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이런 사람이 우리 시대의 참된 애국자이다 -전천건재공장 삼락산리용직장 제1작업반 반장 정철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1(2022)년 9월 26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청년들을 어떻게 교양하고 준비시키는가 하는데 당과 혁명의 운명,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가 달려있습니다.》

지난 8월 전천군 읍지구의 어느한 운동장에서는 청년절을 맞으며 전천건재공장 청년들의 체육경기가 열기를 띠고 진행되였다.

그날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것은 종합 1등의 영예를 쟁취한 삼락산리용직장 청년들의 모습이였다.중등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불과 몇해사이에 키도 마음도 몰라보게 성장한 그들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며 사람들은 말하였다.한두명도 아니고 백수십명의 청년들을 어엿하게 키워 내세우느라 백만자루, 천만자루의 품을 들였을 제1작업반 반장 정철동무의 애국적소행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애국자라고.

하기에 우리는 청년들을 당과 국가의 은덕에 보답할줄 아는 로력혁신자, 조국을 떠받드는 억센 기둥으로 키워가는 한 훌륭한 인간, 참된 공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친부모의 정과 사랑으로

 

젊은 시절부터 혁신자로 소문났던 정철동무가 사람들로부터 자식부자로 불리우게 된것은 몇해전부터였다.

언제인가 휴식일에 시내의 거리를 거닐던 그는 공원에 모여앉은 여러명의 학생들에게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그들이 주고받는 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것이다.이제 몇달 있으면 학원문을 나서게 되는데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어디서 어떻게 떼겠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웃고 떠들며 희열에 넘쳐있는 중등학원 졸업반원아들의 모습은 그에게 지울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을 훌륭히 키워 조국앞에 내세워야 할 의무가 나에게는 과연 없는가?)

그즈음 그는 스스로 자신에게 자주 이렇게 묻군 하였다.하지만 쉽게 결심을 내릴수 없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기의 속생각을 조심스럽게 내비치자 그들은 이내 도리머리를 저었다.

《한둘도 아니고 수십명의 청년들을 맡아 키운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겠는데, 아이를 낳아키워본 녀성도 아니고 남자의 몸으로 어떻게…》

누구보다 놀란것은 그의 안해였다.

늘 집떠나 먼곳에 있는 일터에서 살다싶이 하며 두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복을 입을 때까지 어떻게 컸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그가 그처럼 많은 청년들의 부모구실을 할수 있겠는가.더우기 당에서 애지중지 보살펴온 청년들인데…

며칠동안 모대기던 그는 당조직을 찾아갔다.

정말 훌륭한 생각을 하였다고, 당조직에서 적극 떠밀어주겠으니 우리 마음을 합쳐 청년들을 위해 백만자루, 천만자루의 품을 들이는 우리 당의 숭고한 뜻을 실천으로 받들자고 하는 일군의 말에 정철동무는 눈굽이 뜨거워졌다.

그날 그는 사업수첩의 첫 페지에 《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우리 당의 청년중시사상을 한생토록 받들리》라고 한자 또 한자 정히 적어넣었다.

그리고는 중등학원을 졸업한 수십명의 청년들을 새로 조직된 작업반으로 데려왔다.

《자, 이젠 여기가 너희들의 집이다.》

이렇게 되여 위원군 지산리의 한 산골짜기에서 정철동무와 청년들의 새 생활이 시작되였다.

생소한 고장에서 생소한 일을 하게 될 청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마음의 안착이였다.마음의 안착, 그것은 혈육의 정이 넘치는 따뜻한 보금자리만이 마련해줄수 있는것이였다.

부모구실을 한다는것은 생각했던것보다 몇곱절 더 힘들었다.

성격과 취미, 건강상태는 물론 입맛까지도 서로 다른 수십명의 청년들을 돌보느라 그는 잠도 끼니도 잊고 살았다.이른새벽부터 자정이 넘도록 손에서 물마를새없이, 신발 한번 벗을새없이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지만 일감은 줄어들줄 몰랐다.

무엇보다 바쁜것은 때식을 보장하는것이였다.늘 해주는 밥만 먹어왔는데 이제는 자기들도 제손으로 음식을 해보고싶다며 청년들이 저마다 팔을 걷어붙이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너무도 많은것이 서툴고 부족했다.

이런 때 안해가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이 날수록 정철동무는 가정의 크고작은 부담을 다 떠맡아안고 이날껏 묵묵히 어려움을 이겨온 안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함께 병색짙은 그의 모습이 아프게 되새겨졌다.그런데 글쎄 자기의 속마음을 읽은듯 뜻밖에도 안해가 찾아올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그때부터 안해인 김승녀동무는 청년들의 어머니가 되였다.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잦을 날이 없다고 수십명 청년들의 부모구실을 하느라 정철동무와 그의 안해는 어느 하루도 발편잠을 자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날 정철동무는 한 처녀가 말도 잘 안하고 일에서도 성수를 내지 못하며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처녀에게 어디가 아픈가고 물어도 그저 일없다고만 대답하니 그는 속이 타서 견딜수가 없었다.

