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론평원의 글 : 패전을 《승전》으로 둔갑시키고있는 해괴한 광대극 -괴뢰들의 《연평도포격전 2주년 기념행사》놀음을 평함-
연평도포격전이 벌어진 때로부터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두해전 평범하게 흘러가던 11월 23일이 세상사람들의 뇌리속에 깊이 새겨지게 된것은 바로 이날이 조선전쟁이후 근 60년만에 괴뢰들에게는 또다시 패전의 쓴맛을 안겨주고 우리 서남전선군장병들을 비롯한 천만군민에게는 전승의 쾌감을 가슴뿌듯이 느끼게 한 력사적인 날이기때문이다.
괴뢰들은 민족사의 갈피에 연평도불바다전으로 기록된 11월 23일의 포격전에서 당한 참패와 쓰라린 교훈을 순간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평도포격전 2돐을 맞으며 괴뢰들이 벌려놓고있는 그 무슨 《추모행사》라든가,연평도《위령탑제막식》,《참배식》 등은 저지른 죄행과 패배의 교훈을 되새기는데 필요하다고 평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그마한 괴뢰해병대의 뒤골방에서 남들이 볼세라 초졸하게 치르어오던 그 무슨 《추모행사》를 괴뢰당국이 《경축행사》로 포장하고 《참배식》이요,《위령탑제막식》이요 하는것 등을 《전승행사》로 크게 둔갑시켜 여론을 기만하고 세인을 우롱하고있는데 대하여서는 스쳐지날수 없다.
제 혀바닥이 돌아가는대로 우겨대면 저지른 죄행이 《공적》으로 되고 패전이 《승전》으로 되는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점에서 두해전 연평도포격전은 괴뢰들에게 지울수 없는 수치를 안겨준 명백한 패전이라는데 대하여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처럼 그때에도 11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북방한계선》을 고수하려는 괴뢰들의 도발책동은 위험한 단계에 이르고있었다.북침전쟁연습인 《호국》훈련에 한창 광분하던 11월 23일에는 연평도를 본거지로 삼고 우리를 위협하는 모험적인 포사격훈련까지 계획되여있었다.
조성된 엄중한 사태에 대비하여 우리 군대는 괴뢰들에게 분별있게 처신할데 대한 내용을 담은 사전통고를 내보내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도발광기에 들뜬 괴뢰들은 우리의 거듭되는 사전통고를 무시하고 끝끝내 신성한 우리 령해에 함부로 불질을 해대기 시작하였다.
도발자들의 무모한 선불질은 영용한 우리 서남전선군장병들의 즉시적인 반격에 부딪쳤다.군사적도발의 본거지로 전락된 연평도에 우리 서남전선군장병들의 노호한 멸적의 불줄기가 쏟아져내렸다.
화염에 휩싸인 연평도는 말그대로 불바다가 되였다.순식간에 괴뢰군병영들과 지휘소들,경찰서를 비롯한 군,경대상물들이 재더미로 변하였으며 허세를 부리던 《K-9》곡사포들과 전파탐지기들을 포함한 각종 화력타격수단들이 파철로 되고말았다.
군사적도발에 기승을 부리던 괴뢰군장병들속에서는 죽어가는자들과 부상자들이 속출되고 살아남은 놈들이 줄행랑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때 섬주민들은 다행히도 괴뢰군진지 반대쪽의 바다가에 조개를 캐러 내려갔거나 대피호에 들어갔기에 크게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괴뢰군부호전광들은 섬주민들을 우리 서남전선군장병들의 대응타격을 막는 인간방패로 내세우기 위하여 11월 23일 8시 우리측이 도발적인 해상포사격을 강행하는 경우 《즉시적인 물리적대응타격을 가하게 될것》이라고 내보낸 경고통지문내용을 알려주지조차 않았다고 한다.
그날 우리 군대의 무자비한 군사적타격이 가해지고있다는 보고를 받은 괴뢰당국자는 청와대 지하실안에 쭈그리고앉아 《확전》만은 피해야 한다고 비명을 질러댔으며 연평도현지의 괴뢰군부호전광들은 무기와 진지를 줴버리고 대피소로 줄행랑을 쳐 몸들을 사리였다.
얼마나 급해맞았으면 우리 서남전선군장병들의 보복타격이 가해지기 바쁘게 괴뢰군부가 《포사격을 즉시 중지해달라.》는 통지문까지 황급히 들여보내는 추태를 보여주었겠는가.북남관계사에 일찌기 있어본적 없는 항복서를 보낸셈이였다.
그로부터 닷새후에는 괴뢰군부호전광들이 제놈들 지역에서 포탄 한발이 오발되자 즉시 《훈련중에 발사된 오발이므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는 겁에 질린 요청을 할 정도로 혼비백산하였었다.
그때의 패전상에 대해 괴뢰국방부 장관 김관진놈도 공개석상에서 연평도포격전은 제놈들에게 《지울수 없는 뼈아픈 상처》와 《엄청나게 큰 실망을 안겨준 사례》였다고 실토정한바 있다.
괴뢰당국과 집권여당안에서는 《단 하루의 군복무경력도 없는 MB때문에 군모두가 패전군신세》로,《위세높던 해병대가 패잔병무리》로 망신당하게 되였으며 《국민의 혈세를 탕진하여 마련해준 고성능첨단장비들이 쓸모없는 장난감,고철로 되였다.》는 개탄의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괴뢰군장병들속에서는 《무공은 필요없다.목숨부지가 첫째이다.》,《확전되는 경우 상책은 탈출이다.》,《이북의 포탄 한방에 제노라고 하던 해병대들이 도망치는 판이니 결과는 뻔하다.》며 전쟁공포증과 염전분위기가 걷잡을수 없을 정도로 만연되기 시작하였다.
포성이 멎은 뒤 며칠이 지난 후에도 연평도상공에서는 검은 연기가 끝없이 타래쳐올랐으며 괴뢰군장병들과 주민들은 공포와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저마다 보짐을 싸들고 섬탈출을 시도하였다.
며칠사이에 연평도주민 1 370여명가운데서 1 340여명이나 뭍으로 빠져나오고 그옆의 백령도와 대청도주민들까지 무리지어 섬을 탈출하는통에 인천으로 향하는 드넓은 바다길마저 막혀버리고말았다.
우리 서남전선군장병들의 불세례앞에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 5개 섬은 말그대로 《죽음의 망령이 배회하는 지옥》으로,《모든것이 불타버리고있는 하나의 재더미》로 되였다.
결국 우리 서남전선군장병들이 날리는 몇발의 포탄에 괴뢰군장병들은 물론 서해 5개 섬 주민모두가 뿔뿔이 흩어지는 패전광경이 펼쳐지게 되였다.(전문 보기)
괴뢰호전광들의 선불질의 대가로 불바다가 되였던 연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