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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백두밀림에서 개척한 우리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데 대하여 -조선인민혁명군창건 40돐에 즈음하여 항일혁명투사들과 한 담화 l972년 4월 22일-
나는 오늘 조선인민혁명군창건 40돐을 맞으며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나와 함께 오래동안 혁명투쟁을 하여온 동무들과 식사나 한끼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렇게 오랜 기간 함께 싸워온 동무들과 만경대에서 사진도 찍고 자리를 같이 하고보니 항일무장투쟁시기 밀영의 우등불가에서 만경대를 그리며 《사향가》를 부르던 때가 추억됩니다.
만경대는 나의 고향입니다. 나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고향생각이 날 때마다 동무들에게 아름다운 만경대와 대동강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이름난 평양랭면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면서 마음속으로 만경대를 그려보군 하였습니다.
만경대를 그려보느라면 우리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한 다음 있은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앓고계시던 어머니는 나에게 항일유격대원들을 한번 보고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광목천으로 만든 새 군복을 입고 행전을 친 유격대원들을 마을뒤산에 정렬시켜놓았습니다. 늘 독립군만 보아오시다가 끌끌한 유격대원들을 보신 우리 어머니는 당장 일제놈들을 때려부시고 조국광복을 이룩할것 같다고 하면서 매우 기뻐하시였습니다. 그때의 어머니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권총을 나에게 주시던 일도 생각납니다. 우리 아버지는 조선독립을 위하여 늘 권총을 가지고 다니시였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있는 로인이 지금 있는데 그는 우리 아버지가 평양숭실학교에 다니실 때 평양녀자고보를 다니면서 아버지에게서 애국주의교양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넘겨주신 우리 아버지의 권총이 지금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되여있습니다.
어제 우리는 어머니의 탄생 80돐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날을 맞이하고보니 어머니가 더욱 그립습니다. 내가 우리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듯이 동무들도 자기 어머니를 사랑할것이며 그리워할것입니다. 우리가 두고온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며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일제놈들과 싸우던 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창건 40돐을 맞이하고보니 우리가 강도 일제와 싸우던 간고한 항일혈전의 나날들이 감회깊이 떠오릅니다. 항일혁명투쟁은 참으로 간고하고 시련에 찬 투쟁이였습니다. 국가적인 후방과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20성상이나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간고한 투쟁을 하다보니 항일혁명투사들이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여기에 와있는 장철구동무만 하여도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 동무는 사령부작식대일을 하면서 늘 가마곁이 아니면 나무밑에서 풀을 깔고 잤습니다. 장철구동무는 그때 고생한것으로 하여 지금도 한쪽팔을 잘 쓰지 못하고있습니다.
만경대혁명학원 원장인 리오송동무도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 동무는 마안산아동단원들가운데 한사람입니다.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도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나는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를 볼 때마다 사득판에서 적의 습격을 받던 때가 생각납니다. 소할바령회의가 있은 후 우리가 며칠간 행군을 하던 때 일입니다. 행군을 시작한 우리는 몇시간후에 사득판에 들어섰습니다. 사득판을 지나가야만 그 너머에 있는 목적지로 행군해갈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날이 어두워질무렵 맞은켠쪽에서 전지불같은 불빛이 번쩍하는것을 보았는데 그 불빛은 한번 나타났다가는 다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갈길은 오직 그 길밖에 없기때문에 우리는 그 길로 계속 행군해나갔습니다. 그때 사령부행군대오에는 대원들의 대부분이 전투임무를 수행하러 나가고 20명 되나마나한 성원만 떨어져있었는데 그들중에는 나보다 앞서가는 동무도 있었고 좀 뒤에 떨어져오는 동무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아마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가 나를 거의 따라섰던것 같습니다. 나는 사득판에 들어서기 전에 본 불빛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전령병이였던 전문섭동무에게 앞에 나가서 적정이 없는가를 알아보고 오라고 임무를 주어보냈습니다. 내가 그를 보내고 조금 있는데 갑자기 적들의 기관총탄알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비발치듯 날아왔습니다. 적의 기관총소리가 나자 어느 사이에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와 전문섭동무가 나에게 달려와 나를 호위하면서 적의 매복권을 벗어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우리가 적들을 뒤에 달고 큰길쪽으로 행군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또 앞에서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나는 적들에게 골탕을 먹일 생각으로 앞뒤에서 달려드는 적들을 우리에게 접근시킨 다음 행군대오를 슬쩍 옆으로 빼돌리고 적들끼리 싸움을 붙여놓았습니다. 그때 우리가 자칫하면 사득판에서 큰 손실을 입을번 하였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하던 초시기에 우리의 력량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1933년에 왕청에 나온 다음부터는 항일유격대의 력량이 늘어났습니다. 항일유격대의 력량은 내가 장백에서 활동할 때에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우리와 함께 싸운 동지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전투에서 희생되고 반《민생단》투쟁바람에 희생되고 조국이 광복될 때에도 희생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적지 않게 희생되였습니다.
오늘 나와 함께 혁명의 길을 걸어온 동무들이 이 자리에 다 모이지 못한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물론 혁명투쟁에서 희생이 없을수는 없지만 우리 혁명이 류달리 간고하다보니 우리는 지난날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냈습니다.
