌린 영웅적투쟁을 전면적으로 분석하고 조국해방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당면한 정치, 경제, 군사적과업들이 제시되였다.
특히 보고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규률을 더욱 강화하며 전당의 통일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과업을 전면에 제기하시였다.
당안에 혁명적규률을 세우는것, 이것이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의 기본핵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규률을 강화하는것은 지금 우리 당사업에서 나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라고 하시면서 당의 명령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는 강력한 규률이 전당을 지배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당규률을 약화시키는 온갖 경향들과 무자비한 투쟁을 전개하며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당규률을 위반하는자는 엄격히 처벌하여야 하겠다고, 이번 전쟁을 통하여 누가 진정한 당원이며 누가 가짜당원인가 하는것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전쟁은 당내의 불순분자, 비겁분자, 이색분자들을 무자비하게 폭로하였다고, 이러한 분자들을 당대렬에서 내쫓고 당을 강화하여야 하겠다고 강조하신 그이께서는 우리 당내에 강한 혁명적기풍을 세움으로써 당의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한 문제들을 밝혀주시였다.
12월 23일 전원회의를 결속하시면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당은 우리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고무자이라고, 오늘 우리 당은 전쟁의 중하를 두어깨에 걸머지고있으며 전체 인민들은 우리 당에 자기의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고있다고 하시면서 혁명적인 당조직규률을 확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들도 제시하시였다.
련 3일간에 걸쳐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를 통하여 우리 당은 온갖 비조직적이며 부정적인 현상들에 제때에 경종을 울리고 당의 성격과 본태를 고수하기 위한 적실한 조치를 취할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로부터 수십년세월이 흐른 후 이 회의를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면서 자신께서 그때 전쟁을 지휘하는 그 바쁜 속에서도 자강도 장강군 향하리의 농촌집에서 밤을 새워가며 보고서를 써가지고 전원회의를 하신데 대하여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제국주의강적과의 전쟁을 지휘하시는 분망하신 가운데서도 수수한 산골집에서 밤을 새워가며 전원회의를 준비하시여 후세에 길이 남을 당규률강화의 획기적전환점을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님.
하기에 잊을수 없는 그 나날을 직접 목격한 한 일군은 후날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우리 당력사에 빛나는 페지를 아로새긴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는 우리 수령님의 정력적인 지도와 열화같은 열정의 산물이였다.조국해방전쟁승리의 새날을 불러오던 그때 수령님께서 지새우신 향하리의 그 이틀밤은 우리모두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의 무한대한 열정의 세계의 일단을 가슴벅차게 체험할수 있은 정녕 잊을수 없는 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불면불휴의 사색과 탐구, 지칠줄 모르는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준비되고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는 당의 조직사상적기초를 튼튼히 다지며 당규률강화의 획기적리정표를 마련한 력사적인 회의로 우리 당력사에 길이 빛나고있다.
오늘 우리 당은 혁명적당건설의 길을 개척하면서 찾아낸 진리와 귀중한 경험들을 계승하여 독창적인 규률건설사상을 5대당건설로선의 하나로 제시하고 당안에 보다 강력한 규률제도를 확립하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키고있다.
조선로동당의 위업은 개척의 뜻도 진리이고 그 승리도 진리이다.
창당의 리념과 정신을 견결히 고수하여 강철같은 규률을 굳건히 확립하고 주체혁명위업의 종국적승리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우리 당의 앞길에는 언제나 승리와 영광만이 있을것이다.(전문 보기)
《김일성전집》 증보판 제34권 출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은 가장 선진적이며 자각적인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들로 조직된 최고형태의 혁명조직입니다.모든 혁명사업에서 선봉적역할을 하는것은 당조직입니다.당안에는 민주주의중앙집권제가 확고히 보장되여야 하며 강철같은 자각적규률이 서있어야 합니다.이것이 없이는 당이 수백수천만대중을 움직일수 없으며 혁명을 전진시킬수 없습니다.》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년대순에 따라 수록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총서인 《김일성전집》 증보판 제34권을 출판하였다.
전집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1959년 3월부터 5월까지의 기간에 하신 력사적인 연설, 담화, 결론을 비롯한 47건의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로작《함경북도당단체들의 과업》, 《정치사업을 모든 사업에 앞세우며 당조직에 철저히 의거하여 사업할데 대하여》등에서 관료주의와 지방주의의 틀을 깨고 당사업을 개선하며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대중의 정치적열의와 창발성을 적극 불러일으키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혁명전통의 생동한 자료들을 가지고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교양할데 대한 사상이 로작 《항일무장투쟁과 관련한 글을 집필하는데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유적, 유물발굴사업에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에 담겨져있다.
로작 《인민군대내 당정치사업에서 교조주의를 반대하고 주체를 세울데 대하여》에는 인민군대내에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여독을 철저히 뿌리뽑고 당정치사업에서 결정적인 개선을 가져오기 위한 강령적과업들이 제시되여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작 《사회주의건설에서 혁명적고조를 계속 견지하며 올해 인민경제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할데 대하여》,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더 많은 철강재를 생산보장하자》등에서 전체 인민을 조직동원하여 사회주의건설에서 앙양을 일으키며 중공업 특히 금속공업과 기계공업에 큰 힘을 넣어 인민경제의 물질기술적토대를 튼튼히 닦을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더 많은 세멘트를 생산하여 건설장들에 보내주며 축산업과 부업경리를 잘하여 산간지대 농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업들이 로작 《생산능력을 늘여 더 많은 세멘트를 생산하자》, 《자연지리적조건을 리용하여 농촌경리를 다각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에 명시되여있다.
