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동지의 략력
김기남동지는 주체18(1929)년 8월 28일 강원도 원산시의 부두로동자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김기남동지는 조국이 해방된 후 당과 수령의 품속에서 유능한 혁명인재로 자라나 오래동안 당중앙위원회의 중요직책에서 사업하면서 주체혁명의 줄기찬 전진과 양양한 미래를 위하여, 우리 국가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였다.
일찍부터 조국과 인민을 무한히 사랑하였으며 진취적이고 학구적이였던 동지는 새조국건설시기 민족간부양성기지와 외국에서의 학업과정을 거쳐 주체40(1951)년부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원, 학부장으로 사업하면서 후대교육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동지는 높은 정치적식견과 견결한 혁명적원칙성, 풍부한 지식과 고상한 품성을 지니고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였으며 주체49(1960)년부터 당중앙위원회 과학교육부 부부장, 당중앙위원회 국제생활사 부주필을 력임하면서 당의 과학문화정책을 구현하며 국제공산주의운동안에 대두한 수정주의와 좌경기회주의를 배격하고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한 리론선전사업에서 커다란 공적을 세웠다.
주체59(1970)년부터 《근로자》 부주필, 책임주필, 《로동신문》 책임주필의 중임을 지닌 동지는 당의 령도계승시기 우리 당의 혁명사상을 옹호하고 당의 유일적령도를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동지는 주체74(1985)년부터 당중앙위원회 선전부장, 비서, 당력사연구소 소장으로 사업하면서 당의 강화발전과 혁명대오의 사상적일색화를 위하여, 사회주의위업의 승리적전진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우리 조국앞에 엄혹한 시련이 겹쌓였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두리에 전체 인민을 더욱 굳게 묶어세우고 사상의 위력으로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수호하며 주체혁명위업의 순결한 계승을 굳건히 담보하는데 특출한 공헌을 하였다.
주체99(2010)년부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겸 선전선동부장, 고문의 중책을 맡아 수행한 동지는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시대에 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자라난 우리 당의 지도간부, 혁명의 원로답게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무한한 헌신성과 순결한 량심으로 받들어왔다.
동지는 주체65(1976)년 10월부터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위원으로, 주체99(2010)년 9월부터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주체105(2016)년 6월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사업하였으며 최고인민회의 제6기부터 제14기까지 대의원으로 선거되였다.
김기남동지는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앞에 세운 공로로 하여 공화국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과 김정일훈장,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을 모신 시계표창들과 로력영웅칭호를 비롯한 높은 급의 당 및 국가표창들을 수여받았다.
김기남동지는 주체113(2024)년 5월 7일 l0시 다장기기능부전으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
우리 당의 로세대혁명가인 김기남동지는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실성을 제일생명으로 간직하고 건국의 초행길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오랜 기간 어떤 시련속에서도 순간의 변심도 없이 한생을 주체의 혁명위업, 공산주의위업수행에 고스란히 바치였다.
우리 당의 사상과 리념을 불변의 신념으로 체질화하고 언제 어디서나 진실하고 고지식하며 겸허한 품성과 높은 실력으로 당과 수령을 가장 지극하고 열렬하게 받들어온 김기남동지의 생애는 참다운 충신, 혁명가적삶의 숭고한 귀감으로 된다.
김기남동지는 비록 서거하였으나 동지의 투철한 혁명정신과 고귀한 투쟁업적은 우리 당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있을것이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