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조일관계/朝日関係’ Category

립장 : 일본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을 통하여 얻을것은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주체112(2023)년 12월 9일 조선외무성

 

우리 공화국에 대한 체질적거부감에 사로잡힌 일본이 자기의 처지와 푼수도 모르고 헤덤비고있다.

며칠전 일본경제산업성은 《대량살륙무기개발우려명단》이라는것을 갱신, 발표하면서 여기에 핵, 미싸일개발에 관여하였다고 하는 우리의 6개 기관과 단체들을 새로 추가하였다고 한다.

지난 세기 아시아와 전세계를 제패하기 위한 《대동아공영권》의 허황한 망상밑에 세균무기, 화학무기, 원자무기 등 대량살륙무기개발에 광분하였고 새 세기에 들어선 오늘에는 이루지 못한 옛꿈을 실현하기 위해 최첨단군사장비개발과 보유에 박차를 가하고있는 일본이 과거죄악을 똑똑히 반성할 대신 《대량살륙무기개발우려》에 대해 떠들면서 그 누구를 《우려대상》에 포함시킨것은 도적이 매를 드는 황당한 짓이 아닐수 없다.

특히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침탈하려는 미국의 악랄한 책동을 견제, 제압하기 위해 다년간 악전고투하여 쟁취한 고귀한 전취물들을 《대량살륙무기》로 매도하면서 존엄높은 우리 공화국의 기관, 단체들을 함부로 《우려명단》에 올려놓은것은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에 대한 엄중한 침해인 동시에 우리에 대한 또 하나의 정치적도발행위로 된다.

애당초 정치적으로 허약하고 력대 친미로 쩌들어온 일본이 자주, 자립, 자위의 기치드높이 자체의 힘과 기술, 자원으로 전진비약해나가는 우리 국가를 상대로 그 무슨 제재조치를 취한것자체가 어리석은 처사가 아닐수 없다.

말끝마다 조일대화를 념불처럼 외워대는 일본이 앞으로 초래될 후과를 고려함이 없이 시대착오적인 반공화국적대행위를 또다시 벌려놓은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며 이것은 일본이 대화가 아니라 대결을 추구하고있다는것을 스스로 드러낸것으로 된다.

대화와 압력은 량립될수 없으며 우리를 적대시하는 도발행위에는 필연코 그에 상응한 대응조치가 뒤따르게 되여있다.

일본이 우리에 대한 적대의사, 대결자세를 버리지 않고 그릇된 언행을 계속 답습한다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일본이라는 존재가 우리의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될것이라는것은 불보듯 명백하다.

일본은 대조선적대시정책에 계속 매여달릴수록 그로부터 얻을것은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명심하고 심사숙고해야 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오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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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범죄의 책임에서 벗어날수 없다

주체112(2023)년 11월 29일 로동신문

 

일본특유의 도덕적저렬성이 또다시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났다.

얼마전 일본외무성 차관은 과거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문제를 두고 《일본정부로서는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다.》고 력설하였다.앞서 내각관방장관이 성노예범죄에 구일본군이 관여한 사실에 대해 부정적인 립장을 표명한바 있다.그들의 뇌리에는 어떻게 하나 과거범죄의 책임을 회피해보려는 너절하고 파렴치한 생각만이 꽉 차있다.

력사는 부정한다고 하여 지워지는것이 아니며 지은 죄에 대한 배상의무는 회피한다고 하여 없어지는것이 아니다.

과거 일제가 저지른 성노예범죄는 인류력사에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잔인하고 야수적인 반인륜범죄로서 철저히 결산하여야 한다.

지난 세기 일제는 10대의 어린 소녀들로부터 20대의 처녀들은 물론 유부녀들에 이르기까지 조선녀성들을 닥치는대로 강제련행, 랍치, 유괴하여 침략전쟁터들에 성노예로 끌고다니였다.일제에 의해 치욕스러운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한 조선녀성들은 중일전쟁발발이후에만도 무려 20만명에 달한다.순결한 조선녀성들이 귀축같은 일제야수들에게 꽃다운 청춘을 무참히 짓밟히고 목숨을 빼앗겼다.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피해자들도 한생토록 가실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려왔다.

인류전쟁사에는 수많은 악행과 죄악들이 기록되여있지만 일제가 저지른 성노예범죄와 같은 극악무도하고 치떨리는 반인륜적만행은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다.

일제가 패망한 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생존자들은 그날의 치욕과 원한을 씻을길 없어 일본당국에 피타는 절규를 퍼붓고있다.

그것은 피해자들의 원한과 울분의 분출만이 아니다.

일제의 과거죄악을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는것은 력사의 요구이고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목소리이다.

일본이 과연 그것을 외면할수 있는가.

성노예피해자들에게 무겁게 진 도덕적, 법적책임을 회피할수 있단 말인가.

일본의 위정자들이 인륜을 알고 법도를 안다면 응당 과거 일제가 지은 죄악을 성근히 인정하고 백배 사죄하고 배상하여야 할것이다.

그러나 보라.전범자들의 후예들이 어떻게 처신하고있는가를.

눈섭 한오리 까딱 않고 과거의 죄악을 부정해나서다 못해 이제 와서는 성노예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요구를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다.》고 앙버티고있는 판이다.

건전한 리성을 가지고있다면 이토록 철면피한 태도를 취할수 없다.

일본당국자들의 그러한 언행은 수십만의 조선녀성들을 성노예로 짓밟은 조상들의 행적과 조금도 다를바 없으며 그것을 되풀이하겠다는것을 공언한것이나 같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지난 세기의 패망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힘이 약한탓이였다는 망언을 탕탕 줴쳐대면서 재침야망실현에로 줄달음치고있다.지난 10월 근 100명에 달하는 일본국회의원들은 야스구니진쟈에 무리로 몰려가 전범자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면서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였다.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일본의 현실이 여실히 립증해주고있다.지금 일본반동들은 해마다 막대한 액수의 군사비를 지출하여 항공모함, 최신형스텔스전투기를 비롯한 공격용첨단장비들을 도입하는 한편 우주와 싸이버, 전자기파령역에서의 군사작전태세를 수립하는데 박차를 가하고있다.이미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전 세계에로 확대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적기지공격능력보유, 군사비증액을 명문화한 전쟁지침서를 공표하였다.미국의 패권전략에 극구 편승하면서 《자위대》의 해외진출을 강화하고있으며 동맹강화의 미명하에 국내외에서 다국적군사연습까지 뻐젓이 벌리고있다.

이 모든것은 죄악의 과거를 재현하려는 불순한 기도에서 출발한것이다.

초보적인 인륜도덕도, 티끌만한 죄의식도 없는 일본반동들의 파렴치한 망동은 우리 인민과 국제사회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내고있다.

일본이 어떤 오그랑수를 써도 국제법과 인륜도덕을 란폭하게 위반한 특대형국가범죄에 대한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일본당국자들은 과거의 모든 반인륜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끝까지 받아내려는 우리 인민의 의지를 똑바로 보고 성근한 립장과 태도를 취해야 한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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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공갈로 날조해낸 불법비법의 《을사5조약》

주체112(2023)년 11월 17일 로동신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의 력사는 조선인민에게 커다란 불행과 재난만을 가져다준 죄악의 력사로 얼룩져있습니다.》

《시일야방성대곡》과 더불어 새겨진 수난의 그날을 우리 인민은 결코 잊지 않는다. 일제가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한 1905년 11월 17일을. 그리고 철저한 결산의 의지를 더욱 가다듬는다. 한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도 조약 아닌 이 《조약》의 《적법성》을 떠들며 조선에 대한 날강도적인 식민지지배의 법적책임을 회피하고 과거청산을 거부하려고 모지름을 쓰고있는 일본에 대해.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을사5조약》은 아무러한 법적효력도 가지지 못한 비법문서, 협잡문서이다.

국제조약은 본질에 있어서 주권국가들사이의 자원적인 의사합의이다. 이로부터 근대시기의 국제법인 관습국제법과 현대국제법인 조약법에 관한 윈조약에서는 다같이 국가대표자에 대한 강요로 체결된 조약은 무효이라고 규정하고있다.

《을사5조약》은 국가대표자인 고종황제를 강박하고 조선봉건왕조의 대신들을 상대로 공포와 위협을 조장하는 속에서 강제로 날조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의 국권을 강탈하기 위해 이미전에 작성해놓은 《을사5조약》원안을 고종황제와 정부대신들에게 무조건 접수할것을 강요하였다. 하지만 고종황제는 《이 조약을 허락하면 곧 나라가 망하는것과 같은것이니 짐은 차라리 종묘사직에 순국할지언정 인허치 못하리라.》라고 하면서 완강히 거부해나섰다.

그러자 일제는 군사적힘을 동원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무력으로 황궁안팎을 겹겹이 포위한 침략자들은 궁앞에서 군사훈련까지 벌려놓았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11월 17일 황궁에서 열린 《조약》문제에 관한 어전회의에서 조선봉건정부의 대신들은 《조약》의 체결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다.

협상이 결렬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받은 이또 히로부미는 궁궐로 들어가 정부대신들을 강제로 방에 모여놓고 《조약》에 찬성할것을 강박하였다.

여러 대신이 반대의사를 표명하자 이또는 그들을 로골적으로 위협, 강박하였으며 지어 옹고집을 부리면 죽여버리라고 졸개들에게 고아댔다.

이런 강압적방법으로 《조약》이 성립되였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해버린 일제는 《합법성》의 외피를 씌우기 위해 외부대신의 인장을 훔쳐내여 제멋대로 찍는 비렬한짓도 서슴지 않았다.

1935년의 《하바드보고서》에는 《을사5조약》이 불법으로 규정되였으며 《일본군대를 동원한 강압적체결》이 그 근거로 제시되였다. 1963년의 제15차 유엔국제법위원회에 제출된 《월더크의 보고》에서도 《을사5조약》을 《강박이나 위협을 가한 행위의 결과》로 규정하고 《절대적무효》라고 지적하였다.

이런 비법문서를 내들고 일제는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고 40여년간 우리 인민에게 식민지노예의 비참한 운명을 강요하였다. 일제가 식민지통치기간 우리 인민에게 끼친 인적, 물적, 정신적피해는 실로 막대한것이며 그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보상할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까지도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는 《법적으로 유효》하다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과거 조선에서 감행한 저들의 극악한 범죄행위들에 대해 인정도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고있다.

오히려 력사외곡책동에 광분하고있다. 지난 8월 30일 일본내각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간또대진재직후에 벌어진 조선인학살과 관련하여 《조사한데 의하면 정부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횡설수설하였다. 범죄자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것은 개준할 마음이 없고 그것을 되풀이하려는 속심을 가지고있기때문이다.

일본이 과거의 침략범죄를 부정하기 위해 안깐힘을 쓰며 반공화국적대시정책실행에 광분할수록 쌓이고쌓인 원한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려는 우리 인민의 복수심은 더욱 굳세여지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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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특대형반인륜범죄에 대한 국가적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주체112(2023)년 11월 13일 로동신문

 

최근 일본당국의 철면피한 력사부정행위가 우리 인민의 반일감정을 더욱 격앙시키고있다.

지난 8월 30일 간또조선인대학살과 관련하여 《정부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수 있는 기록을 찾을수 없다.》고 뇌까린바 있는 일본내각관방장관은 9일 《정부견해는 재판기록이 없어 현시점에서 파악하려고 하여도 곤난하다는것이다.》는 망언을 또다시 늘어놓았다.