로작 《보건일군들은 참된 인민의 복무자로 되여야 한다》에는 모든 보건일군들이 낡은 사상을 개조하고 근로자들을 위하여, 사회주의를 위하여 복무하는 참된 인민의 보건일군이 될데 대한 사상이 밝혀져있다.
전집에는 이밖에도 도시원림화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한 문제, 질좋은 여러가지 사기제품을 많이 생산할데 대한 문제, 출어일수를 늘여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혁명과 건설의 여러 분야에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들에 명확한 해답을 주는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김일성전집》 증보판 제34권에 수록된 로작들은 혁명실천을 통하여 그 정당성과 진리성, 생활력이 뚜렷이 확증된 대백과전서로서 당 제9차대회에로 향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하는 불멸의 전투적기치로 될것이다.(전문 보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에 즈음하여
우리 나라 재외대표부들에서 경축행사 진행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에 즈음하여 중국 심양과 단동, 윁남, 라오스, 몽골, 싱가포르, 이란, 인디아, 캄보쟈, 쿠웨이트, 타이, 파키스탄, 도이췰란드, 로므니아, 벌가리아, 벨라루씨, 스웨리예,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딸리아, 체스꼬, 나이제리아, 남아프리카, 알제리, 에짚트, 에티오피아, 적도기네, 메히꼬, 브라질, 베네수엘라주재 우리 나라 대표부들과 제네바유엔사무국 및 국제기구주재 우리 나라 상설대표부, 유엔주재 우리 나라 상임대표부에서 4월 8일부터 22일까지의 기간에 연회, 경축모임, 영화감상회, 도서 및 사진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였다.
행사들에는 해당 나라 정부, 국회, 정당, 단체, 기관의 인사들과 각국 주재 여러 나라 외교대표들 등이 초대되였으며 우리 나라 대표부 일군들이 참가하였다.
영화감상회들에서는 만민이 우러러 칭송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숭고한 위인상을 담은 영화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사회주의의 전면적발전의 새시대를 펼쳐가는 우리 공화국의 자랑찬 모습, 일심단결로 승리떨쳐온 주체조선의 불패의 기상을 보여주는 동영상편집물들이 상영되였다.
행사들에서는 연설과 발언들이 있었다.
윁남외무성 부상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인민의 자유와 행복, 사회주의위업의 힘찬 전진을 위하여 한평생을 다 바치신 김일성주석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탁월한 령도자이시다.
그이의 령도밑에 조선인민은 부닥치는 도전과 난관들을 이겨내며 기적적인 성과들을 이룩하였다.
오늘 조선인민은 김정은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조선로동당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부강조국건설에 분투하고있다.
조선인민이 《지방발전 20×10 정책》관철에서 커다란 성과들을 거두고있는데 대해 열렬히 축하한다.
인디아인민당 고위지도자와 인디아사회주의통일중심당(공산주의), 전인디아조선친선협회, 인디아주체철학연구위원회 인사들은 김일성주석께서는 자주성을 지향하는 세계 진보적인민들에게 강대한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도 승리할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주시고 그것을 실천으로 증명하시였다고 하면서 위대한 혁명가, 자주정치의 원로이신 위대한 수령님께 탄생일에 즈음하여 가장 숭고한 경의를 드리였다.
그들은 반제투쟁에서 선구자적역할을 하는 조선이야말로 세계 모든 나라들이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이다, 조선이 외세의 군사적위협에 대처하여 자위적국방력강화에 시종일관 선차적힘을 넣고있는데 대해 전적으로 지지한다, 김정은각하의 령도밑에 조선이 보다 강위력한 사회주의국가로 발전되리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하였다.
타이주체사상연구조직 위원장, 타이조선친선협회 위원장, 타이조선친선의원단 성원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사상을 지도적지침으로 한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국가를 일떠세우시였다, 그 어떤 세계적인 정치풍파속에서도 끄떡없이 전진하는 조선의 모습은 주석의 혁명사상의 정당성, 그이께서 건설하신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립증하였다, 위인의 업적은 인류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될것이다, 지금 많은 나라가 《세계화》의 동란속에서 출로를 찾기 위해 조선의 정치방식을 연구하고있다고 말하였다.
파키스탄민족당, 파키스탄조선친선 및 련대성위원회 인사들은 우리 수령님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로, 한세대에 미일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신 강철의 령장으로, 세계정치원로로 호칭하고 김일성주석께서 계시였기에 조선인민은 식민지노예의 운명에서 벗어나 존엄높고 행복한 인민으로 될수 있었다, 인류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바치신 불세출의 위인의 업적은 세기를 이어 길이 전해질것이다고 강조하였다.
벨라루씨정부 부수상과 민족사회주의당(로므니아) 최고리사회 위원장, 로므니아사회주의당 위원장, 로므니아조선친선협회 서기장도 위대한 수령님을 주체사상의 창시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세인이 공인하는 희세의 위인으로 높이 칭송하고 조선의 백승의 요인은 대대로 걸출한 위인을 령도자로 모시였기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선대수령들께서 개척하고 전진시켜오신 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해나가시는 김정은동지의 령도가 있어 조선인민은 제국주의자들의 온갖 도전을 물리치고 반드시 승리만을 떨칠것이다, 조선인민의 복리와 번영을 위한 길에서 보다 큰 성과가 이룩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고 말하였다.
