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조일관계/朝日関係’ Category

世界最大の拉致犯罪を覆い隠そうとする破廉恥な妄動 -朝鮮中央通信社論評-

チュチェ110(2021)年 2月 2日 朝鮮中央通信

 

【平壌2月2日発朝鮮中央通信】先日、日本首相がわが朝鮮に言い掛かりをつける荒唐無稽(こうとうむけい)な妄言をまたもや並べ立てた。

衆院本会議でわれわれのいわゆる日本人拉致をうんぬんし、「私自らが先頭に立ち、関係国と緊密に連携しつつ全力を尽くす」と虚勢を張ったのである。

盗人猛々しいこの鉄面皮な醜態は今、島国に対するわが人民の敵愾心(てきがいしん)をさらに沸き返らせている。

日本がそれほど騒ぎ立てる拉致問題はすでに逆戻りできないように解決済みのもので、これ以上論議する余地さえない。

にもかかわらず、日本はこれを政治的目的に悪用し、金儲けのテコに利用する一方、鉄面皮に「被害者」に装い、自分らが過去に働いた世界最大の国家的な拉致犯罪をはじめとする反人倫行為をあくまでも覆い隠そうとしている。

日本が他の国でもないわれわれにあえて拉致問題を取り上げるということ自体が理屈に合わず、これはすなわち日本のずる賢さ、道徳的低劣さに対する実証となる。

事実上、日本の政客らが「北朝鮮による拉致可能性」を言い立てて、今も言い張っている「被害者」を見れば、一様に島国の腐り切った政治風土、世紀末的社会風潮が生んだ行方不明者であって、われわれとは縁もゆかりもない。

われわれに「拉致」されたと言っていた行方不明者らが自国内で次々と発見されている事実は、日本の反動層が騒ぎ立てる拉致うんぬんの荒唐無稽さをよりいっそう如実に示している。

最悪の拉致犯罪国である日本が拉致問題をけん伝し、国際社会の前でこびを売っている目的は明白である。

敵対勢力と結託して尊厳あるわが朝鮮の地位をこき下ろし、対朝鮮敵視政策を正当化するとともに、これをきっかけにして世界の面前で「被害者」の無念のまねをし続けることで過去に働いた反人倫犯罪、特に世界最大の拉致犯罪の責任から逃れてみようとするところにある。

日本が卑劣な茶番劇で自分らが負った過去清算の義務をうやむやにして回避することができると打算したなら、それより大きな誤算はないであろう。

過去、数多くの朝鮮の青壮年を誘拐、拉致、強制的に連行して死の戦場と苦役場に駆り出し、20万に及ぶわが女性たちを性奴隷に連れて行った日本の特大型拉致犯罪は、いかなる術策を弄しても絶対に覆い隠すことはできない。

日本の反動層は、たわいない拉致問題に執着し続けながら愚かに振る舞うのではなく、わが人民に働いた天人共に激怒する反人倫犯罪から誠実に謝罪し、徹底的に賠償すべきである。(記事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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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말살을 노린 일제의 신사참배강요책동

주체110(2021)년 1월 30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남포시 온천군 원읍로동자구에서 과거 일본의 조선민족말살책동을 실증해주는 신사비가 발견되였다.

너비가 60㎝, 두께가 28㎝되는 신사비의 앞면에는 《귀성신사》, 뒤면에는 《소화 14년 10월 길일》이라는 글이 씌여져있다.이 비는 그곳에 귀성신사가 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해방전 이 지역에서는 대부분 제염공들과 그 가족들이 살았다.왜놈들은 우리 인민을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이곳에도 신사를 세우고 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원읍로동자구에 살고있는 한 로인은 일제가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어떻게 강요하였는가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하였다.

《귀성신사는 1939년에 세워졌다.우리는 수업을 하다가 운동장에 모여 훈육주임의 강요하에 동쪽을 향하여 두손을 합장하고 궁성요배를 하군 하였다.

일요일이면 신사에 가서 교장의 선창에 따라 〈선서〉를 하였다.》

이 신사비는 우리 민족의 얼을 뽑고 정기를 거세말살하기 위하여 미쳐날뛴 일제의 만고죄악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력사의 증거물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제는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없애버리고 우리 인민을 〈황국신민화〉하려고 날뛰였으며 우리의 민족문화를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일제는 조선강점초시기부터 우리 인민을 철저히 노예화하는것을 국가시책으로 삼았다.

조선통치의 궁극적목적을 《첫째도 동화, 둘째도 동화》로 규정한 일제는 민족성을 거세말살하는것을 그 실현방도의 하나로 내놓았다.그를 위해 일제는 식민지통치시기 신사설치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1915년에 《신사규칙》이라는것을 발표하고 1918년부터 1925년 10월까지 경성 남산에 조선신궁이라는것을 세워놓았다.그후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전국도처에 각이한 급의 신사들을 대대적으로 만들어놓았다.

일제는 신사들을 세우는 한편 조선사람들에게 신사참배를 악착하게 강요하였다.

신사참배라는것은 일본의 토착종교인 신도의 절간신사에 찾아가 일본의 하늘과 땅, 사람을 창조한 건국신이라고 하는 《아마데라스 오미까미》(천조대신)와 그의 적자로서 《현인신》이라고 하는 왜왕에게 절을 하고 《충성》을 맹세하게 하는 허황하기 그지없는것이였다.

중일전쟁도발이후 조선총독 미나미는 직접 조선신궁을 찾아가 일제침략군의 《무운장구》를 빌어 참배하고는 즉시 각 도청에 명령하여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신사참배를 단행할것을 지시하였다.

그에 따라 일제는 《기원절》, 《명치절》, 《천장절》 등 《국가명절》들과 《흥아봉공일》, 《애국일》에 각종 《기념행사》놀음을 벌려놓고 우리 인민들을 강제로 끌어내여 신사에 절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리고 각급 학교의 학생들에게 1주일에 한번씩 의무적인 집단참배를 강요하였으며 일반주민들이 신사앞을 지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절을 하도록 하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이 신사참배에 대해 불응하거나 불평할 때에는 《불온사상》이 있다는 딱지를 붙여 범죄시하면서 체포구금하거나 《비국민》으로 취급하고 각종 행정적 및 경제적제재를 가하였다.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

저들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정신을 주입하자는데 있었다.

일제가 강요한 신사참배는 철두철미 조선인민을 《황국신민화》 즉 왜왕에게 절대복종하는 일본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였다.

세계력사에는 타민족을 억압하고 말살하기 위한 침략자들의 반인륜범죄행위들이 수많이 기록되여있다.하지만 일제가 감행한 조선민족말살책동처럼 그렇게 집요하고 그토록 악랄한것은 없었다.

세월은 흐르고 세대는 바뀌였다.

허나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하면서 들씌운 온갖 불행과 고통은 전체 조선민족의 가슴속에 오늘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과거 일본이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민족말살책동은 반드시 계산되여야 할 특대형반인륜범죄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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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에 용납 못할 일제의 극악한 국권유린행위

주체110(2021)년 1월 22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조선봉건정부의 최고주권자였던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독살된지 102년이 되였다.

고종황제를 독살한 주범이 일제라는것은 이미 여러 자료를 통하여 확증되였다.

《…사실의 진상은 드디여 폭로되였다.일본은 적신(역적) 한상학을 시켜 독약을 친 식사를 진상시켰던것이다.황제(고종)는 한시간도 못되여 중병을 일으키고 〈무엇을 먹었기에 이리도 괴로운것인가.〉고 웨치다가 돌아갔다.페하의 두눈은 벌겋고 온몸에 반점이 돋아나 썩고있었다.시녀 두명도 또한 급사하였다.그 녀자들이 사실의 진상을 목격하였기때문이다.》

이것은 일본도서가 일제의 고종황제독살에 관한 진상을 폭로한 글이다.

2010년에 어느 한 국제학술대회에서 1919년 당시 일본궁내청의 회계심사국 장관이였던 구라또미 유자부로의 일기가 공개되였다.

일기에는 일제의 초대조선총독 데라우찌가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에게 《을사5조약》을 인정하지 않는 고종황제를 독살할것을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내용이 씌여져있었다.