간또조선인대학살이 일본의 국가권력이 발동되여 조직적으로, 계획적으로 감행한 천인공노할 민족배타주의적살륙만행이였다는것은 내외가 공인하는 엄연한 력사적진실이다.

올해가 간또대지진이 발생한지 100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조선인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각종 행사가 련이어 진행되고 대학살만행을 폭로하는 증언 및 물적증거가 계속 발굴되고있는 속에 당국이 이에 관여하였다는것을 립증하는 자료들이 공개되여 일본각계에서는 정부가 대학살과 관련한 국가적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할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때보다 고조되고있다.

이러한 속에 정부의 립장을 대변한다는 내각관방장관이 그 무슨 《기록》을 운운하며 대학살만행을 한사코 부정해나선것은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우롱하는 참을수 없는 모독으로서 특대형반인륜범죄에 대한 국가적책임을 회피해보려는 후안무치한 작태이다.

일본사회전반에 반공화국적대시분위기가 의연 만연되고 조일관계가 날로 악화되고있는것은 과거범죄에 대한 죄의식이 꼬물만큼도 없고 초보적인 인륜도덕도 모르는 위정자들이 권력의 중추를 차지하고있는것과 무관치 않다.

일본이 피로 얼룩진 과거사를 지워버리지 못해 모지름을 쓰고있는 그 자체가 침략의 력사를 답습하겠다는 명백한 반증이다.

범죄행적을 집요하게 부인한다고 하여 결코 력사의 진상이 가리워질수 없으며 일본은 그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김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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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は特大型の反人倫犯罪に対する国家的責任から絶対に逃れられない

チュチェ112(2023)年 11月 13日 朝鮮中央通信

 

【平壌11月13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外務省の日本研究所研究員である金雪花さんの文「日本は特大型の反人倫犯罪に対する国家的責任から絶対に逃れられない」の全文は次の通り。

最近、日本当局の鉄面皮な歴史否定行為が、朝鮮人民の反日感情を一層激昂させている。

8月30日、関東朝鮮人大虐殺に関連して「政府内に事実関係を把握できる記録が見当たらない」と言い散らしたことのある日本の内閣官房長官は9日、「政府見解は『裁判記録がなく、現時点から把握しようとしても困難』ということだった」という妄言をまたもや並べ立てた。

関東朝鮮人大虐殺が日本の国家権力が発動されて組織的に、計画的に働いた天人共に激怒する民族排外主義的殺戮(さつりく)蛮行であったことは、内外が公認する厳然たる歴史的真実である。

今年が、関東大震災が発生した時から100年になることに関連して、朝鮮人犠牲者を追悼する各種の行事が次々と行われ、大虐殺蛮行を暴露する証言および物的証拠が引き続き発掘されている中、当局がこれに関与したことを立証する資料が公開されて、日本の各界では政府が大虐殺に関連する国家的責任を認めて謝罪することを求める声がいつよりも高まっている。

このような中、政府の立場を代弁するという内閣官房長官がいわゆる「記録」をうんぬんし、大虐殺蛮行をあくまでも否定したのは、犠牲者とその遺族を愚弄する我慢できない冒瀆(ぼうとく)として、特大型の反人倫犯罪に対する国家的責任を回避しようとする厚顔無恥な振る舞いである。

日本の社会全般に反朝鮮敵視雰囲気が依然として蔓延し、朝日関係が日を追って悪化しているのは、過去の犯罪に対する罪意識が毛頭なく、初歩的な人倫道徳も知らない為政者らが権力の中枢を占めていることと無関係ではない。

日本が血塗られた過去史を消すためにやっきになっていること自体が、侵略の歴史を踏襲するという明白な反証である。

犯罪の行跡を執拗(しつよう)に否認するからといって、決して歴史の真相が覆い隠されることはないし、日本はその責任から絶対に逃れられない。(記事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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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피로 물들인 일제의 만고죄악

주체112(2023)년 11월 3일 《우리 민족끼리》

 

광주학생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94년이 되였다.

광주학생사건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라주사이의 기차칸에서 일본인중학생이 한 조선녀학생을 희롱하며 모욕적인 행동을 한데서부터 발단되였다. 일본인학생은 점잖게 행동할것을 요구하는 조선학생들에게 식민지노예의 처지에 있는 주제에 어디에 대고 삿대질이냐는 식으로 주먹을 휘둘러대며 횡포한짓을 하였다. 민족적모욕에 격분한 조선학생들은 일본인학생에게 응당한 보복을 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현장에 달려온 일제경찰은 응당 처벌해야 할 일본인학생을 비호하는 반면에 조선학생들을 폭행하고 체포구금하는 폭거를 감행하였으며 11월 1일에는 일본중학교의 교직원, 학생 수백명이 군사교원의 지휘밑에 광주역에서 조선인통학생들을 불의에 습격하였다. 조선학생 200여명이 격전끝에 도전자들을 물리치자 일본경찰들은 조선학생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행을 감행하였다.

이에 격분한 광주시안의 전체 조선학생들은 11월 3일 일제의 민족적차별과 부당한 탄압행위에 항거하여 일제히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대중적인 반일시위에 떨쳐나섰다. 그들은 《일제를 타도하자!》, 《식민지노예교육을 철페하라!》, 《조선독립 만세!》라는 구호를 웨치면서 일본인학생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일제경찰을 반대하여 굴함없이 싸웠다.

질겁한 일제는 광주근방에 계엄상태를 선포하고 경찰은 물론 일본인들로 조직된 무장《자위대》, 소방대, 《재향군인》, 《청년단원》, 일본인학생과 교원들까지 총동원하여 시내 요소요소에 배치하고 시위자들을 닥치는대로 체포구금하였다. 이러한 파쑈폭거는 11일까지 계속되였다.

그러나 일제의 발악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광주학생들의 투쟁은 평양, 서울, 신의주, 함흥, 개성, 대구, 부산 등 전지역에로 급속히 확대되였다.

일제는 광주는 물론 전국의 경찰무력을 총동원하다싶이 하여 각지의 학교들을 봉쇄하고 조선학생들의 대중적봉기를 진압하는 한편 그들을 체포처형하는 극악무도한 탄압작전을 벌렸다. 일제는 조선학생들이 길거리에 나다니거나 몇명씩 모여서있기만 하여도 봉기자들이라고 하면서 닥치는대로 잡아가두고 사격을 가하여 집단적으로 학살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광주학생들의 봉기는 자유와 독립, 민족적존엄을 위한 조선학생들의 정의로운 애국투쟁으로서 그 발단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절대로 범죄가 아니였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학생들의 대중적인 봉기로 저들의 식민지통치에 위기가 조성되자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파쑈적폭거로 전국의 거의 모든 조선학교들을 피의 란무장으로 만들었다. 광주학생들에 대한 폭압은 3. 1인민봉기후에 있은 가장 큰 대중적탄압학살사건으로서 일제가 표방한 《문화통치》의 기만성과 범죄성을 적라라하게 드러내놓았다.

력사는 흐르고 세대와 세기가 바뀌였지만 일제의 총칼에 피흘리며 쓰러지면서도 침략자들과 맞서 용감히 싸운 90여년전 광주학생봉기자들의 피타는 절규는 오늘도 대일적개심을 더욱 격앙시키고있다.

더우기 이러한 민족의 천년숙적과의 관계개선을 읊조리면서 조선학생탄압만행을 비롯한 피비린 과거죄악을 무마해버리려고 발악하는 한편 일본의 조선반도재침야망실현의 길을 닦아주고 범죄적인 핵오염수해양방류책동을 앞장에서 비호두둔하는 윤석열괴뢰역적패당의 비굴한 친일굴종적망동은 온 겨레의 치솟는 분노를 폭발시키고있다.

과거 조선민족에게 끼친 일제의 극악무도한 죄행은 절대로 묻어버릴수도 지워버릴수도 없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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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 일본의 위험천만한 군사적책동을 엄정히 주시하고있다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12(2023)년 10월 16일 로동신문

 

일본이 이제는 《전수방위》라는 거치장스러운 가면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10일 일본방위상은 우리와 중국 등 주변국을 직접 타격하는 《적기지공격능력》보유를 위한 장거리미싸일의 실전배치시기를 앞당길것이라고 력설하였다.

앞서 지난 5일에는 미국에 찾아가 미국제장거리순항미싸일 《토마호크》를 계획보다 1년 앞당겨 제공해줄것을 구걸하였다.

이것은 재침을 위한 일본의 군사적움직임이 매우 엄중한 단계에 들어섰다는것을 말해준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일본《자위대》무력은 이미 오래전에 《전수방위》의 수요를 초월하였다.

해마다 사상최고를 갱신하며 지출되는 군비와 그에 따른 항공모함, 최신형스텔스전투기를 비롯한 공격용첨단군사장비도입, 우주와 싸이버, 전자기파령역에서의 군사작전태세수립 등은 명백히 침략전쟁수행을 위한것이다.

공격능력을 부단히 숙달완성하기 위한 렬도와 해상에서의 대규모군사연습은 그 연장이다.

일본은 이미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전세계에로 확대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지난해말에는 《적기지공격능력》보유, 방위비증대를 명문화한 전쟁지침서를 공표하였다.

군사적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의 패권전략에 적극 편승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내정에 간섭하고 《자위대》무력의 해외진출을 강화하고있다.령유권분쟁, 해상안전확보 등을 구실로 주변나라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빚어내고 동맹강화의 미명하에 국내외에서 다국적군사연습까지 뻐젓이 벌리고있다.

지난 8월에는 워싱톤교외의 캠프 데이비드별장에서 미국, 괴뢰우두머리들과 《북미싸일경보정보 실시간공유체제》를 년내에 가동하며 3자군사훈련도 년례화하기로 하였다.

《3자군사훈련 년례화》는 《자위대》가 조선반도재침을 숙달하고 일단 유사시 조선전선에 투입될수 있는 《합법적인 명분》으로서 조선반도에 대한 《입장권》이나 다름없다.

일본의 재침, 전쟁국가 일본은 허구가 아니라 실체이며 현실로 되였다.

지난 세기 《운양》호사건을 일으키고 비법적인 《강화도조약》을 강요한데 이어 독도를 《일본령토》에 편입시키고 조선합병과 대륙침략, 남방진출에로 내달렸던 때를 재현해보려는 일본의 전쟁광증은 극도에 달하고있다.

일본의 오만한 선택은 안전에 대한 새로운 도전들을 산생시킬것이며 조선반도와 지역의 긴장상태를 더욱 격화시키는 결과가 초래될것이다.

