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조일관계/朝日関係’ Category
일본을 해치는 진짜 위협은 무엇인가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12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
최근 전 일본수상 아베가 자민당의원들의 모임에서 우리의 미싸일《위협》을 운운하며 《적기지공격능력》보유는 응당한것이라고 력설하였다.
정치퇴물의 이 발작적인 망동은 대조선적대의식이 골수에 찬 군국주의광신자의 최후발악으로서 일본내 극우익보수세력이 재침야망실현에 더욱 발광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공인된바와 같이 전범자의 후손으로서 간교성과 호전성이 혈통으로 유전되고 극우익반동사상이 체질화된 아베는 집권전기간 대조선적대시를 국책으로 내세우고 조상들이 당한 패전의 앙갚음에 이를 갈며 복수주의적인 재침책동에 몰두하여왔다.
군국주의상징인 《기미가요》를 고래고래 부르는것으로 새 정부의 첫 업무를 시작하며 이것이 《일본을 되찾는 첫걸음이다.》라고 내뱉아 세계를 경악케 하였던 아베이다.
아베집권시기 전범국,패전국의 지위를 전면부정하는 헌법개악이 공공연히 집요하게 추진되고 《안전보장관련법》채택 등 해외침략의 법적토대가 마련되였으며 《자위대》가 간과할수 없는 전쟁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와 함께 과거죄악을 정당화하는 력사외곡책동이 력대 그 어느 정권때보다 더 로골적으로 감행되고 반공화국,반총련책동이 극도에 달하였으며 일본사회전반이 국수주의,복수주의 탁류속에 휘말려들었다.
아베의 군국주의광증은 갈수록 더해지고있다.
재임기간 세상의 눈초리가 무서워 자제하던 야스구니진쟈참배를 퇴임후 3일만에 전격 단행하고 그로부터 1개월만에 또다시 찾아가 특급전범자들을 찬미한 사실,자기가 회장으로 있는 보수계의원조직의 활동을 재개하고 현 스가내각의 헌법개정움직임과 위험한 군국화책동을 적극 부추기고있는 사실 등은 그 대표적실례이다.
현실은 아베를 위시로 한 일본극우익세력이 여전히 침략전쟁으로 아시아대륙을 짓밟던 과거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대동아공영권》실현의 어리석은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이번에 상대국의 령토내에 있는 미싸일기지를 선제적으로 공격,파괴하는 《적기지공격능력》보유가 응당하다고 광기를 부리며 우리의 《위협》에 대해 떠들어댄것도 군국화와 해외팽창책동의 명분을 얻으려는 흉심의 발로이다.
얼마전 인터네트에는 《일본에서는 아직도 제2차 세계대전이 지속되고있다. 때문에 아시아나라들이 모두 일본을 싫어한다.》는 글이 실렸다.
지금 일본언론들과 야당들은 《공격적인 무기의 보유는 자위를 위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벗어나는것으로 된다.》,《주변국들의 군비경쟁을 재촉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는 <안전보장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우려도 있다.》고 그 위험성과 위헌성을 까밝히면서 반대하고있으며 절대다수의 일본국민들도 《아베정치의 계승을 제창하고있는 스가내각은 잘못된 부분은 넘겨받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해나서고있다.
일본극우익세력의 위험한 망동은 섬나라를 통채로 파멸의 재앙속에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이다.
일본을 해치는 진짜 위협은 바로 아베와 같은 극우익정치세력의 무모한 대결광증이다.(전문 보기)
불법비법의 문서로 식민지지배를 실현한 만고죄악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일제가 날강도적인 《을사5조약》을 조작하고 우리 나라에 대한 파쑈적인 식민지통치를 실시한 때로부터 어언 115년이 된다.
그날은 1905년 11월 17일이였다.
무력행사에 의한 방법으로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을사5조약》을 날조하여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전락시켰으며 우리 인민에게 40여년동안 치욕스러운 노예살이를 강요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강점하고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를 실시하였으며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들씌웠습니다.》
《을사5조약》은 철저히 조선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강점정책의 산물이였다.
《명치유신》으로 정권을 잡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곧 악명높은 《정한론》을 제창하면서 조선에 대한 침략을 강화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1875년에 강도적인 《운양》호사건을 도발하였으며 그 이듬해에는 조선봉건정부를 강박하여 침략적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다.그후 청일전쟁, 로일전쟁 등을 통하여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틀어쥘수 있는 조건을 확립한 일제는 《을사5조약》을 날조하는 방법으로 우리 나라를 식민지화하려 하였다.
일제가 날조한 《을사5조약》은 아무러한 법적효력도 가지지 못한 비법문서, 협잡문서이다.
몇해전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1935년에 국제련맹이 《조약법에 관한 보고서》를 내면서 국제조약체결력사상 효력이 없는 조약 3개가운데서 하나로 《을사5조약》을 꼽았다.
이 보고서는 국제련맹의 《국제협약 법전화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였는데 1963년 유엔국제법위원회의 《강제나 협박에 의한 조약의 비준, 승인, 수용 등은 무효》라는 보고서로 이어졌다고 한다.이것은 《을사5조약》이 효력을 가질수 없는 비법적인 문서라는것이 오래전부터 국제적으로 공인되여있었다는것을 말해준다.
국제조약은 본질에 있어서 주권국가들사이의 자원적인 의사합의이다.근대시기의 국제관습법과 현대국제법인 《조약법에 관한 윈협약》에서는 다같이 국가대표자에 대한 강요로 체결된 조약은 무효라고 규정하고있다.
일제는 이러한 국제법적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고 《을사5조약》을 군사적위협과 무지막지한 강박의 방법으로 날조하였다.
1905년 10월 27일 일본정부가 채택한 《한국보호권확립실행에 관한 각의결정의 건》에서는 조선봉건정부가 《보호조약》을 거절하는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서 일방적으로 한국에 보호권을 확립한다는것을 통고》한다고 결정하였다.
일제는 초기에 《을사5조약》을 《합법적인 조약》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하지만 고종황제의 반대에 부딪쳐 자기의 더러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여기서 기본은 조선봉건왕조의 최고대표자인 고종황제의 비준을 받지 못한것이다.
일반적으로 중요조약은 반드시 전권위임장과 국가대표자의 비준서를 필요로 하는 조약비준형식을 취하여야 한다.
이것은 근대시기 국제조약체결형식에서 보편적인것이였다.
위협과 강박만으로는 고종황제와 정부대신들의 의지를 꺾을수 없다고 생각한 일제는 군사적힘을 동원하기 시작하였다.많은 무력으로 황궁안팎을 겹겹이 포위한 침략자들은 궁앞에서 군사훈련까지 벌려놓았다.이런 분위기속에서 11월 17일 황궁에서 열린 《조약》문제에 관한 어전회의에서 조선봉건정부의 대신들은 《조약》의 체결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다.
협상이 결렬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받은 일본군국주의의 우두머리들중의 한놈인 이또 히로부미는 하세가와 조선강점군 사령관과 사또헌병대장을 데리고 궁궐로 들어가 정부대신들을 강제로 옆방에 모여놓고 《조약》에 찬성할것을 강박하였다.
