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조일관계/朝日関係’ Category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유린한 죄행은 계산되여야 한다

주체100(2011)년 9월 20일 로동신문

1875년 9월 20일은 일본침략자들이 《운양》호침입사건을 조작한 날이다.지금으로부터 136년전 바로 이날 일본침략자들은 무력을 통한 위협과 공갈의 방법으로 리조봉건정부를 굴복시키고 예속적이며 불평등한 침략조약을 강압적으로 조작할 목적밑에 《운양》호사건을 일으켰다.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날강도적인 《강화도조약》을 조작하였으며 무력에 의한 조선침략의 서막을 열어놓았다.

우리 인민은 오래전부터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무참히 유린하고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물수 없는 뼈아픈 상처를 남긴 일본침략자들의 죄악에 대해 한시도 잊지 않고있다.

19세기 후반기 후진자본주의국가로 등장한 일본은 조선침략교리인 《정한론》을 부르짖으면서 그 실현에 달라붙었다.그 첫 공정으로 일본은 1875년 5월 침략선 《운양》호를 부산항에 불법침입시켰다.파렴치한 일본침략자들은 뻔뻔스럽게도 그것을 《정기적인 연습항해》라고 정당화해나섰다.일본침략자들은 그 무슨 《발포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위세를 돋구었다.그들은 조선이 저들의 힘앞에 위압되여 스스로 굴복할것이라고 타산하였다.하지만 일이 저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그해 9월 일본침략자들은 항로를 측량한다는 구실밑에 《운양》호를 강화도앞바다에 또다시 침입시켰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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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한 목적을 노린 일본의 바다이름외곡책동

주체100(2011)년 8월 19일 로동신문

수천년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나라의 동쪽바다를 동해 혹은 조선해로 불러왔다.지금까지 발굴된 수많은 력사자료들이 그것을 확증해주고있다.

하지만 철면피하기 그지없는 일본은 조선동해를 한사코 《일본해》라고 우기고있다.그로 하여 일부 세계지도들에는 조선동해라는 이름과 함께 《일본해》라는 유령이름이 버젓이 표기되고있다.그것도 모자라 일본은 《일본해》라는 일방적인 표기를 국제적으로 공인시키기 위해 온갖 비렬한짓도 서슴지 않고있다.

다음해에 있게 될 국제수로기구총회를 앞두고 일본이 벌리고있는 너절한 막후교섭책동이 그 한 실례이다.

이 국제수로기구총회에서는 세계적으로 론의가 분분한 조선동해의 지명표기문제가 기본의제의 하나로 토의될것이라고 한다.

일본은 어떻게 하나 저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교력량까지 총동원하여 기구성원국들을 회유하고있다.

최근 미국이 국제수로기구에 조선동해를 《일본해》로 단독표기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영국이 같은 립장을 표명한것도 실은 일본의 끈질긴 막후교섭의 결과이라고 외신들은 평하고있다.

조선동해가 《일본해》로 외곡표기되기 시작한것은 지난 세기 전반기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시기부터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일본의 죄악의 력사를 끝장내야 한다

주체100(2011)년 8월 17일 로동신문

일제가 패망한지 66년세월이 흘렀다.지난날 일제는 근 반세기동안 가혹한 식민지파쑈폭압통치로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재난을 들씌웠다.극악무도한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강요한 민족적재난과 비극은 전대미문의것이였다.

일제가 력사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을 한편의 글에 다 담을수는 없다.이번 기회에 일본에 대하여 엄중히 문제시하여 빠개놓을것이 있다.그것은 일본이 우리 인민앞에 저지른 특대형반인륜적범죄에 대해 성근하게 인정하고 사죄,배상할 대신 새로운 죄악을 덧쌓은것이다.

일제패망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일본의 죄악도 엄청나다.

반세기가 훨씬 넘는 이 기간 일본은 우리 인민을 모독하고 괴롭히였으며 우리 나라의 평화적건설을 걸음걸음 방해하였다.또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항시적으로 위협하여왔다.

일본이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과거죄행을 외곡,미화분식하고있는것은 조선민족에 대한 모독이며 우롱이다.

