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11月 13th, 2024
전민과학기술인재화는 전면적국가부흥의 위력한 담보이다
위대한 당중앙이 펼친 새시대 지방발전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전국의 20개 시, 군들에서 우리식 문명과 발전의 실체들인 지방공업공장들이 확연한 자태를 드러내고있다.
거창한 10년혁명이 본격적인 시행단계에 들어선 중대한 시점에서 당중앙은 지방공업공장건설에만 국한되여있던 지방발전정책을 보건과 과학, 교육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정책으로 확대심화시킬데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실무적대책들을 강구하였다.
력사적인 지방발전사업협의회에서는 3대건설과제의 하나로 새로 추가부과된 과학기술보급거점건설과 함께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실현할데 대한 문제가 다시금 중요하게 강조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사회적으로 과학기술중시기풍을 세우며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구호를 높이 들고 모든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현대과학기술을 열심히 배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 당이 독창적인 전민과학기술인재화사상을 제시하고 국가의 발전리념으로, 주요전략으로 책정한 때로부터 어느덧 10여년이 흘렀다.
2013년 6월 13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에게 우리는 전민무장화의 구호를 들고 전체 인민을 그 어떤 침략자도 물리칠수 있게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킨것처럼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구호를 높이 들고 전체 인민을 현대과학기술로 튼튼히 무장시켜야 한다는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근로대중을 현대과학기술로 튼튼히 무장시켜야 그들의 무궁무진한 창조적힘이 국가건설에 참답게 이바지될수 있으며 인민대중이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나갈수 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구호를 독창적으로 제시하신데는 1960년대 우리 혁명앞에 조성되였던 준엄한 난국을 전민무장화의 구호를 들고 뚫고헤쳐 위대한 승리를 이룩한 빛나는 전통을 이어 과학기술의 시대, 지식경제시대인 오늘에는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대학졸업정도의 지식을 소유한 지식형근로자, 과학기술발전의 담당자로 준비시켜 전인민적인 창조대전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 미증유의 새로운 기적을 창조하시려는 크나큰 웅지가 깃들어있다.
과학자, 기술자들만이 아니라 온 나라 전체 인민을 과학기술인재로 키우시려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원대한 리상이 담긴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구호는 내세운 목적과 리상의 숭고성, 그 과학성과 정당성으로 하여 날이 갈수록 커다란 생활력을 발휘하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지방발전사업협의회에서 오늘날 현대과학과 지식, 현대문명을 모르고서는 한치도 앞으로 전진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 당이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구호를 제시한것은 바로 전체 인민을 지식인화하자는데 목적이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전체 인민의 지식인화!
전체 인민을 혁명적인 사상과 견결한 투쟁정신, 고상하고 문명한 도덕적풍모와 함께 현대과학기술지식과 활용능력까지 갖추고 지식과 기술로써 국가와 사회발전에 참답게 이바지하는 지식인으로 키우려는것이 바로 우리 당의 뜻이고 의지이다.
근 80년간 리상으로만 그려보던 지방변혁의 대업을 10년혁명기간내에 수행하는 위대한 년대가 흐르고있는 오늘 전민과학기술인재화실현이 가지는 의의는 날로 더욱 부각되고있다.
지방의 진흥, 국가의 부강번영을 위한 위력한 힘은 현대과학기술을 소유한 근로대중을 육성하는데 있다.
우리 당의 지방발전정책을 받들고 떨쳐나선 인민군군인들의 결사의 투쟁으로 지방공업공장들이 훌륭하게 일떠서고 여기에 나라의 강력한 과학기술력량이 망라된 2월17일과학자, 기술자돌격대가 맹활약을 하면서 설계제작한 현대적인 설비들을 그쯘히 갖춘 생산공정들이 확립된다고 하여도 그것을 직접 관리하고 운영할 담당자들이 과학기술적으로 똑똑히 준비되지 못하고 주인구실을 바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갖 빛좋은 개살구와 같은 무용지물이 되고만다.
농촌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지금 농촌들에 현대적이고 문화적인 새 살림집들이 일떠서 지방인민들이 도시부럽지 않은 집들에서 살게 되였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락후한 인식과 후진성을 소거해버릴수 없다.
그러므로 지방의 획기적발전, 전면적부흥을 하루빨리 앞당기고 지속적인 발전능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지방공업공장건설, 농촌살림집건설과 같은 경제적토대, 건축미학적면에서만 아니라 지방인민들의 사상을 개조하고 그들에게 지식을 전수해주어 인식령역에서부터 개변을 가져와야 한다.다시말하여 지방인민들을 우리 당의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는것과 함께 현대과학기술로 튼튼히 무장시켜 지식과 기술로써 자기 지역의 경제발전에 참답게 이바지하게 하여야 한다.당이 제시한 농촌혁명강령의 진수도 이처럼 농촌의 기본력량을 선진화, 로동계급화, 과학기술인재화하자는데 있다.
지방이 변하는 시대, 나라가 부흥발전하는 새시대를 전면적으로 열어나가는데서 전체 인민들을 현대과학기술로 무장시키는 사업은 이처럼 그 어느때보다 대단히 중요하다.