고종황제독살사건은 그 어느 나라의 식민지지배력사에도 있어본적이 없는 가장 포악하고 야만적이며 파렴치한 반인륜범죄로서 오늘도 우리 인민의 치솟는 증오와 분노를 자아내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의 력사는 조선인민에게 커다란 불행과 재난만을 가져다준 죄악의 력사로 얼룩져있습니다.》

고종황제독살은 철두철미 일제에 의해 계획되고 꾸며진 특대형국권유린행위이다.

고종황제를 제거하려는 일제의 책동은 1907년에 있은 헤그밀사사건을 계기로 로골화되였다.

당시 일제는 《을사5조약》의 강압적인 날조로 조선봉건정부의 외교권을 완전히 빼앗고 통감통치를 실시함으로써 우리 인민을 저들의 식민지노예로 전락시켜 온갖 민족적멸시와 굴욕을 강요하고있었다.

한편 반일감정이 강한 고종황제는 비밀리에 《을사5조약》의 불법무도성과 일제의 죄행을 까밝히기 위한 활동을 벌렸다.그 일환으로 1907년 6월 네데를란드의 헤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리준을 비롯한 3명의 밀사들을 파견하였다.

고종은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5조약》의 비법성을 선포하고 세계의 정의와 인도주의에 호소하여 국권을 보존하려고 하였다.그러나 일제의 집요한 방해공작과 그와 공모결탁한 제국주의자들의 모략책동으로 하여 렬강들에게 동정을 호소하는 밀사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걸음걸음 좌절되였고 고종황제의 국권보존시도는 성사되지 못하였다.

일제는 헤그밀사사건을 트집잡아 고종을 강제퇴위시킬 흉계를 꾸미였다.《을사5조약》에 의해 외교권을 일본에 《이관》한 조선이 통감의 허가도 없이 국제회의에 특사를 파견한것은 저들에 대한 모독으로서 고종이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것이였다.

끈질긴 강박과 위협공갈로 고종을 끝내 황제자리에서 내쫓고 순종을 올려앉힘으로써 교활한 일제는 《정미7조약》을 손쉽게 조작해낼수 있었다.아무런 법적효력도 가지지 못하는 날치기사기협잡문서의 강압날조로 조선봉건정부는 형식상으로나마 존재하고있던 내정권마저 일제에게 강탈당하였으며 조선에 대한 일제의 통감통치와 식민지지배권은 더욱 강화되게 되였다.

고종에 대한 일제의 박해는 강제퇴위만으로 끝나지 않았다.제1차 세계대전종결후인 1919년 1월 프랑스의 빠리에서 제국주의렬강들이 전후의 분배몫을 둘러싸고 강화회의를 열자 일제는 이 기회를 리용하여 고종이 또다시 헤그밀사사건과 같은 일을 벌려놓을수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였다.하여 일제는 67살의 고종을 잔인하게 독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범죄적만행을 저질렀다.그날은 1919년 1월 22일이였다.

미국 하와이대학 교수는 이에 대하여 《일본은 고종황제가 조선인들에게 독립운동을 고취시킬것을 매우 두려워하였다고 본다.바로 이런 정황이 일본이 고종황제를 독살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있다.》라고 밝혔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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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나는 력사를 잊지 말자

주체109(2020)년 12월 26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반제계급교양의 거점으로 훌륭히 개건된 배천군계급교양관의 2호실에 들어서면 눈에 뜨이는 하나의 조각상이 있다.

어린 동생을 홀로 남겨두고 기약없는 길을 떠나야만 하는 가슴찢어지는 아픔의 눈물로 두볼적시는 주인공처녀, 헤여지지 않겠다고 누나의 옷자락을 꼭 부여잡고 품에 안겨 애처롭게 올려다보는 남동생.

조각상은 중일전쟁발발이후 840만여명의 조선청장년들을 강제련행하여 침략전쟁터와 죽음의 고역장에서 혹사시키다 못해 야수적으로 학살한 살인악마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보여주는 사진자료들, 꽃같은 조선처녀들을 일본군성노예로 끌고가 그들의 청춘을 마구 유린하고 생명까지 앗아간 특대형반인륜죄행을 폭로하는 사진자료들을 배경으로 전시되여있다.

보면볼수록 한창 피여나는 조선처녀들을 강압적으로 끌어다가 그들의 청춘시절과 운명을 무참히 짓밟고 롱락한 일제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벽성군 석담리에서 살던 일본군성노예피해자 리종녀녀성에게도 그런 쓰라린 과거사가 있었다.

1920년대초 4남매의 맏딸로 태여난 리종녀는 어리광을 부려야 할 애어린 나이때부터 지주집에서 종살이를 하였다.천대와 멸시만을 받으며 눈물속에 살아가던 그는 청춘시절에 들어서자 마을의 한 청년과 약혼을 하고 새살림의 꿈을 꾸게 되였다.그런데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약혼자가 징용에 끌려갔던것이다.사랑하는 약혼자와 생리별당한지 몇달만에는 그의 사망통지서가 마을에 날아들었다.

눈물속에 날과 달을 보내고있던 어느날 그는 마을에 달려든 왜놈들에게 유괴되였다.

그가 다른 처녀들과 함께 끌려간 곳은 인천에 있는 크지 않은 벽돌집이였다.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왜놈들이 미친듯이 달려들었다.그렇게 되여 처녀들은 매일 15~20명씩 달려드는 짐승같은 침략군무리로부터 참기 어려운 치욕을 당해야 했다.

저들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다고 하여 놈들의 군화발에 걷어채이고 칼에 찔리운적이 몇번인지 모른다.죽음의 고비도 넘겨야 했다.

한번은 지겹게 달려드는 왜놈의 짐승같은 만행에 분격한 리종녀가 이발로 놈을 물어뜯었다.그러자 그놈은 그를 때리다 못해 옷을 벗겨 알몸으로 만들어놓고는 바줄로 꽁꽁 묶은 다음 그의 몸에 불질을 해댔다.

생살을 태우는 냄새가 온 방안을 꽉 채웠다.리종녀가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놈은 좋다고 히히닥거렸다.리종녀는 끝내 의식을 잃고말았다.

그가 한참동안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왜놈들은 더이상 살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외진 산골짜기에 내다버리였다.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고마운 사람들에 의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숨어살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되였다.

해방의 기쁨과 함께 그에게도 여러명의 청혼자들이 나섰다.

그때마다 그들의 진정을 뿌리쳐야만 했던 리종녀녀성.(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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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의 랍치범죄국의 흉상부터 털어버려야 한다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09(2020)년 12월 23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12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

얼마전 일본내각관방장관 가또가 도꾜도에서 진행된 국제토론회에서 랍치문제에 대해 횡설수설하였다.

《모든 랍치피해자들의 귀국을 하루빨리 실현하기 위해 정부도 총력을 다하여 최대한의 노력을 계속하고있다.》고 력설하였다.

또한 어느 한 회의에서도 《랍치문제가 스가정권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이니,《랍치피해자들의 조속한 귀국실현》이니 하면서 《랍치문제를 해결하여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정상화를 지향해나가는것》이 자기의 사명이라는 주제넘은 망발까지 해댔다.

랍치문제담당상이라는 직분을 다하느라 안깐힘을 쓰는지 최근 렬도에서 가또의 가시박힌 망언이 계속 울려나오는것을 보면 우리에 대한 적대감이 골수에 배인자가 분명하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일본이 떠드는 랍치문제는 이미 다 해결된 문제이다.

이를 모를리 없는 일본정객들이 계속 랍치문제를 거들면서 《국제사회와의 련대》를 떠들어대는것은 국제무대에서 우리 공화국의 영상을 깎아내리고 랍치문제를 정치적목적실현에 악용하자는데 그 더러운 속심이 있다.

랍치문제에서 《피해자》흉내를 내는것은 수백만명의 조선사람들을 강제랍치하여 온갖 정신육체적고통을 들씌운 반인륜범죄를 덮어버리고 과거청산을 한사코 회피해보려는 일본특유의 파렴치성의 극치이다.

랍치문제에서 피해자는 바로 우리이다.

력사가 증명하는바와 같이 일본은 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세계최대의 전범국이며 랍치범죄국이다.