단마르크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친선협회 위원장, 도이췰란드반제연단 위원장과 스웨리예의 공산당, 오스트리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관계촉진협회, 핀란드조선협회 성원들은 절세위인의 조국해방업적, 전승업적을 격찬하고 김일성주석은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 전 생애를 바치신 비범한 사상리론가, 진정한 혁명가, 특출한 국가령도자이시다, 그이의 혁명생애는 우리모두가 따라배워야 할 고귀한 귀감으로 된다고 피력하였다.
그들은 위민헌신의 려정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수재민들의 아픔을 하루빨리 가셔주기 위한 거창한 대작전을 펼치시여 훌륭한 살림집들을 마련해주시고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들과 농촌주택들이 곳곳에 일떠서도록 해주신데 대하여 언급하면서 이 세상에 전무후무한 희한한 현실은 오직 조선에서만 펼쳐질수 있다고 격정에 넘쳐 토로하였다.
이딸리아공산당 총비서, 이딸리아평화와 사회주의운동 총비서, 유럽지역 주체사상연구회 리사장은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나라의 륭성번영과 인민의 행복, 조선식사회주의강화발전에 바쳐진 거룩한 생애이다, 그이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은 자주와 진보에로 나아가는 세계인민들에게 있어서 영원한 투쟁의 기치로 된다, 조선인민은 김정은동지의 령도밑에 주체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길로 꿋꿋이 전진할것이다고 강조하였다.
나이제리아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 전국위원회 위원장, 나이제리아조선친선협회 위원장, 에짚트나쎄르아랍민주당 위원장, 에짚트조선친선협회 위원장, 적도기네민주당 국제부장 등 여러 나라의 각계인사들은 조선혁명과 세계자주화위업수행에 거대한 공헌을 하신 김일성주석께서는 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영생하신다고 말하였다.
김정은각하를 모시여 조선은 세계적인 전략국가로, 불패의 강국으로 위용떨치고있다, 조선이야말로 자주성이 강한 나라, 일심단결의 나라이다고 하면서 그들은 해마다 수십개의 지방공업공장들을 건설하는것만 보아도 조선의 잠재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조선로동당과 정부는 인민을 위한 정말 좋은 정책을 제시하고 실행한다고 찬양하였다.
남아프리카아프리카민족대회, 남아프리카공산당을 비롯한 정당, 정부, 단체인사들은 아프리카나라들을 적극 도와주신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탁월한 정치원로, 참다운 국제주의자의 귀감이시라고 격찬하였다.
그들은 《지방발전 20×10 정책》은 인민을 위한 정치를 펴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각하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인민적인 정책이다,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책동속에서도 지방중흥의 새시대를 열어나가시는 김정은각하는 진정한 인민의 령도자이시다고 격동된 심정을 터치였다.
메히꼬인민사회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브라질공산당 전국정치위원회 위원, 브라질조선친선의원단 위원장과 베네수엘라의 정계, 사회계인사들도 오늘날의 조선은 김일성주석의 업적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자주강국, 정치군사강국의 존엄을 남김없이 과시하며 눈부시게 변모되는 조선의 기적적인 현실이 정말이지 놀랍고 부럽다, 조선과의 친선협조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 존경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밑에 조선인민이 사회주의강국건설에서 보다 큰 성과를 달성하기 바란다고 강조하였다.
여러 나라의 각계인사들 우리 나라 대표부들을 축하방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에 즈음하여 여러 나라의 각계인사들이 해당 나라 주재 우리 나라 대표부들을 축하방문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초상화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초상화,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함께 계시는 영상미술작품에 중국 세계평화기금회, 국제우호련락회, 이란국제태권도협회, 파키스탄태권도련맹, 도이췰란드공산당, 적도기네민주당, 브라질공산당, 선군정치연구쎈터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정당, 정부, 단체, 기관의 인사들이 꽃바구니와 꽃다발들을 진정하고 인사를 드리였다.
한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력사적인 인도네시아방문 60돐과 뜻깊은 4월의 명절에 즈음하여 인도네시아조선친선문화교류협회 위원장과 서기장 등이 이 나라 주재 우리 나라 대표부를 축하방문하였다.
업적토론회 여러 나라에서 진행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에 즈음하여 도이췰란드, 로므니아, 벨라루씨, 이딸리아, 따쥐끼스딴, 쓰르비아에서 4일부터 15일까지의 기간에 업적토론회들이 진행되였다.
해당 나라의 정당, 단체, 기관의 인사들과 군중이 참가한 토론회들에서는 발언들이 있었다.
민족사회주의당(로므니아) 최고리사회 위원장은 위대한 수령님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 조선로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 한세대에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신 탁월한 군사전략가, 세계사회주의운동의 걸출한 령도자로 높이 칭송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 계시였기에 조선혁명은 물론 인류자주위업이 승리의 한길을 따라 전진할수 있었다, 절세위인의 업적은 조선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것이다고 그는 피력하였다.
