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온 나라에 소문난 다수확농장의 기수 -재령군 삼지강농장 관리위원장 리혜숙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1(2022)년 9월 13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사를 잘 짓자면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농업부문 일군들과 농장원들이 자기의 책임과 본분을 다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재령군 삼지강농장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17차례, 위대한 장군님께서 4차례나 찾으시여 불멸의 자욱을 남기신 력사의 고장이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각별한 사랑과 믿음속에서 자랑스러운 발전행로를 걸어온 농장은 최근년간 알곡생산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큰걸음을 내짚음으로써 다수확농장으로 그 이름 더 높이 떨치고있다.이 성과속에는 관리위원장 리혜숙동무의 노력이 크게 깃들어있다.

어머니당은 영광의 땅을 더욱 빛내여갈 일념을 안고 삼지강사람들의 맨 앞장에서 충성과 애국의 땀방울로 땅을 걸구고 농장을 아름답게 가꾸어가고있는 그에게 얼마전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의 모습은 한개 농업생산단위를 책임진 농장일군들이 자기 진지를 어떻게 지키고 나라의 쌀독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있다.

 

이 땅을 영원한 조국의 청춘대지로

 

지금으로부터 11년전 관리위원장으로 임명받은 리혜숙동무가 농장에 들어서던 그 시각 벌에서는 벼가을이 한창이였다.

충실한 벼단들이 여기저기에 무져있고 아직 베지 않은 포전에는 벼포기들이 무겁게 고개를 숙이고있는 흐뭇한 풍경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부풀어오른 그는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포전에 들어섰다.

걸싸게 벼단을 묶어나가는 그를 보며 저마다 여불없는 실농군이라고 혀를 차자 리혜숙동무의 얼굴에는 미소가 비끼였다.

《이렇게 농사가 잘되였는데 왜 성수가 나지 않겠어요.나무리벌의 땅이 정말 좋긴 좋군요.이렇게 땅이 꺼지게 이삭이 여문걸 보니.》

그러자 나이지숙한 한 농장원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실 우리 농장은 나무리벌치고는 땅이 그리 좋지 못해요.대부분 갈색논인데다가 토심도 대단히 얕지요.해마다 화학비료를 넉넉히 쳐서 소출은 괜찮다만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가다가 땅이 견뎌내겠는지… 한마디로 이 땅은 식어가고있지요.》

리혜숙동무가 그럼 거름을 많이 내면 되지 않겠는가고 묻자 그 농장원은 《거름원천이 어데 있어야지요.》라고 하는것이였다.

부지런히 일손을 놀리는 리혜숙동무의 귀전에서는 식어가는 땅이라는 그 농장원의 말이 사라질줄 몰랐다.

그날 리혜숙동무는 날이 저물도록 농장의 논벌들을 돌아보았다.그의 눈앞에는 땅과 인연을 맺고 보내온 지난날들이 어제일이런듯 생생히 밟혀왔다.

그는 재령군의 어느한 농촌마을에서 태여났다.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리인민위원장을 하던 그의 할아버지는 고향땅을 지켜싸우다가 원쑤놈들에게 희생되였다.그가 어릴적에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이 땅에 할아버지의 피가 슴배여있다는것을 잊지 말아라.할아버지가 못다 가꾼 이 땅을 네가 어서 커서 가꾸거라.》

아버지의 이 간곡한 당부를 가슴깊이 새기며 리혜숙동무는 몸도 마음도 성장해갔다.

그러던 1994년 7월 중학교졸업을 앞두고있던 그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곁을 떠나시였다는것이였다.학교가까이의 농장벌로 달려간 그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어찌 잊을수 있으랴. 위대한 수령님께서 타신 차가 큰길로 지나갈 때면 소년단인사를 드리던 일이며 바로 전해에 수령님께서 고령의 몸으로 연백벌을 또다시 찾으시였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눈굽을 적시던 그날을.

그는 교원대학이나 사범대학에 가라고 하던 선생님들과 동무들의 권유를 마다하고 김제원해주농업대학에 갈것을 결심하였다.그는 자기가 선택한 그길이 황해남도농사를 두고 그처럼 마음쓰시며 험한 포전길을 걷고걸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념원을 풀어드리는 길과 잇닿아있다고 생각하였다.

대학으로 떠나던 그날 그는 이렇게 마음다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평생념원이 비껴있고 할아버지의 피가 스며있는 이 땅을 가꾸는데 나의 모든것을 다 바치리라.쌀로써 당과 조국을 충직하게 받든 애국농민들처럼 황해남도사람답게 한생을 빛내이리라.)

후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자기가 바라던대로 신천군의 어느한 농장에서 일하게 되였다.농장적으로 제일 척박하다던 땅을 옥토로 가꾼 실농군, 뒤떨어졌던 작업반을 앞선 단위로 만든 이악한 작업반장으로 이름날리던 나날에 그는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으며 30대초엽에 벌써 한개 농장을 책임진 관리위원장으로 성장하였다.

