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의 한생은 신념으로 빛난다 -혁명렬사 류경수동지의 서거 60돐에 즈음하여-
신념과 의리로 하는것이 혁명이며 신념과 의리로 하여 빛나는것이 혁명가의 인생행로이다.
이것은 조선혁명의 전력사적과정을 통하여 확증된 진리이다.
폭풍사나운 20세기를 주름잡으며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안아왔고 사회주의성공탑을 쌓아올린 우리 혁명은 당과 수령에 대한 고결한 충정을 신념과 의리로 간직한 참된 혁명가들에 의해 수호되고 전진하여왔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진정한 동지, 전우가 되여 주체혁명위업수행의 길에 뚜렷한 자욱을 남기고 영생의 언덕에서 삶을 누리고있는 혁명선렬들은 그 얼마인가.
비록 심장의 고동은 멈추었어도 오늘도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을 당과 조국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로 고무하고있는 열혈혁명가들의 전렬에는 항일혁명투사 류경수동지도 있다.
주체83(1994)년 6월 어느날이였다.
밤이 이슥할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 황순희동지를 전화로 찾으시였다.밤늦게까지 일하고있는 그의 건강을 념려하시며 항일의 그 나날처럼 불같은 정열로 살고있는 녀투사를 고무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 회고록 6권이 새로 세상에 나간다고, 여기에서 자신께서는 류경수동무에 대하여 썼다고, 금방 원고를 탈고하고 수화기를 들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순간 녀투사는 말할수 없는 감격과 흥분에 목이 꽉 메여와 수령님, 고맙습니다라고 겨우 한마디 말씀밖에 올릴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회고록에서 류경수동무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고 하시면서 그 대목을 친히 읽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가의 신념과 의지를 두고 론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 전렬에 류경수와 같은 사람들을 세우군 한다.자기 수령이나 지도자의 사상을 신념으로 삼고 그 신념을 고수하기 위해 한생을 곧바르게 걸어가는데서 류경수는 만사람이 따라배울만 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혁명적신념과 의지를 체질화한 불굴의 투사, 이것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늘 마음속에 새겨두고계신 류경수동지의 모습이였다.
하다면 그 어떤 난관과 시련도 굴함없이 맞받아나간 참된 혁명가로서의 류경수동지의 불변의 신념과 억센 절개는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것이였던가.
류경수동지는 민족수난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웠던 주체4(1915)년 9월 9일 함경남도 신흥군의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그러나 사람들이 생일을 물을 때면 그는 늘 1933년 9월의 어느날을 짚군 하였다.
그것은 류경수동지의 생애에서 이날이 가장 잊을수 없는 귀중한 추억을 남긴 날이기때문이였다.
동녕현성전투직후인 주체22(1933)년 9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류경수동지를 친히 만나주시고 고향이며 나이에 대하여 물으시였다.그러시고는 10대의 나이에 결사의 의지를 안고 항일전에 나선 그의 소행을 기특히 여기시여 어린 혁명가라는 고귀한 칭호를 안겨주시였다.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낯설은 이국땅에서 지주집머슴살이를 하여야만 했던 류경수동지에게 있어서 어린시절의 추억이란 나무짐을 지고 장에 갔다올 때마다 사립학교창문밑에 쭈그리고앉아 교원이 칠판에 쓰는 글을 나무가치로 열심히 따라쓰던 서글픈 회억이였다.애국의 뜻을 품고 결연히 투쟁에 나섰으나 감옥살이까지 하면서 모진 고초를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 류경수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항일혁명투쟁에 참가하면서부터 혁명가로 어엿하게 성장할수 있었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