로므니아조선친선협회 서기장은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해방업적, 전승업적과 건당, 건국, 건군업적을 찬양하고 김일성동지의 업적은 실로 위대하며 영광스러운 공화국의 력사에 빛나게 아로새겨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벨라루씨 위쩹스크주체교육학협회 책임자, 벨라루씨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련대성그루빠 책임자는 위대한 수령님을 비범한 사상리론가, 위대한 혁명실천가,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참다운 국제주의자의 귀감으로 호칭하고 주체사상의 창시로 자주의 새시대를 열어놓으신 절세위인의 업적을 찬양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훌륭히 계승해나가시는 존경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밑에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들이 련이어 창조되고있는 조선의 현실은 자주를 지향하는 나라 인민들에게 새로운 힘과 고무를 안겨주고있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도이췰란드반제연단 위원장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국제적련대성그루빠 도이췰란드집행위원회 성원들은 김일성동지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의 정당성과 생활력은 현실을 통해 뚜렷이 증명되고있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생애의 전 기간 투철한 자주의 사상과 리념을 일관하게 견지해오신데 대하여 격찬하였다.
이딸리아변증법적유물론무신론자들의 조직 위원장, 조선과의 친선협회 이딸리아지부 공식대표는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와 정의,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생애의 전 기간 수많은 고전적로작들을 발표하시여 인류사상발전에 거대한 공헌을 하시였다, 인민의 행복을 꽃피우시려 쉬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신 그이이시야말로 진정한 인민의 수령이시다고 토로하였다.
그들은 조선로동당의 세련된 령도밑에 《지방발전 20×10 정책》관철에서 자랑찬 성과들을 달성하고있는 조선인민이 사회주의건설에서 보다 큰 전진을 이룩하기 바란다, 조선인민의 앞길에 언제나 승리와 영광만이 있을것이다고 강조하였다.
새유고슬라비아공산당, 주체사상연구 쓰르비아전국위원회, 따쥐끼스딴공화국 공산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인사들도 사회주의위업, 반제자주위업실현을 위하여 한평생을 다 바치신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위인상을 격찬하였다.
그들은 주체사상이야말로 시대발전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며 인간의 운명개척에서 시공간적한계를 가지지 않는 위대한 사상이다, 이 사상리론적재부를 마련하신것은 인류를 위해 김일성주석께서 남기신 가장 귀중한 유산이다고 하면서 주체사상이 커다란 견인력을 가지고 국제적판도에서 광범히 연구보급되고있는데 대해 상세히 해설하였다.
여러 나라 인사들 격찬
세계자주화를 위한 성업에 영원불멸할 업적을 쌓아올리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진보적인류의 다함없는 흠모심은 뜻깊은 4월의 명절에 즈음하여 여러 나라 인사들이 보내여온 축전과 축하편지들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에짚트자유사회주의자당 부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김일성주석은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시고 조선인민을 승리의 상징으로 되게 하신 걸출한 위인이시다.
민족의 새 력사를 창조하신 그이께서는 탁월한 사상과 령도로 조선이 자주시대의 등대로 빛을 뿌리게 하시였다.
아랍인민을 지원하여주시고 쁠럭불가담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해 기울이신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헌신을 언제나 잊지 않을것이다.
나이제리아인민진보당 전국위원장, 끼르기즈스딴 《끼르기즈 엘》 인민통일공화국정당 중앙리사회 위원장은 김일성주석각하는 조국의 부강번영과 세계자주화위업실현에 특출한 공헌을 하신 위대한 정치가이시다, 김일성동지는 탁월한 국제활동가, 20세기의 가장 걸출한 수령으로 영생하신다고 찬양하였다.
온 세계가 가장 뛰여난 정치가이시며 사회주의혁명의 지도자이신 김일성동지의 탄생일을 경축하고있다고 하면서 단마르크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친선협회 위원장은 이렇게 지적하였다.
사회주의혁명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경건히 추억하고있다.
그이의 존함은 전세계 진보적인민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여있으며 그이의 방대한 로작들과 리론들은 국제혁명가들의 투쟁의 지침으로 되고있다.
오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정은동지의 탁월한 령도밑에 핵억제력을 보유한 보다 강력한 사회주의보루로 강화발전되였으며 그이께서 계시여 반제자주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은 언제나 승리하고 조선의 사회주의는 승승장구할것이다.
김일성동지의 투쟁유산 만세!(전문 보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에 즈음하여 중국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 경축연회 마련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에 즈음하여 중국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이 14일 경축연회를 마련하였다.
연회에는 팽청화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련락부, 중앙군사위원회, 외교부, 상무부, 국방부, 공안부, 국가국제발전협조서, 인민대외우호협회, 국제우호련락회, 중화전국총공회, 공산주의청년단, 중화전국부녀련합회를 비롯한 관계부문 일군들이 초대되였다.
리룡남 중국주재 우리 나라 특명전권대사와 대사관성원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연회에서는 연설들이 있었다.
리룡남대사는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과 비범한 령도에 의하여 사회주의조선의 양양한 전도가 열리게 되였으며 조선인민은 세계사적인 기적과 승리를 력사에 아로새겨왔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찾아주시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빛내여주신 우리 조국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면적국가부흥시대, 사회주의전면적발전의 새시대에 들어섰다.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시여 우리 공화국의 존엄과 위상은 만방에 더욱 떨쳐지고있으며 우리 인민은 부흥과 번영의 휘황한 진로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고있다.
그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중국의 로세대 혁명가들과 함께 조중친선의 전통을 마련해주신데 대하여 언급하고 중국인민이 습근평총서기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의 령도밑에 사회주의현대화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에서 보다 새롭고 큰 성과들을 끊임없이 이룩하기 바란다고 강조하였다.
팽청화 부위원장은 조선로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 령도자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필생의 정력을 조선민족의 독립과 사회주의건설위업에 바치시였다고 격찬하였다.
