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조일관계/朝日関係’ Category
소식 : 세상을 기만하는 일본의 허황한 랍치소동
일본정부는 5월 19일 유엔에서 랍치문제에 관한 화상토론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6월 29일 일본이 미국, 오스트랄리아, 유럽동맹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화상토론회에서는 일본내각관방장관의 기조강연에 이어 랍치관련단체, 비정부기구 관계자들이 발언하는것으로 국제적인 련대의 중요성을 호소할것이라고 한다.
한편 5월 21일 미국주재 일본대사관은 화상토론회에 유엔주재 각국 대표부들과 랍치피해자가족, 인권전문가 등을 초청하는 공보문까지 내돌리였다.
명백히 하건대 랍치문제는 우리의 성의와 노력에 의하여 이미 되돌려세울수 없이 완전무결하게 해결되였다.
일본이 랍치문제를 대내외적으로 여기저기 구차스럽게 들고다니며 구걸외교, 청탁외교를 일삼다 못해 이번에 유엔무대에서까지 반공화국모략소동을 벌려놓으려고 꾀하고있는것은 지난 세기 40여년동안 우리 나라를 불법,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840만여명의 조선인강제랍치련행, 100여만명의 조선인학살, 20만명의 녀성들에 대한 일본군성노예살이강요 등 천인공노할 특대형반인륜범죄를 어떻게 하나 은페해보려는데 그 흉심이 있다.
또한 여기에는 스가내각의 집권연장을 위한 정략적타산도 깔려있다. 스가정권은 선임자인 아베가 랍치문제를 장기집권에 써먹은 수법을 그대로 재현하여 세계적인 악성전염병사태와 그로 인한 경제침체로 초래된 정권위기를 모면해보려 하고있다.
일본이 랍치문제를 물고늘어질수록 인류의 정의와 량심앞에 저들의 추악성과 불순한 기도만을 더더욱 드러내놓을뿐이다.
이번에 일본은 랍치문제는 더이상 조일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사람들자체가 인정한것처럼 우리에 대한 적대적거부감이 골수에 찬 자들과 《랍치산업》에 명줄을 걸고있는 세력들이 야합하여 꾸며낸 일본내부의 문제라는것을 다시금 세상에 증명해보였다.
랍치간판을 전면에 내들고 극악무도한 반공화국적대행위를 꺼리낌없이 감행하고있는 일본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다.
일본의 간교한 속심을 가려보지 못하고 맞장구를 치는 나라들도 이번 놀음으로 초래될 부정적후과에 대해 숙고하고 자중해야 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리병덕
소식 : 성노예범죄의 정당화는 인권유린의 극치
일본의 정객들속에서 20세기 전반기 수십만명에 달하는 녀성들에게 성노예생활을 강요한 범죄의 력사를 덮어보려는 발언들이 끊기지 않고있다.
최근 내각관방장관과 외상을 비롯한 일본의 정계인물들은 국회 등의 공식석상에서 《위안부강제모집이 존재한다는 보도는 사실과 모순된다.》, 《유사시에는 녀성들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부당한 행위가 일어나기 마련이고 세계적으로도 례사로운 일이다.》는 등으로 일본군성노예범죄를 부정하는 발언들을 공공연히 늘어놓았다.
정부의 주요직을 차지한 위정자들의 발언들은 초학도가 무지에서 한 실언이 아니라 뿌리박힌 군국주의력사관의 집중적인 발로로서 성노예피해자들은 물론 전세계의 녀성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며 과거 일제가 저지른 천인공노할 특대형반인륜범죄를 정당화하는 인권유린의 극치이다.
이를 통하여 일본당국자들의 후안무치성과 도덕적저렬성이 한계를 벗어나 세계의 정의와 인류의 량심에 정면도전하고있다는것을 직관할수 있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국제사회가 엄중시하고있는 일본군성노예범죄는 《유사시에 있을수 있는 례사로운 일》이 아니라 그 고안으로부터 실시에 이르기까지 철두철미 일본정부와 군부의 직접적인 관여밑에 하나의 국가정책으로 실시된 세계전쟁사에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특대형반인륜범죄이다.
지금 세계에 비쳐지는 일본당국자들의 행태를 보면 일본이 두번다시 전쟁을 도발하는 경우 타민족의 녀성들에게 또다시 성노예살이를 강요하고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과 존엄을 무자비하게 유린하는것을 보통 있는 일로 여기겠다는것과 다를바 없다.
일본군국주의가 전시에 녀성들의 성노예생활강요를 국책으로 삼고 조직적으로, 강제적으로 자행한 명명백백한 자료들은 지금까지 공개된것만 하여도 허다하다.
1996년 4월 유엔인권에 관한 위원회(현재 유엔인권리사회) 제52차회의에서 일본정부가 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할것을 권고한 《전시성노예제》에 관한 특별보고자의 보고서가 발표된지도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일본은 성노예범죄를 비롯한 반인륜범죄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으며 저들의 죄악을 회피하려 들수록 더욱더 엄중한 후과를 초래하게 된다는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차혜경
남조선 부산시민단체와 동학, 천도교관련단체들 일본의 파렴치한 책동을 강력히 단죄규탄
남조선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지난 7일 일본방사능오염수규탄 부산시민행동이 부산 일본령사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의 독도강탈야망과 방사능오염수방류결정을 강력히 단죄규탄하였다.
단체는 기자회견문과 발언들을 통하여 일본대사관과 부산 일본령사관의 홈페지에 독도를 《일본령토》라고 주장한 내용을 게재한것은 용납할수 없는 범죄적행위, 공개적인 도발행위라고 폭로하면서 즉시 삭제할것을 요구하였다. 이어 일본대사관이나 부산일본령사관은 외교공관이 아니라 총칼만 안들었지 깡패집단이나 다름없다, 일본의 행위는 령토침략야욕으로밖에 볼수 없다고 강하게 비난하면서 일본령사관페쇄를 주장하였다.
또한 일본이 방사능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결정에 대해서도 준절히 성토하였다.
이에 앞서 6일에는 천도교청년회, 동학민족통일회를 비롯한 25개의 동학, 천도교관련단체가 일본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참가자들은 최근 일본당국이 후꾸시마원자력발전소오염수의 해양방류를 결정하고 도꾜올림픽경기대회관련홈페지에 올린 지도에서 독도를 일본령토로 표기하는 등 오만무례한 침략야욕을 드러내고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127년전 동학농민투쟁으로부터 일제의 침략야욕에 맞서싸워온 우리 동학, 천도교인들은 일본의 파렴치한 침략야욕을 규탄하여 성명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그들은 성명에서 도꾜올림픽경기대회와 관련한 홈페지에서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한것을 즉시 삭제할것과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전범기발인 《욱일기》사용을 중단하며 방사능오염수방류결정을 철회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전문 보기)
론평 : 일본의 과거죄악은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될수 없다
과거죄악을 한사코 부정하고 정당화하려는 섬나라족속들의 파렴치한 태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다.
굳이 있다면 저들의 반인륜적범죄행위를 정당화해보려는 수법이 더욱 교묘하고 뻔뻔스럽게 진화한것뿐이다.
얼마전 일본국회 참의원 의원 아리무라 하루꼬는 나뽈레옹전쟁과 제1,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과거 전쟁들에서도 군인들의 《성병줄이기 관련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면서 일본군《위안부》만을 문제시하는것은 력사의 《공정성》의 측면에서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다고 뇌까렸다.