지난 세기 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840만여명이나 되는 무고한 우리 인민들을 랍치,련행하여 전쟁터와 중세기적인 노예로동의 고역장으로 내몰고 100여만명의 목숨을 빼앗았으며 20만명의 녀성들을 일본군성노예로 유린한 일본의 과거죄악은 그 무엇으로써도 부정할수 없다.

우리 인민에게 천추만대에 씻지 못할 특대형랍치범죄를 저지르고도 일본은 잘못된 과거를 성근하게 반성하고 청산할 대신 죄악에 죄악만을 덧쌓고있다.

지어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같은 악명높은 반공화국모략단체들을 내세워 어리석은 《랍치》극들을 계속 꾸며내고 행방불명자들을 《북에 의한 랍치피해자》로 둔갑시키는짓도 서슴지 않고있다.

이런 범죄국가 일본이 그 누구의 랍치문제에 대하여 떠들어대는것이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실지로 국제화하여야 할 문제,반드시 해결해야 할 정치적인 문제는 일본의 과거청산이다.

일본이 죄악의 력사를 정당화하고 과거청산을 회피하려고하는것은 우리 인민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고 도전이며 인류량심에 대한 우롱이다.

일본은 랍치문제라는것을 입에 올리기 전에 세계최대의 랍치범죄국의 흉상부터 털어버려야 한다.

과거청산을 외면하고 우리에 대한 적대행위에 동분서주할수록 우리 인민들의 대일적개심을 배가해주게 될뿐이라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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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육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총련의 투쟁

주체109(2020)년 12월 22일 로동신문

 

올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단결된 힘으로 재일조선인운동의 뿌리이고 생명선인 민족교육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그 어느때보다 과감히 전개하였다.

총련중앙상임위원회는 일본당국의 민족교육말살책동을 폭로규탄하고 민족교육을 고수하기 위한 실천투쟁을 조직전개하였다.

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 도꾜도본부에서는 《전임일군들부터 운동의 앞장에 서자!》라는 구호밑에 1월부터 지부를 동부, 도꾜 제1학구, 도꾜 제3학구, 서남지역으로 나누어 조선학교 유치반에 대한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제도적용을 요구하여 항의행동을 벌렸다.

조청 효고현본부도 일본의 산노미야, 히메지, 아마가사끼에서 거리선전활동을 진행하였으며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 학생들과 교원들, 조청원들을 비롯한 재일동포들도 인쇄물배포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통하여 일본당국의 부당한 민족교육말살책동을 강력히 규탄하였다.

2월 21일 총련중앙일군들과 재일조선학생들, 교직원들, 중앙단체, 사업체 일군들, 동포학부모들, 일본의 여러 단체와 각계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문부과학성앞에서 진행된 금요행동은 민족교육을 기어이 지키기 위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의지를 과시하였다.

《일본당국은 조선고급학교 학생들에게 고등학교지원제도를 적용하라!》,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제도적용에서의 조선유치원배제를 반대한다!》, 《문부과학성은 어린이들의 배움의 권리를 당장 보장하라!》, 《조선유치원에 대한 민족차별 절대반대!》 등 참가자들이 터친 웨침은 일본반동들을 전률케 하였다.

일본 혹가이도의 조청원들과 조선초중고급학교 어머니회 성원들, 도꾜, 교또, 오사까, 히로시마, 아이찌, 효고, 야마구찌의 재일동포들은 10월 3일과 30일 기자회견, 집회를 가지고 후꾸오까고등재판소판결의 부당성을 폭로하면서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당국의 차별책동이 철회될 때까지 싸울 의지를 피력하였다.

후꾸오까조선학원은 일본반동들의 비렬한 민족교육말살책동을 규탄하는 항의성명을 발표하였다.

조선학교 유치반들의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제도적용을 위한 100만명서명운동도 보다 광범히 전개하였다.

100만명서명운동에 적극 참가할것을 호소하는 지역별, 조직별집회들과 긴급행동, 거리선전활동, 시위행진 등이 벌어졌으며 그 과정은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이 불굴의 신념과 애국충정의 마음을 더욱 굳게 가다듬는 계기로 되였다.7월부터는 신형코로나비루스전파로 집체행동을 할수 없는 조건에 맞게 즉시 인터네트를 통한 서명운동으로 전환하였다.

총련일군들과 학부모들, 재일동포들의 적극적인 투쟁에 의해 5월말까지 46만 6 87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서명에 참가하였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전세계를 휩쓸며 인류의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대류행전염병전파사태속에서도 민족차별책동에 미쳐날뛰는 일본반동들을 반대하여 힘차게 싸웠다.

총련 사이다마현본부, 지부일군들, 사이다마조선초중급학교 유치반 원장과 교직원들, 학교교육회 리사들과 보호자들,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회장과 사무국장, 변호사들을 비롯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시안의 보육원, 유치원 등에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공급하면서 사이다마조선초중급학교의 유치반만을 배제한 일본 사이다마시당국의 치졸한 망동을 단죄하였다.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과 관련한 학생지원금지불대상에서 조선학교 학생들을 또다시 제외시킨 일본당국에 항의하여 6월 19일과 25일, 26일 도꾜와 니시도꾜, 사이다마지역 조선학교 유치반관계자들과 보호자들, 총련일군들은 일본 내각부와 문부과학성, 후생로동성에 조선학교 유치반에 대한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제도적용을 요구하는 서명문과 요망서를 제출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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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조국을 목숨바쳐 지켜야 한다 -보통강구역 신원동 29인민반에서 사는 한명화할머니의 해방전 생활에서-

주체109(2020)년 12월 19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청년들과 소년들에게 가장 적은 임금을 주고 그들을 마소와 같이 밤낮으로 부렸으며 그들로 하여금 헐벗고 굶주리고 무지와 질병에 시달리여 쓰러지게 하거나 또는 불구자로 되여 절망의 길에서 헤매게 하였습니다.》

보통강구역 신원동 29인민반에서 살고있는 한명화할머니에게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로 잊을수 없는것이 있다.그것은 자기가 해방전에 겪은 피눈물나는 노예살이이다.

아흔살을 가까이하는 할머니의 가슴아픈 추억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새겨주고있는가.

 

노예의 설음

 

1931년 한명화할머니는 6남매중의 둘째로 태여났다.당시로 말하면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파쑈통치가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던 때였다.

그가 8살 나던 해였다.그가 나서자란 중화군 풍동면 릉성리(오늘의 상원군 릉성리)에 전해의 흉년으로 극심한 기아가 휩쓸었다.

어느날 해종일 굶은 명화는 어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날이 어두워져서야 어머니는 쑥을 한보따리 이고 돌아왔다.이윽고 저녁상에는 쑥버무리가 올랐다.

낟알이 섞이지 않은 그것은 써서 먹기가 역했다.

그래도 배가 고팠던 명화는 억지로라도 쓰거운 쑥버무리를 삼켜야 하였다.

날이 갈수록 살림에 쪼들린 명화의 부모는 하는수없이 그를 지주집아이보개로 보내기로 하였다.지주집에 들어가면 명화가 찬밥덩어리라도 좀 얻어먹을수 있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에서였다.

지주녀편네는 집을 찾아온 연약해보이는 명화를 마뜩잖게 훑어보더니 깨진 소반에다 밥과 찌개를 조금 가져다주었다.명화가 밥술을 놓기가 바쁘게 지주녀편네는 손바닥만 한 그의 잔등에 자기의 아이를 올려놓았다.

《이년아, 밥 한그릇이 공짜인줄 알아.》

이렇게 시작된 그의 노예살이는 그야말로 고된것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지주녀편네는 명화에게 이제부터 자기 아이를 한시도 등에서 떼놓지 말고 업어재우라고 떠벌이였다.하여 그는 지주년놈들이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잘 때에도 밤깊도록 아이를 업은채 마당가를 오락가락해야 하였다.하지만 몰려오는 피곤은 끝끝내 명화를 쓰러뜨렸다.

이것을 보게 된 지주녀편네는 빌어먹을 년이 남의 집 귀동자에게 찬이슬을 맞혔다고 고아대면서 그를 마구 때리였다.

참을길 없었던 명화는 지주놈의 집에서 뛰쳐나왔다.

집에 돌아온 명화는 어머니가 주는 쑥버무리를 먹으며 말하였다.