당의 웅대한 리상에 비해볼 때 현재 시, 군들에 꾸려놓은 미래원들과 시, 군들의 공장, 기업소, 농장들의 과학기술보급실들의 형편에서는 실지 광범한 군중이 변화발전하는 현실에 부응하는 현대과학기술, 최신핵심기술을 접하기 어렵다.또 공장, 기업소들마다 콤퓨터를 설치해놓고 종업원들이 원격교육체계에 망라되여 공부하고있지만 단순히 이것만으로써는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실현할수 없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밝혀주신바와 같이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실현하자면 전체 인민이 현대과학기술에 접할수 있고 자기의 요구에 따라 배울수 있는 정연한 체계를 세우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오늘의 벅찬 시대에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구호를 더욱 높이 추켜든 당의 숭고한 뜻을 깊이 간직하고 누구나 과학기술인재가 되는것을 중요한 혁명임무로, 삶과 투쟁의 근본요구로 간주하여야 한다.
혁명의 지휘성원들인 일군들부터가 과학기술인재로 되기 위하여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달라붙어야 한다.
우리 당의 전민과학기술인재화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앞장에서 선도해야 할 사람들은 다름아닌 일군들이다.
일군들은 자기가 누구이며 오늘의 벅찬 시대와 혁명앞에 지닌 사명과 임무가 무엇인가 하는것을 언제나 명심하고 현대과학기술지식과 실천능력을 소유한 만능의 실력가, 다재다능한 팔방미인들로 준비함으로써 지방진흥, 국가부흥을 앞당기기 위한 실천투쟁속에서 당과 혁명앞에 지닌 무거운 책임과 본분을 훌륭히 수행하여야 한다.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자들을 현대과학기술로 튼튼히 무장한 과학기술인재로 키우는데 품을 들이는것이 또한 중요하다.
전민과학기술인재화는 구호나 웨치고 미래원과 과학기술보급실을 꾸려놓고 과학기술전당의 과학기술보급실망체계에 가입하였다고 하여 또 종업원들이 원격교육체계에 망라되였다고 하여 저절로 실현되는것은 아니다.정성을 기울이고 품을 들이면서 한명한명 알알이 키워야 한다.
모든 일군들은 국가가 전적으로 부담하여 시, 군들에 과학기술보급중심을 그것도 현대적인 정보기술수단들을 갖춘 과학기술보급거점만이 아닌 주민들이 영화도 관람하고 체육문화생활도 하며 위생환경조건이 보장된 상업망들과 기타 각종 편의시설들까지 포함된 종합적인 문화생활거점으로 확장하여 다기능화된 복합형문화중심으로 건설하여주려는 당의 숭고한 뜻을 언제나 명심하고 그 원대한 리상과 실천력에 자신들의 발걸음을 따라세워야 한다.
전사회적으로 혁명적학습기풍을 더욱 철저히 세워야 한다.
당에서 일떠세워주는 현대적인 일터와 멋들어진 선경마을에서 일하며 살게 되였다고 기쁨의 노래만 부르고 고마움의 만세만 웨칠것이 아니라 누구나 꾸준한 학습과 정력적인 노력으로 지식과 기술을 다지고다져 조국에 반드시 필요하고 자기 일터와 집단에 없어서는 안될 인재가 되여야 한다.
대중적기술혁신운동을 힘있게 벌리는것은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적극 다그쳐나가기 위한 중요한 방도의 하나이다.
대중적기술혁신운동을 벌리는 과정에 모든 생산자들의 기술기능수준이 높아지게 되며 그 과정에 새 기술의 창조자, 창의고안명수, 발명가로 성장하고 나아가서 쟁쟁한 과학기술인재대렬에 당당히 들어서게 된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우리 당의 전민과학기술인재화방침을 높이 받들고 현대과학기술로 튼튼히 무장한 애국적인 인재가 되여 지식과 기술로써 우리 당의 숙원실현을 위한 10년혁명에 너도나도 이바지할 때 지방중흥의 그날이 앞당겨지고 지방의 획기적, 전면적발전과 더불어 우리 국가의 부흥장성은 가속화될것이다.(전문 보기)
과학계가 용을 쓰는것만큼
과학과 기술로 전진하고 비약해나가자
◇ 올해의 투쟁이 마지막고비에 이르렀다.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제10차전원회의 결정을 받들고 5개년계획을 완수하는데서 관건적인 고리로 되고 절실하게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풀기 위하여 주력해온 과학계의 분투와 노력이 알찬 과학기술성과로 하나하나 이어지고있다.
현재 올해 과학기술발전 국가중점대상과제에 반영된 적지 않은 과제들이 거의 결속단계에 이른데 이어 대부분의 과제들이 일정계획대로 추진되고있다.그리고 당적,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연구과제수행에서도, 여러 부문과 단위들에 파견된 2월17일과학자, 기술자돌격대들과 온 나라 방방곡곡의 전야마다에 달려나간 과학농사추진조의 활동에서도 혁혁한 성과들이 이룩되여 해당 부문과 단위들의 전진과 발전에 커다란 활력을 부어주고있다.
당결정관철을 위한 올해의 전인민적인 투쟁이 마감단계에서 심화될수록 어디서나 보다 강력한 과학의 힘이 필요하며 더욱더 맹렬한 과학계의 활약을 요구하고있다.
◇ 과학계가 기운차게 용을 쓰는것만큼 우리의 분투와 노력이 최상의 결실로 전환되게 된다는것이 당중앙의 믿음이며 기대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과학연구사업은 자립적민족경제의 위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는데 이바지하는 과학연구사업으로 되여야 하며 과학연구성과들은 현실에 제때에 도입되여야 합니다.》
우리의 위업을 전진시키는데서 제일척후전선인 과학기술전선이 들고일어나 보다 혁신적인 결과와 변화를 가져와야 당결정관철을 위한 모든 전선이 들끓게 된다.
높은 연구실적이자 과학계의 충실성이다.