이에 일본외상과 관방장관이라는자들도 줄줄이 나서서 정부의 생각이 국제사회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을수 있도록 계속 대응해나가겠다고 하면서 맞장구를 쳐댔다.
실로 파렴치하기 이를데없는 섬나라족속들만이 감히 내뱉을수 있는 망언이라 하겠다.
이제는 그 얄팍한 력사지식으로 세계전쟁사까지 꺼내들고 《공정성》과 《신빙성》을 운운하며 《억울한》 모양새를 애써 연출하느라 모지름을 써대고있는데 따져보면 과거죄악을 정당화하기 위한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찬 말장난에 불과하다.
세계전쟁사의 그 어느 갈피를 뒤져보아도 다른 나라 녀성들 지어 미성년자들까지 집단적으로 전쟁터로 끌고다니며 성노예범죄를 감행한 자들은 없으며 그것도 국가권력과 군부에 의해 공공연히 조직적으로 자행된 례는 더우기 찾아볼수 없다.
그런데도 이런 특대형반인륜적범죄행위를 과거 다른 나라의 전쟁사에도 유사한 《관련기록이 남아있다.》는 식으로 날조해대고있으니 그야말로 언어도단의 극치가 아닐수 없다.
그래도 명색이 정치인이라면 세상사람들앞에서 말을 할 때에는 초보적으로나마 때와 앞뒤를 가려보고 입을 벌려야 하지 않겠는가.
력사적사실에 근거하지도 않는 과거 전쟁자료라는것을 내들고 아무리 《공정성》을 운운해봐야 오늘의 대명천지에서 명명백백한 증인과 증거로 가득찬 과거 일제의 성노예범죄행위가 덮어지거나 정당화되기는 커녕 오히려 일본특유의 파렴치성만 적라라하게 드러나 만인의 지탄을 불러일으킬뿐이다.
일본이 이렇듯 검은것도 흰것이라는 식으로 저들의 과거범죄를 한사코 부정해나서는것은 무엇때문인가.
물론 만사를 엽전구멍으로 내다보는 그 졸렬한 속통에 과거 범죄를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을 하자니 손이 떨리기도 하겠거니와 보다 중요한것은 그를 정당화함으로써 저들의 침략력사를 미화분식하고 제 조상들이 못다 이룬 해외팽창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범죄의 길로 기어코 가겠다는데 있다.
죄는 지은데로 가고 물은 곬을 따라 흐르기 마련이다.
일본은 교묘하고 구차스러운 변명이나 말장난으로 범죄의 력사를 절대로 가리울수 없으며 죄악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것이다.(전문 보기)
만평 : 동해와 서해 (1)
조선의 동해와 서해는 태고적부터 친했답니다.
서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밤에는 반도를 사이에 두고 정을 나누고 서로의 숨결을 느낀답니다. 또 재미나는 이야기도 주고받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기도 한답니다.
우리 한번 그들의 말을 엿들어볼가요?
《독도는 조선민족의것이야》
서해: 《동해야, 요새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세게 불었는데 잘 지내고있니?》
동해: 《별로 잘 지낸다고 볼순 없어. 비나 바람은 문제가 아니야. 비가 오면 너그럽게 받아주고 바람이 불면 또 바람이 하자는대로 넘실넘실해주면 되니까.》
서해: 《무슨 고충이 있는게로구나.》
동해: 《말도 말아. 요새 내가 소중히 품어안고있는 독도를 뺏으려고 악착하게 놀아대는 나라가 있다는걸 너도 알지 않니.》
서해: 《알아. 일본이라는 섬나라말이지?》
동해: 《그래. 그 고약한 나라가 글쎄 독도를 감히 <다께시마>로 지어부르며 <일본고유의 령토>라고 우겨대고있단다. 그 무슨 <외교청서>라는걸 통해 <불법점거>당했다고 아부재기치는가 하면 도꾜올림픽경기대회홈페지의 지도를 통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생억질 부리고있다지 않니. 또 내 이름을 날조하여 <일본해>로 고집해나서고있어.》
서해: 《정말 뻔뻔스런 나라가 다 있다야. 독도가 태고적부터 조선의것이라는것은 세상이 다 알고있는데. 그자들이 계속 우긴다고 제것이 될수야 없지 않아. 이 세상에 하늘이 생기고 땅이 생기고 바다가 생겨 너는 물론 울릉도나 독도를 제일 먼저 점유하고 관리해온 사람들이 명실공히 조선사람들이라는것은 누구도 부정할수 없어.》
동해: 《네말이 옳아. 력사적으로 볼 때 동해인 나와 울릉도, 독도를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들은 바로 고대조선사람들이였어. 동해바다가의 고대조선주민들은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 울릉도를 차지하고 그곳을 거점으로 하여 어로활동을 벌리는 한편 그와 가까운 독도에도 자주 나가 물고기잡이를 하고 해산물들도 채취하였단다. 고구려사람들도 울릉도, 독도를 리용하면서 이곳을 거쳐 일본에까지 건너가 문명을 전파했어.》
서해: 《하긴 넌 그걸 수천년전부터 다 보았겠구나. 고구려뿐아니라 발해, 고려, 조선봉건왕조 등을 내려오면서 조선민족의 고유령토로 더욱 굳건해졌지. 저 섬나라족속들도 그것을 대대로 인정해왔구.》
동해: 《서해야, 너 안룡복이란 배군을 못보았겠구나. 그 사람의 의젓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그는 정말 찬양할만한 애국자였어. 17세기말 동래어민 안룡복은 울릉도, 독도에 대한 왜인들의 침입과 략탈이 강화되자 직접 배를 타고 오랑캐우두머리를 찾아가 담판을 벌려 그들의 사죄를 받아내고 독도가 조선의 섬이라는것을 인정시켰단다.》(전문 보기)
95년의 긴 세월이 흘렀어도
어느덧 9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근 한세기가 되여오는 날과 달의 흐름과 함께 많은것이 변하고 력사의 락엽속에 묻혔지만 지금도 과거 일제의 만고죄악은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생생히 살아 분노와 복수의 피를 용암처럼 끓여주고있다.
6.10만세시위투쟁, 이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가혹한 식민지통치에 대한 우리 민족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울분의 폭발이였으며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기 위한 대중적인 반일애국투쟁이였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민족의 반일기세가 앙양되는데 질겁한 일제는 종래의 《무단통치》를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꾸고 보다 교활한 방법으로 식민지통치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때에 조선봉건왕조의 마지막황제였던 순종이 사망하자 이를 계기로 조선인민의 반일감정은 더욱 고조되였다.
일제는 순종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6월 10일 상여가 지나갈 길을 따라 매 전선대마다에 경관들을 배치하였으며 《례포》용이라는 간판밑에 대포와 기관총까지 걸어놓고 군중을 위협하였다.
일제의 이러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수만명의 서울시민들은 황제의 상여가 지나가자 울분을 터치면서 대중적반일시위투쟁을 벌렸으며 투쟁은 인천, 대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로 급속히 번져갔다. 여기에는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의 존엄을 귀중히 여기는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들이 참가하였다.
극도로 당황망조한 일제가 시위에 참가한 40여만의 군중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으나 인민들은 굴함없는 투쟁을 벌렸다.