《엄마, 쑥버무리가 참 맛있어요.지주집밥은 살로 안가요.》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는 명화의 상처투성이얼굴을 쓸어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 착취자들의 억압과 학대는 쓰디쓴 쑥버무리를 먹기보다 몇갑절 참기 어렵다는것을 사무치게 깨달았습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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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의 발로

주체109(2020)년 12월 18일 조선중앙통신

 

일본의 민족배타적망동이 극도에 이르고있다.

얼마전 일본당국은 세계적인 보건위기속에서 학생들을 지원하는 《학생긴급지원금》제도적용대상에서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제외하는 차별조치를 취하였다.

일본의 국립,사립대학과 단과대학,전문학교는 물론 일본어교육기관이나 외국대학의 일본분교들도 지원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유독 조선대학교만 빼놓은것은 참으로 고약하고 너절한 처사가 아닐수 없다.

고등학교지원제도와 《유아교육,보육무상화》제도에서의 부당한 차별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감행된 조선대학교배제조치는 일본의 뿌리깊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연장으로서 절대로 용납할수 없는 반인륜적인 민족차별책동의 극치이다.

섬나라 졸부들의 란폭한 처사에 국제사회가 경악하고 일본사회도 부끄러워하고있다.

일본의 대학교수대표들은 당국의 처사를 《의도적인 정치적배제》로 항의하면서 공평한 지원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으며 이에 수백명의 대학교수들이 찬동하였다.

유치반으로부터 대학교에 이르는 재일조선인교육체계전반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차별과 박해는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기어이 말살하고 재일조선인운동의 대를 끊어버리려는 파쑈적폭거이다.

패망직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여온 일본반동들의 민족교육말살책동은 날이 갈수록 더욱 치졸하고 포악해지고있다.

돌이켜보면 재일조선학교는 일제통치하에서 학교문앞에도 가보지 못한 재일동포들이 자식들만이라도 공부시키려는 필생의 소원을 안고 극심한 생활난속에서도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혜있는 사람은 지혜를 내여 우리 학교를 세우자!》는 구호밑에 피와 땀을 바쳐 세운 동포사회의 기쁨이고 희망이였다.

그러나 일본반동들은 민족교육발전의 싹부터 짓뭉개버리려고 미쳐날뛰면서 조선학교의 설립을 인정하지 않았을뿐아니라 1949년에 이르러 강제적인 《조선인학교페쇄령》으로 무려 348개의 조선학교들을 없애버리는 범죄적망동을 감행하였다.

그 이후에도 조선말과 글을 배워주고 조국의 력사와 지리,문화전통을 가르쳐주는것을 《치외법권》,《일본국익에 배치되는 반일교육》이라고 헐뜯으며 동화교육을 강요하고 조선학생들에 대한 극악한 민족차별을 실시하였다.

조선인자녀들을 조선학교에 다니는가,일본학교에 다니는가 하는데 따라 구별하고 조선학교졸업생들의 학력을 인정하지 않는것과 같은 차별은 지금도 계속되고있다.

재일조선인들에게 일본인들과 꼭같은 납세의무를 지우고도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을 당치않은 리유로 차단하고 동포들이 모아보내는 조선학교기부금에도 세금을 부과하며 조선학교의 교육환경과 물질적토대축성을 각방으로 방해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은 조선학교들이 사상이나 운영면에서 공화국의 영향을 받고있기때문에 지원대상으로 될수 없다고 하면서 비렬한 압박행위도 서슴지 않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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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深い対朝鮮敵対政策の発露である民族教育抹殺策動を直ちに撤回すべきである -朝鮮日本研究所・研究員談話-

チュチェ109(2020)年 12月 18日 朝鮮中央通信

 

朝鮮外務省傘下の日本研究所は12月18日、李スクキョン研究員名義で、民族教育に対する差別と抑圧を執拗に続ける日本政府を非難する談話を発表した。(以下全文)

日本の民族排他的妄動が極に達している。先日、日本当局は世界的保健危機の中で学生を支援する「学生緊急支援金」制度の適用対象から朝鮮大学校の学生を除外する差別措置を取った。日本の国立、私立大学と単科大学、専門学校はもちろん、日本語教育機関や外国大学の日本分校も支援対象に含ませながら唯一朝鮮大学校だけを除外したことは、実に不届きでけしからぬ行為と言わざるを得ない。

高等学校支援制度と「幼児教育、保育無償化」制度での不当な差別に続き、今回再び敢行された朝鮮大学校排除措置は、日本の根深い対朝鮮敵対政策の延長として絶対に容認できない反人倫的民族差別の極致である。

にわか成金の島国の暴挙に、国際社会が驚愕し日本社会も恥じている。日本の大学教授代表らは、当局の措置を「意図的な·政治的排除」として抗議し、公平な支援を求める声明を出し、数百人の大学教授らが賛同した。

幼稚園から大学に至る在日朝鮮人の教育体系全般に対する日本反動の差別と迫害は、民主主義的民族教育を抹殺し在日朝鮮人運動を根絶やしにしようとするファッショ的暴挙である。

敗戦直後から今日に至るまで、絶えず続いてきた日本の反動による民族教育抹殺策動は日増しに稚拙で暴悪になっている。

ふり返えれば、在日朝鮮学校は、日帝統治下で学校の門前にも行けなかった在日朝鮮人たちが子供たちだけは勉強させたいという終生の願いを抱き、極まりない生活苦の中でも「金ある者は金を出し、力ある者は力を出し、知恵ある者は知恵を出して、われわれの学校を建てよう!」というスローガンの下、血と汗を捧げた同胞社会の喜びであり希望だった。

しかし、日本の反動は民族教育を萌芽期から踏み潰そうと躍起になり、朝鮮学校の設立を認めなかっただけでなく、1949年には強制的な「朝鮮人学校閉鎖令」を出し348校もの朝鮮学校を廃校にする犯罪的妄動を行った。

その後も朝鮮の言葉と文字を学ばせ、祖国の歴史と地理、文化的伝統を教えることを「治外法権」、「日本の国益に反する反日教育」と決めつけ、同化教育を強要し朝鮮の学生たちに対する極めて悪辣な民族差別政策を実施した。

朝鮮人子女を朝鮮学校に通うか、日本学校に通うかによって区別し、朝鮮学校卒業生の学歴を認めないなどの差別は今も続いている。

在日朝鮮人に日本人と同様の納税義務を課しながら、朝鮮学校に対する補助金を不当な理由で断ち、同胞たちが集めて送る朝鮮学校への寄付金にも税金を課し、朝鮮学校の教育環境と物質的土台の蓄積を各方面で妨害している。

日本の反動は、朝鮮学校が思想や運営面で共和国の影響を受けているので支援対象にはなれないとしながら、卑劣な圧迫行為もためらっていない。

世紀をまたいで続く憎むべき民族教育抹殺策動によって、在日同胞たちが受けた被害は実に計り知れない。

在日朝鮮人たちは日本の植民地統治の直接的被害者とその子孫であり、日本当局には、歴史的経緯や倫理・道徳的見地から、彼らの人権を保障し、民族教育の発展を奨励し、朝鮮学校生徒たちを保護すべき法的、人道的責任がある。特に在日朝鮮人の民族教育の権利は、世界人権宣言と経済・社会および文化的権利に関する国際協約など、日本が受諾した国際法や国内法規にも全面的に合致する権利である。

しかし日本は、自らに課された当然の責任を拒否し、むしろ共和国を敵視し在日同胞の民族教育の発展を妨げ、初歩的な人権までも踏みにじる反人倫的で民族排他主義的な罪を犯し続けている。(記事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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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강토를 피로 물들인 철천지원쑤

주체109(2020)년 12월 9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제는 이르는 곳마다에서 사람들을 중세기적방법으로 야수적으로 학살하였으며 침략전쟁을 위하여 인적, 물적자원을 깡그리 징발, 략탈하였습니다.》

평안북도계급교양관에는 조선인강제련행과 학살만행, 우리 나라의 자연부원략탈만행을 비롯하여 일제가 조선인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여러 범죄자료가 전시되여있다.

