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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소식
자랑찬 력사를 빛내이리
지난해말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청상회)결성 30돐 기념사업실행위원회가 조직되였다.회장, 부회장들, 상임간사들로 구성되여있다.5개 부서가 조직되였다.
실행위원회의 첫 회의에서는 3가지 기념사업이 토의되였다.청상회의 력사를 보여주는 기념도서출판, 동영상편집물제작과 당일의 기념행사이다.
청상회는 동포청년상공인들을 망라한 대중단체로서 총련결성 40돐이 되던 1995년 9월에 결성되였다.
청상회는 결성이래 《유족한 동포사회를 위하여》, 《꽃봉오리들의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등의 구호를 높이 들고 애국위업을 전진시키고 동포사회에 생기가 차넘치도록 하는데 앞장서왔다.
그 나날에 《한사람의 백걸음보다 백사람의 한걸음》, 《우리가 흘린 땀만큼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커진다.》, 《대지는 흔들려도 우리는 흔들리지 말자.》 등 청상회특유의 말들이 생겨났다.
내외반동들은 회유와 기만, 협박의 방법으로 이 조직 성원들을 떼내여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지만 청상회에서는 교양사업을 더욱 힘있게 벌려 핵심대렬을 강화하고 기층조직들을 튼튼히 다져나갔다.
한편 조국방문과 학교지원 등 다양한 사업들을 적극 조직하고 총련지부들에서 진행하는 군중행사들에서 핵심적역할을 하면서 활동의 폭을 끊임없이 넓혀왔다.
청상회가 주최하여 해마다 진행하는 《우리 민족연단》은 새세대 동포상공인들의 애국열의를 분출시키는 계기로 되고있다.청상회가 걸어온 애국의 로정을 되새기고 그 빛나는 력사를 이어나가자고 하면서 실행위원회성원들은 지금 행사준비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기념행사는 올해 9월초에 진행되게 된다.
동포사회를 청년판으로 들썩이게
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 히로시마, 오까야마, 에히메현본부가 최근 합동모임을 열었다.
쥬시고꾸지방의 조청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이였다.이곳 조청조직들은 민족교육강화를 위한 사업에서 자기들이 선봉적역할을 하자고 하면서 각 학교들의 운동회, 예술공연과 맞물려 순회식으로 합동모임을 열어오고있다.
2023년 9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되여왔는데 이번이 5번째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총련 제25차 전체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내주신 강령적서한을 높이 받들고 투쟁해온 나날에 이룩한 성과를 총화하고 경험을 교환하며 애국운동에서 보다 큰 진전을 가져오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다.
이번 모임에는 력대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새로 조직된 조청반 성원들의 활기에 넘친 얼굴들도 보이였다.
먼저 각 지방본부들의 활동정형이 총화되였다.보고자는 여름학교운영을 더욱 활성화하여 민족성고수의 돌파구를 열어제끼자고 열렬히 호소하였다.참가자들은 다양한 체육문화행사를 통해 뉴대를 깊이하였다.
총련부흥의 새시대에로 향한 영예로운 진군길에서 선봉대, 돌격대의 기치는 마땅히 동포청년들이 들어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조청은 각급 조직들의 자립성과 독자성을 높이는데 중심을 두고 동포청년들의 심리적특성에 맞는 다양한 대중운동을 힘있게 벌리고있다.(전문 보기)
주체조선의 위대한 태양이시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운명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드립니다
주체조선의 절대적존엄과 국력을 만방에 떨치며 인민의 리상과 행복이 눈부시게 펼쳐질 위대한 승리의 해 2025년의 벽두에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설맞이공연에 참가한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 성원들에게 특대의 배려를 베풀어주시였다는 희보에 접한 총련과 전체 재일동포들은 지금 한없는 기쁨과 흥분에 휩싸여있으며 동포사회는 환희와 격정으로 끓어번지고있습니다.
총련의 나어린 학생소년들을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만나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학생들의 볼을 정답게 다독여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을뿐 아니라 그들이 부르는 충효일심의 노래도 반갑게 들어주시고 예술단 단장에게 강령적인 말씀까지 주시였으니 정녕 경애하는 원수님의 하해같은 크나큰 은혜에 벅차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습니다.
총련중앙상임위원회는 이역만리 일본땅에 있는 우리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할 최상최대의 특전특혜를 거듭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총련일군들과 교육자, 학부모를 비롯한 전체 재일동포들의 열화같은 흠모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감사의 인사를 삼가 드립니다.
지금 우리들의 가슴은 조선혁명의 최고참모부인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 총련의 학생소년예술단 성원들을 불러주시고 이 세상 더없는 은총을 베풀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어 위대한 태양의 해살따라 민족교육사업을 비롯한 총련애국위업을 더 억세고 박력있게 전진시켜나갈 굳은 결의로 충만되여있습니다.
전체 총련일군들과 교육자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 재일조선학생소년들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우리모두가 받아안은 최상의 행복으로 간직하고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인 민족교육의 개화발전과 애국운동의 후비양성에 전심전력을 다해나가겠습니다.
우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 단장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면서 총련의 애국위업의 바통을 이어나갈 역군들을 더 많이 키워내라고 하신 당부를 지상의 명령으로 접수하고 그 관철에 총매진해나가겠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11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교육사업은 제1의 국사이며 부단히 진보해야 할 가장 책임적인 중대사라고 하신 간곡한 말씀대로 총련의 민족교육사업을 애국사업의 제1순위에 놓고 전 조직과 광범한 재일동포들을 민족교육의 진흥에로 불러일으키겠습니다.
총련의 교육일군대렬을 애국위업의 미래를 책임진 직업적혁명가들의 대오로 정예화하고 모든 교원들을 새 세기 교육혁명방침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그들의 교육자적자질을 부단히 높임으로써 조선학교 학생들을 애국위업의 바통을 이어나갈 어엿한 역군으로 활기있고 대바르게 키우겠습니다.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창건 80돐을 맞이하는 력사적인 올해에 결성 70돐을 맞는 총련은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과 김정일대원수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옹호고수하고 충성과 애국, 단결의 전통을 빛내이며 조직안에 주체의 사상체계, 령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고 총련일군대렬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과 사상과 뜻을 같이하고 동포들을 위하여 멸사분투하는 충신의 대오로 반석같이 다지겠습니다.
위민헌신의 장정을 끝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애국리념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동포들과 고락을 같이하면서 총련의 모든 사업을 동포제일주의로 일관시키고 동포사는 곳곳에서 충성과 애국의 꽃이 만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들은 새해벽두부터 인민의 리상과 행복을 위하여 위민헌신의 려정을 이어나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부풀어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습니다.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 애국애족운동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우리 학생소년들의 가장 절절한 념원을 부디 헤아리시여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태양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부디 옥체만강하시기를 충심으로 삼가 축원드립니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2025년 1월 4일 일본 도꾜
《따사로운 조국의 품은 아버지원수님의 품입니다》, 《총련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애국의 역군으로 자라나겠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따뜻한 축복을 받아안은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 성원들을 만나보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유산인 총련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고 백방으로 보호할것이며 각별한 정을 기울여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의 노래가 주체적해외교포운동사와 더불어 영원히 울려퍼지게 할것입니다.》
보는 사람 누구나 눈굽을 적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사회주의조국을 방문하여 2025년 설맞이공연에 참가한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 성원들을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만나주시는 뜻깊은 화폭은 온 나라를 울리였다.
이역의 동포사회도 감격의 파도로 세차게 설레이고있다.동포들은 감격에 울고웃는다. 경애하는 원수님에 대한 북받치는 감사의 정을 안고.
최상의 영광을 받아안은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떠하랴.
《우리에게는 그 언제나 기다리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5년만에 조국에서의 설맞이공연에 참가하게 된 이역의 학생들이다.조국으로 가게 되였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발을 동동 구르며, 서로서로 부둥켜안으며 좋아라 웃고떠들던 천진란만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조국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그들의 뇌리에서는 하나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원수님을 모시고 공연할수 있을가.)
련습장에서도 숙소에서도 그들은 줄곧 이 생각만 하였다.
마침내 새해 설맞이공연의 막이 올랐다.수도 평양으로부터 두메산골과 외진 섬마을을 비롯한 온 나라와 멀리 이역땅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학생소년들과 어린이들모두를 육친의 사랑과 정을 다해 보살펴주시는 아버지원수님께서 계시여 휘황찬란한 앞날과 영원무궁한 행복이 있음을 명랑한 노래와 아름다운 춤으로 펼쳐보인 공연은 관람자들의 절찬을 받았다.특히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이 준비한 곡목은 사람들을 크게 감동시키였다.혈연의 정 넘치는 우렁찬 박수소리가 장내를 진감하였다.
공연은 성과적으로 치르었지만 동포학생들의 마음은 개운하지 못하였다.서운한 감정을 누를길 없어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서로 이렇게 위안하였다.
《그래도 우린 아버지원수님을 모시고 신년경축공연을 보지 않았니.》
《그래그래.온 세계가 우러르는 아버지원수님을 난 정말 가까이에서 뵈왔어.우리 부모도, 담임선생님과 학급동무들도 아직 그이를 뵙지 못했는데…》
이렇게 아쉬운 심정을 애써 누르며 그들은 만경대학생소년궁전으로부터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인 1월 2일의 일정은 중앙동물원과 자연박물관참관이였다.천진란만한 동심들은 이른새벽부터 진정하지 못하고있었다.사진과 동영상, 화보를 통해 많이 보았던 조국의 유명한 중앙동물원에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의 희귀한 동물들을 구경할 생각에 모두들 마음이 들떠있었다.
뻐스가 현지에 도착한 후 그들은 호랑이를 형상한 동물원입구에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막 참관을 시작하려는데 뜻밖의 련락이 왔다.
《참관을 미루고 급히 돌아올것.》
영문을 알수 없었지만 모두 서둘러 뻐스에 올랐다.자기들이 가는 곳이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원수님께서 계시는 조선혁명의 책원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라는것을, 바로 그곳에서 꿈결에도 그립던 아버지원수님을 만나뵙게 된다는것을 그 누구도 알리 없었다.
무한한 격정과 환희로 세차게 설레이는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구내에서 신년경축공연때 낯을 익히였던 조국의 로력혁신자, 공로자들이 흥분된 마음 안고 촬영대에 서있는것을 보았을 때, 국제축구련맹 2024년 17살미만 녀자월드컵경기대회에서 영예의 1위를 쟁취한 녀자축구선수들과 감독들이 격동된 심정을 누르지 못하고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역의 학생들의 가슴은 쿵쿵 뛰였다.
(우리가 정말 아버지원수님을 만나뵙게 되는구나.꿈이 아니다.현실이다.)
자기들이 나라를 떠받드는 믿음직한 주추가 되고 고임돌이 되여온 애국적인 근로자들, 국가의 명예를 높이 떨친 자랑스러운 체육인들과 한자리에 서있다는 사실도 놀라왔다.
비록 나이는 어려도 뇌리를 치는것이 있었다.이역의 동포들을 극진히 사랑하시고 위해주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의 뜨거운 진정이였다.
마침내 아버지원수님께서 그들에게로 다가오시였다.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였다.
어린 마음에도 혈육의 정을 초월하는 숭고한 사랑이 느껴져 총련의 학생소년들은 아버지원수님을 뵈옵는 순간 눈물부터 쏟았다.자기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는 그이의 모습은 정말 친아버지의 모습그대로였다.
하셔야 할 일이 많고 가보셔야 할 곳도 많으시건만 명절날에 혁명학원의 원아들과 육아원, 애육원의 원아들부터 찾으시는분, 조국의 미래인 소년단원들의 앞날도 축복해주시고 그들과 함께 영광의 기념사진도 찍으시는 자애로운 어버이께서 지금 우리들앞에 서계신다.
어쩌면 아이들을 그토록 사랑하실가.어쩌면 우리 재일동포자녀들에게 이토록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실가.
그때의 심정을 두고 한 학생은 아버지원수님의 따뜻한 정을 몸가까이에서 느끼면서 조국에서 배운 노래 《인정의 세계》의 선률이 마음속에서 세차게 울리였다고 말하였고 또 다른 학생은 나어린 우리들이 총련의 대표로서 원수님을 만나뵈온것이 정말 꿈만 같았다고 격정을 터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볼을 다독여주시고 따뜻이 손을 잡아주신 총련 니시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 김유아학생과 기따오사까조선초급학교 김유나학생의 심정은 더 말해 무엇하랴.너무 감격하여 만세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였다고 한다.
아이찌조선중고급학교 진세호학생은 남달리 눈물을 많이 흘리였다.서운해하는 자기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시고 이런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아버지원수님의 웅심깊은 사랑에 처음에는 눈굽이 축축히 젖어들었고 그다음에는 눈물이 샘솟듯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우리 원수님 가시는 곳마다에서 조국의 학생소년들이 행복에 눈물지으며 목청껏 터치던 이 부름을 이역의 아들딸들도 터치였다.
자애로운 어버이를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은 후 그들은 하늘땅 저 끝까지 아버지원수님만을 따라갈 자기들의 결의가 담긴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이번 설맞이공연에서 부른 그들의 주제곡이였다.대견한 눈길로 바라보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아버지원수님을 우러르며 모두가 행복의 무아경에 잠겨 울고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주체적해외교포운동사에 아니 우리 조국사에 사랑의 전설로 대대손손 길이 전해갈 꿈만 같은 이야기는 이렇게 태여났다.
이역땅의 아들딸들을 어서 오라 부르시는 따뜻한 그 사랑이 가슴속에 흘러들어 언제나 조국으로 마음달리던 총련의 학생들은 영광의 그 순간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격정을 터친다.
우리에게는 기다리는 아버지가 계신다! 그 언제나 기다리는 아버지가, 아버지가 계신다! 우리들은 세상에 부럼없는 행복동이들이다!
《조국을 알았습니다, 조국을 따르렵니다》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의 성원들은 모두 10대초엽이다.아직은 인생이 무엇인지 다 알수 없는 나어린 학생들이다.이런 그들이 이번에 조국에 와서 크게 자랐다.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원수님의 은정깊은 사랑이, 그이의 령도아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고있는 조국의 현실이 그들의 정신적키를 부쩍 자래운것이다.
왜 조국인민들이 아버지원수님을 그토록 높이 우러러모시고 열렬히 따르는지 수많은 대기념비적창조물들을 돌아보며 그들은 똑똑히 깨달았다.불세출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끄시기에 조국은 필승한다는 확신도 가지게 되였다.
너무나도 뜻밖에 최상최대의 영광을 받아안은 그들의 가슴마다에서는 충성의 맹세가 신념의 메아리되여 울리고있다.
니시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 백가련학생은 자기의 글에 이렇게 썼다.
