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조일관계/朝日関係’ Category
론평 : 정치불량배의 파렴치한 치적타령
정치적미숙성과 도덕적저렬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일본의 속성이다.
얼마전 정부개편으로 《랍치문제》담당상의 벙거지까지 뒤집어쓴 일본내각관방장관 스가가 인터네트를 통해 늘어놓은 망발이 사람들을 아연케 하고있다.
이자는 자기가 중의원의원시절부터 북조선문제에 깊숙이 개입하여 《만경봉-92》호의 입항금지와 총련시설들에 대한 고정자산세감면조치철회 등을 주도해왔다고 횡설수설하였다.심지어 저들의 반공화국, 반총련책동에 미국을 끌어들인것도 자기라고 하면서 앞으로도 외부세력과의 협력밑에 우리에 대한 제재압박을 강화하여 《랍치문제》해결에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흰소리를 쳤다.
머리가 빈자 혀가 긴 법이다.
스가의 망발은 정치불량배의 역겨운 치적타령이 아닐수 없다.그것은 오랜 기간 일본정치의 불치의 병으로 되여온 반공화국, 반총련정책의 뚜렷한 발로이기도 하다.이자가 우리 공화국과 총련에 대한 적대시행위를 자기가 주도한것이라고 공공연히 인정한것만 놓고보아도 그의 반공화국, 반총련적대의식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가를 잘 알수 있다.
《만경봉-92》호가 《불법송금과 핵, 미싸일개발에 관여》하였다고 생트집을 걸면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입항금지를 립법화하고 총련과 조선학교, 재일동포들에 대한 탄압을 일관하게 집행해온 인물이 바로 스가라는것이 이번에 본인의 실토로 드러났다.다름아닌 스가에 의해 조국을 방문하는 총련일군들을 대상으로 한 《재입국금지대상의 확대》와 《송금제한》, 《3국을 경유한 대조선무역차단》따위의 독자적인 제재조치들이 실시되였다.
총련의 고정자산들에 대한 불법적이며 차별적인 과세조치, 재일동포들의 출입국권리에 대한 로골적인 침해행위, 총련관계기관들과 동포살림집들에 대한 잇달은 강제수색의 주범도 이자라는것이 명백해졌다.
극도의 인종주의와 민족배타주의로 악명높았던 나치스분자들도 무색케 할 이 악독하고 비렬한 행위들은 철저히 일본집권자의 사촉밑에 스가가 감행한 망동으로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일본반동지배층의 흉악한 속심이 그대로 반영된것이다.우리 공화국을 적대시하고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을 박해하는것을 업으로 삼아 내각관방장관자리를 타고앉은 스가는 섬나라족속들의 도덕적저렬성과 파렴치성의 표본이다.
사실들은 일본반동들이야말로 대세의 흐름도, 세계여론도 안중에 없으며 그들이 당하는 고립과 배격은 응당한것이라는것을 증명해주고있다.
지금 조선반도의 정세흐름이 우리의 주동적인 노력으로 긴장완화에로 지향되고있는것은 내외의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을 받고있다.그런데 일본반동들은 시대착오적인 반공화국대결책동에 계속 매달려 세인의 조소와 규탄을 받고있다.
그 누구를 고립시키려다가 오히려 저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스가를 비롯한 일본반동들은 갈수록 못되게 놀아대고있다.섬나라족속들의 추태는 군사대국화, 해외팽창야망실현에 광분하며 대세의 흐름에 역행하다가 외토리신세가 되고 국제사회의 규탄여론이 날로 높아가는데 바빠맞은자들의 가련한 몸부림에 불과하다.조선반도에 조성된 평화기류에는 아랑곳없이 저들의 더러운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분별없이 헤덤비는 일본반동들이야말로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암적존재이다.(전문 보기)
론평 : 성노예범죄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최근 미국의 수도 워싱톤에서 일본군성노예범죄를 취급한 첫 국제영화축전이 열렸다.여러 나라들이 참가한 영화축전의 주제는 《전쟁중 성폭력,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다.9편의 영화가 출품되였다.
영화축전은 일본군성노예범죄의 진상을 세계에 널리 폭로하는 또 하나의 계기로 되였다.
현실은 일본이 성노예범죄를 절대로 부정할수도 감출수도 없으며 일본의 과거청산은 회피할수 없는 국제사회의 요구라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20세기 전반기에 일본이 저지른 성노예범죄는 국제법적시효가 적용될수 없는 특대형반인륜죄악이다.더우기 문제로 되는것은 그것이 과거 일본정부의 직접적인 개입밑에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감행된 범죄라는것이다.법적시효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성문법에 의하면 전쟁범죄나 인도에 관한 범죄, 노예범죄 등 기본인권과 관련한 범죄에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일본반동들은 때없이 성노예피해자들을 《매춘부》라고 모독하며 여론화하고있다.이러한 나발은 저들의 과거죄악을 감추기 위해 성노예피해자들의 인격을 모욕하는 극악한 궤변이다.
1944년 일본군이 중국 운남성에서 조선인성노예들을 학살한 력사적사실이 기록된 동영상자료도 그것을 립증해준다.당시 일본군이 패주하기 직전에 학살한 조선인성노예 수십명이 모두 매춘부였다고 한다면 지성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믿지 않을것이다.그들이 《돈을 바라고 자원적으로 된 매춘부》라면 일본군이 구태여 집단적으로 학살할 필요가 없다.일본군은 성노예범죄가 세상에 공개되는것이 두려워 그들을 모두 죽였다.
20만명에 달하는 조선인성노예들 대다수가 일본군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당하였다.피해생존자들과 목격자들의 증언들에는 일본군이 성노예들을 고스란히 살려서 내보낸적이 없다는 자료들이 적지 않다.
일본은 이 천인공노할 성노예범죄를 절대로 부정할수 없다.
일본군성노예범죄를 온 세상에 폭로하기 위한 국제적움직임이 활발해지고있다.세계 여러 나라들에 성노예소녀상과 추모비 등이 계속 설치되고있다.
일본이 아무리 돈주머니를 흔들며 그것을 가로막아보려 해도 통하지 않고있다.
지난 9월 미국에서는 학생들에게 일본군성노예력사를 교육할것을 목적으로 한 웨브싸이트가 새로 개설되였다.웨브싸이트는 학생들에게 력사적배경자료, 록화물, 참고문헌, 유엔의 중요문서들 그리고 주요증거를 제공한다고 한다.
이번에 일본군성노예범죄를 주제로 한 국제영화축전이 진행된것도 그러한 움직임의 일환이다.
이것은 일본에 대한 정치적압박으로 된다.(전문 보기)
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10대의 소년, 소녀들도 랍치대상이였다
지난날 조선을 강점한 일제침략자들은 조선사람들을 짐승사냥하듯 닥치는대로 랍치, 유괴, 강제련행하여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았는가 하면 탄광, 광산, 군사시설물건설장, 《위안소》 등지에 끌고가서 노예처럼 취급하고 혹사시켰으며 나중에는 무참히 학살하였다.
그중에는 10대의 어린 소년들과 소녀들도 있다.
피비린내나는 일제의 극악한 인권유린만행을 일제에게 강제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랍치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일부 돌이켜보자.