당과 국가에 대한 과학계의 충실성은 결코 올해의 출발선에서 세운 결의목표의 글줄이나 연단에서 청높은 목소리로 다진 맹세로가 아니라 그 목표를 기어이 달성하여 내놓은 실질적인 연구성과, 높은 연구실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당이 바라고 나라가 고대하는것이라면 성공에로의 길이 아무리 힘들고 간고하여도 기어이 끝을 보고야말겠다는 각오를 안고 온 한해 아글타글 노력하고 실천해온 과학자들만이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연구결과를 내놓을수 있고 자신들의 충실성에 대하여 떳떳이 말할수 있다.
◇ 당과 국가앞에 과학계의 충실성을 검증받을 때는 드디여 왔다.
당결정결사관철에 떨쳐나선 모든 전구들이 올해 투쟁성패의 관건을 과학기술에 걸고 과학계를 바라보고있다.
크나큰 믿음이 넘치는 그 시선앞에서 다시금 돌이켜보자.
무엇을 하나 연구도입하였다고 자부한다면 현실에서 그 경제적효과성이 실지 얼마나 나타나고있는가, 진짜 온전한것인가를.
지금 마무리하고있는 연구결과라면 그 과학기술적담보가 정말로 확고한것인가, 완전무결한 성공이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는것인가를.
과학계의 전체 과학자들과 일군들은 최대의 마력으로 분기하여 두뇌전, 창조전에 더욱 박차를 가함으로써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하는 알찬 연구성과를 이룩하고 당과 국가앞에, 인민앞에 과학계의 충실성을 검증받아야 할것이다.(전문 보기)
세상에 이처럼 뜨겁고 깊은 정이 또 어디 있으랴 -위대한 어머니당의 크나큰 사랑을 또다시 받아안은 수재민들의 격정의 목소리-
지난 8일 4.25려관과 열병훈련기지에서는 또다시 감동깊은 화폭이 펼쳐졌다.
꿈같은 평양체류의 나날을 이어가고있는 수해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이 당의 은정어린 겨울철피복류와 가방을 받아안은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인민을 끝없이 존중하고 인민의 리익을 절대시하며 인민들을 참다운 어머니심정으로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사랑속에 수재민들이 특별귀빈이 되여 평양에 올라온지도 90일이 흘렀다.그 나날 무더운 여름과 서늘한 가을은 지나가고 어느덧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에 들어섰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집을 떠나 생활하는 수해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이 계절에 따라 부러운것없이 옷차림을 하도록 친어버이의 손길로 보살펴주시며 얼마전에는 가을옷과 교복을 보내주신데 이어 이번에 또다시 포근한 솜옷과 겨울내의, 털구두와 가방을 수재민들에게 안겨주시였다.
다양한 형태의 질좋고 맵시있는 새옷들을 쓸어보며 수해지역 주민들은 더울세라 추울세라 다심히 보살피시며 거듭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어버이의 사랑에 눈시울을 적시였고 나어린 학생들도 친부모의 따뜻한 정을 가슴마다에 새겨안았다.
지금 수해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의 숙소는 말그대로 격정의 도가니가 되여 끓어번지고있다.
열병훈련기지 4호동에서는 량강도에서 온 주민들과 학생들이 살고있다.
당의 은정속에 받아안은 솜옷과 내의, 털구두 등을 한참이나 쓸어보던 김형직군 읍의 리옥경녀성은 눈물을 머금은 목소리로 《이 솜옷과 신발을 어떻게 무심히 대할수 있겠습니까.원수님 보내주신 이 모든것을 한생의 가보로 간직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그러면서 그는 평양에 올라올 때에는 빈몸이였던 자기들에게 이제는 사계절 입을 옷이며 신발뿐 아니라 갖가지 생활필수품과 화장품까지 그득하다고, 수재민이라는 단 한가지 리유로 하여 당과 국가의 많은 혜택을 받아안으니 송구스러운 마음뿐이라고 덧붙였다.
그것은 비단 그의 심정만이 아니였다.
옷을 받아안기 얼마전에 자기들의 숙소에 펼쳐졌던 화폭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평생 잊을것같지 못하다며 김정숙군 장항농장의 한 농장원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10월중순 4.25려관과 열병훈련기지로는 경공업성과 지방공업성의 일군들 그리고 수도 평양의 피복생산자들이 찾아왔다.그들은 여러날에 걸쳐 1만 수천명에 달하는 수재민들의 몸과 신발문수를 일일이 재였다.
《사실 고향에서도 그렇고 TV에서도 학생들의 몸재기를 하는 모습은 많이 보아왔습니다.하지만 어른들에게까지 이렇게 꼭 맞는 옷을 해입히려고 몸을 재고 신발문수까지 정확히 재여주는 일은 평양에 올라와 처음 보았습니다.》
정말 그랬다.당의 은정어린 조치에 따라 얼마전 가을옷을 마련해주기 위해 숙소에 찾아왔던 경공업성, 지방공업성 일군들과 생산자들이 이번에는 수해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의 겨울옷과 신발의 호수를 확정하러 또다시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숙소가 바다처럼 설레였다.
신발문수재기가 한창인 어느한 방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70나이를 넘긴 한 로인이 며느리의 손에 이끌려 방에 들어서니 경공업성 신발공업관리국의 한 일군이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그리고는 하얀 종이에 발모양까지 그려넣으며 꼼꼼히도 신발문수를 확정하였다.
