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전력증산을 위해 온넋을 바쳐가는 참된 실력가 -평양화력발전소 화학직장 직장장 박순실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평양화력발전소가 창립된 때로부터 6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잡아주신 곳에 터전을 닦고 전력생산의 동음을 울린 때로부터 얼마나 많은 참된 애국자들이 수도의 불빛, 조국의 불빛을 믿음직하게 지켜왔던가.그 자랑스러운 대오에 화학직장 직장장 박순실동무도 있다.
수도의 동력기지의 중요한 초소를 책임진 일군으로서 발전소는 물론 나라의 화력발전부문에 없어서는 안될 기술인재로, 보배로 떠받들리우고있는 녀성직장장의 모습에서 우리는 당과 조국을 충직하게 받들어가는 참된 애국자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다시금 뜨겁게 안아본다.
대를 이어 지켜가는 불빛
어머니날 아침이였다.온 나라 가정들이 명절분위기로 흥성이기 시작한 그 시각 박순실동무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출근길에 올랐다.같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그를 띄여보고 반색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같은 날에도 발전소에 나갑니까.이젠 나이도 있는데 자식들 공대나 받으면서 좀 쉴것이지.…》
《글쎄 잠간이라도 발전소에 나가봐야 마음이 편한걸 어쩌겠어요.》
이렇게 대답하고나서 박순실동무는 걸음을 옮겼다.실지로 그는 발전소를 떠나서는 못살것같았다.단발머리시절 발전소에 들어서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40여년세월이 흘렀다.
박순실동무의 아버지는 발전소의 첫 세대 기술자들중 한사람이였고 화학직장 직장장이였다.일밖에 모르던 아버지는 늘 직장에서 살다싶이 하였다.그런데 박순실동무가 18살 나던 해에 아버지는 너무도 뜻밖에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며칠후 박순실동무는 발전소의 한 일군을 찾아가 자기를 발전소에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일군은 《발전소일이 쉽지 않아.더우기 순실이같은 어린 처녀는 어림도 없어.》라고 하면서 머리를 저었다.그러나 박순실동무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저도 압니다.하지만 전 꼭 아버지가 일하던 곳에서 일하고싶습니다.》
이렇게 그는 평양화력발전소 화학직장에서 로동의 첫걸음을 내짚었다.집채같은 려과기들이 꽉 차있고 배관들이 그물처럼 뻗어갔으며 전동기들이 기운차게 돌아가는 화학정수장의 한끝에 있는 크지 않은 분석대가 그의 일터였다.
남들의 눈길이 덜 미치고 찾아오는 사람도 얼마 없는 그 일터에 박순실동무는 정을 들여갔다.
물을 떠나서 화력발전소에서의 전력생산에 대하여 순간도 생각할수 없다.그 물이 물리화학적으로 순수하지 못하면 보이라나 관로에 때가 껴서 전력생산에 지장을 주게 된다.박순실동무는 바로 침전, 청정, 려과 등 공정별로 물시료를 채취하여 물이 순수한가 아닌가를 분석하며 해당한 대책을 세우는 실험공이였다.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그 일을 박순실동무는 참으로 크게 여겼고 언제나 성실하게 해냈다.그 나날에 마음좋고 의젓한 연구사총각과 가정을 이루었고 인차 어머니가 되였다.
고난의 시기가 닥쳐왔다.발전소의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그의 가정도 다를바 없었다.하루는 소학교에 다니는 딸애가 운동회를 앞두고 학급동무들이 입은것과 같은 체육복을 사달라고 졸라댔다.딸애의 소박한 소원마저 풀어줄수 없었던 박순실동무의 귀전에 직장을 그만두겠다며 떠나던 일부 실험공들의 말이 맴돌았다.
《순실동무, 동무의 그 기술과 재간이면 어디 가서든 성공하지 못하겠어요.딸애를 위해서라도 빨리 다른 길을 찾으라요.》
혹시 그들의 말이 옳을런지도 몰랐다.제 자식 하나 제대로 내세우지 못할바에야 차라리…
퇴근하여서도 착잡한 생각속에 모대기던 그는 어둠이 깃든 창가에 다가섰다.낯익은 발전소굴뚝이 어렴풋이 바라보였다.