여러 대신이 반대의사를 표명하자 이또는 그들을 로골적으로 위협, 강박하였으며 지어 옹고집을 부리면 죽여버리라고 고아댔다.(전문 보기)
민족적천대와 멸시를 받던 지난날을 잊지 말라 -중구역 경상동 24인민반에서 사는 리정규전쟁로병이 들려준 이야기-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얼마전 우리는 한 전쟁로병을 만나기 위해 창전거리로 향하였다.풍치수려한 대동강기슭에 병풍식, 계단식으로 일떠선 고층, 초고층살림집들이 한폭의 그림같이 들어앉은 창전거리에 이른 우리는 한 살림집에 도착하였다.
문이 열리는 순간 100살을 가까이한 로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가 바로 우리가 만나려고 하는 리정규전쟁로병이였다.
비록 머리에 흰서리가 짙게 내리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였어도 그는 정정해보였다.방에 들어선 우리의 눈에 제일먼저 안겨온것은 리정규로인이 여러차례나 전국로병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들과 훈장이 가득한 군복이였다.
눈길을 떼지 못하는 우리를 바라보던 그는 어서 앉으라고 자리를 권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전쟁로병이라고 저를 영광의 자리들에 내세워주시였습니다.
옛날같으면 나같은 평백성이 이런 사랑과 은정을 받아안을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일제강점시기에도 살아보았습니다.그때는 정말 사람이 아니였습니다.왜놈들은 우리 조선사람들을 짐승보다도 못하게 취급하면서 갖은 모욕을 주고 천대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뼈아픈 일들을 잊을수 없습니다.》
리정규전쟁로병은 회억에 잠겨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자기가 겪은 해방전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근 반세기동안이나 우리 인민에게 식민지노예생활을 강요하였습니다.》
충청북도에서 살던 리정규는 1930년대에 부모가 피땀흘려 마련해준 돈으로 소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였다.학교를 다니는 과정에 그는 나라를 빼앗긴 인민의 설음과 고통이 어떤것인지 뼈저리게 느끼였다.
간악한 일제는 우리 인민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조선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일본말을 배워주었으며 이름도 일본식으로 고치도록 강요하였다.이에 불응하는 조선학생들에 대하여서는 수업에 참가시키지도 않고 혹독한 벌을 가하였다.리정규도 조선말을 했다는 죄 아닌 《죄》로 온종일 책상을 들고 벌을 선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왜놈들은 수업이 끝나면 일본아이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조선아이들만 학교뒤에 있는 야산으로 끌고올라가 그곳에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서 나무들을 자르고 뿌리를 들춰내는 힘든 일을 시키였다.왜놈교원들은 연약한 아이들이 힘들어 쉬는것 같으면 회초리로 후려갈기군 하였다.조선아이들은 여러 시간 일을 하고 날이 어두워져서야 지친 몸으로 집에 가군 하였다.
어느날 학교마당에서는 운동회가 열리였다.운동회에서는 달리기경기가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조선교원과 일본교원사이에 진행되게 되였다.
왜놈들은 경기를 일본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조선민족의 《렬등성》을 보여주어 조선학생들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는데 써먹으려고 획책하였다.그러다나니 체육경기는 자연히 민족간 대결로 번져지게 되였다.(전문 보기)
인간의 륜리마저 줴버린 패륜아들의 망동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11월 14일발 조선중앙통신)
섬나라족속들의 파렴치성이 국제사회의 분노와 경악을 자아내고있다.
일본외무성은 최근 홈페지에 성노예문제와 관련한 견해를 게재하면서 자국이 녀성들을 성노예로 만든 사실이 없다고 강변하였다.
지어 《강제련행》,《성노예》와 같은 표현들과 《20만명》 또는 《수십만명》이라는 수자 등은 력사적사실에 기초하고있다고 말하기 어려운것이라는 뻔뻔스러운 주장을 늘어놓았다.
이것은 일제에 의해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겪은 우리 나라 녀성들뿐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녀성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며 인간의 륜리마저 줴버린 패륜아들의 후안무치한 망동이다.
일본국가와 군부가 조직적으로,계획적으로 감행한 특대형반인륜범죄인 일본군성노예범죄는 결코 지워버릴수도 묻어버릴수도 없는 력사의 진실이다.
20만명에 달하는 조선녀성들을 비롯한 수많은 녀성들을 국가조직적으로 강제랍치,유괴하여 침략전쟁터로 끌고다니며 무참히 유린하고 대량학살한 반인륜적인 죄악은 이미 피해자들의 증언과 력사기록들에 의해 명백히 드러났다.
2018년에 공개된 《맥밀란보고서》와 1944년 9월 15일 일제침략군이 중국 운남성에서 성노예생활을 강요해온 조선녀성들을 야수적으로 살해한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자료 그리고 지난해 12월 일본내각관방이 새로 수집한 일본군성노예범죄에 군부와 외무성이 관여하였다는 23건의 공식문서,구일본군이 23개 나라 및 지역에 성노예녀성들을 가두었던 장소들을 표시한 지도 등은 인륜도 수치도 모르는 일본의 도덕적저렬성과 철면피성을 적라라하게 드러내보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며칠전에도 네데를란드의 한 언론인이 제2차 세계대전당시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서 조직적으로 도이췰란드녀성들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론박할수 없는 사실자료를 밝히면서 《일본정부가 도이췰란드를 포함해 더 많은 국가의 녀성들에 대해 전쟁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털끝만 한 죄의식은커녕 유엔총회무대에서까지 과거성노예범죄를 포함한 특대형반인륜범죄자료가 《무근거하고 도발적》인것이라고 줴쳐대며 완전부정해나서고있다.
일본이 죄악의 력사를 가리워보려고 발악할수록 반인륜범죄자로서의 추악한 몰골은 더욱 부각될뿐이다.