일본반동들은 일제의 조선침략과 군사적강점통치가 우리 인민의 《총의》에 의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뇌까리고있다.2003년 10월 28일 도꾜도 지사 이시하라는 1910년의 《한일합병》에 대해 언급하면서 《결코 무력으로 침공한것은 아니며 조선반도가 안정되여있지 않기때문에 결국 그들(조선인)의 총의로 같은 피부색을 가진 일본인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합병이 이루어졌다.》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였다.그는 그해 10월 31일에 《그때 국제련맹도 있었지만 누구도 일본을 비방하지는 않았다.》는 상식밖의 망언을 하였다.국제련맹은 1910년의 《한일합병》때에는 존재하지조차 않았으며 1920년대에 와서야 창설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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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령유권이란 절대로 있을수 없다 —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00(2011)년 8월 5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8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

일본방위성이 2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고유의 령토로 명기한 백서를 발표하였다.

이것은 조선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란폭하게 침해하는 범죄행위이다.

독도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더불어 우리 겨레의 소유로 되고 다스려진 우리의 신성불가침한 령토이다.

우리 나라의 국가적문헌들,력사자료들은 물론이고 일본의 사료들에도 그것이 명백하게 밝혀져있다.1696년 1월 일본의 에도정부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는것을 인정하고 일본인들의 울릉도수역에로의 출입을 금지하는 지시를 내린 사실,1877년 3월 20일 일본정부의 최고기관인 태정관의 이와꾸라 도모미가 내무성에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는것으로 알것》이라는 지령을 내린 사실 등은 력사적으로 독도가 일본의 령토가 아니라는것을 확증해준다.

강조하건대 독도는 결코 주인이 명백치 않은 분쟁령토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이 독도를 일본령토로 계속 떠들어대는것은 그들이 령토팽창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한자들이라는것을 다시금 여실히 드러내보여주고있다.

일본반동들이 오늘 독도령유권을 그처럼 집요하고도 파렴치하게 들고나오는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다.그것은 의도적으로 독도령유권을 여론화,국제화하여 독도분쟁을 일으키고 조선재침을 위한 조건과 환경을 마련하려는데 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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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평 : 대미추종세력의 불순한 기도

주체100(2011)년 7월 9일 로동신문

얼마전 미국과 일본사이에 《안전보장》협의위원회라는것이 진행되였다.여기에서 일본은 국내민심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오끼나와현의 후덴마미군기지를 같은 현내의 헤노꼬로 이설하기로 정식 합의하였다.그리고 2014년까지로 정한 후덴마미군기지이설기한을 단념하기로 하였다.이로써 일미사이에 말썽거리로 되여오던 후덴마미군기지이설문제를 일단락짓게 되였다.이것은 일본당국이 불순한 속심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덥석 받아문 비굴한 대미추종태도의 산물이다.

일본당국이 국내민심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상전의 요구에 순응한것은 무엇때문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의 안전과 리익을 희생시키면서라도 미국상전을 등에 업고 군사대국화야망을 기어이 실현하자는것이다.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이 오끼나와를 미국의 침략기지,군사적교두보로 내맡기려 한다는것이 더욱 확실해졌다.이러한 사실은 일본이 좋든싫든 미국의 범죄적인 군사전략에 휘말려들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는것을 의미한다.이것은 일본반동들이 내심으로 바라는것이기도 하다.실지로 일본반동들은 그것을 군사대국화야망실현의 좋은 기회로 삼고 제볼장을 보려 하고있다.그들은 오래전부터 군사대국화를 다그치면서 그에 장애로 되는 거치장스러운 법률적,제도적장치들을 하나하나 없애버리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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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한 특등참전국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 비망록-

주체100(2011)년 6월 29일 로동신문

 

지금으로부터 61년전 미제가 도발한 조선전쟁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이였지만 미국에 있어서는 부정의의 침략전쟁이였다.

미제는 제2차 세계대전말기에 책정한 세계제패전략에 따라 남조선을 강점한 첫 시기에 벌써 조선반도를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만들기 위한 조선전쟁도발계획을 작성해놓았으며 일본을 그 주요기지로,하수인으로 써먹으려고 획책하였다.