-피해자 안성득
나는 15살때 산에서 땔나무를 한짐 해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까닭도 모르고 경찰서로 끌려갔다.경찰서에는 여러명의 나와 같은또래 아이들이 이미 붙들려와있었다.경찰서장놈은 교활하게 웃으면서 돈을 많이 벌수 있는 곳에 가게 되였으니 잔말말고 시키는대로만 하라고 지껄이였다.그리고는 가지 않겠다고 소리치며 발버둥치는 우리들을 강제로 자동차에 싣고 역으로 가서 화물렬차에 짐짝처럼 던져넣고는 밖으로 자물쇠를 채웠다.우리가 끌려간 곳은 일제놈들이 운영하는 어느 한 공장이였다.철조망으로 빙 둘러싼 공장의 구석구석에서는 군견들의 사나운 울부짖음소리가 울렸고 무장한 일제놈들이 보초소에서 로동자들을 감시하고있었다.우리들은 이 공장에서 억울한 노예로동을 강요당하였다.한창 배불리 먹고 배우며 뛰놀아야 할 나이에 가혹한 노예로동을 강요당하면서 굶주림에 시달리다보니 어떤 소년들은 각종 전염병과 질병에 걸려 피지도 못한채 고통을 당하다가 죽어갔다.
-피해자 김군자
16살 되던 해에 나는 군복을 입은 사나이에 의해 중국 훈춘에 있는 깅가꾸라는 《위안소》로 끌려갔다.그때 나는 경찰을 해먹던 양아버지의 심부름을 가는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성노예살이를 강요당하면서 뒤늦게야 나는 내가 그곳에 왜 끌려가게 되였는가를 알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피해자 최봉선
나는 14살때 한 부자집에서 아이보개노릇을 하고있었다.그러던 어느날 일본인경찰과 헌병이 나를 찾아와 잘 먹으면서 살수 있는 곳에 데려다주겠다고 꼬드겼다.내가 거절하자 경찰과 헌병은 강제로 나를 끌어다 마을에서 5km나 떨어져있는 민가에 가두었다.거기에는 벌써 17명의 다른 처녀들이 와있었다.그다음 그들은 《명월관》이라는 간판이 나붙은 건물로 끌고갔다.그곳은 사실상 지긋지긋한 《위안소》였다.
-피해자 심달연
내가 12~13살 나던 해의 어느날 언니와 함께 나물을 캐고있는데 2명의 사나이가 트럭을 몰고와 우리들을 강제로 차에 태웠다.차안에는 이미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가던 여러명의 소녀들이 있었다.소녀들이 소리를 지르기만 하면 사나이들은 그들을 손으로 때리거나 발로 걷어차군 하였다.(전문 보기)
《을사5조약》을 날조한 일제의 만고죄악
일제가 《을사5조약》을 날조한 때로부터 113년이 된다.
1905년 11월 17일 일제는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불법비법의 《을사5조약》을 날조하였다.동서고금 그 어디에도 총칼을 내대고 대포를 끌고와 《조약》체결을 강박하고 국왕의 서명도 국새날인도 없는 조약 아닌 《조약》을 날조한 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초 남조선의 한 대학교수가 발표한데 의하면 조약원본에 고종황제의 비준이 없었고 조약명칭도 적혀있지 않았다.조선말로 된 원본도 그때 일본측이 만든것이였다.다른 한 교수는 미국의 콜롬비아대학에서 고종황제가 미국인선교사에게 준 신임장과 당시 다른 나라 수반들에게 보낸 친서를 찾아냈다.거기에는 고종황제가 《을사5조약》은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날조된것이며 자기는 승인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로일전쟁당시의 일본군자료들을 모아 편찬한 《륙군정사》에 실린 당시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세가와의 보고서를 통해서도 《을사5조약》이 강압적으로 날조되였다는것이 폭로되였다.보고서에서 하세가와는 《을사5조약체결당시 일본군 기병련대와 포병련대까지 한양성내에 투입하여 완전장악했다.》고 하면서 조선강점의 제1공로자가 자기라고 주장하였다.《륙군정사》는 또한 일본관료배들의 역할에 의한것으로 알려져있던 일제의 조선강점이 실지에 있어서 군부의 주도적역할에 의한것이라는데 대해서도 밝히고있다.
일제는 이런 강도적인 《을사5조약》을 《법적근거》로 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무참히 짓밟았다.식민지통치기간 일제가 실시한 전대미문의 조선민족말살정책으로 우리 인민은 피눈물나는 노예생활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에 의해 조선의 수많은 청장년들이 죽음의 전쟁터들과 고역장들에 끌려가 불행을 당하였다.
일제가 랍치, 유괴, 강제련행해간 조선의 청장년은 중일전쟁도발후에만도 840만여명에 달하였다.
일제는 강점기간 조선사람들의 목숨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앗아갔다.총으로 쏴죽이고 때려죽이고 칼로 찔러죽이고 생매장해죽이였다.지어 산 사람을 끓는 물에 집어넣어 죽였는가 하면 눈알을 뽑고 사지를 찢어죽이고 불태워죽이였다.
식민지통치기간 일제는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성노예화하는 특대형반인륜범죄를 감행하였다.
일제가 성노예제도를 내온 목적은 단순히 저들의 전투력을 보존하고 기강을 세우기 위한데만 있지 않았다.그것은 조선민족을 말살하고 우리 나라를 영원히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것으로서 철두철미 조선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이였다.
간악한 일제는 조선민족의 넋과 민족성까지 말살하기 위하여 귀중한 재보인 력사책들을 수많이 소각하였을뿐만아니라 우리 말과 글,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마저도 빼앗으려고 발악하였다.
일제는 식민지통치기간 《내선일체》, 《동조동근》의 기만적인 구호밑에 《황국신민화》정책을 강행하였다.각종 악랄한 방법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그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비국민》, 《불온한 사람》으로 몰아 박해하였다.
철도, 운송기관들에서는 조선사람의 이름이 붙은 화물취급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조선식의 성과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게 하였다.심지어 이름을 고치지 않은 사람들의 자식들에 한해서는 출생신고조차 받아주지 않았으며 학교에도 갈수 없게 하였다.(전문 보기)
일본법조계 일본이 일제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
9일 남조선신문 《한겨레》에 의하면 일본의 법조계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4명의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일본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일본변호사 100여명은 5일 일본정부가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본질을 오도하고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중의 한 변호사는 7일 기자회견을 가지고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는 받아들일수 없다는 일본정부의 립장은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말하였다.
일본정부가 지금까지 강제징용피해자배상문제는 해결되였다고 주장하여왔지만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 패하게 될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그는 손해배상판결이 확정된 이상 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며 앞으로 일본정부는 모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전문 보기)
[정세론해설] : 민족적분노를 자아내는 차별행위
총련의 민족교육에 대한 일본당국의 부당한 차별조치가 내외의 강력한 항의규탄을 불러일으키고있다.지난 2일 도꾜에 있는 일본문부과학성앞에서는 총련 조선대학교 학생들과 수많은 재일동포들, 일본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조선학교에 대한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을 요구하는 투쟁이 벌어졌다.
발단은 최근 조선학교지원문제와 관련한 도꾜고등재판소의 부당한 판결이였다.도꾜고등재판소는 이번 재판에서 조선학교만이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에서 제외되여야 할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채 당국의 그릇된 처사를 비호두둔하는 판결을 내리였다.이에 격분한 재일동포들은 《조선학교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지 말라!》, 《모든 아이들에게 배울 권리를 보장하라!》 등의 구호들을 웨치며 일본당국의 차별책동을 단죄하였다.
재일조선학생들은 지난날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땅에 끌려간 조선사람들의 후손들이며 그들이 공부하는 조선학교는 합법적인 민족교육기관이다.하지만 일본은 저들의 응당한 법적, 도덕적책임을 외면하고 재일조선인민족교육을 말살하기 위해 갖은 책동을 다하고있다.그와 관련하여 일본의 각계 시민사회단체들도 조선학교를 차별적으로 대하는것은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이며 일본헌법이나 국제조약에 어긋나는 처사로 된다고 비난하면서 교육문제를 외교적, 정치적문제에 리용하려는 어리석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력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그릇된 행위를 그만둘것을 요구하고있다.