지금은 항일혁명투사들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남은 동지들도 늙었습니다. 우리가 조선인민혁명군창건 50돐을 맞이할 때에는 로혁명가들이 지금보다 더 늙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하며 죽을 때까지 혁명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우리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미제침략자들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며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승리도 이룩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해놓은 일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조국의 통일과 우리 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하여, 백두밀림에서 개척한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하여 더 힘찬 투쟁을 벌려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하여 항일혁명투쟁에 참가한 로혁명가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하겠습니다.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는것은 혁명가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입니다.
혁명가들이 자기의 본분을 다하자면 두가지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첫째원칙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우는것이고 둘째원칙은 생의 마무리를 잘하는것입니다.
아름다운 꽃도 계속 피여있어야 곱고 항기롭지 시들면 볼멋이 없습니다. 우리 혁명가들도 역시 혁명의 꽃을 변함없이 끝까지 피울 때만이 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수 있지 중도에서 시들어버리면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걸어온 혁명의 길은 장구하고 간고하였지만 항일유격대원들가운데는 적들에게 투항한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항일유격대 참모장을 하던 림수산이 적들에게 투항하였는데 림수산은 이미전부터 사상적으로 병이 든 자였습니다.
혁명가가 한생을 보람있게 사는것도 중요하지만 죽을 때 값있게 죽는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혁명가들이 혁명가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여야 죽어서도 우리 당과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됩니다.
로혁명가들은 혁명의 길에서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고 먼저 떠나간 동지들을 생각해서라도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합니다. 우리 혁명의 길에는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다가 먼저 떠나간 혁명동지들이 많습니다. 최춘국, 강건, 김경석동무들이 바로 그런 동지들입니다. 그들은 당과 혁명을 위하여 한생을 보람있게 살았고 최후도 값있게 마쳤습니다. 김경석동무는 평양시당위원장을 하면서 반당반혁명분자들의 반당적행위를 들추어내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사실 그때 반당반혁명분자들의 죄행을 알고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가 평양시당에 김경석동무를 배치하였기때문에 혁명의 어려운 시기에도 끄떡없었습니다. 류경수동무도 혁명에 충실한 동무였는데 아깝게 잃었습니다.
동무들은 혁명의 길에서 먼저 떠나간 동지들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념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합니다.
혁명가들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우자면 자신을 끊임없이 혁명화, 로동계급화하여야 합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혁명화, 로동계급화할 때만이 혁명가로서의 의무를 다할수 있고 숨이 지는 순간까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울수 있습니다.
지난날 혁명을 오래하고 공로를 세운 사람도 자신을 수양하지 않고 혁명화하지 않으면 사상적으로 락후해지고 변질됩니다. 모든 사물이 변하듯이 사람도 변합니다. 사람은 좋게 변할수도 있고 나쁘게 변할수도 있습니다.
오늘 사회주의를 건설한다고 하는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경제분야에서 자본주의요소가 적지 않게 복귀되고있으며 사람들의 정신도덕생활에서도 자본주의적생활양식이 부식되고있습니다. 혁명은 지주, 자본가제도를 때려부시고 로동계급이 정권을 쥐였다고 하여 끝나는것이 아닙니다. 정권을 쥔 로동계급의 당은 혁명을 계속하여 사람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고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야 합니다. 최근 어느한 나라에서 우리 나라 예술영화 《로동가정》과 《꽃피는 마을》에 대한 관평을 신문에 냈는데 거기에는 아버지가 로동계급이라고 하여 아들이 저절로 로동계급이 되는것이 아니며 아버지가 혁명가라고 하여 아들이 저절로 혁명가로 되는것이 아니라고 썼다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긴것이기는 하지만 관평을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기 위하여서는 학습과 사상투쟁을 강화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설책과 철학책을 비롯하여 많은 책을 보았습니다. 책이 없으면 먼곳에서라도 책을 얻어다보았으며 적들과 싸움할 때에는 로획한 책을 가지고다니면서 보았습니다. 나는 책을 보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수양하였으며 혁명가의 의무를 다하여왔습니다. 지금은 내가 수상을 하고있지만 그때에는 수상을 할것을 생각하고 책을 많이 본것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학습을 많이 한 덕을 지금 보고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신문과 여러 부문의 책을 보고있습니다. 사람이 학습을 하지 않으면 락후해지고 변질됩니다.
동무들은 당정책학습과 정세학습을 비롯한 여러가지 학습을 강화하여 자신을 부단히 수양하며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혁명위업을 완성하는데서 동지들사이에 맺어진 혁명적동지애를 귀중히 여기고 그에 기초하여 굳게 단결하는것이 중요합니다.
혁명적동지애라는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습니다. 혁명적동지애는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사이에 맺어지는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사이의 참다운 동지적관계와 혁명적동지애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혁명투쟁과정에서 이루어지며 공고발전되게 됩니다.