발끝을 꼭 누르며 편안한 자세를 취하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겨울신발인것을 고려하여 치수를 얼마만큼 조절해야 하는가를 가늠해보기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로인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한없이 인자한 어머니당의 사랑이 가슴에 마쳐와 감격해하던 로인은 그만 그 일군의 손등에 눈물방울을 뚝 떨구고말았다.그리고는 입속으로 《고맙습니다.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몇번이고 뇌이였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한목소리로 어머니라 부르는 우리 당이 아니고서야 어찌 수재민들을 이렇듯 따뜻이 품어안고 보살필수 있으랴.
문득 우리의 눈에 한 어린이가 이름표가 달린 새 솜옷을 입고 복도를 좁다하게 오가는 모습이 안겨들었다.가까이 다가가보니 앞가슴에 《리태원 남자 3살 100/50 량강도 4호동 346호실》이라는 이름표가 달려있었다.
순간 가슴이 저도 모르게 뭉클해지는데 어느새 곁에 다가선 한 일군이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태여난지 13달이 되는 어린아이로부터 고령의 로인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안겨진 겨울옷과 신발, 가방들에 이렇게 이름표가 다 있습니다.》
이는 진정 자식을 귀중히 보살피며 온갖 정을 다 쏟아붓는 어머니의 진함없는 사랑의 결정체가 아닌가.하기에 이름표가 달린 새옷과 신발, 가방을 받아안던 시각 어머니당의 다심하고 세심한 그 정이 가슴에 마쳐와 어른들도 아이들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수재민들은 누구나 이제는 한없이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부러운것없이 생활하는데 습관이 되였다고 이야기한다.
나라에서 철따라 새옷과 신발을 보내주고 생활필수품과 화장품이 부족할세라 특별히 관심하여 안겨줄뿐 아니라 1만 수천명가운데서 생일을 맞는 사람이 있을 때면 풍성한 음식상까지 차려주는 다심한 정, 아파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곁에서 밤깊도록 잠 못들며 치료대책도 세워주고 수해지역의 주민들과 학생들이 명승지나 야영소로 떠날 때에는 어머니의 손길로 려장도 일일이 차려주며 마음쓰는 그 사랑속에 더운줄도 추운줄도 모르고 부러운것도 없다는 그들이다.
재산이 너무도 많이 늘어나 어떻게 다 가지고가랴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고, 그런데 당에서는 멋진 가방까지 매 사람에게 안겨주었다고 이야기하는 수재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며 한뉘 농사를 지어온 농사군들이 그 이름도 유명한 《진성》, 《은하》, 《류원》, 《매봉산》, 《소나무》 등의 상표가 붙은 솜옷이며 털구두, 가방을 받아안았으니 이제는 정말 멋쟁이가 되였다며 웃음속에 터놓는 말도 들을수록 가슴뜨거웠다.
의주군 서호리에서 온 수재민들속에는 올해 9살 난 신평미학생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 김혜경녀성은 곱게 맞는 딸의 솜옷을 몇번이나 어루쓸며 《우리 평미의 솜옷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알고보니 평미는 수도 평양에 올라온 때로부터 키가 거의 5cm나 컸는데 겨울옷의 호수를 확정하기 위해 몸재기를 할 당시에 비해 솜옷을 받았을 때에는 그만 키가 조금 더 컸다는것이였다.그런대로 한해겨울은 입힐수 있겠다고 생각한 김혜경녀성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저 환해진 딸의 모습을 보며 기쁨에만 겨워있었다.
그런데 옷을 받아안은지 얼마 지나서 담임교원이 달려오더니 피복생산자들이 평미가 그새 키가 더 큰것을 몰랐다고 하면서 그의 솜옷을 가져오라고 했다는것이였다.얼마후 다시 돌아온 담임교원은 새 솜옷을 평미에게 입혀보는것이였다.이제야 보기 좋게 들어맞는 딸의 솜옷을 바라보던 김혜경녀성은 그만 참고참던 오열을 터뜨리며 《경애하는 원수님, 고맙습니다.》라고 격정에 겨워 말하였다.
날마다 가슴뭉클하는 사랑과 은정에 접할 때마다 생각이 깊어진다고, 그것을 시와 노래에 담는것이 이제는 흔한 일로 되여 평양체류기간에 누구라 할것없이 시인이 되고 가수가 되였다는것이 수재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지금 수재민들은 당의 은정속에 희한하게 일떠서는 고향마을들을 TV화면에서 보고 또 보며 고마운 조국을 한몸 다 바쳐 받들 불같은 맹세를 굳게 가다듬고있다.
진정 인민을 지키고 받들기 위해 온넋을 깡그리 바치고 인민을 위한 고생을 무상의 영광으로 여기는 어머니 우리당 조선로동당이 있기에 이 땅에서는 앞으로도 영원히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 격정의 화폭들이 끊임없이 펼쳐질것이다.(전문 보기)
정치용어해설 : 사회정치생활
사회정치생활은 사람들이 정치조직에 망라되여 사회정치적생명을 유지하고 빛내여나가는 활동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사람들의 생활은 단순히 물질생활만을 가지고 평가하여서는 안되며 국가와 사회의 참다운 주인으로서 누리는 사회정치생활을 기본으로 하여 평가하여야 한다.》
사람은 단순한 개인적존재인것이 아니라 사회적관계를 맺고 사회적집단속에서 사는 사회적존재이다.사람의 생활에는 정치생활도 있고 경제생활, 사상문화생활도 있다.사람은 유족한 물질생활을 누리는것과 함께 값높은 정치생활과 건전한 사상문화생활을 다같이 누릴 때 진정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한다고 말할수 있다.