김일성동지는 중국당과 인민의 친근한 동지이고 진정한 벗이시며 중조친선의 창시자, 수호자이시다, 그이께서 중조관계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신데 대하여 중국인민은 잊지 않을것이다고 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올해는 조선로동당창건 80돐이 되는 해이며 당 제8차대회가 제시한 목표를 결속짓는 해이다.
우리는 김정은총비서를 수반으로 하는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근면하고 용감한 조선인민이 일심단결하여 사회주의건설위업에서 부단히 새로운 성과를 거두고있는것을 기쁘게 목격하고있다.
특히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인도밑에 조선의 지방경제건설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있다.
조선당과 인민이 국가건설사업에서 새롭고 보다 큰 성과를 거둘것을 충심으로 축원한다.
연회참가자들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건강을 축원하여, 존경하는 습근평동지의 건강을 축원하여 잔을 들었다.(전문 보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에 즈음하여
재중조선인총련합회에서 경축행사 진행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을 맞으며 재중조선인총련합회가 경축행사들을 진행하였다.
15일 길림육문중학교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동상에 재중조선인총련합회와 산하조직들, 재중동포단체들과 동포들이 꽃바구니들을 진정하였다.
참가자들은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며 해외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경모하여 삼가 인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경축 재중조선인총련합회 보고대회가 길림육문중학교에서 진행되였다.
최은복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의장과 부의장을 비롯한 총련합회 일군들과 산하조직대표들, 재중동포단체 책임일군들과 동포들, 심양주재 우리 나라 총령사관 일군들, 동북 3성에서 사업하고있는 우리 공민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또한 중국 길림성인민정부 외사판공실 주임, 길림시인민정부 부시장과 외사판공실 주임, 길림육문중학교 당서기가 참가하였다.
대회는 《김일성장군의 노래》주악으로 시작되였다.
최은복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의장이 보고를 하였다.
보고자는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일군들과 전체 재중조선인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가장 숭고한 경의를 드리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념원을 받들어 인민의 꿈과 리상실현을 위해 끊임없는 심혈과 로고를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최대의 영광과 가장 뜨거운 인사를 삼가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은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일본제국주의를 때려부시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시며 미제의 무력침공을 반대하는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여 한세대에 강대한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불세출의 영웅이시라고 그는 칭송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령도하시여 우리 조국을 자주, 자립, 자위로 존엄떨치는 불패의 강국으로 전변시키시였으며 세계 수많은 피압박인민들에게 투쟁의 앞길을 밝혀주시여 사회주의와 세계자주화위업수행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시였다고 그는 격찬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에 의하여 빛나게 계승발전되였으며 오늘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현명한 령도따라 더욱 승화발전되고있다고 말하였다.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를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헌신의 로고에 의하여 해마다 평양시에는 1만세대의 살림집과 새 거리들이 일떠서고 시, 군들에는 지방공업공장과 보건시설, 종합봉사시설, 량곡관리시설들이, 농촌들에는 현대적인 농촌문화주택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있다고 그는 찬탄하였다.
그는 비범한 예지와 탁월한 령도로 공화국을 백승의 한길로 이끌어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계시여 우리 조국의 미래는 언제나 밝고 창창하다고 하면서 위대한 어머니 내 조국의 부흥발전을 위하여 애국의 마음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경애하는 원수님의 혁명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어 경축공연과 연회가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드리는 축하편지를 채택하는 모임이 13일 중국 심양시에 있는 재중조선인총련합회 회의실에서 진행되였다.
한편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중남지구협회를 비롯한 산하조직들에서도 다채로운 경축행사들이 진행되였다.
경축모임 여러 나라에서 진행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에 즈음하여 먄마, 노르웨이, 단마르크, 벌가리아, 스위스, 스웨리예, 영국, 오스트리아, 핀란드, 메히꼬에서 3일부터 12일까지의 기간에 경축모임이 진행되였다.
해당 나라의 정계, 사회계인사들과 군중이 참가한 모임들에서는 발언들이 있었다.
먄마기자협회, 벌가리아조선친선협회, 스위스조선위원회, 오스트리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관계촉진협회 인사들은 해마다 4월의 명절이 오면 세계 이르는 곳마다에서 절세의 위인이신 김일성주석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의 정이 더욱 고조된다고 말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은 조선을 승리와 영광에로 이끄신 걸출한 수령이실뿐 아니라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희세의 정치가이시며 반제자주위업실현에 불멸의 공헌을 하신 20세기 위인중의 위인이시라고 그들은 칭송하였다.
그들은 김일성주석께서 마련하신 자주, 자립, 자위의 강위력한 토대가 있어 조선이 세기를 이어오는 제국주의자들의 끈질긴 제재압살책동속에서도 끄떡없이 사회주의길을 따라 줄기차게 나가며 세계를 놀래우는 기적들을 련이어 창조하고있다고 격찬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 개척하시고 김정일령도자께서 전진시켜오신 주체혁명위업은 김정은각하에 의하여 굳건히 계승되고있다, 김정은각하의 령도밑에 조선에서 일어나고있는 거창한 변혁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고 그들은 언급하였다.
그들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인민사랑의 전설이 수많이 꽃펴나고있는 조선이야말로 진정한 인민의 나라이다, 김정은각하의 령도가 있어 조선에 인민의 리상사회가 멀지 않은 앞날에 펼쳐지게 될것이다고 강조하였다.