일본이 감행하고있는 조선학교차별책동에 대한 우리 인민의 분노는 하늘에 치솟고있다.(전문 보기)
[정세론해설] : 과거죄악을 부정하는 후안무치한 망동
일본기업이 일제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불할데 대한 남조선대법원의 판결과 관련하여 일본반동들이 실로 후안무치하게 놀아대고있다.
일본수상 아베는 중의원예산위원회라는데서 《있을수 없는 판단》이라느니, 《모든 선택안을 시야에 두고 대응》하겠다느니 하고 고아댔다.그 아래것들도 저저마다 《수용할수 없다.》느니, 보상은 남조선당국이 해야 한다느니 하는 고약한 수작을 내뱉으면서 청구권관련문제대책실을 내온다, 제3국을 통한 중재위원회개최를 검토한다 하며 소란을 피우고있다.이런 속에 일본의 피고기업과 경제단체들까지 나서서 강제징용피해자소송은 《이미 해결된 문제》라느니, 《경제협력에 영향을 미칠것》이라느니 하고 떠들어대고있다.
그야말로 적반하장과 파렴치성의 극치가 아닐수 없다.일본반동들이 일제강제징용피해자배상에 대한 판결에 반발해나서고있는것은 과거죄악을 회피해보려는 섬나라오랑캐들의 후안무치한 본태를 낱낱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란동이다.
이번에 내려진 일제강제징용피해자배상과 관련한 판결은 천추만대를 두고도 씻을수 없는 일본의 과거죄악에 대한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려는 남조선민심의 반영이다.
일제는 동서고금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로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참혹한 불행과 고통, 재난을 들씌웠다.인류력사에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략과 략탈로 살쪄온 제국주의자들의 범죄행위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하지만 과거 일제가 840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을 유괴, 랍치, 강제련행하여 죽음의 전쟁터와 고역장들에 내몰고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성노예로 만들었으며 수백만명의 우리 민족을 야수적으로 학살한것과 같은 치떨리는 반인륜적만행은 없었다.
섬나라를 통채로 팔아도 씻을수 없는것이 일본의 만고죄악이고 백년천년이 지나도 아물수 없는것이 일제야수들이 우리 민족의 가슴에 입힌 상처이다.
그 무엇으로 배상해도 다 갚을수 없는 일본의 과거죄악에 비하면 사실상 이번 판결은 너무도 가벼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이 《국제법위반》이니, 《상식밖의 판결》이니, 《강력한 대응》이니 하고 제편에서 억울한 변을 당한듯이 고아대고있는것은 이자들이 얼마나 낯가죽이 두터운 날강도들이며 패륜패덕한들인가 하는것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일본반동들이 제아무리 생떼를 써대며 발악한다 해도 력사에 뚜렷이 새겨진 특대형과거죄악을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고 지워버릴수 없다.일본반동들이 과거죄악을 부정하며 파렴치하게 놀아댈수록 우리 민족과 국제사회의 대일적개심만을 더욱 고조시킬뿐이다.
지금 남조선 각계는 력사적사실을 부인하는 아베는 치졸하기 그지없다, 일본의 뻔뻔스러운 추태는 저들의 과거침략을 정당화하는것과 다름없다고 준렬히 단죄규탄하면서 일본정부의 직접적인 사죄와 배상, 태도변화를 강력히 요구하고있다.(전문 보기)
론평 : 반인륜범죄를 덮어버리려는 어리석은 술책
일본반동들이 이미 다 해결된 랍치문제를 가지고 또다시 소동을 일으키고있다.최근 랍치문제담당상을 겸직하게 된 내각관방장관 스가가 랍치문제종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희떠운 나발을 불어댔다.그를 랍치문제담당상으로 임명한 아베도 공동기자회견에서 랍치문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뇌까리였다.
일본군성노예문제를 비롯한 반인륜범죄를 덮어버리기 위한 어리석은 술책이다.
일본은 최대의 랍치범죄국이다.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극악한 특대형반인륜범죄인 일본군성노예범죄가 그것을 여실히 고발해주고있다.일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수십년간에 걸친 식민지통치기간 20만명에 달하는 조선녀성들을 랍치, 유괴, 강제련행하였다.깊은 밤 농가를 습격하여 녀인들을 잡아갔으며 대낮에 자동차를 끌고와 논밭에서 일하거나 길가던 녀성,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녀성들을 짐짝처럼 걷어싣고 강압적으로 끌어갔다.
범죄자들은 랍치한 녀성들을 어떻게 했는가.중국과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태평양상의 섬들에 끌고다니며 몸서리치는 성노예생활을 강요하였다.저들의 죄행을 감추기 위하여 패망을 앞두고 잔인한 방법으로 수많은 성노예들을 집단적으로 살륙하였다.
일본이야말로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특대형랍치범죄국이다.
하다면 일본의 아베일당이 무엇때문에 가을뻐꾸기같은 랍치문제종식소리를 계속 줴치고있는가.그 밑바탕에는 랍치문제를 국제적으로 여론화하여 우리 나라의 대외적권위를 떨어뜨리는것과 동시에 조일관계문제의 본질을 외곡하여 두 나라사이의 관계에서 최대의 미해결문제인 과거청산을 회피하고 조선반도문제에 머리를 들이밀어보려는 어리석은 타산이 깔려있다.
일본반동들이 과거죄악을 덮어두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에 계속 집요하게 매달릴수록 내외의 더 큰 비난과 조소를 자아낼뿐이다.
국제사회는 랍치범죄국인 일본이 특대형반인륜범죄의 책임을 지고 한시바삐 과거청산에 나설것을 요구하고있다.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들에 일본군성노예소녀상과 추모비들이 련이어 설립되는 등 일본의 극악한 인권유린범죄를 규탄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벌어지고있다.모든 성노예소녀상들과 추모비들은 랍치국가인 일본의 특대형반인륜범죄를 낱낱이 고발해주고있다.일본은 국제적으로 파급되여가는 성노예소녀상설치를 막아보려고 돈도 뿌리고 외교적압력도 가하며 무진 애를 쓰지만 그것은 공연한 짓거리로 되고있다.미국마저도 성노예문제에서만은 차마 손아래동맹자의 편을 들지 못하고있는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일본의 정객들에게 티끌만 한 죄의식이라도 있다면 새빠지게 랍치문제종식을 떠들기 전에 무엇때문에 일본군성노예소녀상들이 계속 세워지고있는가 하는것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것이다.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특대형반인륜범죄는 절대로 덮어버릴수도 지워버릴수도 없다.
일본은 오그랑수를 쓰지 말고 한시바삐 과거청산에 나서야 한다.(전문 보기)
일본정부는 과거죄악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하라 -남조선 각계가 주장-
최근 남조선언론의 보도들에 의하면 대법원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4명의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의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일본이 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일본수상과 외상을 비롯한 고위정객들은 배상문제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였다.》, 《있을수 없는 판단》, 《우호협력관계의 법적기반을 근본부터 뒤집는 판결》, 《모든 대책을 강구해나갈것이다.》는 망언을 늘어놓으며 남조선대법원의 판결을 부정하였다.
일본언론들도 《대법원의 결정에 한국정부가 동조할 경우 일본정부는 모든 강경조치를 검토할것이다.》 등으로 남조선당국을 위협하는 기사들을 련일 실었다.
