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조일관계/朝日関係’ Category
《운양》호사건에 비낀 일제의 침략성
피비린 죄악의 력사를 외곡하는데 환장한 일본지배층은 《운양》호사건의 침략성을 보여주는 설명을 모두 없애버린 력사교과서들을 가지고 새세대들을 교육하고있다.
일본이 그러한 행위를 한다고 하여 그들의 침략성과 악랄성이 가리워지는것은 아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자본주의의 호전성은 〈명치유신〉직후시기에 조선을 무력으로 정복할데 대한 강도적인 〈정한론〉이 대두하고 일본침략자들이 〈운양〉호침입사건을 비롯한 침략적인 무장도발을 감행한 사실에서 뚜렷이 드러났습니다.》
일본이 지난날 조선민족에게 피눈물나는 망국노의 운명을 강요한 수난의 력사의 서막을 연것이 바로 《운양》호사건이다.
19세기에 이르러 《명치유신》으로 군사봉건적자본주의발전의 길을 터놓은 일본은 악명높은 조선침략사상인 《정한론》을 내들고 조선에 대한 군사적침공의 길에 나섰다.그 첫 단계가 바로 침략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군사적도발사건의 조작이였다.
《운양》호가 우리 나라의 해역에 들어온것자체가 불법침입이였다.
일본침략자들은 상전인 미국의 《포함외교》를 본따 1875년 봄 처음으로 아무런 통고도 없이 침략선 《운양》호를 우리 나라의 바다에 들이밀고 《발포연습》의 간판밑에 조선봉건정부를 위협공갈하였다.
그후 일본침략자들은 군사적도발책동을 보다 본격화하기 위한 만단의 준비를 갖춘 끝에 1875년 8월 20일(양력 9월 19일) 《운양》호를 또다시 우리 나라에 불법침입시켰다.
일본이 《운양》호를 침입시킨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다.
당시 일본정부가 《운양》호 함장 이노우에에게 준 명령에는 《운양》호침입의 목적이 조선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하기 위한 구실을 마련하는데 있다는데 대해 밝혀져있다.이런 강도적사명을 띤 침략선 《운양》호는 어떤 배도 조선봉건정부의 사전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통과할수 없게 되여있는 강화해협에까지 침입하였다.8월 21일(양력 9월 20일)에는 즉시 물러갈데 대한 조선봉건정부의 요구에 《물이 떨어졌다.》는 구실을 내대면서 강화도 초지진포대 700m앞까지 접근하였다.조선군대가 자위적조치를 취하자 《운양》호는 기다렸다는듯이 초지진포대에 맹렬한 포사격을 가했으며 방어시설이 없거나 약한 항산도 등을 습격하여 수많은 무고한 주민들을 살륙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분노한 조선군대는 침략자들에게 된타격을 가하였다.
이것이 《운양》호사건의 전말이다.
력사적사실은 《운양》호사건이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적인 도발책동의 한 고리였다는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있다.
일본침략자들은 《운양》호사건을 구실로 조선봉건정부에 예속적인 조약을 강요하기 위한 방안을 세우고 그 실행에 적극 달라붙었다.일본침략자들은 《운양》호가 청나라로 항행하던 도중 포격을 받은 실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하여 사신을 파견하겠다고 하면서 만약 받아들이지 않으면 쳐들어가겠다고 무작정 위협하였다.1876년에는 조선봉건정부를 공갈하여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조작하고 우리 나라를 예속화하기 시작하였다.《운양》호사건으로부터 발단된 날강도적인 《강화도조약》으로 하여 우리 나라는 반식민지화의 소용돌이속에 급속히 빠져들어가게 되였으며 끝끝내는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하였고 우리 인민은 40여년간에 걸쳐 피눈물나는 식민지노예살이를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는 일본의 과거침략행위와 특대형반인륜죄악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천백배로 결산할것이다.(전문 보기)
소식 : 다시금 드러난 스가의 본색
유엔총회 제76차회의에서 우리 문제와 관련하여 한 일본수상 스가의 연설내용은 문제의 성격과 본질을 와전하여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의 본색을 다시금 드러내놓은것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스가가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핵, 미싸일, 랍치문제》의 해결이라는 허황한 《광고판》을 유엔무대에까지 들고간것을 보면 한 나라의 수상은 고사하고 보통정치가로서의 초보적인 품격과 자질에 의문이 갈 정도이다.
세습과 파벌, 재력을 바탕으로 한 일개 정치가의 권력에 아부추종하여 일가견과 똑바른 정책이 없이 좌왕우왕하다가 쓰디쓴 참패를 당하고 수상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안되게 된것이 현재 스가의 불우한 처지이다.
스가의 발언은 건건이 론할 일고의 가치도 없고 제명을 다 산 자의 단말마적인 발악에 지나지 않지만 그가 근 10년동안 선임자인 아베와 작당하여 마지막까지 우리의 자위적인 국가방위력강화조치를 비방중상하고 조일관계를 최악의 대결국면에로 몰아넣은 후과에 대해서는 그저 스쳐보낼수도, 덮어놓을수도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아베나 스가는 물론 일본에서 다음기 수상으로 누가되든 선임자들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답습하려는 정치가들과는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을것이다.
일본은 과거 인류에게 전쟁의 참화를 들씌우고 조선인민에게 전대미문의 특대형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리병덕
소식 :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얻을것은 비참한 참패뿐이다
지난 9월 5일 일본수상 스가가 다음기 자민당총재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향을 공식 표명하였다.
일본의 아베내각에서 근 8년동안 내각관방장관을 맡은데 이어 지난 1년동안 수상직을 차지한 스가는 아베와 공모하여 조일관계를 최악의 상태에로 몰아넣은 장본인의 하나이다.
얼마전 스가는 자기가 국교관계가 없는 조일 두 나라사이에 민간급에서의 인적래왕과 인도주의적인 교류를 사명으로 오가던 《만경봉-92》호의 일본항입항을 전면금지시키는데 한몫 하였다는데 대해서와 NHK방송에 압력을 가하여 랍치문제에 대한 국제방송을 개시할것을 명령하였다는것을 치적으로 터놓았다.
과거 조선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면서 막대한 인적, 물적, 정신적피해를 입힌 일제의 죄행에 대해 일본정부가 골백번 사죄하고 배상하여도 시원치 않겠는데 도리여 대조선제재와 압력에 광분한것을 자랑거리로 삼는것이야말로 이미 저지른 죄악우에 새로운 죄악을 덧쌓는 범죄라고밖에 달리 평할수 없다.
돌이켜보면 스가와 선임자인 아베는 우리의 성의와 노력에 의하여 이미 다 해결된 랍치문제를 어떻게 하나 부활시켜 저들의 정치적목적실현에 악용하기 위해 거짓과 기만으로 민심을 회유하는데 몰두하여왔으나 끝내 수상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 공화국을 정치, 경제적으로 고립질식시키기 위해 시종일관 가장 비렬하고 야만적인 대조선제재봉쇄책동에 매여달려온 스가와 아베는 영원히 우리 인민의 저주와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
지금 다음기 자민당총재선거에 립후보로 나선 정치가들이 선임자들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의사를 공공연히 드러내놓고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그 누가 권력의 자리에 올라앉든 일본이 침략력사를 미화분식하고 군사대국화에로 줄달음치면서 대조선적대시정책에 매여달린다면 얻을것은 비참한 참패밖에 없을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리병덕
다시금 깨우쳐주는 진리
력사란 먹으로 지울수도 없고 불로 태울수도 없으며 검으로 찢을수도 없다. 이것은 부정할수 없는 진리이다.