《영광의 자리에 섰던 우리들이 아니 아버지원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총련동포들이 모두 힘을 합치면 무서울것이 없다고 생각한다.일본에 돌아가면 학습과 소년단조직생활을 더 잘하여 아버지원수님께서 바라시는 애국의 참된 역군으로 준비해나가겠다. 원수님의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하여 애국의 일감을 스스로 찾는 사람, 씩씩한 조선사람으로 자라나겠다.》
고베조선초중급학교 김리란학생은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하면서 재일조선인운동사에 기록된 공화국기사수투쟁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였다고 하면서 애국의 길에 피와 땀을 뿌린 할아버지, 할머니들처럼 조국을 지켜싸우는 길에서 생을 빛내이겠다고 말하였다.
니시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 강유희학생은 앞으로 꼭 조선대학교로 진학하여 조선신보사 일군으로 사업하는 아버지처럼, 총련사업에 앞장서는 어머니처럼 이역에서 조국을 지키고 재일조선인운동의 앞날을 떠메고나가는 애국인재로 준비해나가겠다고 결의다지였다.사이다마조선초중급학교 최금연학생도 총련조직에서 사업하는 집안사람들처럼 애국의 바통을 굳건히 이어나갈 의지를 피력하였다.
설맞이공연무대에서 무용작품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사이다마조선초중급학교 정유리학생은 아버지원수님께서 부어주신 따뜻한 정을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모든것을 다해나가겠다고 진정을 터치였다.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에서 소년단위원장사업을 맡고있는 세이방조선초중급학교 리우휘학생의 심정은 또 어떠한가.그는 이번 공연에서 선창가수로 노래를 불렀다.그의 아버지는 오래동안 학교교장으로 사업하다가 현재 총련 효고현본부 교육부장으로 일하고있다.가정에서, 학교에서 듣고 배우던 조국에 대한 그 모든것을 실지 와서 보니 정말 감흥이 컸다고 하면서 아버지원수님께 불러드린 노래의 구절구절처럼 원수님만 받드는 총련의 기둥감, 애국의 역군으로 자라나겠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였다.
공연에서 설화시랑송을 맡았던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 리소아학생은 조국방문의 나날 참으로 많은것을 배웠다고 하면서 무대에서 읊은것처럼 애국의 억센 기둥감으로 준비해나가겠다고 말하였다.
오사까조선초급학교 송희윤학생은 대형공화국기를 품에 안고 일본으로 돌아가려 한다.조국이 강하여 우리 국기가 그토록 성스럽고 찬연한것이라는것이 그의 생각이다.자기 집에 자랑스러운 우리 국기를 걸어놓고 그앞에서 언제나 마음을 다잡으며 애국을 하겠다고 하는 그의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며 선생님들은 대견함을 금치 못하였다.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 최미송학생의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우리 총련의 학생소년들을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고계신다.왜 우리들에게 이토록 다심한 은정을 베풀어주실가.단지 이역의 아들딸이기때문에? 우리가 재일조선인운동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미더운 역군으로 자라나기를 바라시는 웅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황나연학생의 글에도 그런 심정이 담겨져있다.
《너무나도 한 일이 없는 나어린 우리가 너무나도 크나큰 사랑을 받아안았다.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여 아버지원수님께서 바라시는 애국인재로 꼭 준비하겠다.이번 설맞이공연에서 부른 노래를 한생의 주제곡으로 삼고 애국의 한길을 가고가겠다.다시 원수님을 뵈올 때에는 보답의 보고를 드릴수 있게.》…
* *
오늘 세계를 둘러보면 많은 나라들에서 청소년들이 꽃망울도 터쳐보지 못한채 숨지고있다.전쟁과 분쟁, 사회악의 희생물로 되거나 희망과 꿈을 포기한채 정신육체적으로 타락해가고있다.황금만능의 자본주의일본땅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하지만 총련의 학생소년들은 어머니조국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자기들의 고운 꿈과 아름다운 희망을 활짝 꽃피워가고있다.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원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길이 전하며 그들이 부르는 경모의 노래, 애국의 노래는 이역의 하늘가에 높이높이 울려퍼질것이다.
…
세상에서 제일로 센 원수님을 높이 모셔
우린 두렴몰라
칼바람이 사나워도 우리 국기 지켜가요
하늘땅의 저 끝까지 원수님만 따라가며
애국위업 역군으로 자라나리
우리모두 자라나리
《조국에서 받아안은 사랑, 보고 느낀 모든것이 애국의 자양분으로 되였습니다》 -총련 조선대학교 졸업학년학생들의 조국방문후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국땅에 있어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아야 하며 위대한 김정일애국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어머니조국의 대지우에 애국충정의 자욱을 뚜렷이 새겨나가야 합니다.》
지난 8월말부터 11월중순까지 총련 조선대학교 졸업학년학생들이 3기로 나뉘여 조국을 방문하였다.일본으로 돌아간지 퍼그나 시일이 흘렀지만 그들의 뇌리에는 여전히 조국체류나날의 광경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고있다.강의실과 기숙사호실들에서는 못잊을 그 나날을 떠올리는 격정넘친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울리고있다.많은 학생들이 애국의 결의를 시와 수기에 담아 발표하고있다.그중 일부를 소개한다.
꿈같은 그 나날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
문학력사학부 김추향학생은 《조선신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투고하였다.조국방문을 전후한 시기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담은 글이다.
《6월 18일 사정으로 대학강당에서의 긴급모임에 참가하지 못하였다.
바로 그 모임에서 뜻밖의 소식이 전해질줄 어이 알았으랴.
숨이 턱에 닿도록 달음박질하여 달려와 그 소식을 알려주는 학급동무의 목소리는 세찬 흥분으로 간간이 끊기였다.
〈추향아, 아버지원수님께서…우리 조선대학교 졸업학년학생들을…조국으로 불러주시였단다.〉
갑자기 사유가 정지된듯싶었다.
〈꿈이 아닌가?〉
손등을 꼬집어보았다.아팠다.눈물이 그렁그렁해있는 동무의 모습은 이 모든것이 꿈이 아님을 말해주고있었다.
우리는 악성전염병사태때문에 고급학교 졸업반시기에 조국방문을 하지 못한 첫 세대이다.대학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한번도 조국땅을 밟아보지 못한 동무들이 적지 않다.선생님들은 동무들도 조국에 갈수 있을것이라고 늘 말하군 하였다.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위안의 말로 여기군 하였다.그런데, 그런데 이런 날이 오다니.
나는 동무와 손을 맞잡고 환성을 터치였다.
〈우리도 조국에 갈수 있다!〉, 〈어서빨리 조국으로 가자!〉
…
9월 23일 비행장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몹시 설레이기만 하였다.어제밤 뜬눈으로 밤을 새웠지만 조국으로 간다는 기쁨이 수면부족을 훌 날려보낸것만 같았다.그런데 출국수속이 순조롭지 않았다.다름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가는 조선사람이기때문일것이다.왜 우리 조선사람들은 자기 조국으로 갈 때마다 이런 번거롭고 복잡한 수속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가.…
이런 생각도 갈마들었다.사실 각급 총련조직과 단체들의 일군들을 비롯하여 조국으로 먼저 가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그런데 우리가 제일먼저 조국으로 간다.사회주의건설에 땀 한방울 바치지 못한 우리들을 남먼저 불러준 조국의 뜨거운 믿음과 기대에 깨끗한 량심과 의리를 바쳐 보답하리라.우리들은 곧 조국으로 떠난다.꿈이 아니다.》
조국의 현실은 참으로 눈부시였다.희한하였다.
돌아보는 모든 곳들에 참으로 뜨거운것이 슴배여있다는것을 이역의 새세대들은 걸음걸음 절감할수 있었다.
곳곳에 솟아난 기념비적창조물들에서 그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남기신 헌신의 발자욱을 보았다.그 자욱자욱이 새겨진 곳들에 창조의 동음이 높이 울리고 인민의 웃음이 만발하고있었다.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께서 걸으신 그길에 자기들의 작은 발자욱을 따라세울수록 그들의 가슴속에는 한없는 그리움이 사무치였다.조국의 부강을 위해, 인민의 행복을 위해 로고를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충성다해 받들려는 강렬한 의지가 솟구치였다.
그 심정을 문학력사학부의 공희영학생은 자기의 시에 이렇게 피력하였다.
…
따를수록 간절한 그리움 싣고
원수님 앞서 걸으신 길을 따라
우리 오늘도 갑니다
눈부신 해빛에 마음 녹이며
따사로운 훈향에 나래를 펴고
오늘도 갑니다
원수님께 기쁨드릴
신념의 자욱을 새기며
한생 그이만을 따를
보답의 마음 안으며
외국어학부 량유양학생은 이역에서 나서자라나 일심단결에 대하여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것이 실지 어떤것인지 한번도 체감해보지 못하였는데 조국에 와서 그 의미를 깨달았다고 조선신보사 기자에게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문학력사학부의 리은아학생은 이번에 처음으로 조국을 방문하였다.기숙사에서 조국에서의 설맞이공연에 참가하였던 동무들의 이야기를 부러움속에 들을 때마다 그는 늘 생각하였다고 한다.
(언제면 나도 조국에 갈수 있을가.나도 조국땅을 밟아보았으면…)
마침내 그날이 왔다.꿈결에도 그리던 따뜻한 품에 드디여 안기던 날 그는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에서 순간도 눈길을 뗄수 없었다.
풍요한 전야와 화려한 거리들, 평화롭게 오가는 사람들…
학교에서 늘 조국에 대하여 배웠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통해서도 조국의 현실을 많이 보아왔다.하지만 정작 와서 보니 모든것이 상상을 초월하는것뿐이였다.
조국청년들이 일떠세운 전위거리의 웅장한 전경을 보니 입이 딱 벌어졌다.실지 가보면 다 잘 알게 될것이라던 선배들의 말이 옳았다.
두팔벌려 안아주는 따사로운 품속에서 어머니조국의 숨결을 한껏 느끼며, 한가슴에 조국을 가득 채우며 그는 《아, 여기가 바로 나의 조국, 아버지원수님의 품입니다.》라고 웨치였다.그때의 심정을 하급생들에게 터놓는 그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맺혀있었다.
리공학부 리종명학생은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였을 때 제일먼저 맞아준 사람들의 진정에 넘친 인사, 따뜻한 모습들을 오늘도 잊지 못한다.
《환영합니다.즐거운 나날을 보내십시오.》, 《잘 배워가십시오.》
그 순간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고 한다.조국에 찾아왔다기보다 조국의 품에 돌아온듯하여서.
그 역시 조국방문이 처음이였지만 순간순간 가슴에 뜨겁게 마쳐오는 혈육의 정으로 하여 생소한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는 하급생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청년학생들의 야회 및 축포발사장에서 본 조국청년들도 잊을수 없을것같애.사회주의강국건설에서 청춘의 열정과 기백을 떨쳐가는 그들의 싱싱한 얼굴에서, 춤동작을 다정히 배워주는 그들의 진정넘친 태도에서 나는 혈연의 정을 느끼였어.그들 못지 않게 조국에 충실하고 총련애국위업에 분투하는 인재로 자라나리라 굳은 결심을 다지였지.》
못잊을 나날, 못잊을 사람들에 대한 추억은 끝없이 고패치고있다.
애국의 초소에서 청춘을 빛내이겠다!
리상은 청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이다.청년시절에 인간은 희망과 포부를 자래우며 인생행로를 개척해나가게 된다.
꿈결에도 그립던 조국에서 총련 조선대학교 졸업학년학생들은 어떤 선택을 하였는가.
문학력사학부 박시연학생은 대성산혁명렬사릉에서 받아안은 감동을 오늘도 누르지 못하고있다.인생의 참된 자욱을 남긴 가장 떳떳한 모습으로 영생의 언덕에 서있는 항일혁명투사들, 그들속에서 자기와 같은 나이의 애젊은 투사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의 감정은 어떠했던가.
(이 세상에 인간이 설수 있는 자리는 얼마나 많은가.나름대로 선택할수 있는 그 많고많은 자리중에 굳이 목숨까지 바쳐야 하는 그 가혹한 위치를 스스로 찾아선 사람들, 그들은 희망, 사랑, 청춘을 깡그리 묻으며 순간의 탈선도 몰랐다.)
주작봉마루에서 받은 느낌이 너무도 강렬하여서 박시연학생은 수기에 이렇게 썼다.
《재일동포사회에도 누구나 선뜻 서기를 주저하는, 그러면서도 누구든 반드시 서야만 하는 그런 자리가 있다.맑은 날, 좋은 날보다 궂은날, 힘든 날이 더 많은 험한 자리이다.허나 투사들이 그러했듯이 또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그 위치에 오늘은 내가 기꺼이 설것이다.애국이라 부르는 성스러운 그 자리에 인생의 주소를 정하고 스스로 선택한 그 위치를 충직히 지키리라.》
가극 《영원한 승리자들》은 조국에 왔던 이역의 대학생들이 제일 큰 감동을 받은 예술작품들중의 하나이다.중상당한 몸으로 끊어진 통신선을 잇고 장렬한 최후를 마치는 영옥이를 보면서 누구나 눈물을 멈출수 없었다고 추억한다.자기들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똑똑히 알게 되였다고 말한다.
문학력사학부 조미구학생이 쓴 글에 그런 심정이 그대로 어려있다.
《월미도용사들의 짧은 삶, 고귀한 희생이 우리의 가슴속에, 세월에 새긴 진리가 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조국보다 귀중한것은 없다.〉
…전쟁의 포성이 멎은 때로부터 세월은 많이도 흘렀고 세대도 계속 바뀌고있지만 영옥이가 남긴 고귀한 삶의 메아리는 년대를 넘어 끝없이 공명되여 후대들을 분발시키고있다.
영옥이의 생의 메아리는 이역땅의 조선대학생인 나의 가슴속에서도 울리고있다.
오늘 내가 지켜야 할 곳은 민족교육의 성스러운 사명을 다해가는 우리 학교의 교단이 아니겠는가.…어제는 영옥이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면 오늘은 김정은시대 청년핵심인 우리가 자신의 청춘과 한생을 바쳐 이역땅에서 조국을 지켜야 한다.》
조국을 방문하고 돌아간 모든 학생들의 가슴속에서 이런 애국의 메아리가 울리고있다.
문학력사학부 량례의학생이 쓴 시도 그 애국의지의 분출이라고 할수 있다.