6.10만세시위투쟁을 통하여 우리 인민은 일제의 강점을 결단코 용납하지 않고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으려는 불굴의 의지와 애국적기개를 내외에 과시하였으며 포악한 일제의 침략적본성과 《문화통치》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식민지통치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그때로부터 9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러 세기가 바뀐 오늘까지도 일본반동들은 전체 조선민족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한결같은 규탄과 배격에도 불구하고 피비린내나는 침략력사를 외곡하면서 새 세대들에게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외곡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교과서외곡책동에 매여달리는가 하면 《외교청서》에 《독도령유권》을 또다시 쪼아박고 도꾜올림픽경기대회와 관련한 홈페지에 독도를 저들의 령토로 표기하는 등 조선반도재침야망을 더욱더 로골화하고있다.
지난날 일제가 총포를 앞세운 무자비한 식민지폭압과 강제동원으로 조선민족을 무참히 살륙하고 노예화하였다면 오늘 일본반동들은 력사외곡으로 상처입은 피해자들의 가슴에 칼질을 하고 강도적인 《독도령유권》주장으로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란폭하게 침해하고있다. 이것은 죄악에 죄악을 덧쌓는 범죄행위로서 조선민족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뿌리깊은 배타주의와 범죄적인 《대동아공영권》야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뚜렷이 보여주는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을 비롯한 남조선보수적페세력들은 《한일관계복원》을 떠들면서 일본반동들의 교활하고 파렴치한 망동을 극구 비호두둔해나서고있다.
오늘의 현실은 일본반동들의 재침야망과 현대판을사오적의 무리인 남조선보수역적패당의 친일매국행위를 짓부셔버리기 위해 중단없는 투쟁을 벌릴것을 요구하고있다.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이 일본반동들의 력사외곡, 독도강탈책동과 그에 아부굴종하는 《국민의힘》을 비롯한 남조선보수역적패당의 친일사대매국책동을 반대하여 줄기차게 벌리고있는 투쟁은 시대와 력사의 요구를 반영한 지극히 정당하고 정의로운 투쟁이다.(전문 보기)
올림픽과 재난
올림픽경기대회의 사명은 세계적범위에서 체육의 발전과 함께 여러 나라들사이의 친선과 단결, 협조를 강화하고 세계평화와 사회적진보를 이룩하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지난 백수십여년간의 현대올림픽력사를 보면 본래의 사명과는 어긋나게 불순한 정치적목적에 도용된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난 세기 30년대에 진행된 베를린올림픽경기대회가 그러하다. 당시 대규모의 침략전쟁을 준비하고있던 히틀러는 올림픽을 통해 전세계에 게르만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고 나치스도이췰란드의 국위를 과시하려 했다. 대회기간 경기장마다에는 커다란 나치스기발이 드리워져 파시즘의 힘과 《정당성》을 광고하였다. 이렇게 치르어진 제11차 올림픽경기대회이후 3년만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수십억의 인류에게 재난이 들씌워졌음을 력사는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올림픽의 불우한 력사는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일본이 나치스도이췰란드와 다를바 없는 짓을 벌려놓고있는것이다. 그 대표적인 례가 도꾜올림픽조직위원회 홈페지에 독도를 저들의 령토로 표기한 지도를 버젓이 공개한것이다.
독도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령토라는것은 세상이 다 알고있으며 그를 증명하는 자료들은 우리 나라와 유럽, 지어 일본에서도 수차례나 발견되였다. 그런데도 제국주의향수에 젖어있는 일본당국은 독도를 계속 넘보다 못해 친선과 단결을 상징하는 신성한 올림픽경기대회마저 《독도령유권》광고에 써먹으려 하고있는것이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섬을 옳게 표기했는가 못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남의 령토를 뻔뻔스럽게 저들의 땅이라고 우겨대는 그 날강도적주장의 배경에는 바로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기어이 이루려는 군국주의야망이 도사리고있다. 끊임없는 《독도령유권》주장을 통해 자국민들에게 《국토수복》의 욕망과 충동, 의지를 심어주어 해외침략과 군사대국화실현을 위한 여론과 환경을 손쉽게 만들어보려는 일본의 속심을 누가 모르겠는가. 《독도령유권》주장은 제2의 조선병탄과 대륙침략을 위한 재침명분쌓기용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세상사람들이 지금 도꾜올림픽경기대회 홈페지에 게시된 지도를 보며 나치스도이췰란드의 베를린올림픽을 떠올리는것은 바로 이때문이 아니겠는가.
지난해 일본에서는 아베가 도꾜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른후 중의원을 해산하고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여 전쟁헌법개정에 필요한 의석수를 확보하려 한다는 여론까지 나돌았었다.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군국주의부활에 환장한 일본에 의해 신성한 올림픽의 막뒤에서 재난의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오고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전문 보기)
론평 : 올림픽리념마저 짓밟은 비렬한 패륜행위
일본반동들의 독도강탈책동이 날로 우심해지고있다.
최근 일본반동들은 도꾜올림픽경기대회와 관련한 홈페지에 독도를 일본령토로 표기한데 이어 도꾜올림픽봉화이어달리기를 소개하는 TV영상을 방영하면서 시마네현청에 있는 《다께시마자료실》이라는 간판을 세상이 보란듯이 의도적으로 로출시키는 놀음을 벌려놓았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내외의 강한 비난과 시정요구를 묵살하고 오히려 관방장관을 비롯한 정부고위관계자들을 내세워 《<다께시마>는 일본고유의 령토》라느니, 《랭정하고 의연하게 대응하겠다.》느니 하며 도전적으로 나오고있다.
그야말로 도적이 매를 드는격의 뻔뻔스러운 행태가 아닐수 없다.
독도가 어떻게 섬나라족속들의것으로 될수 있는가.
일본것들이 주장하는 《독도관련자료》라는것은 사기와 협잡, 억지로 일관된것으로 하여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내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있다. 반면에 독도가 우리 민족의것임을 립증하는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자료, 부정할래야 부정할수 없는 증거자료들은 차고넘치고있다.
독도가 력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법적으로 우리 민족고유의 령토라는것은 세상이 다 알고 일본의 학자들과 전문가들도 인정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독도령유권》을 주장하고있는 일본반동들이야말로 세상에 다시 없을 졸렬하고 파렴치한 강도배들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더우기 평화와 친선을 지향하는 올림픽리념에 역행하여 신성한 국제경기대회까지 령토강탈야망실현을 위한 정치적마당으로 악용하려는 섬나라쪽발이들의 잔악한 책동은 국제사회의 강한 우려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있으며 우리 겨레로 하여금 분노로 치를 떨게 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의 이번 망동은 올림픽경기대회를 기회로 국제사회에서 저들의 《독도령유권》주장을 정당화해보려는 흉심에서 출발한것이다.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각인시키고 기회를 보아 그것을 집어삼키며 나아가 재침의 구실과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자는것이 바로 왜나라것들의 교활한 속심, 변함없는 야망이다.
하지만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으로 될수 없는 법이다.
독도는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우리 민족과 떼여놓을수 없는 불가분리의 령토이며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땅이다.
신성한 국제경기대회마저 저들의 재침야망실현의 도구로 리용하려드는 일본반동들의 파렴치한 행위는 온 겨레와 전인류의 규탄과 배격을 면치 못할것이다.(전문 보기)
소식 : 재침야망을 가리우기 위한 일본의 《방위백서》
최근 일본이 《2021년 방위백서》초안을 작성하여 내돌린데 이어 7월중에 각료회의에서 정식 채택하려 하고있다.
일본은 저들의 침략무력증강책동을 합리화하는 《방위백서》를 해마다 발표하면서 빠짐없이 《주변위협》을 명기하고있다.