중일전쟁도발후 일제는 840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하여 노예로동과 침략전쟁터에 내모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끌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으며 우리 나라와 일본의 로천채굴장들, 동발목도 세우지 않은 수천척지하막장들에서 그리고 망망대해의 외진 섬들에서 고역에 시달리다가 눈도 감지 못하고 원통하게 숨졌다.

일제가 강제련행자들을 어떻게 잔인하게 학살하였는가는 2014년 천마군 서고리에서 발견된 수백구의 유골들을 찍은 사진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당시 서고리에서의 광석탐사과정에 한 페갱이 발견되였는데 그안에는 관통상을 입은 두개골들과 총알이 박혀있는 대퇴골, 탄피, 불발탄 그리고 고무신과 로동화들, 미쯔이회사상표가 있는 혁띠고리, 징용자표식나무패쪽들, 단추를 비롯하여 일제의 야수적인 살인만행을 폭로하는 많은 유골들과 유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광업령》을 조작하고 우리 나라의 귀중한 지하자원을 대대적으로 략탈하기 위해 환장이 되여 날뛴 일제는 평안북도 천마지구에서만도 숱한 금, 은광산들을 개발하고 우리 인민의 고혈을 짜냈다.

그 앞장에는 미쯔이를 비롯한 일본독점재벌들이 서있었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에게 초보적인 로동조건, 생활조건도 갖추어주지 않고 그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패망이 가까와오자 일제는 이곳 위치와 저들의 죄행을 은페시킬 흉심밑에 거기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가족들을 모두 100m도 안되는 갱안에 강제로 몰아넣고 마구 총질하였으며 나중에는 갱입구를 폭파시켜 무참히 학살하였다.

일제에 대한 우리 인민의 피맺힌 원한은 도안의 여러곳에 서리여있다.부라벌(당시)의 옥백미를 략탈해갈 목적으로 5리나 되는 구간에 물길굴공사를 벌려놓고 많은 인부들을 소나 말처럼 부려먹었다.매일같이 공사에 내몰린 인부들이 맥없이 쓰러져 버럭더미에 묻히였다.

또한 일제는 누에알독점을 위해 의주군에 그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어놓고 수백명에 달하는 로동자들과 농민들을 징집하여 그들에게 장시간의 고된 로동을 강요하였다.

어느 한 저수지공사장에서는 제방뚝을 쌓으면서 어린 소녀를 콩크리트혼합물과 함께 처넣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이르는 곳마다에서 우리 인민의 신음소리, 원한소리가 그칠새없었다.

계급교양관에는 일제가 우리 인민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해 발악적으로 날뛴 자료들도 있었다.

일제는 식민지통치시기 우리 나라의 민족문화유산들에 대한 전대미문의 파괴략탈행위를 감행하였다.

우리 나라 그 어디에서나 그러하였듯이 평안북도에서도 일제는 《조사》라는 명목밑에 귀중한 력사유적들을 닥치는대로 파괴하였을뿐아니라 강도적으로 빼앗아갔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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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해치는 진짜 위협은 무엇인가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09(2020)년 12월 1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12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

최근 전 일본수상 아베가 자민당의원들의 모임에서 우리의 미싸일《위협》을 운운하며 《적기지공격능력》보유는 응당한것이라고 력설하였다.

정치퇴물의 이 발작적인 망동은 대조선적대의식이 골수에 찬 군국주의광신자의 최후발악으로서 일본내 극우익보수세력이 재침야망실현에 더욱 발광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공인된바와 같이 전범자의 후손으로서 간교성과 호전성이 혈통으로 유전되고 극우익반동사상이 체질화된 아베는 집권전기간 대조선적대시를 국책으로 내세우고 조상들이 당한 패전의 앙갚음에 이를 갈며 복수주의적인 재침책동에 몰두하여왔다.

군국주의상징인 《기미가요》를 고래고래 부르는것으로 새 정부의 첫 업무를 시작하며 이것이 《일본을 되찾는 첫걸음이다.》라고 내뱉아 세계를 경악케 하였던 아베이다.

아베집권시기 전범국,패전국의 지위를 전면부정하는 헌법개악이 공공연히 집요하게 추진되고 《안전보장관련법》채택 등 해외침략의 법적토대가 마련되였으며 《자위대》가 간과할수 없는 전쟁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와 함께 과거죄악을 정당화하는 력사외곡책동이 력대 그 어느 정권때보다 더 로골적으로 감행되고 반공화국,반총련책동이 극도에 달하였으며 일본사회전반이 국수주의,복수주의 탁류속에 휘말려들었다.

아베의 군국주의광증은 갈수록 더해지고있다.

재임기간 세상의 눈초리가 무서워 자제하던 야스구니진쟈참배를 퇴임후 3일만에 전격 단행하고 그로부터 1개월만에 또다시 찾아가 특급전범자들을 찬미한 사실,자기가 회장으로 있는 보수계의원조직의 활동을 재개하고 현 스가내각의 헌법개정움직임과 위험한 군국화책동을 적극 부추기고있는 사실 등은 그 대표적실례이다.

현실은 아베를 위시로 한 일본극우익세력이 여전히 침략전쟁으로 아시아대륙을 짓밟던 과거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대동아공영권》실현의 어리석은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이번에 상대국의 령토내에 있는 미싸일기지를 선제적으로 공격,파괴하는 《적기지공격능력》보유가 응당하다고 광기를 부리며 우리의 《위협》에 대해 떠들어댄것도 군국화와 해외팽창책동의 명분을 얻으려는 흉심의 발로이다.

얼마전 인터네트에는 《일본에서는 아직도 제2차 세계대전이 지속되고있다. 때문에 아시아나라들이 모두 일본을 싫어한다.》는 글이 실렸다.

지금 일본언론들과 야당들은 《공격적인 무기의 보유는 자위를 위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벗어나는것으로 된다.》,《주변국들의 군비경쟁을 재촉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는 <안전보장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우려도 있다.》고 그 위험성과 위헌성을 까밝히면서 반대하고있으며 절대다수의 일본국민들도 《아베정치의 계승을 제창하고있는 스가내각은 잘못된 부분은 넘겨받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해나서고있다.

일본극우익세력의 위험한 망동은 섬나라를 통채로 파멸의 재앙속에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이다.

일본을 해치는 진짜 위협은 바로 아베와 같은 극우익정치세력의 무모한 대결광증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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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비법의 문서로 식민지지배를 실현한 만고죄악

주체109(2020)년 11월 17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일제가 날강도적인 《을사5조약》을 조작하고 우리 나라에 대한 파쑈적인 식민지통치를 실시한 때로부터 어언 115년이 된다.

그날은 1905년 11월 17일이였다.

무력행사에 의한 방법으로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을사5조약》을 날조하여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전락시켰으며 우리 인민에게 40여년동안 치욕스러운 노예살이를 강요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강점하고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를 실시하였으며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들씌웠습니다.》

《을사5조약》은 철저히 조선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강점정책의 산물이였다.

《명치유신》으로 정권을 잡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곧 악명높은 《정한론》을 제창하면서 조선에 대한 침략을 강화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1875년에 강도적인 《운양》호사건을 도발하였으며 그 이듬해에는 조선봉건정부를 강박하여 침략적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다.그후 청일전쟁, 로일전쟁 등을 통하여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틀어쥘수 있는 조건을 확립한 일제는 《을사5조약》을 날조하는 방법으로 우리 나라를 식민지화하려 하였다.

일제가 날조한 《을사5조약》은 아무러한 법적효력도 가지지 못한 비법문서, 협잡문서이다.

몇해전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1935년에 국제련맹이 《조약법에 관한 보고서》를 내면서 국제조약체결력사상 효력이 없는 조약 3개가운데서 하나로 《을사5조약》을 꼽았다.

이 보고서는 국제련맹의 《국제협약 법전화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였는데 1963년 유엔국제법위원회의 《강제나 협박에 의한 조약의 비준, 승인, 수용 등은 무효》라는 보고서로 이어졌다고 한다.이것은 《을사5조약》이 효력을 가질수 없는 비법적인 문서라는것이 오래전부터 국제적으로 공인되여있었다는것을 말해준다.

국제조약은 본질에 있어서 주권국가들사이의 자원적인 의사합의이다.근대시기의 국제관습법과 현대국제법인 《조약법에 관한 윈협약》에서는 다같이 국가대표자에 대한 강요로 체결된 조약은 무효라고 규정하고있다.