…
애국의 1세들
수령님 찾아 풍랑을 헤쳤던 길
나도 가고 우리모두 오르리라
선배들 애국의 큰뜻 새기던 정든 뜨락에서
참다운 삶의 첫걸음 내 떼련다
…
애국의 길에서 참되게 사는것
결코 수월치만 않으리니
허나 나의 행복도 후대들의 미래도
이길에만 있기에
강대한 어머니조국의 번영을 위해
티없는 마음이나마 바치련다
먼 후날 후대들에게
오늘의 나의 선택을
긍지높이 말할수 있게
* *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대다수 청년들의 마음속에는 리상이 아니라 절망만이 꽉 차있다.황금만능과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사회적풍조로 된 사회에서 청년들은 래일에 대한 희망을 다 버리고 사회적인 홀시와 랭대속에 신음하고있으며 길가의 조약돌마냥 불행의 나락에로 가차없이 차던져지고있다.일본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총련의 새세대들은 아름다운 애국의 인생관을 지닌 고상한 인간으로 름름하게, 씩씩하게 자라나고있다.
어머니조국의 품속에서 격동의 나날을 보내면서 총련 조선대학교 졸업학년학생들은 참된 삶의 위치를 찾았다.조국에서 보고 느낀 모든것이, 받아안은 사랑이 그대로 애국의 자양분으로 되였다.
너도나도 웨친다.
이역의 모진 광풍도 우리를 흔들지 못한다, 위대한 조국의 불같은 그 열정, 억세인 그 기상을 닮아 애국의 한길에서 청춘을 빛내이겠다고.
석달후 그들은 정다운 교정을 나서게 된다.성스러운 애국의 초소가 그들을 기다리고있다.(전문 보기)
《우리는 앞을 본다, 미래를 확신한다》 -총련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의 연극창조과정에 있은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어도 언제나 마음속에 조국을 안고 살아야 하며 사회주의조국의 절대적인 지지자, 견결한 옹호자가 되여야 합니다.》
1983년 총련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를 졸업하게 된 학생들은 애국위업의 억센 기둥으로 자라날 결의를 담아 학교구내에 나무를 심었다.40여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 그 나무들은 푸르른 거목으로 자라나 설레이고있다.
한 학생이 이를 가지고 작문을 썼다.작문이 제45차 재일조선학생글짓기현상모집경연 《꽃송이》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후 교정의 그 나무들에 대한 학생들의 사랑의 감정은 더욱 깊어갔다.
어느날 선생님이 작문을 지은 학생을 가까이로 불렀다.
《학생이 썼던 작문을 소재로 삼아 연극을 만들려고 합니다.푸르러 설레이는 나무들과 더불어 민족교육과 동포사회의 창창한 래일을 내다본다는것이 작품의 주제입니다.머지않아 문화축전을 열게 되는데 잘 만들어보자요.주인공은 물론 학생입니다.》
나어린 학생의 가슴속에서는 환희의 회오리가 일었다.
(야! 참 멋지겠구나.우리가 연극을 하다니.)
대본은 인차 만들어졌고 출연자들은 연극창조에 달라붙었다.무대가 따로 없었다.교실에서도 집에서도 통학길에서도 모두가 대사를 익히고 연기훈련을 하였다.전차안에서 혼자 대사를 중얼거리다가 뭇사람의 의아한 시선을 받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어느날 오랜 세월 교육자로 사업한 주인공학생의 외할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왔다.
《너희들이 민족교육과 관련한 연극을 만든다지.참 용타.》
머루알같은 눈을 깜빡이는 학생들에게 로인은 민족교육의 력사, 총련의 력사에 대하여 자상히 이야기하여주었다.
그는 조국해방직후 일본 각지에 세워진 국어강습소들, 비록 유리창 하나 변변한것 없는 낡은 교사이지만 우리 말과 글을 배우니 정말 좋다고 웃고떠들던 아이들의 모습부터 떠올렸다.
당시 판자집이라도 자체의 교사를 가지고있는 교육단위는 몇개 안되였고 대다수가 일본학교의 교실들이나 초라한 건물들에서 불편한 곁방살이를 하고있었다고 한다.교구비품도 변변한것이 없었다.소학교 1학년생이나 앉을 작은 걸상에 중학생들이 웅크리고앉아 공부하는 형편이였다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게다가 일본반동들은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교육에 대한 지원은 고사하고 그를 말살하기 위해 총칼탄압도 서슴지 않았다.그에 항거하여 일어난것이 바로 재일동포들의 4.24교육투쟁이라고 하면서 로인은 말을 이었다.
《차디찬 방에서 곱아드는 손가락을 입김으로 녹이며 우리말 교과서를 한권한권 만들고 눈물겨운 돈 한푼한푼을 모아 판자집교사의 지붕이나마 얹으며 쓰라린 마음을 달래던 우리 동포들이였다.그런데 허리띠를 졸라매고 복구건설을 다그치고있는 조국에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여올줄을 그 누가 꿈에도 생각해보았겠느냐.》
낡을대로 낡고 비좁던 학교대신 사랑의 교육원조비로 건설된 현대적인 학교로 씩씩하게 등교하는 자식들의 환희에 넘친 모습을 보며 동포들은 《이 세상에 우리 수령님처럼 은정깊고 위대하신분은 없다.》, 《어버이수령님의 하늘같은 은덕으로 이제는 우리 애들이 마음껏 공부하게 되였다.》고 격정을 터치였다.
그 광경이 오늘도 눈에 선한듯 물기에 젖은 눈을 슴벅이며 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조국의 은혜로운 손길이 있어 어지러운 잡바람이 스며들지 못하는 청신한 교정에서 너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아버지, 어머니들이 배움의 글소리 랑랑히 울리며 민족의 넋을 새겨안고 어엿하게 성장하였다.애국의 대를 꿋꿋이 이어왔다.우리 동포들처럼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민족적차별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민족성을 잃지 않고 존엄있게 살아가는 해외동포들이 어디에 있느냐.조국의 사랑이 어려있는 민족교육의 화원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키웠다.
오늘은 너희들이 이곳에서 씩씩하게 자라나고있다.부디 잊지 말아라.애국의 바통을 굳건히 이어가야 한다는것을.》
로인이 돌아간 후 선생님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일부 학생들이 동포사회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품고있습니다.하지만 총련의 력사를 돌이켜봅시다.총련에 대한 탄압, 민족교육에 대한 차별이 단 하루도 그치지 않았지만 선대들은 미래를 확신하며 애국의 화원을 가꾸고 지켜오시였습니다.
우리모두 앞을 봅시다. 위대한 조국이 있는한 우리에게는 언제나 밝은 미래만이 있습니다.이런 마음 안고 달라붙는다면 연극이 잘될수 있습니다.》
흥분된 학생들은 서로 손과 손을 굳게 맞잡았다.
《잘해보자.미래를 확신하며.》
마침내 연극 《앞을 보리라》의 막이 올랐다.
…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
앞날을 그려본 사람들이 있었다
줄기차게 이어온 애국의 력사가
우리에게 있다
그 긍지와 자랑 안고
우리 여기에 서있다
앞날을 밝히는 씩씩한 사람으로
우리 자라나리라
우리 앞을 보리라
전체 출연자들의 합창시로 마감한 연극은 관중의 심금을 틀어잡았다.장내가 떠나갈듯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처음으로 연극에 출연하여 대절찬을 받은 학생들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이때 주인공학생의 외할아버지가 교장선생님과 함께 무대로 올라왔다.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외할아버지를 보며 주인공학생도 울었다.모든 학생들이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로인의 미소에는 미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후대들에 대한 대견함이, 흘리는 눈물에는 애국의 대가 굳건히 이어지는데 대한 환희가 비껴있었다.
격정이 굽이치는 무대에서 학생들은 애국위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온 선대들의 고상한 정신세계를 본받아 조국과 총련을 떠받드는 미래의 역군으로 튼튼히 준비해갈 마음속결의를 다지였다.
로인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서 그들은 사진을 찍었다.약속이나 한듯 모두 불끈 쥔 주먹을 쳐들었다.
애국의 의지가 어린 억센 주먹, 활력이 넘치는 주먹을.(전문 보기)
총련소식
공화국기를 영원토록 휘날리리
총련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가 다음해 새 교사에로 이전하게 된다.이와 관련하여 최근 현재의 교사에서 여러가지 행사들이 진행되였다.그 마지막행사로 얼마전 대규모적인 문화체육행사가 열리였다.
학교가 걸어온 자랑스러운 로정을 돌이켜보며 교직원, 학생들과 졸업생들은 모두가 힘을 합쳐 총련민족교육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갈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오래전에 창작된 충정의 노래를 1 500여명의 학생, 졸업생들이 합창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였다.
지부대항 이어달리기경기 등 로중청이 함께 하는 각종 경기들이 진행되였다.제일 이목을 끈것은 집단체조였다.이 학교 학생들은 문화체육행사때마다 애국의 마음과 마음을 합쳐 대형공화국기를 펼치는 집단체조를 하군 한다.
이번에 교직원, 학생, 졸업생들이 대형공화국기를 휘날리는 모습은 동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강대한 내 나라가 있어, 위엄있게 펄럭이는 저 공화국기가 있어 우리가 이처럼 일본에서도 가슴펴고 살수 있는것이라고 하면서 누구나 눈시울을 적시였다.
학생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강위력한 조국이 있어 지난날 식민지노예의 설음속에 산설고 물설은 이역땅에 끌려와 인간의 초보적인 권리마저 빼앗겼던 비참한 수난자들의 후손들인 자기들이 애국의 역군으로 씩씩하게 자라나고있는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은 굳게 마음다지였다.
선대들이 자랑스럽게 휘날렸던 공화국기를 우리 세대가 더욱 힘차게 휘날리겠다고.
탄복을 자아낸 우리 학교의 모습
최근 총련 군마조선초중급학교에서 일본의 사회계인사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외공개수업이 진행되였다.
《조선학교에 대한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정작 와보니 놀라움을 자아내는것뿐입니다.》, 《민족적긍지를 안고 살아가는 힘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교정을 돌아보고 참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그들은 나어린 초급부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을 돌아보고는 《이처럼 때묻지 않은 순진한 아이들이 있다는것이 정말 놀랍다.》, 《당돌하고 씩씩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고 하면서 탄성을 터치였고 국어수업참관시에는 학생들이 문학작품의 주인공들의 모습을 방불하게 그려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건전한 인간들을 키우는 조선학교의 교육내용에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학생들이 서로서로 다정한 친형제처럼 지내고 교원들은 그들 한명한명을 친자식처럼 대해주며 성의껏 학습지도를 해주는것도 놀라움을 자아냈다.자기 조국과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는 고상한 정신세계와 진지한 학습태도, 굳센 단결력과 례절바른 도덕품성, 교정에 흘러넘치는 혈육의 뜨거운 정 등 총련의 민족교육만이 펼칠수 있는 놀라운 현실에 접하고 그들은 일본학교들에서는 흉내도 낼수 없는 훌륭한 교육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총련에서는 민족교육의 정당성과 우월성, 생활력을 내외에 널리 과시하는 이런 계기들을 적극 활용해나가고있다.(전문 보기)
위대한 조국이 있어 가슴펴고 당당히 산다 -총련의 한 동포의 체험담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주체와 애국으로 자랑높은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열렬한 조국애, 민족애의 력사는 승리와 영광으로 가득찬 우리 공화국의 어제와 오늘, 광명한 래일과 더불어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입니다.》
흔히 인생의 황혼기에는 추억에 산다고들 한다.재일본조선상공련합회 효고현본부 고문 전재홍동포도 그런 시기에 살고있다.그의 뇌리에는 날마다 가지가지의 추억이 갈마들군 한다.
근 한세기를 살아오면서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의 암흑의 세월과 조국해방후 애국운동의 전 력사를 체험한 그로서는 추억되는것이 많다.
먼저 떠오르는것이 일본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의 등에 업혀 현해탄을 건너가던 때의 일이다.그때 그는 5살 나던 철부지였다.
사품치는 검푸른 바다를 배전에서 내려다보며 공포에 질리였던 애어린 소년은 이역에서 더 큰 무서움을 느끼였다. 아버지가 있다는 곳에 가보니 일제의 군사기지건설에 끌려온 숱한 조선사람들이 고역을 치르고있었던것이다.그들의 처지는 두말할것없이 매우 비참하였다.그야말로 노예였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날조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사는 조선사람들의 수는 수백명에 불과하였다.그런데 1945년 일제패망당시에는 그 수가 무려 240만명에 달하였다.그 절대다수가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였다.당시 《침목 한개에 조선사람 한명》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죽음의 유령이 배회하는 살인고역장들에서 그들의 생명은 파리목숨이나 같았다.바로 그런 곳에서 그의 유년시절이 흘러갔다.
8살 나던 해에 재홍은 학교에 입학하였다.일본소학교였다.입학하던 날 그는 전재홍이라는 이름으로 학적부에 등록하였다.그런데 그것이 문제로 되였다.일본학생들은 그를 첫날부터 속된 별명으로 부르며 따돌리였다.
어느날 력사수업시간이였다.그날의 수업은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사에 대한것이였다.그날 재홍은 아연하지 않을수 없었다.
오만한 일본인교원이 의기양양하여 임진년의 조선침략을 조선정벌이라고 뇌까린것이다.분격이 치밀어올랐다.
그런데 교실에 있던 일본학생들은 재홍을 흘끔흘끔 보며 키드득거리는것이였다.로골적인 조롱이였다.구석구석에서 그를 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주위의 항시적인 압박에도 주눅이 들지 않던 재홍이 불끈하여 나직이 내뱉았다.
《너희들 왜 그래?》
그러자 일본아이들은 더 승이 나서 떠들어댔다.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런데 일본인교원은 무작정 재홍을 꾸짖는것이였다.
《너는 나쁜 놈이다.수업규률을 문란시키였다.당장 나가라.》
재홍은 억울하게 교실에서 쫓겨났다.식민지소년이 당할수밖에 없는 숙명이였다.그는 운동장에서 한참이나 씩씩거리였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교실에서 그 무엇인가 없어지면 모든 혐의는 그에게 들씌워졌다.학교에서의 매일매일이 차별과 박해의 련속이였다.전재홍로인에게 있어서 소학교시절의 추억은 모두 이런것들이다.그야말로 악몽같은 추억이다.
마침내 가증스러운 일제가 패망하고 조국이 해방되였다.
이역의 동포사회는 환희로 설레이였다.당시 재홍이 사는 동네에는 조선사람이 수천명이나 살고있었다.
하지만 일제는 패망하였어도 조선민족에 대한 적의와 멸시는 여전하였다.어느날 거리에서 소방대의 화재진압훈련이 진행되였다.
그런데 소방대원이라고 하는자들은 그의 집지붕에 마구 물을 뿌리는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짓들이냐?》
재홍의 아버지가 분격하여 소리치자 일본소방대것들은 히히닥거리며 달아났다.조선사람의 집이니까 아무렇게 다루어도 문제될것이 없다는 심보였다.