사회정치생활은 사람들의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이다.그것은 사회정치생활에 의하여 사회생활에서 사람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담보되며 사회생활전반의 발전방향이 규정되고 그 전 과정이 조절통제되기때문이다.
사람은 육체적생명과 함께 사회정치적생명을 가지고있으며 사회정치적생명은 사회적존재인 사람에게 있어서 육체적생명보다 더 귀중하다.사람의 사회정치적생명은 사회와 집단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 정치생활을 통하여 유지되고 공고화된다.
사회정치생활은 사람들이 정권의 주인으로서 국가관리와 사회정치활동에 자유롭게 참가하며 사회정치조직에 망라되여 정치조직생활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사람들은 사회주의사회에서만 사회적인간으로서의 참다운 사회정치생활을 누릴수 있다.
인민대중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 되고있으며 사회의 모든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사회정치적생명체로 굳게 결합되여있으며 정치생활을 통하여 자기의 정치적생명을 빛내여가고있다.(전문 보기)
《우리의 힘은 단결, 단결의 중심은 한별》
창당세대가 지녔던 숭고한 정신과 투쟁기풍을 따라배우자
참으로 멀고도 험난한 길을 걸어온 우리 혁명이다.
걸음걸음 막아서는 시련과 난관은 헤아릴수 없었어도 언제한번 좌절과 실패를 모르고 꿋꿋이 전진해온 조선혁명!
그 승리의 요인을 한마디로 쥐여짜면 일심단결, 이 대답이 나온다.
하다면 조선혁명의 승리의 철학, 일심단결은 어떻게 마련된것인가.
대하에는 시원이 있기마련이다.
조선혁명의 려명기에 위대한 수령님을 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신 창당세대는 당파싸움으로 얼룩진 파란만장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일심단결의 새시대를 열어놓았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혁명의 려명기에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혁명의 령도자로, 수령으로 높이 우러러모시고 수령님을 중심으로 한 사상의지 및 행동의 완전하고도 무조건적인 통일단결을 이룩함으로써 우리 당의 통일단결의 빛나는 전통을 마련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96년전 가을 길림일대에서는 불멸의 혁명송가 《조선의 별》이 불리워지기 시작했다.
혁명송가의 창작가인 김혁동지는 노래보급에 앞서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캄캄한 밤하늘아래서 피눈물을 뿌리며 헤매이던 우리 겨레가 찬란한 향도의 별을 맞이한 오늘의 이 기쁨, 이 영광을 안고 노래를 부릅시다.…》
위대한 수령님을 조선혁명의 유일한 지도자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실 새별로 높이 칭송한 김혁동지의 절대적숭배심은 과연 어디에 뿌리를 둔것인가.
일찌기 동양 3국을 일주하며 쓴맛단맛을 다 본 풍운아 김혁동지는 견문이 넓고 리론수준이 높으며 문학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재사였다.
참다운 혁명의 길로 이끌어줄 위대한 수령을 모시지 못한탓에 희망도 포부도 잃고 락엽마냥 만리타향을 정처없이 떠다니던 그는 어느날 차광수동지의 편지를 받게 되였다.상해에서 아까운 인생을 썩이지 말고 길림으로 오라, 길림에만 오면 네가 찾는 지도자도 있고 리론도 있고 운동도 있다, 길림은 너의 리상향이다! …
1927년 여름, 길림육문중학교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것은 김혁동지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이였다.
친근감을 자아내는 인품, 영채도는 안광, 철철 넘치는 위인적열정, 아직은 중학생이시고 나이도 아래이시였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천품은 대번에 김혁동지의 넋을 사로잡았다.옹근 사흘동안 그이의 기숙방에서 밤새워 가르치심을 받으면서 위대한 수령님이시야말로 온 겨레가 목마르게 기다리던 조선의 새별, 민족의 은인이시라는것을 절감한 그는 수령님의 손을 덥석 틀어잡고 불같이 토로했다.
《성주, 나는 여기서 닻을 내리겠소.내 인생은 이제부터요.》
김혁동지에게 있어서 《조선의 별》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였다.자기의 아니 청년공산주의자모두의 인생체험의 총화였고 신념의 웨침이였다.
바로 그래서 김혁동지를 비롯한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노래보급을 당장 중지하도록 하시였지만 더 광범히 보급하고 더 높이 부른것 아니던가.
한별동지의 말씀이라면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지만 《조선의 별》을 부르지 말라는 말씀만은 받아들일수 없다고, 그것은 우리들스스로 한별동지를 혁명의 령도자로, 통일단결의 유일한 중심으로 모실것을 결심했기때문이라고 격정을 터친 청년공산주의자들!
그 신념의 밑바탕에는 절세의 위인에 대한 인간적매혹, 사상적공감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글도 잘 쓰고 연설도 잘했지만 마음씨가 무한정 좋아서 청년들을 많이 끌었으며 맑스주의전문가로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고, 대단한 멋쟁이였다고 회고하신 차광수동지!
위대한 수령님보다 나이가 일곱살이나 우인 그가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선두에서 수령님을 조선혁명의 지도자로, 민족재생의 유일한 구성으로 충직하게 받들어모실수 있은 근저에도 바로 무한한 매혹과 절대적인 공감이 있었다.
파벌싸움에 피눈이 되여 테로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종파분자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시골훈장으로 조용히 살리라 마음먹었던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그이께 온넋이 자석처럼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특히 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것은 모든 문제를 조선의 구체적현실에 기초하여 판단하시며 공리공담이 아니라 혁명실천을 중시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투철한 자주적립장, 주체적이며 혁명적인 사고방식이였다.