우리들사이의 동지적관계는 장구한 항일무장투쟁과 조국해방전쟁, 새 사회건설을 위한 투쟁과정에 이루어진 참다운 관계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부모슬하에서는 열다섯살까지 살고 그다음부터는 동지들의 사랑속에서 살아왔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항일투사들은 우리 혁명의 자랑스러운 첫 세대들이다 -강반석어머님탄생 100돐기념 오찬회참가자들과 한 담화 주체81(1992)년 4월 21일-
오늘은 강반석어머님탄생 100돐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 어머님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생을 바치시였습니다. 어머님은 만경대에 계실 때부터 아버님의 혁명사업을 적극 도와드렸으며 독립운동자들의 시중을 드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시였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혁명사업을 위하여 국내는 물론, 중국의 상해와 간도지방을 비롯하여 여러곳을 다녀오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독립운동자들을 데리고오시였습니다. 어머님은 무시로 찾아오는 독립운동자들에게 밥도 지어주고 빨래도 해주시였습니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다음 혁명활동에 참가하시면서 나와 나의 동무들의 혁명사업을 적극 도와주시였습니다.
나는 지금도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할 때 있었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어머님은 앓는 몸이였지만 우리가 창건한 반일인민유격대를 보려고 동생과 함께 유격대원들이 정렬해있는 곳으로 나오시였습니다. 어머님은 유격대원들의 름름한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다가 그들이 어깨에 멘 총을 만져보시며 이런 총을 가지면 일제와의 싸움을 잘할수 있을것이다, 독립군들처럼 닭다리같은 총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인민들한테서 군자금이나 모아가지고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없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님은 자네들의 어머니들이 오늘의 경사를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조선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머저리구실을 하거나 몹쓸짓을 하는것을 보면 가슴이 아파 울지만 나라의 독립을 위한 장한 싸움길에 나선것을 보면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때 유격대원들은 어머님의 고무적인 말씀을 들으면서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습니다.
우리가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20살안팎의 열혈청년들이 유격대에 입대하려고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이 자리에 참가한 최성숙동무도 우리가 유격투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녀의 몸으로 목릉현에서 우리를 찾아 떠났는데 후에 왕청에서 만났습니다.
우리가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한 다음 며칠이 지나서 5. 1절을 맞이하였는데 그때 나는 부대를 거느리고 안도현성에 입성하여 보무당당히 열병행진을 하였습니다. 그후 나는 부대를 거느리고 남만으로 진출하였습니다. 내가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한 다음 인차 남만으로 진출한것은 그곳에 있는 량세봉독립군부대와의 통일전선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독립군사령인 량세봉은 우리 아버님과 친한 사이였기때문에 남만에 가면 그의 독립군부대와 통일전선을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남만으로 떠나기에 앞서 동무들이 모아준 돈으로 좁쌀 한말을 사가지고 어머님이 계시는 집에 들렸습니다. 그때 어머님은 몹시 앓고있었지만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으시였습니다. 정작 남만으로 떠나자니 앓고있는 어머님이 걱정되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은 집둘레를 빙빙 돌면서 선뜻 집을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쓰는 법은 없으니 집걱정은 하지 말고 부대를 거느리고 빨리 떠나라고 엄하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동무들이 혁명영화 《조선의 별》을 보아서 알겠지만 량세봉의 독립군부대에서는 일제놈들이 박아넣은 밀정이 참모노릇을 하고있었는데 그놈의 방해책동으로 하여 독립군부대와의 통일전선은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놈은 우리 유격대원들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한 음모까지 꾸몄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떠나 류하, 몽강, 안도를 거쳐 왕청으로 갔습니다.
내가 남만원정에서 돌아와 집에 들려보니 어머님은 세상을 떠나시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의 병은 독립운동자들을 시중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여 생긴 병이였는데 그때는 그저 가슴앓이라고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암이였던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 어머님의 나이는 40살이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다가 그처럼 바라던 조국광복의 날을 보지 못하고 너무나 일찌기 세상을 떠나시였습니다.
나는 오늘이 어머님탄생 100돐이 되는 날이므로 항일혁명투사들을 모두 참가시키고 식사를 같이하려고 하였는데 며칠후 조선인민군창건 60돐때 모일 기회가 있기때문에 이렇게 녀성항일투사들, 항일혁명의 녀성연고자들, 녀성간부들과만 자리를 같이하였습니다.
동무들이 나의 생일 80돐과 내가 대원수로 된것을 축하하고 나의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는데 감사합니다.
동무들은 4. 15를 계기로 하여 내가 대외사업을 너무 많이 하기때문에 나의 건강이 념려된다고 하는데 일없습니다. 이번 4. 15행사에는 세계 130여개 나라에서 온 420여개 대표단과 수천명의 외국손님들이 참가하였습니다. 나를 축하하기 위하여 찾아온 외국손님들에게 집체적으로 연회를 한번 차려주는것으로 그들과의 사업을 대치할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를 찾아온 손님들인것만큼 내가 좀 힘들더라도 따로따로 다 만나주어야 합니다. 아직도 내가 만나주어야 할 대표단이 여러개 남아있습니다.
동무들이 텔레비죤화면을 통하여 나의 건강한 모습을 볼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는데 나는 건강합니다. 내가 이미 오래전에 60청춘, 90환갑이라고 말하였는데 나는 원래 60환갑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나이가 90살이 되지 못한것만큼 환갑을 쇠지 못한셈입니다.