우리 나라와 아시아나라 인민들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일본이 도리여 《주변위협》을 운운하는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최근에 들어와서만도 일본은 《방위능력강화》의 미명하에 하늘, 땅, 바다는 물론 우주령역에 이르기까지 신형지대공유도탄과 무인정찰기 개발, 이지스체계를 탑재한 신형이지스함건조와 각종 첨단급잠수함 취역, 륙상전자전부대와 항공우주작전대 발족 등과 같이 군사적준동을 로골화하면서 일본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공공연히 내걸고있다.
일본의 《자위대》는 이미 무력의 규모와 내용, 작전령역에 있어서 《전수방위》의 허울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명실공히 공격형으로 전환되였다.
일본정부가 《2021년 방위백서》초안에 우리 나라가 《일본의 안전에 대한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이라고 밝힌것은 《주변위협》을 극대화하여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는 주범으로서의 정체를 가리우고 전쟁헌법조작과 군사대국화를 다그치려는 흉심의 발로이다.
엄연한 현실은 주변나라들을 위협하는 장본인이 다름아닌 일본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일본의 《방위백서》야말로 백서가 아니라 재침야망을 가리우고 흑백을 뒤집어놓은 검은 문서장이라고 표현해야 적중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민경무
《독도령유권》광고소동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6월 4일발 조선중앙통신)
일본이 파렴치한 《독도령유권》을 계속 주장해나서고있다.
도꾜올림픽경기대회 홈페지에 봉화이어달리기로정을 소개하면서 독도를 《일본령토》로 표시한 지도를 2019년에 게재한 후 지금까지 줄곧 공개하고있다.
그것을 삭제할데 대한 요구에 접수할수 없다느니,일본의 립장은 변함이 없다느니 하는 오만한 소리만 되풀이하고있다.
일본의 행위는 친선과 단결을 상징하는 신성한 올림픽경기대회를 령토강탈야망실현에 악용해보려는것으로서 인류의 평화념원에 대한 우롱이며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유린하는 용납 못할 도발이다.
세상에는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체육경기대회를 주최한 나라가 많지만 일본과 같이 체육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관심과 열기를 자국의 침략야욕실현에 써먹는 비렬한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일본의 독도강탈행위는 어제오늘에 와서 시작된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 위험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간과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있다.
오늘날 일본의 《독도령유권》광고는 정부의 주도하에 사회의 전반분야에 걸쳐 조직적으로,계획적으로 감행되고있으며 《자위대》무력이 이를 군사적으로 뒤받침하고있다.
올해만 보아도 외상,내각관방장관을 비롯한 고위정객들이 《독도령유권》주장을 계속 력설하여 국제적물의를 일으키고 현 정부는 취임후 처음으로 공개한 2021년 외교청서에 독도가 《일본고유의 령토》이며 불법점거되였다고 뻐젓이 명기하였다.
정부전용홈페지에는 독도와 관련한 《유효한 력사자료》라고 하는 외곡된 자료 57점이 새로 게재되였으며 《다께시마의 날》행사라는데서는 독도를 단호히 수호하자는 발언들까지 튀여나왔다.
다음해부터 《독도령유권》교육을 의무화하도록 한 정부의 지침에 따라 독도를 《일본땅》으로 서술한 고등학교 교과서들이 무더기로 검정통과되고 우익보수언론들이 력사외곡선전에 힘을 합치고있다.
한편 각국에 있는 일본대사관들과 해외에 파견하는 소위 리론가들을 통해 독도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옳바른 리해》를 얻을것이라고 떠들고있다.
최근 일본에서 독도를 불의에 타고앉으려는 군사적움직임이 눈에 띄게 강화되고있는것도 주목을 끌고있다.
일본《자위대》무력이 섬탈환연습을 벌리고 무력증강을 다그치고있는것은 일본이 벌리는 대대적인 《독도령유권》광고소동의 종착점이 과연 어디인가를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그것은 《독도령유권》주장을 자국민들에게 깊이 주입시켜 해외침략에로 내몰고 군사대국화를 《합법적》으로 다그쳐 기어이 재침의 길에 나서자는것이다.
해양자원이 풍부하고 군사전략상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독도를 기어이 강탈하려는 일본의 속심은 불보듯 뻔하다.
일본이 계속 력사적,국제적,법적근거가 없는 《독도령유권》을 고집할수록 천년숙적 일본과 반드시 결산하고야말 우리 민족의 대일적개심만 배가될뿐이다.
독도는 영원히 변함없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령토이다.(전문 보기)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얼토당토않은 궤변이고 억지
독도는 그 누가 《령유권》을 주장한다고 하여 가질수 있는 주인없는 땅이 아니다. 력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누구도 건드릴수 없는 우리 민족의 신성한 령토가 바로 독도이다.
무인도가 어느 나라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데서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시되는것은 그 섬을 어느 나라가 제일 먼저 발견하였는가 하는 《발견의 원리》와 어느 나라가 제일 먼저 차지하였는가 하는 《선점의 원칙》이다. 독도는 바로 이러한 《발견의 원리》와 《선점의 원칙》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령토이다.
《삼국사기》와 《고려사》, 《리조실록》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증보문헌비고》 등에는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의 섬으로 명기되여있으며 18세기 《동국대지도》에도 울릉도와 함께 우리 민족의 령토로 표기되여있다.
일본이 《독도령유권》을 처음으로 주장한 1905년 《시마네현고시》 제40호보다 5년전에 벌써 조선봉건정부는 칙령 제41호를 공포하여 수천년전부터 내려오는 독도의 령유권을 다시금 내외에 명백히 선언하고 재확인하였다.
이밖에도 우리 민족에 의해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불리워온 독도의 지명유래를 통해서도 독도가 일본의 섬이 아니라는것을 똑똑히 알수 있다.
독도가 조선고유의 땅이라는것을 증명해주는 자료들은 일본에서도 적지 않게 나왔다.
1690년대에 일본의 에도막부와 쯔시마도주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령토라는것을 인정하고 그 섬으로의 일본인진출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였으며 《명치유신》후에도 일본은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조선의것이라는것을 다시금 명백히 하였다. 1877년 일본의 최고행정기관인 태정관은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것을 명심할것》이라고 하면서 독도가 일본의 령토가 아님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일본인들이 만든 지도를 들추어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16세기말에 일본에서 편찬된 《조선국지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식 명칭으로 표기되여있다. 18세기 일본의 지도제작대가로 알려져있는 하야시 시헤이가 1785년에 그린 《삼국통람도설》에는 조선과 일본 및 중국동북지방을 그린 부록지도가 있는데 여기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본토와 같이 노란색으로 표시되고 《조선의것》으로 명백히 기록되여있다. 1870년대부터 1890년대사이에 일본의 각이한 기관들에서 제작된 《대일본전도》, 《일본제국전도》 등 여러 지도들 역시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는것을 일본도 인정하고있음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1936년에 일본륙군참모본부 륙지측량부에서 제작한 《지도구역일람표》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본토소속으로 표기되여있다.
또한 1710년대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프랑스신부 레지의 지도와 1731년 프랑스사람인 당빌이 그린 《조선왕국도》 등에는 독도가 조선의 령토로 명백히 기록되여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일본의 령토처리를 규정한 국제협약들인 까히라선언, 포츠담선언 등에서도 일본의 독도편입이 비법이며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략취된것》이라는 국제적공인에 따라 독도를 일본령토가 아니라 조선령토로 규정하고 처리하였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일본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독도를 조선령토로 인정하고있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그런데도 일본반동들이 독도에 대한 그 무슨 《령유권》을 주장하며 생떼를 쓰고있는것이야말로 얼토당토않은 궤변이고 억지가 아닐수 없다.