자기가 걸어온 쓰라린 인생길을 스스럼없이 터놓은 차광수동지는 이국땅에서 찬비를 맞으며 걸어갈 때 자기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줄수 있는 옳바른 투쟁로선과 지도자를 목마르게 기다렸노라고 고백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드린 태양의 존함에도 차광수동지의 절대적인 숭배심과 열화같은 흠모심이 비껴있다.
1930년 가을 조선혁명군 성원들의 모임에서 그는 긍지높이 선언하였다.
《온 겨레가 우러러따르는 위대한 한별동지를 어찌 새별에만 비기겠소.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을 담아 한 일자, 별 성자대신 날 일자에 이룰 성자로 하여 김일성동지로 할것을 제기하오.》
자기 령도자에 대한 충실성을 가장 진실하게, 가장 견결하게, 가장 열렬하게 지닌 차광수동지였기에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보장에 최대의 주의를 돌리였으며 동지들에게도 늘 이렇게 강조하군 하였다.
《우리의 지도자 한별동지를 옹호보위하는것은 조국과 혁명앞에 지닌 우리들의 최대의 의무요!》
위대한 수령님을 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으로 받들어모신 청년공산주의자들의 무한한 충실성을 보여주는 이야기 그 얼마나 많은가.
적들에게 체포되여 끌려가면서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이신 한별동지께서 우리 혁명을 이끄시는한 조선은 반드시 독립될것입니다.》라는 불같은 웨침으로 인민들에게 힘을 준 청년공산주의자 리제우동지, 반일부대와의 통일전선을 실현할데 대한 수령님의 의도를 실현하는 길에 청춘을 바친 리광동지…
1926년 10월 화전에서 진행된 《ㅌ.ㄷ》결성모임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타도제국주의동맹 책임자로 높이 모실것을 정중히 제의한 최창걸동지가 류하반제청년동맹을 결성할 때 한 말은 단결의 철리로 오늘도 메아리친다.
《우리의 힘은 단결에 있고 단결하자면 그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우리 겨레가 하나로 뭉칠 단결의 중심은 바로 우리의 지도자 김성주동지이십니다.》
위대한 수령님이시야말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실 걸출한 위인, 조선의 모든 애국자들이 따르고 받들 혁명의 탁월한 령도자이심을 절감했기에 그는 국민부반동들에 의해 희생되는 마지막순간에도 마음속으로 한별 만세를 웨쳤던것이다.
김혁, 차광수, 최창걸, 김원우, 한영애…
1세대 혁명가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혁명투쟁이 언제 승리할지 기약할수 없는 혁명의 려명기였다.당도 정권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혁명이 성공하겠는지 실패하겠는지 그 전망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있지 못하던 간고한 시기에 혁명의 령도자를 내세우고 받들어나가는 길에 생명을 기꺼이 바친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령도자에 대한 끝없는 매혹과 절대적인 흠모심을 지녔기에 그들은 위대한 한별을 받들어 우리의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인 통일단결의 시원을 열어놓을수 있은것이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내가 김혁, 차광수, 최창걸과 같은 사람들을 그토록 사랑하고 잊지 못해하는것은 그들이 나에 대한 노래를 짓고 나를 지도자로 내세워서가 아니다.바로 그들이 우리 민족이 그처럼 절절하게 바라면서도 실현할수 없었던 통일단결, 우리 인민의 자랑이고 영광이며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인 참다운 통일단결의 시원을 열어놓고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에서 령도자와 대중의 일심동체를 이룩한 통일단결의 새 력사를 피로써 개척한 선구자들이기때문이다.》
혁명은 단결이고 단결은 혁명이다.뭉치면 승리하고 흩어지면 패한다는것은 혁명투쟁의 불변의 진리이다.
령도의 중심, 단결의 중심을 받들어올리고 유일사상, 유일중심에 기초한 단결의 정신을 창조한것, 그 통일단결을 목숨으로 사수하고 다음세대 공산주의자들에게 재보로 넘겨준것,
이것이야말로 건당위업의 개척세대가 이룩한 공적중의 제일공적이 아니겠는가.
령도자를 충성으로 받들어모시고 령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한 새세대 공산주의자들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넋은 오늘 우리 당이 일심단결이라고 부르는 통일단결을 낳은 위대한 전통으로 되였다.
민족해방을 위해 출범한 첫 기슭에서 단결의 고귀한 전통을 마련한 창당세대의 숭고한 리상과 신념, 정신은 후세토록 이어가고 따라배워야 할 귀감이다.
우리의 모든 일군들이 1세대 혁명가들의 고귀한 넋을 이어 일심단결의 전초선에서 당중앙과 사상과 뜻, 발걸음을 함께 해나갈 때 우리 혁명은 승승장구할것이며 조선로동당은 백전백승의 당으로 영원히 빛을 뿌릴것이다.(전문 보기)
《나는 오늘도 살아있다》 -금천군 읍에서 살고있는 엄영분로인의 체험담중에서-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금천군 읍에서 살고있는 엄영분로인에게는 두고두고 잊을수 없는 피절은 원한이 있다.그의 몸에는 아직도 70여년전 미제원쑤놈들에게서 피해를 입은 총창자리가 력력하다.팔에 험상궂게 생긴 상처로 하여 삼복철에도 언제한번 소매가 짧은 옷을 입지 못했다는 로인의 가슴속에는 세월이 흘러도 풀리지 않을 응어리가 맺혀있다.