내가 80살이 되는 오늘까지 건강한 몸으로 혁명사업을 계속해올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동지들과 인민들의 덕분입니다.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은 언제나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보호해주었으며 성심성의로 도와주었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5. 조국광복회 -김일성동지회고록《세기와 더불어》 4 제 11 장 혁명의 분수령-
새 사단의 탄생으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더욱 강화발전된것으로 하여 우리의 앞길에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과 당창건을 위한 조직사상적준비를 보다 폭넓고 깊이있게 전개할수 있는 돌파구가 열리였다. 새 사단의 출현은 무장투쟁을 국내깊이에로 확대하며 각계각층의 애국력량을 하나로 결속시키기 위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군사정치적으로 뒤받침해주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되였으며 카륜회의이후부터 우리가 줄기차게 전개해 온 통일전선운동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수 있는 광활한 전망을 열어놓았다.
남호두회의 이후시기부터 우리의 통일전선운동은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체의 조직을 위한 활동에로 집중되였다. 하나의 상설적인 통일전선조직을 내오고 그 산하에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을 튼튼히 묶어세우는것은 우리 혁명발전의 견지에서 보나 내외정세의 요구로보나 더는 미룰수 없는 절박한 과제로 나섰다.
자주독립을 이룩할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민족대단결을 바탕으로 하는 전민항쟁에 있고 민족대단결이 자력독립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적문제라는것은 우리가 일찍부터 주장해온 사상이였다. 통일전선은 주체확립과 더불어 항일혁명투쟁의 초시기부터 견지해온 가장 중요한 리념의 하나였다.
민족대단결과 통일전선의 리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여러갈래의 민족주의세력과 반일애국력량과의 련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꾸준한 노력을 바쳐왔고 중국땅에서 투쟁하는 조건에 맞게 중국의 광범한 반일력량, 공산주의자들과의 공동투쟁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이 과정에 우리가 쌓아올린 적지 않은 성과와 경험은 통일전선운동의 폭넓은 발전을 위해서 값있는 밑거름으로 되였다. 우리는 이런 성과와 경험에 토대하여 통일전선운동을 전민족적인 범위에서 벌려나갈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것과 함께 그것을 맡아 수행할수 있는 핵심과 주체적력량을 빨리 키워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였다.
민족의 모든 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우기 위한 시도는 1930년대 이전시기에도 있었다.
조선의 근대력사에서 주의와 주장을 초월하는 민족의 대동단결문제가 처음으로 론의되기 시작한것은 1920년대 중기이후부터였다. 그 당시 우리 나라 민족해방투쟁무대에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두개의 세력이 존재하고있었다. 일제의 폭정과 수탈이 강화될수록 민족해방운동을 지도하던 선각자들은 애국력량의 단합과 민족대단결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런 필요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초기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들과의 련합을 모색하였고 민족주의자들은 공산주의진영과의 제휴를 시도하였다.
민족해방과 민족자주권의 부활에 동일한 리해관계를 가지고있는 두 진영 지도자들의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1927년 2월에 서울에서는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통일전선조직으로 신간회가 창립되였다. 당대의 애국인사들과 사가들이 신간회를 가리켜 민족단일당이라고도 부를만큼 이 단체에 대한 민중의 기대와 신뢰는 컸다. 신간회가 창립되자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두 세력의 반목대립에 불만을 느끼고있던 대중은 환호를 올렸다.
주의주장의 차이로 하여 사이가 버그러졌던 공산주의운동자들과 민족운동자들이 때늦게나마 통일단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단일전선기관을 내온것은 민중의 념원과 시대적요구에 부합되는 하나의 큰 경사였다.
우리 나라 민족협동전선의 첫 산아라고 할수 있는 신간회는 그 취지와 목적이 애국적이고 반일적이였다.
민족을 대표한다고 말할수 있는 량대세력의 공동전선이 실현됨으로써 신간회는 발족한 순간부터 전민족을 대표하는 거족적인 유일조직으로 되였다. 이 단체의 창립취지는 그 발기인들이 《고목신간》이라는 뜻에서 신간회라고 한 명칭자체에 잘 반영되여있다. 《고목신간》이란 오랜 나무에서 새 줄기가 자라난다는 뜻이다. 명칭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신간회는 새로운 기초우에서의 민족력량의 총집결을 지향하였다.
리상재, 홍명희, 허헌과 같이 민중의 인망이 높은 진보적 애국지사들에 의하여 발기되고 추진되고 운영된 신간회운동은 민족의 정치적경제적각성을 촉진하고 민족적단결을 공고히 하며 일체 기회주의를 부인한 강령의 내용도 혁신적이고 혁명적이였으며 회원들의 직업별 구성도 다양하고 광폭적이였다. 신간회에는 로동자, 농민, 려관업자, 사진업자, 기자, 상업가, 의사, 회사원, 교원, 대서업자, 목축업자, 인쇄업자, 어업자, 운수업자, 직공, 재봉공, 학생, 변호사, 저술가, 은행원, 교역자 등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 3만 7,000여명이 참가하였다.
좌우합작으로 민족의 총력을 하나로 집결시키려고 한 그 훌륭한 취지와 목적에도 불구하고 신간회는 1931년 5월에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였다.