일제는 이러한 국제법적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고 《을사5조약》을 군사적위협과 무지막지한 강박의 방법으로 날조하였다.

1905년 10월 27일 일본정부가 채택한 《한국보호권확립실행에 관한 각의결정의 건》에서는 조선봉건정부가 《보호조약》을 거절하는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서 일방적으로 한국에 보호권을 확립한다는것을 통고》한다고 결정하였다.

일제는 초기에 《을사5조약》을 《합법적인 조약》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하지만 고종황제의 반대에 부딪쳐 자기의 더러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여기서 기본은 조선봉건왕조의 최고대표자인 고종황제의 비준을 받지 못한것이다.

일반적으로 중요조약은 반드시 전권위임장과 국가대표자의 비준서를 필요로 하는 조약비준형식을 취하여야 한다.

이것은 근대시기 국제조약체결형식에서 보편적인것이였다.

위협과 강박만으로는 고종황제와 정부대신들의 의지를 꺾을수 없다고 생각한 일제는 군사적힘을 동원하기 시작하였다.많은 무력으로 황궁안팎을 겹겹이 포위한 침략자들은 궁앞에서 군사훈련까지 벌려놓았다.이런 분위기속에서 11월 17일 황궁에서 열린 《조약》문제에 관한 어전회의에서 조선봉건정부의 대신들은 《조약》의 체결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다.

협상이 결렬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받은 일본군국주의의 우두머리들중의 한놈인 이또 히로부미는 하세가와 조선강점군 사령관과 사또헌병대장을 데리고 궁궐로 들어가 정부대신들을 강제로 옆방에 모여놓고 《조약》에 찬성할것을 강박하였다.

여러 대신이 반대의사를 표명하자 이또는 그들을 로골적으로 위협, 강박하였으며 지어 옹고집을 부리면 죽여버리라고 고아댔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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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천대와 멸시를 받던 지난날을 잊지 말라 -중구역 경상동 24인민반에서 사는 리정규전쟁로병이 들려준 이야기-

주체109(2020)년 11월 14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얼마전 우리는 한 전쟁로병을 만나기 위해 창전거리로 향하였다.풍치수려한 대동강기슭에 병풍식, 계단식으로 일떠선 고층, 초고층살림집들이 한폭의 그림같이 들어앉은 창전거리에 이른 우리는 한 살림집에 도착하였다.

문이 열리는 순간 100살을 가까이한 로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가 바로 우리가 만나려고 하는 리정규전쟁로병이였다.

비록 머리에 흰서리가 짙게 내리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였어도 그는 정정해보였다.방에 들어선 우리의 눈에 제일먼저 안겨온것은 리정규로인이 여러차례나 전국로병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들과 훈장이 가득한 군복이였다.

눈길을 떼지 못하는 우리를 바라보던 그는 어서 앉으라고 자리를 권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전쟁로병이라고 저를 영광의 자리들에 내세워주시였습니다.

옛날같으면 나같은 평백성이 이런 사랑과 은정을 받아안을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일제강점시기에도 살아보았습니다.그때는 정말 사람이 아니였습니다.왜놈들은 우리 조선사람들을 짐승보다도 못하게 취급하면서 갖은 모욕을 주고 천대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뼈아픈 일들을 잊을수 없습니다.》

리정규전쟁로병은 회억에 잠겨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자기가 겪은 해방전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근 반세기동안이나 우리 인민에게 식민지노예생활을 강요하였습니다.》

충청북도에서 살던 리정규는 1930년대에 부모가 피땀흘려 마련해준 돈으로 소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였다.학교를 다니는 과정에 그는 나라를 빼앗긴 인민의 설음과 고통이 어떤것인지 뼈저리게 느끼였다.

간악한 일제는 우리 인민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조선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일본말을 배워주었으며 이름도 일본식으로 고치도록 강요하였다.이에 불응하는 조선학생들에 대하여서는 수업에 참가시키지도 않고 혹독한 벌을 가하였다.리정규도 조선말을 했다는 죄 아닌 《죄》로 온종일 책상을 들고 벌을 선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왜놈들은 수업이 끝나면 일본아이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조선아이들만 학교뒤에 있는 야산으로 끌고올라가 그곳에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서 나무들을 자르고 뿌리를 들춰내는 힘든 일을 시키였다.왜놈교원들은 연약한 아이들이 힘들어 쉬는것 같으면 회초리로 후려갈기군 하였다.조선아이들은 여러 시간 일을 하고 날이 어두워져서야 지친 몸으로 집에 가군 하였다.

어느날 학교마당에서는 운동회가 열리였다.운동회에서는 달리기경기가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조선교원과 일본교원사이에 진행되게 되였다.

왜놈들은 경기를 일본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조선민족의 《렬등성》을 보여주어 조선학생들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는데 써먹으려고 획책하였다.그러다나니 체육경기는 자연히 민족간 대결로 번져지게 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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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륜리마저 줴버린 패륜아들의 망동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09(2020)년 11월 14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11월 14일발 조선중앙통신)

섬나라족속들의 파렴치성이 국제사회의 분노와 경악을 자아내고있다.

일본외무성은 최근 홈페지에 성노예문제와 관련한 견해를 게재하면서 자국이 녀성들을 성노예로 만든 사실이 없다고 강변하였다.

지어 《강제련행》,《성노예》와 같은 표현들과 《20만명》 또는 《수십만명》이라는 수자 등은 력사적사실에 기초하고있다고 말하기 어려운것이라는 뻔뻔스러운 주장을 늘어놓았다.

이것은 일제에 의해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겪은 우리 나라 녀성들뿐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녀성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며 인간의 륜리마저 줴버린 패륜아들의 후안무치한 망동이다.

일본국가와 군부가 조직적으로,계획적으로 감행한 특대형반인륜범죄인 일본군성노예범죄는 결코 지워버릴수도 묻어버릴수도 없는 력사의 진실이다.

20만명에 달하는 조선녀성들을 비롯한 수많은 녀성들을 국가조직적으로 강제랍치,유괴하여 침략전쟁터로 끌고다니며 무참히 유린하고 대량학살한 반인륜적인 죄악은 이미 피해자들의 증언과 력사기록들에 의해 명백히 드러났다.

2018년에 공개된 《맥밀란보고서》와 1944년 9월 15일 일제침략군이 중국 운남성에서 성노예생활을 강요해온 조선녀성들을 야수적으로 살해한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자료 그리고 지난해 12월 일본내각관방이 새로 수집한 일본군성노예범죄에 군부와 외무성이 관여하였다는 23건의 공식문서,구일본군이 23개 나라 및 지역에 성노예녀성들을 가두었던 장소들을 표시한 지도 등은 인륜도 수치도 모르는 일본의 도덕적저렬성과 철면피성을 적라라하게 드러내보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며칠전에도 네데를란드의 한 언론인이 제2차 세계대전당시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서 조직적으로 도이췰란드녀성들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론박할수 없는 사실자료를 밝히면서 《일본정부가 도이췰란드를 포함해 더 많은 국가의 녀성들에 대해 전쟁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털끝만 한 죄의식은커녕 유엔총회무대에서까지 과거성노예범죄를 포함한 특대형반인륜범죄자료가 《무근거하고 도발적》인것이라고 줴쳐대며 완전부정해나서고있다.

일본이 죄악의 력사를 가리워보려고 발악할수록 반인륜범죄자로서의 추악한 몰골은 더욱 부각될뿐이다.

우리 민족과 국제사회는 인류앞에 지닌 법적,도덕적책임을 한사코 회피하는 전범국의 망동을 전세계녀성들의 이름으로 반드시 심판할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조선학교차별반대집회 // 朝鮮学校差別反対集会  2020年11月21日(土)14:00 文京区民センター

チュチェ109(2020)年 11月 14日 ウェブ・ウリトンポ

朝鮮学校の「無償化」排除に反対する連絡会

朝鮮学校差別反対集会

「官民ヘイトの中で私たちはどう闘うのか」

2020年 11月21日(土) 14時から(開場13時半)

文京区民センター 3A会議室(文京区本郷4-15-14)

 

※ オンラインお申し込みはコチラ

 

当団体の集会です!
広島高裁での先日の不当判決にも負けず、活動を展開していきます。
ご参集を!

