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조국을 위하여 스스로 일감을 찾는 성실한 과학자 -국가과학원 화학섬유연구소 연구사 공훈과학자 박사 김정부선생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에서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을 높이 내세우는것은 한생 어렵고 힘든 초소에서 그 어떤 공명과 보수도 바람이 없이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해 깨끗한 량심과 성실한 구슬땀을 바쳐가는 그들의 높은 충성심과 아름다운 애국지성이 참으로 고맙고 귀중하기때문입니다.》
얼마전 유기용매법에 의한 인조섬유를 개발할데 대하여 주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연구사업에서 가치있는 성과들을 이룩하였을뿐만 아니라 갈을 원료로 하는 리오쎌섬유의 공업적생산기술을 완성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기쁨을 드린 국가과학원 화학섬유연구소 연구사 김정부선생이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를 지니였다.
인간의 한생과도 맞먹는 근 60년세월 김정부선생이 이룩한 하나하나의 과학적성과들은 물론 크고 소중한것이다.
허나 오늘 우리는 그가 이룩해놓은 공적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생토록 조국에 필요한 연구사업을 스스로 찾아해온 로세대 과학자의 참된 탐구정신과 순결하고 깨끗한 과학자적량심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
로과학자의 선택
인민들의 입는 문제해결을 위해 늘 마음써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근 20년전 신의주화학섬유련합기업소(당시)와 국가과학원 화학섬유연구소에 리오쎌섬유생산문제를 반드시 풀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당시 화학섬유연구소 소장으로 사업하던 김정부선생은 해당 부문의 한 일군에게 자기를 새로 조직하는 리오쎌섬유연구조의 책임자로 임명해줄것을 제기하였다.
일군은 선생의 제기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였다.그것은 그의 나이가 60살이 지난데다가 해결해야 할 연구과제가 인조섬유개발력사상 처음으로 되는 갈팔프를 리용한 리오쎌섬유개발이라는 첨단기술과제였기때문이였다.지금껏 새로운 인조섬유개발을 위한 연구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한 그가 년로보장을 받을 나이도 지난 상태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첨단기술개발의 길에 나섰다가 과학자로서의 한생에 오점을 남길것만 같은 걱정으로 일군은 김정부선생에게 이렇게 권고하였다.
《소장선생,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보시오.그 연구사업은 미개척분야여서 참고할 문헌도,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순전히 단독항행이 될수 있는데 그러다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김정부선생은 헌헌히 웃으며 말했다.
《나야 갈을 떠나선 살수 없는 과학자가 아닙니까.나를 믿고 맡겨주십시오.》
이 말을 듣는 일군의 뇌리에 언제인가 화학섬유연구소의 당일군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근 60년전 4월 어느한 연구소의 섬유연구실 연구사로 배치된 김정부선생은 대학시절부터 해오던 갈섬유와 관련한 자료연구를 심화시키는 과정에 목화밭 한정보에서 얻는 섬유에 비해볼 때 갈밭 한정보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갈스프를 뽑을수 있으며 이것은 경지면적이 제한된 우리 나라에서 경제적으로도 매우 실리있는 연구사업이라는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였다.
하지만 과학탐구의 길에 갓 들어선 20대의 청년과학자에게 있어서 갈섬유연구는 많은 난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너무나도 아름찬 과제였다.
하여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던 그해 10월 김정부선생은 갈은 곧 비단이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뜻깊은 교시를 전달받게 되였다.
그는 자신을 호되게 질책하였다.
(당의 품속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내가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그처럼 중요한 연구과제를 놓고 자기의 명예와 운명을 먼저 생각하다니.)
그는 그길로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하신 발자취가 새겨져있는 신도를 찾았다.무연하게 펼쳐진 간석지의 갈밭들을 바라보느라니 갈은 우리 나라의 영원한 재부이라고, 수천년동안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던 저 갈밭들을 값비싼 《비단밭》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음성이 금시라도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그날 그는 찬바람부는 갈밭을 오래도록 거닐면서 우리는 갈에서 섬유를 뽑을수 있다는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서 자기가 해야 할바를 가슴깊이 쪼아박았으며 돌아오는 길로 연구소에 갈섬유개발을 위한 연구조에 자기를 망라시켜줄것을 정식 제기하였다.