일본은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할 중대한 사명을 지닌 우리 공화국무력은 패전의 력사를 망각하고 대를 물려가며 조선의 국토를 노리고 또다시 이 땅우에 전범기를 날리려는 천년숙적 일본의 일거일동을 예리하게 주시하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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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争国家日本の危険極まりない軍事的策動を厳正に注視している  朝鮮中央通信社論評

チュチェ112(2023)年 10月 16日 朝鮮中央通信

 

【平壌10月16日発朝鮮中央通信】日本が今や、「専守防衛」というわずらわしい仮面を完全に脱ぎ捨てた。

10日、日本の防衛相はわが国と中国など周辺国を直接打撃する「敵基地攻撃能力」保有のための長射程ミサイルの実戦配備時期を早めると力説した。

それに先立って、5日には米国を訪れて米国製巡航ミサイル「トマホーク」を計画より1年前倒しして提供してくれることを哀願した。

これは、再侵略のための日本の軍事的動きが極めて重大な段階に入ったことを物語っている。

周知のように、日本の「自衛隊」武力はすでに久しい前に「専守防衛」の需要を超越した。

毎年、史上最高を更新して支出される軍費と、それによる空母、最新型ステルス戦闘機をはじめ攻撃用先端軍事装備の導入、宇宙とサイバー、電磁波領域での軍事作戦態勢の樹立などは明白に、侵略戦争を遂行するためのものである。

攻撃能力を絶えず熟達、完成するための列島と海上での大規模軍事演習は、その延長である。

日本はすでに、「自衛隊」の活動範囲を全世界へ拡大する足場を設けたし、昨年末には「敵基地攻撃能力」の保有、防衛費増大を明文化した戦争指針書を公表した。

軍事的野望を実現するために、米国の覇権戦略に積極的に便乗して他国の内政に干渉し、「自衛隊」武力の海外進出を強化している。

領有権紛争、海上安全の確保などを口実にして周辺諸国と絶え間ない摩擦を生じさせ、同盟強化の美名の下、国内外で多国籍軍事演習まで公然と行っている。

去る8月には、ワシントン郊外のキャンプデービッド別荘で米国、かいらいの頭目らと「北のミサイル警報情報のリアルタイム共有体制」を年内に稼働し、3者軍事訓練も定例化することにした。

「3者軍事訓練の定例化」は、「自衛隊」が朝鮮半島再侵略を熟達し、いったん有事の際、朝鮮戦線への投入可能な「合法的な名分」として、朝鮮半島への「入場券」同様である。

日本の再侵略、戦争国家日本は、虚構ではなく、実体であり、現実となった。

20世紀、「雲揚」号事件を起こし、不法的な「江華島条約」を強要したのに続いて、独島を「日本領土」に編入させ、朝鮮併合と大陸侵略、南方進出へと突っ走った時代を再現しようとする日本の戦争ヒステリーは、極に達している。

日本の傲慢(ごうまん)な選択は、安全に対する新たな挑戦を生じさせるであろうし、朝鮮半島と地域の緊張状態を一層激化させる結果を招くであろう。

日本は、軽挙妄動してはならない。

朝鮮半島と地域の平和と安定を守る重大な使命を担ったわが共和国武力は、敗戦の歴史を忘却して代を継いで朝鮮の国土を狙い、またもやこの地に戦犯旗を翻そうとする千年来の敵、日本の一挙一動を鋭く注視している。(記事全文)

 

[Korea Info]

 

을미사변이 고발하는 일제의 국권유린죄악

주체112(2023)년 10월 9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의 력사는 조선인민에게 커다란 불행과 재난만을 가져다준 죄악의 력사로 얼룩져있습니다.》

일제의 피비린 조선침략사에는 을미사변으로 불리우는 명성황후살해사건이 죄악의 한페지로 기록되여있다.이 사건은 일제야말로 다른 나라를 침략함에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야만의 무리들이라는것을 낱낱이 폭로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명성황후가 살해되기 며칠전 한성주재 일본공사관 밀실에서는 황궁에 쳐들어가 명성황후를 살해할 모략이 꾸며졌다.

일본에서 매우 음흉하고 악착하기로 소문난 군벌출신의 일본공사 미우라의 주관하에 서기관, 조선봉건정부의 궁내부《고문》, 공사관 무관 등 살인두목들이 모여 구체적인 살해계획을 결정하였다.이 계획에서 요점은 명성황후를 살해하는것과 동시에 그것을 조선봉건정부의 《내부정변》으로 꾸밈으로써 일본에 대한 내외의 규탄을 무마시키고 류혈참극을 빚어낸 책임에서 벗어나는것이였다.

일제가 이러한 흉계를 꾸미게 된것은 황궁안의 실권을 틀어쥐고있던 명성황후가 저들의 조선강점야망실현에 큰 장애로 되였기때문이다.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새벽 일본군대, 경찰, 불량배, 친일무력인 훈련대 등이 망라된 살인무리는 경복궁으로 달려들었다.놈들은 시위대 련대장을 살해하고 황제의 거처지인 건청궁에 침입하여 황제와 황태자를 감금한 다음 명성황후를 붙잡기 위해 피에 주린 이리떼처럼 돌아쳤다.살인악당들은 이미 초상을 통해 명성황후의 모색을 눈에 익혔지만 숱한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는 혼잡속에서 그를 쉽게 찾을수 없었으므로 궁녀들을 닥치는대로 찔러죽였다.궁녀들을 모조리 죽이면 그가운데 명성황후가 있을것이라고 타산하였기때문이다.궁성은 삽시에 일대 살륙장으로, 피바다로 되였다.

쓰러진 궁녀들속에서 아직 완전히 숨을 거두지 않은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한 녀인이 명성황후라는것을 확인한 놈들은 그를 이불에 둘둘 말아 곤녕전부근의 소나무숲에서 미리 준비해놓았던 장작더미우에 올려놓고 불태워죽이였다.타다남은 몇개의 뼈쪼각마저 저들의 범죄흔적을 없애기 위해 주변의 못속에 집어던졌다.

명성황후는 이렇게 비참하게 살해되였다.

명성황후를 무참히 학살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강도적으로 란폭하게 침해하는 특대형범죄를 저지른 일제는 사건의 진상을 은페하는데서도 날강도적인 파렴치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보였다.

증인들과 흔적들을 없애버리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으며 명성황후살해사건의 모든 책임을 대원군과 조선인훈련대에 넘겨씌우려고 획책하였다.그러나 그러한 행위들은 즉시에 내외의 반격을 받았고 명성황후살해사건은 점차 국제적문제로 번져졌다.

바빠맞은 일제는 사건관계자들을 히로시마감옥에 림시《구금》하는 기만적인 놀음을 벌리였으나 《증거불명》이라는 구실을 내대고 인차 무죄석방하였다.

저들의 침략적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한 나라의 황후까지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일제의 죄악은 동서고금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극악한 반인륜범죄행위였다.

야수적이고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예속화하기 위한 책동을 더욱 로골화하였으며 나중에는 우리 나라를 무력으로 끝내 강점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통치기간에도 특대형반인륜범죄행위들을 끊임없이 일삼았다.중일전쟁발발이후에만도 840만여명의 조선청장년들을 강제련행, 랍치하여 침략전쟁의 대포밥으로, 가혹한 노예로동의 희생물로 만들었다.특히 일제가 20만명의 조선녀성들에게 성노예생활을 강요한 특대형반인륜범죄, 인권유린행위는 오늘도 국제사회의 저주와 규탄을 받고있다.

일제가 40여년에 달하는 식민지통치기간 우리 인민에게 끼친 인적, 물적, 정신적피해는 실로 막대한것이다.

수난의 력사는 아무리 선량하고 정당하여도 힘이 없으면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지켜낼수 없으며 노예살이를 면치 못한다는것을, 힘없는 주먹으로 원한의 눈물을 닦을수밖에 없다는것을 피의 교훈으로 깊이 새겨주고있다.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서리고 응어리진 원한의 상처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아물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저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성근하게 반성하고 사죄할 대신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아무런 죄의식도 책임감도 느끼지 않고있다.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는 《법적으로 유효》하였다는 파렴치한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저들의 극악한 범죄행위들에 대해 인정도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고있다.

우리 인민은 일제가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저지른 반인륜적범죄행위들을 반드시, 철저히 결산하고야말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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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스러운 과거를 되풀이할수 없다》

주체112(2023)년 10월 1일 《우리 민족끼리》

 

《조선사람은 일본의 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110여년전 첫 조선총독의 감투를 쓰고 우리 나라에 기여들었던 데라우찌가 뇌까린 말이다.

1905년 11월 《을사5조약》을 날조한데 기초하여 그해 12월 칙령 제267호로 《통감부 및 리사청관제》를 공포한 일제는 다음해 2월 1일 서울에 정식 조선통감부를 설치하고 이또 히로부미를 초대통감으로 내세웠다. 이후 일제는 식민지파쑈통치체계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1910년 10월 1일 조선통감부를 조선총독부로 간판을 바꾸고 력사상 류례없는 식민지총독정치를 실시하였으며 첫 조선총독으로 악명높은 데라우찌를 파견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처음부터 우리 인민의 반일의식을 거세하고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유지할 목적밑에 헌병경찰제도를 조작해냈으며 그에 기초하여 극악한 중세기적공포정치인 《무단통치》를 실시하였다.

일제는 《범죄즉결령》, 《조선형사령》, 《조선태형령》을 비롯한 각종 살인악법들을 조작하고 이르는 곳마다에 설치한 헌병 및 경찰기구들을 동원하여 법적수속이나 재판도 없이 조선사람들을 마구 처형하였다. 또한 일제의 가증되는 폭압만행에 격분하여 1919년 3월 1일 반일인민봉기에 떨쳐나선 조선사람들을 10여만명이나 무참히 학살하였다.

3. 1인민봉기이후 식민지통치체제의 위기를 느낀 일제는 종래의 《무단통치》의 총검우에 《문화통치》의 비단보자기를 씌워놓고 분노한 반일민심을 눅잦혀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무단통치》가 《문화통치》로 명칭만 바뀌였을뿐 악명높은 총독정치의 진면모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달라진것이 있다면 통치수법이 보다 교활하고 악랄해진것뿐이였다.

일제는 1926년 6. 10만세시위투쟁과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을 비롯한 평화적시위도 무력으로 탄압하였고 조선사람살륙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840만여명의 조선청장년들을 강제련행, 랍치하여 죽음의 전쟁터와 고역장들에 내몰았으며 그 과정에 피살된 희생자수가 무려 100여만명에 달한다는 사실,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성노예화한 특대형반인륜범죄, 기만적인 《동조동근》, 《내선일체》의 구호를 내들고 《황국신민화》정책을 강행하였으며 나중에는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 말과 글까지 없애버리려고 날뛴 전대미문의 조선민족말살책동 등은 일제의 가혹한 총독정치, 우리 나라를 저들의 식민지로 영구화하려고 미쳐날뛴 일제의 과거죄악을 만천하에 고발하는 력사의 산 증거들이다.

일제가 가장 야만적이며 악독한 식민지총독정치를 실시한 때로부터 1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일본반동들은 엄연한 력사적사실들을 외곡하고 부정하다 못해 죄악의 력사를 미화분식해가며 흑백을 전도하고있다.

더우기 군사대국화, 군국주의부활에로 미친듯이 질주하면서 조선반도재침야망실현에 더욱 광분하고있다.

간과할수 없는것은 윤석열괴뢰역적패당이 민족의 천년숙적과 《관계개선》을 한다고 떠들면서 과거 일제의 만고죄악을 덮어버리려 하고있는것이다. 지어 미국의 사촉밑에 《3각군사동맹》구축, 《아시아판 나토》조작에 발벗고 나서면서 일제의 조선반도재침광기에 부채질해주고 침략의 길잡이, 안내자노릇도 서슴지 않고있다. 최근에는 민심과 국제사회의 준절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후꾸시마원자력발전소 핵오염수해양방류책동에 극구 동조해나서고있어 민심의 치솟는 분노를 더욱 격앙시키고있다.

윤석열역도와 같은 친일사대매국노, 토착왜구집단이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고있기에 일본반동들이 더욱 오만방자해지고 조선반도재침을 위한 파렴치한 망동이 오늘도 계속되고있는것이다.