패망후에도 아시아제패의 야망을 버리지 않고있던 일본은 이것을 절호의 계기로 간주하고 미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함으로써 당시 유엔에 가입하지 못한것으로 하여 미제가 조작한 《유엔군》에 공식적으로 참가하지 못하였지만 다국적침략무력으로서의 《유엔군》에서 미국 다음으로 주력을 이룬 참전국으로 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와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국제여론의 비난과 규탄이 두려워 일본이 조선전쟁에 참가한 사실을 극력 비밀에 붙이였으며 일본인포로,사상자가 로출되고 전쟁참가행위가 폭로되였을 당시에도 그것을 한사코 부인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전쟁이 끝난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조선전쟁참전국으로서의 일본의 범죄적정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못하고있다.

최근 일본의 언론들에서 자기 나라를 17번째 참전국으로 하자는 문제가 제기되고있으나 그것도 당시의 사실과 맞지 않는 제기이다.

《유엔군》의 감투를 쓰고 조선전쟁에 참가한 미제의 15개 추종국들과 대비하여 볼 때 일본은 정규무력의 병력수에서는 영국 다음이지만 참전절대인원수와 전쟁임무수행에서는 《유엔군》에서 미국과 함께 결정적역할을 하였다.

이 비망록에서는 력사학계의 연구에 기초하여 일본이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의 특등참전국이였음을 밝히려고 한다.

 

 

일본이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한 참전국이라는것은 무엇보다도 일본이 조선전쟁에서 미제침략군의 돌격대,출동기지,보급기지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미제의 지령에 따라 일본은 조선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전 일제침략군참모본부 차장 가와베를 비롯한 수많은 작전참모들을 조선침략전쟁도발계획인 《AL-3》과 《A,B,C계획》의 작성에 가담하게 하였다.

1949년 한해동안에도 4만정의 보병총과 2 000여문의 바주카포를 비롯한 수많은 각종 포와 수십만발의 포탄,화염방사기,2 000여정의 기관총과 기관단총,4 900여대의 자동차를 남조선괴뢰군에 넘겨줌으로써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준비를 적극 도와준 일본은 미제가 전쟁을 일으키자 수만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유엔군》의 앞장에서 침략의 돌격대로 활약하였으며 미군의 출동기지,병참기지,보급기지,수리기지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일본도서 《조선의 통일과 인권》 1976년 118페지)

일본은 우선 미제의 추종국들중에서 제일먼저 많은 병력을 조선전선에 투입하여 직접 전투를 벌리도록 하였으며 고문,참모의 자격으로 미군과 남조선괴뢰군의 작전,전투를 도와주게 하였다.

당시 《유엔군》에 망라된 추종국들의 무력구성을 보면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의 무력을 조선전선에 파견한 나라는 영국이였고(보병려단 3개,기갑려단 1개,포병련대 2개,공병련대 2개,항공모함 1척,순양함 2척,구축함 8척) 그 다음은 카나다(보병려단 1개,포병련대 1개,기타 기갑지원부대,반땅크부대들과 구축함 3척,공군수송중대 1개 등),뛰르끼예(1개의 보병려단에 6 000명),오스트랄리아(보병대대 2개,전투기중대 1개,항공수송중대 1개,항공모함 1척,순양함 1척,구축함 2척),타이(4 000명 병력에 쾌속정 2척,항공수송대 1개),필리핀(5 000명) 등이였으며 프랑스,그리스,뉴질랜드,네데를란드,꼴롬비아 등이 각기 1개의 련대 또는 대대규모의 병력에 순양함이나 구축함 1~2척으로서 그 다음이고 나머지 벨지끄와 에티오피아는 보병 1개 대대,남아프리카련방(당시)은 전투기 1개 중대,룩셈부르그는 보병 1개 중대정도였다.

그밖에 《유엔군》에 병원선이나 의무부대,의약품 등을 보낸 단마르크와 스웨리예,노르웨이,이딸리아,인디아를 비롯한 영련방국들은 참전국이외의 지원국으로 취급되고있다.그러나 일본만은 참전국에서는 물론 지원국명단에서도 제외되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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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평 : 령토강탈에 환장한자의 호전적망발

주체100(2011)년 4월 18일 로동신문

최근 일본외상 마쯔모또가 일본의 교과서검정제도에 대해 변명하는 자리에서 독도가 《일본고유의 령토》라는 일본정부의 립장은 일관하다고 력설하였다.마쯔모또의 떠벌임은 그보다 앞서 일본당국이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의 중학교교과서검정결과를 발표한데 뒤이어 나온것이다.지어 그는 일본국회 참의원회의에서 발언하면서 독도가 외부의 《미싸일공격》을 받을 경우 그것은 《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된다.》는 호전적인 망발까지 줴쳤다.이것은 일본군국주의세력이 독도를 《일본령토》로 기정사실화하고 그것을 《보호》한다는 구실밑에 어느때든 재침의 포성을 울리려는 범죄적기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놓은것이다.