일본반동들이 독도에 대한 《령유권》주장을 집요하고도 파렴치하게 들고나오는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독도가 《빼앗긴 일본의 령토》라는 인식을 자국민들속에 끈질기게 주입시킴으로써 그들을 침략의 돌격대로 써먹을수 있는 복수주의, 군국주의광신자들로 키우며 령토분쟁을 도발할수 있는 구실과 대외적명분을 마련하자는것이다.
력사적사실과 자료들은 일본정부가 떠드는 《독도령유권》주장의 부당성과 함께 일본사무라이족속들의 파렴치함과 조선반도재침야망만을 더욱 똑똑히 부각시켜주고있다.(전문 보기)
대륙침략의 발화점을 마련하기 위한 불순한 책동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5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일본정부가 2021년 외교청서에 독도를 《일본고유의 령토》로 또다시 명기하였다.
이것은 세기를 이어 계속되고있는 일본반동들의 집요하고 뿌리깊은 령토강탈책동의 연장으로서 절대로 용납될수 없다.
우리는 이미 독도가 그 누구도 감히 넘겨다볼수 없는 조선민족의 신성한 땅임을 론박할수 없는 수많은 력사적사실들과 자료들을 통하여 명백히 밝혀왔다. 독도가 우리의 령토라는것은 국제사회도 인정하고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지리적으로나 력사적으로는 물론 법률적견지에서도 과학성과 합법성을 전혀 찾아볼수 없는 《독도령유권》주장을 끈질기게 되풀이하고있다.
우리 민족과 국제사회가 규탄해마지 않는 일본의 파렴치하고 후안무치한 《독도령유권》주장을 결코 인식부족으로 인한 행위로 볼수 없다.
여기에는 《독도는 일본땅》이며 《독도가 불법점거되였다.》는 얼토당토않은 설교로 렬도전역에 호전적인 《령토수복》분위기를 조성하고 그속에서 군국화를 더욱 다그치는 한편 대륙재침의 합법적구실을 마련해보려는 흉심이 깔려있다.
지금 일본반동들은 《령토주권전시관》과 《독도령유권》주장이 담긴 교과서 등을 통하여 국민들과 자라나는 새 세대들속에 외곡된 력사관,령토관을 심어주는 동시에 침략사상을 로골적으로 주입시키고있다.
다른 한켠으로는 《섬탈환》을 위한 군사연습과 무력증강에도 광분하고있다.
피비린 살륙과 강탈로 악명떨치던 과거의 제국시대,군국주의시대 부활을 꿈꾸는 일본이 《독도령유권》을 되찾는다는 명분밑에 조선반도재침을 개시하고 나아가서 본격적인 대륙침공에 뛰여들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이야말로 대륙침략의 발화점을 마련하기 위한 위험천만한 도발책동,전쟁책동이다.
독도는 력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공인된 조선민족의 불가분리의 신성한 령토이다.
이 엄연한 현실을 감히 변경시키려는 그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절대로 묵과하지 않으며 무자비한 대응으로 맞서나갈것이라는것이 우리 겨레의 드팀없는 의지이다.
일본은 시대착오적인 령토야망이 초래할 파국적인 후과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전문 보기)
소식 : 력사외곡책동의 극치-일본정부《답변서》
일본군국주의가 감행한 성노예범죄와 조선인강제련행사실을 력사속에서 지워버리려는 일본정부당국의 공공연한 력사외곡책동이 오늘날에 와서 극치를 이루고있다.
4월 27일 일본정부는 각료회의에서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강요와 조선인강제련행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답변서》라는것을 결정하였다.
일본은 《답변서》에서 일본군성노예범죄의 피해자들에 대해 《종군위안부》라고 표현하는것은 오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때문에 적절하지 못하므로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야 한다는것, 조선인강제련행에 대해서도 《국민징용령》에 기초한 징용 및 모집, 정부의 알선으로 진행된 로동은 1932년에 발효된 《강제로동에 관한 조약》에서 정의된 《강제로동》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얼토당토않은 구실을 대면서 《강제로동》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을 정부적인 립장으로 밝혔다.
국제사회는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 일본군성노예범죄에 대하여 뉴른베르그국제군사재판소의 조례 제6조 C항과 도꾜국제극동군사재판소의 조례 제5조 등 55개 죄목에 해당되는 반인륜적범죄로 락인하고 이미 력사의 준엄한 심판을 내리였으며 특히 2000년 도꾜에서 열린 녀성국제전범법정에서는 일본이 전시 군성노예제수립에 군권, 관권을 발동하였다는것을 피해자들의 증언과 수많은 객관적자료들에 근거하여 적라라하게 폭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피해자들의 상처에 칼질하는 《답변서》를 다시금 결정한것은 어떻게하나 국가적책임을 회피하고 피비린내나는 과거범죄를 미화분식하여 후대들에게 외곡된 력사관과 복수주의를 주입하고 침략의 력사를 되풀이해보려는 용납못할 도전행위이다.
오늘날 일본정객들의 야스구니진쟈참배와 력사교과서외곡, 헌법개악시도, 주변나라들의 령토를 강탈할 목적으로 강행되는 《자위대》병력의 재배치와 군사력증강책동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일본이 흐르는 세월과 함께 과거의 침략력사와 범죄만행도 망각의 이끼와 락엽으로 덮어버릴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큰 오산은 없다.
지난 세기 평화를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죄행은 시효가 없는 특대형반인륜범죄로서 오늘날 표현이나 문구를 바꾸어 그 침략성과 강제성을 은페해보려는 권모술수가 통할리 만무하다.
일본정부가 결정한 《답변서》는 도리여 국제사회의 정의와 인류의 량심을 우롱하고 저들의 도덕적저렬성과 파렴치성을 드러낸 《고발장》, 《공개장》이라고 해야 적중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상급연구원
력사학학회 위원장
후보원사 교수 박사 조희승
재침선동문-《2021년 외교청서》
얼마전 일본정부가 《2021년 외교청서》라는것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일본정부는 독도는 《조선에 불법점거된 땅》, 《명백히 일본고유령토》라고 우겨대면서 독도를 기어코 강탈하려는 흉악한 속심을 또다시 드러내놓았다.
부언하건대 일본정부의 《독도령유권》주장은 타당한 력사적, 법적근거가 없는 완전한 생억지이며 황당무계한 궤변이다.
독도가 우리 나라의 불가분리의 령토이라는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력사적사실이다. 그를 고증하는 자료와 증거들은 차고넘친다.
식견있고 량심적인 일본사람들도 스가정부의 《독도령유권》주장을 부끄럽게 여기고있으며 다른 나라들의 권위있는 학자들 역시 력사적으로나 국제법적견지에서 보나 독도는 조선의 고유령토라고 주장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외교청서》에 독도를 저들의 《고유령토》라고 쪼아박은데는 일본국민들속에 독도에 대한 《령유권》의식을 더욱 깊숙이 주입시키고 그 실현을 위한 침략책동을 《정당화》하려는데 있다.
력사적사실들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나라들사이의 관계에서 령토문제만큼 예민하고 심각한 문제는 없다. 이렇게 볼 때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예민한 령토문제를 구실로 재침의 포문을 열자는 음흉한 속심에서 출발된것이다.
지상과 공중, 해상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강력한 공격능력을 갖추고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전쟁세력, 침략세력으로 등장한 일본에게 있어서 이제 남은것은 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략의 구실을 마련하는것뿐이다. 이로부터 일본은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계속 우겨대면서 국제적인 분쟁문제로 만들어놓고 조선반도재침의 불집을 터뜨리려 하고있다.