그럼에도 력사의 진실과 인류의 량심에 칼질을 해대는 무지막지한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다름아닌 왜나라족속들이다.
력사외곡책동에 더욱 기를 쓰고 매달리는 일본반동들의 망동이 바로 그러하다.
알려진바와 같이 최근 일본당국의 지시에 따라 《종군위안부》, 《강제련행》 등의 표현이 삭제, 변경된 중학교 및 고등학교 교과서들이 대대적으로 발행되여 학생들이 리용하게 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내각의 관방장관이라는자는 기자회견에서 《아이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라는 망발을 줴쳤다.
이것은 교육의 신성한 사명, 초보적인 진실과 정의마저 짓밟고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군국주의력사관을 주입시키려는 일본반동들의 책동이 얼마나 악랄한가를 다시금 보여주고있다.
중학교, 고등학교교과서들에서 일본군성노예범죄와 조선인강제련행사실을 외곡하도록 한 일본당국의 이번 망동은 우리 민족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며 인류의 정의와 량심에 대한 우롱이다.
일본반동들이 한사코 과거 일제가 저지른 반인륜적범죄를 덮어버리려고 발악하는데는 단순히 전패국의 수치를 모면해보자는데만 있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력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이루지 못한 아시아제패야망을 실현하자는데 있다.
지난 8월 일본이 어린이용 《방위백서》를 발간하고 어린이들에게 군사대국화야망을 주입시키고있는것이라든가 고등학교교과서들에 독도를 《일본땅》으로 서술한 문구를 박아넣은것 등이 이를 실증해준다.
일본군성노예범죄와 조선인강제련행사실을 덮어보려는 일본반동들의 력사외곡책동은 날이 감에 따라 더욱 우심해지고있다.
지금껏 일본반동들은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을 《매춘부》로 모독하였는가 하면 《돈벌이를 위한 자발적인 의사》에 따른것으로 매도하면서 일본군성노예만행 그자체를 정당화, 합리화하여왔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가운데 얼마전 어느 한 나라 수도의 행정당국이 자기 지역에 세워져있는 일본군성노예소녀상을 1년 연장해두기로 결정한데 대해서도 일본반동들은 《강하게 항의한다.》, 《조속한 철거를 요구해나가겠다.》고 하면서 앙탈을 부려댔다. 한편 조선인강제징용과 관련하여서는 이전 《조선반도출신로동자들의 일본에로의 류입은 본인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개별적인 도항이였다.》고 떠들면서 철면피하게 놀아대고있다.
과거 우리 민족과 아시아인민들을 대상으로 짐승도 낯을 붉힐 치떨리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를 한사코 부정하거나 합리화하는 일본반동들의 력사외곡책동은 세인의 격분을 불러일으키고있다.
아시아나라들은 물론 세계각지에서는 날이 감에 따라 력사외곡책동에 광분하는 일본반동들의 후안무치한 망동에 대해 《표현을 뜯어고친다고 해서 력사의 진실이 달라지겠는가.》, 《침략의 력사를 부정하고 외곡하는 행위자체가 용납할수 없는 범죄이다.》, 《성근한 사죄와 배상의 마음이 전혀 없는 전범국가 일본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야 한다.》 등으로 단죄규탄하고있다.
방관시할수 없는 다른 하나의 문제는 국제사회에서도 일본의 침략력사와 반인륜적인 과거죄악에 대해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있을 때 남조선에서는 이와 상반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있는것이다.
최근 남조선의 위정자들속에서는 일본과의 그 무슨 《미래지향적관계의 추구》라는 괴이한 목소리들이 스스럼없이 울려나오고있다. 나중에는 저저마다 과거사문제와 경제문제를 분리하여 대응하겠다는것을 주요《공약》으로 내드는것과 같은 쓸개빠진 《대선》예비후보들도 있다.
특히 《국민의힘》의 친일행위들은 만사람의 경악을 자아내고있다.
《국민의힘》안의 《대선》예비후보들은 《한일관계가 외교관계후 가장 나빠졌다.》, 《외교는 실용주의, 실사구시에 립각해야 하는데 리념편향적인 죽창가를 부르다 여기까지 왔다.》, 《일본의 후꾸시마원자력발전소 오염수방류를 크게 문제시할 필요가 없다.》, 《일본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일본과의 관계를 돌이킬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극단으로 치닫는 한일관계의 책임이 모두 일본에게만 있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한미일군사동맹을 구축하는것이 시급하다.》 등으로 일본의 역성을 들며 인민들속에서 높아가는 반일감정에 도전해나서고있다.(전문 보기)
소식 : 천인공노할 악마의 포식(3)
일본군성노예범죄에 대한 현 일본당국의 행태는
국제사회와 인류에 정면도전하는 행위
일본군성노예범죄가 드러나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지도 20여년, 일제가 패망한지도 7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허나 일본군국주의가 감행한 성노예범죄와 조선인강제련행사실을 력사의 흑막속에 묻어버리려는 일본정부당국의 력사외곡책동이 오늘날에 와서 극치를 이루고있다.
지난 4월 일본정부는 각료회의에서 결정한 《답변서》라는데서 일본군성노예범죄의 피해자들에 대해 《종군위안부》라고 표현하는것은 오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때문에 적절하지 못하므로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야 한다, 조선인강제련행에 대해서도 《강제로동》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 모든 사실을 전면부정하는 립장을 밝혔다.
내각관방장관과 외상을 비롯한 정계인물들 역시 국회 등의 공식석상에서 《위안부강제모집이 존재한다는 보도는 사실과 모순된다.》, 《유사시에는 녀성들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부당한 행위가 일어나기 마련이고 세계적으로도 례사로운 일이다.》는 망언을 늘어놓았다.
일본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어떻게 하나 국가적책임을 회피하고 피로 얼룩진 과거범죄를 미화분식하여 후대들에게 외곡된 력사관과 복수주의를 주입하고 천인공노할 악마의 포식을 재현해보려는 용납못할 도전행위이다.
오늘날 일본정객들의 공공연한 야스구니진쟈참배와 력사교과서외곡, 헌법개악시도, 주변나라들의 령토를 강탈할 목적으로 강행되는 《자위대》병력의 재배치와 무력증강책동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1992년 1월 30일부 《아사히 져널》은 《랭전이후의 세계에서 국가와 국민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자면 전쟁책임과 전후책임의 보상이 필요하다.》, 《세계사의 흐름속에서 일본만이 언제까지 고립되여있겠는가?》라고 쓴바 있다.