국어강습소에 다니면서 전재홍은 강한 민족의식을 키우게 되였다.강습소에는 많은 청소년들이 모여 우리 말과 글, 력사와 문화를 배우고있었다.당시 그 누구라 할것없이 동포들의 생활이 가난하고 비참한것으로 하여 교사라는것은 비바람이 스며드는 창고같은 건물들이였고 책걸상들과 칠판 등 교구비품들도 산지사방에서 모아온 낡은것들이였다.하지만 누구도 락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새 조국건설의 억센 기둥, 동포사회의 미더운 역군으로 자라나려는것이 그들모두의 한결같은 의지였다.
우리가 어째서 망국노로 되였댔는가.왜 이역에까지 끌려와 수난을 겪어야 했는가.그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두가 열정적인 토론을 벌리였다.
거치른 이역의 찬바람, 궂은 눈비를 맞으며 천대받던 불쌍한 식민지소년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을 해방하시고 진정한 인민의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신 그때부터 애국의 화원에 인생의 씨앗을 묻게 되였다.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공화국의 창건은 말그대로 운명전환의 력사적사변이였다.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우리도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모신 공화국의 주인이다!
이끌어줄 수령이 없고 품어줄 나라가 없어 얼음처럼 차거운 일본땅에서 설음의 눈물을 뿌리던 재일동포들은 저저마다 거리에 떨쳐나와 목청껏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였다.그속에는 소년 전재홍도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늘 조선사람이라는 긍지를 안고 살아왔다.
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존엄높은 자주의 나라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강국으로 위용떨치는 우리 공화국은 전재홍동포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이 바람세찬 이역에서도 추호의 흔들림없이 애국위업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올수 있게 한 억척의 지지대였다.
조국의 자랑찬 소식을 들으며 절세위인들을 높이 모시고 주체의 한길에서 민족의 존엄을 떨쳐가는 어머니조국의 드높은 숨결을 느끼며 그의 가슴은 얼마나 벅차올랐던가.
일본반동들이 총련탄압에 광분하고 조선민족차별책동에 악랄하게 매여달려도 그의 배심은 든든하였다.
(조선사람으로 태여난것이 뭐 어쨌단 말인가.공화국공민으로 사는것이 뭐 어쨌단 말인가.너희들이 아무리 뱁새눈으로 노려보며 발악해도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조국을 빼앗지 못한다.민족의 넋을 거세하지 못한다.나는 조선사람이다.조선사람답게 살겠다.)
그렇게 그는 수십년간을 살아왔다.
오늘 경애하는 원수님의 특출한 위인적풍모와 탁월한 정치실력에 의하여 그 존엄과 위력이 민족사상 최상의 경지에서 떨쳐지고 세기를 주름잡는 비상한 속도로 제일강국으로 솟구쳐오르는 조국의 모습은 전재홍동포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에게 공화국의 해외공민된 끝없는 긍지와 함께 천백배의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고있다.
망국의 그 세월 남들처럼 크지도 세지도 못하다고 한탄하던 약소민족의 설음은 영원히 옛말로 되였다.력사의 방향타를 억세게 틀어쥐고나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우러르며 재일동포들은 민족의 륭성번영과 총련의 밝은 미래를 확신하고있다.이처럼 위대한 령도자, 존엄높은 조국을 받들어 애국위업에 힘차게 떨쳐나설 의지를 더욱 굳히고있다.
오늘의 벅찬 현실을 안아볼수록 전재홍동포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고있다.
오래동안 학교교육회 회장, 지역상공회 회장, 총련지부위원장으로 사업한 총련의 1세 동포는 오늘도 후대들에게 늘 이렇게 당부하군 한다.
《수난의 력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애국을 해야 한다.조국을 옹위해야 한다.》(전문 보기)
총련소식
뜻깊은 해를 자랑찬 성과로
1996년부터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청상회)의 주최로 해마다 진행되여오는 《우리 민족연단》은 새세대 동포상공인들의 애국열의를 분출시키는 주요계기로 되고있다.민족교육의 강화발전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있다.
지난 9월말 니시도꾜에서 진행된 《우리 민족연단 2024》의 주제는 《〈맞이하자!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안아오자! 니시도꾜민족교육의 찬란한 개화기를!〉, 〈니시도꾜 잠재력!〉》이였다.지역동포들의 힘을 최대로 발양시켜 민족교육의 찬란한 개화기와 동포사회의 부흥기의 첫 돌파구를 열어나가겠다는것이다.
이 행사에서 《우리 민족연단 2025》의 개최지가 정해졌다.히로시마현이다.
얼마전 총련 히로시마현본부와 상공회, 청상회, 히로시마조선초중고급학교 교원들로 구성된 《우리 민족연단 2025》실행위원회가 조직되였다.
히로시마현에서는 2001년에 이 연단을 조직한적이 있다.그때 지역동포사회에서 애국열의가 비상히 고조되였었다.실행위원회성원들은 그때처럼 동포사회가 흥성거리게 하자고 하면서 떨쳐나서고있다.
다음해는 총련결성 70돐, 청상회결성 30돐이 되는 해이다.실행위원회 위원장인 히로시마현청상회 회장은 온갖 곤난을 뚫고 애국위업의 강화발전과 동포사회의 미래를 위해 힘껏 일해나가자고 호소하였다.
히로시마현의 청상회성원들은 동포들의 무궁한 힘을 하나로 모아 애국애족의 자랑스러운 력사를 계승하여 동포사회와 민족교육을 강화발전시키는 사업에서 언제나 앞장서나갈 결의들을 표명하였다.
지금 그들은 뜻깊은 다음해를 자랑찬 성과로 맞이할 일념으로 《우리 민족연단 2025》준비사업에 힘을 넣고있다.동포사회에서 민족성을 철저히 고수하며 민족교육을 힘있게 지원하기 위한 방도들을 진지하게 론의하고있다.
지역동포사회가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다.
애국열의를 북돋아준 공연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에는 이름난 취주악단이 있다.해마다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연다.악단의 규모는 47명이다.
얼마전 그들은 총련 금강산가극단 연주가들, 학교졸업생들과 함께 연주회를 열었다.
민족관현악합주 《강성부흥아리랑》, 《도라지》, 《그네뛰는 처녀》 등 여러 곡목이 펼쳐질 때마다 장내는 격정으로 설레이였다.목관2중주와 녀성중창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는 민족교육의 화원에 대한 동포들의 지극한 사랑의 감정을 절절하게 그려보인것으로 하여 관람자들의 절찬을 받았다.《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로 공연은 절정을 이루었다.공연은 성공적이였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취주악단 성원들은 오래동안 기숙사에서 침식을 하였다.
조국에서 보내준 악기를 가지고 맑고 아름답고 독특한 음색을 가진 우리 민족음악의 우수성을 과시하자고 하면서 모두가 이악하게 노력하였다.
우리 동포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애국의 넋, 민족의 넋을 과시하기 위해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친 이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관중에게 커다란 감명을 안겨주었다.
동포들은 《공연을 통해 조국을 느낄수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제일이라는것을 다시금 느꼈다.참으로 좋은 공연이였다.》고 자기들의 심정을 피력하였다.공연을 본 일본사람들속에서도 좋은 반향이 울려나왔다.
관중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출연자들은 애국열의가 끓어번지고 민족성이 흘러넘치는 동포사회를 꾸려나가는데 예술의 힘으로 이바지할 의지를 가다듬었다.(전문 보기)
총련소식
힘을 합쳐 일떠세운 아담한 새 교사
지난 10월 20일 총련 가와사끼조선초급학교 새 교사 준공식이 진행되였다.
이 학교의 전신은 가와사끼조련초등학원이다.그만큼 력사가 오랜 학교이다.이곳 동포들은 1970년대에 4층짜리 번듯한 교사를 일떠세웠다.당시로서는 매우 현대적인 교사였다.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수 없는 법이다.
로후화되여가는 교사를 바라보며 동포들은 생각하였다.
(우리 지역은 애국운동의 불길이 제일먼저 지펴진 곳이 아닌가.선대들의 넋을 이어 누구나 부러워할 새 교사를 기어이 건설하자.조건은 어렵지만 우리는 할수 있다.)
2022년 5월 지역의 총련과 녀성동맹, 청상회, 조청, 교육회 일군들로 새 교사건설위원회가 조직되였다.건설은 대중적사업으로 추진되였다.총련 가와사끼조선초급학교는 이곳 동포들에게 있어서 자랑스러운 존재이다.그래서 학교를 위한 일에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다.우리 아이들의 랑랑한 글소리, 밝은 웃음소리를 들을 때가 제일 기쁘다고, 애국의 대를 꿋꿋이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를 악물고 우리 학교를 빛내여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은 교사건설에 온갖 지성을 다 바치였다.그 결과 건축잡지에 소개되여도 무방하다고 할만큼 현대적인 다락식교사가 준공되였다.나어린 학생들은 멋진 교사에서 공부하게 된 기쁨을 안고 노래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를 불렀다.
그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며 건설위원회성원들은 마음속으로 뇌이였다.
(새 교사준공은 시작에 불과하다.학교의 안정적발전을 위해서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건설위원회의 활동은 계속된다.)
동포사회에 활기를 불어넣는 청년조직으로
최근 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 아이찌현본부가 활동력이 미약하였던 여러 지부를 련이어 재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 시기 악성전염병사태, 전임일군의 부족 등으로 정상가동하는것은 15개 지부중 6개 지부만이였었다.《조건이 그러니 어쩔수 없지 않은가.》라는 피동적인 경향이 초래한 결과였다.
본부일군들은 이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았다.
애국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올려세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청년들을 조직의 두리에 묶어세워야 한다, 난관이 겹쌓일수록 공세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은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다.
먼저 핵심을 키웠다.또한 각계층 청년들을 만나 총련과 동포사회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였다.
각종 문화체육행사를 진행하여 청년들의 기세를 돋구었다.혁신적인 단위들과의 경험교환모임도 자주 가지였다.
조건이 자기들과 별로 다를바 없었지만 단합된 힘으로 지부들을 재건한 조청 미에현본부 일군들의 일본새에서 조청 아이찌현본부 일군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리고 분발하였다.
마침내 지부들이 하나둘 재건되기 시작하였다.올해말까지 모든 지부들을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도 실현할수 있게 되였다.
동포사회를 젊음이 약동하는 청년판, 새세대판으로 들썩이게 하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이곳 조청일군들은 더욱 분발하고있다.(전문 보기)
총련소식
공화국의 해외문예인, 해외체육인답게
총련 금강산가극단결성 50돐을 맞으며 리문기(장새납연주가), 박강부(무용배우), 리화선(무용배우)동포가 공화국공훈배우칭호를 수여받았다.
지난 50년간 조국에서의 경축공연, 일본에서의 순회공연, 중국, 로씨야, 미국, 도이췰란드 등 해외에서의 공연을 비롯하여 8 000여회의 공연 진행, 1 500만여명이 관람…
명예칭호를 수여하는 모임에서 총련중앙상임위원회의 책임일군은 금강산가극단의 이 자랑찬 성과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이역에서 주체예술의 위력을 과시하고 동포사회에 풍만한 민족적정서가 차넘치게 한 선대들처럼 가극단의 모든 예술인들이 공화국의 어엿한 해외문예인, 애국운동의 나팔수답게 힘차게 전진해나가리라는 기대를 표명하였다.
값높은 영예를 지닌 예술인들은 연단에 올라 어머니조국의 믿음을 언제나 잊지 않고 수령송가 , 조국찬가를 영원히 울려가는 길에 자기들의 모든것을 바쳐나가겠다고 결의하였다.
한편 재일본조선인체육련합회(체련)결성 70돐에 즈음하여 여러 동포가 공화국공훈체육인의 영예를 지니였다.
조국의 체육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최영수(체련 부회장 겸 축구협회 회장), 김정준(체련 부회장 겸 탁구협회 회장)동포가 수여받았다.
결의토론에서 그들은 공화국의 해외체육인답게 체련과 산하협회들을 애국으로 단결된 힘있는 집단, 공화국의 존위를 떨치는데 적극 이바지하는 집단으로 꾸려갈 맹세를 다지였다.
우수한 경험을 공유, 일반화하며
얼마전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녀성동맹) 교또부본부가 총련 교또조선초급학교에서 분회장, 분회열성자모임을 가지였다.
앞선 단위들의 성과와 경험을 공유하여 대중운동의 불길을 더욱 높이 지펴올리자는데 모임의 목적이 있었다.
총련 교또조선가무단의 예술선동공연에 이어 애국사업에서 우수한 단위인 녀성동맹 사이다마현 중부지부의 활동내용을 담은 동영상편집물이 상영되였다.
모임에서 보고자는 분회가 강화되여야 애국운동이 활기를 띠고 동포사회가 흥한다고 하면서 지역의 실정에 맞게 분회행사들을 더 많이 조직하여 애국의 열기가 더욱 고조되게 하자고 열렬히 호소하였다.
이어 여러 지부위원장과 분회장, 분회열성자들이 자기 단위의 사업경험에 대하여 토론하였다.특히 70고령이지만 애국사업에 앞장서고있는 한 분회위원의 토론은 참가자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크고작은 행사들을 자주 조직하여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고있는 단위들이 소개되였다.
우정과 친목을 두터이 하는 특색있는 체육오락경기가 진행되였다.참가자들은 여러 조로 나뉘여 각종 경기를 진행하였다.응원소리로 장내는 떠나갈듯하였다.경기과정에 모두가 한집안식구처럼 되였다.짧은 시간에 많은것을 배우고 많은 사람들과 친숙해지게 하는 이런 모임이 좋다는 반영이 여기저기에서 울려나왔다.
모임참가자들은 앞으로도 좋은 경험을 공유하면서 동포들을 위한 일을 더 많이 할것을 다짐하였다.
모든 기층단위들을 총련의 믿음직한 성돌로 반석같이 다져나가려는 이런 헌신적노력에 의해 녀성동맹 교또부본부의 사업에서는 날로 큰 전진이 이룩되고있다.(전문 보기)
자연의 광란속에서도 절망과 비관을 몰랐다 -총련동포들이 오늘도 잊지 못해하는 20년전의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은 사회주의조국의 한 부분이며 재일동포들은 어머니조국과 한피줄을 잇고 사는 친형제, 한집안식솔입니다.》
지난 10월하순 어느날 총련 니이가다현본부 고문인 리주현동포는 달력에서 오래동안 눈길을 뗄수 없었다.10월 23일, 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던 20년전의 그날이 불현듯 떠올랐기때문이다.