제반 사실은 《2021년 외교청서》가 단순히 일본정부의 무지나 도덕적저렬성에서 꾸며진것이 아니라는것을 똑똑히 립증해주고있다.
남조선각계가 일본정부의 《외교청서》를 이전 아베정권때와 다를바 없이 력사적진실을 부정외곡하고 재침야욕을 드러낸 파렴치한 궤변, 침략문서라고 단죄하고있는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일본은 오산하고있다. 일본의 독도강탈야망은 언제 가도 실현될수 없는 오뉴월의 개꿈과 같다.
사회과학원 실장 최 준 영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 대변인담화
올해는 《전시성노예제》에 관한 보고서가 발표된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조직적으로, 강제적으로 감행된 반인륜범죄인 일본군성노예행위의 진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그 해결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비상히 높아지는 속에 1996년 4월 유엔인권에 관한 위원회(현재 유엔인권리사회) 제52차회의에서는 일본정부가 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하여 노력할것을 권고한 《전시성노예제》에 관한 특별보고자의 보고서가 발표되였다.
우리 나라와 일본, 남조선의 피해자들과 관계자들을 조사한데 기초하여 작성된 보고서에서 특별보고자는 《위안부》라는 말보다 《전시군성노예》라는 말이 훨씬 정확하고 적절하다고 하면서 일본정부가 《위안소》설치의 위법성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법적책임을 지며 피해자들에게 배상할데 대한 문제, 모든 문서와 자료들을 공개하며 피해자들에게 문서로서 공개적으로 사죄할데 대한 문제, 교육과정에 력사적진실을 반영할데 대한 문제, 범죄자를 찾아내여 처벌할데 대한 문제 등 6개 항목의 권고를 제기하였다.
하여 보고서는 발표되자마자 피해자들과 피해국들은 물론 광범한 국제사회계의 전폭적인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세계에서 녀성들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고 인권옹호운동을 적극 추동하는 획기적인 문서로 인정되였다.
그러나 보고서가 발표된지 25년이 지난 오늘까지 일본정부는 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하여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있다면 피해자들이 인정도 하지 않는 《녀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라는것을 만들어 민간의 이름으로 일본국가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오그랑수를 쓰고 자국의 교과서들에서 성노예범죄의 기록을 지워버리는 등 범죄사실자체를 없애버리려 한것뿐이다.
아마 일본의 새 세대들속에는 국제기구들과 세계 여러 나라 국회들에서 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수많은 보고와 결의들이 나온 사실은 물론이고 자기 선조들이 과거에 어떤 반인륜범죄를 저질렀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할것이다.
지나온 행적을 똑똑히 총화하지 않고 력사에서 옳바른 교훈을 찾지 않는다면 범죄는 또다시 재현되기마련이다.
오늘 일본에서는 자국이 과거에 저지른 침략행위와 반인륜범죄들이 정당한것으로, 전시에 흔히 있을수 있는 평범한 일로 평가되고있으며 전범자들이 《애국자》로 추앙되고 총창끝에 매달려있던 피묻은 《욱일기》가 공공연히 나붓기고있다.
또한 고위관리들의 입에서는 녀성들을 《아이낳는기계》로 멸시하고 하대하는 망언이 공공연히 튀여나오고있으며 세계적인 보건위기속에서도 어린이들에 대한 마스크배포를 놓고 민족과 국적을 따지며 차별하는 치졸한 행위가 부끄러운줄 모르고 벌어지고있다.
이러한 일본이 두번다시 전쟁을 도발하는 경우 타민족의 녀성들을 또다시 성노예로 끌어가고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과 존엄을 무자비하게 유린하리라는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그러나 일본은 오산하지 말아야 한다.(전문 보기)
파쑈악법들을 휘둘러 감행한 야수적인 살륙만행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지난 세기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우리 인민의 민족성을 마비시키고 독립에 대한 사소한 념원마저 깡그리 없애버리기 위하여 파쑈악법들을 조작공포하였다.그리고 그 악법들을 휘둘러 수많은 조선의 애국자들과 무고한 인민들을 《죄인》으로 몰아 야수적으로 처형, 학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거 일제는 여러가지 파쑈적악법을 조작하고 조선사람들에게 억지로 〈죄〉를 들씌웠으며 우리 인민들의 생존의 권리마저 짓밟는 야수적인 만행을 감행하였습니다.》
일제는 조선사람은 《일본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고 줴쳐대면서 각종 악법조작에 집요하게 매여달리였다.《치안유지법》도 그러한 책동의 산물이였다.
《치안유지법》은 일제가 자국내에서 제국주의통치체제를 반대하는 좌익운동세력을 탄압하기 위하여 1925년 4월에 조작공포한 파쑈악법이였다.같은 해 5월 왜왕의 칙령 《치안유지법을 조선, 대만, 싸할린에서 시행할데 대한 건》에 의하여 이 악법은 그 적용범위와 대상이 식민지나라와 지역에까지 확대되였다.
일제가 조작해낸 《치안유지법》은 우리 인민의 초보적인 생존권마저 무참히 짓밟은 그 류례를 찾아보기 힘든 악법이였다.
《국체를 변혁하거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각종 행위, 식민지파쑈통치체제를 반대하는 모든 활동을 《위법》으로 몰아 형벌을 가하도록 규정한 극악한 《치안유지법》으로 인해 수많은 조선의 애국자들과 무고한 사람들이 철창속으로 끌려가 갖은 박해를 당하였다.
1922년 검거건수가 13만 8 539건이였다면 파쑈악법이 조작된 해인 1925년에는 그것이 19만 1 203건으로, 1926년에는 26만 1 558건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일제가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1924년부터 1929년까지 검거건수는 87만 5 522건, 검거된 조선사람의 수는 수백만명에 달하였다.이것만 보더라도 일제가 식민지통치 전기간 얼마나 많은 조선사람들을 《치안유지법》과 같은 파쑈악법들에 걸어 체포투옥하고 처형하였겠는가를 어렵지 않게 추산할수 있다.
악독한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전면에 내걸고 수많은 애국자들과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살해하였다.
1926년 경성(서울)에서 《조선독립 만세!》를 웨치면서 행진하는 평화적시위군중에게 사격을 가하여 160여명을 살상한것과 1929년에 보천지방의 마을들에 달려들어 《허가없이 땅을 개간하였다.》고 떠들어대면서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많은 화전민들을 총칼로 쓸어눕히거나 불태워죽인것만 보아도 일제의 야수성을 잘 알수 있다.
이렇듯 극악한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른것도 성차지 않아 일제는 1928년에 들어와 《치안유지법》을 저들의 파쑈적식민지통치에 유리하게 뜯어고쳤다.그에 의하면 《국체의 변혁》을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한 사람이나 지도적직무에 종사한 사람에 대하여서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까지, 기타 성원들에게는 5년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형의 가혹한 형벌을 적용하게 되여있었다.
《치안유지법》은 1941년에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더욱더 파쑈적으로 개악되였다.예방구금기간은 2년이였지만 필요에 따라 몇번이고 갱신할수 있게 규정해놓은것을 비롯하여 모든 절차를 저들의 구미에 맞게 변경시켜놓았다.
《치안유지법》은 각종 식민지파쑈악법들의 조작과 시행의 기초를 이룬 악법이였다.