갈섬유개발을 위한 길은 결코 헐한 길이 아니였다.
시약냄새가 코를 찌르고 가스로 하여 눈이 쓰리였지만 그는 기대옆에서, 실험대에서 물러서지 않았다.가스에 취해 쓰러졌다가도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되새기며 다시 일어섰고 실험도중 뽐프가 고장나 물공급이 중단되였을 때에는 한겨울의 모진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에 바줄을 감은채 깊이가 10m나 되는 우물속에 뛰여들었다.
그로부터 한해후 《갈비단》이 쏟아져나오는 섬유생산현장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연구사들에게 동무들이야말로 박사며 영웅이라는 높은 치하를 주시였을 때 김정부선생은 수령님의 걱정을 한가지 덜어드리였다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슴들먹이였다.그는 조선의 과학자들에게 있어서 인민을 위한 일에 이바지했다는 말보다 더 값높은 평가는 없다는것을 심장깊이 절감하였다.
이처럼 20대의 청춘시절에 벌써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개척의 초행길에 주저없이 나섰던 그였기에 인생의 황혼기에도 위대한 장군님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하여 고심어린 탐구의 길을 또다시 선택하였던것이다.
당정책관철을 삶의 유일한 목표로, 생의 전부로 받아들이고 끊임없는 사색과 실천으로 한생을 줄달음쳐온 김정부선생이 자기의 마지막연구과제라고도 할수 있는 리오쎌섬유연구에 바친 헌신과 노력은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연구사업이 실패를 거듭하고있던 어느날 엎친데 덮친다고 실험실에서는 새로운 용매제에 대한 분석실험과정에 예상치 못했던 일까지 일어났다.
다행히 피해는 없었지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준 충격은 컸다.
신념이 부족하였던 일부 연구사들속에서 리오쎌연구는 아직 우리에게는 너무 힘에 부친 과제라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울려나오자 연구조의 분위기는 더욱 저조해졌다.
어느날 저녁 김정부선생과 오랜 기간 연구사업을 함께 진행해온 한 연구사가 조용히 그를 찾아왔다.
《요즘 사람들의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아무래도 당분간은 리오쎌연구사업을 중지하는것이 어떻겠습니까?》
안경을 닦으면서 덤덤히 있던 김정부선생이 잠시후 이렇게 말하였다.
《자네도 우리 연구소의 첫 소장이였던 마형옥선생을 알고있겠지.그는 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군 하였네.〈우리 연구사업에서는 리트머스시험종이가 반드시 필요하다.난 그것을 볼 때마다 조건이 좋으나 나쁘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당과 조국을 받들어야 할 우리 과학자들에게는 담그어지는 용액에 따라 색갈이 변하는 리트머스시험종이와 같은 그런 마음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로과학자의 깨끗한 마음속진정은 잠시나마 동요하였던 연구조성원들에게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간고한 나날을 거쳐 섬유의 용해와 방사, 후처리과정에 제기되는 어려운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하고 실험실적방법에 의한 리오쎌섬유연구를 완성한 김정부선생은 잠시의 휴식도 없이 다음단계인 중간시험공정을 꾸리기 위한 사업에 또다시 달라붙었다.
언제 낮이 가고 밤이 오는지, 날과 달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시간, 시간 하면서 공업화도입을 위한 연구사업을 거듭하던 어느날 한 연구사가 이렇게 물은적이 있었다.
《실험실단계에서 성과를 거두었는데 좀 쉬염쉬염 하면 안됩니까?》
《중간시험공정의 공업화지표들을 빨리 확증하자면 아직 할 일이 정말 많소.중간시험공정에서 섬유제품이 나와야 연구사업을 결속할수 있겠는데 시간은 너무 빨리 가거던.》
인민들의 입는 문제를 그처럼 중시하는 우리 당에 조금이나마 기쁨을 드리기 전에는 과학자에게 만족할 권리가 없다고 늘 외우군 하는 그에게서 다른 말이 나올수가 없었다.