우리 민족과 국제사회는 인류앞에 지닌 법적,도덕적책임을 한사코 회피하는 전범국의 망동을 전세계녀성들의 이름으로 반드시 심판할것이다.(전문 보기)
조선학교차별반대집회 // 朝鮮学校差別反対集会 2020年11月21日(土)14:00 文京区民センター
チュチェ109(2020)年 11月 14日 ウェブ・ウリトンポ
朝鮮学校差別反対集会
「官民ヘイトの中で私たちはどう闘うのか」
2020年 11月21日(土) 14時から(開場13時半)
文京区民センター 3A会議室(文京区本郷4-15-14)
「高校無償化」からの朝鮮学校排除が、発足間もない第二次安倍内閣により確定されてしまったのが2013年2月。同年には「ヘイトスピーチ」という言葉が流行語大賞にノミネートされるほど普及しました。他方で、地方自治体レベルでは朝鮮学校への補助金の停止・大幅減額が、政府だけでなく排外的市民にも後押しされつつ進行。この動向は「官」の差別と「民」の差別の連動を反映していないでしょうか。
この官民によるヘイトの共鳴、そして「幼保無償化」制度における外国人幼稚園排除、さらにはコロナ禍における学生支援緊急給付金からの朝鮮大学校排除と続く差別の連鎖を断つためには、各地に根差すより多くの心ある「民」により、ヘイトをする「民」を圧倒し、「官」を包囲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本集会はそのヒントを探る場、また各地の経験を共有する場とします。オンライン参加も可能です。ご参集ください。
■集会内容
◎記念講演「草の根ヘイトの実態」
安田浩一さん
(ノンフィクションライター)
1964年生まれ。週刊誌記者を経て、2001年よりフリー。
2012年『ネットと愛国 在特会の「闇」を追いかけて』(講談社)で講談社ノンフィクション賞、日本ジャーナリスト会議賞受賞。
2015年『ルポ 外国人「隷属」労働者』(『G2 vol.17』)で大宅ノンフィクション賞を受賞。
主な著書に『ルポ差別と貧困の外国人労働者』(光文社新書)、『ヘイトスピーチ』(文春新書)、『沖縄の新聞は本当に「偏向」しているのか』(朝日新聞出版)、『「右翼」の戦後史』(講談社現代新書)、『団地と移民』(角川書店)、『愛国という名の亡国』(河出書房新社)など。
◎各地域からの報告
- 立川町田朝鮮学校支援ネットワーク・ウリの会
- 朝鮮学校とともに・練馬の会
- 東京朝鮮第六幼初級学校友の会
- 東京朝鮮第四幼初中級学校を支援する区民の会(準)
他
■参加方法について
【オンライン(ZOOM)参加をご希望の方】
集会前日までに、下記の申込ウェブフォームからお申し込みください。
適宜、ZOOMでの参加方法を通知いたします。
【会場にお越しの方へ】
感染病対策のため会場入り口での消毒剤の準備はしておりますが、マスク等は各自ご用意ください。体調のすぐれない方、発熱のある方は参加をご遠慮ください。
■参加費について
※会場参加もオンラインも、なるべくカンパをお願い致します。
カンパ 1口500円(複数口歓迎)
振込先:
▶ゆうちょ銀行 振替口座 00190-9-473007 「高校無償化」連絡会
—
mushokashien@yahoo.co.jp
TEL: 080-3930-4971
FAX: 03-3819-0467
https://mushoka2020.blogspot.com/
※ 旧ブログ 東京朝鮮高校生の裁判を支援する会
http://mushokashien.blog.fc2.com
소식 : 천추에 용납못할 일제의 조선국권강탈범죄
11월 17일은 일제가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 공포하여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때로부터 115년이 되는 날이다.
세칭 《을사보호조약》이라고 하는 이 《조약》은 1904년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위해 로일전쟁을 도발하고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일제가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하는데 간판으로 써먹은 범죄문서였다.
일본외무성이 조선의 대외관계를 감독, 지휘하며 조선정부가 일본정부의 중개없이 그 어떤 조약도 맺지 않는다는것 등 5개 조항으로 되여있다고 하여 《을사5조약》이라고 한다.
일찌기 조선을 집어삼킬 야망을 품고 그 실현을 위해 날뛰던 일제는 1905년 11월 17일 보병과 기병, 포병 등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하고 강압적으로 조약을 날조하였다.
조선침략의 원흉 이또 히로부미는 초안을 내놓고 조약체결을 강박하였으나 고종황제와 대신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자 조선정부의 대신들을 한사람씩 지명, 심문하고 위협, 공갈한 끝에 외부대신의 인장까지 훔쳐내여 제멋대로 찍고 《조인》을 선언하였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법적근거》의 하나로 삼은 《을사5조약》은 국제법상의 요구와 원칙을 란폭하게 유린하면서 일방적으로 날조, 공포한 당초부터 불법무효한 문서였다.
조선의 최고주권자였던 황제의 사전승인도, 수표도, 옥새날인도 받지 못하였을뿐아니라 명칭조차도 없는 조약아닌 이 《조약》을 내대고 일제는 밖으로는 외교권을 빼앗았으며 안으로는 《통감》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사5조약》이 조작된지 한세기, 일제의 식민지강점통치가 종식된지 75년이 넘는 오늘에 와서까지 일본당국자들은 불법무도의 《을사5조약》을 내걸고 조선강점의 《합법성》에 대하여 떠들어대고있다.
장장 40여년간의 식민지통치기간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100여만명이나 무참히 학살하고 20만명의 녀성들을 일본군성노예로 무참히 유린하였으며 840만여명을 랍치, 련행하여 노예로동을 강요하고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조선민족말살정책을 강행하여 우리의 말과 글 지어 성과 이름까지 빼앗으려고 날뛰였으며 귀중한 문화재부들과 자원을 파괴략탈한 일제.
가장 야만적이고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식민지파쑈통치로 특대형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일제와 같은 침략자, 살인마, 흡혈귀, 략탈자들을 력사는 알지 못하고있다.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조선의 국권을 빼앗고 우리 인민에게 식민지노예의 쓰라린 운명을 강요한 일제의 죄악의 력사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지워질수 없다.
우리는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일본의 만고대죄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을것이며 천추만대를 두고 원한의 대가, 피의 대가를 반드시, 반드시 받아내고야말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로정수
절대로 용납될수 없는 극악한 야수적만행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며칠전 연안군에 대한 취재길에서 우리는 일본군성노예피해자 강길순할머니의 며느리가 소아리에서 살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우리와 만난 리일군은 며느리인 서희순녀성의 집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시어머니는 왜놈들에게 꽃다운 청춘을 무참히 짓밟힌 치욕으로 하여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여기 소아리에 눌러앉게 되였습니다.그후 자기가 일본군성노예피해자라는 사실을 오래동안 숨기고 살았습니다.그러다가 일본반동들이 과거의 성노예범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덮어버리려고 책동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도 분노하여 사실을 죄다 터놓았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뗀 서희순녀성은 강길순할머니가 강요당한 성노예살이에 대해 자초지종 이야기해주었다.
전라북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난 강길순은 어려서부터 삯빨래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구장놈을 앞세우고 마을에 나타난 일본침략군놈들은 다짜고짜로 강길순을 자동차에 실었다.
20여명의 마을처녀들이 부산으로 끌려갔다.그곳에는 스무살안팎의 조선녀성들이 수백명이나 있었다.
일본침략군장교놈이 그들앞에 나서서 《이제부터 절대복종하라.너희들은 이젠 팔자를 고치게 되였다.잘 먹고 잘 입고 돈을 많이 벌수 있는 곳에 가게 된다.》고 지껄여댔다.
그리고 모두 배에 오르라고 명령하였다.
그때에야 강길순을 비롯한 처녀들은 자기들이 헤여나올수 없는 운명의 나락에 빠져들게 되였다는것을 직감하고 울며불며 야단하였다.
하지만 삼엄한 경계속에 놓인 그들은 도망칠수 없었다.
수백명의 조선녀성들을 실은 배는 밤낮으로 항행하였다.배가 가닿은 곳은 인도네시아의 어느 한 항구였다.
놈들은 조선녀성들을 10여명씩 자동차에 갈라태우고 숲속으로 끌고갔다.