신간회의 해산원인과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공산주의운동자들은 그 해산의 원인을 민족주의자들에게서 찾으려 하였고 민족주의자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그 책임을 지우려고 하였다. 한때 일부 력사가들은 신간회가 해산된 근본적인 원인을 상층의 분렬과 개량주의적경향에서 찾으려고 하면서 이 조직의 애국적성격과 민족사적의의자체를 부정하려고 하였다. 나는 그런 허무주의적견해에 동의할수 없었다. 해산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교훈을 찾는것은 좋은 일이지만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놀음을 하는것은 아름답지 못한 일이다. 신간회 상층에 개량주의자들이 더러 있었다고 하여 이 조직자체를 부정해서도 안되며 그 민족사적의의를 령으로 만들어도 안된다.
신간회가 해산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조선민족의 반일항쟁력량이 하나로 단합되는것을 두려워한 일제가 그 내부에 쐐기를 박아 분렬을 꾀하고 개량주의적상층을 매수한데 있었다. 적들의 암해책동과 파괴공작을 물리치고 신간회를 능숙하게 운영하고 이끌어나갈만한 중심적인 지도력량이 없은것도 하나의 주요한 해산원인이였다.
신간회의 와해에서 뼈저린 교훈을 찾은 우리는 애국적민족력량의 통일을 우리가 주도해야겠다는 비상한 각오와 결의 밑에 반일민족통일전선문제를 중요한 방침으로 제기하고 민족의 총력을 항일구국위업의 기발아래 결집시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그 과정에 이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만한 핵심도 키워내고 유익한 경험도 축적하였다.
남호두회의는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체의 창립에 대한 결정을 채택함으로써 우리 나라 통일전선운동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력사적인 분수령으로 되였다.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도 제국주의의 침략을 저지시키기 위한 인민전선운동이 대두하여 파시즘과 대결하고있을 때였다.
독일 나치스의 정권탈취에서 커다란 자극을 받은 프랑스로동계급은 자기 나라에서도 파시즘의 위협이 증대되여가고있는것을 보고 반파쑈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였다. 대중의 강렬한 통일열망에 따라 사회당은 1934년 7월 공산당의 제기를 받아들여 반전, 반파쑈통일행동협정을 체결하였다. 두 당의 영향밑에 분리되여있던 로동조합도 통합되였다. 이런 흐름을 타고 《로동과 자유와 평화의 인민전선》이 결성되였다. 추세는 이 전선을 중산계급들과의 통일에로까지 확대발전시킬것을 요구하였다. 1935년 6월말 사회당, 공산당의 련합에 소부르죠아정당인 급진사회당이 가담함으로써 이른바 《인민집합》이 이룩되였다. 7월 14일 빠리에서는 수십만명의 참가하에 인민전선의 대시위가 진행되게 되였다. 3당 수뇌자들인 모리스 토레즈와 레온 블륨, 달라지예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위행진의 선두에 섰다. 1936년 1월에는 3당을 중심으로 반전, 반파쑈 투쟁에 떨쳐나선 진보적그루빠의 통일에 기초한 인민전선강령이 정식으로 발표되였으며 그해 4∼5월에 진행된 하원총선거에서 인민전선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결과 사로내각은 총사직하고 레온 블륨을 수반으로 하는 인민전선내각이 탄생하였다. 물론 인민전선정부는 대중의 구매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으로 공황을 극복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에스빠냐인민전선정부를 지지하면서도 이른바 불간섭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였다. 결국은 인민전선도 붕괴되고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프랑스에서의 로골적인 파쑈정권의 수립을 저지시켰으며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반파쑈투쟁에서 하나의 유익한 경험으로 되였다.
국제공산당은 프랑스에서의 인민전선운동의 발전에서 좋은 시사를 받고 전세계공산주의자들앞에 인민전선결성을 중요한 투쟁목표로 제기하게 되였다.
이에 따라 국제공산주의운동은 자본주의의 즉시 타도를 목적한 세계혁명이 아니라 평화와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전쟁과 파쑈를 반대하는 운동을 당면한 과제로 내세웠다. 이것은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의 하나의 로선상 전환이라고 할수 있었다. 제2국제당계렬의 여러 정당들은 국제당의 통일전선제의를 거부하였으나 프랑스, 에스빠냐,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인민전선운동은 현저한 발전을 보게 되였다.
1936년 2월 에스빠냐에서의 아싸니아인민전선정부의 출현은 그 단적인 실례로 된다.
에스빠냐인민전선은 프랑꼬의 반란과 독일, 이딸리아의 군사적간섭에 직면하여 곤경에 처하였다.