「高校無償化」からの朝鮮学校排除が、発足間もない第二次安倍内閣により確定されてしまったのが2013年2月。同年には「ヘイトスピーチ」という言葉が流行語大賞にノミネートされるほど普及しました。他方で、地方自治体レベルでは朝鮮学校への補助金の停止・大幅減額が、政府だけでなく排外的市民にも後押しされつつ進行。この動向は「官」の差別と「民」の差別の連動を反映していないでしょうか。
この官民によるヘイトの共鳴、そして「幼保無償化」制度における外国人幼稚園排除、さらにはコロナ禍における学生支援緊急給付金からの朝鮮大学校排除と続く差別の連鎖を断つためには、各地に根差すより多くの心ある「民」により、ヘイトをする「民」を圧倒し、「官」を包囲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本集会はそのヒントを探る場、また各地の経験を共有する場とします。オンライン参加も可能です。ご参集ください。

 

■集会内容

◎記念講演「草の根ヘイトの実態」

安田浩一さん

(ノンフィクションライター)

1964年生まれ。週刊誌記者を経て、2001年よりフリー。
2012年『ネットと愛国 在特会の「闇」を追いかけて』(講談社)で講談社ノンフィクション賞、日本ジャーナリスト会議賞受賞。
2015年『ルポ 外国人「隷属」労働者』(『G2 vol.17』)で大宅ノンフィクション賞を受賞。
主な著書に『ルポ差別と貧困の外国人労働者』(光文社新書)、『ヘイトスピーチ』(文春新書)、『沖縄の新聞は本当に「偏向」しているのか』(朝日新聞出版)、『「右翼」の戦後史』(講談社現代新書)、『団地と移民』(角川書店)、『愛国という名の亡国』(河出書房新社)など。

 

◎各地域からの報告

  • 立川町田朝鮮学校支援ネットワーク・ウリの会
  • 朝鮮学校とともに・練馬の会
  • 東京朝鮮第六幼初級学校友の会
  • 東京朝鮮第四幼初中級学校を支援する区民の会(準)

 

 

■参加方法について

【オンライン(ZOOM)参加をご希望の方】
集会前日までに、下記の申込ウェブフォームからお申し込みください。
適宜、ZOOMでの参加方法を通知いたします。

申込ウェブフォーム

【会場にお越しの方へ】
感染病対策のため会場入り口での消毒剤の準備はしておりますが、マスク等は各自ご用意ください。体調のすぐれない方、発熱のある方は参加をご遠慮ください。

■参加費について
※会場参加もオンラインも、なるべくカンパをお願い致します。

カンパ 1口500円(複数口歓迎)

振込先:
▶ゆうちょ銀行 振替口座 00190-9-473007 「高校無償化」連絡会

▶他行から振込:ゆうちょ銀行 ゼロイチキュウ (019) 支店 当座0473007

朝鮮学校の「無償化」排除に反対する連絡会

mushokashien@yahoo.co.jp
TEL: 080-3930-4971
FAX: 03-3819-0467
https://mushoka2020.blogspot.com/

※ 旧ブログ 東京朝鮮高校生の裁判を支援する会

http://mushokashien.blog.fc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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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 천추에 용납못할 일제의 조선국권강탈범죄

주체109(2020)년 11월 13일 조선외무성

 

11월 17일은 일제가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 공포하여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때로부터 115년이 되는 날이다.

세칭 《을사보호조약》이라고 하는 이 《조약》은 1904년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위해 로일전쟁을 도발하고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일제가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하는데 간판으로 써먹은 범죄문서였다.

일본외무성이 조선의 대외관계를 감독, 지휘하며 조선정부가 일본정부의 중개없이 그 어떤 조약도 맺지 않는다는것 등 5개 조항으로 되여있다고 하여 《을사5조약》이라고 한다.

일찌기 조선을 집어삼킬 야망을 품고 그 실현을 위해 날뛰던 일제는 1905년 11월 17일 보병과 기병, 포병 등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하고 강압적으로 조약을 날조하였다.

조선침략의 원흉 이또 히로부미는 초안을 내놓고 조약체결을 강박하였으나 고종황제와 대신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자 조선정부의 대신들을 한사람씩 지명, 심문하고 위협, 공갈한 끝에 외부대신의 인장까지 훔쳐내여 제멋대로 찍고 《조인》을 선언하였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법적근거》의 하나로 삼은 《을사5조약》은 국제법상의 요구와 원칙을 란폭하게 유린하면서 일방적으로 날조, 공포한 당초부터 불법무효한 문서였다.

조선의 최고주권자였던 황제의 사전승인도, 수표도, 옥새날인도 받지 못하였을뿐아니라 명칭조차도 없는 조약아닌 이 《조약》을 내대고 일제는 밖으로는 외교권을 빼앗았으며 안으로는 《통감》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사5조약》이 조작된지 한세기, 일제의 식민지강점통치가 종식된지 75년이 넘는 오늘에 와서까지 일본당국자들은 불법무도의 《을사5조약》을 내걸고 조선강점의 《합법성》에 대하여 떠들어대고있다.

장장 40여년간의 식민지통치기간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100여만명이나 무참히 학살하고 20만명의 녀성들을 일본군성노예로 무참히 유린하였으며 840만여명을 랍치, 련행하여 노예로동을 강요하고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조선민족말살정책을 강행하여 우리의 말과 글 지어 성과 이름까지 빼앗으려고 날뛰였으며 귀중한 문화재부들과 자원을 파괴략탈한 일제.

가장 야만적이고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식민지파쑈통치로 특대형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일제와 같은 침략자, 살인마, 흡혈귀, 략탈자들을 력사는 알지 못하고있다.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조선의 국권을 빼앗고 우리 인민에게 식민지노예의 쓰라린 운명을 강요한 일제의 죄악의 력사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지워질수 없다.

우리는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일본의 만고대죄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을것이며 천추만대를 두고 원한의 대가, 피의 대가를 반드시, 반드시 받아내고야말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로정수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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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용납될수 없는 극악한 야수적만행

주체109(2020)년 11월 11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며칠전 연안군에 대한 취재길에서 우리는 일본군성노예피해자 강길순할머니의 며느리가 소아리에서 살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우리와 만난 리일군은 며느리인 서희순녀성의 집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시어머니는 왜놈들에게 꽃다운 청춘을 무참히 짓밟힌 치욕으로 하여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여기 소아리에 눌러앉게 되였습니다.그후 자기가 일본군성노예피해자라는 사실을 오래동안 숨기고 살았습니다.그러다가 일본반동들이 과거의 성노예범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덮어버리려고 책동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도 분노하여 사실을 죄다 터놓았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뗀 서희순녀성은 강길순할머니가 강요당한 성노예살이에 대해 자초지종 이야기해주었다.

전라북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난 강길순은 어려서부터 삯빨래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구장놈을 앞세우고 마을에 나타난 일본침략군놈들은 다짜고짜로 강길순을 자동차에 실었다.

20여명의 마을처녀들이 부산으로 끌려갔다.그곳에는 스무살안팎의 조선녀성들이 수백명이나 있었다.

일본침략군장교놈이 그들앞에 나서서 《이제부터 절대복종하라.너희들은 이젠 팔자를 고치게 되였다.잘 먹고 잘 입고 돈을 많이 벌수 있는 곳에 가게 된다.》고 지껄여댔다.

그리고 모두 배에 오르라고 명령하였다.

그때에야 강길순을 비롯한 처녀들은 자기들이 헤여나올수 없는 운명의 나락에 빠져들게 되였다는것을 직감하고 울며불며 야단하였다.

하지만 삼엄한 경계속에 놓인 그들은 도망칠수 없었다.

수백명의 조선녀성들을 실은 배는 밤낮으로 항행하였다.배가 가닿은 곳은 인도네시아의 어느 한 항구였다.

놈들은 조선녀성들을 10여명씩 자동차에 갈라태우고 숲속으로 끌고갔다.