국제사회는 일본의 파렴치한 령토강탈행위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있다.

독도가 우리 나라의 신성한 령토라는것은 력사적사실자료들과 지리적 및 법률적근거에 기초하여 이미 명백히 확증되였다.독도가 유구한 조선력사와 더불어 우리 인민에 의해 다스려지고 조선민족에게 복무해온 우리 나라 령토의 귀중한 한 부분이라는것을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나라들사이의 관계에서 령토문제만큼 예민하고 심각한 문제는 없다.마쯔모또는 외교당국자로서 황당무계한 《독도령유권》주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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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문건 : 일본은 과거 일제의 조선강점정책의 범죄적산물인 《일본해》표기책동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주체100(2011)년 4월 11일 로동신문

조선동해의 명칭은 가장 이른 시기 조선사람들에 의하여 명명되여 수천년동안 《동해》로 불리워왔다.

하지만 일본은 명치유신이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략야망이 증대되고 조선강점정책이 단계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그와 보조를 같이하여 조선동해를 《일본해》로 외곡날조한 다음 파렴치하게도 1929년에는 식민지종주국의 지위를 악용하여 조선동해를 《일본해》이름으로 국제수로기구에 등록하였다.

이렇듯 조선동해의 《일본해》표기는 일제의 조선강점정책과 제국주의적팽창책동의 직접적인 범죄적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 일본은 미제의 침략적인 대조선정책에 편승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의 사죄와 배상은커녕 줄곧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을 일삼으면서 령토적야망에 들떠 독도강탈책동을 추구하는 한편 조선동해의 《일본해》표기를 한사코 고집해나서고있다. 새 세기에 들어와서도 일본은 《일본해》표기를 주장하면서 막대한 자금까지 들이밀어 일본외무성과 각국 주재 일본대사관들은 물론 각종 출판물들과 방송수단들, 인터네트까지 동원하여 《일본해》명칭을 국제사회에 공인시켜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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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조선의 신성한 령토이다 —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00(2011)년 4월 4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4월 4일발 조선중앙통신)
 최근 일본반동들의 독도강탈책동이 날로 로골화되고있다.
 3월 30일 일본당국은 2011년 새 중학교 교과서들에 《독도령유권》주장을 서술하고 그것을 반영한 교과서종수를 늘이도록 지시하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것은 우리 나라의 주권에 대한 란폭한 침해이며 침략범죄이다.
 독도는 그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수 없는 조선의 신성한 령토이다.
 독도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국토에 편입시킨 나라도 조선이며 근대법적요구에 맞게 독도령유를 재확인하고 그것을 내외에 선포한 첫 국가도 다름아닌 조선이다.
 독도는 령토편입의 국제법적요구인 선점의 원칙과 실효적인 지배와 경영의 원칙에서 놓고보아도 조선의 불가분리의 령토이다.
 제2차 세계대전직후 일본의 령토확정을 위해 미국과 영국이 작성한 지도들에도 그것은 조선의 령토로 표기되여있다.
 이보다 앞서 1877년 일본륙군참모국이 제작한 《대일본전도》와 1899년 륙지측량부가 만든 지도에서는 독도가 일본령토에서 제외되여있다.
 력사적사실은 독도가 조선의 고유한 령토이며 이것을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도 인정하였음을 실증해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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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강화도조약》의 조작으로 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자본주의예속화의 문을 열어놓은 침략의 원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 론고장-

주체100(2011)년 2월 27일 로동신문

 

지금으로부터 135년전인 1876년에 일본침략자들은 유미렬강에 앞서 조선봉건정부를 강박하여 침략적이며 불평등적인 《조일수호조규》(일명 《강화도조약》)를 조작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이 군사적위협과 공갈,기만과 협잡의 방법으로 조작한 《강화도조약》은 장차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일본통치층의 모략의 산물로서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리익을 란폭하게 침해하고 금후 조선에 대한 유미자본주의렬강들의 침략과 식민지각축전을 유발시킨 첫 불평등조약이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는 과거 일본에 의한 《강화도조약》조작 135년을 맞으며 일본침략자들의 범죄적인 《강화도조약》조작책동의 진상과 그 후과를 온 세상에 고발하기 위하여 이 론고장을 발표한다.