엄영분로인의 체험담은 미제가 우리 인민에게 감행한 만행이 얼마나 악랄하고 치떨리는것인가를 새겨주고 구천에 사무친 그 원한을 기어이 갚고야말리라는 서리발치는 증오와 분노로 우리의 피를 펄펄 끓게 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성과 야수성을 바로 알게 하고 영원히 잊지 않게 한 조국해방전쟁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부모와 형제자매들, 귀중한 전우들과 벗들을 앗아가고 참혹한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7살 나던 영분이도 아버지를 따라 어린 동생과 함께 후퇴의 길에 올랐다.일행은 많았다.영분은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포성을 불안스럽게 들으며 동생의 손목을 잡고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
그들일행이 어느한 골짜기를 지날 때 갑자기 원쑤놈들이 달려들었다.영분의 아버지가 대오의 인솔자라는것을 알아낸 놈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갖은 만행을 다하였다.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게 되자 악에 받친 놈들은 반주검이 된 영분이의 아버지와 동료들을 사형장으로 끌어냈다.
이때 영분과 5살 난 남동생은 아버지의 목을 꽉 그러안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그러자 놈들은 어린 동생을 이글거리는 불속에 집어던지고는 영분에게 달려들어 총창으로 찌르고 총탁으로 때리며 군화발로 짓이겼다.
의식을 잃은채 겨우 숨이 붙어있던 영분이 인민유격대원들에 의하여 구원된것은 그로부터 몇시간후였다.
인민유격대원들은 시꺼멓게 타서 형체만 남은 어린 소년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진 소녀의 참혹한 정상앞에서 비분과 증오에 몸부림치며 백배, 천배의 복수를 다짐하였다.
당시 영분은 너무도 여린 생명이였다.하지만 죽어서는 안되며 살아서 철천지원쑤들을 고발단죄해야 할 그였기에 마침내 소생하였으며 복수자로 자랐다.
우리 조국이 전쟁의 준엄한 시련을 겪기 전, 평화롭던 그 시절의 영분은 울기도 잘하고 눈물도 헤프던 소녀였다.
그러나 원쑤놈들에게 가족들을 잃고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영분은 영 딴 아이가 되여버렸다.그 어린 나이에도 이 세상에 눈물로 해결될 일이란 없다는것을 알게 된듯 그는 좀처럼 눈물을 몰랐으며 미국놈소리만 나와도 눈에서 불이 이는것같았다.생활의 순간순간마다에 당하게 되는 그 모진 아픔이 곧 미제원쑤놈들에 대한 무서운 복수심으로 어린 가슴을 끓게 하였던것이다.
가슴속에 복수의 일념을 안고 사는 소녀는 학습에서도 단연 첫자리를 차지하였다.
그의 학습장의 첫 페지마다에는 복수하리라는 글발이 어김없이 새겨지군 하였다.
영분에게 짐승도 낯을 붉힐 치떨리는 만행을 감행하면서 원쑤놈들이 바란것은 그가 숨이 지거나 불구자가 되여 한생 눈물과 한탄속에 시들어말라버리는것이 아니였겠는가.
그러나 놈들은 오산했다.
영분은 은혜로운 당의 품속에서, 고마운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과 더불어 행복하고 긍지높은 삶을 누려왔다.
그 어디에 가나 자기를 더 아끼고 위해주지 못해 애쓰는 뜨거운 사랑을 늘 온몸으로 느껴온 영분이였으며 그러한 따뜻한 사랑을 체감할수록 미제원쑤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감정이 더욱 강렬해진 그였다.
처녀로 자란 영분은 남들처럼 몸이 성하지 못한 자기 일신상의 문제를 두고 이미 굳게 결심한바가 있었다.그렇지만 함께 일하는 동무들과 군당위원회일군들의 지성끝에 그는 한 청년과 가정을 이루게 되였다.
일생의 뜻깊은 날에도 가슴에 꽃송이를 단 신랑신부가 부른 노래는 원쑤격멸의 노래였으며 그들이 나눈 이야기도 원쑤 미제에 대한 복수의 맹세였다.신혼부부의 행복한 앞날을 축복하여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의 가슴에도 복수의 피가 세차게 끓어번지였다.
결혼후 세 자식의 어머니가 된 영분은 어느한 피복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자기가 더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를 늘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공장의 종업원들앞에서 자기의 체험담을 들려준 일이 있었다.미제원쑤놈들의 극악한 만행을 폭로한 영분의 이야기를 듣고난 종업원들은 살인귀 미제에게 천백배의 죽음을 주자고 웨치면서 복수의 결의를 다지였다.
이 일을 계기로 영분은 자기가 무엇보다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그는 수많은 사람들앞에 미제의 만행에 대한 고발자, 산증인으로 출연하여 그들의 가슴마다에 철천지원쑤 미제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불길을 세차게 지피였다.
오늘도 그의 집으로는 새세대 청년들이 찾아온다.그러면 로인은 수십년전에 겪은 참상을 들려주고나서 이렇게 격분을 토하군 한다.
나는 오늘도 살아있다고, 미제에게서 천백배의 피값을 받아내기 전에는 결코 죽을수가 없기때문이라고.
그는 오늘도 미제의 승냥이본성을 고발하며 계급교양의 길을 걷고있다.(전문 보기)
괴뢰한국 대학생들 윤석열탄핵을 요구
괴뢰한국에서 윤석열괴뢰탄핵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롱성투쟁이 련일 고조되고있다.