영국주체사상연구소조 위원장은 김일성주석의 가장 빛나는 업적들중의 하나는 바로 조선의 사회주의를 다른 나라의것을 본딴것이 아닌 오직 주체사상에 기초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로 건설하신것이라고 말하였으며 영국신공산당 총비서는 어버이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고 절세위인의 고매한 풍모에 감복했던 잊지 못할 나날에 대해 감회깊이 추억하였다.
메히꼬인민사회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고귀한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국가방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여 나라의 자주권을 믿음직하게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시는데 대하여 상세히 언급하였다.
노르웨이공산당 외스트폴드주위원회 위원장, 단마르크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친선협회 위원장, 스웨리예조선친선협회 위원장, 핀란드공산주의자동맹 국제비서는 주체의 광휘로운 빛발로 인류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고 조선혁명과 세계사회주의위업의 승리적전진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신 우리 수령님을 비범한 사상리론가, 위대한 실천가로 호칭하였다.
그들은 조선의 현대력사는 김일성주석의 존함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위인의 업적은 김정은동지께서 이끄시는 오늘의 력동적이고 강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석을 이루고있다고 찬양하였다.
참으로 김일성주석은 조선인민과 세계인민들에게 있어서 위대하고 강력한 령도자이시였다, 그이의 업적은 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것이다고 그들은 강조하였다.
그들은 김정은동지의 탁월하고 세련된 령도밑에 조선이 그 어떤 제국주의침략세력도 감히 덤벼들지 못하는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 위용떨치고있는데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조선은 인민들이 문명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주의강국을 반드시 일떠세울것이다고 하면서 령도자의 두리에 하나로 뭉쳐 부흥강국건설을 다그쳐나가는 조선인민과의 련대성운동을 보다 적극화해나갈 결의들을 피력하였다.
노르웨이, 단마르크, 스위스, 스웨리예, 영국, 핀란드에서 진행된 경축모임에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올리는 축전이 채택되였다.
브라질정당, 단체들 인터네트련합토론회 진행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에 즈음한 브라질정당, 단체들의 인터네트련합토론회가 11일에 진행되였다.
《희세의 위인 김일성주석》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는 브라질공산당, 브라질선군정치연구쎈터, 제인민간의 평화와 련대성을 위한 브라질쎈터, 조선과의 친선협회 브라질지부를 비롯한 정당, 사회단체, 주체사상연구조직, 조선인민과의 친선 및 련대성단체 인사들과 성원들이 참가하였다.
토론회에서는 브라질공산당 전국정치위원회 위원, 브라질선군정치연구쎈터 위원장 등이 토론하였다.
토론자들은 한세대에 두 제국주의강적을 타승하시고 세계사회주의운동의 강화발전과 반제자주위업의 승리적전진을 위하여,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활동하신 김일성주석이시야말로 이 세상 그 어느 위인도 이룩할수 없는 거대한 업적을 쌓아올리신 20세기의 가장 걸출한 정치가, 희세의 령장이시라고 높이 칭송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생애의 전 기간 수많은 나라의 정당지도자들과 국가수반들을 만나시여 혁명투쟁의 길로 이끌어주시였다, 그이는 자주를 지향하는 나라 인민들의 민족해방투쟁과 새 사회건설을 물심량면으로 도와주신 세계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시다고 그들은 토로하였다.
토론회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대외활동을 담은 동영상편집물이 상영되였다.
이딸리아정계인사 담화 발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에 즈음하여 이딸리아평화와 사회주의운동 총비서 로베르또 가브리엘레가 1일 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는 《세계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이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뜻깊은 4월의 명절에 즈음하여 세계 진보적인류는 조선인민의 걸출한 수령이시며 위대한 혁명가이신 김일성주석의 한평생을 경건히 돌이켜보고있다.
주석께서는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품으시고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였다.
주석께서는 무장으로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고귀한 철리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시고 간고한 항일대전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마침내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시였다.
1950년대 미제가 일으킨 조선전쟁에서는 비범한 군사적예지와 탁월한 령군술로 제국주의를 타승하시고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시였다.
실로 김일성주석은 조선의 자유와 독립,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치신 위대한 수령, 인민의 어버이이시다.
주석께서는 생애의 전 기간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들과 운명을 같이하시였으며 조선을 인민이 주인된 나라,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국가로 건설하시였다.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그이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칭송하고있다.
오늘 조선인민은 김일성주석과 김정일령도자의 위업을 훌륭히 계승해나가시는 김정은동지의 두리에 굳게 뭉쳐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투쟁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있다.
이딸리아평화와 사회주의운동은 절세위인들의 업적을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널리 소개선전하며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가는 조선인민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할것이다.(전문 보기)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태양절에 즈음하여 당과 정부의 간부들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숭고한 경의 표시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이 향도하는 전면적국가부흥의 력사적대업을 실현하기 위한 성스러운 려정에서 우리 인민은 사회주의조선의 영원한 영상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을 뜻깊게 맞이하고있다.
주체혁명의 영생불멸할 지도사상을 창시하시고 자주, 자립, 자위로 강대하고 존엄높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만년주추를 다져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후의 업적은 새시대의 거창한 변천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력을 발휘하고있으며 혁명의 대성인에 대한 우리 인민의 절절한 그리움과 경모심은 세월이 흐를수록 강렬해지고있다.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태양절에 즈음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인 박태성동지, 최룡해동지를 비롯한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당중앙위원회 일군들, 성, 중앙기관, 무력기관 책임일군들이 15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우리 당과 국가, 인민의 영원한 수령들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태양궁전은 숭엄한 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립상에 김정은동지의 존함을 모신 꽃바구니가 진정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들이 진정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립상을 우러러 참가자들은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영생홀들을 찾은 참가자들은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영생축원의 인사를 삼가 드리였다.