세계는 국제사회의 정의와 인류의 량심을 또다시 우롱하고 도덕적저렬성과 후안무치성을 드러낸 일본정부의 부당한 태도에 엄한 눈초리를 보내고있다.
도이췰란드와 카나다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들은 물론이고 동맹국인 미국의 주요 도시들에까지 성노예소녀상과 추모비들이 세워지고 일본의 녀성인권유린범죄를 규탄하는 국제적움직임이 도처에서 확대되고있다.
1992년 8월 유엔소수민족차별방지 및 보호에 관한 소위원회 제44차회의 《현대형의 노예》문제토의시에 국제교육개발협회 대표는 연설에서 《<위안부>문제는 제2차세계대전기간에 일본<황군>에 유괴, 강제련행되여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한 20만에 달하는 조선소녀들과 녀성들에 대한 문제이다.》라고 지적하였다.
20만명에 달하는 조선녀성들의 존엄을 무참히 유린한 전대미문의 성노예범죄는 영원히 숨길수도, 지울수도 없는 특대형반인륜죄악으로서 전쟁범죄와 인류를 반대하는 범죄에 시효를 적용하지 말데 대한 국제협약에 따라 세대를 이어가면서라도 끝까지 계산하여야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차혜경
■ 련재
- 천인공노할 악마의 포식 (1) : 1920년대경부터 설립된 성노예제도
- 천인공노할 악마의 포식 (2) : 만천하에 드러난 일본군성노예범죄
- 천인공노할 악마의 포식 (3) : 일본군성노예범죄에 대한 현 일본당국의 행태는 국제사회와 인류에 정면도전하는 행위
론평 : 철없는 세대들까지 범죄의 길로 밀어넣을 심산인가
요즘 일본반동들이 벌려놓은 력사외곡책동이 최극단에 달하고있다.
얼마전에는 엄연한 조선의 령토인 독도를 저들의 땅이라고 날조한 어린이교육용 《방위백서》라는것을 뻐젓이 내놓더니 이번에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교과서들에서까지 《종군위안부》와 《강제련행》 등의 표현들을 아예 삭제해버리거나 변경하도록 하는 놀음을 벌리였다.
과거 저들이 감행한 남경대학살만행의 주요내용도 삭제하였다고 한다.
지금 일본것들이 놀아대는 그 뻔뻔스러운 행태로 보아 아마 조금 더 있으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나라들이 지난 세기에 일본을 침략하여 수많은 일본사람들을 학살하고 강제련행해갔다고 우겨댈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일본반동들이 벌려놓은 력사외곡책동이 이제 갓 눈을 뜨고 세상을 보려는 순진한 새세대들을 대상으로 꺼리낌없이 감행되고있다는것이다.
천진한 어린 세대들에게 외곡날조된 과거사를 인위적으로 주입시켜 과연 그들을 어디로 끌고가겠다는것인가.
그것은 다른데 있는것이 아니다.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군국주의사상을 심어주어 그들을 조상들이 못다 이룬 재침야망실현을 위한 돌격대, 《제2의 황군》으로 내몰려는 흉심의 발로라고밖에 달리 볼수 없다고 해야 할것이다.
참으로 경악할 일이 아닐수 없다.
자기 후손들이 정의를 위한 옳은 길에서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고 밑거름이 되여주고싶은것이 인간의 보편적심정일진대…
하지만 오직 섬나라족속들만은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기필코 이루어보기 위해 자기 후손들에게 패망을 통탄하며 스스로 할복해야만 했던 전범자들의 더러운 운명을 강요하고있는것이 아닌가.
현실은 일본반동들의 재침야망과 그 실행을 위한 책동이 얼마나 무분별한 단계에 이르렀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부정한 과거를 잊고 사는자 불피코 그 쓰디쓴 과거의 고통을 다시 겪게 되는 법이다.
일본반동들이 계속 과거죄악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 고사하고 오히려 그를 외곡날조, 정당화해가며 재침야망실현에만 미쳐 돌아친다면 그로부터 차례질것은 수치스러운 파멸뿐이다.(전문 보기)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일본당국의 차별행위에 항의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일본당국의 차별과 인권침해행위에 항의하는 재일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의 투쟁이 계속되고있다.
지난 2월 유엔의 인권특별보고관들이 공동서한을 통해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확대와 관련하여 학생지원금지불대상에서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배제시킨 일본당국의 차별행위를 경고하고 시정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당국은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지원에서 제외한데 대해 《차별이 아니다.》, 《지원제도가 이미 종료되였다.》고 하며 저들의 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지금도 일본 문부과학성과 외무성은 《차별은 없으며 유엔 인권특별보고관들의 공동서한은 유엔의 견해가 아닌 개인의 견해이다.》는 나발을 불어대며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고있다.
지어 사법당국을 내세워 차별행위를 합법화하려고 책동하고있다.
이에 분노한 조선대학교 학생들과 교직원들 그리고 일본의 시민단체들의 련대조직인 조선학원을 지원하는 전국네트워크 대표들은 9월 7일 도꾜에 있는 참의원의원회관에서 모임을 가지고 일본당국의 조선학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제도의 시정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일본당국이 학교지원제도를 시행함에 있어서 외국인학교중 조선학교만을 제외하는것은 명백히 민족차별책동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어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조선대학교 학생들에 대한 차별을 시정할것을 요구한 유엔의 인권특별보고관들의 공동서한의 취지를 리행하고 지원제도시행에 있어서 공평성을 보장할것을 주장하여 일본 문부과학상과 외상에게 보내는 요망서가 랑독되였다.
유엔의 인권특별보고관들에게 보내는 요청서도 랑독되였다.(전문 보기)
소식 : 천인공노할 악마의 포식 (2)
만천하에 드러난 일본군성노예범죄
그러면 왜 일본군성노예범죄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야 드러나게 되였는가 하는것이다.
그 원인은 첫째로, 일본군최고통치부의 지령에 의해 성노예《위안부》관련문서들이 철저히 소각말살되였기때문이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마자 일본군부는 저들이 저지른 전쟁범죄관련문서들을 철저히 소각할데 대한 지시를 해외파견침략군부대들과 조선총독부와 대만총독부에 하달하였다.
얼마나 철저하게 소각하였는지 학자들과 사회언론은 《위안소》와 《위안부》에 대한 사실내용을 전혀 알수 없었다.
단편적실례로 길림성 장춘의 길림성기록보관소에 있는 10만퉁구리의 자료는 일제관동군 헌병사령부(오늘의 길림성인민정부)뜨락에 매장되여있던것을 건설공사중에 발굴한것이다. 이 극비문건은 1945년 8월 중순 일본패망과 더불어 소각하다가 남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둘째로, 성노예피해생존자들이 과거의 치욕스러운 생활이 부끄러워 차마 나서서 고발할수가 없었기때문이다.
초보적인 녀성인권과 존엄은 고사하고 성도구로서의 물건짝취급을 당한 과거의 치욕스러운 생활을 누가 즐겨 말하겠는가.
사회적인간으로서의 모든것, 녀성으로서의 존엄과 청춘시절의 정신과 육체를 유린당하고 란도질당하여 겨우 생명을 건진 그들이 쉽게 과거의 체험이야기를 할수 없었다는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일이다.