강길순녀성이 당도한 곳은 길게 지은 단층건물이였다.그곳이 바로 일본군《위안소》였다.여기에서 강길순은 12명의 처녀들과 함께 성노예살이를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남자들과 마주서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처녀들에게 놈들은 짧은 앞치마만 두르게 하였다.낮에는 보통 20~25명이나 되는 병사놈들이, 밤에는 3~4명의 장교놈들이 달려들었다.
어느날 강길순은 기진맥진하여 일어나지도 못하고있었다.그런데 또 한놈이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그놈은 강길순이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고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때려 앞이발을 부러뜨렸다.강길순은 물에 빠져죽을 결심을 품고 도망치다가 놈들에게 붙잡혀 죽도록 매를 맞고 쓰러졌다.
놈들은 그에게 찬물을 끼얹었다.정신을 차리기는 했으나 아직 가쁜숨을 몰아쉬는 그를 놈들은 방으로 끌고들어가 또다시 릉욕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었던 다른 처녀들도 죽음을 각오하고 놈들을 물어뜯기도 하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놈들은 그들을 《위안소》마당에 끌어다놓고는 다 보는 앞에서 토막쳐 죽이기도 하고 몸에 말뚝을 박아 죽이기도 하였다.지어 독뱀들까지 풀어놓았다.독뱀한테 물리워 이리저리 딩굴며 비명을 지르다가 숨지는 그 참상은 차마 눈뜨고 볼수 없었다고 한다.(전문 보기)
해외팽창의 서막을 열어보려는 위험한 망동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11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
얼마전 일본방위상이 기자회견에서 2030년대에 전개할 다음세대 스텔스전투기개발을 꾸준히 진행할것이라고 공표하였다.
영국신문 《인디펜던트》는 F-X로 알려진 다음세대 전투기개발에 대해 일본정부는 《중국과 북조선의 증대되는 위협에 대처할수 있는 군사력을 키우는 사업》이라고 주장해나섰으며 이를 위해 방위성이 2021년 예산에서 5억 5 600만US$를 요구하였다고 밝혔다.
우리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구실밑에 일본이 다음세대 스텔스전투기개발에 박차를 가하고있는것은 무력현대화를 다그쳐 대조선재침으로 해외팽창의 서막을 열어보려는 위험천만한 군사적망동이다.
력사적으로 일본은 침략과 전쟁,략탈을 유일한 생존방식으로 삼아온 범죄국가이다.
지난 세기 일본이 감행한 모든 정복전쟁들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한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민족을 식민지노예화하기 위한 침략정책의 산물이였다.
패망후에도 일본의 위정자들은 또다시 대륙에로 침략의 마수를 뻗쳐 《대동아공영권》망상을 실현하기 위해 군국화의 길로 줄달음쳐왔다.
오랜 기간 집요하게 추진된 군사대국화책동으로 오늘 일본의 군사력은 이미 본토방어수준을 릉가하여 완전한 공격무력으로서의 뚜렷한 질적,량적변화를 이룩하였다.
올해에 들어와서만도 《자위대》에 《우주작전대》와 《함대정보반》을 내오고 싸이버방위부대편성을 위한 교육전문부대와 전자전전문부대 등 새로운 부대창설에 열을 올리고있다.
군사기술적지표들이 새롭게 향상된 미싸일들을 렬도의 요충지들에 집중전개하는 한편 외딴섬방위와 탈환 등의 기만적인 명분아래 각종 군사연습을 벌려놓고 실전능력을 높이고있다.
다음세대 전투기와 공격과 방어가 가능한 2중용도의 군사장비들의 개발도입을 비롯하여 일본이 추구하는 무기체계들은 명백히 원거리공격수단으로서 침략전쟁장비들이다.
선제공격위주의 미국산 무장장비구입과 신형잠수함의 진수,《적기지공격능력》보유를 위한 무력증강,정례화된 해외진출 등은 《전수방위》를 근간으로 하는 일본헌법과 전범국의 지위를 규제한 국제협약들에 대한 악랄한 도전으로 된다.
《침략당하지 않을만큼의 공격력을 갖추는것이 곧 방위력》이라는 사무라이후예들의 날강도적인 론리는 절대로 통할수 없다.
일본이 끝끝내 대조선재침의 포성을 울린다면 그것은 더욱 수치스러운 패망을 선고하는 장송곡으로 될것이다.(전문 보기)
조선학교차별책동에 편승한 일본법원의 판결에 항의
일본 후꾸오까조선학원과 규슈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 학부모를 비롯하여 도꾜, 교또, 오사까, 히로시마, 아이찌, 효고, 야마구찌의 재일동포들과 시민들이 10월 30일 일본정부의 조선학교차별책동에 편승한 후꾸오까고등재판소의 판결에 항의하였다.
이날 후꾸오까고등재판소는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조선고급학교를 제외한 일본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후꾸오까조선학원과 규슈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졸업생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당국의 차별적이며 부당한 판결에 분노한 후꾸오까조선학원과 규슈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졸업생들은 즉시 기자회견을 가지였다.
그들은 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지닌 재판소가 아이들의 배울 권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일본정부의 차별정책에 적극 가담해나섰다고 하면서 법원당국을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한 문제는 재일조선인학생들을 과녁으로 삼은 극히 위법적인 처사라고 그들은 까밝혔다.
그들은 법원당국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정부의 조선학교차별책동에 편승하여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고 단죄하였다.
기자회견을 끝마친 다음 그들은 집회를 가지였다.
도꾜, 교또, 오사까, 히로시마, 아이찌, 효고, 야마구찌의 재일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이 여기에 합세하였다.
발언자들은 후꾸오까고등재판소의 이번 판결을 통해 민족교육을 말살하려는 일본정부의 속심을 다시한번 똑똑히 알게 되였다고 주장하였다.
일본의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책동이 철회될 때까지 투쟁할것이라고 그들은 강조하였다.
집회참가자들은 《조선학교차별 반대!》 등의 구호를 웨쳤다.
이날 후꾸오까조선학원과 《조선학교무상화실현 후꾸오까련락협의회》는 후꾸오까고등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항의성명들을 발표하였다.(전문 보기)
소식 : 조선동해는 우리 나라 바다의 고유한 명칭
얼마전 18세기 영국에서 조선동해를 《조선해》(Sea of Korea)로 표기하여 제작된 세계지도가 또다시 세상에 공개되였다.
시원적으로 우리 나라의 동해를 두고 《동해》, 《조선해》, 《조선동해》로 표기하고 불러온데 대한 또 하나의 객관적인 증빙자료이다.
우리 민족은 일본국가가 형성되기 썩 이전에 벌써 울릉도와 독도를 령유하고 동해의 섬들에 정착생활을 하면서 조선동해를 항해정복하였다.
우리의 선조들이 예로부터 조선과 일본사이의 바다를 조선동해로 서술하고 표기하여온 력사자료들은 수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우리 나라의 오랜 력사문헌자료들인 1145년의 《삼국사기》와 13세기말에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조선동해를 가리켜 《동해》또는 《조선해》로 서술하였다.
일본사람들자신도 《조선해》로 표기된 지도를 만들어 리용하였다.