에스빠냐인민전선에 있어서 치명적인것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주도하에 추진된 이른바 불간섭정책이였다. 엄정중립과 무기금수를 결정한 부당한 불간섭정책은 결국 반란군을 돕는 결과를 가져왔다. 쏘련도 처음에는 불간섭적립장을 취하였으나 그것이 인민전선정부에 결정적으로 불리하다는것이 명백해지자 태도를 바꾸어 인민전선정부에 비행기, 땅크 등을 보냈다. 에스빠냐인민전선이 겪고있던 곤경은 여러 나라의 지식인들과 근로자대중의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각국에서 숱한 지원병들이 에스빠냐로 달려갔다. 이리하여 에스빠냐는 파시즘세력과 인민전선을 지지하는 진보적세력간의 국제적교전무대로 되였는데 그 교전은 작은 규모의 세계전쟁을 련상시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동강에서 조국광복회를 결성하던 때를 전후하여 벌어졌던 국제적인 반파쑈운동형편이였다. 우리는 이딸리아침략자들을 반대하여 궐기한 에티오피아 애국자들의 영웅적항전에서도 커다란 고무를 받고있었다.
국제당은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재빨리 포착하고 각국 로동계급과 근로인민들을 반전, 반파쑈 투쟁에로 묶어세워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수호하며 파쑈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고수하는것을 당면한 전략적과업으로 제시함으로써 세계혁명의 령도기관으로서의 명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기에 반파쑈인민전선운동과 관련한 국제당의 력사적공적이 있다고 할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파시즘은 새로운 적이 아니였다. 국제파시즘이 대두함으로써 우리 나라 혁명의 대상이 달라진것도 없었고 성격이 변화된것도 없었다. 우리는 국제당이 반파쑈인민전선운동로선을 제기하기전부터 우리 식의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을 제기해왔고 그 궤도를 따라 우리 혁명을 줄기차게 전진시켜왔다.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체로서의 조국광복회를 창립하기 위한 준비사업은 남호두회의이후부터 시작되였다. 그전까지는 주로 내가 혼자서 광복회창립을 두고 사색을 무르익혀왔을뿐이다. 김산호, 최현, 박영순을 비롯한 몇몇동무들이 이따금씩 필요한 조언을 주느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대체로 그거야 사령관동지가 좋을대로 하시지요 하는 식의 립장을 취하였다. 그러다가 돈화지방에 있는 옥수천부근의 한 산간부락에서 어떤 나이많은 서생을 만나게 되였는데 그가 훌륭한 조언자가 되고 의논대상이 되여주었다.
그 부락에 조선사람이 사는 집이 둘이 있었다. 나는 그중 한 집에 들었다. 그때 화룡지방에서 활동하고있던 어느 한 소부대가 우리를 찾아왔다. 그 소부대동무들은 나를 만나자 괴이한 사람을 달고왔다고 보고하였다. 화룡의 어느 벽촌에서 만난 사람인데 소부대가 사령부로 찾아온다는 낌새를 알고 김일성장군을 만나야겠다고 하면서 자기네를 뒤따라왔다는것이였다. 정체불명의 사람을 사령부로 데려올수 없다고 생각한 소부대성원들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몇번이나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네들은 자네들대로 가라, 나는 나대로 갈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호상 남의 일에 간참하지 말자, 이렇게 말하고는 장바 한두기장쯤 되는 거리를 두고 그냥 태연하게 소부대를 따라왔다는것이다.
그 사람은 만나기전부터 나의 호기심을 끌더니 첫 상봉좌석에서도 별스럽게 굴었다. 소부대동무들이 사령관이라고 하면서 나를 소개하였으나 괴이한 손님은 그 말은 들은체도 하지 않고 자기의 나이와 열성을 봐서라도 진짜 김일성장군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였다. 나는 그때 주인집장작을 패주다가 그를 맞아들였는데 나의 차림새가 아마도 그의 눈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나를 이리 훑어보고 저리 훑어보고 하다가 아무렴 김장군이 그렇게 젊을수 없고 장군되는 사람이 머슴처럼 장작을 팰리도 없으며 막된 옷을 입고 다닐수도 없다고 하였다.
북만의 관지부근에서 야숙할 때 불무지보초를 선 신입전령병이 조는 바람에 내 바지를 태운적이 있었다. 헌 솜옷이였던데다 기워입기까지 하였으니 사실 나의 옷주제가 허술하게 보였을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가 괴짜였다. 그는 호지명의 수염 같은 턱수염을 달고있었다. 실제는 마흔네댓살밖에 안되는 사람이였으나 나이보다는 겉늙어서 쉬나문살이나 돼보이였다.
그는 항간에서 떠도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면서 하도 소문이 났길래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자고 찾아왔다고 말하였다. 내가 소문난 잔치 먹을 알이 없다고 대꾸하자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장군이 입은 옷만 봐도 로고가 짐작된다고 하였다.
심한 나이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우리는 대뜸 언어가 통하고 마음이 통하였다. 자기자신에 대한 그의 첫 소개부터가 아주 괴이하고 호탕하였다.
《저는 아무것도 이룩해놓은것 없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좌왕우왕하기만 해온 기회주의자올시다.》
나는 한평생 수천수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초면에 자기를 기회주의자라고 서슴없이 소개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무한히 량심적인 사람만이 무한히 솔직한 법이다. 솔직성은 흰눈처럼 깨끗한 량심의 반사이며 감춰내지 못하는 량심의 빛이다. 그는 우리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할 정도로 솔직한 그 몇마디의 말로 대뜸 나를 반하게 만들었다. 자기를 스스로 비하하는 그 꾸밈없는 이야기에서 나는 도리여 그의 인격적높이를 보았다.