셋째로, 성노예가해자들인 일본인들자신이 침묵을 지켰다는 사실이다.
일본군국주의의 희생물로 침략군대에 강제로 끌려나갔던 수백만명의 일본인들은 강점지역에서 살인, 방화, 강간을 일삼았으며 《위안소》에도 출입하였다.
그러나 가해자들자체가 저들이 저지른 죄행에 대해 《더럽고 냄새나는것은 뚜껑을 덮는다.》는 일본식특유의 사고로 일체 침묵을 지키고 부인하는것으로써 묵살되여왔다.
그러한 속에서 량심적인 인사들과 언론인들, 녀성활동가들에 의해 일본군성노예범죄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였던것이다.
이와 함께 일본국내에서 일본군성노예생활을 군부가 직접 지시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공식문건까지 발견되자 이제까지 일체 모르쇠를 하던 일본정부는 높아가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력을 의식하여 더는 버틸수 없게 되였다.
1993년 8월 4일 당시 일본정부의 대변인이며 수상과 함께 제2인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던 내각관방장관 고노 요헤이가 공식 담화를 발표함으로써 일본군성노예문제에 《군부가 직접 관여》하였다는것으로 그 강제성을 인정하였으며 《길이 기억한다.》고 사죄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차혜경
(다음호에 계속)
소식 : 천인공노할 악마의 포식 (1)
흔히 이웃을 멀리 떨어져있는 사촌보다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와는 상반되게 피에 사무친 원한의 상처를 헤집는 나라가 우리곁에 있다.
그것은 바로 20세기전반기 평화롭던 우리의 옥토를 강탈하고 대륙을 전쟁의 참화속에 몰아넣으며 천인공노할 악마의 포식으로 종횡무진한 전범국 일본이다.
현대문명의 시대에 들어선 오늘날에 와서도 일본군성노예범죄를 정당화하며 덮어버리려는 일본당국의 후안무치한 행태가 계속 로골화되고있는것으로 하여 이는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라 의연히 미해결문제로 남아있다.
1920년대경부터 설립된 성노예제도
인류력사와 더불어 지배계급들에 의한 침략전쟁은 부단히 계속되였으나 그 어느 전쟁사에서도 수십만명에 달하는 녀성들을 전쟁터에 끌고다니면서 성노예로 삼은 전례는 동서고금에 없었다.
이른바 《정신대》의 명목밑에 강제련행의 방법으로 20만명에 달하는 조선녀성들을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녀성들을 성노예로 만든것과 같은 악행은 오직 대륙침략과 세계제패야망에 혈안이 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일본군국주의자들만이 자행할수 있었던 범죄였다.
자료에 의하면 일제는 란잡한 성행위때문에 성병이 만연되였던 1918년의 《씨비리파병》의 후과로부터 장기적인 침략전쟁수행에서 성병에 의한 전투력감소를 막기 위하여서는 《종군위안부》제도를 내와야 하겠다는것을 의식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1920년대경부터 《황군》내부에 《종군위안소》를 설치하고 운영하기 시작한 일제는 1930년대에 대륙침략전쟁을 도발하면서 《종군위안부》를 없어서는 안될 하나의 《군수품》으로 리용하는것을 제도화하였으며 그것을 군부가 직접 통제, 관리, 운영하였다.
따라서 《종군위안소》는 조선과 일본본토는 물론 중국, 싱가포르, 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남양군도 등 《황군》이 도사리고있는 모든곳에서 설치운영되였다.
이에 대하여서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성노예로 끌려갔던 체험자들과 강제련행집행자들의 증언, 당시 작성된 비밀자료들, 일본인들의 저서와 증언 등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였다.
대표적으로 1992년 1월 10일 쥬오대학의 한 교수가 발굴한 1938년 3월 4일부로 된 군부의 지시내용과 주의사항, 어느 한 국회의원이 방위청(당시) 문서고에서 발굴한 당시 수상 도죠 히데끼가 《위안소》설치에 직접 관여하였다는것을 보여주는 대만강점 일본군사령관의 1942년 3월 12일부 전시전보, 일본 쇼와대학 교수가 찾아낸 문서들과 일기장들, 일본인이 도서 《종군위안부》에서 집필한 이전 관동군 후방담당참모의 증언, 한 일본녀성이 잡지 《세까이》 1992년 9월호에 기고한 글을 들수 있는데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위안부》모집이 민간인에 의한 《자원적》인것이 아니라 엄연히 일본정부와 군부의 지시에 의한 강제련행이였으며 그 주되는 과녁을 조선녀성들로 삼아 충당하는것을 정책으로 실행하였다는것이다.
일제가 조선녀성들을 징집한것은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노예상태에 있었던 녀성들을 징발하면 돈을 들이지 않고 다량으로 끌어갈수 있었을뿐아니라 성병을 막고 군사비밀도 지킬수 있었으며 나아가서는 조선민족말살정책과 결부시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차혜경
( 다음호에 계속)
간또대지진때 학살된 재일동포들에 대한 추도모임 도꾜에서 진행
일제가 간또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을 기화로 무고한 조선사람들에게 죽음과 고통의 재난을 들씌운 때로부터 98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1일 일본 도꾜에서 재일동포들이 추도모임을 가지였다.
서충언 총련중앙상임위원회 국제통일국장, 고덕우 총련 도꾜도본부 위원장을 비롯한 일군들과 동포들 그리고 니시자와 끼요시 도꾜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 대표와 일본인사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참가자들은 간또대지진당시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희생자들을 추모하여 묵상하였다.
고덕우위원장이 추도사를 하였다.
그는 98년전 간또대지진때 《조선인폭동》의 류언비어가 류포되는 가운데 감행된 전대미문의 학살만행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동포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일본당국은 간또대진재조선인대학살사건으로부터 근 100년이 되여오는 오늘까지도 학살된 재일동포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그 력사적사실마저 은페하고 외곡하고있다고 그는 단죄하였다.
뿐만아니라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조선고급학교를 제외한것도 모자라 학령전 어린이들과 유치반대상 재일동포자녀들에게까지도 교육지원적용을 배제하였으며 전염병사태와 관련한 학생지원금지불대상에서마저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제외하는 차별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였다고 그는 규탄하였다.
그는 일본당국이 간또대진재조선인대학살만행의 진상을 규명하고 반성하며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어 공화국의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에서 보내온 추도문이 소개되였다.
추도문은 눈도 감지 못하고 비명에 죽어간 희생자들의 원한은 일본당국이 우리 나라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과거범죄에 대하여 청산하며 부당한 반공화국, 반총련책동을 중지하고 재일조선인들을 바로 대할 때만이 비로소 풀리게 될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모임이 끝난 다음 참가자들은 간또대진재 희생동포들을 추모하여 꽃다발과 꽃송이를 진정하였다.(전문 보기)
남조선과 일본의 각계층 간또조선인대학살만행의 진상규명과 사죄를 강력히 요구
지난 1일 남조선언론 《련합뉴스》가 전한데 의하면 《1923한일재일시민련대》가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력사관》에서 《간또조선인학살피해자 제98주기 추도식》을 열고 일본정부가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의 진상규명과 사죄, 명예회복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간또조선인대학살사건은 1923년 9월 1일 간또대지진당시 일제가 시민들의 반정부기운을 눅잦히기 위해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한다.》는 등의 류언비어를 내돌리면서 《자경단》, 경찰, 군인들을 동원하여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야만적으로 학살한 사건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성명서를 통하여 간또대지진은 자연재해였지만 뒤이은 피해는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하면서 일본정부가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한데 대해 신랄히 폭로단죄하였다.
