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순결한 량심과 불같은 헌신으로 새겨가는 참된 삶의 자욱 -평안남도학원물자공급소 로동자 최희경동무-
《병사들의 어머니》, 《돌격대원들의 어머니》, 《원아들의 어머니》로 불리우는 한 녀성이 있다.
그가 바로 평안남도학원물자공급소에서 일하고있는 최희경동무이다.
조국방선과 수천척지하막장, 해빛밝은 교정에서 울려나오는 어머니란 그 부름은 순결한 량심과 불같은 헌신으로 빛내여온 최희경동무의 한생에 대한 값높은 표창이라고 말할수 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누구나 보석과 같은 애국의 마음을 간직하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유익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여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8년전 최희경동무는 전국원군미풍열성자대회에 참가하여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원군사업의 앞장에서 나가는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당과 수령을 혁명적신념과 의리로 받들고 우리의 혁명무력강화와 나라의 안전과 부강번영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우리 시대의 참다운 혁명전사, 애국자들이라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는 그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과연 내가 그런 크나큰 평가를 받을만큼 원군길을 걸어왔던가.
그는 긍지나 보람에 앞서 자신을 심각히 돌이켜보았다.그리고 결심했다.
영광의 이 절정을 보답의 출발선으로 삼고 원군길을 더욱 힘차게 걸어가리라.
그때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우리 초소》가 더욱 굳건히 자리잡았다.언제나 병사들을 자식처럼 여기고 온갖 정을 깡그리 쏟아부었다.별식이 생겨도 병사들을 먼저 생각했고 명절날과 휴식날에도 가정의 단란한 행복보다 초소의 아들들에게 보내줄 원호물자를 마련하느라 바삐 뛰여다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최희경동무는 텔레비죤을 통하여 병사의 고향소식이 소개되는 편집물을 보게 되였다.문득 산중의 초소에서 고향을 그려보군 하던 자신의 군사복무시절이 떠올랐고 초소의 병사들이 날마다 혁신을 이룩해나가는 부모형제들의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기뻐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여 그는 《우리 초소》 군인들의 문화정서생활에 도움을 주는 원호물자들을 성의껏 마련하여 보내주게 되였다.
이 한몸이 그대로 빛과 열이 되여서라도 군인들의 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것이 없다는 최희경동무의 열망은 해와 달이 갈수록 더욱 강렬해졌다.날씨가 차지면 병사들이 탈이라도 만날가봐 걱정되여 정성껏 배띠를 마련하였고 위병이 심한 《우리 초소》의 한 병사를 위해 수십리 밤길을 달려가 보약제를 구해오기도 하였다.
그도 자식들을 거느린 어머니이고 가정주부로서 하루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 잡다한 가정일이 기다리고있었다.그러나 조국이 굳건해야 가정의 행복도 있다는것을 철리로 새겨안은 그였기에 원호물자를 하나라도 더 마련하기 위해 뭇별들과 함께 새날을 맞군 하였다.
최희경동무가 뜻밖의 일로 심한 부상을 입었을 때였다.
거듭되는 수술로 하여 그의 몸은 극도로 약해졌다.하지만 그 어떤 육체적고통보다 그를 더욱 괴롭힌것은 전승절을 맞으며 군인들에게 보내야 할 원호물자준비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고있는것이였다.
침상에서 일어서는 그를 막아나서며 딸 유정이가 자식들의 심정을 너무도 몰라준다고 몸부림칠 때 최희경동무는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며칠 있으면 전승절이다.아마 초소의 자식들이 나를 기다릴게다.내가 병원에 있다는것을 알면 그들이 얼마나 걱정하겠니.그들에게 힘을 주자고 나선 길인데 내가 제몸부터 생각해서야 되겠니.이 어머니의 병은 그 길을 걸어야 낫는단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