불현듯 아버지생각이 났다.어쩌다 집에 들어온 날이면 아버지는 좋아라 모여든 다섯 자식을 데리고 발전소굴뚝이 바라보이는 창가에 서서 이렇게 말하군 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방방곡곡을 현지지도하고 돌아오시는 길이면 늘 화력발전소굴뚝을 바라보신단다.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것을 보아야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며…아버진 바로 그 굴뚝밑에서 일한단다.아버지가 보고싶으면 저 굴뚝을 보아라.》
그런 아버지여서 림종의 시각에도 발전소굴뚝이 잘 보이게 창가림을 제껴놓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위대한 수령님의 근심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려는 일념으로 한생을 참되게 산 아버지, 그런데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고 자부하던 나는?
아버지가 일하던 초소에 선것만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고 할수 있겠는가.
지금 이 시각도 조국과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불꺼진 거리와 마을을 보실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랴.
순간이나마 조국이 겪는 시련보다 먼저 자기만을 위한 생각을 하였다는것이 죄스러워 그는 저도모르게 눈굽이 젖어들었다.
그후 박순실동무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더 이악하게 일했다.힘든 과제가 나설 때마다 기꺼이 맡아나섰고 직장일을 위해서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가 화학실험실 실장으로 임명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어느날 현장을 돌아보던 그는 수리공들이 대형변압기를 해체하는것을 보았다.고장이 났는가고 묻자 한 수리공이 고장은 아니고 그저 보수날자가 돼서 그런다고 하는것이였다.
박순실동무는 생각이 많아졌다.그러니 변압기에 이상이 있든없든 날자만 되면 그것을 세우고 보수하는것이였다.물론 정기적으로 설비정비를 하는것은 좋다.그러나 그 어느때보다 설비들이 만가동해야 할 때에 멀쩡한 변압기를 세우면 전력생산에 지장을 주는것은 어쩌며 모든것이 부족한 이때 대형설비를 통채로 뜯었다 맞추었다 하면서 들이는 로력과 자재는 어찌하는가.
그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연구에 달라붙었다.피타는 노력끝에 변압기유속의 가스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가동중에 있는 변압기의 상태를 진단하여 보수주기를 합리적으로 정할수 있다는것을 밝혀냈을 때의 기쁨은 참으로 컸다.어려움을 겪는 조국의 짐을 덜어드리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였다는것으로 하여 느끼는, 언제나 나라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안을줄 아는 량심의 인간만이 느낄수 있는 행복이였다.
련이어 공업용수흐림도측정법을 창안도입하여 탈염수생산을 보다 과학적으로 진행하는데 이바지한 그는 일생에 가장 영광스러운 날을 맞이하였다.그리도 소원하던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던것이다.성스러운 당기앞에서 붉은 당원증을 받아안는 박순실동무의 마음속에서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시구절이 울리였다.
…
무엇을 아끼랴 그 무엇을 서슴으랴
그대 숭엄하고 존엄높은 모습에
한줄기 빛이라도 더해드릴수 있다면
…
그날의 맹세를 지켜 박순실동무는 화학직장 직장장으로 사업하면서 종업원들이 마음을 붙일수 있도록 일터를 번듯하게 꾸리고 다심한 어머니의 심정으로 그들의 생활을 안착시켜나갔다.그 나날 일터에 대한 종업원들의 관점과 태도가 몰라보게 달라진것은 말할것도 없고 화학직장은 2중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하고 3중모범기술혁신단위, 2중26호모범기대영예상직장으로 이름떨치는 발전소적인 본보기단위로 되였다.
남들이 선듯 들어서기 저어하는 어렵고 힘든 초소에 스스로 섰을뿐 아니라 40여년세월 순결한 량심을 다 바쳐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헌신해온 박순실동무의 모습앞에서 누구든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깨끗한 량심으로 조국의 전진을 떠밀고있는가.
조국의 짐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있는가.(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