성명에는 남조선과 일본의 시민단체, 대학, 연구소, 종교계 등의 200여명이 참가하였다.
이들은 앞으로 간또조선인대학살사건 100주년에 맞추어 학살만행의 진상을 널리 알리고 추모하는 다양한 사업에 남조선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함께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하였다.
한편 이날 《련합뉴스》는 일본 도꾜도지사가 간또조선인대학살사건에 대한 추도문을 5년째 보내지 않고있는데 대해 각계층의 비난과 분노가 높아가고있다고 보도하였다.
간또조선인대학살사건과 관련하여 력대 도꾜도지사들이 해마다 9월 1일을 계기로 진행되는 추도행사에 추도문을 보내여왔지만 현 지사는 2017년부터 한번도 보내지 않고있다고 까밝히면서 학살만행을 부인, 비호하는 일본극우단체들의 망동에 동조하는 행위이다, 일본은 과거죄악에 대해 응당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준절히 단죄규탄하였다.(전문 보기)
천백배의 대가를 받아내고야말것이다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 대변인담화-
일본제국주의가 간또지방에서 발생한 대지진을 계기로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치떨리는 대학살만행을 감행한 때로부터 98년이 되였다.
우리는 조선사람이라는 죄 아닌 죄로 억울한 죽음을 강요당한 전체 조선인희생자들을 추도하며 일제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와 복수심을 안고 그때의 광경을 돌이켜보게 된다.
1923년 9월 1일 정오에 도꾜와 그 주변지역을 뒤흔든 강한 지진과 동시에 발생한 대화재는 순식간에 수십만채의 집과 건물들을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사상자는 무려 20여만명에 달하였고 120만여명이 한지에 나앉았으며 엄습하는 여진의 공포와 굶주림은 재해지역 주민들을 극도의 불안과 절망상태에 빠뜨렸다.
간악한 일제는 걷잡을수 없이 퍼져가는 사회적불안과 공포, 리재민들의 혼란된 심리와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한 술책으로서 적수공권의 무고한 재일조선인들을 제물로 바칠 악랄한 흉계를 꾸미였다.
일제는 《조선인폭동설》을 날조하고 《조선인이 방화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 등의 류언비어를 대량류포시키는 한편 군대와 경찰, 《자경단》을 내몰아 열흘 남짓한 기간에만도 무려 2만 3 000여명의 재일조선인들을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야만적인 방법으로 학살하였다.
간또대지진때 감행된 재일조선인대학살은 일제야말로 인간증오와 민족배타주의가 골수에 꽉 들어찬 살인귀, 피를 즐기는 흡혈귀이며 사람잡이를 도락으로 삼는 살인악마,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그러나 일본당국은 그때로부터 한세기가 되여오도록 이 사건의 진상조차 똑똑히 밝히지 않고있으며 털끝만 한 죄의식도, 책임감도 느끼지 않고있다.
오히려 저들의 과거범죄를 부정, 은페하는데 급급하면서 반공화국모략선전으로 일본사회에 극단한 조선민족배타주의를 고취하고있다.그와 함께 우익반동들을 사촉하여 간또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희생자들에 대한 추도모임들을 방해하다 못해 추도비마저 없애버리려고 갖은 못된짓을 다하고있다.
우리는 천인공노할 조선인대학살만행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 고사하고 력사외곡과 시대착오적인 반공화국, 반총련책동에 미쳐날뛰고있는 일본당국과 우익반동들의 무분별한 망동에 치솟는 격분을 금치 못하면서 이를 전체 과거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한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뀐다 해도 간또대지진때 감행된 일제의 야수적만행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반드시 천백배의 대가를 받아내고야말것이다.
일본당국은 피로 얼룩진 과거력사를 절대로 정당화할수도, 묻어버릴수도 없다는것을 명심하고 조선인대학살만행들에 대한 진상을 명백히 밝히며 철저히 사죄하고 배상하여야 할것이다.
주체110(2021)년 9 월 1일
평양
간악한 원쑤 일제가 빚어낸 류혈참극-간또대학살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23년의 간또대진재는 지각운동이 일으킨 자연의 재난과 함께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에 의하여 조선민족에게 강요된 인공적인 재난도 기록하고있다.》
일제가 간또지방에서 조선인대학살만행을 감행한 때로부터 98년이 되는것을 계기로 우리는 중앙계급교양관을 찾았다.
중앙계급교양관의 반일교양편 3호실과 4호실은 일제가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조선인민을 얼마나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는가를 생동한 사료들과 전시품들을 통하여 뚜렷이 보여주는 고발장이다.
우리의 걸음은 간또대지진당시 일제의 대학살만행을 보여주는 전시판앞에서 멎어섰다.
《간또대지진당시 일제에 의한 조선인집단대학살만행은 그 잔인성과 야만성에 있어서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피비린 참극이였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뗀 강사는 치솟는 분노를 안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으로부터 98년전인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간또지방에서 리히터척도로 7.9의 강한 지진이 일어나 순식간에 모든것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행방불명자가 산생되였다.
하지만 일본반동지배층은 엄혹한 사태앞에서 아무런 구호대책도 세우지 않고 오히려 파산에 직면한 자본가들을 살려주는데만 급급하였다.그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불만이 극도로 야기되자 급해맞은 일본반동지배층은 자국민들의 불만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사람들이 고의적으로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치고있으며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터무니없는 헛소문을 지어내고 그것을 극구 여론화하였다.
9월 1일 오후 일본반동당국은 정보기관에 민심안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였으며 이에 따라 정보기관에서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 등의 류언비어를 날조해냈다.다음날인 9월 2일에 일본당국은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조선인폭동설》이 얼마나 무근거한것이였는가 하는것은 진재지역에서 조선인폭동에 관한 풍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전한 외신자료, 조선인학살에 동원된 일본군인을 대상으로 《조선인이 왜 적인가?》라고 한 물음에 《상관의 명령이니 모른다.》고 대답하였다는 당시 일본중의원 의원의 증언자료를 비롯하여 전시된 자료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었다.