 

 

《강화도조약》은 명치유신후 호전적인 일본반동지배층이 들고나온 《무력에 의한 조선정복론》,날강도적인 《정한외교》정책의 범죄적인 산물로서 그 직접적인 조작구실로 리용된것은 1875년의 《운양》호사건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일본은 〈운양〉호사건을 구실로 1876년에 침략적이며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조작하고 우리 나라를 예속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세기 중엽 일본이 명치유신으로써 개화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실시한 대조선정책은 《정한외교》정책이였다.이것은 조일간의 새로운 《국교재개》협상을 요구하는 불순한 외교문서(서계)를 리조봉건정부에 강요하는 방법으로 침략적도발을 걸어 무력침공을 감행하여 조선을 정복하고 식민지로 전변시키기 위한 침략정책이였다.

바로 이러한 강도적인 《정한외교》정책에 따라 일본침략자들은 1875년에 《운양》호사건을 도발하였다.

《운양》호사건은 1875년 9월 일본군함 《운양》호가 항행도중 먹는물을 얻는다는 명색밑에 아무런 통고도 없이 지어 일본국기도 게양하지 않고 조선의 령해인 강화도 초지진앞바다에 불법침범하였다가 조선군사들의 자위적포사격을 받은 사건이였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일본이 조선에 대한 무력침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도발한 모략사건이였다.이에 대하여 륙군대장 야마가다는 《1875년 9월 〈운양〉호 함장 이노우에소좌는 조선연해안으로부터 청나라 우장에 이르는 해로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암암리에 조선에 대한 시위운동을 실시하라는 내적훈령을 해군성으로부터 받았다.》고 하였으며 참의 기도는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이미전부터의 목적을 단숨에 달성하려고 하였다.》고 토설하였다.(《공작 야마가다 아리또모》 중,412~413페지,《기도일기》 명치 8년 12월 7일)

그러나 《운양》호사건의 진상이 내외에 알려지고 저들의 범죄적정체가 드러나게 되자 일본정부는 그해 11월 《정한외교》정책의 변종인 《평화협상외교》정책을 내놓고 리조봉건정부에 예속적인 《수호통상조약》을 강요하기 위한 이른바 방안이라는것을 꾸미였다.

그 방안이란 첫째로,《운양》호사건의 진상을 은페하고 모든 책임을 조선측에 넘겨씌워 《사죄》와 《배상》을 인정시킨다는것이였다.

태정대신 산죠가 조선측과의 회담에 파견되는 일본전권대신 구로다 기요다까에게 준 《훈령》(총 7개 조항)에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있었다.(《근대일선관계의 연구》상권,일문,423~424페지)

산죠는 이 《훈령》이라는데서 《운양》호사건의 책임을 조선측에 무조건 전가시키는것을 원칙으로 하며 부산과 다른 한 곳을 개항지로 정하고 일본인의 자유래왕과 령사관의 설치를 보장하며 일본배의 조선령해측량과 항행의 자유 및 례조판서급의 대우를 받는 일본사신의 한성체류 등의 강도적요구를 조약문에 반영할것을 지시하였다.

끝으로 《훈령》은 회담시 리조정부가 저들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이러저러한 정황이 조성될 경우 사태정황을 본국에 알리며 차후 정부의 명령을 기다려 행동할것을 지시하였다.(《일성록》병자년 정월 4일)

이것은 청나라측의 있을수 있는 간섭을 타산한것이였다.

일본정부가 꾸민 방안은 둘째로,군사적수단에 의한 위협과 공갈의 방법으로 조선측을 강박하고 《굴복》시킨다는것이였다.

총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것은 사무라이족속들의 포악성과 호전성을 그대로 체현한 일본침략자들의 고유한 기질이였다.일본반동지배층은 《평화협상외교》정책으로 전환한 이후에도 무력으로 조선을 정복하려는 강도적야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폭력적방법으로 조선봉건정부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하기 위한 일본의 책동은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와 뒤받침하에 더더욱 악랄하게 감행되였다.