이미 알려진것처럼 일본에서 1794년에 만든 아시아지도와 1810년에 제작되여 쓰인 세계지도 등은 그것을 말해준다.
《조선해》의 표기가 《일본해》로 바뀌기 시작한것은 일제의 조선침략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04년 로일전쟁직후부터였다.
당시 조선의 출판보도권을 강탈한 일제는 초기에 조선근해는 《조선해》, 일본근해는 《일본해》로 갈라 표기하는 교활한 술책에 매달렸다.
1910년 《한일합병》을 날조하고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 말과 글을 빼앗고 모든 인적, 물적자원을 깡그리 략탈해갔으며 문화와 지어는 조선의 고유한 바다명칭까지 말소해버리였다.
이렇듯 《일본해》표기는 일본의 완전한 날조품으로서 조선강점정책과 식민지통치의 범죄적산물이다.
조선동해의 명칭을 정확히 표기하는것은 단순한 지명상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일제의 조선침략과 강점통치에 의하여 외곡날조된 력사를 바로잡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력사적정통성으로 보나, 지명학적견지에서 보나 조선동해는 우리 나라바다의 고유한 이름이며 더이상 《일본해》로 외곡되여서는 안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민경무
[사진과 글] : 사진에 비낀 남녘의 반일함성
주체109(2020)년 10월 28일 《우리 민족끼리》
최근 남조선에서 일본반동들의 파렴치한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는 각계층 인민들의 투쟁이 세차게 벌어지고있다.
아래의 사진을 보라.
사진은 지난 16일 6. 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우리 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을 비롯한 단체들이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앞에서 일본당국의 조선학교차별을 반대하는 1만명 국제선언발표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국제선언은 일본정부가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는것에 항의하여 이를 중단할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지난 4월 13일부터 시작된 국제선언서명에는 10월 16일(당시) 939개 단체와 세계 각국의 1만 1 531명이 참가하였다.
선언참가자들은 《교과서문제, 력사외곡문제, 독도문제, <위안부>문제, 소녀상문제 등 모든것에서 일본은 사죄하지 않고 추태를 부리고있다.》, 《일본이 취하고있는 행동은 너무 추잡하고 비겁하다.》, 《일본정부의 조선학교차별은 치졸한 행위이며 민족교육을 말살하려는 로골적인 탄압이다.》고 하면서 일본에 대한 치솟는 분노를 표시하였다.
일본의 저질적이고 파렴치한 속통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것이 하나도 없다.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마저 빼앗으면서 우리 민족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려고 미쳐날뛰던 과거 일제의 야수적인 만행은 오늘도 우리 민족에게 천추만대의 한으로 남아있다. 그 원한과 슬픔의 상처는 절대로 지울수도 아물수도 없다.
그런데 오늘도 일본이 과거죄악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커녕 더욱 오만방자하고 뻔뻔스럽게 놀아대고있으니 어찌 격분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일본의 파렴치한 대조선적대시정책은 세기를 두고 쌓여온 우리 민족의 원한과 울분, 단호한 징벌의지만을 더욱 백배해줄뿐이다.
지금 일본은 많은 나라들로부터 신뢰가 아니라 의심과 배격을, 존중이 아니라 증오와 지탄을 받고있다.
《적반하장 일본정부 규탄한다!》, 《일본은 조선학교차별을 중단하라!》, 《일본은 과거청산에 적극 나서라!》…
일본반동들이 분별을 잃고 파렴치하게 놀아댈수록 북과 남, 해외 온 민족의 반일투쟁기운은 날로 더욱 거세여질것이다.(전문 보기)
주체사상과 자주, 평화를 위한 토론회 일본에서 진행
조선로동당창건 75돐에 즈음하여 주체사상과 자주, 평화를 위한 토론회가 10일 일본 도꾜에서 진행되였다.
주체사상국제연구소와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지지 일본위원회, 일본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 전국련락회의 공동주최로 진행된 토론회에는 일본의 주체사상연구조직, 일조우호단체 인사들이 참가하였으며 총련일군들이 초대되였다.
토론회에서는 먼저 라몬 히메네스 로뻬스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장, 호쎄 프란씨스꼬 아길라르 불가렐리 라틴아메리카주체사상연구소 명예리사장, 하리쉬 굽따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 리사장, 유하 끼엑씨 유럽지역 주체사상연구회 부리사장, 앙드레 로헤껠레 깔론다 아프리카지역 주체사상연구위원회 서기장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의 주체사상연구조직들과 인사들이 보내여온 축하동영상편집물들이 방영되였다.
또한 조선사회과학자협회와 에드몽 쥬브 유럽지역 주체사상연구회 리사장과 마떼오 까르보넬리 서기장 그리고 일본인사들의 축전이 소개되였다.
이어 발언들이 있었다.
남승우 총련중앙상임위원회 부의장은 조선로동당의 자랑스러운 75년력사에 대하여 언급하고 주체사상신봉자들에게 련대성을 표시하였다.
히모리 후미히로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지지 일본위원회 의장은 조선로동당의 력사는 인민들과 함께 부닥치는 난관들을 극복하며 사회주의건설을 전진시켜온 빛나는 력사이라고 하면서 조선인민의 투쟁을 지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마사지 일본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 전국련락회 공동대표는 조선로동당은 수령의 사상을 실현하며 인민대중의 자주위업과 온 세계의 자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당이라고 찬양하고 자주시대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보급을 더욱 힘있게 전개해나가자고 호소하였다.
박명 조선대학교 교수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고전적로작 《인민대중에 대한 멸사복무는 조선로동당의 존재방식이며 불패의 힘의 원천이다》 의 기본내용을 해설하였다.
그는 김일성주석과 김정일령도자, 김정은위원장을 높이 모시고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삼고있는 여기에 조선로동당의 불패성의 요인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 련이어 들이닥친 자연재해로 하여 우리 나라가 혹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수도의 당원들이 재해지역으로 달려나가 복구전투를 벌리고있는 사실을 언급하고 75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조선로동당과 인민대중사이의 혼연일체는 더욱 강화되였다고 격찬하였다.
우리 당이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철저히 구현해나가고있는데 대한 다이라 겡이찌 오끼나와대학 명예교수의 토론에 이어 가마꾸라 다까오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가 발언하였다.
그는 전세계를 휩쓰는 대류행전염병으로부터 국가와 인민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나라가 철저한 방역체계와 질서를 견지해나가고있는데 대하여 소개하였다.
자립적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에 기초하여 경제건설을 다그쳐나가는 조선의 현실은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정당성을 실증해준다고 하면서 그는 주체사상을 변함없는 신조로 삼고 꿋꿋이 걸어나가자고 호소하였다.(전문 보기)
소식 : 국제사회에 대한 정면도전, 도덕적저렬성의 극치
지난 9월 28일 도이췰란드의 수도 베를린에 일본군성노예소녀상이 설치되였다.
문제로 되는것은 일본내각관방장관을 비롯한 당국자들이 이에 덴겁하여 《철거를 요구하려 한다》느니, 《각이한 관계자들에게 접근하여 일본의 립장을 설명하는 등 작용을 가하려 한다》느니 하면서 소녀상의 철거를 위해 안달복달하고있는것이다.