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조선인폭동설〉이 전혀 무근거한 날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당국의 살인지령에 따라 군대와 경찰, 〈자경단〉을 비롯한 살인귀들은 각종 무기들과 흉기들을 동원하여 짐승도 낯을 붉힐 잔인한 수법으로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무참히 학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제살인귀들은 조선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쏴죽이고 찔러죽이고 불태워죽이거나 물에 던져죽였으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총창으로 찔러죽이고 숨지는 부모들의 눈앞에서 어린이들의 목을 자르거나 조선사람들의 팔다리를 톱으로 켜고 식칼로 눈을 도려내는 등 식인종의 야만적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놓았습니다.인간백정들은 〈오래간만에 법이 허락하는 사람잡이이니 흥이 났다.전주대에 쇠줄로 잡아맨 후 때리고 차고 쇠붙이로 머리에 구멍을 뚫고 참대창으로 찔렀다.〉고 자랑하면서 쾌락에 들떠다니였습니다.》
당시의 참상을 방불하게 보여주는 반경화앞에서 우리는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었다.사람들의 등과 가슴에 박힌 대검과 날창, 참대창들, 전주대에 매달린 사람의 발에 박혀있는 대못이며 바닥을 질벅하게 적시는 피, 참대창에 휘감긴 피묻은 천에 씌여진 《조선인을 죽이라》는 글발, 참혹한 주검의 바다우에서 광기어린 야성을 터뜨리는 인간백정들의 몰골…
살인마들의 귀축같은 만행으로 하여 지진이 일어난 9월 1일부터 18일까지의 기간에 무려 2만 3 000여명의 조선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그들이 흘린 피가 도랑을 지어 흘러내렸다는 강사의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속에 일제살인마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더욱 세차게 끓어번지게 하였다.
인류력사에는 치떨리는 학살만행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그러나 력사의 그 어느 갈피에서도 간또대학살만행과 같이 그처럼 짧은 기간에 수만명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극히 야만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례는 찾아볼수 없다.인간도살을 락으로 여기는 섬나라족속들만이 빚어낼수 있는 참극중의 참극이였다.
당시 도꾜주재 외국의 대사와 공사들이 《일본은 놀랄만 한 한개 야만국이다.이 야만국을 상대로 외교를 계속할수 없다.》는 취지를 일본외무성에 전달한 자료, 조선인학살현장을 목격하고나서 《내가 일본사람이라는 수치를 이때처럼 절감하기는 처음이였다.》고 한 일본인의 증언자료들은 일제야수들의 인간도살만행이 얼마나 참혹하였는가를 더 잘 알수 있게 하였다.
《간또대학살만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강사의 말은 계속되였다.
사람잡이를 하나의 도락으로 여긴 일제살인귀들은 짐승도 낯을 붉힐 잔악무도한 학살을 감행하고서도 모자라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조선사람들을 《보호》라는 미명하에 수용소에 가두어두고 소나 말보다 더 혹독하게 부려먹었다.일제야수들은 재일조선인들을 포로로 취급하면서 피해지역에 내몰아 강제로동을 시켰다.이 과정에 간또대학살때보다 더 많은 우리 동포들이 무참히 학살당하고 굶어죽고 로동재해로 쓰러졌다.
간또대학살!(전문 보기)
-중앙계급교양관에서-
반드시 결산해야 할 대학살범죄
과거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수많은 죄행들가운데는 1923년 간또대지진당시 적수공권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야만적으로 살해한 천인공노할 만행도 있다.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리히터척도로 7. 9의 대지진이 일본의 간또일대를 휩쓸었다. 당시 강한 지진과 화염으로 인한 엄중한 피해는 자연재해앞에 속수무책으로 있는 정부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불만을 야기시켰다.
당황한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쳤다느니, 폭동을 일으키려고 한다느니 하는 헛소문을 조작, 류포시키면서 지진이 일어난 다음날인 9월 2일에는 일본왕의 《칙령》으로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당국의 살인지령에 따라 살인귀들은 각종 무기들과 함께 날창과 참대창, 곤봉과 쇠갈구리같은 살인흉기들을 가지고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무참히 학살하였다. 놈들은 이르는 곳마다에 설치한 검문소들에서 사람들에게 발음하기 까다로운 일본말을 시켜보고 발음이 정확치 않으면 조선사람이라고 단정하고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목을 자르거나 배를 갈라 죽이였다. 10여명씩 묶어 제방에 세워놓고 새로 만든 기관총의 성능검사대상으로 삼아 학살하였는가 하면 해탄로에 집어던져 불태워죽였으며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여 밟아죽이고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어린아이들의 목을 잘랐다. 식칼로 눈을 도려내고 팔을 톱으로 켜는자도 있었다. 불과 며칠사이에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야수적인 방법에 의해 학살당하였다.
살인광경이 얼마나 처참하였으면 일본사람들자체가 《이웃동네에 가보았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사람들의 목부분이 끊기워 기관지와 식도의 경동맥이 허옇게 드러나있었다. 목이 떨어져나간 시체들도 있었는데 목을 강짜로 비틀어 끊었는지 살과 피부와 힘줄이 풀려있었다. …녀성의 배는 갈라져있었고 6~7개월쯤 되여보이는 태아가 창자속에 딩굴고있었다. …우리 일본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잔인한짓을 했단말인가. …내가 일본사람이라는 수치감을 이때처럼 절감하기는 처음이였다.》고 토로하였겠는가.
실로 간또대학살은 일본정부의 조직적인 지휘밑에 감행된 특대형국가범죄행위이며 일제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그대로 보여준 산 증거였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일본반동들은 아직까지 이에 대하여 아무런 죄의식도 책임도 느끼지 않고있다.
오히려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정책에 집요하게 매여달리며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짓밟는것은 물론 일상생활에서조차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강요하고있다. 뿐만아니라 과거의 천인공노할 범죄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그를 한사코 부인하고있으며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면서 재침의 길로 미친듯이 질주하고있다.
허나 그 길이 일본에 있어서 죄악에 죄악을 덧쌓는 범죄의 길, 다시는 솟아나지 못할 파멸의 구렁텅이가 기다리는 마지막길임을 일본반동들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우리 인민은 간또대지진때 감행된 조선인집단살륙만행을 비롯하여 일제가 지난날 조선민족에게 저지른 미증유의 죄악들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으며 그 피값을 깡그리 받아내고야말것이다.(전문 보기)
론평 : 자멸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처사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 말이 있다.
최근 군국주의부활에 집요하게 매달리고있는 일본반동들의 행태가 바로 그러하다.
지난 8월 15일 패망일을 계기로 일본방위상, 경제재생담당상, 문부과학상을 비롯한 각료들과 자민당관계자들, 극우익분자들이 야스구니진쟈를 참배하는 놀음을 벌려놓았다. 또한 일본수상 스가는 《전국전몰자추도식》이라는데서 과거 일본의 피비린 침략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침략전쟁에서 죽은 전몰자들을 찬미하는 추태를 부려댔다. 그런가하면 다음날 일본방위성은 홈페지를 통해 《최초의 방위백서》라는 제목으로 된 어린이용 《방위백서》를 공개하는 망동짓도 서슴지 않았다.
한편 일본반동들은 남조선법원이 내린 일본미쯔비시중공업의 남조선내 대금압류판결을 놓고 《명백한 국제법위반》, 《일본이 수용할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수 있다.》 등으로 남조선에 대한 경제보복기도까지 로골적으로 드러냈다.