일본반동들의 뻔뻔스러운 행태와 친일역적무리들의 비굴한 아부굴종을 더이상 용납할수 없기에 괴뢰지역의 민심은 지금 《치욕스러운 과거를 절대로 되풀이할수 없다.》, 《윤석열정권퇴진!》의 구호를 더 높이 터쳐올리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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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묵인할수 없는 죄악의 행적

주체112(2023)년 9월 20일 《우리 민족끼리》

 

지금으로부터 148년전에 감행된 《운양》호사건은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침략이 얼마나 악랄하였는가를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정한론》이 우리 나라에 대한 강도적인 침략교리였다면 《운양》호사건은 그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첫 시도였다. 다시말하여 《정한론》이 일본침략자들의 호전적이고 강도적인 사고방식의 반영이라면 《운양》호사건은 그 행동방식과 야수적기질을 드러낸것이라고 할수 있다.

1875년 5월 침략선《운양》호를 부산에 불법침입시켜 그 무슨 《발포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 나라를 위협공갈한 일제는 그해 9월 《항로측량》의 구실밑에 《운양》호를 또다시 우리 나라 연해에 침입시켰다.

다른 나라의 령해에 들어가자면 해당 나라의 사전승인을 받는것이 국제법상요구이며 국제관례이다.

당시 조선봉건정부는 불법침입한 일본침략선이 즉시 물러갈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침략자들은 그에 응하지 않았다. 사전에 군사정탐임무와 강화도공격임무를 받고왔기때문이였다.

이에 대하여 일본륙군대장 야마가다는 《1875년 9월 <운양>호 함장 이노우에소좌는 조선연해안으로부터 청나라 우정에 이르는 해로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암암리에 조선에 대한 시위운동을 실시하라는 내적훈령을 해군성으로부터 받았다.》고 토설하였다.

《운양》호의 침략무리들은 9월 19일 강화도앞바다에 불법침입하여 월미도일대에서 수로 등을 정찰하고 그 다음날인 9월 20일 우리 나라 서해의 중요군사요새이며 서울을 지키는 요충지였던 초지진포대 700m앞까지 접근하였다. 조선군대가 자위적조치를 취하자 《운양》호는 기다렸다는듯이 초지진포대에 맹렬한 포사격을 가했으며 방어시설이 없거나 약한 항산도 등을 습격하여 수많은 무고한 주민들을 살륙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분노한 조선군대는 침략자들에게 된타격을 가하였다.

이것이 《운양》호사건의 전말이다.

력사적사실은 《운양》호사건이 일본이 조선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적인 도발책동의 한 고리였다는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있다.

《운양》호사건을 조작한 일본침략자들은 부단한 무력위협책동으로 조선봉건정부에 압력을 가하면서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을 강요하였으며 종당에는 《강화도조약》을 조작하고 그 이후 《을사5조약》, 《정미7조약》, 《한일합병조약》 등을 련속 날조하여 조선을 완전히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력사적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운양》호사건을 《일본군함이 측량을 하다가 조선군대와 교전한 사건》, 《포격을 당한 사건》 등으로 모호하게 묘사하면서 사건전말을 심히 외곡날조하고있다.

《운양》호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근 한세기반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일본반동들의 침략책동은 끊임없이 이어지고있다.

일본반동들은 과거죄악에 대한 인정과 사죄, 배상을 한사코 외면하면서 저들의 침략력사와 범죄의 행적을 계속 미화분식하고있으며 조선반도재침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고있다.

더욱 문제로 되는것은 오만한 왜적의 침략야망에 부채질하고있는 윤석열괴뢰역적패당의 추악한 친일사대매국적망동이다.

윤석열역적패당은 지금 온 민족의 끓어오르는 반일의지에는 아랑곳없이 민족의 천년숙적과 그 무슨 《관계개선》을 한다고 하면서 일제의 과거죄악을 한사코 무마시키려 하고있다. 나중에는 일본의 후꾸시마원자력발전소 핵오염수해양방류를 앞장에서 적극 비호두둔하면서 조선반도와 그 주변의 생태환경을 엄중한 위험에 몰아넣고있으며 오만하고 파렴치한 일본반동들의 대변인노릇도 마다하지 않고있다.

148년전이나 오늘에나 변함없는 섬나라족속들의 파렴치한 망동과 민족의 분노를 자아내는 친일역적들의 죄악을 묵인한다면 언제 가도 수치와 오욕을 면할수 없기에 분노한 민심은 료원의 불길처럼 타올라 이렇게 웨치고있다.

《일본정부는 과거력사에 대해 반성하고 전쟁가능한 군사대국화정책 페기하라!》, 《친일매국노 윤석열을 몰아내자!》, 《못살겠다! 갈아엎자! 윤석열정권 퇴진하라!》…(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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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세월이 지났어도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 -일제의 극악한 간또조선인대학살만행을 두고-

주체112(2023)년 9월 1일 로동신문

 

인류력사에는 사람들을 경악케 하는 대학살사건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간또대진재때 일제살인마들이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은 그 규모와 잔인성, 야수성에 있어서 동서고금에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극악한 반인륜범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죄악의 력사에 대해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한사코 력사외곡놀음에 매여달리면서 이 엄연한 사실을 부정, 말살하려 하고있다.

하지만 그 어떤 술책으로써도 력사의 한 페지에,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피맺힌 원한으로 남아있는 천인공노할 대학살범죄를 절대로 가리울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23년의 간또대진재는 지각운동이 일으킨 자연의 재난과 함께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에 의하여 조선민족에게 강요된 인공적인 재난도 기록하고있다.》

1923년 9월 1일 일본의 도꾜와 요꼬하마를 중심으로 한 간또지역에는 새벽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한 많은 비가 쏟아졌다.비가 그치고 한낮의 더위가 시작될 정오무렵 리히터척도로 7.9의 지진이 이 지역을 타격하였다.건물과 집, 나무들이 모조리 쓰러지고 도로가 꺼져버렸으며 다리가 끊어졌다.순식간에 모든것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행방불명자가 생기였다.불과 13초동안의 지진으로 간또지역은 그야말로 페허로 되였다.

진동이 멎자 이번에는 곳곳에서 불이 일었다.그것은 강한 바람을 타고 도시전체를 휩쓸었다.결국 지진이 일어난 후 두시간사이에 간또지역은 무서운 화재에 휩싸였다.도꾜와 요꼬하마의 량곡창고들이 불타버렸고 수도관들과 가스관, 가스탕크들도 모조리 폭발하였다.철도와 전신전화선들을 비롯한 교통, 통신수단들도 완전히 파괴되였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당시 간또지역의 인구 1 000만명가운데 사상자는 무려 20여만명에 달하였다.지진보다 화재로 인한 피해가 더 컸고 깔려죽은 사람보다 불타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120만여명이 한지에 나앉아 엄습하는 여진의 공포와 굶주림, 극도의 불안과 절망속에서 허덕이였다.

하다면 자연재해에 불과한 이 사건이 어떻게 되여 조선인대학살이라는 무시무시한 살풍경에로 이어졌는가.

세월의 이끼도 덮어버릴수 없는 일제의 반인륜적범죄행위의 진상을 발가본다.

 

일본당국에 의해 계획적으로, 조직적으로 감행된 범죄

 

자연의 재난이 초래한 사태는 엄혹하였다.그러나 당시 일본반동지배층은 아무런 구호대책도 세우지 않았다.오히려 파산에 직면한 자본가들을 살려주는데만 급급하였다.당국의 처사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불만은 극도에 달하였고 폭동이 일어날 기미까지 보이였다.

급해맞은 일본반동지배층은 자국민들의 불만을 눅잦히기 위해 조선사람들을 제물로 삼을 무서운 흉계를 꾸미였다.

9월 1일 오후 일본반동당국은 정보기관에 민심안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였다.

다음날인 9월 2일 일본왕의 《칙령》 401호로 계엄령을 발표하여 무시무시한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각 지방장관들에게 조선인들과 사회주의자들을 철저히 탄압할데 대한 공식지령을 내려보냈다.

한때 조선총독부의 정무총감을 하면서 조선인민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내무대신 미즈노 렌따로는 지바현 후나바시해군무전국을 통하여 전 일본에 《조선인박멸》을 긴급명령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일본신문들은 《조선인이 방화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쳤다.》, 《조선인이 강도질을 한다.》라는 터무니없는 류언비어들을 련일 내돌리였다.

경찰관들이 확성기를 들고 도시를 순회하면서 조선사람들을 죽이라고 공공연히 선동하였으며 《반항하면 죽여도 일없다.》는 게시문이 곳곳에 나붙었다.삽시에 온 일본땅에 조선사람에 대한 증오의식과 집단공격의 분위기가 조성되였다.

당시 외신들은 진재지역에서 느닷없이 발생한 조선인폭동에 관한 풍설이 《전혀 근거가 없다.》라고 주장하였다.후날 일본중의원의 한 의원은 조선인학살에 돌아치는 일본군사병이 《조선인이 왜 적인가?》라는 물음에 《상관의 명령이니 모른다.》라고 대답하였다고 증언하였다.《조선인폭동설》은 완전히 무근거한것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또계엄사령부》의 사촉하에 일제군경들과 《자경단》족속들은 《오래간만에 법이 허락하는 사람잡이이니 흥이 난다.》라고 떠벌이며 피에 주린 이리떼처럼 날뛰였다.

제반 사실은 간또대진재를 계기로 감행된 조선인살륙만행이 결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정권유지를 위한 출로를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주의를 고취하는데서 찾은 일본정부가 계획적으로, 조직적으로 감행한 무차별적인 대학살범죄임을 실증하고있다.

다시말하여 대지진으로 하여 입은 피해와 손실의 책임을 재일조선인들에게 넘겨씌워 일본인들의 반정부감정을 무마하고 저들이 처한 사회정치적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음흉한 목적으로부터 일본정부와 군부가 주도하고 총동원되여 감행한 범죄였다.

지각운동이 일으킨 자연의 재난인 간또대진재를 계기로 감행된 일제의 극악무도한 조선인집단살륙범죄의 막은 이렇게 열렸다.

국제법에는 나라와 민족, 종족성원의 전부 또는 그 일부를 전멸할 목적으로 감행한 학살행위는 반인륜적범죄로 규정하며 그에 대하여 시효를 적용하지 말고 처벌할데 대한 내용이 명백히 밝혀져있다.

일제의 간또조선인대학살범죄야말로 그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는 가장 엄중한 반인륜적죄악이다.

 

간또지방을 피로 물들인 천인공노할 만행

 

일본반동정부의 살인지령에 따라 인간사냥에 피눈이 된 야수들의 귀축같은 도살만행으로 말미암아 간또지방은 무고한 조선사람들의 피로 물들었다.

당시 계엄령을 선포한 일본당국은 군대와 경찰은 물론 극우익깡패집단인 《자경단》것들까지 동원하였다.《자경단》은 경찰을 도와 일정한 경내에서의 화재나 도난 등을 자체로 처리, 단속한다는 구실밑에 조직된 반동적인 관제민간단체였는데 이런것이 간또지역에만도 수천개나 있었다.

놈들은 이르는 곳마다 《검문소》들을 만들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5원 55전》이라는 발음하기 까다로운 일본말을 시켜보고는 조금이라도 정확치 않으면 조선사람이라고 단정하고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목을 자르거나 배를 갈라 죽였다.머리수건을 동여매보게 하여 일본인들과 차이나면 조선사람으로 몰아댔고 갑자기 몽둥이로 때릴 때 터져나오는 비명소리를 감별하여 색출하기도 하였다.

