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 천인공노할 악마의 포식 (2)

주체110(2021)년 9월 15일 조선외무성

 

만천하에 드러난 일본군성노예범죄

 

그러면 왜 일본군성노예범죄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야 드러나게 되였는가 하는것이다.

그 원인은 첫째로, 일본군최고통치부의 지령에 의해 성노예《위안부》관련문서들이 철저히 소각말살되였기때문이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마자 일본군부는 저들이 저지른 전쟁범죄관련문서들을 철저히 소각할데 대한 지시를 해외파견침략군부대들과 조선총독부와 대만총독부에 하달하였다.

얼마나 철저하게 소각하였는지 학자들과 사회언론은 《위안소》와 《위안부》에 대한 사실내용을 전혀 알수 없었다.

단편적실례로 길림성 장춘의 길림성기록보관소에 있는 10만퉁구리의 자료는 일제관동군 헌병사령부(오늘의 길림성인민정부)뜨락에 매장되여있던것을 건설공사중에 발굴한것이다. 이 극비문건은 1945년 8월 중순 일본패망과 더불어 소각하다가 남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둘째로, 성노예피해생존자들이 과거의 치욕스러운 생활이 부끄러워 차마 나서서 고발할수가 없었기때문이다.

초보적인 녀성인권과 존엄은 고사하고 성도구로서의 물건짝취급을 당한 과거의 치욕스러운 생활을 누가 즐겨 말하겠는가.

사회적인간으로서의 모든것, 녀성으로서의 존엄과 청춘시절의 정신과 육체를 유린당하고 란도질당하여 겨우 생명을 건진 그들이 쉽게 과거의 체험이야기를 할수 없었다는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일이다.

셋째로, 성노예가해자들인 일본인들자신이 침묵을 지켰다는 사실이다.

일본군국주의의 희생물로 침략군대에 강제로 끌려나갔던 수백만명의 일본인들은 강점지역에서 살인, 방화, 강간을 일삼았으며 《위안소》에도 출입하였다.

그러나 가해자들자체가 저들이 저지른 죄행에 대해 《더럽고 냄새나는것은 뚜껑을 덮는다.》는 일본식특유의 사고로 일체 침묵을 지키고 부인하는것으로써 묵살되여왔다.

그러한 속에서 량심적인 인사들과 언론인들, 녀성활동가들에 의해 일본군성노예범죄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였던것이다.

이와 함께 일본국내에서 일본군성노예생활을 군부가 직접 지시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공식문건까지 발견되자 이제까지 일체 모르쇠를 하던 일본정부는 높아가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력을 의식하여 더는 버틸수 없게 되였다.

1993년 8월 4일 당시 일본정부의 대변인이며 수상과 함께 제2인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던 내각관방장관 고노 요헤이가 공식 담화를 발표함으로써 일본군성노예문제에 《군부가 직접 관여》하였다는것으로 그 강제성을 인정하였으며 《길이 기억한다.》고 사죄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차혜경

(다음호에 계속)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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