일본군성노예소녀상으로 말하면 일본의 극악한 성노예범죄를 절대로 용서치 않으려는 광범한 국제사회의 의지의 반영이다.
일본의 행위는 국제사회에 대한 정면도전일뿐아니라 보편적인 녀성들의 인권을 또다시 해치는 후안무치한 행위, 도덕적저렬성의 극치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 일본군성노예범죄의 전모가 파헤쳐진 속에 1993년 당시 일본내각관방장관인 고노가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한바 있다.
세계전쟁사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일본의 성노예강요행위는 그 고안으로부터 실시에 이르기까지 철두철미 정부와 군부의 직접적인 관여밑에 하나의 국가정책으로 실시된 천인공노할 녀성인권유린범죄이다.
1938년 3월 4일 일본륙군성 법무과가 작성하고 륙군참모총장 이마무라와 법무국장 우메즈가 결재인장까지 찍은 《군위안소 종업부모집에 관한 건》, 1942년 3월 군《위안소》관계업무를 위하여 륙군성의 기구를 개편할데 대한 《천황》의 《칙령》 300호, 이전 대만주둔 일본군사령관이 수상 도죠에게 성노예관리에 필요한 인원을 보충해줄것을 요청한 1942년 3월 12일부 전시전보 등 수많은 자료들과 동영상들이 끊기지 않고 공개되고있는 사실들은 그것을 명백히 립증해주고있다.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에 생존하고있던 수많은 성노예피해자들이 한생의 원한을 풀지 못한채 일본을 저주하며 절통하게 눈을 감고있는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수십만의 녀성들을 랍치련행하여 성노예생활을 강요한 범죄사실에 대해 인정조차 하지 않고 교과서들에서까지 지워버린 일본이 과연 무슨 립장을 국제사회에 설명하겠다는것인가.
그래 일본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들에서 《녀성인권옹호》를 입에 올릴 자격이나 체면이 있는가.(전문 보기)
변함없는 대조선재침야망의 집중적발로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10월 20일발 조선중앙통신)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뀔수록 일본반동들의 령토강탈야망은 더욱 집요해지고있다.
최근 령토문제를 담당하고있는 일본국가공안위원장이라는자가 취임후 처음으로 독도를 저들의 《고유한 령토》로 주장하는 자료들이 전시되여있는 《령토주권전시관》을 돌아치면서 독도강탈기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
이것은 섬나라족속들의 변함없는 대조선재침야망의 집중적인 발로로서 절대로 용납할수 없다.
올해에만도 일본반동들은 저들의 령토야욕을 정당화하기 위해 꾸려놓은 《령토주권전시관》을 대폭 확장해놓고 《불만이 있는 나라들은 와서 충분히 보기 바란다.》는 수작까지 늘어놓았다.
2020년 외교청서와 방위백서에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또다시 쪼아박고 《독도가 한번도 일본령토가 아닌적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담은 중학교교과서를 무더기로 검정통과시켰다.
국회에서 독도탈환을 제창하는 집회를 열고 전쟁의 방법으로 빼앗아야 한다는 망발을 공공연히 해대는가 하면 전례없이 외딴섬방위와 탈환을 떠들며 화약내짙은 전쟁연습들을 광란적으로 벌려놓고있다.
다른 민족의 령토를 자국땅이라고 우겨대며 앙탈을 부리는 일본반동들의 속심은 다른데 있지 않다.
끊임없는 령토도발로 불집을 일으켜 대륙침략의 구실을 마련하자는데 있다.
날강도적인 《독도령유권》주장의 근저에는 대조선적대시를 국책으로,조선침략을 주요전략으로 내세우고 정복전쟁에 몰두해온 사무라이후예들의 복수주의적야망이 그대로 꿈틀거리고있다.
일본이 제아무리 《평화》간판을 내흔들며 이웃나라들과의 안정적인 관계구축이니,전후외교의 총결산이니 하며 요설을 늘어놓아도 침략국가의 본성인 령토야욕은 결코 감출수 없다.
우리 민족의 신성한 땅을 넘보며 재침의 기회를 노리는 천년숙적의 광증은 온 겨레의 대일결산의지만을 더욱 굳세게 해줄뿐이다.
일본반동들은 우리 인민의 의지를 똑바로 알고 분별없이 날뛰지 말아야 한다.(전문 보기)
조선학교차별반대집회 // 朝鮮学校差別反対集会 2020年11月21日(土)14:00 文京区民センター
チュチェ109(2020)年 10月 20日 ウェブ・ウリトンポ
朝鮮学校差別反対集会
「官民ヘイトの中で私たちはどう闘うのか」
2020年 11月21日(土) 14時から(開場13時半)
文京区民センター 3A会議室(文京区本郷4-15-14)
「高校無償化」からの朝鮮学校排除が、発足間もない第二次安倍内閣により確定されてしまったのが2013年2月。同年には「ヘイトスピーチ」という言葉が流行語大賞にノミネートされるほど普及しました。他方で、地方自治体レベルでは朝鮮学校への補助金の停止・大幅減額が、政府だけでなく排外的市民にも後押しされつつ進行。この動向は「官」の差別と「民」の差別の連動を反映していないでしょうか。
この官民によるヘイトの共鳴、そして「幼保無償化」制度における外国人幼稚園排除、さらにはコロナ禍における学生支援緊急給付金からの朝鮮大学校排除と続く差別の連鎖を断つためには、各地に根差すより多くの心ある「民」により、ヘイトをする「民」を圧倒し、「官」を包囲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本集会はそのヒントを探る場、また各地の経験を共有する場とします。オンライン参加も可能です。ご参集ください。
■集会内容
◎記念講演「草の根ヘイトの実態」
安田浩一さん(ノンフィクションライター)
1964年生まれ。週刊誌記者を経て、2001年よりフリー。
2012年『ネットと愛国 在特会の「闇」を追いかけて』(講談社)で講談社ノンフィクション賞、日本ジャーナリスト会議賞受賞。
2015年『ルポ 外国人「隷属」労働者』(『G2 vol.17』)で大宅ノンフィクション賞を受賞。
主な著書に『ルポ差別と貧困の外国人労働者』(光文社新書)、『ヘイトスピーチ』(文春新書)、『沖縄の新聞は本当に「偏向」しているのか』(朝日新聞出版)、『「右翼」の戦後史』(講談社現代新書)、『団地と移民』(角川書店)、『愛国という名の亡国』(河出書房新社)など。
◎各地域からの報告
- 立川町田朝鮮学校支援ネットワーク・ウリの会
- 朝鮮学校とともに・練馬の会
- 東京朝鮮第六幼初級学校友の会
- 東京朝鮮第四幼初中級学校を支援する区民の会(準)
他
■参加方法について
【オンライン(ZOOM)参加をご希望の方】
集会前日までに、下記の申込ウェブフォームからお申し込みください。
適宜、ZOOMでの参加方法を通知いたします。
【会場にお越しの方へ】
感染病対策のため会場入り口での消毒剤の準備はしておりますが、マスク等は各自ご用意ください。体調のすぐれない方、発熱のある方は参加をご遠慮ください。
■参加費について
※会場参加もオンラインも、なるべくカンパをお願い致します。
カンパ 1口500円(複数口歓迎)
振込先:
▶ゆうちょ銀行 振替口座 00190-9-473007 「高校無償化」連絡会
—
朝鮮学校「無償化」排除に反対する連絡会
mushokashien@yahoo.co.jp
TEL: 080-3930-4971
FAX: 03-3819-0467
https://mushoka2020.blogspot.com/
※ 旧ブログ 東京朝鮮高校生の裁判を支援する会
http://mushokashien.blog.fc2.com
일본의 철면피한 추태가 가져올 후과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10월 15일발 조선중앙통신)
일본이 과거범죄를 가리우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있다.
