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5月 21st, 2010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대홍단군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신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대홍단군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오매에도 그리던 경애하는 장군님을 또다시 모시는 크나큰 영광과 행복을 받아안은 대홍단군은 이날 끝없는 감격과 환희에 휩싸여있었다.
조선로동당 량강도위원회 책임비서 김히택동지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기남동지, 부장들인 김경희동지, 장성택동지, 제1부부장들인 주규창동지, 리제강동지, 국방위원회 국장들인 현철해동지, 리명수동지가 동행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현지에서 대홍단군당위원회 책임비서 김동일동지, 대홍단군인민위원회 위원장 박현동지, 대홍단군농업경영위원회 위원장 원택범동지와 기관, 기업소의 책임일군들이 맞이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지펴주신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봉화를 높이 추켜들고 강성대국을 향하여 폭풍쳐 내달리고있는 대홍단군의 근로자들은 감자농사를 비롯한 당의 경제정책관철의 모든 전선에서 전례없는 앙양을 일으키고있다.(전문 보기)
북남관계를 풍지박산낸 남조선괴뢰패당의 죄악은 민족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것이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고발장-
남조선에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래 파국의 길로 줄달음쳐온 북남관계는 마침내 풍지박산의 운명에 처하였다.
괴뢰패당은 그 무슨 함선침몰사건조사결과요 뭐요 하며 우리를 걸고드는 일대 모략소동에 매달리면서 정세를 최악의 위기에로 끌고가고있다.
괴뢰패당의 모략책동은 북남관계를 파탄시키기 위한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도발이며 여론을 우롱하여 위기를 모면하고 당면한 《지방자치제선거》를 무난히 넘겨보려는 단말마적발악이다.
괴뢰패당의 광란적인 대결소동으로 북남관계는 완전페허로 되여 이제 남은것이란 아무것도 없게 되였으며 바야흐로 민족의 머리우에 전쟁의 재난까지 들씌워지게 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온 민족과 함께 괴뢰패당의 범죄적책동에 대한 치솟는 격분을 금치 못하면서 역적패당이 지금까지 북남관계를 어떻게 파탄시켜왔는가를 만천하에 폭로하고 그 죄악을 준렬히 단죄하기 위해 이 고발장을 발표한다.(전문 보기)
정 론 :: 무릉도원에 사과꽃이 폈다
사과꽃이 폈다!
화창한 봄을 맞아 일시에 망울을 터치며 가지마다, 그루마다 맑고 하얀 꽃잎을 활짝 펼쳤다. 하늘의 흰구름이 내려앉은듯, 바다가 통채로 꽃주단으로 바뀐듯 여기 《선군11경》이 사과꽃대절경을 이루었다.
주체조선의 존엄과 위용을 만방에 떨치시며 외국방문의 대장정을 단행하고 돌아오신 위대한 장군님께 드리는 천만군민의 축하의 꽃바구니인듯 류달리도 아름다운 황홀경을 펼친 이 장쾌한 화폭은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고있다.
며칠전에는 산기슭과 길가에 연분홍진달래바다가 펼쳐진데 이어 오늘은 그 진달래가 정히 감싸안아 피워올린듯 신비의 조화를 이루며 유난히도 눈부신 빛을 뿌리는 원흥의 사과꽃,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이 생겨 두번째로 보게 되는 이해의 사과꽃절경은 아름다움에서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장관이며 그것이 담고있는 깊은 뜻과 가슴뜨거운 사연에 있어서도 만사람의 심금을 세차게 울리고있다.(전문 보기)
반미반파쑈투쟁사에 빛나는 영웅적봉기
영웅적광주인민봉기 30돐이 되였다. 이날을 맞은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 조국통일을 위해 심장의 더운 피를 서슴없이 뿌린 광주항쟁용사들의 불굴의 투쟁정신과 위훈을 다시금 돌이켜보고있다.
광주인민봉기는 미제와 군사파쑈도당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였다.
1979년 《유신》독재가 종말을 고한 후 남조선에서는 새 정치, 새 생활에 대한 인민들의 지향과 열망이 급격히 고조되였다. 하지만 《12. 12숙군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군부깡패들은 1980년 봄 미제의 지령에 따라 높아가는 인민들의 민주화요구에 5. 17군사파쑈폭거로 대답해나섰다.
그것은 남조선에서 새로운 군부독재의 시작을 알리는 일대 파쑈광란이였으며 또 하나의 《정권》강탈음모였다. 그러나 그 어떤 폭압도 인민대중의 자주적지향과 의지를 막지 못하였다. 군부세력에 의해 반년나마 지속된 《계엄령》에 련이어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독재통치가 강화되자 남조선인민들은 드디여 대중적투쟁에 궐기하였으며 그것은 5월 18일 광주인민봉기의 드세찬 불길로 타올랐다. 더이상 정치적무권리와 억압을 강요당할수 없기에, 군사파쑈통치를 더이상 용납할수 없기에 광주의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압제자들을 반대하여 결연히 항쟁의 거리에 떨쳐나섰다.(전문 보기)
전민항쟁이 새겨주는 진리
남조선인민들의 반미반파쑈투쟁력사는 인민을 등진 파쑈독재체제는 그에 맞서는 완강하고 굴함없는 투쟁으로만 뒤집어엎을수 있다는 진리를 아로새기였다.
남조선에서 반미투쟁의 전환점으로 되였던 4. 19인민봉기는 식민지파쑈통치를 반대하고 민주화된 새사회를 안아오려는 남조선인민들의 강렬한 지향과 의지가 거대한 힘이 되여 리승만독재《정권》을 타도한 정의의 투쟁이였다.
8. 15해방과 함께 움트던 남조선인민들의 자주독립국가건설념원을 짓밟은 미제에 의한 망국적인 《단선단정》조작책동으로 생겨난 리승만독재《정권》의 경찰폭압통치는 그 류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중세기적인 암흑통치였다.
인민들의 울분은 범죄적인 《3. 15부정선거》와 마산의 김주렬학생에 대한 야수적인 학살만행을 계기로 마침내 독재《정권》을 뒤집어엎기 위한 대중적투쟁으로 폭발하였다. 격노한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비상계엄령》을 박차고 쓰러진 학우의 피로 물든 옷자락을 기폭처럼 날리며 결사항전을 벌리였다. 미제의 손때묻은 주구인 리승만역도는 인민들의 대중적항쟁에 견디지 못하고 끝내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고말았다. 하나로 뭉쳐 싸운 남조선인민들의 불굴의 투쟁은 친미독재《정권》타도라는 력사적인 첫 승리를 안아왔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