전체 참가자들은 위대한 주체혁명위업을 백승의 한길로 줄기차게 인도하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를 일심전력으로 받들어 우리 국가의 륭성번영과 인민의 복리를 위함에 무한히 헌신분투해나갈 철석의 의지를 가다듬었다.(전문 보기)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한 4월의 봄명절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태양절을 온 나라가 뜻깊게 경축
위대한 당중앙의 향도따라 반만년력사에 특기할 기적과 변혁의 시대, 전면적국가부흥의 새 전기를 열어나가는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전체 인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을 환희롭게 경축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온 민족과 전세계가 우러러받드는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신것은 우리 인민의 최대의 영광이고 자랑이며 후손만대의 행복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주체의 최고성지 금수산태양궁전으로 인민의 다함없는 경모의 대하가 끝없이 굽이쳤다.
뜻깊은 4월의 명절과 더불어 인민의 충정이 차넘치는 광장에서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은 우리 인민이 세세년년 긍지높이 경축하는 민족최대의 경사의 날이 있어 강국조선의 승리와 후손만대가 번영할 래일의 아름다운 꿈과 희망도 영원히 담보되여있음을 절감하며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가장 숭고한 경의를 삼가 드리였다.
만수대언덕을 비롯하여 전국각지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에 일군들과 근로자들, 인민군장병들, 청소년학생들이 꽃바구니와 꽃다발, 꽃송이들을 진정하였다.
그들은 한평생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뜨겁게 되새기며 위대한 수령님의 후손,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 제자로서의 사명과 본분을 다해나갈 결의에 넘쳐있었다.
유서깊은 만경대고향집을 찾은 군중들은 우리 인민이 받아안은 수령복이 얼마나 위대하며 천만년 빛날 조선의 영광, 민족의 대행운이 얼마나 큰가를 뜨겁게 새겨안았다.
4월의 봄명절을 맞으며 전국의 원아들과 어린이들, 소학교학생들이 은정어린 선물을 받아안았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을 사회주의제도의 상징으로 빛내여주는 위대한 당의 품속에서 더 활짝 꽃펴난 새세대들의 행복넘친 모습은 명절의 기쁨을 더해주었다.
수도와 각 도(직할시)들에서 진행되고있는 사진전람회장을 돌아보면서 참관자들은 국정의 첫자리에 언제나 인민을 놓으시고 인민을 위한 사색으로 위대한 령도의 날과 달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시여 우리 조국의 영광은 만대로 이어질것이라는 확신을 더욱 깊이 간직하였다.
평양과 지방의 곳곳에서 태양절을 경축하는 공연무대들이 펼쳐져 명절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인민문화궁전, 동평양대극장 등 수도의 극장, 회관들에서는 제9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이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공연들에서는 절세위인들의 애국념원, 강국념원을 꽃피우기 위한 성스러운 길에서 불굴의 힘의 원천이며 백승의 기치인 수령의 노래, 위인칭송의 노래를 더 높이 부르며 끊임없는 기적과 위훈을 창조해나갈 인민의 불같은 열의가 세차게 분출되였다.
각지 기관, 기업소, 공장, 농장 등의 예술소조원들은 기념비적송가들과 시대의 명곡들을 축전무대에 올려 대를 이어 수령복을 누려가는 한없는 자긍심을 격조높이 구가하였다.
공장과 농장, 어촌과 산골마을 그 어디에나 천출위인들의 위대한 사랑의 자욱이 새겨져있고 쉬임없이 이어가신 현지지도의 길우에 인민의 행복이 꽃펴났음을 감동깊게 펼쳐보인 종목들은 관람자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중앙예술단체 등에서 펼친 야외공연도 근로자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며 4월명절을 이채롭게 장식하였다.
평안남도, 평안북도, 황해남도, 강원도, 함경남도를 비롯한 각지에서도 예술공연들이 진행되였다.
당의 령도따라 사회주의문명의 새 경지를 개척해나가며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사람도 산천도 몰라보게 변모되는 거창한 변혁의 시대를 맞이한 인민의 행복한 생활과 보람찬 로동의 기쁨을 생동한 예술적화폭으로 펼친 공연들은 관람자들의 절찬을 받았다.
경축의 환희와 격정은 각지 청년학생들과 근로자들의 무도회장들에도 차넘쳤다.
당의 정력적인 령도밑에 새로운 문명개화기를 상징하며 현대적으로 일떠선 문수물놀이장, 자연박물관을 비롯한 문화정서생활기지들에서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끝없이 울려나왔다.
사회주의문명의 별천지로 솟아난 송화거리, 화성거리, 림흥거리를 비롯한 수도의 거리들에 황홀한 불야경이 펼쳐져 경축분위기를 더해주었다.
당의 은정속에 만복의 터전으로 훌륭히 전변된 북부국경 신의주시, 의주군의 새집들, 검덕의 산악협곡도시, 농촌진흥의 새시대가 안아온 각지 농촌마을들의 창가마다에서도 뜻깊은 명절을 노래하는 인민의 마음인양 정다운 불빛들이 꺼질줄 몰랐다.