얼마전 내각관방장관이라고 하는자는 도이췰란드의 수도에 세워진 일본군성노예상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철거를 주장하였는가 하면 그 무슨 《국제사회의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할것》이라는 희떠운 소리까지 해댔다.
뒤이어 일본의 어중이떠중이단체들이 줄줄이 나서서 성노예상철거를 떠들며 항의전화를 한다 어쩐다 분주탕을 피웠다고 한다.
이것은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에 대한 또 한차례의 정면도전으로서 절대로 묵과할수 없다.
일본이 진정 공정한 국제사회로부터 평화국가의 평가를 받고싶다면 자기의 법적,도덕적의무인 과거범죄청산부터 성실히 리행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본은 오늘까지도 지난 세기에 감행한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그에 대한 인정조차 거부하고있다.
성노예범죄는 일본반동들이 황군의 전투력과 사기를 높여준다는 미명하에 수십만명의 녀성들을 상대로 감행한 국가조직적인 특대형반인륜범죄이다.
문제는 이를 한사코 부인하는 일본이 성노예피해자들을 《돈벌이를 위해 나선 자원봉사자》로 모독하고 《일본군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문구까지 외교청서에 뻐젓이 박아넣었을뿐아니라 《위안부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떠들며 저들의 철면피한 행위를 정당화해나서고있는것이다.
여기에는 섬나라의 피묻은 과거사를 가리우고 미화분식하는것으로 그 법적,도덕적책임에서 벗어나보려는 흉심이 깔려있다.
력사는 부정한다고 해서 없어지는것이 아니며 외곡한다고 하여 달라지는것도 아니다.
더우기 다른 민족에게서 받은 민족적멸시와 훼손당한 민족적자존심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지금 일본의 과거범죄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피해당사국들만이 아닌 세계도처에서 날로 더욱 강렬하게 울려나오고있다.
일본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 철면피하게 놀아대다가는 국제사회의 뭇매밖에 차례질것이 없다.(전문 보기)
소식 : 세상을 웃기지 말라
일본이 여전히 파렴치하게도 인간살륙의 침략전쟁에서 피로 얼룩진 《욱일기》의 침략적성격과 본질을 가리우려고 책동하고있다.
일본당국은 《욱일기》에 대해 《침략과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잘못된 비판이 뿌리깊다느니, 국제사회에 정확한 정보를 발신할 필요가 있다느니 하면서 이미 번역게재된 영어, 프랑스어, 에스빠냐어에 이어 타이어로 된 설명자료를 일본외무성 공식홈페지에 지난 9월 24일 추가로 게재하였다고 한다.
설명자료에는 《<욱일기>가 풍어나 출산을 축하하는 기발로서 일본국내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여왔다.》는 등의 내용을 언급함으로써 전범기인 《욱일기》의 침략력사를 외곡하고 세인을 기만하고있다.
이것은 세계의 정의와 평화, 인륜도덕에 대한 우롱이고 모독이다.
죄악의 력사를 외곡하고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이러한 행위는 파렴치한 망동으로, 군국주의야망의 집중적인 발로로밖에 달리볼수 없다.
력사를 부정하고 진실을 외곡하는것은 일본특유의 체질이고 고질적으로 굳어진 악습이다.
일본당국에 묻건대 《욱일기》를 앞세우고 1875년 《운양》호가 강화도를 침범하였던것도, 1894년 일본군이 조선왕궁을 기습점령하였던것도, 1895년 백주에 주권국가인 조선의 국모를 참살하였던것도, 1919년의 3.1인민봉기를 류혈적으로 진압한것을 비롯하여 조선강점기간 100여만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학살하였던것도 모두 《풍어》나 《출산》을 축하하는 과정이였다는것인가.
《황군》의 《용사》들이 욱일기를 총창에 매달고 7.7사변을 도발하였던것도, 《욱일기》를 이마빡에 두르고 진주만의 군함들을 기습하였던것도 과연 《풍어》나 《출산》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단말인가.
《욱일기》의 더러운 력사를 일일이 론하자면 끝이 없다.
이런 피비린내나는 《욱일기》를 일본이 도꾜올림픽경기대회에서까지 내흔들려 하고있다.
만약 일본이 평화의 축제마당에 저주롭고 가증스러운 《욱일기》를 내건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욕으로 되며 과거 일본의 침략으로 피해를 당한 아시아인민들의 가슴에 맺힌 원한의 상처를 또다시 헤집는것으로 될것이다.
나치스기발과 같은 《욱일기》를 《풍어와 출산을 축하하는 기발》로 미화하려는 일본당국의 간특한 술책에 속아넘어갈 나라는 없다.
일본은 《욱일기》를 《풍어와 출산을 축하하는 기발》이라는 황당무계한 궤변으로 세상을 웃기지 말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민경무
을미사변을 통해 본 일제의 극악한 국권유린범죄
피로 얼룩진 일본군국주의의 조선침략사에는 세상사람들을 경악케 하는 전대미문의 야수적만행들이 수많이 기록되여있다.그가운데는 1895년(을미년) 에 명성황후를 살해한 추악한 범죄행위도 기록되여있다.
을미사변은 강도 일제야말로 다른 나라를 침략함에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인간의 탈을 쓴 야만의 무리들이라는것을 낱낱이 드러낸 력사적사건이다.
강도적침략무력을 발동하여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책동은 19세기말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다.
당시 일본은 식민지획득을 노린 유미렬강의 각축전장으로 되여있던 조선을 남먼저 타고앉으려는 야망에 불타있었으나 렬강들과 정면으로 맞설만 한 힘이 부족하였다.청일전쟁이후 적극 추진시켜오던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예속화책동은 조선봉건정부의 친로정책으로 하여 커다란 난관에 부딪치게 되였다.결정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수 없게 될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일본반동정부는 출로를 명성황후에 대한 살해에서 찾았다.일본군국주의자들은 당시 친로파의 우두머리였던 명성황후를 살해함으로써 조선봉건정부의 친로정책을 친일정책으로 돌려세우려고 꾀하였다.