이에 격분한 남조선의 여러 정당들은 일본이 대법원의 판결을 성실히 받아들일것을 요구하면서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법적배상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반인륜적범죄에는 그 어떤 공소시효의 한계도 없다는 원칙이 확립되여야 한다.》, 《일본정부는 더이상 력사를 부정해선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전문가들과 력사학교수들도 대법원의 판결은 력사의 준엄한 심판이라고 하면서 일본당국이 과거죄악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뉴스y》를 비롯한 언론들은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강제징용의 아픈 력사가 다시 주목받고있다고 하면서 일제의 과거죄악에 대해 폭로하였다.
언론들은 일본이 1965년 《한일협정》체결로 타결되였다고 하는 강제징용문제는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고 《해결》을 선포한 사건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식민지지배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고 박정희는 오히려 《비상계엄령》을 발동하여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였다, 그때로부터 《한일협정》이 정당한 배상은커녕 민족의 자존심을 송두리채 내던진 굴욕외교라는 론쟁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고 하면서 《한일협정》의 부당성을 폭로하였다.
각계인사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 등을 가지고 일본이 지금까지도 불법적식민지지배에 대한 사죄와 옳바른 력사인식을 회피한채 후안무치한 태도로 일관하고있다, 일본이 미래지향적관계구축을 위해서는 반인권적불법행위에 대해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는것을 명심해야 할것이다고 하면서 일본당국이 대법원의 판결에 승복할것을 요구하였다.(전문 보기)
론평 : 어리석은자들의 부질없는 망동
일본반동들이 유럽동맹과 공동으로 유엔총회에서 《북조선인권결의》를 또다시 채택해보려고 발악하고있다.적대세력들이 해마다 꾸며내여 유엔총회에 제출하고있는 《북조선인권결의안》이라는것은 허위와 기만, 악의에 찬 비방중상으로 일관되여있는 협잡문서로서 별로 새삼스러운것이 아니며 론할 가치도 없다.
일본과 유럽동맹의 《북조선인권결의안》조작책동은 우리 공화국의 존엄높은 영상에 먹칠을 하고 우리의 신성한 사회주의제도를 압살하기 위한 모략과 범죄적계책의 산물이며 대조선적대의식이 골수에 배긴자들의 부질없는 망동이다.
인간증오사상이 만연하고 변태적인 생활방식에 물젖어 있는 서방나라들이 다른 나라들의 《인권》문제를 시비질하는것자체가 푼수도 없고 주제넘은짓이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반인륜범죄국가이다.
지난 세기 전반기에 일제는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우리 인민에 대한 중세기적인 탄압과 학살만행을 대대적으로 감행하였다.병사들의 성욕충족을 전쟁능력제고의 중요요인으로 보고 수많은 타민족녀성들을 전쟁마당에 끌고다니며 성노예범죄의 희생물로 만든 특대형인권유린행위를 저질렀다.과거 우리 민족과 아시아나라들을 대상으로 치떨리는 범죄행위를 감행하고도 아직까지 그에 대해 사죄도 하지 않고있는 철면피한 나라가 일본이다.성노예피해자들을 《매춘부》로 모독해나서고있는 일본반동들의 망동은 그들이야말로 도덕과 량심을 지닌 인간이기를 그만둔 야만의 무리, 불량배라는것을 확증해주고있다.
일제의 조선강점과 식민지통치로 산생된 총련과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악랄한 탄압만행을 끊임없이 벌리고있는 인권유린범죄국도 다름아닌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혈육간에도 서로 죽일내기를 하는것이 례상사로 되고있다.온갖 사회악과 반인륜범죄가 범람하는 흉악한 인권유린국, 인권말살국이 바로 지금까지 저들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권선진국》인것처럼 행세해온 일본의 진면모이다.
인권유린국으로 악명높은 일본이 있지도 않는 그 누구의 《인권문제》를 떠들며 반공화국《인권》모략소동의 앞장에서 날뛰는것이야말로 정의와 인권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고 우롱이다.
하다면 인권문제를 론할 초보적인 명분이나 체면도 없는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주제넘게 다른 나라들의 인권상황에 대해 함부로 시비중상하며 삿대질을 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거기에는 저들의 험악한 인권죄악을 가리우자는데만 목적이 있지 않다.
일본이 반공화국《인권》모략소동에 나서는데는 《인권문제》를 구실로 우리에 대한 제재압박의 도수를 더욱 높이고 조선반도의 긍정적분위기에 훼방을 놓으려는 흉심이 짙게 깔려있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맹랑하고 부질없는짓이다.(전문 보기)
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노예로동을 강요하기 위해 감행한 죄악
2003년말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는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의 일부에 해당되는 42만여명의 명단을 입수하여 공개한바 있다.
위원회가 이 명단을 분석조사하는 과정에 일제의 《농경근무대》에 끌려가 노예로동을 강요당하였던 피해생존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찾을수 있었다.그들의 증언을 통하여 《농경근무대》가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하는 방법으로 조직운영된 범죄적인 실체였다는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였다.
《농경근무대》는 일본국내의 부족되는 식량을 생산할 목적밑에 구일본륙군이 조직한 생산부대였다.일제의 침략전쟁과 그의 계단식확대는 막대한 인적 및 물적자원의 소모를 초래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일본국내의 병력과 로동력은 고갈상태에 빠지게 되였다.하여 일제는 《징병》의 명목으로 수많은 조선청년들을 일본에 끌어다가 《농경근무대》에 배속시키고 부침땅개간을 비롯한 고된 로동에 마소처럼 내몰았다.
일본의 《아사히신붕》 2003년 3월 15일부에는 《조선인 징병하여 식량증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였다.기사는 태평양전쟁말기인 1945년 4월 조선에서 《징병》된 병사들을 식량증산 등에 동원시켰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구일본군의 전보문을 오사까부의 고등학교 교원이 발견하였다는데 대해 전하였다.전보문에 의하면 당시 일제는 서부(규슈지방)군인원 1만 5 700명, 각 군관구 《자활대》인원 1만 7 000명, 《농경근무대》인원 1만 3 000명 등으로 일본에 끌어간 4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청장년들에게 무기대신 삽, 괭이 등을 주었다고 한다.
《농경근무대》에 끌려갔던 수천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의 명단을 통해서도 그들이 1945년 봄경에 평안남북도와 황해도, 함경남도, 충청남북도, 강원도 등 조선의 거의 모든 지역들에서 끌려간 청년들이라는것이 확인되였다.
《농경근무대》 성원들의 모집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는 강제성을 띠고있었다.그것은 일제가 《농경근무대》를 조직함에 있어서 완전히 의무화된 《징병》제도에 의거하였기때문이다.
피해자 김치린과 진태범은 다같이 《징병》으로 《농경근무대》에 끌려가게 되였는데 그들에게는 《국가총동원법》이라는 악법이 적용되였다.
이에 대하여 김치린은 《1945년 1월초에 경찰관주재소의 왜놈순사와 구장이 〈징병〉령장을 가지고와서 나를 면사무소로 끌어갔다.오후에 나를 포함한 12명이 순천역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이미 300여명의 청장년들이 끌려와있었고 일본경찰들이 그들을 삼엄하게 감시하고있었다.일제는 양덕방향에서 도착한 화차에 우리들을 태워 떠나보냈는데 헌병들이 화차입구에 서서 우리들을 감시하였다.우리는 그날 저녁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사동에 주둔하고있던 제44부대로 끌려갔다.》고 증언하였다.(전문 보기)
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중세기노예사냥을 릉가하는 특대형죄악
일본은 력사적으로 죄많은 나라, 랍치범죄의 왕초이다.오래전부터 타민족에 대한 랍치와 략탈, 로략질을 일삼으면서 생존해왔으며 랍치를 중요한 국책으로 삼아왔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조선을 침략하고 백주에 수많은 조선의 기술자들과 무고한 인민들을 집단적으로 랍치해갔다.이 전쟁후 유정(사명당)이 령활한 외교활동으로 일본에 랍치되였던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송환한 사실도 있다.