일제야수들은 붙잡은 조선사람들을 제방에 묶어세워놓고 새로 만든 기관총의 성능검사대상으로 삼아 죽이였고 해탄로에 집어던져 불태워죽였다.몽둥이, 참대창, 칼, 쇠갈구리, 날창 등으로 때리고 찔러 잔인하게 학살하였다.지어 전주대에 비끄러매놓은 상태에서 눈을 도려내고 코를 베여내여 고통을 준 다음 배를 찔러죽이였고 어린아이들을 줄세워놓고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자른 후 부모들을 또 찔러죽였다.각종 흉기들을 휘두르며 조선인학살에 미쳐돌아치는 살인귀들의 몰골은 먹이감을 향해 달려드는 승냥이무리를 방불케 하였다.

당시 조선인학살에 관여하였던 한 일본인경찰은 《참살정형은 도저히 입으로 표현할수 없었다.…살아남은 조선사람들의 팔을 톱으로 켜는자도 있었다.그것도 도중에서 팽개치고 또 다른 조선사람들을 톱질하는 모습은 보기도 끔찍하였다.죽은 사람들의 눈을 식칼로 도려내는것도 보였다.…경찰서구내는 피바다를 이루었으며 장화를 신지 않으면 걸을수 없는 형편이였다.》라고 실토하였다.

학살만행을 직접 목격한 한 일본인은 이렇게 증언하였다.

《…한 애젊은 조선녀성의 시체도 있었다.그 녀성의 배는 갈라져있었고 6~7개월쯤 되여보이는 태아가 창자속에 딩굴고있었다.그것을 본 순간 나는 너무나도 놀라 옆으로 뛰면서 물러섰다.우리 일본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잔인한짓을 했단 말인가.…내가 일본사람이라는 수치감을 이때처럼 절감하기는 처음이였다.》

피에 주린 야수들의 살인만행으로 하여 대진재가 발생한 때로부터 열흘 남짓한 기간에 2만 3 000여명의 조선사람들이 학살당하였다.

그 참상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당시 도꾜주재 외국의 대사와 공사들이 《일본은 놀랄만한 한개 야만국이다.이 야만국을 상대로 외교를 계속할수 없다.》라고 일본외무성에 련명으로 항의하였겠는가.

이것은 그대로 사람잡이에 이골이 난 식인종, 민족배타에 쩌들대로 쩌든 정신적기형아로서의 일제야수들의 몸서리치는 죄악에 대한 력사의 고발이다.

간또조선인대학살, 실로 그것은 일본반동들의 체질적인 민족배타주의와 섬나라 사무라이고유의 잔인성과 야만성이 혼탁되여 빚어낸 대류혈참극이였다.

력사에는 미국의 인디안살륙만행과 히틀러도당의 유태인멸살행위 등 극악한 살인범죄행위들이 수없이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일제야수들처럼 자연재해까지 타민족말살의 기회로 악용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잔인하고 악착하게 학살한 례는 없다.

일제야말로 인간증오와 민족배타주의, 야수성이 골수에 꽉 배인 야만들이고 사람잡이에 이골이 난 살인마이며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

장장 한세기라는 오랜 세월이 흘러갔어도 간또에서 감행된 일제살인귀들의 조선인대학살범죄는 절대로 지워질수 없으며 억울하게 숨진 조선사람들의 령혼은 영원히 잠들수 없다.

 

교활하고 파렴치한 진상은페책동

 

죄를 지었으면 사죄하고 책임을 지는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일본은 범죄행위에 대해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사건발생당시부터 지금까지 한세기가 되도록 시종일관 그 진상을 가리우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간특하게 놀아대고있다.

대학살범죄를 덮어버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쳐날뛴데서 극악한 살인마, 파렴치한 날강도로서의 죄악적정체는 더욱 낱낱이 드러나고있다.

사건발생후 일제는 엄격한 보도관제를 실시하는것과 함께 당시 도꾜에 거주하고있던 외국사람들을 한곳에 몰아넣고는 외출을 철저히 단속하였다.

한편 일본정부는 간또대진재를 계기로 감행된 대학살이 《비상설민간인집단인 자경단이 재난당시 류언비어에 말려들어 벌린 우발적범죄》라고 하면서 사실을 외곡하였다.사건의 진상을 가리우기 위해 조선사람들을 적극 《보호》하였다는 역선전과 학살된 조선사람들의 수를 극히 축소하여 발표하는 사기협잡행위도 거리낌없이 벌리였다.

당시 조선총독이였던 사이또 마꼬도는 살해된 조선사람의 수가 2명에 불과하다는 뻔뻔스러운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것으로도 성차지 않아 일제는 간또지방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조선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어두고 소나 말보다 더 혹독하게 부려먹었다.재일조선인들을 죄인처럼 취급하면서 피해지역에 내몰아 강제로동을 시킨탓에 간또대학살때보다 더 많은 우리 동포들이 무참히 학살당하고 굶어죽었으며 로동재해로 쓰러졌다.

일본반동정부는 간또조선인대학살만행과 관련한 국가적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주범인 군대와 경찰을 사법처리대상에서 고의적으로 제외시키였다.

간또대진재가 있은 때로부터 1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사건은 퇴색되는것이 아니라 더욱 선명하게 진상을 드러내고있다.당시의 대학살만행의 배후에 일본정부가 있었음을 립증하는 자료들이 계속 발굴되고있다.

하지만 사건발생당시부터 오늘까지 일본정부는 의연 《학살에 관여한적도, 사과할 생각도 없다.》는 철면피한 태도를 취하고있다.일본당국자들은 간또조선인대학살사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할수 있는 기록이 없다.》고 외면해왔으며 지어 《간또대지진당시 조선인학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라는 후안무치한 망발까지 늘어놓았다.

한때 일본에서 간또조선인대학살만행이 당국의 관여하에 벌어진 사실이라는데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한 중학교용력사교과서가 발행되였는데 일본반동들은 그것을 전부 회수하는 파렴치한짓을 하였다.

오늘도 일본당국자들은 간또조선인대학살사건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느니, 《력사가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느니 하면서 그에 대한 국가적책임을 부정하고있다.이것이 간또조선인대학살만행이후 100년간 일본당국의 처사이다.

일본반동들은 천인공노할 반인륜범죄에 대한 죄의식은 꼬물만큼도 없이 오히려 반공화국, 반총련모략책동을 일삼으면서 일본사회전반에 반공화국적대시분위기를 고취하고 총련과 재일조선공민들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하려 하고있다.그로 하여 지금도 일본에서는 땅이 조금만 흔들려도 인터네트에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이 풍기는 론조의 글들이 실리는 등 간또조선인대학살사건때의 악몽을 되살리는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감돌고있다.몇해전 규슈의 구마모도지방에서 대규모지진이 일어났을 때 인터네트에 조선사람이 우물에 독약을 쳤다는 황당무계한 글이 실렸는가 하면 조선인의 폭동에 조심하라는 등 극단한 적대감을 고취하는 류언비어들이 공공연히 나돌았다.우익반동들은 간또대진재당시 학살된 조선인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장주변에 몰려들어 《거짓력사를 후세에 남길수 없다.끊어야 한다.》라고 고아대며 조선인학살범죄를 부정하는 란동까지 부리였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들을 적대시하는 망동들이 거리낌없이 감행되고있는것은 군국주의광신자들이 집요하게 추구해온 반공화국, 반총련적대시정책의 직접적산물이며 우리 민족을 또다시 노예화하고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해보려는 재침야욕의 발로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다.그 10년이 열번도 흘렀지만 일본반동들의 속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다.지금도 일본반동들은 력사외곡, 야스구니진쟈참배 등으로 죄악에 찬 침략력사를 미화분식하면서 자국민들과 자라나는 새세대들을 군국주의광신자로 만들려고 발광하고있으며 무력증강과 《자위대》의 해외파병 등 재침책동에 광분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이 피비린 과거를 덮어버리면서 범죄의 전철을 다시 밟으려고 발악할수록 우리 인민의 대일결산의지는 더욱 강렬해지고있다.

우리 인민은 일제에게 짓밟혔던 수난의 과거를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천년숙적 일본과 반드시 총결산을 하고야말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불법무도한 《한일합병조약》날조가 새겨주는 교훈

주체112(2023)년 8월 29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1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일제에게 국토병탄을 강요당한 1910년 8월 29일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비분의 날이다.

오늘날 누구나 부러워하는 강국의 존엄을 지니고 세계를 굽어보는 우리 인민이 가슴아픈 력사의 비극을 돌이켜보는것은 다시는 그것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일제침략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근 반세기의 장구한 기간 식민지노예살이를 강요당한 쓰라린 지난날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며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재침책동을 철저히 분쇄하여야 합니다.》

자주권은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다.자주권은 신성한것이지만 그것을 지킬 힘이 없으면 남에게 롱락당하게 되고 종당에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망치게 된다는것을 력사는 한두번만 보여주지 않았다.

일제의 《한일합병조약》날조로 우리 인민이 겪은 수난이 그러한 실례들중의 하나이다.

《을사5조약》의 부당성을 폭로한 헤그밀사사건을 구실로 조선의 국토를 병탄하기 위한 일제의 책동은 더욱 악랄해졌다.

당시 일제 내각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에는 《황제에게 주권을 일본에 선양시키게 하고 두 나라가 병합한다.》(제1안)와 《현 황제 고종에게 양위시켜 통합권을 일본에 위임시킨다.》(제2안)는것 등이 들어있었다.일제는 여기에 제1안을 상책으로 하되 적어도 제2안을 반드시 단행해야 한다고 쪼아박았다.

이에 따라 일제는 고종을 강제퇴위시키고 그 자리에 순종을 올려앉힌 다음 《정미7조약》을 날조하여 우리 나라의 내정권을 빼앗았다.이어 얼마 안되는 조선군대마저 강제해산시켰다.그리하여 우리 나라에는 형식상 조선봉건왕조만 존재하였다.그에 기초하여 일제는 저들의 조선침략의 최종목적인 국토병탄책동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일제는 《시일야방성대곡》의 여운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있던 그때 거세찬 반일기운이 폭발할것이 두려워 가장 악독한 헌병제도를 실시하였으며 증강된 헌병대병력을 내몰아 조금이라도 항거할 기미만 보여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속에서 일제는 1910년 8월 22일 끝끝내 《한일합병조약》이라는 허위문서를 날조하였으며 그것을 29일에야 공포하였다.

이날 발표된 일본왕의 《조칙문》에는 국새와 함께 서명이 찍혀져있었지만 조선황제의 《칙유문》에는 어새만 찍혀있을뿐 서명이 없었다.

후날 순종은 그에 대해 《한목숨을 겨우 보존한 짐은 합병인준사건을 파기하기 위해 조칙한다.과거 합병인준은 강린(일본)이 역신과 손을 잡고 마음대로 선포한것이다.다 나의 한바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였다.

나라를 송두리채 빼앗겨도 부르쥔 주먹으로 피눈물을 닦을수밖에 없는것이 자기의 힘을 가지지 못한 인민의 비참한 처지이다.

《한일합병조약》의 날조로 형식상으로나마 존재하던 조선봉건국가는 없어지고 우리의 신성한 국토는 일제에게 짓밟히게 되였다.온 나라가 분노로 치를 떨었다.망국의 한을 참지 못하고 죽음으로 치욕을 씻으려 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당시 나라잃은 설음을 아무리 하소연해도 그것을 받아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조선은 말그대로 암흑천지로 화하였다.침략자들의 더러운 발길이 미치는 곳마다에서 무고한 인민의 피가 흘렀다.