이것은 일본이 과거 저들이 저지른 죄악의 력사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계속 군사대국화와 령토강탈야망실현의 길로 나가겠다는 공공연한 선포로서 정의와 진리, 평화를 바라는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지향과 념원에 대한 정면도전이 아닐수 없다.
누구나 알고있는바와 같이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전범국이다.
그런것만큼 일본은 저들이 패망한 8월 15일을 계기로 우리 나라와 수많은 아시아나라들을 침략하고 무고한 인민들을 대량학살한 치떨리는 만행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인류앞에 무릎꿇고 사죄, 배상하는것이 마땅한 순리이고 선차이다.
그런데도 스가패당이 죄책감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특급전범자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구니진쟈에 경쟁적으로 몰려가 저들의 피비린 력사를 미화분식하고 복수를 다짐하였다.
더우기 지금 일본반동들이 범죄적인 침략력사를 부정하다못해 저들이 응당 배상해야 할 미쯔비시중공업의 대금압류판결까지 걸고들며 온갖 못된 짓을 일삼고있는것은 남조선인민들, 아니 전체 조선민족에 대한 모독이고 우롱이 아닐수 없다.
어린이용 《방위백서》공개놀음도 그렇다.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일본이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조선민족을 《영원한 주적》으로, 우리 민족고유의 령토인 독도를 제땅으로 인식시키고 저들이 추구하는 군국주의부활의 《정당성》과 반공화국적대의식을 주입시키려는 흉심이 짙게 깔려있다.
이것은 자국민들을 성인으로부터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외곡된 력사관, 침략사상으로 주입시켜 이루지 못한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기어이 실현해보려는 일본반동들의 끈질긴 재침야망의 발로이다.
현실은 일본의 침략적본성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달라질수 없으며 오직 결산만이 정답이라는것을 다시금 명백히 실증해주고있다.
허욕에 들뜨면 한치앞도 못보는 법이다.
지금 일본이 과거의 만고죄악에 대한 꼬물만한 사죄나 반성도 없이 계속 재침야망실현에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지만 그것은 자멸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처사로서 저들의 파멸만을 앞당기게 될뿐이다.(전문 보기)
원자탄에 의한 조선인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모임 도꾜에서 진행
미국의 원자탄에 의해 희생된 재일조선인들을 추모하는 모임이 9일 도꾜에서 진행되였다.
김익순 총련 니시도꾜본부 위원장, 하수광 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 사무국장, 리동제 재일조선인평화통일협회 회장, 김진호 《히로시마현조선인피폭자협회》 리사장을 비롯한 재일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참가자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여 묵상하였다.
발언자들은 과거 일제에게 랍치되여 일본에 끌려온 동포들이 인간이하의 학대와 멸시, 갖은 고역에 시달리고 더우기는 원자탄폭격으로 헤아릴수 없는 불행을 당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민족차별정책으로 동포피해자들은 아직까지도 아무런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하고있다고 그들은 밝혔다.
오히려 과거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공화국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극악무도한 적대행위를 집요하게 감행하고있다고 그들은 규탄하였다.
그들은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반인륜범죄의 진면모를 밝히고 그에 대한 철저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하여 련대투쟁을 계속 강화해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전문 보기)
군국주의에 대한 미화분식은 재침야망의 발로이다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8월 25일발 조선중앙통신)
일본극우익세력들이 군국주의부활에 더욱 집요하게 매달리고있다.
패망일을 계기로 방위상,경제재생담당상,문부과학상을 비롯한 각료들과 자민당 관계자들,극우익분자들이 줄을 지어 야스구니진쟈를 참배하였다.
공공연히 진쟈에 공물을 봉납한 수상 스가는 도꾜에 있는 전몰자묘지에 찾아가 머리를 숙이고 《령혼을 위로》한데 이어 추도식이라는데서는 과거 일본의 피비린 침략사에 대해 일언반구없이 침략전쟁에서 죽은 전몰자들을 찬미하는 놀음을 벌렸다.
8월 15일은 과거 침략전쟁을 도발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포한 패망의 날이다.
패전국이며 전범국인 일본은 응당 이를 계기로 우리 나라와 수많은 아시아나라들을 침략하고 무고한 인민들을 대량학살한 만행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인류앞에 무릎꿇고 사죄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의 위정자들은 죄책감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특급전범자들과 침략전쟁판에서 갖은 살인만행을 감행한자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구니진쟈에 경쟁적으로 달려가 복수를 다짐하고있다.
오늘 야스구니진쟈는 일본군국주의의 해외침략전쟁의 정신적도구로,상징으로 되고있다.
일본반동들은 진쟈참배를 통해 력사의 무덤속에 처박힌 군국주의망령을 되살리고 자국민들을 침략사상으로 길들여 군국화와 재침야망실현의 돌격대로 내몰려 하고있다.
이번에 진쟈참배를 강행한 정객들은 하나와 같이 전범자들을 《나라를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친 영령들》,《일본을 위해 목숨바친 령혼》들로 추어올리였다.
이것은 과거 침략력사에 대해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지금껏 추구하여온 군사대국화와 해외팽창의 길로 계속 나가겠다는 공공연한 선포로서 인류량심에 대한 우롱이며 국제적인 정의에 대한 도전이다.
얼마전 일본방위성이 령토강탈야망을 담은 첫 《어린이용방위백서》까지 작성공개한것 역시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외곡된 력사관을 주입시켜 이루지 못한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기어이 실현해보려는 일본의 끈질긴 복수주의적재침야망의 집중적인 발로이다.
제반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침략적본성은 달라지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군국주의에 대한 미화분식은 침략력사를 되풀이하겠다는 선언이나 같다.
일본이 패망의 쓰디쓴 교훈을 망각하고 재침의 길에 나선다면 차례질것은 완전한 파멸뿐이라는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행을 철저히 결산할것이며 우리 인민에게 들씌운 불행과 고통의 대가를 철저히 받아내고야말것이다.(전문 보기)
불법조약날조로 국토를 강탈한 극악한 철천지원쑤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일제가 강권과 사기협잡의 방법으로 범죄적인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고 우리 나라를 완전히 병탄한 때로부터 11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흐르는 세월은 많은것을 잊혀지게 한다고 하지만 한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도 과거 일본이 저지른 온갖 죄악은 우리 인민들의 기억속에 똑똑히 새겨져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강점이 후안무치한 강도행위였다는것은 온 세상이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한일합병조약》의 비법적성격을 다시한번 파헤쳐 일제의 간악성과 파렴치성을 폭로하기 위해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연구사 서정호선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자: 《한일합병조약》이 일제가 일방적으로 날조하여 세상에 공포한 협잡문서라는것을 증빙자료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주었으면 한다.
연구사: 2009년에 《한일합병조약》의 조선어본과 일본어본이 한 필체로 작성되였다는것이 밝혀졌다.그 다음해인 2010년에는 《한일합병조약》의 량국문서는 물론 리완용을 《협정》전권대표로 임명하는 《칙유문》, 《합병조약》체결을 량국이 동시발표한다는 내용의 《합병조약 및 량국황제조칙공포에 관한 각서》 등 4종의 문서가 모두 한사람의 필체로 작성되였다는것도 밝혀졌다.이 문서들을 일제의 식민지통치기구인 조선통감부의 한 인물이 작성하였던것이다.