랍치에 이골이 난 일제가 무력으로 조선을 강점하고 관권과 군권을 발동하여 감행한 조선인청장년들에 대한 랍치와 유괴, 강제련행은 그 수법과 야만성에서 중세기에 벌어졌던 노예사냥에 짝지지 않는 특대형범죄였다.
중일전쟁을 도발하고 계단식으로 확대해나가면서 일제는 병력과 로동력의 결핍에 직면하게 되였다.전선이 확대되는것만큼 인적 및 물적소모도 커졌던것이다.급해맞은 일제는 부족되는 병력과 로동력을 조선에서 충당하려 하였다.
일제는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 《장년전원에 대한 징용령》, 《학도근로령》 등 각종 악법들을 련이어 조작하고 조선인청장년들을 직업이나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랍치, 유괴, 강제련행하여 죽음의 전장과 고역장들에 내몰았다.
초기에 회유와 강권을 배합한 이른바 《인부모집》과 《관알선》의 외피를 쓰고 진행하던것을 전쟁이 확대된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러한것들을 모두 벗어던지고 무차별적인 《징용》, 《징병》의 명목밑에 랍치와 강제련행을 공공연히 감행하였다.
일제가 감행한 랍치방법은 유괴와 강권이 결합된것이였는데 여기에서 기본은 강권이였고 유괴는 강권에 의하여 안받침되여있었다.
일본에서 발간된 한 출판물은 《첫째로, 기업이 한 〈모집〉에 의한 련행, 이것은 달콤한 말을 쓰면서 〈2년계약〉이라고 속여서 로동력을 획득한것이다.이 〈모집〉방법으로 20만명이상을 련행하였다.둘째로, 〈조선총독부〉와 조선로무회가 주로 사용한 〈관알선〉방식인데 약 26만명을 련행하였다.셋째로, 일본정부의 〈징용령〉에 의한 강제련행이다.이것이 가장 무도한 방법으로 진행된것이다.그것은 바로 〈사람사냥〉이였다.1939년에 〈징용령〉이 발동되여 불과 1년사이에 40만명이상을 련행하였다고 한다.1945년의 패전당시까지 도대체 얼마나 련행되였는지는 아직 밝힐수 없다.》고 그 진상을 까밝혔다.출판물은 조선인강제련행수법을 《사람사냥》으로 특징지으면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랍치방법의 간교성과 포악성을 적라라하게 폭로하고있다.
당시 조선인강제련행에 나섰던 일본인 가마다도 《가장 가혹한것은 로무의 징용이였다.전쟁이 점차 가렬해짐에 따라… 로무징용자의 할당이 상당히 엄하게 되였다.납득시켜서 응모하게 하려고 해서는 도저히 예정수자를 채우지 못하게 되였다.그래서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로무계원이 깊은 밤이나 이른새벽에 남정들이 자고있는 집을 갑자기 습격하거나 혹은 논밭에서 한창 일하고있는 때에 트럭을 들이대고 거리낌없이 잡아갔다.그다음에는 대오를 편성해서 혹가이도나 규슈의 탄광들에 보냈다.그렇게 해야 책임을 다한다고 하면서 란폭한짓들을 하였다.》고 증언하였다.(전문 보기)
론평 : 성노예피해자들을 모독하는 파렴치한 망동
얼마전 일본의 어느 한 우익단체가 중국 대만을 행각하였다.지난 8월 대만에 처음으로 성노예소녀상이 설치되였는데 그에 대해 항의하고 성노예문제와 관련한 이른바 변론을 하겠다는것이 우익분자들의 행각목적이였다.대만에 성노예소녀상이 설치되자마자 《항의》니, 《유감》이니 하면서 법석 떠들어대던 일본의 우익분자들이 광증을 참지 못하고 현지로 기여든것이다.
성노예소녀상에 추모의 꽃을 들고와 무릎꿇고 용서를 빌지는 못할지언정 앙탈질을 하겠다고 밀려든것만 보아도 일본반동들의 덜돼먹은 속통머리를 잘 알수 있다.
엄중한것은 대만에 기여든 우익단체의 우두머리가 성노예소녀상에 발길질까지 해댄것이다.
정의와 진리, 인륜도덕과 량심을 모독하는 망동이 아닐수 없다.
일본의 과거 성노예범죄는 력사에 그 류례가 없는 극악하고 야만적인 특대형반인륜죄악이다.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포함한 아시아의 수많은 녀성들이 일제침략자들에 의해 정조를 유린당하고 귀중한 청춘과 생명을 빼앗겼다.성노예소녀상은 바로 이들을 상징하며 여기에는 수난당한 그들의 피타는 원한과 잠들지 못하는 넋이 깃들어있다.
그앞에서 일본반동들은 발길질을 해대는것과 같은 추악한 망동을 일삼고있다.
그러한 일들은 한두번이 아니다.
2012년 10월 일본의 극우익분자들이 미국의 어느 한 시에 세워진 일본군성노예범죄를 고발하는 비석에 우리 나라의 독도를 저들의 고유령토라는 글이 씌여진 말뚝을 몰래 세워놓아 만사람을 격분시켰다.이자들은 그전에 남조선주재 일본대사관앞에 있는 성노예소녀상에 말뚝을 묶어놓았던자들과 한패당이였다.당시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반동들은 성노예소녀상을 모독한 장본인을 《영웅》으로 춰올리기까지 하였다.
성노예피해자들을 《매춘부》로 모독한 합성사진을 만들어 인터네트상에 올리고 《제5종보급품》이라는 글자가 적힌 상자를 성노예피해생존자들에게 보내기도 하였다.5종보급품이란 군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녀성이라는 뜻이다.
지난해에 미국의 쌘프랜씨스코시에서 성노예소녀상을 설치하기로 하였을 때에는 이 시와의 자매도시관계를 끊겠다고 하면서 생떼를 쓰기도 하였다.
그뿐이 아니다.
일본반동들은 몇푼의 돈을 내흔들며 인류를 우롱하고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로스안젤스시에 성노예소녀상이 건립되였을 때에는 《녀성들을 위한 아시아평화기금》이라는것을 통해 《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넉두리를 늘어놓았는가 하면 뉴져시주 팰리 쎄이즈파크시에 건립된 일본군성노예추모비를 철거시키려고 흥정놀음을 벌려놓기도 하였다.
지난해 유네스코에서 성노예관련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하는 문제가 토의된데 반발하여 오만방자하게도 기구분담금지불을 보류하겠다느니, 기구에서 탈퇴하겠다느니 하고 행패질을 해댔다.
일본이 과거 성노예범죄를 부정하는것은 밝은 세상을 등지는것이나 같다.(전문 보기)
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력사의 고발은 계속된다
일제가 중일전쟁도발후 조선에서 랍치, 유괴, 강제련행하여 침략전쟁터들과 고역장들에 총알받이, 로동노예로 내몬 조선사람들의 수는 무려 840만여명이다.
이런 전대미문의 특대형랍치범죄를 고발하는 죽음의 고역장들이 일본의 곳곳에 널려있었다.렬도전체가 조선사람들의 피로 얼룩진 고역장이였다.
일제의 강제련행은 회유와 기만, 체포와 랍치 등 육체적 및 정신적강제를 결합한 수법으로 감행되였다.고베제강소주식회사 본사공장에도 수많은 조선의 청장년들이 그렇게 끌려와 죽음의 노예로동에 내몰렸다.