(벌써 20년세월이 흘렀지만 모든것이 기억에 생생하구나.예로부터 재난에 뒤따르는것은 피눈물과 절망의 아우성뿐이라고 하였지.하지만 그때 우리 동포사회에서는 희망과 락관의 웃음소리가 울려나오지 않았던가.)
상념에 잠겨 리주현동포는 추억의 실꾸리를 풀어나갔다.
2004년 10월 23일 일본의 니이가다현 쥬에쯔지역에서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진원은 니이가다현의 땅속 20㎞ 깊은 곳에 있었다.1995년의 한신대지진이후 근 10년만에 렬도에 들이닥친 대재난이였다.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10만여명이 집을 잃고 한지에 나앉았다.그들중에는 우리 동포들도 있었다.적지 않은 동포가정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그칠줄 모르는 강한 여진은 불안과 공포를 더욱 증대시키였다.
바람세찬 이역에서 부당한 민족적차별과 끈질긴 정치적박해속에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예상치 않았던 불행이였다.
지진이 발생한 후 수라장이 된 니이가다현의 어느한 도로로 한대의 화물차가 바삐 달리고있었다.
차안에는 우리 동포들의 생사확인과 지원을 위해 긴급출동한 총련 니이가다현본부 일군들이 타고있었다.리주현동포는 당시 현본부위원장으로 사업하고있었다.적재함에는 다음날 총련 니이가다조선초중급학교에서 진행될 예정이였던 체육문화행사를 위해 준비해놓은 물자들이 실려있었다.
얼마 못가서 길이 막히였다.도로가 혹심하게 파괴되여 숱한 차들이 오도가도 못하고있었다.하지만 총련일군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산발을 톺아서라도 기어이 갑시다.우리 동포들이 기다립니다.》
끝끝내 그들은 피해지역에 도착하였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하였다.재난은 동포들의 생활터전을 모질게도 앗아갔다.
뜻밖의 사태로 모든것을 잃고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망연자실하여 앉아있던 동포들은 사지판으로 남먼저 찾아온 총련일군들을 눈물속에 맞이하였다.
《일본구조대도 아직 들어오지 못한 곳으로 총련일군들이 먼저 오다니, 정말 우리 총련조직이 강합니다.새삼스럽게 느끼였습니다.》
《장차 어떻게 살아갈지 앞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살았습니다.고맙습니다.정말 고맙습니다.》
《총련조직의 사랑이, 동포사회의 정이 참으로 따뜻하고 진실합니다.》
…
잇달으는 여진으로 누구도 들어오기 꺼려하는 곳에 주저없이 달려온 총련일군들을 부둥켜안고 피해지역 동포들은 이렇게 진정을 터놓았다.
어머니는 행복에 웃는 자식보다 불행에 우는 자식을 더 생각하며 멀리서도 자식의 불행을 감촉하는 법이다.
언제나 총련과 재일동포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돌리고계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동포들이 당한 피해를 속속들이 료해하시고 사랑의 위문금을 보내주시였다.
온 동포사회가 뜨거운 격정의 파도로 세차게 설레이였다.위문금전달모임장소는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감사와 열화같은 경모의 정으로 끓어번지였다.온통 눈물바다였다.나라에서 나라에서 돈을 보낼줄은 꿈결에도 꿈결에도 생각을 못했지요라는 추억의 노래를 마음속으로 부르고 또 부르며 동포들은 조국을 향해 삼가 큰절을 올리였다.정녕 그 광경은 위대한 어버이와 이역의 아들딸들사이에 맺어진 혈육의 정을 보여주는 가슴뜨거운 화폭이였다.
동포들 누구나 사회주의조국의 품이야말로 영원히 운명을 맡길 진정한 삶의 요람, 한없이 따사로운 어머니품이라는것을 다시금 깊이 절감하였다.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집과 재산을 다 잃고 천막에서 생활하던 한 동포는 위대한 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이 있어 절대로 비관하지 않는다고 격정의 목소리를 터치였다.
예로부터 백가지 기쁨이 한가지 슬픔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 부어주신 사랑의 생명수는 동포들의 가슴속에서 절망의 앙금을 말끔히 가셔주고 천백배의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피해지역에 세차게 울려퍼진 격정의 환호성은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 있는한 자기들의 운명과 미래는 끝없이 밝고 창창하다는 재일동포들의 마음속진정의 메아리였다.
어버이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위문금을 생명수로 하여 분연히 일떠서자!
전 총련조직이 떨쳐나섰다.총련중앙상임위원회는 피해동포지원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동포들의 피해상황을 신속히 조사하는 한편 물자확보와 동포들의 생활안착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리였다.
일본각지의 총련본부들과 상공회, 녀성동맹, 조청과 청상회들에서는 피해지역 동포들에 대한 지원사업을 전조직적인 운동으로 힘있게 벌리였다.수많은 동포들이 자기들의 성의가 깃든 구호금과 물자들을 피해지역 동포들에게 보내주었다.그 분배사업을 맡은 총련일군들은 구호물자들이 나날이 쌓여지고있었지만 하루 한두끼 소박한 식사를 하면서 밤낮이 따로없이 뛰고 또 뛰였다.
몸서리치는 자연의 광란은 동포사회를 하나로 더욱 굳게 뭉치게 한 계기로 되였다.상황은 의연히 엄혹하였지만 누구도 락심하지 않았다.조국에 대한 열렬한 충정, 굳센 단결력으로 엄혹한 난국을 타개해나가는 총련동포들의 미더운 모습은 일본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어머니조국의 사랑이 얼마나 따사롭고 은혜로우며 애국의 한마음으로 뭉친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다시금 뚜렷이 보여준 그 나날을 되새길수록 리주현동포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회상에서 깨여난 그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총련 제25차 전체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내주신 력사적서한의 글줄을 다시금 더듬었다.
지진과 해일,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땅에서 동포들의 생명과 건강, 보금자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것보다 더 긴절하고 중요한 사업은 없다고 하시며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의 동포들에 대해서는 더 가슴을 조이며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한명의 동포도 불상사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간곡한 그 말씀,
리주현동포는 격정으로 가슴들먹이며 마음속으로 뇌이였다.
(이역의 한식솔들에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은 어버이장군님의 사랑그대로이다.대를 이어 그 따사로운 품속에 안겨사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일본은 지진이 잦은 나라이다.때없이 렬도를 뒤흔드는 지진으로 하여 일본사람들은 항시적인 우려와 공포를 안고있다.하지만 아무리 대지가 흔들리고 불안과 공포의 회오리가 소용돌이쳐도 어머니조국만을 굳게 믿고 사는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마음속기둥은 이처럼 끄떡없다.(전문 보기)
주체조선의 태양이시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드립니다
오늘 우리들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탁월한 령도밑에 조국인민들이 자주적이고 강력한 국가건설의 세계적본보기를 창조하며 사회주의전면적발전의 시대를 기세차게 열어나가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4》(새 전성기 4차대회)를 가지였습니다.
우리들은 적대세력들의 정치군사적대결책동으로부터 공화국의 주권과 안전을 굳건히 수호하시고 큰물피해지역의 복구건설현장을 거듭 찾으시며 위민헌신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거룩하신 영상을 무한한 격정속에 우러르면서 천출위인을 국가령도자로 높이 모신 공화국의 해외공민된 민족적긍지와 한없는 행복감으로 가슴벅차오름을 금치 못하고있습니다.
총련의 기층조직건설에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세심한 령도가 있음으로 하여 우리들은 본 대회를 동포들의 기본생활단위이며 애국과업의 직접적집행단위인 분회의 기능과 역할을 백방으로 높이고 총련부흥의 새시대의 요구에 맞게 분회사업을 새로운 단계에로 확고히 올려세워나가는 전환적계기로 빛내일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전체 분회장, 분회위원들을 비롯한 기층조직일군들과 열성동포들의 열화같은 흠모와 충성의 한마음을 담아 분회일군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총련의 기층조직들의 강화발전을 위한 강령적인 과업과 방도를 밝혀주시며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가장 열렬한 감사와 최상최대의 영광을 삼가 드립니다.
대회에 참가한 우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경이적인 기적의 시대, 강국시대를 펼쳐가는 우리 조국과 더불어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미래도 창창하다는 신심과 락관을 안고 원수님의 분회중시사상을 필승의 기치로 더 높이 추켜들고나감으로써 위대한 김정은시대 분회건설의 새로운 전성기를 기어이 열어나갈 불같은 결의로 충만되여있습니다.
우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제시하신 분회강화를 위한 4대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여 총련의 모든 분회들을 위대한 진리로 굳게 결합되고 따뜻한 정이 흐르는 동포동네로 만들어나가겠습니다.
동포들의 무궁무진한 애국의 힘을 하나로 모아 그들의 창발성을 적극 불러일으켜 분회활동을 함께 벌려나감으로써 분회를 명실공히 한마음, 한뜻으로 굳게 뭉친 힘있는 애국집단으로 꾸려나가겠습니다.
우리들은 동포제일주의를 철저히 구현하여 분회를 동포들이 서로 도와주는 상부상조의 미풍이 차넘치고 조국애, 동포애, 후대사랑의 뜨거운 정으로 굳건히 결합된 따뜻한 동포동네로 꾸려나가겠습니다.
모든 분회를 민족성이 차넘치는 생기발랄한 조직으로 꾸림으로써 재일조선인운동의 천하지대본인 민족교육사업에 시간과 품을 들이며 조선민족의 우수한 민속과 전통을 고수하기 위한 활동을 왕성히 벌려 남녀로소 모든 동포들이 조선의 넋, 민족의 얼을 지닌 참된 조선사람으로 살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동포들의 애국지성을 불러일으켜 사회주의강국건설에 특색있게 이바지하며 일본인민들과의 우호친선활동을 적극 벌려나가겠습니다.
우리들은 《새 전성기 애족애국모범창조운동》을 새형의 분회강화운동으로 더욱 고조시켜 분회의 면모를 동포대중주인형, 동포대중참가형으로 일신하겠습니다.
총련의 전체 분회위원들과 기층조직일군들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강령적말씀을 높이 받들고 높은 책임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안아오기 위한 분회사업에서 기어이 혁신적성과를 이룩함으로써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애국충정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우리들의 가장 간절한 념원은 주체조선의 강대성의 상징이시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운명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안녕입니다.
우리들은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다함없는 충성과 경모의 마음을 담아 주체위업과 총련애국위업의 승승장구를 위하여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부디 옥체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4》(새 전성기 4차대회) 참가자일동
2024년 11월 10일 일본 도꾜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4》(새 전성기 4차대회) 진행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4》(새 전성기 4차대회)가 10일 일본 도꾜에 있는 조선문화회관에서 진행되였다.
허종만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과 박구호제1부의장 겸 조직국장, 부의장들, 중앙단체, 사업체, 본부와 지부 일군들, 총련과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 분회장들을 비롯한 대표들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가 주악되였다.
허종만의장이 인사발언을 하였다.
그는 1961년에 진행된 《총련분회열성자 제1차대회》이후 63년의 오랜 력사와 전통을 새겨온 총련분회대표자대회는 세계해외교포운동사에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자랑스러운 대회이며 총련일군들의 조국애와 동포애, 후대사랑을 만방에 떨치는 충성과 애국의 대회라고 언명하였다.
이번 대회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바라시고 의도하신대로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열어나가는 중대한 계기로 되여야 한다고 그는 말하였다.
박구호제1부의장 겸 조직국장이 보고를 하였다.
보고자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탁월한 사상과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우리 조국이 사회주의전면적발전에서 눈부신 성과와 변혁을 동시다발적으로 이룩해나가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4》(새 전성기 4차대회)를 가지게 된데 대해 언급하였다.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0》이후 지난 4년간 모든 분회들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제시하신 분회강화를 위한 4대과업을 일관하게 틀어쥐고 《새 전성기 애족애국모범창조운동》을 중단없이 벌려 분회의 면모를 일신하는데서 성과를 이룩하였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앞으로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분회중시사상을 보다 철저히 관철하여 분회사업을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지향하는 새로운 단계에로 확고히 올려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분회는 이역의 모진 칼바람속에서 우리 동포들이 서로 의지하고 화목과 단합을 이루며 민족성을 지키고 애국의 삶을 꽃피우는 기본생활단위인 동시에 동포들의 열정과 힘을 하나로 모아 조국과 민족, 동포들을 위한 애국과업을 직접 집행하는 단위라고 그는 밝혔다.
이것이 바로 근 70년을 헤아리는 총련의 력사와 더불어 이어온 재일조선인운동에서 분회가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와 역할이라고 하면서 그는 분회사업이자 곧 동포들과의 사업이며 총련의 기본리념인 동포제일주의는 분회사업을 통하여 구현된다고 말하였다.
그는 총련과 녀성동맹의 분회장과 분회위원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분회중시사상을 필승의 기치로 높이 추켜들고 이번 분회대표자대회를 계기로 위대한 김정은시대 분회건설의 새로운 전성기를 기어이 열어나갈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오늘날 분회건설의 가장 리상적인 목표는 분회를 위대한 진리로 굳게 결합되고 따뜻한 정이 흐르는 동포동네로 만드는것이다.
다시말하여 동포들이 확고한 애국의 신념을 가다듬고 하나로 뭉치며 조국사랑, 동포사랑, 후대사랑의 정이 차넘치는 동포동네로 꾸리는것이다.
분회건설목표를 달성하자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몸소 제시하신 분회강화를 위한 4대과업을 일관하게 틀어쥐고 관철하여야 한다.
분회를 강화하기 위한 과업은 첫째로, 분회를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친 힘있는 동포동네로 꾸리는것이다.
분회장과 분회위원들, 분회관하 일군들과 열성자들은 분회를 명실공히 힘있는 동포동네로 꾸리기 위하여 동포들을 가장 귀중한 존재로 여기고 늘 동포들속에 들어가 고락을 함께 하며 그들의 창발성을 불러일으켜 분회활동을 벌려나가야 한다.
둘째로, 동포제일주의를 철저히 구현하여 분회를 상부상조의 미풍이 차넘치고 덕과 정으로 굳건히 결합된 따뜻한 동포동네로 꾸리는것이다.
분회장과 분회위원들은 뜨거운 정을 안고 동포들의 생활을 친혈육의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풀어줄것이다.
셋째로, 분회를 민족성이 차넘치는 동포동네로 꾸리는것이다.
많은 동포자녀들을 우리 학교에 보내도록 하는 사업과 학교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활동을 분회관하 모든 세대 동포들의 지혜와 힘을 모아 지역적특성에 맞게 활발히 벌리도록 할것이다.
넷째로, 분회를 사회주의강국건설에 특색있게 이바지하는 애족애국의 동포동네로 꾸리는것이다.
분회에서는 조국인민들과 언제나 숨결과 보폭을 함께 하여 어머니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관하동포들의 애국지성을 불러일으키는 사업을 잘 조직할것이다.