다음날 정철동무는 그 처녀를 데리고 여러 병원을 찾아 길을 떠났다.마침내 어느한 병원에서 본인도 몰랐던 병진단을 받고 그 치료방도까지 확정했을 때에야 그는 마음을 놓을수 있었다.자기를 위해 마음쓰느라 며칠동안 입맛도 잃고 뛰여다니는 그 뜨거운 진정에 감동된 처녀는 정철동무의 손을 잡고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렇게 청년들을 한명한명 애지중지 품어안고 혈육의 정을 다하던 나날에 그는 료리사, 반의사가 되였다.

한번은 출장을 마치고 작업반에 돌아와보니 한 청년이 보이지 않았다.그가 갈만한 곳은 다 찾아보았지만 청년은 없었다.밤이 깊어지면 어데 가서 밥은 제대로 먹는지, 찬바람이 불면 감기에라도 걸리지 않겠는지 하는 걱정에 뜬눈으로 날과 날을 보내는 정철동무의 가슴엔 재가 앉는것같았다.

끼마다 꼭꼭 그 청년의 밥을 따로 퍼서 가마안에 넣어두고는 한밤중에도 밥이 식지 않았는가 가늠해보군 하는 그의 모습을 보다 못해 하루는 한 청년이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이렇게 기다리는줄 알기나 하겠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정철동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는 늘 이렇게 밥을 부뚜막옆에 놓고 나를 기다리군 했소.난 그가 꼭 돌아오리라고 믿소.》

믿음은 헛된것이 아니였다.청년은 얼마후 작업반으로 다시 돌아왔다.꾸중 한마디 없이 얼마나 배고팠겠는가며 손에 숟가락부터 쥐여줄 때 따끈한 밥과 국을 마주한 청년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그 청년을 품에 꼭 안고 그가 한 말을 작업반청년들은 지금도 기억하고있다.

《날 용서해라.부모의 정을 그리워하는 너에게 내가 기울인 땀과 지성이 너무도 부족했구나.》

몇년후이면 새 가정을 이루게 될 그들의 앞날까지 미리 생각하며 청년들을 친자식처럼 끔찍이 위하는 그였지만 결코 그들을 어루만지기만 하며 눈먼사랑을 기울인것은 아니였다.

언제인가 한 청년이 제멋대로 자동차에 올라 이것저것 장난하다가 자동차를 고장나게 한적이 있었다.고장도 고장이지만 정철동무를 노엽힌것은 자기가 한것이 아니라고 우기는 청년의 거짓말이였다.

가슴이 아팠다.지금껏 부모없이 자란 그들이여서 정을 그리워할세라 여러가지로 왼심을 써왔지만 그들이 항상 바른길을 가도록 진정을 바쳐 교양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가슴을 쳤던것이다.원칙적인 교양과 인연없는 눈먼사랑은 그들을 나라의 기둥감으로 키울수 없음을 다시금 뼈저리게 되새겨보며 정철동무는 주저없이 아픈 매를 들었다.

《자기 량심을 속이는 사람은 언제든 나라도 속이게 된다는것을 명심하거라.》

철이 들수록 어머니가 남모르게 흘린 눈물의 무게를 알게 되는것처럼 청년은 날이 갈수록 정철동무의 그 엄한 채찍질이 얼마나 큰 사랑이였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였다.힘들어할세라 지팽이가 되여주고 발을 헛디딜세라 바로잡아주며 꾸준히 교양하고 이끌어준 그 진정에 받들려 오늘은 그 말썽많던 청년이 집단의 기수가 되였으니 이렇게 작업반장, 청년동맹초급일군, 혁신자로 자라난 청년들은 또 얼마이던가.

청년들은 이렇게 새 일터에 뿌리를 내렸다.그들에게 있어서 작업반은 부모의 정 넘치는 따뜻한 집, 행복의 보금자리였다.

 

정다운 스승의 모습

 

청년들의 가슴마다에 간직된것은 비단 정철동무가 기울이는 따스한 정에 대한 고마움만이 아니였다.당과 조국의 은덕에 보답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는 훌륭한 스승에 대한 다함없는 존경심도 소중히 자리잡고있다.

처음 정철동무와 함께 일하던 나날 청년들 누구나 안고있는 의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그처럼 자기들을 떠맡아안고 애쓰는가 하는것이였다.청년들은 그와 오래동안 함께 일한 한 종업원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에 대하여 잘 알수 있었다.

림산로동자의 맏아들로 태여난 정철동무는 수십년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림산사업소 운전사가 되였다.

비록 누가 보지 않는 산골에서 통나무를 운반하는 단조로운 직업이였지만 그는 자기의 직업을 무척 사랑하였다.

자기가 많은 통나무를 나를수록 조국이 그만큼 전진한다는 오직 한생각으로 밤잠까지 잊고 하루종일 차를 몰았다.자동차의 만가동이자 통나무운반실적이라는것을 명심하고 자기의 눈동자처럼 차를 관리하였다.

달이 흐르고 해가 바뀌면서 그는 어느덧 사업소가 자랑하는 혁신자로 널리 알려지고 그후 여러 직무에 조동되여 일하였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젊은 나이에 첫 공로메달을 수여받고 조직과 동지들앞에서 한생토록 조국을 위해 충직하게 일하겠다고 다진 맹세를 지켜 변함없이 성실하게 산중초소를 지켜가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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