이미전부터 조선에 침략의 마수를 뻗쳐온 미국은 일본을 길잡이로 내세워 저들의 조선침략야욕을 손쉽게 달성해보려는 음흉한 속심밑에 《운양》호사건이후 일본의 대조선침략책동을 각방으로 도와나섰다.당시의 주일미국공사 삥햄은 일본의 조선침략에 《지극히 동의한다.》고 떠벌이며 1871년 《신미양요》때 《실패한 미국의 옛뜻인 조선개방을 일본이 이어나갈것》을 충동질하였으며 1875년 12월 일본외무경 데라지마와의 면담시 페리의 《일본원정소사》를 쥐여주면서 조선의 《개방》을 촉구하기 위해 포함외교를 적용할것을 권고하기까지 하였다.(《일본외교문서》 제8권,일문,152~155페지)(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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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회피하지 말아야 할 일본의 과거청산책임

주체100(2011)년 2월 24일 로동신문

일본은 과거청산을 지금껏 미루어오고있다.이것은 인륜도덕에도 심히 어긋나며 국제관계발전에도 저애되는 그릇된 행위이다.

최근 일본정계와 언론들속에서 조일관계개선을 위한 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소리들이 자주 나오고있다.

비정상적인 조일관계가 두 나라 인민들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개선되자면 선차적으로 과거청산문제가 해결되여야 한다.과거청산은 조일관계개선의 중핵이며 출발점이다.일본이 과거청산을 계속 회피한다면 비정상적인 조일관계는 언제 가도 풀릴수 없다.

지난 세기 전반기 일본이 우리 나라에서 저지른 죄악은 력사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특대형범죄였다.

지난 세기초에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일제는 근 반세기에 걸치는 가혹한 식민지파쑈통치기간 100여만명의 조선사람들을 학살하고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끌어다가 성노예로 만드는 천추에 용납 못할 만행을 저질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절대로 덮어둘수 없는 일제의 날강도적인 문화재략탈범죄

주체100(2011)년 2월 7일 로동신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인민의 찬란한 민족문화를 말살하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였습니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우수한 문화를 창조하여 그 이름을 세상에 떨쳤다.

유구한 세월 우리 인민의 뛰여난 창조적지혜와 재능이 깃든 민족의 귀중한 문화재들은 지난날 일본침략자들에 의해 수많이 파괴, 략탈당하였다.

얼마전 한 외신은 일본에 있는 우리 나라 문화재가 수십만점에 달한다고 보도하였다.

오늘 국제적으로 과거범죄를 성근하게 반성하고 청산하는것이 추세로 되고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도이췰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과거범죄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실지행동으로 자기의 잘못을 씻고있다. 이것은 죄악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현시대와 력사의 흐름에 발을 맞추려는 의지를 보여주는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대결광신자의 궤변

주체100(2011)년 2월 5일 로동신문

보도된바와 같이 얼마전 일본《랍치문제》담당상 나까노가 우리 공화국과 총련을 걸고들며 허튼 나발을 불어댔다. 그는 한 회견에서 재일조선학교들에 대한 지원문제와 관련하여 자기는 원래부터 《신중파》라고 하면서 재일조선학교들을 다른 학교들과 똑같이 취급할수 없기때문에 고등학교지원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줴쳤다. 그 리유는 재일조선학교들에서 《반일교육》을 주고있다는것이다. 지어는 재일조선학교들에서 그 누구의 정책에 기초한 교육을 주고있다고 시비질하면서 나까노는 우리 공화국을 고약하게 헐뜯었다. 그의 넉두리는 터무니없이 무근거한것으로서 어느 하나도 들을 소리가 없는것이다.
  이미 알려진것처럼 나까노로 말하면 일본정부안에서 강경매파의 기수로 악명을 떨치고있는 호전분자이다. 특히 그는 지난 1월 중순 새로 구성된 일본내각의 《랍치문제》담당상자리에 올라앉자마자 우리 공화국에 대한 악담을 마구 내뱉은 극우익정객이다. 리성마저 잃고 헤덤벼대는 이런자의 입에서 바른 소리가 나올수 없다는것은 자명하다. 그가 반공화국광증에 사로잡혀 놀아대는 꼴은 정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치졸하고 광신적인 객기이다. 그것은 대조선적대의식과 민족배타주의가 골수에 배인자들만이 내뱉을수 있는 궤변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론 평 :: 조일관계해결의 근본은 과거청산

주체100(2011)년 1월 25일 로동신문

새해에 들어와 일본당국자들이 조일관계개선을 위한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고있다.