이런 그여서 《식어가는 땅》이라는 가슴아픈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일수 없었다.지어 살붙이처럼 사랑하고 진심을 다해 가꾸어온 땅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그해 농사를 결속하고 다음해 농사차비진입을 앞두고 리혜숙동무는 분조장이상 초급일군들이 모인 자리에서 거름생산계획을 발표했다.그전보다 배로 높아진 수자에 의혹을 표시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키우기에 달려있고 땅은 걸구기에 달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땀이 모자라면 우리의 숨결을 통채로 쏟아부어서라도 이 땅을 걸구어갑시다.》

그날 화학비료에만 매달리면 그만큼 땅이 혹사된다, 그것은 나라는 안중에 없이 자기만을 위하는 리기적인 행위이다, 나라의 가장 귀중한 재부인 이 땅을 기름지게 가꾸어 대를 이어 물려주는것으로써 황해남도농민의 본분을 다해나가자는 관리위원장의 호소는 그 자리에 모인 초급일군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바로 그날부터 거름원천을 찾기 위한 전투가 시작되였다.얼어붙은 물길바닥을 파헤치고는 썩은 감탕을 모조리 걷어냈고 집집의 돼지우리바닥을 더 깊이 파냈다.그리고 읍지구에 나가 진거름을 실어다 질좋은 유기질거름을 생산하여 정보당 수십t씩 내였다.

해마다 땅은 기름져갔다.그러나 그는 만족을 몰랐다.

땅을 걸굴 새 거름원천이 또 없겠는가.늘 이런 생각으로 모대기던 그의 눈에 집뜰안에 쌓아둔 벼짚무지가 띄였다.사방 벌뿐이고 가까이에 산이 없는 삼지강리에서는 벼짚을 땔감으로 리용하고있었다.

(저것을 요즘 농장들에서 널리 리용하고있는 《신양2》호같은 미생물복합균으로 처리하여 포전에 낸다면?)

그의 생각은 농장일군들과 농장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그들은 좋은 거름원천을 옆에 두고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집집에 쌓아두었던 벼짚이며 강냉이짚을 모두 퇴적장에 옮겨다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미처 알수 없었다.관리위원장이 주민세대들에서 땔감으로 쓸 석탄을 해결하기 위해 먼길을 떠났다는것을 그리고 리안의 수백세대 살림집들의 부뚜막을 석탄을 땔수 있게 몽땅 개조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있었는가를.

농장원들이 벼짚대신 석탄을 때니 집안팎이 깨끗해지고 밥지을 때 눈도 쓰리지 않아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하는 말들이 들려올 때 리혜숙동무는 얼마나 기뻐했던가.그렇게 생산한 발효퇴비를 낸 포전에서 해마다 전해에 비해 더 많은 소출이 나자 농장원들은 땅을 걸구기 위한 사업에 더욱 극성스럽게 달라붙었다.

아무리 좋은 땅도 선진영농방법을 도입하지 않는 주인에게는 다수확의 결실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리혜숙동무가 농장원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그러나 그 말을 농장원모두가 인정하고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실로 헐치 않았다.

그가 관리위원장사업을 시작한 초기 몇몇 작업반포전들에 시험적으로 논벼소식재배방법을 도입할 때였다.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저었다.지어 벼모를 많이 꽂아야 쌀을 많이 낼수 있다는 관념이 머리속에 꽉 들어찬 일부 토배기로인들이 한해 농사를 망치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깊은 밤 모내기를 한 포전에 《덧모내기》를 하는 판이였다.

그러나 리혜숙동무는 물러서지 않았다.시험포전에서 살다싶이 하며 생육상태를 살피고 애지중지 가꾸었다.농민들에게는 말로 선전하는것보다 실물로 우월성을 보여주는것이 더 효과가 있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마음속으로 늘 되새겨보며.

그렇게 논벼소식재배방법을 도입한 포전에서는 벼포기들이 무성하게 아지를 쳐갔다.가을이 되여 낫가락을 던져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벼이삭들이 꽉 들어찬 포전에서 농장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단 벼농사만 잘된것이 아니였다.앞그루밀, 보리농사와 감자농사에서도 이전시기에는 생각조차 할수 없었던 기적같은 성과가 이룩되였다.

독자들은 얼마전 TV로 방영된 밀수확풍경의 한 장면을 기억할것이다.

황금빛으로 물든 무연한 밀밭, 그 한가운데 새겨진 우리의 공화국기, 보는 사람마다 감탄하며 과연 어느 농장에서 그렇게 하였을가 하는 의문을 품게 했던 그 화폭이 바로 지난 6월 삼지강농장 제7작업반 포전에 펼쳐졌던 모습이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리혜숙동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세상 어느 농민이 자기가 가꾸는 땅에 자기 나라의 국기를 새겨보았겠습니까.그때 우린 조국의 대지라는 말의 참뜻을 다시금 가슴치게 깨달았습니다.우리가 가꾸는 이 땅은 그저 흙이 아닙니다.농민의 땀과 넋이 깃든 살점과도 같고 목숨과도 같은것입니다.그래서 이 땅은 절대로 식지 않습니다.우리의 심장이 뛰는한 이 땅은 풍요한 가을만을 주는 조국의 청춘대지로 남아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전진만을 안다

 

농장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최근 삼지강농장이 몰라보게 변했다고 한다.

그렇다.삼지강이 변했다.땅이 변하고 농사방법이 변하고 농장의 면모가 변했다.

그러나 그 모든것보다 더 크고 귀중한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 과정에 사람들, 일군들과 농장원들의 정신세계가 달라진것이다.더 아름다와지고 더 고결해졌으며 더 강의해졌다.

논벼소식재배방법에 대한 첫 도입시험이 성공한지 두해가 지난 2014년 농장에서 모든 포전들에 이 방법을 도입하였을 때였다.그해 농장의 논벼수확고는 지난 시기에 비해 거의 두배정도까지 치달아올랐다.

로적가리를 높이 쌓아놓고 한해 농사를 총화짓던 그날 농장원들이 《과학농사가 좋긴 좋구나!》 하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출 때 리혜숙동무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젖어들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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