《조선사람은 일본법률에 복종하든가 아니면 죽어야 한다.》는것이 바로 일제의 통치교리였다.일제가 세워놓은 야만적인 폭압제도는 온 나라를 철창없는 감옥으로 만들었다.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 수려한 산천경개를 자랑하는 조선의 모든것이 무차별적인 략탈대상으로 되였다.

조선의 경제명맥을 모두 틀어쥔 일제는 우리 인민의 고혈을 악착스럽게 짜내면서 이 땅의 귀중한 자원을 마구 략탈하였다.뿐만아니라 민족동화정책과 민족문화말살정책을 실시하면서 조선사람의 말과 성까지 빼앗으려고 책동하였다.

일제는 중일전쟁발발이후에만도 840만여명의 조선청장년들을 강제련행하였으며 20만명에 달하는 조선녀성들을 일본군성노예로 끌어갔다.

일제의 불법무도한 조선강점과 가혹한 식민지통치로 우리 인민이 겪은 온갖 불행과 고통은 힘이 없으면, 힘이 약하면 나라는 물론 인간의 모든 권리를 빼앗기게 되고 민족의 운명이 칠성판에 오르게 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세기는 바뀌고 모든것이 변하였다.우리 국가의 지위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지난날 세계지도우에서 빛을 잃었던 우리 조국은 그 어떤 침략세력도 감히 범접할수 없는 불패의 정치군사강국으로 위용을 떨치고있다.

지구상에 침략과 략탈을 생존방식으로 하는 횡포한 제국주의가 남아있는한 우리는 더욱 강해져야 한다.끊임없이 강해져야 한다.

이것이 113년전의 비극이 새겨주는 피의 교훈이며 세기를 이어 계속되는 치렬한 반제대결전에서 우리 인민이 견결한 계급적립장과 비타협적인 투쟁으로 확증한 력사의 진리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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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조약날조는 일제의 만고죄악을 고발한다

주체112(2023)년 8월 29일 《우리 민족끼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강점이 후안무치한 강도행위였다는것은 온 세상이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날조를 통하여 조선의 외교권과 내정권을 강탈한 일제는 형식상으로나마 남아있던 국가실체로서의 조선을 영원히 없애버리기 위하여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 밝혀진데 의하면 《한일합병조약》의 조선어본과 일본어본이 한 필체로 작성되였으며 《한일합병조약》의 량국문서는 물론 리완용을 《협정전권대표》로 임명한다는 황제의 《칙유문》과 《합병조약》체결을 량국이 동시에 발표한다는 내용의 《합병조약 및 량국황제조칙공포에 관한 각서》 등 4종의 문서가 모두 한사람의 필체로 작성되였다는것, 이 문서들을 당시 조선통감부의 한 인물이 작성하였다는것이 과학적으로 립증되였다. 이와 함께 《합병조약 및 량국황제조칙공포에 관한 각서》의 한 부분에 《통감부》라는 글자가 인쇄되여있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한 1910년 8월 29일에 공포된 《병합》을 알리는 순종황제의 칙유문자체에도 황제의 어새만 찍혔을뿐 순종황제의 서명이 없었다. 반면에 같은 날 공포된 일본왕의 조칙문에는 어새와 함께 서명이 있었다.

이것은 쌍무조약문을 쌍방이 제각기 작성하는 국제조약체결준비과정의 일반적원칙과 조약효력발생의 중요조건인 쌍방국가원수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보편적관례로 볼 때 완전히 일방적이며 날강도적인 조약강요, 조약날조행위라는것을 말해주고있다.

더우기 격분을 자아내는것은 《한일합병조약》이 일본왕의 재가에 대한 정식 통보를 받기도 전에 날조되였다는 사실이다.

1910년 8월 22일 10시 40분부터 1시간 5분동안 일본왕의 자문기구인 추밀원에서는 일본내각에서 제출한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안 및 이와 관련한 칙령안 12건을 황급히 심의, 의결한 다음 즉시 그에 대한 왕의 최종재가를 요청하는 상주안을 바치였다. 이후 일본내각에서는 조약문에 대한 왕의 재가를 받고 한성의 통감부에 전문으로 통지하였는데 그 시간은 이날 18시 30분이였다. 하지만 《한일합병조약》은 이미 22일 16시에 날조된 상태였다.

당시 《조선총독》 데라우찌는 저들의 일본법률과 초보적인 국제조약체결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일본왕의 재가에 대한 통보를 정식으로 받기도 전에 《조약》에 《조인》하였던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일제의 조선통감부가 일방적으로 《한일합병조약》과 그 관련문서들을 날조하였으며 조선봉건정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압적으로 공포하였다는것을 실증해준다. 다시말하여 《한일합병조약》이 사기와 협잡, 강권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불법비법의 날조문서라는것을 말해주고있다.

일제가 범죄적인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고 우리 나라를 완전히 병탄한 때로부터 1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흐르는 세월은 많은것을 잊혀지게 한다고 하지만 한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도 과거 일본이 저지른 온갖 죄악은 우리 인민의 기억속에 똑똑히 새겨져있다.

그러나 지금 일본반동들은 과거죄악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군국주의재침야망만을 더욱 로골화하고있다.

지난 8월 15일 일본수상 기시다가 야스구니진쟈에 공물을 보내고 일본정계의 극우익세력들이 무리지어 야스구니진쟈에 몰려가 참배놀음을 벌려놓은것은 일본반동들이야말로 저들의 과거죄악을 합리화하고 패망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발을 갈며 또다시 재침의 야망을 꿈꾸고있는 우리 민족의 불구대천의 원쑤라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이러한 민족의 천년숙적과 《관계개선》을 떠드는 윤석열역적패당의 친일굴욕행위는 일본반동들의 군국주의부활, 조선반도재침야망을 더욱 부채질하고있다.

하기에 일본반동들의 변함없는 침략적본성과 군사대국화책동, 윤석열괴뢰역적패당의 친일매국적망동은 우리 인민의 증오심을 더욱 격증시키고있는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잊어서는 안될 일본의 과거죄악을 기어이 결산하고야말것이라는 바로 이것이 우리 인민모두의 가슴속에 차넘치는 철석의 의지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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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령혼들은 오늘도 복수를 부른다

주체112(2023)년 8월 24일 《려명》

 

지금으로부터 78년전에 있은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은 일제침략자들의 잔인성과 야수적본성을 오늘도 적라라하게 폭로하고있다.

1945년 8월 24일 교또부 마이즈루앞바다를 항행하던 일본해군수송선 《우끼시마마루》에서 요란한 폭발이 여러 차례 일어나는 동시에 배가 동강나 바다에 침몰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배에 탔던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바다에 휘뿌려져 살려달라고 애절하게 웨치다가 광란하는 파도속에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이역땅에 끌려가 일제의 군사기지건설장과 철도공사장, 탄광에서 노예처럼 혹사당하던 조선사람들이였다.

왜놈들의 채찍아래서 망국노의 설음을 피눈물로 터친적은 그 얼마였고 운명하는 순간에조차 고향을 그리며 눈을 못감은 이는 또 얼마였던가.

《폭발은 기관실이 있는 배밑에서 일어났다. …

선실안에 있던 동포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갑판우로 올라가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때 갑판우에서는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조선인으로서 일본해군의 헌병노릇을 하던 백모라는 사람이 갑판으로 뛰여나오더니 <일본놈들이 화약을 터뜨려 배를 가라앉게 하였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물속으로 뛰여들었던것이다. …

이때에야 우리는 일본놈들에게 속히웠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아우성과 함께 배는 바다물속에 잠기고말았다.》

이것은 그때 배에 탔던 피해생존자들의 회상담의 일부이다.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은 철두철미 일제의 조선인학살계획에 따라 조작된 고의적인 집단살륙범죄사건이다.

일본이 폭침사건을 연출한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 한명의 조선사람이라도 더 많이 죽이는것으로써 패망의 앙갚음을 하며 더우기는 저들의 군사대상물건설의 비밀을 알고있는 생존자들을 모조리 없애치우자는것이였다. 때문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모두 마이즈루에 있는 어느한 해군숙소에 가두어놓고 그곁에 있는 증기탕크를 폭파시켜 또다시 학살하는 만행까지 감행하였던것이다.

《우끼시마마루》가 폭침된 후 일본반동들은 서둘러 이 사건이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의하여 《우발적으로 일어난 불가피한 사고》였다는 《조사자료》를 발표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가리워보려고 획책하였으며 여러해가 지나서는 가라앉은 《우끼시마마루》를 고철로 쓴다고 하면서 끌어올려 해체함으로써 제놈들이 저지른 범죄의 증거물마저 없애버렸다.

지금도 일본반동들은 치졸한 말장난으로 피비린내나는 과거사를 외곡하고 미화분식하는것도 모자라 범죄력사 그자체를 아예 매장해버리기 위해 발악하고있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산천이 변한다 해도 일제야수들이 저지른 특대형반인륜적죄악은 절대로 덮어버릴수도 지워버릴수도 없다.

경악스러운것은 과거범죄를 부인하다 못해 공공연히 정당화하기까지 하는 일본반동들을 《공동의 리익을 추구하는 벗》, 《동반자》로 개여올리며 천년숙적에게 재침의 길을 열어주는 윤석열역적패당의 친일매국행위이다.

78년전 그날의 령혼들이 간악한 왜나라족속들과 한짝이 되여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깡그리 팔아먹는 특등매국노들에게 천벌을 내려달라고 하는 피타는 절규가 금시라도 들려오는듯싶다.

그렇다.

《우끼시마마루》의 령혼들은 오늘도 피의 복수를 부르고있다.

억울하게 숨진 자기들의 피값을 반드시 받아내라고.(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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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수치스러운 패망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체112(2023)년 8월 15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8월 15일발 조선중앙통신)

15일부 《민주조선》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일본은 수치스러운 패망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8월 15일,이날은 우리 민족사에서 참으로 뜻깊고 의의깊은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78년전 바로 이날에 우리 민족은 장장 수십년간에 걸치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빼앗겼던 령토와 민족의 존엄을 되찾았으며 자주와 독립,번영의 새 아침을 맞이하였다.

삼천리강토에 메아리치던 해방만세의 함성을 되새겨볼수록 우리 민족을 지지리도 억누르며 모진 수난과 고통을 들씌운 일제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더욱 세차게 치밀어오른다.

지난 세기 전대미문의 민족말살정책을 강행하면서 조선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어놓은 일제는 100여만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고 840만여명을 강제련행,랍치하여 죽음의 전쟁터와 고역장에 내몰았으며 20만명의 조선녀성들에게 치욕스러운 일본군성노예생활을 강요하였다.

일제는 《조선사람은 일본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뇌까리며 우리 인민에게 참을수 없는 노예적굴종을 강요하였으며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말과 글까지 없애버리려고 미친듯이 날뛰였다. 또한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가 깃들어있는 우리 나라의 귀중한 국보와 문화재들을 닥치는대로 파괴,략탈하고 천문학적액수에 달하는 막대한 자연부원을 강탈해갔다.

지난 세기 일제가 우리 인민을 멸살시키고 우리 인민의 피와 땀이 스민 물질적재부를 깡그리 강탈하기 위해 감행한 범죄적만행들을 꼽자면 이루 다 헤아릴수 없다.