우리는 미혼진으로 빨리 나가야 했던것만큼 그 마을에서 지체할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섭섭해하지 않을 정도로 만나주고 헤여질 작정이였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길을 떠나려 하자 그는 집으로 돌아갈 대신 우리를 따라나섰다. 김장군을 만나고보니 인차 헤여지고싶지 않은데 몇시간동안만이라도 같이 따라가며 이야기나 나누게 해달라는것이였다. 웬일인지 나도 그와 헤여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그와 함께 줄창 이야기를 하다나니 행군에서 지루한줄을 몰랐다. 이야기에 얼마나 열중했던지 나는 대원들이 쉬고싶어할 때 쉬우지 못하고 행군을 계속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김산호가 우리곁에 다가와 좀 쉬다가 가야 하지 않느냐고 귀띔해주군하였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당 력사에 조국광복회 발기인으로 기록된 《대통령감》 리동백이였다. 《대통령감》이란 리동백의 별명이였다.(전문 보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략력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1(1912)년 4월 15일 평양시 만경대에서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녀사의 맏아드님으로 탄생하시였다.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아드님의 이름을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뜻에서 《성주》라고 지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모님의 혁명활동로정을 따라 조선과 중국의 여러곳으로 이사하시며 어린시절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의 선견지명으로 어린시절부터 중국말을 배우시고 중국인소학교에서 중어공부를 하시여 중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시였는데 이것은 후날 중국땅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는데 커다란 도움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을 하자면 자기 나라를 알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뜻을 받들고 주체12(1923)년 3월 중국 팔도구로부터 만경대까지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여 외가가 있는 칠골 창덕학교에서 공부하시였다.
주체14(1925)년 1월 아버님께서 또다시 일제경찰에 체포되시였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시며 결연히 만경대를 떠나시였다.
주체15(1926)년 6월, 아버님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신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민족주의단체가 중국 화전에 세운 2년제군사정치학교인 화성의숙에 입학하시였으며 그곳에서 같은 해 10월 1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고 그 책임자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성의숙에서 반년간 공부를 하신 후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기 위하여 그곳을 떠나 혁명활동의 무대를 길림으로 옮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림육문중학교에서 공부하시면서 주체16(1927)년 8월 2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보다 대중적인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하시고 8월 28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여러 대중단체들을 조직하시고 반일투쟁들을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9(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된 카륜회의에서 조선혁명의 진로와 그 기본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전술적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7월 3일 카륜에서 첫 당조직인 《건설동지사》를 조직하시고 7월 6일에는 이통현 고유수에서 항일무장투쟁준비를 위한 정치 및 반군사조직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1(1932)년 4월 25일 상비적인 혁명무력인 반일인민유격대(그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를 창건하시고 항일무장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주체34(1945)년 8월 15일 조국을 해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10일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를 조직하시고 당창건을 선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2월 8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시고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으며 20개조 정강을 발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8월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을 합동하여 북조선로동당을 창립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짧은 기간에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업수행을 성과적으로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민주선거를 조직하시여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하시고 새로운 중앙정권기관인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으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임무를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2월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인 혁명무력인 조선인민군으로 발전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9월 9일 조선인민의 통일적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고 전체 조선인민의 일치한 념원에 따라 공화국정부수상,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8(1949)년 6월 30일 북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들의 련합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6월 25일부터 주체42(1953)년 7월 27일까지 조국해방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령도하시여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시고 미제의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 5일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에서 전후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제시하시고 그 수행을 위한 투쟁을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도시와 농촌의 생산관계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사회주의혁명을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5(1956)년 4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와 주체50(1961)년 9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혁명에 관한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시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그 기본내용으로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1(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날로 로골화되는 미제국주의자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기 위하여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5(1966)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4차전원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6(1957)년부터 주체59(1970)년까지 공업화의 력사적과업수행을 성과적으로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1(1972)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에서 채택된 새로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 따라 공화국주석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9(1970)년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와 주체69(1980)년에 있은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또다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조선혁명의 총적과업으로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1(1972)년 5월에 조국통일3대원칙을, 주체69(1980)년 10월에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주체82(1993)년 4월에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후계자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83(1994)년 6월 평양에서 미국 전 대통령 카터를 접견하시고 핵문제와 관련한 조미협상을 시작하며 북남수뇌자상봉을 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온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시다가 주체83(1994)년 7월 8일 새벽 2시에 집무실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민위천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칭호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3차),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 나라의 국가 및 정부수반들, 당지도자들을 비롯한 연 7만여명의 외국인사들을 접견하시였으며 106차에 걸쳐 16개 나라들을 방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른 나라와 국제기구들로부터 372개의 훈장과 메달, 명예칭호를 받으시였다.