강길순녀성이 당도한 곳은 길게 지은 단층건물이였다.그곳이 바로 일본군《위안소》였다.여기에서 강길순은 12명의 처녀들과 함께 성노예살이를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남자들과 마주서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처녀들에게 놈들은 짧은 앞치마만 두르게 하였다.낮에는 보통 20~25명이나 되는 병사놈들이, 밤에는 3~4명의 장교놈들이 달려들었다.

어느날 강길순은 기진맥진하여 일어나지도 못하고있었다.그런데 또 한놈이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그놈은 강길순이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고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때려 앞이발을 부러뜨렸다.강길순은 물에 빠져죽을 결심을 품고 도망치다가 놈들에게 붙잡혀 죽도록 매를 맞고 쓰러졌다.

놈들은 그에게 찬물을 끼얹었다.정신을 차리기는 했으나 아직 가쁜숨을 몰아쉬는 그를 놈들은 방으로 끌고들어가 또다시 릉욕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었던 다른 처녀들도 죽음을 각오하고 놈들을 물어뜯기도 하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놈들은 그들을 《위안소》마당에 끌어다놓고는 다 보는 앞에서 토막쳐 죽이기도 하고 몸에 말뚝을 박아 죽이기도 하였다.지어 독뱀들까지 풀어놓았다.독뱀한테 물리워 이리저리 딩굴며 비명을 지르다가 숨지는 그 참상은 차마 눈뜨고 볼수 없었다고 한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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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팽창의 서막을 열어보려는 위험한 망동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09(2020)년 11월 7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11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

얼마전 일본방위상이 기자회견에서 2030년대에 전개할 다음세대 스텔스전투기개발을 꾸준히 진행할것이라고 공표하였다.

영국신문 《인디펜던트》는 F-X로 알려진 다음세대 전투기개발에 대해 일본정부는 《중국과 북조선의 증대되는 위협에 대처할수 있는 군사력을 키우는 사업》이라고 주장해나섰으며 이를 위해 방위성이 2021년 예산에서 5억 5 600만US$를 요구하였다고 밝혔다.

우리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구실밑에 일본이 다음세대 스텔스전투기개발에 박차를 가하고있는것은 무력현대화를 다그쳐 대조선재침으로 해외팽창의 서막을 열어보려는 위험천만한 군사적망동이다.

력사적으로 일본은 침략과 전쟁,략탈을 유일한 생존방식으로 삼아온 범죄국가이다.

지난 세기 일본이 감행한 모든 정복전쟁들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한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민족을 식민지노예화하기 위한 침략정책의 산물이였다.

패망후에도 일본의 위정자들은 또다시 대륙에로 침략의 마수를 뻗쳐 《대동아공영권》망상을 실현하기 위해 군국화의 길로 줄달음쳐왔다.

오랜 기간 집요하게 추진된 군사대국화책동으로 오늘 일본의 군사력은 이미 본토방어수준을 릉가하여 완전한 공격무력으로서의 뚜렷한 질적,량적변화를 이룩하였다.

올해에 들어와서만도 《자위대》에 《우주작전대》와 《함대정보반》을 내오고 싸이버방위부대편성을 위한 교육전문부대와 전자전전문부대 등 새로운 부대창설에 열을 올리고있다.

군사기술적지표들이 새롭게 향상된 미싸일들을 렬도의 요충지들에 집중전개하는 한편 외딴섬방위와 탈환 등의 기만적인 명분아래 각종 군사연습을 벌려놓고 실전능력을 높이고있다.

다음세대 전투기와 공격과 방어가 가능한 2중용도의 군사장비들의 개발도입을 비롯하여 일본이 추구하는 무기체계들은 명백히 원거리공격수단으로서 침략전쟁장비들이다.

선제공격위주의 미국산 무장장비구입과 신형잠수함의 진수,《적기지공격능력》보유를 위한 무력증강,정례화된 해외진출 등은 《전수방위》를 근간으로 하는 일본헌법과 전범국의 지위를 규제한 국제협약들에 대한 악랄한 도전으로 된다.

《침략당하지 않을만큼의 공격력을 갖추는것이 곧 방위력》이라는 사무라이후예들의 날강도적인 론리는 절대로 통할수 없다.

일본이 끝끝내 대조선재침의 포성을 울린다면 그것은 더욱 수치스러운 패망을 선고하는 장송곡으로 될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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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차별책동에 편승한 일본법원의 판결에 항의

주체109(2020)년 11월 6일

 

일본 후꾸오까조선학원과 규슈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 학부모를 비롯하여 도꾜, 교또, 오사까, 히로시마, 아이찌, 효고, 야마구찌의 재일동포들과 시민들이 10월 30일 일본정부의 조선학교차별책동에 편승한 후꾸오까고등재판소의 판결에 항의하였다.

이날 후꾸오까고등재판소는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조선고급학교를 제외한 일본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후꾸오까조선학원과 규슈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졸업생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당국의 차별적이며 부당한 판결에 분노한 후꾸오까조선학원과 규슈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졸업생들은 즉시 기자회견을 가지였다.

그들은 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지닌 재판소가 아이들의 배울 권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일본정부의 차별정책에 적극 가담해나섰다고 하면서 법원당국을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한 문제는 재일조선인학생들을 과녁으로 삼은 극히 위법적인 처사라고 그들은 까밝혔다.

그들은 법원당국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정부의 조선학교차별책동에 편승하여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고 단죄하였다.

기자회견을 끝마친 다음 그들은 집회를 가지였다.

도꾜, 교또, 오사까, 히로시마, 아이찌, 효고, 야마구찌의 재일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이 여기에 합세하였다.

발언자들은 후꾸오까고등재판소의 이번 판결을 통해 민족교육을 말살하려는 일본정부의 속심을 다시한번 똑똑히 알게 되였다고 주장하였다.

일본의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책동이 철회될 때까지 투쟁할것이라고 그들은 강조하였다.

집회참가자들은 《조선학교차별 반대!》 등의 구호를 웨쳤다.

이날 후꾸오까조선학원과 《조선학교무상화실현 후꾸오까련락협의회》는 후꾸오까고등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항의성명들을 발표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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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 조선동해는 우리 나라 바다의 고유한 명칭

주체109(2020)년 11월 5일 조선외무성

 

얼마전 18세기 영국에서 조선동해를 《조선해》(Sea of Korea)로 표기하여 제작된 세계지도가 또다시 세상에 공개되였다.

시원적으로 우리 나라의 동해를 두고 《동해》, 《조선해》, 《조선동해》로 표기하고 불러온데 대한 또 하나의 객관적인 증빙자료이다.

우리 민족은 일본국가가 형성되기 썩 이전에 벌써 울릉도와 독도를 령유하고 동해의 섬들에 정착생활을 하면서 조선동해를 항해정복하였다.

우리의 선조들이 예로부터 조선과 일본사이의 바다를 조선동해로 서술하고 표기하여온 력사자료들은 수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우리 나라의 오랜 력사문헌자료들인 1145년의 《삼국사기》와 13세기말에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조선동해를 가리켜 《동해》또는 《조선해》로 서술하였다.

일본사람들자신도 《조선해》로 표기된 지도를 만들어 리용하였다.

이미 알려진것처럼 일본에서 1794년에 만든 아시아지도와 1810년에 제작되여 쓰인 세계지도 등은 그것을 말해준다.

《조선해》의 표기가 《일본해》로 바뀌기 시작한것은 일제의 조선침략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04년 로일전쟁직후부터였다.

당시 조선의 출판보도권을 강탈한 일제는 초기에 조선근해는 《조선해》, 일본근해는 《일본해》로 갈라 표기하는 교활한 술책에 매달렸다.

1910년 《한일합병》을 날조하고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 말과 글을 빼앗고 모든 인적, 물적자원을 깡그리 략탈해갔으며 문화와 지어는 조선의 고유한 바다명칭까지 말소해버리였다.

이렇듯 《일본해》표기는 일본의 완전한 날조품으로서 조선강점정책과 식민지통치의 범죄적산물이다.

조선동해의 명칭을 정확히 표기하는것은 단순한 지명상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일제의 조선침략과 강점통치에 의하여 외곡날조된 력사를 바로잡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력사적정통성으로 보나, 지명학적견지에서 보나 조선동해는 우리 나라바다의 고유한 이름이며 더이상 《일본해》로 외곡되여서는 안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민경무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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