언제인가 평양에 사는 둘째아들이 중요한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아버지를 만나러 집에 온적이 있었다.
온 연구소가 떨쳐나 중간시험공정을 최종단계에서 다그치고있던 시기여서 그때 김정부선생은 그 누구보다도 바삐 지내고있었다.
새벽녘에야 한아름의 연구일지를 안고 집에 들어서던 김정부선생은 아들의 인사를 받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날 만나자는 용건이 뭔지 간단히 말해라.나에겐 정말 시간이 없다.》
시간을 귀중히 여기는 아버지에 대하여 잘 알고있었지만 오래간만에 집에 온 자식에게 너무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아들은 섭섭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하지만 리오쎌섬유 중간시험공정에서 시제품이 나온 날 김정부선생이 전화로 《둘째야, 미안하다.그땐 정말 바빴댔다.너도 과학자이니 나를 리해하리라고 본다.난 〈좋은 남편〉, 〈훌륭한 아버지〉는 못되여도 조국에 필요한 과학자가 되고싶구나.…》라고 하였을 때 아들은 이런 아버지에 대하여 잠시나마 곡해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몇해전 화학공업부문의 일군들과 과학자들은 한자리에 모여앉아 나라의 인조섬유공업의 전망문제를 두고 진지한 협의회를 진행하였다.
여기에서 일부 과학자들이 리오쎌섬유도입의 시기상조를 론하면서 경험이 풍부하고 공업토대도 갖추어져있는 종전의 섬유생산방법대로 섬유를 만들것을 주장하였을 때 김정부선생은 그 의견들을 단호히 일축하였다.
《갈을 원료로 하는 섬유공업을 창설하여 섬유문제를 풀어야 한다는것은 우리 당정책입니다.우리는 죽으나사나 갈을 원료로 하는 우리 식의 새로운 인조섬유공업을 반드시 일떠세워야 합니다.》
바로 이 말속에 우리의 과학연구사업은 오직 당정책관철을 위해서만 필요하며 조국에 실지 이바지되는 연구성과를 내놓는 과학자만이 당의 과학전사로서의 삶을 빛내일수 있다는 그의 고결한 인생관, 연구사업의 관건적인 시기마다 언제나 수령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한 량심의 선택만을 해온 한 로과학자의 참된 탐구정신과 개척정신이 비껴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뛰는 심장인가
취재과정에 우리는 또 하나의 사실에 주목을 돌리게 되였다.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의 갈화학섬유공업창설, 청진화학섬유공장현대화, 용융방사법에 의한 새로운 합성섬유생산에 이바지한것을 비롯하여 가치있는 의의를 가지는 그의 과학연구성과들속에 새로운 주물점결제와 벼종자처리약개발 등 섬유공업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연구성과들이 있었던것이다.
그에 대하여 묻는 우리에게 김정부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지식이야 조국에서 준것이 아닙니까.그러니 조국에 필요하고 또 내가 할수 있는거야 다 해야지요.》
조국이 준 지식,
그렇다.조국이 없었다면 과학자는 고사하고 학교문전에도 못갔을 그였다.
그는 해방후 처음 학교에 가던 날의 추억을 더듬었다.
책보자기를 끼고 어머니가 밤새 정성다해 다려준 옷을 입고 아이들과 함께 동구길에 나섰는데 마을의 한 로인이 그들을 불러세웠다.
아이들이 머리숙여 꾸벅 인사를 하자 로인은 《세상이 좋으니 너희들이 학교엘 가는구나.》라고 하며 눈굽을 적시는것이였다.
로인의 눈물을 리해하기에는 그의 나이가 아직 너무 어리였다.
인민학교와 중학교, 고급중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졸업한 그가 다른 나라에 가서 연구사업을 하고있던 어느날이였다.
그는 뜻밖에도 만리타향에서 대사관에 찾아오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되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