《합병조약 및 량국황제조칙공포에 관한 각서》의 한 부분에 《통감부》라는 글자가 인쇄되여있었다.
기자: 원래 쌍무조약문의 작성은 쌍방이 각기 작성하는것이 원칙인데 이 자료들은 조선봉건정부가 《한일합병조약》작성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였다는것을 보여주는 정확한 증거로 되지 않는가.
연구사: 옳다.이것은 일제통치배들의 지시밑에 조선통감부가 주동이 되여 《한일합병조약》과 그 관련문서들을 날조하였으며 그것들이 다 만들어진 다음 조선봉건정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압적으로 공포하였다는것을 실증해준다.
기자: 1910년 8월 29일에 공포된 《병합》을 알리는 순종황제의 칙유문에 황제의 서명이 없었는데 이를 통해서도 《한일합병조약》이 날조되였다는것을 알수 있지 않는가.
연구사: 조약의 효력발생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국가원수의 비준을 받는것이다.그런데 순종황제의 칙유문에는 어새만 찍혀있고 황제의 서명은 없었다.반면에 같은 날에 공포된 일본왕의 조칙문에는 어새와 함께 서명이 있었다.
기자: 《한일합병조약》이 일본왕의 재가(왕이 결재하여 허가하는것)에 대한 정식 통보를 받기도 전에 날조되지 않았는가.
연구사: 그렇다.1910년 8월 22일 10시 40분부터 1시간 5분동안 일본왕의 자문기구인 추밀원에서는 일본내각에서 제출한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안 및 이와 관련한 칙령안 12건을 황급히 심의, 의결한 다음 즉시 그에 대한 왕의 최종재가를 요청하는 상주안을 바치였다.
일본내각에서는 조약문에 대한 왕의 재가를 받고 한성의 통감부에 전문으로 통지하였는데 그 시간은 이날 18시 30분이였다.하지만 이때는 이미 범죄적인 《한일합병조약》이 날조된 상태였다.《한일합병조약》은 22일 16시에 날조되였다.
데라우찌는 일본왕의 재가에 대한 통보를 정식으로 받기도 전에 《조약》에 《조인》함으로써 당시 일본법률과 초보적인 국제조약체결절차를 심히 위반하였다.
이 몇가지 사실자료를 통해서도 《한일합병조약》이 사기와 협잡, 강권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불법비법의 문서라는것을 잘 알수 있다.
기자: 《한일합병조약》의 날조를 통하여 우리는 일제가 얼마나 간악한 침략자이고 날강도인가를 다시한번 새기게 된다.
연구사: 일제는 대외적으로는 저들의 조선강점을 《합법화》하려고 별의별 음모를 다 꾸미면서 내적으로는 침략무력을 내몰아 강도적방법으로 《합병》을 실현하려고 획책하였다.
바로 《합병》을 앞둔 1910년 5월말부터 7월초까지 수많은 침략군을 한성일대에 집결시켰다.《합병》에 분노하여 일어날수 있는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을 철저히 진압하고 조선봉건정부관리들을 군사적위협으로 굴복시켜보려는 목적에서였다.
일제는 각 부대들을 한성의 주요지점들에 배치하고 경계태세를 강화하도록 하였으며 특히는 고종이 거처하고있던 덕수궁과 순종황제가 있던 창덕궁을 포위하고 황실로 드나들던 관리들을 통제하였다.이와 함께 일제는 방대한 침략무력을 총동원하여 전국에 삼엄한 경계망을 펴는 한편 조선인민의 집회를 일체 금지시키고 그것을 어겼을 때에는 가혹하게 탄압하였다.이처럼 일제는 군사적위협과 공갈로 조선봉건정부관리들을 극도의 불안과 공포속에 몰아넣은 다음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해냈던것이다.(전문 보기)
-중앙계급교양관에서-
본사기자 찍음
론평 : 사무라이후예들의 광기
최근 일본방위성이 홈페지를 통해 《최초의 방위백서》라는 제목으로 된 어린이용 《방위백서》를 공개하였다.
《국가의 방위는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어린이용 《방위백서》에서 일본반동들은 그 무슨 《자유》와 《민주주의》를 떠들어대면서 저들이 《방위태세》를 갖추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력설하였다. 그런가하면 백서에 올린 일본주변의 경계감시와 관련한 지도에 독도를 《다께시마》로 표기하며 교묘한 방법으로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는 망동도 서슴지 않았다.
참으로 후안무치하고 날강도적인 행태가 아닐수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 무슨 《자유》와 《민주주의》를 론하고 《방위태세》에 대하여 줴쳐댈 명분이나 체면이 있는가.
지난 세기 총칼로 세계의 정의와 량심을 롱락하며 다른 나라와 민족을 침략하고 노예화하는 등 산천초목도 치를 떨게 하였던 일본의 과거죄악을 력사는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저들이 저지른 만고죄악을 미화분식하고 군사대국화에로 줄달음치며 재침야망실현에 미쳐돌아가다 못해 적반하장격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위협》에 대하여 떠들어대면서 그 무슨 《방위태세》를 운운하는가 하면 우리 민족의 땅 독도를 저들의 땅이라고 우겨대고있다.
령토강탈책동에 광분하는 일본반동들의 망동은 우리 겨레와 국제사회의 치솟는 격분을 자아내고있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일본반동들의 이번 《방위백서》발간놀음이 순진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감행되였다는데 있다.
깨끗함과 천진함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어린이들, 허위와 가식을 모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군사대국화책동을 합리화하고 독도를 저들의 땅으로 매도하려는 일본반동들의 책동이야말로 《거짓말도 백번하면 진실로 믿게 된다.》는 파쑈광신자들의 교리를 그대로 본딴 철면피한자들의 광기가 아닐수 없다.
군사대국화책동과 령토강탈책동에 이른바 《방위》라는 보자기를 씌워 아이들을 군국주의사상으로 세뇌시키고 복수주의감정을 불어넣어 또다시 재침의 길로 내몰려는 사무라이후예들의 전쟁전주곡이라는데 이번 《방위백서》발간놀음의 위험성이 있다.
악습은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하는 법이다.
과거죄악에 대한 꼬물만한 반성이나 사죄도 없이 군국주의재침야망실현에 나어린 아이들까지 끌어들이려고 피눈이 되여 날뛰는 일본반동들의 망동은 온 겨레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항의와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전문 보기)
소식 : 조선동해해양권을 고수하기 위한 협의회 진행
최근년간 조선동해 우리 경제수역에 대한 일본의 불법침입이 로골화되고있는것과 관련하여 8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국토환경보호성, 외무성을 비롯한 관계기관 일군들과 전문가들의 협의회가 진행되였다.
협의회에서는 독도와 일본의 도고섬의 등거리중간선, 독도와 일본의 헤구라섬의 등거리중간선 그리고 조로경제수역 및 대륙붕경계선에 의하여 경계지어지는 조선동해 우리 경제수역에서 우리의 해양권을 고수하기 위한 대책적문제들이 심중하게 토의되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