일제는 《치안유지법》에 기초하여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과 같은 형사특별법률들을 조작해놓고 우리 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은 물론 진보적사상운동과 신사참배, 궁성요배를 거부하는 사소한 반일운동까지도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렸다.
참으로 일제는 가장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악법들을 조작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을 잔악무도하게 탄압하고 조선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날뛴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전문 보기)
일제의 극악무도한 인권유린범죄-강제《징병》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4월 21일발 조선중앙통신)
지난 세기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수많은 죄악가운데는 《징병제》의 명목으로 조선청년들을 강제징발하여 전쟁판으로 끌고다니면서 억울한 죽음과 고통을 강요한 범죄도 있다.
일제는 조선강점기간 《징병령》,《륙군특별지원병령》,《학도병령》 등 각종 악법들을 조작하고 수많은 청장년들을 강제련행하였다.
1944년 4월에 실시한 《징병제》도 일제가 더 많은 조선청년들을 저들의 침략전쟁마당으로 끌어가기 위해 조작한것이였다.
1942년 5월 일본수상 도죠 히데끼는 태평양전쟁이 장기화되고 인적자원의 부족을 절실히 느끼게 되자 조선의 청장년들을 전쟁대포밥으로 동원할 목적밑에 륙군《징병제》를 실시할데 대한 정부결정안이라는것을 고안해내였다. 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관권과 군권,회유기만과 폭력 등 갖은 수법들이 총발동되여 수많은 청장년들이 일제의 침략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가는 가혹한 《징병제》가 실시되게 되였다.
일제침략군 각 병종에 끌려간 조선사람들은 형언할수 없는 가혹하고 야수적인 민족적차별과 학대를 받았으며 일본의 패망직전에는 집단학살까지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패망후 일본이 극히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일본륙해군에 징발되였던 조선청장년수는 36만 4 000여명에 달한다. 그가운데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2만 2 000명이나 된다.
실로 조선사람들에게 감행한 일본의 과거범죄는 극심한 인종주의와 민족배타주의가 골수에 사무친 사무라이족속들만이 저지를수 있는 극악한 반인륜적인 인권유린범죄행위이며 인류력사의 그 어느 갈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극악무도한 전범죄이다.(전문 보기)
일본이 우리 나라를 대상으로 감행한 첫 국가적범죄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를 침략하였으며 산업혁명을 하여 경제토대를 마련한 다음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었댔습니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대상으로 첫 국가적인 범죄행위를 감행한 때로부터 429년이 되였다.우리 인민은 일본이 우리 나라를 침략한 력사를 잊지 않고있다.
1592년 4월 대병력으로 구성된 일본침략군은 명나라로 가는 길을 열라는 황당한 구실을 걸고 부산을 공격하였다.이로써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났다.
임진조국전쟁은 당시 일본의 령토강탈야망과 해외침략정책에 의하여 계획적으로 도발된 극악한 침략전쟁, 력사에 류례없는 국가적인 대량살륙전쟁, 략탈전쟁이였다.
16세기말에 들어와 일본에서는 100여년간의 계속된 내란으로 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극도로 령락되였으며 령주들사이의 대립이 첨예화되였다.이러한 속에 도요도미 히데요시를 괴수로 하는 일본사무라이정권은 반봉건투쟁의 예봉을 회피하고 사무라이들의 불평불만을 략탈과 치부로 눅잦히는 한편 많은 토지와 재부를 요구하는 대봉건령주들의 야욕을 채워주려고 꾀하였다.결국 정권을 유지하며 더 많은 령토를 차지하고 《대국》의 군주가 되여보려는 도요도미의 야심과 해외략탈, 상업적리윤을 추구하는 령주들의 리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조선침략정책이 세워졌다.그에 따라 침략전쟁준비를 다그쳐온 일본침략자들은 저들의 강도적야망을 실현해보려고 우리 나라를 침공하였다.
《조선사람을 모두 죽이라!》, 이것은 조선침략의 원흉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제 졸개들을 침략전쟁에 내몰 때 걸었던 살인구호이다.
일본살인악마들은 우리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살륙행위를 일삼았다.
1593년 조선군대의 드세찬 공격으로 어느 한 성으로 쫓겨간 일본침략군의 한 부대는 그 분풀이로 성안의 주민들에 대한 대량적인 살륙행위를 감행하였다.
이에 대해 력사자료에는 《남아있는 백성은 백에 한둘도 안되였는데 있는 사람조차 굶주리고 지쳐서 얼굴모습이 귀신같았다.사람과 말이 여기저기 마구 죽어넘어져있고 악취가 성안에 차넘쳐서 사람들은 코를 싸쥐고 다녔다.성안팎에는 백골이 무더기로 쌓였고 관청이나 개인집이나 텅 비여있고 남은것은 재더미와 기와쪼각뿐이였다.》라고 기록되여있다.
일본의 살인괴수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7개 조로 된 포고라는데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머리로 무덤을 만들려 한다고 하면서 남녀로소 가림없이 모두 목을 잘라 머리를 일본에 보낼것을 명령하였다.그 이후에는 《사람의 귀는 둘이라도 코는 하나이니 조선사람의 코를 베여 머리를 대신하라.군사 한명이 코 한되씩으로 수량이 찬 후에야 생포하는것을 허락한다.》는 잔인한 명령을 하달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우리 인민들을 마구 살륙하였을뿐아니라 조선사람들을 잡아다가 총과 활로 쏘아죽이고는 벌떼처럼 달려들어 서로 다투어가며 살점을 뜯어먹는 식인행위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임진조국전쟁기간 일본침략자들은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랍치하여 그들에게 노예로동을 강요하였으며 지어 다른 나라들에 노예로 팔아먹기까지 하였다.
임진조국전쟁을 일명 랍치전쟁, 도자기전쟁, 활자전쟁이라고 부를 정도로 일본침략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많은 도자기들과 활자들을 략탈해갔다.이와 함께 도공들과 옷만드는 기술자를 비롯한 재간있는 사람들을 랍치해갔다.임진조국전쟁후 일본의 여러 지방에서 조선의 정서가 짙은 염직기술이 오래동안 전해져왔는데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랍치해간 염직기술자들에 의해 전파된것이였다고 한다.
일본침략자들은 수많은 조선녀성들도 랍치하여갔다.
오늘도 일본의 각지에는 조선녀인의 묘들이 남아있어 일본사무라이들의 잔악한 랍치범죄만행을 고발하고있다.
일본침략자들은 우리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들도 파괴하고 략탈해갔다.
일본침략자들은 경복궁과 종묘를 불사르고 선릉(제9대왕 성종의 무덤)과 정릉(제11대왕 중종의 무덤)을 파헤쳐 부장품을 략탈하고 관을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뽀르뚜갈인이 쓴 《일본사》에 의하면 당시 일본침략군우두머리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배사공, 운반공, 천민들까지도 조선에서 문화재들을 강탈하여 돈벌이를 하려고 광분하였다.(전문 보기)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파괴략탈한 일제의 죄악을 고발한다.
-중앙계급교양관에서-
본사기자 리경미 찍음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을 수수방관할수 없다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4월 15일발 조선중앙통신)
일본의 독도강탈과 력사외곡책동이 갈수록 파렴치해지고있다.
일본문부과학성이 다음해부터 사용할 고등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저들의 《고유한 령토》라고 또다시 쪼아박았다.
이번에 검정통과된 수백종의 교과서중에서 력사와 지리를 비롯한 사회학교과서가 모두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하고있으며 그 누구에 의해 불법점거당했다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을 포함하고있다 한다.