그는 계속하여 분회를 강화하고 분회앞에 나선 4대과업을 관철하자면 분회위원회를 잘 꾸리고 그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하면서 분회위원들은 동포동네의 호주이며 분회위원회는 말단기층조직의 애족애국운동과 동포들의 생활을 책임지고있다고 말하였다.
《새 전성기 애족애국모범창조운동》을 새형의 분회강화운동으로 더욱 고조시켜나가야 한다고 그는 강조하였다.
그는 전체 총련일군들이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분회중시사상을 높이 받들고 분회를 비롯한 기층조직건설에 총력을 다하여야 한다는데 대해 언급하였다.
다음해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주체적해외교포운동사상과 탁월한 령도, 한없이 숭고한 동포애의 력사로 수놓아진 총련의 결성 70돐이 되는 뜻깊은 해라고 하면서 그는 충성과 애국으로 단결된 총련조직과 동포들의 드높은 기세와 혁신적성과로 총련결성 70돐을 빛나게 맞이하자고 호소하였다.
그는 각지의 모든 분회장, 분회위원들이 경애하는 원수님만 계시면 반드시 이긴다는 철석의 신념을 간직하고 높은 책임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안아오기 위한 분회사업에서 혁혁한 성과를 이룩할것을 굳게 확신하였다.
이어 토론들이 있었다.
토론자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바라시는대로 분회의 면모를 동포대중주인형, 동포대중참가형으로 크게 일신시킴으로써 분회를 덕과 정으로 결합된 조직으로, 애족애국의 믿음직한 성돌로 튼튼히 다져나갈 결의들을 표명하였다.
대회에서는 지난 4년간 《새 전성기 애족애국모범창조운동》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둔 분회들에 대한 표창이 있었다.
대회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드리는 편지가 랑독되였다.(전문 보기)
애국의 일편단심, 오직 그 한길만을 걸어왔다 -한 평범한 총련일군의 삶을 더듬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건국의 첫 기슭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장구한 기간 우리 공화국을 떠받드는 초석이 되고 대들보가 되여준 우리 인민의 불굴의 군상속에는 재일동포들의 모습도 력력히 새겨져있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재부와 권력이 사람의 인격과 가치를 결정한다.
총련일군들은 바로 황금만능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신의 영달이나 돈벌이가 아니라 조국을 위해 묵묵히 헌신의 길을 걷고있는 사람들이다.조국과 동포사회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총련일군들은 수없이 많다.
니이가다현에서 오래동안 총련지부위원장사업을 하다가 올해 2월 세상을 떠난 김명훈동포도 그들중의 한 사람이다.그는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후 한때 교육자로 사업하였다.
총련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일본당국의 차별과 박해책동이 우심한 속에서 그는 총련지부위원장이 되였다.그의 아버지도 이전에 총련지부위원장사업을 하였다.
당시 지부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있었다.거의 빈터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지부를 되살려야 할 막중한 책임을 김명훈동포는 스스로 걸머지였다.
니이가다현에서 사는 우리 동포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그나마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있어 한명의 동포를 만나자고 해도 자동차로 여러 시간 가야만 했다.오사까나 효고현을 비롯하여 동포들이 밀집되여 사는 곳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동포가정들을 찾아다닐수도 있었지만 이곳의 형편은 그렇지 못하다.길이 어긋나서 만나보지 못하고 되돌아선적은 그 몇번, 다시 찾아간적은 또 그 몇번…
김명훈동포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그는 꾸준히, 완강히 노력하여 활동이 미약하던 지부를 마침내 살아움직이는 단위로 만들었다.그 공로로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0》(새 전성기 3차대회)에서 특별상까지 받았다.《조선신보》와 잡지 《이어》에도 그의 사업경험이 크게 소개되였다.
신문과 잡지를 통해 그의 활동소식을 알게 된 동창생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격려의 전화를 걸어왔다.
《명훈동무, 정말 기쁘구만.동무가 거둔 성과에서 우린 큰 힘을 얻었네.》
《지부를 활성화시킨 비결을 배우고싶구만.》
…
하지만 그때 그가 무서운 병마와 싸우면서 일하고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학생시절부터 말수더구가 적었던 그는 모진 아픔을 참으면서 지팽이를 짚고 동포가정들을 찾고 또 찾았다.불치의 병에 걸린 몸으로 변함없이 애국사업에 헌신하였다.
올해 1월 그가 사는 지역에 큰 재해가 들이닥치였다.동창생이 걱정되여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 고문 김학권동포는 김명훈동포에게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어떤가.집에서는 다들 일없소?》
그런데 수화기에서는 이런 말이 울려나왔다.
《강가에 있던 우리 동포의 집이 무너졌소.가산도 떠내려가고…》
자기 집형편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이 동포가정이 피해를 본것을 두고 몹시 걱정하는것이였다.이것이 김학권동포가 김명훈동포와 나눈 마지막대화였다.
김명훈, 그는 평범한 총련일군이였다.하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애국으로 이어진 고결한 삶이였다.
총련이 형언할수 없는 시련속에서도 좌절을 모르고 승리와 영광만을 수놓아올수 있은것은 바로 조국에 무한히 충실한 이런 일군들이 억척의 뿌리가 되여 애국위업이라는 거목을 떠받들어왔기때문이다.우리 공화국의 건국과 수호, 기적과 번영의 행로에는 머나먼 이역땅에서 성스러운 공화국기를 창공높이 휘날리며 애국애족의 선각자, 애국충정의 모범, 세계해외교포조직의 본보기의 영예를 떨쳐온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고귀한 피와 땀이 뜨겁게 스며있다.
못잊을 동창생을 추억하여 김학권동포는 자기의 글에 이렇게 썼다.
《누가 보건말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애국의 일편단심을 변치 않은 김명훈동무, 그처럼 나도 살겠다.》(전문 보기)
《수령송가, 조국찬가는 우리의 영원한 주제곡입니다》 -애국충정의 공연길을 이어가는 총련 금강산가극단 예술인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금강산가극단과 지방가무단들은 수령님들의 손길아래 자라난 주체적해외민족예술부대답게 동포들의 정서와 심리에 맞는 예술활동을 힘있게 벌려 동포들에게 조선민족의 넋을 깊이 심어주고 그들의 애국열의를 고조시켜나가야 합니다.》
최근 일본각지에서 《걸어온 길 50년, 걸어갈 길 100년》이라는 주제로 총련 금강산가극단결성 50돐 기념공연 《길》이 진행되고있다.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 주제가의 선률이 은은히 울려퍼지는 속에 막이 오르면 장새납독주 《세상에 부럼없어라》, 녀성중창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 무용 《꽃등놀이》, 《씨름춤》 등의 작품들이 펼쳐진다.지금까지 금강산가극단이 진행한 공연들에서 제일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다.
아름답고 고상한 주체예술의 향취를 한껏 느낄수 있게 해주는 예술단체, 여전히 황홀한 일등급의 예술단이라는 절찬을 받는 동포예술인들의 눈앞에 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세계해외교포예술의 본보기를 창조하여오던 격동적인 나날이 어리여온다.추억의 파도가 물결쳐오고있다.
위대한 어버이 모시여 총련의 예술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인 1974년 4월초 한척의 대형화객선이 동해의 푸른 물결을 헤가르고있었다.어버이수령님의 탄생 62돐을 맞으며 재일동포들의 다함없는 축원의 마음을 소중히 안고 가는 재일조선인예술단 성원들을 태운 《만경봉》호였다.일행은 재일조선중앙예술단과 지방가무단에서 선발된 140여명으로 구성되여있었다.
조국인민들은 친혈육의 정으로 이역의 한식솔들을 얼싸안았다.
마침내 꿈결에도 바라고바라던 영광의 시각이 왔다.
1974년 4월 14일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재일조선인예술단은 공연의 첫막을 올리였다.공연장소는 준공을 선포한지 얼마 안되던 인민문화궁전이였다.조국의 예술인들도 한시바삐 오르기를 소원하는 이 웅장화려한 무대를 자기들에게 먼저 내여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사려깊은 은정에 총련의 예술인들은 감격의 눈물을 지었다.
공연을 앞두고 그들은 서로서로 약속하였다.무대에서 절대로 울지 말자고.
하지만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열렬한 박수갈채속에 김일순녀성(현재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고문)이 헌시를 읊었다.
첫 곡목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였다.합창대에 섰던 류전현동포(현재 금강산가극단 고문)는 그때를 추억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이 노래를 부르니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라 저도 모르게 흐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합창단성원모두가 어깨를 세차게 들먹이였습니다.》
이날의 공연에서 홍령월녀성(현재 금강산가극단 고문)은 《끝없는 이 행복 노래부르네》,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 《조국을 노래하네》를 비롯하여 여러곡의 노래를 불러드리는 특전을 지니게 되였다.이역에서 막돌처럼 굴러다니던 자기들에게 애국의 보람찬 삶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하늘같은 은덕, 수령님 따라 모진 시련속에서도 애국의 길을 걸어온 나날이 더듬어져 그는 그만 북받쳐오르는 감격을 누를길 없었다.물뿌린듯 고요해진 장내에는 노래대신 가수의 흐느낌소리와 떨리는듯한 관현악울림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닦으시였습니다.노래는 중단되고 반주만이 흐르다가 그것마저도… 지휘자도 울고 악단성원들도 울고 온 관람석이 눈물바다가 되였습니다.》
그때의 광경을 홍령월고문은 여전히 눈물속에 추억한다.
한참만에야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사회주의조국의 씩씩한 기상이 어려오는 가요 《천리마선구자의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선참으로 박수를 쳐주시였다.
정호월녀성은 한덕수의장이 작사한 가요 《아들자랑 딸자랑》을 엄국지동포와 함께 혼성2중창으로 불렀다.80고령이지만 그는 총련동포들의 락천적인 생활을 형상한 흥겨운 민요풍의 노래가 장내를 들썩이게 하던 그날의 광경, 우렁찬 재청소리를 오늘도 잊지 못한다.
바람세찬 이역에서 어버이수령님을 절절히 흠모하고 조국을 열렬히 그리며 애국의 한길을 걷는 총련동포들의 모습이 조국인민들의 가슴마다에 마쳐오는 공연이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일조선인예술단의 공연은 조국에 대한 충실성으로 충만되여있고 예술적기교의 측면에서도 완전무결한 공연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몸둘바를 몰라하는 그들을 대견하게 둘러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총련예술인들이 조국에 처음 왔는데 공연만 하지 말고 조국의 예술을 배워가는것이 어떤가고 다정히 물어주시였다.
저저마다 눈굽을 훔치며 눈부시게 발전하는 주체예술을 배워가고싶은 소원을 아뢰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며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배워가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지난 시기 음악무용소품들에만 출연하였던 그들에게는 대사와 노래, 무용이 동반되고 인물들의 내면심리세계를 깊이있게 펼쳐보여야 하는 가극을 형상한다는것이 쉬운 일이 아니였던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련예술인들의 무한한 충실성과 열렬한 애국심, 예술적잠재력을 굳게 믿으시였다.그들의 재능을 더 활짝 꽃피워주고싶으시였다.그이께서는 혁명가극이라고 하여 신비하게 생각할것이 없다고, 마음먹고 해보느라면 담도 커지고 기량도 높아진다고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며 가극전습에 필요한 대책도 세워주시였다.
총련예술인들은 불같은 맹세를 다지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신임과 기대에 충정으로 보답하자!
온 집단이 부글부글 끓었다.
주인공 황석민역을 맡은 류전현동포는 행복한 고민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몹시 사랑하였다.조국노래들을 즐겨부르는것은 물론 가수들의 이름과 그들의 지정곡까지 다 기억할 정도였다.하지만 그는 예술활동을 시작한지 4년밖에 안되였었다.당시 우리의 주체예술이 도달한 성과들이 집약적으로, 종합적으로 반영되여있는 이 작품의 주인공역을 나이가 23살밖에 안되고 총련 효고조선가무단의 평범한 배우에 불과한 자기가 맡게 되였다는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조국의 큰 극장을 자기들에게 통채로 내주시고 무리한 련습으로 가수들이 성대라도 상할세라 이비인후과 의사까지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려깊은 은정…
그 뜨거운 믿음과 사랑에 충정으로 보답할 결의로 총련예술인들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깊은 밤 숙소밖으로 달려나와 망망대해를 관중삼아 날이 밝고 해가 솟도록 노래부른적이 그 얼마였던가.
황석민의 안해역을 수행한 정호월녀성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동작만도 수백번이나 익히였다.우리말 발음을 정확히 하기 위해 안면강직이 올 정도로 련습하였다.
주인공 황석민일가가 당한 불행과 고통, 그것은 나라없던 그 세월 재일동포들도 피눈물나게 겪었던 비극이고 수난이였다.조국을 잃으면 가정도 행복도 없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야말로 참된 삶의 요람이라는것을 총련예술인들은 사무치게 새기였다.
가극전습은 빠른 속도로 진척되였다.결국 시작한지 얼마 안되여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무대에 올릴수 있게 되였다.
1974년 6월 27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길로 평양대극장에 나오시였다.총련의 예술인들이 높은 사상예술적경지에서 감명깊게 형상한 공연을 보시고 못내 만족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전체 성원들에게 일일이 축배잔을 찧어주시며 따뜻한 사랑을 부어주시였다.그러시고는 일본으로 돌아가면 금강산가극단을 꾸리고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공연하여 총련동포들과 일본인민들에게 보여줄데 대하여 당부하시였다.
재일동포들은 금강의 선남선녀가 되여 돌아온 자기의 아들딸들을 뜨겁게 맞이하였다.
1974년 8월 29일 금강산가극단 결성모임이 진행되였다.동시에 동포상공인들을 중심으로 금강산가극단 전국후원회가 무어졌다.
며칠후에는 도꾜조선문화회관에서 공화국창건 26돐을 경축하여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공연의 막이 올랐다.가극은 관람자들을 커다란 감격과 흥분에 휩싸이게 하였다.불과 3일동안에만도 1만 1 000여명이 공연을 관람하였다.온 일본땅이 《금강산의 노래》열풍으로 끓어번지였다.도꾜의 큰 거리와 주요역두들에는 공연소식을 알리는 광고들이 나붙었다.가극은 이역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던 재일동포들의 가슴마다에 공화국의 해외공민된 끝없는 영예와 자부심, 애국의 마음을 깊이 심어주었다.누구나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들에게 보내주신 선물이라고 말하였다.
1955년 6월 재일조선중앙예술단의 명칭을 달고 불과 20명의 단원으로 첫걸음을 떼였던 총련의 청소한 예술집단은 성악, 무용, 관현악부문을 그쯘하게 갖춘 수백명의 대집단으로 애국의 큰걸음을 내짚게 되였다.금강산가극단의 활약으로 총련의 힘은 더욱 강해지게 되였다.