이에 대하여 피해자 홍찬정은 40명의 청장년들과 함께 처음에 송림에 있던 겸이포제철소(당시)에 끌려가 약 1주일동안 무보수강제로동을 강요당하였다고 하면서 《그후 왜놈들은 우리를 부산항으로 끌고가 관부련락선에 태웠다.련락선에는 이미 1 000명정도의 조선사람들이 타고있었다.시모노세끼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기차에 태워 고베제강소로 끌고갔다.》고 증언하였다.
피해자 김성호는 100여명의 청장년들과 함께 강원도의 륙군《련병소》에 강제로 끌려가 약 3개월간 군사훈련을 강요당한데 대해 성토하면서 《일제는 1944년 3월초에 그곳 〈련병소〉에 와있던 1 000여명에 달하는 청장년들을 관부련락선에 태워 시모노세끼항까지 끌어갔다.그들가운데서 500명은 규슈방면에, 나머지 500명은 간사이방면으로 끌고갔으며 나를 포함하여 후창군(당시)에서 온 사람들은 고베제강소에 넘기였다.》고 하였다.
일제는 랍치, 강제련행한 조선청장년들을 강제수용소에 가두어넣고 노예적규률을 적용하였으며 가혹한 로동강도와 로동시간을 강요하였다.
피해자 홍찬정은 《고베제강소에 도착한 우리들을 판자로 만든 합숙에 들이밀었다.
…
나는 제강소에서 용해공으로 일하였는데 뜨거운 로앞에서 하루에 14~16시간씩 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왜놈들은 조금이라도 일손이 더디거나 저들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덮어놓고 우리에게 폭행을 가하였다.2년 남짓한 기간 이러한 노예생활이 매일 반복되였다.》고 하였다.
피해자 김성호의 증언에 의하면 일제의 패망직전에 자기와 함께 일하던 25명의 동료들이 일본해군에 《징병》으로 끌려가 오끼나와전선에서 전원이 무리죽음을 당하였다고 한다.
일제의 반인륜범죄는 침략전쟁의 확대와 함께 단말마적으로 감행되였다.
광란적인 전쟁은 일본의 막대한 인적 및 물적자원의 소모를 초래하고 국내의 병력과 로동력을 고갈상태에 빠지게 하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랍치, 강제련행에서 그 출로를 찾았다.
일본잡지 《전쟁책임연구》 제51호에 의하면 일제는 1944년 한해동안에만 하여도 206만 8 284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을 《징용》, 《징병》으로 끌어갈 흉계를 꾸미였다.
잡지에는 《조선에서 징용동원대상으로 된 17살부터 40살사이의 남자인구는 390만 5 230명이므로 실질적으로 2명중 1명이라는 계산으로 된다.1944년에만 하여도 17살부터 40살사이의 로동인구의 약 50%에 달하는 사람들을 동원하려 하였던것이다.》고 씌여져있다.
일제가 조선강점기간에 실시한 강제련행방법가운데서 가장 전형적인 방법의 하나가 랍치였다는데 대해서는 피해자들에 대한 증언조사에서 이미 밝혀졌을뿐아니라 최근년간에 입수된 일본정부와 기업들의 공식문건과 자료들에 의해서도 뚜렷이 립증되고있다.(전문 보기)
론평 : 후안무치한 날강도의 궤변
일본반동들이 제주도에서 열리는 《관함식》에 《욱일기》를 내건 해상《자위대》함선을 참가시키겠다고 생억지를 부려 내외의 커다란 비난과 분노를 자아냈다.방위상 오노데라를 비롯한 일본반동들은 《욱일기》게양을 반대하는데 대해 그 무슨 《주권의 상징》이니,《비상식적이고 례의가 없는 행위》니 하고 횡설수설하면서 도리여 제편에서 《수용할수 없다.》고 을러멨다.
그야말로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자들의 날강도적처사가 아닐수 없다.
도대체 상식도 례의도 모르는 무례무도한자들이 과연 누구인가.
《욱일기》로 말하면 지난 20세기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동양제패》를 부르짖으며 우리 나라와 아시아나라들에 대한 야만적인 침략행위를 감행할 때 사용한 피비린내나는 전범기이다.일본군국주의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욱일기》는 응당 1945년 일제의 패망과 함께 력사의 쓰레기통에 매장되였어야 한다.국제사회도 나치스상징물들의 사용이 엄격히 금지되여있는것처럼 일본의 《욱일기》사용도 금지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이 해상《자위대》함선에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를 뻐젓이 달고 제주도에 들어오겠다고 우겨댄것은 우리 민족과 국제사회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고 우롱이다.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아물수 없는 력사의 상처를 남긴 천년숙적이다.우리 조국땅 어디에나 지난 세기 일제가 저지른 치떨리는 만행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수많은 령혼들이 오늘도 잠들지 못하고있다.남조선의 정계와 사회 각계는 《욱일기》는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이며 아픔과 치욕의 력사를 돌이켜보게 한다, 일본의 오만무례한 행위는 명백한 도발이라고 규탄하면서 일본해상《자위대》함선의 입항을 반대해나섰다.
그런데 일본반동들은 저들의 과거침략범죄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커녕 오히려 군국주의상징인 《욱일기》게양을 반대하는 남조선인민들을 향해 《비상식적이고 례의가 없는 행위》라고 뇌까리면서 실로 뻔뻔스럽게 놀아댔다.세상에 이런 날강도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하다면 왜 일본반동들이 한사코 《욱일기》를 단 해상《자위대》함선을 《관함식》에 참가시키겠다고 생떼를 부렸는가 하는것이다.여기에는 일본은 당당히 전쟁을 할수 있는 국가이며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것을 국제사회에 공공연히 과시하려는 오만한 심보가 깔려있다.
폭로된바와 같이 아베일당은 력대 집권자들이 엄두도 내지 못한 헌법개정을 강행하여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고 《자위대》에 해외침략의 날개를 달아주려고 발광하고있다.일본반동들은 《전수방위》의 허울을 벗어버리고 《자위대》를 공격형무력으로 개편하는데 박차를 가하는 한편 《자위대》의 활동령역을 점차 세계무대로 확대하고있다.일본반동들이 《관함식》에 참가하는 해상《자위대》함선에 《욱일기》를 게양하겠다고 고집을 부린것도 날로 로골화되고있는 침략야망의 뚜렷한 발로이다.현실은 일본《자위대》가 《욱일기》를 펄럭거리며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반도와 아시아나라들을 침략하는 길에 뛰여드는것은 시간문제로 되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전문 보기)
일제의 야수성을 낱낱이 드러낸 을미사변
1895년 10월 3일 서울주재 일본공사관 밀실에서는 황궁에 들어가 명성황후를 살해할 모략이 꾸며졌다.일본에서 매우 음흉하고 악착하기로 소문난 군벌출신의 일본공사 미우라의 주관하에 서기관, 조선봉건정부의 궁내부《고문》, 공사관 무관 등 일제의 살인두목들이 모여 토의하고 구체적인 명성황후살해계획을 결정하였다.이 계획에서 요점은 명성황후를 살해하는것과 동시에 그것을 조선봉건정부의 《내부정변》으로 꾸밈으로써 일본에 대한 내외의 반항을 무마시키고 류혈참극을 빚어낸 책임에서 벗어나는것이였다.
일제가 이러한 흉계를 꾸미게 된것은 황궁안의 실권을 틀어쥐고있던 명성황후가 조선강점야망실현의 큰 장애로 되였기때문이다.
미우라를 비롯한 살인귀들은 명성황후살해날자를 10월 8일 새벽으로 정하였다.
그렇게 정한 의도가 있었다.