명성황후로 말하면 조선의 국권을 한손아귀에 거머쥐고 국왕(고종)을 대변하여 나라를 다스리고있던 국가권력의 대표자였다.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렬강들의 날로 강화되는 침략책동과 봉건지배층의 부패무능한 통치로 하여 비록 쇠퇴몰락의 길을 걷고있었지만 여전히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자주권을 행사하고있었다.그때 명성황후는 짜리로씨야에 의존하는것이 저들의 안전과 향락을 유지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타산하였다.
명성황후는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고 식민지예속화를 급속도로 다그치려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책동에 커다란 장애물로 되였다.
마침내 명성황후를 살해할 음모를 꾸민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그 적임자로 륙군중장 미우라 고로를 내정하여 조선봉건국가에 주재하는 일본공사로 임명하였다.그는 외교에서는 그야말로 문외한이고 오직 칼부림밖에 모르는 무지하면서도 극악한 군사깡패였다.
명성황후살해음모의 실행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받고 1895년 7월(양력 9월) 한성에 기여든 미우라는 황후살해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비밀리에 추진시켰다.
8월 20일 (양력 10월 8일) 새벽 일본침략군 살인집단은 시위대 련대장을 살해하고 국왕의 거처지인 건청궁에 침입하여 국왕과 왕태자를 감금한 다음 명성황후의 침전인 곤녕전에 뛰여들어 그를 색출하기 위해 피에 주린 이리떼처럼 돌아쳤다.살인악당들은 이미 초상을 통해 명성황후의 모색을 눈에 익혔지만 숱한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는 혼잡속에서 그를 쉽게 찾을수 없었으므로 궁녀들을 닥치는대로 칼로 치고 찔러죽였다.살인악당들은 궁녀들을 모조리 죽이면 그가운데 명성황후도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전문 보기)
분노의 피를 끓게 하는 명성황후살해사건
일제가 조선에서 감행한 침략행위와 인간살륙만행의 피묻은 력사에는 《을미사변》으로 알려진 명성황후살해사건도 기록되여있다.
이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125년전인 1895년 10월 8일 일본살인무리들이 조선황궁을 기습하여 명성황후와 함께 수많은 궁녀들과 대신들을 참혹하게 살해한 사건으로서 조선봉건정부에서 친로파세력을 제거하고 친일파세력이 득세하게 하여 조선강점야망을 손쉽게 실현하기 위해 일제가 주도세밀하게 계획하고 감행한 용납 못할 범죄행위였다.
당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짜리로씨야와 결탁한 조선봉건정부의 실제적인 권력자인 명성황후를 제거하지 않으면 대조선침략계획이 파탄될수 있다는 우려를 품은 일제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황후를 살해하기 위한 흉계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일제는 악명높은 미우라를 조선주재 공사로 파견하여 살해음모를 추진시키게 하였으며 명성황후를 살해한 후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전준비까지 면밀히 갖추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미우라의 지시밑에 일본군대, 경찰, 불량배, 친일무력인 《훈련대》 등이 망라된 살인무리는 경복궁을 불의에 기습하였다. 먼저 성문을 지키고있던 시위대 련대장을 사살하고 뒤이어 명성황후의 측근자였던 리학균을 체포하여 그를 앞세우고 명성황후의 침실에 뛰여들었다.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상태여서 명성황후의 얼굴을 쉽게 분간할수 없게 되자 살인무리는 맞다드는 궁녀들을 닥치는대로 칼로 찔러죽이였다. 이 과정에 명성황후도 칼에 찔려 쓰러졌다. 놈들은 명성황후를 알아보자 채 죽지 않은 그를 이불에 둘둘 말아 곤녕전 앞마당에 내다놓고 살아남은 궁녀들을 끌어다가 명성황후가 옳은가를 재삼 확인시켰다. 일본살인악당들은 범죄행위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그나마 살아남았던 궁녀들을 모조리 죽이였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명성황후를 미리 준비한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석유를 뿌려 불태워버린것도 부족하여 그의 유골마저 못속에 집어던지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바로 이것이 명성황후살해사건의 진상이다. 이 사건은 일제야말로 저들의 침략적목적달성을 위해서는 한 나라의 황후까지도 야만적으로 살해하는 고금동서에 보기 드문 포악한 무리, 인두겁을 쓴 야수들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일제가 당시 조선민족이 국가주권의 상징으로 신성시하여온 황궁에 마구 뛰여들어 한 나라의 황후를 잔인하게 살해한것은 인륜도덕의 견지에서나 국제법적으로나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잔악무도한 범죄행위였다.
일제는 명성황후살해사건후 허위날조와 군사적강박으로 조선을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40여년동안 류례없는 식민지파쑈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온갖 불행과 재난을 다 들씌웠다.
명성황후살해사건이 있은지 1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일본반동들은 오늘까지도 피비린내나는 조선침략사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그 책임에서 한사코 벗어나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있다.(전문 보기)
소식 : 일본은 유엔안보리사회 상임리사국이 될 자격이 없다
최근 일본외상이 유엔창립 75돐기념 고위급회의에서 유엔안보리사회 상임리사국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또다시 드러내놓았다.
외상은 회의앞으로 보낸 동영상메쎄지라는데서 유엔안보리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운운하면서 《일본은 상임리사국으로 되면 평화로운 국제사회의 실현에 공헌할 각오가 되여있다.》고 력설하였다.
일본이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을 기본사명으로 하고있는 유엔안보리사회 상임리사국으로 되겠다는것은 국제적정의와 인류의 량심에 대한 우롱이고 참을수 없는 모독이다.
일본은 평화실현에 《공헌》한다는 달콤한 회유로 국제사회에 추파를 던질것이 아니라 그것이 수십년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원인부터 잘 분석해보아야 한다.
일본으로 말하면 지난 세기 전반기에 우리 나라를 비롯한 아시아나라들을 침략하고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여 특대형반인륜범죄를 저지르고도 새 세기 20년대에 이른 오늘까지 그에 대한 국가적책임을 회피하고있는 파렴치한 나라이다.
일본은 우리 나라를 비법적으로 강점한 후 100여만명의 조선사람들을 학살하고 840만여명의 조선인청장년들을 강제로 랍치련행하였으며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일본군성노예로 만들었다.
일본이 세계 여러 나라들에 뿌리고있는 금전도 지난날 침략과 전쟁으로 강탈한 인적, 물적자원으로 충당한것이며 특히 조선전쟁을 기화로 《황금의 소나기》를 맞아 부정축재한것이라는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은 이런 피비린내나는 침략사를 안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근한 반성과 사죄, 배상은 하지도 않고 오히려 과거를 외곡, 미화분식하고있으며 재침의 야망을 꿈꾸고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악명높은 특급전범자들을 《영웅》으로, 《평화의 주추돌》로 찬미하면서 세계의 강력한 반대와 항의에도 불구하고 정부각료들이 집단적으로 몰려가 야스구니진쟈참배놀음을 벌려놓고있는것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과거청산을 한사코 회피하면서 죄악에 죄악을 덧쌓고있는 일본은 절대로 유엔안보리사회 상임리사국이 될수 없으며 그에 대해 운운할 자격조차 없다.
일본은 더러운 개주둥이에서는 언제가도 상아가 돋을수 없다는 리치부터 알아야 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김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