물론 이것은 주목되는 동향이다. 일본의 정책작성자들이 조일현안문제와 관계개선에 관심을 표시하고있는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조일관계정상화를 실현하는데서 근본핵은 일본의 과거청산이다. 오늘 일본이 우리 나라와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로 되고있는것은 이미전에 응당 청산했어야 할 과거죄악을 덮어버리려 한것과 중요하게 관련된다. 조일관계개선은 그 무엇을 주고받는 식의 흥정물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이 죄많은 과거를 깨끗이 청산한 기초우에서 우리 나라와 선린우호관계를 맺는것이다. 그러자면 일본이 자기의 력사적책임을 다 해야 한다.

과거 일본은 우리 인민앞에 씻을수 없는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날 일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근 반세기동안에 걸친 군사적강점시기 100여만명을 학살하고 수백만명을 강제련행, 랍치하였으며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끌어다 일본군《위안부》생활을 강요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론 평 :: 대화분위기를 해치려는 위험한 움직임

2010년 1월 18일 《조선중앙통신》중에서

(평양 1월 17일발 조선중앙통신)

일본랍치문제담당상 나까노가 14일 우리에 대해 《독재국가》라느니 뭐니 하고 헐뜯는 발언을 하였다.

한 나라 각료의 발언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비리성적이고 저급한 독설이다.

일본에서 랍치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정치사기군들의 언동과 마찬가지로 나까노의 발언은 극도의 반공화국적대감에 기초를 두고있다.

문제는 그의 악담이 조일사이에 대화재개문제가 상정되고 협상의 방법으로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긴장상태를 해소할데 대한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있는 때에, 더우기는 일본에서 새 내각이 발족한 직후에 나온것이다.

이것은 나까노와 같은 일본의 극우익보수세력이 대화분위기에 불안을 느끼면서 그에 정면으로 도전해나서고있으며 새 내각이 조일대화재개에 나서는것을 각방으로 차단하려 하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전문 보기)

[Korea Info]

론 평 :: 용납할수 없는 전쟁하수인의 죄악

주체99(2010)년 12월 8일 로동신문

최근에 지난 조선전쟁에 가담한 일본의 죄행과 관련한 새로운 자료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되였다. 그에 의하면 구일본군장교들이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제침략군의 폭격 등 군사작전을 위하여 우리 나라의 지형을 상세히 밝힌 전략지도를 작성, 제공하였다고 한다.

당시 《유엔군총사령부》산하에 구일본군정보장교들로 구성된 《야마사끼기관》이라는 정보기관이 있었다고 한다. 이 기관은 《유엔군총사령부》에서 첩보, 정보를 맡아보는 참모2부에 배속되여 미제침략군소장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아 활동하였다. 《야마사끼기관》성원들은 우리 나라에 구축된 군사요새들과 항만, 공장, 학교, 병원뿐아니라 매 시설의 형태와 전압상태에 대해서까지 상세하게 밝힌 지도, 설명서들을 작성하여 《유엔군총사령부》에 제공하였다.

일본언론계의 취재과정에 지난 조선전쟁시기 구일본군장교들에 의해 작성된 전략지도 6점과 현지정세를 기록한 설명서 3통이 입수되였다. 이것들은 우리 나라 북부 함경북도 청진, 우리 나라 서해안 등 지역들을 그린 축척이 1만분의 1 또는 5만분의 1이 되는 지도들이다. 설명서 3통중 하나에는 우리 나라 북부에 건설된 수풍발전소의 구조, 송전선망, 통신체계, 도하지점 등에 대한 상세한 자료가 적혀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너절하고 고약한 행위

2010년 12월 1일 《조선신보》중에서

조선중앙통신사는 30일 《너절하고 고약한 행위》라는 제목으로 된 론평을 내보내였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이 유엔총회 제65차회의 3위원회에서 《랍치문제》를 떠들면서 반공화국《인권결의》채택에 앞장서 분수없이 날뛰였다.