강국의 국기아래 우리 노래 영원하리
하나의 신념, 하나의 의지로 뭉친 애국집단, 이것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세계에 유일무이한 해외교포예술단이라는 평가에 앞서 금강산가극단이 받는 찬사이다.
황금만능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일본땅에서 총련예술인들이 그 어떤 보수와 명예도 바람이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애국의 한길을 걷고있는것은 절세위인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과 은덕에 충정으로 보답하려는 마음이 열렬하기때문이다.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그대로 이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총련예술인들에게 주체의 예술관과 창조의 묘술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며 그들의 성장을 위하여 크나큰 로고를 바치시였다.
1992년 4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80돐을 경축하여 총련예술인들이 준비해가지고온 음악무용구성시 《수령님의 환하신 웃음속에 우리 행복 꽃핍니다》를 보아주시고 형식도 총련의 특성에 맞고 내용도 좋다고, 1%의 결함도 없는 만점짜리 공연이라고 만족해하시였다.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연의 대본을 맡았던 김정수동포(현재 금강산가극단 단장)를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시며 정말 수고했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순간 그의 가슴은 격정으로 터질듯하였다.작가대렬에 들어선지 3년밖에 안되는 신인작가가 이토록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았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높은 평가에는 바람세찬 이역에서 조국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총련의 창작가, 예술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려는 사려깊은 웅심이 어려있었다.
가난한 로동자의 가정에서 태여나 토목공과 철공 등 사회의 최하층에서 헤매이던 전 총련 금강산가극단 배우 엄국지동포는 위대한 장군님으로부터 조국의 가수들보다 민요를 더 잘 부른다는 평가를 받았고 조국인민들과 재일동포들의 사랑을 받는 공화국의 어엿한 인민배우로 생을 빛내일수 있었다.
인민배우 리영수동포에게는 못잊을 추억이 많다.학창시절 륙상선수를 꿈꾸던 그가 예술활동에 나서게 된것은 만수대예술단의 일본공연에서 받은 감동때문이였다.은혜로운 조국의 품은 이역의 한 동포청년의 재능의 싹이 풍만한 열매를 맺게 해주었다.리영수동포가 우수한 가수인 동시에 《아 김정일 70만의 어버이》를 비롯하여 수령을 칭송하고 조국을 노래하는 수많은 노래를 작곡한 관록있는 창작가로 이름떨치게 된것은 바로 그 뜨거운 사랑과 은정이 자양분으로 되였기때문이다.
리영수동포는 2002년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자리에서 자기가 작곡한 가요 《내 마음 팔지 않으리》를 불렀을 때의 일을 오늘도 격정속에 추억한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노래가 아주 좋다고, 아무리 어렵고 곤난하다 해도 황금과 유혹에 마음을 팔지 않고 조국과 총련을 위하여 깨끗하게 살겠다는 가사내용도 좋고 배우가 노래를 시원하게 잘 부른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그때부터 이 노래는 리영수동포에게 있어서 애국의 신들메를 더욱 든든히 조이게 하는 마음의 선률로 되였다.
금강산가극단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우리 조국이 커다란 시련을 겪던 고난의 시기에도 변함없었다.그이께서는 나라형편이 어려운 속에서도 금강산가극단을 위해 거액의 자금을 돌려주시였으며 가극단의 미래를 내다보시고 새세대 예술인들이 조국의 대학들과 전문기관에서 마음껏 배울수 있게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총련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을 그대로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금강산가극단의 활동에 깊은 관심을 돌려주고계신다.10년전에는 평양에서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재공연하도록 각별한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이토록 절세위인들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속에 금강산가극단의 창작가, 예술인들은 지난 수십년간 각계층 재일동포들과 일본인민들을 대상으로 수천회의 공연을 진행할수 있었다.
이 보람찬 나날에 가극단은 영예의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고 수많은 예술인들이 김일성상계관인, 인민예술가, 인민배우, 공훈예술가, 공훈배우, 2.16예술상수상자들로 자라났다.
참으로 이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예술인들도 많지만 총련 금강산가극단 예술인들과 같이 행복하고 긍지높은 해외교포예술인들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경애하는 원수님의 불멸의 업적이 깃들어있는 주체의 해외예술전당에서 일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예술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벌려나가자.특색있고 관록있는 해외교포예술단체, 애국으로 뭉쳐진 예술집단, 애국운동의 자랑스러운 나팔수답게 이역에서 위대한 우리 조국을 목청껏 노래하자.
이것이 예나지금이나 가극단성원들의 가슴마다에 차넘치고있는 애국의 열기이다.
지난해 2월말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진행된 가극단의 공연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금강산가극단이 이 지역에서 공연한것은 40번이상이지만 그때의 공연은 류달랐다.과정이 순탄치 않았기때문이다.
우리 공화국과 총련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는 일본반동들은 가극단의 공연을 파탄시키기 위해 갖은 책동을 다하였다.하지만 동포들의 단합된 힘앞에서 그것은 물거품이 되고말았고 마침내 공연이 진행되게 되였다.
녀성독창과 무용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비롯하여 무대에 오른 모든 작품들은 장내를 애국의 열기로 세차게 끓어번지게 하였다.
금강산가극단의 무대가 펼쳐지는 곳마다에서 애국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동포사회의 단결이 강화되고있다.
이제는 가극단의 구성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대다수가 3세, 4세 동포들이다.
가극단결성 50돐이 되는 올해에 여러명이 이 성스러운 애국대오에 들어섰다.
총련 니시고베조선초급학교시절부터 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장선려청년은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가극단에 들어왔다.그의 어머니도 가극단 무용수출신이다.장선려청년은 지금 조국에 대한 동포들의 절절한 그리움을 펼쳐보이는 군무 《가고파》에서 주역을 맡고있다.그의 꿈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조국인민들앞에서 하는 공연에 출연하는것이다.
장선려청년과 함께 가극단에 들어온 강향리청년도 도꾜조선제4초중급학교시절부터 무용을 배웠다.우아한 우리 조선무용을 배우면서 조국을 더 잘 알게 되였다고 한다.역시 조선대학교 졸업생이다.그는 올해 여러 공연에 출연하여 관중의 열렬한 절찬을 받으면서 총련의 예술인된 자부심을 깊이 간직하게 되였다고 말한다.
애국의 대는 변함없이 굳건히 이어지고있다.
김일성상계관인, 인민배우로서 인생의 절정에 오른 홍령월고문은 전체 가극단성원들의 심정을 대변하여 이렇게 격정에 넘쳐 웨친다.
《우리들의 인생은 절세위인들의 따뜻한 손길을 떠나서 결코 생각할수 없습니다.수령송가, 조국찬가는 우리 금강산가극단의 영원한 주제곡입니다.강국의 국기아래 우리 노래 영원합니다.》(전문 보기)
못잊을 조국산천, 못잊을 조국인민들 -한 총련교육자의 수기중에서-
총련동포들은 늘 조국을 마음속에 안고 산다.정다운 조국인민들, 사랑하는 조국산천의 모습을 그리며 그들은 애국의 길을 변함없이 걷고있다.숭고한 조국애, 애국위업에 대한 사명감으로 늘 가슴들먹이는 이역의 미더운 한식솔들, 그들의 심정은 총련 조선대학교 준교수 한창도동포가 쓴 글의 내용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 *
축구경기를 하다가 다리를 상하였다.채집이니 관찰이니 하고 줄곧 야외에서 돌아다니면서 다리는 비교적 든든하다고 생각했댔는데 뽈을 몇번 차다가 이게 무슨 망신이람.
모진 아픔이 엄습해왔다.다리를 절면서 겨우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아픔을 참을길 없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였다.고달픔속에 모대기던 나의 눈앞에 문득 벽면에 걸어놓은 지팽이가 안겨왔다.
조국을 방문하였을 때 묘향산에서 가져온 지팽이였다.못잊을 조국의 수려한 산천, 못잊을 사람들의 모습을 련상시켜주는 그 지팽이를 보니 아픔은 어느덧 가뭇없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추억이 갈마들었다.
2018년 6월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에 다닐 때 나는 연구사업을 위해 향산군에 갔던적이 있다.그때 묘향산의 하비로일대에서 낯익은 어머니를 또다시 만날수 있었다.
《잣씨어머니!》
무심결에 튀여나온 부름말이였지만 어머니는 조금도 탓하지 않았다.
2008년 총련 조선대학교 연구원생으로 조국을 방문하였을 때 인연을 맺은 어머니였다.그때 갑자기 큰비가 와서 나는 몇시간동안이나 만폭동일대에서 발목이 잡혀있지 않으면 안되였다.무료한 시간을 보내고있는데 한 녀성이 다가왔다.내가 총련동포임을 대뜸 알아본 그는 내 손에 무엇인가 한웅큼 쥐여주는것이였다.보건대 무슨 나무쪼각같았다.
(이건 뭔가.왜 나한테 주는것일가?)
얼떠름해있는 나를 본 그 녀성은 사연을 알아차린듯 허거프게 웃었다.
《아, 이 선생이 잣씨를 못알아보는구만. 이건 잣씨라네.》
그는 우리 묘향산에는 잣이 많은데 건강에도 좋고 힘도 난다고 하면서 어서 먹어보라고 권하는것이였다.그날 어머니는 나에게 잣씨도 까주고 묘향산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에 대하여 친절히 알려주었다.
총련동포들은 이역에서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하면서 따뜻한 정을 부어주는 그 모습은 정말 친어머니의 모습같았다.
숙소에 돌아와 조국의 일군들에게 사연을 이야기했더니 그들은 향산군에서 살면서 관광부문에 종사하는 이 어머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는것이였다.그때부터 나의 뇌리에는 그 어머니가 잣씨어머니로 자리잡았다.
10년만에 그 어머니를 다시 만났으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으랴.
묘향산에서의 체류일정을 끝내고 돌아가던 날 나는 작별인사를 하러 어머니를 찾아갔다.나를 반갑게 맞아준 그는 이역에서 아름다운 조국산천, 정다운 조국인민들을 잊지 말라고 하면서 등산지팽이를 기념으로 주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 나는 그 지팽이를 늘 시야에 밟히는 곳에 놓아두군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리를 상한탓에 지팽이를 짚고 대학으로 출근하게 되였다.
조국인민들의 뜨거운 혈육의 정, 수려한 묘향산의 향취가 느껴지는 지팽이에 의지하여 걸음을 옮기니 마음이 정말 류달랐다.
아름다운 묘향산의 든든한 나무로 만들어져 조국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멋진 지팽이, 조국을 몸가까이 느끼게 해주는 지팽이를 짚으면서 나는 마음다지였다.
못잊을 사람들의 믿음과 기대를 언제나 잊지 않고 못잊을 산천을 언제나 그려보며 조국과 동포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해나가겠다고.(전문 보기)
재일조선사회과학자대표단 만경대 방문, 여러곳 참관
리영수 재일본조선사회과학자협회 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재일조선사회과학자대표단이 만경대를 방문하였다.
만경대혁명사적관을 참관하고 유서깊은 고향집뜨락에 들어선 대표단성원들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고귀한 혁명생애에 대한 해설을 들으며 소중히 보존되여있는 사적물들을 깊은 감동속에 돌아보았다.
그들은 만경대방문을 기념하여 사진을 찍었다.
대표단은 또한 조선혁명박물관, 강동종합온실농장 등을 참관하였으며 평양교예극장에서 국립교예단의 종합교예공연을 관람하였다.(전문 보기)
단결된 동포들의 힘을 느낀 하루 -총련도꾜 네리마지부 단풍놀이에서-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정동포가 조국의 노래를 부르자 그 옆에 앉은 박동포가 어깨춤을 춘다. 림동포가 《좋다!》하면서 함께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도내 강반에서 10월 27일 총련도꾜 네리마지부 동포들의 단풍놀이가 있었다.
동포들은 연회에 앞서 1시간동안 집체걷기를 마음껏 즐겼다. 연회가 시작하여 방금 있다가 분위기가 한층 고조된 순간이 왔다. 아침일찍부터 현장에 나와 식사준비를 하고있었던 녀성동맹원 정동포가 탄바링악기를 치며 어깨를 상하로 움직이며 독창을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로장청동포들이 정동포의 독창공연후 연단에 올랐다. 정동포처럼 노래부르는 동포가 있는가 하면 자기 활동에 대한 느낌을 저저마다 이야기하는 동포들도 있었다.
《우리 힉교 학생수를 늘이기 위해 모두가 떨쳐나서자.》, 《그러기 위해서도 더 많은 동포를 지부행사에 동원하자.》, 《오늘 모임에 참가하니 동포들의 큰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가 힘을 모으면 무엇이든 할수 있다.》 동포들은 손과 손을 잡고 애족애국운동을 집체적힘으로 벌려나갈 결의를 가다듬었다.
총련 네리마지부가 비전임체제로 이행하여 3년이 지났다. 지부의 모든 사업을 상임위원들과 지부관하에 거주하는 전임일군들, 각 단체와 분회 역원들의 힘을 모아 추진하고있다. 동포들의 관혼상제와 각종 지부행사는 역원들의 역할을 높이고 동포들의 단결을 가일층 강화하는 계기로 되고있다.
이날 단풍놀이에 참가한 네리마구의회의원도 동포들의 힘을 느끼고있었다. 동포들이 부르는 조선노래의 가사와 그 시대적배경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그는 귀로에 오르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고 하였다.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활동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다. 네리마지부의 귀중한 경험이다.(전문 보기)
위대한 조국의 국기를 우러르며 애국의 역군으로 성장한다 -총련 조선대학교 졸업학년학생조국방문단 성원들을 만나보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주체와 애국으로 자랑높은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열렬한 조국애, 민족애의 력사는 승리와 영광으로 가득찬 우리 공화국의 어제와 오늘, 광명한 래일과 더불어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입니다.》
요즘 수도시민들은 손에손에 공화국기발을 들고 참관일정을 이어가는 류다른 행렬을 시내의 여기저기에서 보게 된다.총련 조선대학교 졸업학년학생조국방문단 성원들이다.나날이 강대해지는 조국의 현실을 감격과 환희속에 안아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가.어떤 의지를 가다듬고있는가.
《애국의 과정안을 최우등으로 마치자!》
지난 6월중순 어느날 조선대학교 강당에 졸업반학생들이 긴급히 모였다.무슨 일일가.호기심어린 눈길들이 쏠리는 가운데 연단에 오른 대학의 책임일군은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동무들을 조국으로 불러주시였습니다.국가적인 비상방역조치가 완전히 해제되지 않았지만 우리 조선대학교 졸업학년학생들을 조국으로 불러주시였단 말입니다.》
장내는 물을 뿌린듯하였다.하지만 한순간이였다.우렁찬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학생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어쩔줄 몰라하였다.그들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맺히였다.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이였다.