투쟁을 벌려온지 49일째가 되는 8일 《윤석열탄핵소추촉구 대학생시국롱성단》이 서울의 대학교들에서 윤괴뢰탄핵을 위한 초불항쟁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 대자보운동을 일제히 전개하였다.
대학생들은 대자보들에서 각계의 거세찬 탄핵요구에도 불구하고 살인폭정을 거듭하며 잔명부지를 위해 발악하는 윤석열의 뻔뻔스러운 처사에 격분을 금할수 없다고 밝혔다.
그들은 대학교들에서 교수들이 련이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있는데 대해 언급하고 국민의 념원, 분노, 항거, 항쟁의 의미가 담긴 윤석열탄핵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각계의 대중적인 탄핵항쟁에 적극 합세해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날 서울의 괴뢰국회앞에 모여든 대학생들은 탄핵은 더는 거스를수 없으며 그것이 실현될 때까지 계속 투쟁할 의지를 피력하였다.(전문 보기)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2) -멸망에 직면하였던 주구를 구원한 흉심-
이스라엘이 국가수립을 선포한 때로부터 8일이 지난 1948년 5월 22일 오후였다.
미국이 긴급히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한건의 결의안을 들이밀었다.
그 결의안은 《팔레스티나사태가 유엔헌장 제39조에 명시된 평화의 파괴원천이 되고있다.》고 성명할것을 요구하는것이였다.
그 결의안에는 또한 《전쟁을 중지하고 확고한 질서를 보장》할것을 관계정부당국들에 명령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당시 중동에서는 새로운 전쟁의 불길이 치솟고있었다.
팔레스티나땅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생겨나자마자 지역에서는 마치 유기체내에 이물이 생기면 면역계통이 발동되는것과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였다.
그것이 바로 제1차 중동전쟁이였다.
이스라엘이 국가수립을 선언한 다음날인 1948년 5월 15일 여러 아랍나라가 저들에게 장차 큰 위협으로 될수 있는 이물이 더 성장하기 전에 미리 수술해버릴 목적으로 항쟁에 분연히 떨쳐나섰다.에짚트, 수리아, 이라크, 레바논 등이 군사행동에 돌입하였고 예멘, 사우디 아라비아는 전쟁상태에 들어갔다.
아랍나라들의 무력은 이스라엘을 동, 남, 북 3개 방향에서 공격하였다.
호상 협동하면서 이스라엘군을 각개격파할것을 계획한 이 나라들의 무력은 이스라엘의 방어선들을 돌파하여 목표로 삼은 지역들을 빠른 속도로 점령하였다.
남부전선에서 에짚트군은 꾸드스의 남쪽교외에까지 진출하면서 전과를 확대하였다.
이스라엘군은 전 전선에 걸쳐 붕괴직전에 처하게 되였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누구보다 당황망조해한것은 바로 미국이였다.유태인들을 저들의 앞잡이로 길들이고 국가를 창건하도록 숱한 품을 들인것이 물거품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
미국이 《노력》한것들중에는 1945년 9월 대통령 트루맨이 직접 나서서 《나치즘으로부터 박해를 당하여 전쟁의 화를 입었던 유럽의 유태인》 10만명을 하루속히 팔레스티나에 이주시키자고 영국을 구슬려 실현시킨 일도 있었다.그렇게 함으로써 유태복고주의자들을 저들의 충실한 주구로 써먹을것을 꾀하였던것이다.
트루맨의 《제의》를 계기로 미국과 유태복고주의자들사이의 결탁이 확정지어졌다.
저들이 실행해온 계책이 풍지박산나는것을 막아야 하겠다고 타산한 미국은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정화결의안을 제출하였던것이다.
1948년 5월 29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는 4주간에 걸치는 정화를 실시할데 대한 결의를 채택하였다.그리하여 아랍나라들과 이스라엘간에는 6월 11일부터 7월 8일까지 불안정한 정화가 이루어지게 되였다.
정화 4주간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숨돌릴 틈을 얻고 재무장을 할수 있는 황금시간으로 되였다.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에 따르면 아랍나라들과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지원이 전반적으로 금지되여야 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이 결의를 아예 무시하고 정화기간 이스라엘에 비행기, 땅크를 비롯하여 숱한 신형무기와 막대한 군수물자를 보장해주었다.
또한 《질서유지》라는 명목밑에 영국군이 철수한 하이파항에 수백명의 미군무력을 투입하였으며 팔레스티나지역의 연안에 군함까지 대기시키고 아랍나라들을 무력으로 위협하면서 이스라엘의 침략행위를 비호두둔해주었다.
미국의 뒤를 이어 서방나라들도 많은 무기와 군수물자를 대주면서 이스라엘의 침략전쟁준비를 도와주었다.
4주간에 걸쳐 전쟁준비를 충분히 갖춘 이스라엘은 아랍나라들을 공격하면서 여러 지역을 강점하였다.
그러나 전선형편은 다시금 이스라엘에 불리해졌다.미국은 즉시 유엔안전보장리사회를 발동하여 제2차 정화를 실시하게 하였다.
이 기간 무력을 재증강한 이스라엘은 10월 15일 일방적으로 정화를 파괴하고 아랍나라들에 대한 제2차 공격을 감행하면서 약 6 700㎢에 달하는 팔레스티나땅을 강점하였다.
이스라엘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해줌으로써 미국은 그를 하수인으로 더욱 철저히 그러쥐고 중동지배의 돌격대로 써먹을수 있게 되였다.
중동평화의 악성종양을 시초에 제거하려던 아랍나라들의 계획은 실패하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