일본대표는 일본인《랍치문제》가 아직 미해결로 남아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그 누구의 《불리행》과 《구체적행동조치의 결여》에 대하여 운운하면서 유엔총회 등에서 조선인권상황을 문제시하여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기회있을 때마다 《랍치문제》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것은 과거의 특대형반인륜범죄를 어떻게하나 덮어버리고 그 청산을 회피하려는 너절하고 고약한 행위이다.

《랍치문제》를 내걸어 과거청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목을 돌려보려는 일본의 행위는 파렴치하기 그지없다.

인권에 대해 말한다면 일본은 입이 열개라도 할소리가 없는 나라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론 평 :: 일본당국은 민심을 따라야 한다

주체99(2010)년 11월 17일 로동신문

일본당국은 조일평양선언의 기본정신에 어긋나게 그 무슨 《핵문제》, 《랍치문제》의 우선적해결을 주장하면서 조일관계정상화를 실현하는데서 기본인 과거청산문제를 뒤전에 밀어놓고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량심이 있고 도의를 귀중히 여기는 일본의 민심은 일본당국이 과거청산을 하루빨리 할것을 요구하고있다.

얼마전 일본국가공안위원장은 국회 참의원의 한 회의에서 정부가 《일본군위안부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전 일본군위안부들에게 《명예와 존엄을 회복시켜주는 조치를 똑바로 취하고싶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일본정부가 과거청산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는 세계와 일본의 민심을 대변한것이다.

과거청산은 일본이 안고있는 력사적과제이며 시대적요구이다.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적운동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였다. 1990년대초에 이르러 전후배상과 관련한 재판 등을 통하여 일본에 의한 과거범죄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전해지기 시작하였으며 1991년 한 피해자의 고발을 계기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조직적성폭력범죄인 일제의 성노예범죄문제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조선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강점과 통치는 천추만대 용납못할 특대형의 국가조직적범죄이다 – 일제의 조선민족말살죄행록 –

2010년 11월 16일 《조선중앙통신》중에서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 일제가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강행한 때로부터 105년의 세월이 흘렀다.

조선강점기간 일제는 제국주의식민지통치력사상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가장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만행을 감행하였으며 우리 인민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들씌웠다.

조선사람 100여만명을 학살하였으며 1938년이후에만도 840만여명을 랍치, 련행하였다.

우리 말과 글, 지어 조선사람의 성까지 없애기 위해 비렬하게 책동하였으며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민족의 귀중한 문화재부들을 닥치는대로 파괴략탈하였다.

조선중앙통신사는 일제가 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기간 감행한 만행을 조선민족말살을 노린 전대미문의 특대형범죄로 락인하고 그것을 폭로단죄하는 죄행록을 발표한다.(전문 보기)

[Korea Info]

파렴치성의 극치

주체99(2010)년 10월 6일 로동신문

최근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진행된 제15차 유엔인권리사회에서 일본이 자기의 특유한 파렴치성을 또다시 드러냈다. 여기에서 일본대표는 《랍치문제》를 입에 올리면서 《피해자들중 일부만이 귀환했다.》느니, 《일본내 다른 실종사건관련자들이 랍북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느니, 《랍치문제》의 《재조사》가 필요하다느니 뭐니 하고 기염을 토하며 우리를 걸고들었다.

도적이 제발저려한다고 과거 일제의 반인륜범죄가 엄청난지라 그것을 어떻게 하나 덮어버리며 그 청산을 한사코 회피해보려고 오그랑수를 쓰고있는 일본만이 할수 있는 생억지이다.

일본이 이미 백지화된 《랍치문제》를 가지고 국제무대에서 소란을 피운다고 하여 거기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다.

원래 일본은 속통이 바르지 않고 량심과 신용이 없는 나라이다. 일본은 지난 시기 우리 와의 회담탁에서는 《리해》요, 《사의》요 뭐요 하면서 갑삭거리다가도 돌아앉아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싶게 수염을 내리쓸군 하였다.

《랍치문제》도 그렇다.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할수 있는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 하였다. 그런데 일본은 아직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랍치문제》를 물고늘어지며 우리에게 계속 생트집을 걸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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