당시 조선봉건정부는 일제에 의하여 조직되고 길들여진 조선인훈련대의 해산을 선포하고 10월 8일부터 무장해제시킬것을 계획하고있었다.이것을 내탐한 일제는 명성황후살해사건의 총알받이로 나서야 할 조선인훈련대가 해산되면 저들의 음모가 물거품으로 돌아갈수 있다는것을 타산하였다.
이 흉계에 따라 미우라는 자기 공사관 관원을 대원군에게 보내여 명성황후를 몰아내고 다시 정권을 잡으라고 협박하는 한편 임의의 시각에 명성황후를 살해할수 있도록 일본불량배들로 폭력단을 조직하였다.
1895년 10월 8일 드디여 미우라의 총지휘밑에 력사에 을미사변이라고 기록된 피비린 명성황후살해극의 막이 올랐다.
일본군대, 경찰, 불량배, 친일무력인 훈련대 등이 망라된 살인무리는 경복궁으로 달려들었다.맞다드는 궁녀들을 닥치는대로 죽인 일제는 쓰러진 궁녀들가운데서 명성황후를 확인하자 범죄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채 죽지 않은 그를 미리 준비한 장작더미우에 올려놓고 불태워죽였으며 남은 유골까지도 못속에 집어던져버렸다.
저들의 목적이 달성되자 미우라는 《이것으로써 조선은 드디여 일본의것으로 되였다.》고 뻔뻔스럽게 뇌까렸다.
당시 조선봉건국가권력의 대표자의 한사람이였던 명성황후를 무참히 학살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강도적으로 란폭하게 침해하는 특대형범죄를 감행한 일제는 사건의 진상을 은페하는데서도 날강도적인 파렴치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보였다.
증인들과 흔적들을 없애버리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으며 명성황후살해사건의 모든 책임을 대원군과 조선인훈련대에 넘겨씌우려고 획책하였다.그러나 그러한 행위들은 즉시에 반격을 받았고 명성황후살해사건은 점차 국제적문제로 번져졌다.바빠맞은 일제는 사건관계자들을 히로시마감옥에 림시《구금》하는 기만적인 놀음을 벌리였으나 《증거불명》이라는 구실을 내대고 인차 무죄석방하였다.
명성황후살해사건의 진상은 바로 이렇다.
모든것은 명성황후살해사건의 주범이 다름아닌 일본정부이며 전대미문의 이 테로사건은 조선에 대한 일제의 독점적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침략의 전주곡이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명성황후살해사건이후 일제는 《을사5조약》과 《한일합병조약》을 조작해내고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권을 확립하였으며 식민지파쑈통치기간 우리 인민에게 온갖 불행과 재난을 다 들씌웠다.
중일전쟁도발후에만도 840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이 랍치, 강제련행, 유괴당하여 고역살이를 하였다.전쟁마당에 끌려가 희생물이 되고 탄광, 광산 등에서 고역을 치르다가 무참히 살해당한 조선사람들만도 헤아릴수 없이 많다.
오늘도 세계는 20만명의 조선녀성들에게 성노예생활을 강요한 일본의 과거죄악에 대해 저주하고 규탄하고있다.(전문 보기)
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관권과 군권을 발동하여 감행한 죄악
성노예제도를 고안해낸 일제는 여러가지 경로를 리용하여 조선녀성들을 랍치, 강제련행하여갔다.
우선 조선총독부와 조선주둔군사령부를 통한 랍치, 강제련행이다.
력대 조선총독들은 조선에서 일본왕이 제시하는 제반 정책실시를 총괄하는 방대한 권한을 가진 독재자로 군림하였다. 조선총독은 자기 산하에 설치한 경무국과 도지사밑에 설치한 도경찰부를 통하여 경찰권까지 행사하였다.
일본왕에게 직속되여있은 조선주둔군사령관은 군사작전관계에서는 일본군참모총장의 지시, 군정관계에서는 륙군대신의 지시를 받았으며 헌병대까지 통솔하고있었다.
일제는 조선에 이러한 통치체계를 수립해놓고 전시동원을 뒤받침할수 있는 《국가총동원법》을 비롯한 여러가지 악법들을 제정하였다.
이것은 일제가 조선녀성들을 일본군성노예로 대대적으로 끌어갈수 있는 제도적, 법적장치였다.
일본군부가 조선총독부 경무국에 성노예조달을 의뢰하면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각 도경찰부에 지시하고 각 도경찰부는 각 군에 지령하였으며 각 군은 각 면에 지령을 하달하였다. 지령을 받은 면은 면장이 직접 또는 구장이나 촌장을 발동하여 녀성들을 유괴 및 랍치하여 끌어갔다.
피해자녀성들은 면장이나 구장들이 불량배들을 앞세우고 와서 자신들을 끌어갔거나 헌병이나 경찰관들에게 직접 끌려갔다고 증언하였다.
조선총독부와 조선주둔군사령부를 통한 랍치, 강제련행체계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시기에 많이 발동되였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한꺼번에 800여명이나 되는 녀성들을 일정한 곳에 가두었다가 중국에는 기차로, 남방전선에는 배로 보냈다.
조선녀성들에 대한 랍치, 강제련행은 일제가 선발임명한자들을 통하여 진행되기도 하였다.
1938년 3월 4일 일본륙군성 병무과가 작성한 문건 《군위안소 종업부모집에 관한 건》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여있다.
《〈위안부〉모집과 관련한 문제들은 파견군이 전적으로 관할통제하고 그것을 맡아할 인물들의 선정을 엄격히 하며 〈위안부〉모집시에 해당 지방의 헌병이나 경찰당국과의 련계를 밀접히 할것.》
이 문건의 요구대로 선발된자들은 해당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지역의 행정기관이나 경찰기관 또는 헌병대를 찾아가 사유를 밝히고 그들의 적극적인 후원하에 랍치행위를 감행하였다.
현지에서 랍치자들은 경찰당국에 반드시 찾아갔는데 그것은 차후 저들이 끌고갈 녀성들의 국경통과를 위한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조선녀성들에 대한 랍치에는 일본군대가 직접 동원된 경우도 많았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침략병력이 늘어나는데 따라 성노예들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높아졌다. 일제는 필요한 군성노예들을 지방당국에 의뢰하거나 선발된자들을 동원하는 방법으로만 보장할수 없다고 보았다.
이로부터 일본군부는 성노예랍치, 강제련행에 군대를 직접 동원하였다.
일본군대가 직접 동원되여 끌어가는 녀성들에 한해서는 현지경찰이나 헌병대는 개입할수 없었으며 랍치된 녀성들은 군수품조달체계에 따라 우선적으로 목적지에 보내여졌다.(전문 보기)
론평 : 독도강탈흉심의 발로
최근 일본정부가 독도를 《자국령토》라고 주장하는 자료조사보고서라는것을 내각관방인터네트홈페지에 게시하였다.
독도강탈에 환장이 된 일본집권세력의 흉심의 발로이다.
올해 1월 일본은 도꾜도의 한복판에서 독도가 《제땅》이라고 우겨대는 령토주권전시관개관식을 벌려놓았다.그후 외교청서, 방위백서와 같은 문건들에도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는 문구들을 계속 쪼아박았다.그것도 성차지 않아 이번에는 내각관방인터네트홈페지에 황당하면서도 파렴치한 문구들을 올렸다.
일본의 독도강탈야망이 도를 넘고있다.
독도는 명실공히 우리 조선민족의 신성한 령토이다.
백두대산줄기를 근간으로 하여 호랑이자태를 이룬 북남삼천리강토의 유구한 력사속에 독도는 뗄래야 뗄수 없는 살붙이로 기록되여있다.일본에서도 독도가 명백히 조선땅이라는것을 고증하는 자료들과 력사지도들이 적지 않게 발굴, 공개되였다.