이처럼 우리 민족을 지구상에서 영영 없애버리고 우리 나라를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가장 극악한 만행들을 다 감행하였지만 일제는 궁극적으로 패망하고야말았다.

력사는 모두에게 진리를 가르쳐주고 교훈을 새겨준다. 하다면 일본은 패망의 력사에서 어떤 교훈을 찾아야 하는가.

일본이 어째서 패망하게 되였는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일본은 과거 저들의 패망의 원인을 《힘이 약했던탓》으로 돌리고있지만 사실상 일제가 패망한것은 단순히 힘이 약했던탓이 아니였다.

우리 나라의 모든 인적 및 물적자원을 독차지하고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며 광활한 중국대륙과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을 짓밟았던 일제와 항일유격대와의 력량상차이는 대비조차 할수 없었다. 《정예》를 자랑하는 100만의 관동군을 가지고있던 일제가 국가적후방도 정규군의 지원도 없는 항일유격대를 가리켜 《창해일속》이라고 평한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일제는 위대한 수령의 탁월한 령도밑에 자유와 해방을 위해 떨쳐나선 항일유격대와 우리 인민들의 거족적인 결사항전을 막을수 없었다.자주와 정의를 위해 떨쳐나선 인민의 힘을 당할수 없었다.

일제의 패망은 침략자들의 말로는 수치스러운 참패뿐이며 인류를 노예화하려는자들은 력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것을 뚜렷이 실증해주었다.

비단 일제뿐이 아니다. 유럽의 광활한 지대를 강점하고 지배하던 파쑈무리들에게 차례진것도 패망이라는 비참한 운명이였다.

부정의와 악이 파멸하는것은 력사발전의 법칙이다.

일제의 패망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였으며 숙명이였다.

그러나 오늘 일본반동들은 력사의 이 진리를 망각하고 해외침략야망실현에 집요하게 매여달리고있다.

일본반동들이 추구하는 군사대국화는 본질에 있어서 지난날에 이루지 못한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기어이 실현하기 위한 군사적담보를 마련하자는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에 따라 세워진 정치적,제도적장치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가고있다. 《평화헌법》을 깨버리고 《전쟁헌법》마련에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으며 《자위대》무력의 해외작전범위를 넓히기 위해 모지름을 쓰고있다. 저들의 불순한 목적실현을 위해 우리 공화국의 정정당당한 자위권행사까지 걸고들며 음으로양으로 못되게 놀아대고있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아시아인민들의 피로 얼룩진 죄악의 력사를 청산할데 대한 국제사회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고 과거청산의 의무를 회피해보려고 별의별 오그랑수를 다 쓰고있는것이다.

일본은 저들의 조선침략을 유럽렬강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나라를 《보호》해주기 위한것으로,일본군성노예범죄는 개별적매춘업자들의 소행으로 밀어붙이고있으며 심지어 조선녀성들이 돈을 바라고 한 상적행위로 묘사하는 철면피한 망발을 거리낌없이 내뱉고있다.

저들의 과거범죄를 한사코 부인하는 일본의 속심은 다른데 있지 않다.

일본은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외곡된 력사관을 심어주어 그들이 과거의 죄의식을 털어버리고 해외침략의 길에 서슴없이 나서도록 부추기려 하고있다. 일본의 극우익보수정객들이 해마다 일제패망일을 계기로 야스구니진쟈에 몰려가 참배와 공물봉납놀음을 벌려놓고있는것만 보아도 일본의 복수주의와 재침야망이 어느 지경에 이르고있는가를 잘 알수 있다. 평화를 파괴하고 인류를 반대하는 범죄를 감행함으로써 준엄한 심판을 받은 수급전범자들을 비롯한 해외침략에서 악명을 떨친 구일본군인들의 명부와 위패가 있는 야스구니진쟈에 일반시민도 아니고 한 나라의 정치를 주도한다는 고위정객들이 머리를 조아리고있는것은 일본사회에 군국주의해외침략사상을 부식시키고 《령토수복》의 미명하에 해외침략의 포성을 기어이 울리려는 흉심으로부터 출발한것이다.

일본의 무모한 군사대국화와 군국주의해외침략야망실현을 위한 부산스러운 움직임으로 하여 가뜩이나 긴장한 조선반도와 그 주변정세가 날로 험악한 지경으로 치닫고있다.

그러나 일본의 해외침략야망은 절대로 실현될수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은 변했고 세계는 각성되였다. 오늘날 세계의 정치구도 특히 아시아의 정치구도에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날 일제에 의하여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면치 못하였던 조선은 오늘날 누구도 감히 넘볼수 없는 최강의 국가방위력을 보유한 강국으로 존엄떨치고있다. 세계는 일본이 또다시 해외침략의 길로 나가는데 대해 절대로 용납치 않으며 이를 예리하게 주시하고있다. 군국주의재침야망은 일본을 완전한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비참한 결과만을 초래할뿐이다.

일본은 오늘의 현실을 똑바로 보고 처신을 바로해야 하며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전문 보기)

 

[Korea Info]

 

군권을 강탈한 날강도적행위

주체112(2023)년 8월 1일 《통일의 메아리》

 

8월 1일은 조선민족의 천년숙적 일제가 조선군대를 강제로 해산한지 116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럼 이 시간에는 《군권을 강탈한 날강도적행위》,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907년은 일제가 황제인 고종을 강제퇴위시키고 조선봉건정부의 내정권을 강탈한 《정미7조약》을 날조한것으로 하여 《을사5조약》이 날조된 1905년과 함께 우리 인민의 반일감정을 폭발시킨 해로 기록되여있습니다.

바로 그해에 우리 민족은 병력수와 무장장비에 있어서 보잘것 없던 군대마저 간악한 일제침략자들에 의하여 해산당하지 않으면 안되는 비극을 겪게 되였습니다.

자주독립국가의 중요한 징표의 하나는 자기 조국을 외래침략자들로부터 수호할수 있는 자체의 강위력한 민족군대를 가지는것입니다.

교활한 일제침략자들은 침략의 발을 들여놓은 첫 시기부터 조선의 군력을 약화시키거나 저들에게 종속시키려고 집요하게 책동했습니다.

조선군대에 대한 고종황제의 군사통수권을 페지한 일제는 조선군병력이 반일의병을 비롯한 조선인민의 반일항쟁의 조직적력량으로 될수 있다는 공포감으로부터 병력수를 대폭 축감했습니다. 일제의 악랄한 책동으로 말미암아 1907년 7월 조선군대강제해산전야의 병력실태를 보면 조선군대의 전체 인원수는 겨우 8 800여명에 불과하였는데 이것은 1904년 당시 1만 7 000여명에 달하던 병력을 무려 50%나 축감한것으로 됩니다.

일제는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퇴위를 기화로 형식상이나마 남아있던 조선내정권마저 강탈한 다음 지체없이 조선의 국토를 병탄하는데서 마지막장애물로 되고있는 조선군대를 강제해산하는데 착수했습니다.

고종황제에 대한 강제퇴위와 그를 일본으로 끌어가기 위한 랍치음모 등이 알려지자 인민들과 애국적군인들은 강력한 항전으로 일제침략자들에게 항거해나섰습니다. 특히 이 항전에 시위제1련대 제3대대가 합세해나섬으로써 일제침략자들은 커다란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일제는 조선군인들이 망라된 서울시민들의 폭동이 조선의 식민지통치기반을 강화하려는 저들의 침략기도를 파탄시키는 무서운 불씨로 될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로부터 일제침략자들은 저들이 처한 정치적위기의 출로를 앞으로 반일항전의 바탕으로 될수 있는 조선군대를 전면해산하는데서 찾고 그것을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실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간주했습니다.

일제는 조선군대를 해산하기 위하여 온갖 수법과 수단을 총발동했습니다.

일제는 조선군대해산시 있을수 있는 군인들의 반일항전에 대처하여 본토로부터 병력을 증강하는 한편 사전에 폭압무력을 총동원했습니다.

또한 조선군대해산의 합법적《명분》을 날조하는 간교한 조치도 취했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조선군대에 대한 포위환형성과 무장해제, 군대해산에 대한 가짜법적장치를 날조한데 기초해서 조선군대강제해산식을 진행했습니다.

1907년 8월 1일 날이 밝아오자 서울시내는 일제침략자들의 삼엄한 경계밑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속에서 당시 조선주둔 일본침략군의 우두머리였던 하세가와는 아침 8시 서울주둔 조선군대의 부대장 및 구분대장회의를 소집하고 조선군대의 해산을 직접 통고했습니다. 그리고는 장교들로 하여금 도수훈련을 한다고 병사들을 꾀여 해산식장소인 훈련원으로 무장을 가지지 않고 집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오전 10시 훈련원두리에 일제의 기병, 보병, 공병혼성부대들의 삼엄한 포위진이 펼쳐진 속에서 조선군대해산식이 강행되였습니다.

이때 조선군대해산식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미리 안 시위제1련대 제1대대와 제2련대 제1대대 병사들이 군대해산식을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켜 반일항전에 궐기했습니다.

급해맞은 일제장교들은 무장해제당한 병사들이 훈련원에 집합하자 반일항전소식이 퍼지기 전에 해산식을 끝내려고 서둘렀습니다. 그들은 조선병사들의 견장을 무작정 잡아떼면서 소위 황제의 《은사금》이라는 명목으로 몇푼 안되는 돈을 주고서는 모두 해산시켰습니다. 이때 해산식에 참가한 조선군인수는 1 812명이였는데 약 1 350명은 해산소식을 알고 탈영하였으며 그 대부분은 반일의병대에 합류하였습니다.

각 지방의 진위대해산식도 린근의 일본수비대의 감시밑에 강제무장해제시키는 방법으로 진행할 예정이였는데 서울의 시위대폭동소식이 삽시에 전해져 원주, 제천을 비롯한 각지 진위대병사들이 그에 호응하여 반일항전을 전개하였습니다. 하여 진위대의 강제해산은 제대로 진행될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불법무도한 군력말살책동으로 하여 조선군대가 완전히 해체됨으로써 우리 나라는 군대가 없는 나라로 되였습니다.

일제는 이런 강도적인 방법으로 조선을 완전무장해제시키고 큰 저항을 받음이 없이 우리의 국토를 병탄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교전일방이 아닌 일본이 전패국도 아닌 조선에 대하여 군대를 무장해제시키고 정규무력을 완전히 해산시킨것은 실로 력사에 없는 날강도적인 행위가 아닐수 없습니다.

조선군대의 강제해산이라는 이 하나의 사실을 통해서도 일제야말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포악무도하고 파렴치한 날강도무리, 우리 민족의 천년숙적이라는것을 똑똑히 알수 있습니다.

하기에 이 날을 계기로 온 겨레는 40여년간이나 우리 민족에게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한 섬나라 사무라이족속들의 피에 절은 죄악의 력사를 다시금 뼈에 새기면서 천백배로 결산하고야말 의지를 가다듬고있습니다.

 

지금까지 《군권을 강탈한 날강도적행위》,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유엔은 주권국가를 모해하는 정치모략선전마당으로 되여서는 안된다

주체112(2023)년 6월 28일 조선중앙통신

 

일본이 미국,오스트랄리아,유럽동맹 등과 야합하여 랍치문제와 관련한 화상토론회라는것을 유엔무대에서 또다시 벌려놓으려 하고있다.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번 토론회 역시 존엄높은 우리 공화국의 국제적영상에 먹칠을 하고 집단적인 압박분위기를 조성해보려는 적대세력들의 단말마적발악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이 대조선적대시에 환장이 된 나라들과 야합하여 해마다 해괴한 토론회놀음을 벌려놓는다고 하여 지난 세기 우리 인민에게 감행한 특대형반인륜범죄가 은페되거나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할수는 결코 없다.