악성전염병사태로 인해 몇해째 중단되여있던 조국방문이였다.이번 졸업학년학생들은 4년전 조선고급학교 졸업학년때에도 조국에 오지 못하였었다.이번에도 사정은 같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아쉬운 감정이 갈마드는것도 어쩔수 없는것이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국을 그리는 그들의 이런 간절한 심정을 헤아려주신것이다.
조선대학교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몸소 세워주시고 장중보옥처럼 귀중히 여기시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최고전당이며 세상에 둘도 없는 해외교포대학이라고 하시면서 총련애국위업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믿음직한 핵심들을 더 많이, 더 훌륭히 키워 재일조선인운동의 백년대계를 억척같이 담보해나가라고 크나큰 믿음을 베풀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자애로운 어버이의 사려깊은 은정에 누군들 목메이지 않으랴.
그때를 돌이켜보며 조선대학교 교무부장 류창순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장내는 격동의 도가니로 화하였습니다.학생들은 저저마다 일어서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짜주신 애국의 과정안을 최우등으로 마치자고 열변을 토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조선대학교 졸업학년학생들은 여러조로 나뉘여 조국을 방문하게 되였다.
우리의 공화국기가 창공높이 떠오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가 장중히 울릴 때면 우리 인민 누구나 이름할수 없는 격정에 휩싸이군 한다.자본주의이역땅에서 사는 총련동포들의 심정은 더욱 류다르다.
지난 9월 9일 만수대의사당앞에서 진행된 공화국창건 76돐 경축공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가 장중하게 주악될 때 나직이 따라부르며 류달리 세찬 격정으로 어깨를 떠는 사람들이 있었다.조국을 방문한 조선대학교 학생들이였다.국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가장 위대한 나라의 일원이 된 긍지와 자부로 빛나고있었다.
인민의 애국의지로 굳건하고 일심단결의 힘으로 강대한 주체의 사회주의 우리 국가의 억년무궁함을 새겨주는 국가를 들으며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어머니조국에서 건국명절을 경축한 남다른 특전을 무상의 영예로 간직하고 경애하는 원수님께 영원히 충성다하는 길에서 삶의 순간순간을 빛내여나갈 마음속결의를 다지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수도시민들의 얼굴마다에는 바람세찬 이역땅에서 조국을 옹호하고 조직을 사수하며 민족성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총련동포들에 대한 한없는 미더움이 어려있었다.어머니조국과 이역의 아들딸들이 뜨겁게 상봉하며 진한 정과 혈맥을 잇는 순간이였다.
금수산태양궁전, 만경대고향집, 대성산혁명렬사릉, 신미리애국렬사릉, 국가선물관, 조선인민군무장장비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청년운동사적관, 주체음악예술발전관, 중앙계급교양관, 주체사상탑, 개선문, 만경대혁명학원, 만경대학생소년궁전,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교원대학, 평양외국어대학, 동명왕릉, 강동종합온실농장, 대성산아이스크림공장, 화성거리, 림흥거리, 전위거리…
돌아보는 곳마다에서 학생들이 목격하는 조국의 눈부신 현실은 곧 애국에 대한 생동한 강의였다.
꿈만 같은 참관의 나날 그들은 강국은 결코 령토의 넓이와 인구수, 경제력에 있는것이 아니라 수령의 위대성, 인민의 존엄의 높이에 있다는 철리를 더욱 똑똑히 간직하게 되였다.
왜 조국인민들이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그토록 높이 우러러모시고 열렬히 따르는지 인민사랑의 전설들이 새겨진 수많은 대기념비적창조물들을 돌아보며 그들은 똑똑히 깨달았다.인민들에게는 평안과 경축의 환희를 안겨주시고 자신께서는 군력강화의 길을 쉬임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혁명활동소식에 거듭 접하면서 불세출의 위인이신 원수님께서 이끄시기에 조국은 필승한다는 확신을 더욱 백배하였다.
가극 《영원한 승리자들》은 학생들속에서 커다란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 단 4문의 포로 미제의 5만대군과 맞서 월미도를 영웅적으로 지켜싸운 조선인민군 해안포병들의 불굴의 투쟁을 생동한 예술적화폭으로 감명깊게 펼쳐보이고있는 가극을 보면서 그들은 수령의 부름에 불사신처럼 일떠서 생사존망의 준엄한 위기를 주저없이 맞받아나간 전화의 영웅들의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과 불같은 조국애, 백절불굴의 기개를 뜨겁게 새겨안았다.
대표단성원들속에는 어릴적에 설맞이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조국을 방문하였던 학생들이 여러명 있었다.근 10년만에 보게 된 조국의 모습은 어떠했던가.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지만 조국은 해마다 변한다고 하던 교원들의 말이 맞았다.
조국은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은것이 있었다.이역에서 온 자기들을 반겨맞아주는 조국인민들의 뜨거운 진정이였다.특출한 공훈을 세운 영웅들, 공로자들과 나란히 국경절경축행사장에 세워줄 때에도, 참관지들마다에서 열렬한 축하와 격려의 인사를 보내줄 때에도 그들은 어머니조국의 사랑과 은정에 목메여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세계에는 수많은 해외교포들이 있다.하지만 우리처럼 조국으로부터 이토록 뜨거운 사랑과 환대를 받고있는 해외교포들이 또 어디에 있는가.
경애하는 원수님을 대가정의 어버이로 모신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 한식솔인가.이토록 고마운 품을 위해 그 무엇을 서슴으랴.…
학생들의 가슴마다에는 자기들의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어머니조국이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더욱 깊이 심어졌다.그와 더불어 애국의 키도 한껏 자랐다.
내 조국은 강대하다
조국은 누구에게나 있어도 위대한 조국은 누구에게나 있는것이 아니다.
동란의 세월속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제도와 리념이 바뀌여 국기와 국호가 달라지고 지도와 문화가 달라질 때 자기가 선택한 한길을 꿋꿋이, 곧바로 걸어 강국의 단상에 오른 우리 조국이다.
내 조국은 강대하다!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강위력한 조국이 있어 지난날 식민지노예의 설음속에 산설고 물설은 이역땅에 끌려가 인간의 초보적인 권리마저 빼앗겼던 비참한 수난자들의 후손들인 우리가 이처럼 가슴펴고 살고있는것이 아니랴.
이역의 새세대들이 이번 조국방문의 나날에 제일 사무치게 느낀것이 바로 이것이였다.조국과 총련의 밝은 미래를 환히 내다보게 된 그들은 위대한 령도자, 존엄높은 조국을 받들어 애국위업에 힘차게 떨쳐나설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참관을 마치고 돌아온 후 진행된 웅변모임, 시랑송모임들에서는 열띤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
《우리 조국은 적대세력의 최악의 압박공세속에서도 신화적인 기적을 다발적으로, 련발적으로 창조하여 력사에 가장 눈부신 시대, 영광의 시대를 펼쳐놓았습니다.우리 조국이야말로 일심단결의 위력과 자강력으로 인민의 꿈과 리상을 전면적으로 실현해나가는 전도양양한 나라입니다.》
《조국이 있어 총련도 있고 우리 가정도, 나도 있다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습니다.조국앞에 떳떳한 인생을 살겠습니다.》
《이번에 조국의 거창한 현실을 정말 가슴벅차게 느끼였습니다.아울러 참된 인생관도 세우게 되였습니다. 아버지가 지켜섰던 애국의 교단을 내가 지키겠습니다.》
《조국방문과정에 저의 마음속 한구석에 박혀있던 개인주의인생관의 잔뿌리가 말끔히 뽑히웠습니다.조국인민들의 기대를 잊지 않고 사랑하는 우리 동무들과 함께 재일조선인운동의 밝은 미래를 펼쳐나가는데 이바지하겠습니다.》
《졸업후 꼭 교단에 서서 조국인민들이 나에게 부어준 사랑을 후대들에게 그대로 부어주겠습니다.》
《우리 가정은 대대로 애국을 해왔는데 저는 신념이 좀 흔들렸댔습니다.조국에 와서 깨달았습니다.그리고 다짐했습니다.애국의 바통을 이어나가는 길에 나의 진정한 삶이 있다는것을, 조국을 위한 길에 청춘의 열정을 바쳐나가겠다는것을.》…
누구라 할것없이 포부와 리상이 오직 애국, 애국으로 지향되였다.
할아버지가 조선대학교 교원이였고 오늘은 그 손자인 자기까지 조선대학교에 다니고있다고 하면서 리공학부 장광서학생은 애국의 가풍을 굳건히 지켜나가겠다고 결의다지였다.
애국의 교단에 나설것을 결심한 문학력사학부 백림, 박시연, 공희영학생들의 심정은 또 어떠했던가.조국을 떠나기 정말 서운하다고, 경애하는 원수님의 품에서 영원히 살고싶다고 진정을 터놓으면서 그들은 하지만 이제 돌아가서 후배들을 훌륭히 키워가지고 떳떳한 모습으로 다시 조국을 방문하겠다고 말하였다.
문학력사학부 김추향학생은 경축야회때 조국청년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정말 송구스러웠다, 나라를 위해 앞장서서 많은 일을 하는 그들앞에서 자신은 지금껏 무엇을 해놓았던가 하고 자책했다고 하면서 총련일군으로 사업하는 아버지처럼, 조청일군으로 활약하는 오빠처럼 애국의 한길을 걸어가겠다고 힘주어 말하였다.
어찌 이들뿐이랴.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해가는 조국의 현실을 김책공업종합대학과 평양교원대학 등을 참관하면서 똑똑히 알게 되였다고 하면서 조국의 륭성번영에 기여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결의한 리공학부의 김영규학생,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돌아보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아래 전화의 영웅들이 조국의 촌토를 피로써 사수하였기에 우리 총련도 있고 나도 있다는것을 느끼였다고 하면서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받들어 청춘의 열정을 남김없이 바치는 조국의 청년들처럼 애국의 삶을 살겠다고 열변을 토한 외국어학부의 량유현학생…
해외동포들의 전렬에서 주체조선의 국위와 명성을 빛내이는데 특색있게 이바지해나가자.
이것이 학생들의 가슴마다에서 끓어번진 애국의 결의이다.
동포청년들의 심리적특성에 맞는 다양한 대중운동을 힘있게 벌려 동포사회를 젊음이 약동하는 청년판, 새세대판으로 들썩이게 하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그들은 동포사회를 애국의 열정으로 끓어번지게 하는 불씨가 될 결의에 넘쳐있다.
문학력사학부 학부장 하창국, 리공학부 학부장 리경수 등 조선대학교의 교육자들은 조국체류기간 학생들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였다고 말하였다.
위대한 조국의 국기아래에서 이역의 새세대들은 이렇게 미더웁게 성장하고있다.
황금만능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일본땅에서 총련동포들이 그 어떤 보수와 명예도 바람이 없이 애국의 한길을 걷고있는것은 어머니조국의 사랑과 은덕에 충정으로 보답하려는 마음이 이처럼 뜨겁기때문이다.바로 그래서 총련에 대한 조국인민들의 마음은 진정에 차있고 총련동포들을 바라보는 눈빛도 그처럼 따뜻한것이다.(전문 보기)
총련소식
민족의 기개를 높이 떨칠 의지 안고
재일본조선인체육련합회(체련)는 지금으로부터 70년전인 주체43(1954)년 7월에 진행된 재일조선청년학생들의 체육축전을 계기로 무어진 단체이다.총련의 위력을 과시하는데서 체련이 논 역할은 매우 크다.
수많은 동포들이 축구와 휘거, 빙상호케이, 륙상, 력기, 레스링, 권투 등의 종목들에서 조국의 국가대표팀선수로 활약하였고 인민체육인, 공훈체육인, 체육명수로, 공화국심판원으로 성장하였다.
체련산하 재일조선축구단은 천수백차례의 경기들에서 민족의 영예를 떨치고 이역의 하늘가에 자랑스러운 우리의 공화국기를 펄펄 휘날리였다.
고려축구구락부도 일본에서 진행되는 여러 경기대회에서 무시하지 못할 강팀으로 이름떨치고있다.민족교육의 화원에서 재능의 싹을 자래운 어제날의 축구명수들은 경기들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있다.
경사스러운 4월의 명절과 2월의 명절을 비롯하여 국가적인 명절과 기념일들에 체련은 재일본조선인중앙체육축전 등 다채로운 체육행사들을 성대히 조직하여왔다.많은 동포들이 총련지부와 분회들, 각급 조선학교들에 꾸려진 체육소조들에 망라되여 체육활동을 벌리고있다.분회대항, 지부대항형식의 경기들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있다.
얼마전 체련결성 70돐 기념모임이 진행되였다.먼저 여러명의 동포에게 공화국체육명수의 칭호가 수여되였다.
모임에서 연설한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제1부의장은 조국과 총련의 영예를 떨치고 동포사회에 활기를 부어준 체련의 자랑스러운 력사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열기 위한 애국운동에서 단체가 계속 앞장서나가리라는 확신을 표명하였다.
지금 체련안의 전체 일군들과 체육인들은 이역땅에서 민족의 슬기와 기개를 높이 떨칠 의지 안고 더욱 분발하고있다.
학교를 위하는 마음
고베지역에는 고령동포녀성들로 무어진 한 단체가 있다.성원들모두가 지난 시기 녀성동맹일군, 학교교원, 가무단예술인, 어머니회 회장 등으로 사업하면서 총련조직과 동포사회, 학교를 지켜온 애국적인 동포로인들이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그들은 학교지원사업에서 누구보다 앞장서고있다.
고령의 몸으로 상업활동을 벌려 한푼두푼 모은 돈을 그대로 학교에 기부하군 한다.학교운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는다.
학교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겠다고 무더운 여름철이나 추운 겨울철이나 가림없이 1년내내 벌리는 그들의 꾸준한 활동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있다.특히 학부형들이 할머니들의 수고에 더더욱 감복해한다.
《고맙습니다!》
나어린 학생들의 진정어린 감사의 인사를 받을 때마다 로인들의 얼굴마다에는 보람의 미소가 피여오른다.
학교가 있어야 동포들이 모이고 학교가 있어야 우리 아이들이 떳떳한 조선사람으로 자라날수 있다, 힘을 합쳐 우리 학교를 지원하자, 바로 이것이 동포로인들의 가슴마다에 차넘치는 의지이다.
민족교육에 바치는 동포들의 이런 뜨거운 진정은 새세대들의 가슴속에 애국의 불씨를 심어주고 이역땅에서 민족의 대가 변함없이 이어지게 하고있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