지난해에 울릉도옆에 독도가 그려진 대동여지도필사본이 일본에서 발견되였다.대동여지도는 우리 나라의 지리학자 김정호가 1861년에 만든것이였다.한 일본인이 간수하고있던 대동여지도필사본을 조사한데 의하면 울릉도 오른쪽에 한자로 《우산》이라고 적힌 작은 섬이 확인되였다.
또한 19세기 후반기에 독도를 일본령토로 간주하지 않는다는것을 확증한 일본검정교과서가 발견되였다.1886년에 편찬된 지리교과서에 실린 아시아지도에 일본국경이 붉은색으로 그어져있는데 울릉도와 독도는 그려지지도 않았다.
다른 나라 전문가들도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는것을 보증하고있다.
로씨야의 아시아지리전문가인 왈레리 글루쉬꼬브교수가 올해초에 《동해의 울릉도와 독도》라는 저서를 내고 1943년부터 1951년사이에 쏘련과 미국, 영국 등이 맺은 조약과 협정들에는 독도가 조선의 뗄수 없는 일부라고 밝혀져있다고 피력하였다.
그런데도 일본반동들은 그 무슨 《불법점거》를 운운하며 독도가 《자국령토》라고 우겨대고있다.날강도의 무지막지한 생떼라 하지 않을수 없다.
력사적진실과 국제적원칙도 모두 짓밟은 일본의 령토강탈소동은 탐욕과 파렴치성의 극치를 이루고있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총칼로 세계의 정의와 량심을 롱락하고 다른 나라와 민족을 침략, 략탈하던 제국시대처럼 남의 나라 령토를 강탈하려고 날뛰고있다.일본반동들이 국제사회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독도령유권》을 떠들고있는데는 마치도 우리 나라와 일본사이에 《령토분쟁문제》가 존재하는듯 한 인상을 조성하여 여러 나라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곤두세우고있는 저들의 범죄적인 재침책동을 합리화해보자는 너절한 흉심이 깔려있다.(전문 보기)
론평 : 평화를 위협하는 사무라이후예들의 광기
일본반동들이 판에 박은 《북조선위협》에 대해 계속 떠들며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군사적대결광기를 부리고있다.
얼마전 일본반동들은 《미싸일과 군용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확충》의 구실밑에 막대한 자금을 탕진하여 미국으로부터 조기경보기 9대를 긴급구입하였다.한편 태평양상에서 우리를 걸고 미국과 함께 해상《자위대》의 최신예이지스구축함에 새로 탑재한 탄도미싸일요격체계를 검증하는 놀음을 벌리였다.그런가 하면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특별보좌관이라는자는 미국의 워싱톤에서 열린 그 무슨 토론회라는데서 저들이 《현존하는 북조선의 위협에 취약》하다고 하면서 독자적인 선제타격능력의 보유를 주장해나섰다.
일본반동들이 조선반도에서 대화와 긴장완화의 분위기가 지속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배치되게 있지도 않는 《북조선위협》에 대해 요란하게 떠들며 군사적대결에 열을 올리고있는것은 실로 고약스럽기 그지없다.그것은 모처럼 마련된 평화의 기회를 어떻게 하나 깨버리기 위한 고의적인 책동이다.
남을 걸고들며 제 리속을 채우는것은 섬나라족속들의 체질적인 악습이다.일본반동들의 군사적대결광기는 조선반도의 정세악화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교활한 계책의 발로이다.
지금 일본반동들이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꾸면서 침략의 과거를 되살려보려고 발광하고있다는것은 비밀이 아니다.재침야망에 사로잡힌 일본의 집권세력은 해외침략의 길에 합법적으로 뛰여들수 있는 구실을 찾고있다.그것이 바로 《북조선위협》이다.
알려진바와 같이 지금 북남관계와 조선반도의 정세는 화해와 단합, 대화와 평화에로 확고히 지향되고있다.우리 공화국의 주동적이며 적극적인 조치와 노력에 의하여 마련되고있는 현정세흐름은 우리 민족과 국제사회의 열렬한 지지와 찬동을 받고있다.
조선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가 대세로 되고있는 바로 이런 때에 일본반동들은 가을뻐꾸기처럼 우리의 그 무슨 《미싸일위협》에 대해 고아대며 정세를 어떻게 하나 긴장시키고 독자적인 선제타격능력까지 갖추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고있다.
일본이 터무니없이 우리를 걸고들며 군사대국화에로 질주하고있는것은 매우 위험하다.왜나라족속들의 재침야망은 도수를 넘었으며 이제는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를 펄럭거리며 버젓이 남조선에 기여들겠다고 호통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반동들은 지난 세기와 마찬가지로 조선반도를 군사적으로 타고앉고 그를 발판으로 하여 아시아에 대한 침략과 지배를 실현하려고 획책하고있다.(전문 보기)
과거죄악은 반드시 청산되여야 한다
일본침략자들이 우리 나라에 군함 《운양》호를 침입시켜 군사적도발행위를 감행한 때로부터 143년이 지나갔다.그러나 우리 인민은 일본이 저지른 과거죄악에 대하여 어느 한시도 잊지 않고있다.
그날은 바로 1875년 9월 20일이였다.일본침략자들은 조선봉건정부를 힘으로 굴복시키고 예속적이며 불평등한 조약체결을 강요할 목적밑에 《운양》호를 강화도앞바다에 들이밀었다.
《운양》호가 우리 나라에 불법침입한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였다.그해 5월에 부산항에 기여들어왔었다.그때 파렴치한 일본침략자들은 저들의 침입을 《정기적인 연습항해》라고 정당화하고는 《발포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위세를 돋구며 조선봉건정부를 위협공갈하였다.그것이 잘 통하지 않게 되자 재차 강화도앞바다로 침입하였던것이다.
남의 나라 령해에 들어가자면 그 나라의 사전승인을 받는것이 국제법상의 요구이다.
그러나 일본침략자들은 조선봉건정부가 즉시 물러갈것을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았다.뿐만아니라 우리 인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하여 도발에 말려들게 하려고 온갖 횡포한짓을 다 감행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물이 떨어졌다는 구실을 내대면서 우리 나라 서해의 중요한 요새로서 사전허가없이는 드나들수 없는 초지진포대가까이로 기여들었다.수비병들은 일본침략자들을 단호하게 격퇴해버리였다.초지진전투에서 패한 침략자들은 방어가 약한 섬들을 습격하여 무고한 주민들을 수많이 살륙하였으며 파괴략탈만행을 감행하였다.종당에는 우리 나라 수비병들에 의해 쫓겨나고말았다.
이것이 《운양》호사건의 진상이다.
《운양》호사건은 《정한론》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일본의 계획적인 군사작전이였다.
일본고위인물들의 진술과 《운양》호사건이후 일본의 행태가 그것을 증명해주고있다.
일본륙군대장 야마가다는 《1875년 9월 〈운양〉호 함장 이노우에소좌는 조선연해안으로부터 청나라 우장에 이르는 해로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암암리에 조선에 대한 시위운동을 실시하라는 내적훈령을 해군성으로부터 받았다.》고 하였으며 참의 기도는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이미전부터의 목적을 단숨에 달성하려고 하였다.》고 토설하였다.
《운양》호사건이후 일본은 힘으로 조선을 정복하기 위한 책동에 더욱 광분하였다.로골적인 군사적위협과 공갈로 1876년 2월 27일 12개 조항으로 된 불법비법의 《강화도조약》을 강압적으로 조작하였다.1905년에 들어와 《을사5조약》을 날조하고 우리 나라를 무력으로 가로타고앉은 일제는 40년간에 걸치는 악랄한 식민지파쑈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재난을 들씌웠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