수도의 옥류관, 청류관과 해주의 옥계각, 함흥의 신흥관, 사리원의 경암각을 비롯한 급양봉사단위들에서는 특색있는 명절봉사로 인민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민족의 무궁한 영광과 인민의 복된 삶을 안아온 뜻깊은 4월의 명절을 성대히 경축하며 온 나라 전체 인민은 위대한 당중앙의 령도를 일심충성으로 받들어 절세위인들의 최대의 애국유산인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더욱 분투해나갈 혁명적열정에 충만되여있었다.
【조선중앙통신】
인풍언덕에 굽이친 충성과 보답의 맹세
뜻깊은 4월의 명절을 맞이한 자강도인민들이 인풍언덕으로 올랐다.이들모두의 가슴마다에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이 끓어넘치였다.
도안의 인민들은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을 우러러 삼가 인사를 드리였다.
인풍언덕에서 우리와 만난 한 주민은 어머니당의 대해같은 사랑과 은정속에 황홀한 새 집을 받아안았다고 하면서 격정에 넘쳐 이렇게 토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빛내여주신 우리 조국, 오늘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세상에 부럼없는 만복을 꽃피워가시는 귀중한 이 땅을 대를 이어 굳건히 지키고 더욱 빛내여갈 결심이 굳어집니다.》
도당위원회의 한 일군은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지만 우리 인민처럼 복받은 인민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위민헌신의 길을 끝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뜻을 받들어 인민의 참된 심부름군이 되기 위하여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이것이 어찌 이들만의 심정이라고 하랴.
자강도의 인민들모두가 터치는 충성과 보답의 목소리이다.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4월명절의 아침 도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엄숙히 맹세다졌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념원을 빛나는 현실로 꽃피우며 강국의 존엄과 국력을 온 세상에 떨쳐가는 오늘의 투쟁에 한몸 다 바쳐나가겠습니다!
특파기자 고철명
성황리에 진행되는 미술전람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3돐을 맞으며 량강도미술전람관에서는 도미술전람회가 성황리에 진행되고있다.
전람회장에 전시된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형상한 작품들은 참관자들로 하여금 우리 수령님께서 헤치신 항일의 혈전만리를 다시금 가슴뜨겁게 새겨보게 하고있다.
유화 《백두산의 아침》, 《백두산천지》, 《백두산으로 가는 길》, 아크릴화 《백두산》…
백두전구에 천리준마의 말발굽소리를 높이 울려주시고 온 나라를 《백두산대학》의 성스러운 교정으로 불러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숭고한 뜻을 되새겨주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반영한 작품들도 있다.
얼마나 깊고깊은 력사의 만단사연을 안고있는 백두산인가.
백두산은 나의 청춘시절의 《집》이였다고, 어린시절의 고향집식솔에 비할수 없는 많은 식솔들이 나와 함께 거기서 지내며 백두산의 눈비를 맞았고 오늘의 조국을 꿈꾸었다고 회고록에 쓰신 위대한 수령님.
…
하기에 전시된 작품들을 돌아보며 사람들 누구나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있는것이다.
절세위인들의 거룩한 존함과 더불어 빛나는 백두산, 언제나 백두의 기상을 안고 투쟁해나가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따라 이 땅우에 번영하는 사회주의강국을 반드시 일떠세우리라.
바로 이것이 전람회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철석의 의지이다.
특파기자 전철주
녀맹일군들과 녀맹원들의 무도회 진행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탄생 113돐경축 녀맹일군들과 녀맹원들의 무도회가 15일 개선문광장에서 진행되였다.
전면적국가부흥의 력사적대업실현을 위한 전인민적진군길에서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을 맞이한 녀성들의 기쁨과 환희가 무도회장에 차넘치였다.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며 혁명의 대성인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이 뜨겁게 굽이치는 속에 노래 《태양절 봄명절》로 무도회가 시작되였다.
뜻깊은 4월의 명절이 있어 사회주의조선의 륭성번영과 후손만대의 행복이 마련될수 있었음을 다시금 깊이 새겨안으며 참가자들은 《만경대의 노래》, 《내 나라는 영원한 수령님 나라》를 비롯한 노래에 맞추어 경축의 춤바다를 펼치였다.
참가자들은 이 땅우에 참다운 녀성중시의 화원을 펼쳐주신 절세위인의 품속에서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억세게 떠밀고나가는 힘있는 력량으로 자라난 한없는 긍지와 자부심을 춤가락마다에 담았다.
노래 《꽃놀이》, 《옹헤야》, 《우리의 사회주의 세상에 으뜸일세》 등의 노래선률에 맞추어 춤률동을 이어가는 참가자들의 얼굴마다에는 인민의 꿈과 리상이 눈부신 현실로 펼쳐지는 사회주의 내 조국, 존엄높은 강국의 공민된 크나큰 영예와 긍지가 어려있었다.
위민헌신의 숭고한 뜻과 의지를 지니시고 비범특출한 령도력으로 부흥의 새시대를 줄기차게 열어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신 끝없는 영광과 행복을 더해주는 노래들이 울려퍼지며 무도회분위기는 고조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위대한 당중앙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우리식 사회주의의 전면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애국성업에 참답게 이바지해나갈 녀맹원들의 의지가 세차게 분출된 무도회는 노래 《인민이 사랑하는 우리 령도자》로 끝났다.
【조선중앙통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