지난 세기 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하여 840만여명의 청장년들을 강제로 랍치하고 100여만명을 무참히 학살하였으며 20만명의 조선녀성들에게 성노예생활을 강요한 일본이 유엔무대에서 《랍치》와 《인권》을 운운하는것 자체가 파렴치의 극치이며 력사에 대한 모독이다.

일본사람들이 말하는 《랍치문제》에 대하여 말한다면 우리의 아량과 성의있는 노력에 의해 이미 되돌릴수없이 최종적으로 완전무결하게 해결되였다.

일본은 마땅히 우리의 선의에 과거 식민지지배와 반인륜적만행에 대한 철저한 사죄와 배상으로 성근히 대답해야 했을것이다.

그러나 력대 일본집권층은 《랍치문제》를 극대화하며 반공화국적대감을 광란적으로 고취하였으며 우리의 성의를 장기집권의 정치적야욕을 실현하는데 악용하였다.

일본국내에서 실종된 수백여명이 모두 우리에게 《랍치》되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떠들어댄것으로 하여 《랍치산업》이라는 생소한 말까지 생겨난 가운데 행불되였다던 여러명이 제 집안에서 나타나거나 그 해명이 됨으로써 비난과 조소를 자아냈다.

일본정부는 국민의 혈세로 짜낸 《랍치예산》을 탕진하면서 반공화국랍치소동을 피워대는것으로 얼마만한 리득을 챙기겠는지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실현불가능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구태의연하게 국제무대에 들고다니는것은 부질없는 시간랑비이며 《전제조건없는 일조수뇌회담》을 희망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급하고있는 일본당국자의 립장을 스스로 부정하는것과 같다.

일본이 아무리 《랍치문제》를 국제화해보려고 획책하여도 일본의 《랍치예산》에 붙어먹을 궁리만 하는 사이비《인권》전문가들과 어중이떠중이들을 제외하고는 그리고 동맹국의 편역을 들지 못해 안달이 나하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할것이다.

《피해자전원귀국》이 실현되지 않으면 랍치문제의 해결이란 있을수 없다고 생떼를 부리는것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라는 식의 허망한 망상에 불과하다는것을 일본은 명심해야 한다.

겸해서 말한다면 인권유린행위에서 해마다 신기록을 세우고 부단히 갱신하고있는 미국은 그 누구의 《인권》에 대해 삿대질할 체면도 자격도 없다.

유엔은 더이상 주권국가를 모해하는 정치모략선전마당으로 되여서는 안된다.

유엔무대는 마땅히 40여년동안이나 한 나라,한 민족의 자주권을 짓밟고 반인륜대죄를 범하고도 세기와 세대가 바뀌도록 성근히 반성하지 않고있는 전범국 일본을 단죄하고 어지러운 과거와 결별할것을 요구하는 마당으로 되여야 한다.

유엔이 신성한 헌장에 따르는 사명을 다하자면 오늘날 있지도 않은 주변위협을 구실로 침략적인 선제공격능력보유책동에 광분하고있는 일본과 이를 적극 부추기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엄중히 위협하고있는 미국을 폭로하고 심판하여야 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리병덕

주체112(2023)년 6월 27일

(전문 보기)

 

[Korea Info]

 

国連は主権国家を謀略にかけて害する政治謀略宣伝の場になってはならない

チュチェ112(2023)年 6月 28日 朝鮮中央通信

 

【平壌6月28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外務省日本研究所研究員のリ・ビョンドク氏が27日に発表した文「国連は主権国家を謀略にかけて害する政治謀略宣伝の場になってはならない」の全文は次の通り。

日本が米国、オーストラリア、欧州連合(EU)などと結託して拉致問題に関するテレビ討論会というものを国連舞台でまたもや開こうとしている。

過去と同様、今回の討論会もやはり、尊厳あるわが共和国の国際的イメージに泥を塗り、集団的な圧迫の雰囲気を醸成しようとする敵対勢力の断末魔のあがきにすぎない。

日本が対朝鮮敵視に狂った国々と結託して毎年、奇怪な討論会を開くからといって、決して20世紀にわが人民に働いた特大型の反人倫犯罪が隠蔽されたり、加害者が「被害者」に変身するわけにはいかない。

20世紀に朝鮮を武力で占領して840万人余りの青壮年を強制的に拉致し、100余万人を無残に虐殺し、20万人の朝鮮女性に性奴隷生活を強要した日本が、国連舞台で「拉致」と「人権」をうんぬんすること自体が破廉恥の極みであり、歴史に対する冒瀆(ぼうとく)である。

日本人らが言っている「拉致問題」について言うなら、われわれの雅量と誠意ある努力によってすでに逆戻りできないように、最終的に、完全無欠に解決された。

日本は当然、われわれの善意に過去の植民地支配と反人倫的蛮行に対する徹底した謝罪と賠償で真面目に応えるべきであった。

しかし、歴代の日本執権層は「拉致問題」を極大化して反朝鮮敵対感をヒステリックに鼓吹したし、われわれの誠意を長期執権の政治的野望を実現することに悪用した。

日本国内で失踪した数百人余りが全部われわれに「拉致」された可能性が濃厚であると言い立てたことによって「拉致産業」というなじみのない言葉まで生じた中、行方不明となったとされていた数人が自国内で現れたり、それが解明されたりして非難と嘲笑(ちょうしょう)を買った。

日本政府は、国民の血税で搾り出した「拉致予算」を蕩尽して反朝鮮拉致騒動を起こすことでどれほどの利得をむさぼったのかを考えてみる必要がある。

日本が実現不可能な問題を前面に掲げて旧態依然として国際舞台に持ち回っているのはたわいない時間の浪費であり、「前提条件のない日朝首脳会談」を希望すると機会あるたびに言及している日本当局者の立場を自ら否定すること同様である。

日本がいくら「拉致問題」を国際化してみようと画策しても、日本の「拉致予算」に寄生することだけを工夫するえせの「人権」専門家と有象無象を除いては、そして同盟国の肩を持ちたくてやきもきしている米国とその追随勢力を除いては、誰の関心も引けないであろう。

「被害者全員帰国」が実現しなければ拉致問題の解決などあり得ないと強情を張るのは、死んだ人を生かせというふうの空しい妄想にすぎないということを日本は銘記すべきである。

ついでに言うなら、人権蹂躙(じゅうりん)行為で毎年新記録を樹立し、絶えず更新している米国は誰それの「人権」について非難するメンツも資格もない。

国連はこれ以上、主権国家を謀略にかけて害する政治謀略宣伝の場になってはならない。

国連舞台は当然、40余年間も一国、一民族の自主権を踏みにじり、反人倫大罪を犯したのに世紀と世代が変わるまで真面目に反省していない戦犯国の日本を糾弾し、汚らわしい過去と決別することを求める場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

国連が神聖な憲章に従う使命を果たすには、こんにち、ありもしない周辺脅威を口実にして侵略的な先制攻撃能力保有策動に狂奔している日本とこれを積極的にあおり立てて地域の平和と安定を甚だしく脅かしている米国を暴露し、審判しなければならない。(記事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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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야수성을 고발하는 6.10만세시위투쟁

주체112(2023)년 6월 10일 로동신문

 

오늘은 6.10만세시위투쟁이 일어난 때로부터 97년이 되는 날이다.

세월은 많이도 흘렀다.세대도 바뀌였다.하지만 우리는 6.10만세시위투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우리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발광한 일제의 죄악을 절대로 잊지 않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3.1인민봉기이후 식민지통치체제의 위기를 느낀 일제는 종래의 《무단통치》의 총검우에 《문화통치》의 비단보자기를 씌워놓고 《중추원》에 친일파 몇명을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조선사람의 정치참여를 장려하는척 하였다.《민의창달》의 허울밑에 조선글로 된 신문, 잡지를 몇종 발간하도록 허가해주고는 마치 조선사람과 일본인사이에 차별이 없는것처럼 요란스럽게 떠들어댔다.

하지만 《무단통치》가 《문화통치》로 그 명칭만 바뀌였을뿐 총독정치의 진면모는 변하지 않았다.달라진것이 있다면 통치수법이 보다 교활하고 악랄해진것뿐이였다.

조선봉건국가의 마지막황제였던 순종이 사망한것을 계기로 조선인민의 반일감정은 더욱 격화되여 각계층 근로대중의 반일투쟁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1926년 6월 10일 마침내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이 벌어졌다.이것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망국의 설음과 간악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대한 쌓이고쌓인 분노의 폭발이였다.시위투쟁은 삽시에 전국각지로 확대되였으며 여기에 각계층의 광범한 군중이 참가하였다.

온 삼천리강토를 진감하며 세차게 벌어진 6.10만세시위투쟁은 빼앗긴 조국강토를 되찾고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기 위한 대중적인 반일애국투쟁이였다.

우리 인민의 불굴의 의지와 애국적기개에 겁을 먹은 일제는 확대되는 시위투쟁을 진압하려고 발악하였다.시위투쟁이 벌어지기 전에 벌써 각 도의 경찰대와 군부대까지 동원하여 삼엄한 경계망을 펴는 한편 인천에 정박하고있던 4척의 순양함 해병들을 《의장병》이라는 명목밑에 상륙시켜 대기시켜놓았다.또한 수많은 군대로 경성(서울)을 포위하였고 4 000여명의 경찰로 시내를 거미줄처럼 뒤덮었다.그와 함께 《치안유지법》을 비롯한 각종 악법을 발동하여 수백명을 체포하였다.

시위투쟁이 일어난 당일에는 중무장한 군경들을 내몰아 16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200여명을 체포구금하였다.

일제의 야수적만행에 의해 조국강토는 무고한 인민들의 피로 물들여졌다.

6.10만세시위투쟁참가자들에 대한 일제의 류혈적인 탄압은 조선민족말살정책의 연장으로서 놈들이 저지른 범죄들가운데서 극히 일부에 불과한것이다.

《조선사람은 일본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 《조선사람들은 혹가이도 아이누족처럼 멸족시키면 족하다.》, 이것은 사실상 일제의 조선민족말살론이였으며 식민지통치의 기본핵이였다.

일제는 조선강점 전 기간 전체 조선민족을 말살할 흉계밑에 대중적학살만행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조선민족말살을 노린 일제의 만행은 중일전쟁발발이후 더욱 로골화되였다.무려 840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을 유괴, 랍치, 강제련행하여 죽음의 전쟁판과 고역장들에 내몰았다.일제는 《지하대본영》과 비밀군사기지건설에 강제로 동원하였던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비밀보장》의 구실밑에 집단학살하거나 세균무기인체실험대상으로 삼는 극악한 살인범죄도 저질렀다.

일제의 만행중에서 20만명에 달하는 조선녀성들을 일본군성노예로 삼은것은 조선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서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상처를 남긴 특대형반인륜범죄이다.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는 오늘까지도 일제에 의해 강요당한 불행과 고통의 뼈아픈 상처가 아물지 않고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과거범죄를 부정하면서 과거청산의 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있다.

일본의 과거범죄는 세월이 흘렀다고 하여 무마될수 없고 지워질수도 없다.

지난날 우리 인민에게 피맺힌 원한을 남긴 일제의 특대형반인륜죄악의 대가를 철저히 받아내려는 우리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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