일본이 지금까지 우리의 신성한 령토인 독도를 빼앗으려고 력사외곡놀음을 집요하게 추진하여왔지만 이번처럼 전면적으로 악랄하게 감행된것은 전례없는것으로서 절대로 수수방관할수 없는 엄중한 사태이다.
이것은 후예들에게 외곡된 력사관을 주입시켜 그들을 복수심과 침략사상으로 길들여진 군국주의광신자들로 키워냄으로써 령토팽창야망실현의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마련해보려는 일본반동들의 책동이 얼마나 험악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주고있다.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그 어떤 타당성도 법적근거도 없는 황당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독도는 우리 민족이 조상대대로 살아오고 물려온 우리의 령토라는것,이것이 그 무엇으로써도 부인할수 없는 력사의 진실이다.
최근에도 그것을 확증하는 사료들이 계속 발굴되고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의 땅으로 인식하지 않고있었음을 실증해주는 일본측 사료들은 더우기 많다. 얼마전에 공개된 19~20세기 일본에서 발행된 지리교과서들과 지도만 놓고보아도 독도가 일본의것으로 표기되여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제것이라고 우겨대는것은 력사도 국제법도 안중에 없는 날강도만이 감행할수 있는 망동이다.
이번에 외곡된 력사가 서술된 교재를 검정통과시킨것은 단순히 교육에 관한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후대들에게 독도가 《빼앗긴 땅》이라는 외곡된 의식을 강제주입시켜 그들을 령토강탈의 길로 내몰며 독도뿐아니라 전조선을 강탈하고 나아가서 대륙에 대한 침략야망을 실현하자는데 그 근본목적이 있다.
지금 일본반동들의 머리속에는 피로 얼룩진 일장기를 펄럭이며 대륙침략에 광분하던 과거를 재현해보려는 군국주의망상만이 가득차있다.
력사적으로 거짓말과 로략질,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략을 일삼아온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우리 나라와 수많은 아시아나라 인민들,세계인류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준 침략국가,전범국가 일본이 과거죄악의 력사를 정당화하며 또다시 우리의 땅을 빼앗으려고 파렴치한 력사외곡과 반동적인 교육에 매달리는것을 절대로 용납할수 없다.
일본은 시대착오적인 력사외곡책동이 나라를 종국적파멸에로 이끌어가는 어리석은 망동이라는것을 명심해야 한다.(전문 보기)
조선사람들을 침략전쟁의 희생물로 만든 일제의 죄악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지난날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고 전대미문의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아물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겨놓았다.그가운데는 조선의 청장년들을 강제징병, 강제징용 등으로 끌어가 침략전쟁의 희생물로 만든 죄악도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의 포악성은 1931년 9.18사변이후, 특히는 1941년 태평양전쟁개시이후에 절정에 달하였습니다.이 시기에 일제는 강제징병, 강제징용, 강제공출 등으로 조선인민을 혹심하게 억압하고 착취하였습니다.》
193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 령토팽창에 환장이 된 일제는 침략전쟁을 계단식으로 확대하기 시작하였다.이것은 병력의 부단한 소모를 가져왔으며 일본의 인적자원은 고갈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바빠난 일제는 전선에서 소모되는 병력을 식민지조선에서 강제징병의 방법으로 충당하기로 하였다.이를 위해 1938년 2월에 《륙군특별지원병령》을 조작공포하고 4월부터 강제실시하였다.그후 태평양전쟁이 장기화되고 인적자원의 부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자 조선의 청장년들을 전쟁대포밥으로 동원할 목적으로 1943년 《병역법중 개정법률안》이라는것을 공포하고 그해 8월 1일부터 그 시행에 착수하였다.그리하여 조선에서는 관권과 군권이 총발동되여 수많은 청장년들을 일제의 침략전쟁터에 강제로 끌어가는 가혹한 징병제가 실시되였다.
일제는 《징병준비위원회》를 조작하고 징병제강행을 담당할 경찰 및 행정기구를 정비하였으며 《호적조사》놀음을 벌려놓았다.이것은 강제징병제실행의 첫 단계로서 징병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한것이였다.일제는 《호적조사》를 통해 조선땅에서 사는 사람들뿐아니라 살길을 찾아 해외로 떠나간 청장년들까지 모조리 장악하였다.
일제는 징병제실시를 위해 《교련》의 간판밑에 조선의 청장년들에게 강제적으로 군사훈련을 주었다.먼저 중등학교들에서부터 군사교육을 시작하고 점차 그 범위를 넓혀 고등교육단위들에도 적용하였다.
일제는 극심한 학비난으로 학교에 갈수 없었던 청소년들까지 침략전쟁에 내몰기 위해 《청년특별련성소》라는것을 설치하고 그들에게 가혹한 군사훈련을 주었다.놈들은 그것이 마치도 사회교육시책인듯이 묘사하면서 대상을 빠짐없이 끌어들이였다.이와 함께 소학교, 보통학교를 나온 청년들을 침략전쟁에 리용할 목적으로 《청년훈련소》를 설치하였다.
일제의 강제적인 군사교육정책으로 하여 청장년들은 물론 나어린 학생들까지 일제침략군 장교의 지휘밑에 총을 메고 진행하는 분렬행진, 사격훈련, 기마전훈련과 각종 군사기재를 다루는 훈련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는 이렇게 예비훈련을 준 다음 《지원병》, 《학도병》 등의 명목으로 전쟁터에 끌고가 저들의 총알받이로 리용하였다.
1943년 10월부터 11월사이에만도 무려 25만 4 700여명에 달하는 국내외의 조선청장년들이 《징병적령자》로 되여 강제로 끌려갔다.
일제는 징병으로 끌어간 조선사람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그들을 전쟁에 필요한 소모품으로 여기였다.
놈들은 조선인병사들에게 일률적으로 총을 주면 반란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고 하면서 두 부류로 갈랐다.즉 총을 주는 병사와 주지 않는 병사로 구분하였다.총이 없는 조선인병사들은 가장 힘든 노예로동부대에 배치하고 총을 쥔 병사들은 전쟁터의 제1선에 내세웠다.
패망직전 남방점령지대에서 략탈한 석유수송이 정지되자 일제는 대용연료를 생산하기 위하여 고구마, 감자생산을 전업으로 하는 1만 5 000명의 《농경근무대》를 조직하였는데 그가운데서 1만 2 500명이 조선인병사들이였다.
전장에 내몰린 조선인병사들은 형언할수 없는 민족적차별과 학대를 받았다.
일제침략군 《북지파견군 공병 4278부대》소속 훈련소에 끌려갔던 리문병은 《장교는 말할것도 없고 사병들모두가 일본말을 잘 모르는 조선청년들이 저들의 구령을 제때에 따르지 못하면 〈센징〉이라고 모독하면서 발길로 걷어차고 훈련이 끝난 다음에는 조선사람만 따로 모여놓고 〈기합〉을 들이대군 하였다.》라고 증언하였다.1945년 5월 한 일본륙군부대에 끌려갔던 리종주는 왜놈장교가 고열로 앓고있는 조선청년을 격검채로 사정없이 때리고 그의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죽인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고 하면서 분노를 터뜨렸다.
일제침략군은 전장에서 조선인병사들을 맨 앞장에 세우고 저들은 그뒤에서 그들을 감시하였으며 《돌격》할 때 조금이라도 이상한 현상이 있을 때에는 가차없이 죽이였다.(전문 보기)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일제의 죄악을 고발한다.
-중앙계급교양관에서-
본사기자 찍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