중국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모셔져있고 100여개 나라 480여개의 거리, 기관, 단체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으로 불리우고있으며 세계적으로 국제김일성상이 제정되여 수여되고있다.(전문 보기)
김일성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주체82(1993)년 4월 6일-
근 반세기에 걸치는 분단과 대결의 력사를 끝장내고 조국을 통일하는것은 온 민족의 한결같은 요구이며 의지이다.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전민족이 대단결하여야 한다. 민족의 운명을 우려하는 사람이라면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해외에 있건, 공산주의자이건 민족주의자이건, 무산자이건 유산자이건, 무신론자이건 유신론자이건 모든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 단결하여야 하며 조국통일의 길을 함께 열어나가야 한다.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여 모두다 나라의 통일과 통일된 조국의 륭성번영을 위하여 특색있는 기여를 함으로써 민족분렬을 끝장내고 통일된 7천만겨레의 존엄과 영예를 세계에 떨쳐야 한다.
1. 전민족의 대단결로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중립적인 통일국가를 창립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현존하는 두 제도, 두 정부를 그대로 두고 각당, 각파, 각계각층의 모든 민족성원들을 대표할수 있는 범민족통일국가를 창립하여야 한다. 범민족통일국가는 북과 남의 두 지역 정부가 동등하게 참가하는 련방국가로 되여야 하며 어느 대국에도 기울지 않는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쁠럭불가담적인 중립국가로 되여야 한다.
2.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하여 단결하여야 한다.
전민족은 각자의 운명을 민족의 운명과 하나로 련결시켜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생명으로 지키려는 하나의 뜻으로 단결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의 존엄과 긍지를 가지고 민족의 주체의식을 좀먹는 사대주의와 민족허무주의를 배격하여야 한다.
3.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조국통일위업에 모든것을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단결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서로 다른 사상과 리념, 제도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침해하지 말고 함께 진보와 번영을 누려가야 한다. 지역적, 계급적리익에 앞서 전민족의 리익을 도모하여야 하며 모든 노력을 조국통일위업을 이룩하는데 기울여야 한다.
4. 동족사이에 분렬과 대결을 조장시키는 일체 정쟁을 중지하고 단결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대결을 추구하거나 조장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형태의 정쟁을 중지하고 비방중상을 그만두어야 한다. 동족끼리 적대시하지 말고 민족의 힘을 합쳐 외세의 침략과 간섭에 공동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5. 북침과 남침, 승공과 적화의 위구를 다같이 가시고 서로 신뢰하고 단합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서로 상대방을 위협하지 말아야 하며 침략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상대방에 자기의 제도를 강요하려 하지 말아야 하며 상대방을 흡수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6. 민주주의를 귀중히 여기며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하여 배척하지 말고 조국통일의 길에서 함께 손잡고나가야 한다.
통일론의와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여야 하며 정치적반대파라고 하여 탄압, 보복, 박해,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 친북, 친남을 시비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정치범을 석방, 복권시켜 조국통일위업에 함께 이바지하게 하여야 한다.
7. 개인과 단체가 소유한 물질적, 정신적재부를 보호하여야 하며 그것을 민족대단결을 도모하는데 리롭게 리용하는것을 장려하여야 한다.
통일되기 전에는 물론, 통일된 후에도 국가적소유, 협동적소유, 사적소유를 인정하고 개인 또는 단체의 자본과 재산, 외국자본과의 공동리권을 보호하여야 한다. 과학, 교육, 문학, 예술, 언론, 출판, 보건, 체육을 비롯한 모든 부문에서 각자가 가지고있는 사회적명예와 자격을 인정하며 공로자가 받고있는 혜택을 계속 보장하여야 한다.
8. 접촉, 래왕, 대화를 통하여 전민족이 서로 리해하고 신뢰하며 단합하여야 한다.
접촉과 래왕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제거하고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래왕의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 각당, 각파, 각계각층에게 동등한 대화의 기회를 주어야 하며 쌍무적, 다무적대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9.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북과 남, 해외의 전민족이 서로 련대성을 강화하여야 한다.
북과 남, 해외에서 조국통일에 유익한것은 편견없이 지지성원하고 해로운것은 함께 배격하여야 하며 각자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서로 보조를 같이하고 협조하여야 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사업에서 북과 남, 해외의 모든 정당, 단체와 각계각층의 동포들이 조직적으로 련합하여야 한다.
10.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위업에 공헌한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 애국렬사들과 그 후대들에게 특혜를 베풀어야 한다. 지난날 민족을 배반하였던 사람들도 과거를 뉘우치고 애국의 길에 나서면 관용으로 대하며 조국통일에 이바지한 공로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하여야 한다.(전문 보기)
[련재기사] : 열화같은 민족애와 동포애를 지니시고 (2)
열화같은 민족애와 동포애, 바다와 같이 넓은 도량을 지니시고 온 겨레를 사랑의 한품에 따뜻이 안아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그이는 우리 인민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하기에 해가 바뀌고 날이 갈수록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더더욱 솟구치는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오늘도 그이의 애국애족의 고귀한 한평생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분렬로 하여 우리 민족이 당하는 불행을 무엇보다도 가슴아파하시였으며 후대들에게 통일된 조국을 물려주시려고 생의 마지막시각까지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주체53(1964)년 가을 어느날 한 재일동포상공인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되였다.
꿈같은 영광의 자리에 서고보니 그는 조국을 위해 이렇다하게 해놓은 일이 없는 자신이 민망스러웠고 더우기 위대한 수령님께 꼭 사죄하지 않으면 안될 일도 떠올랐다.
상공인은 그이께 자기가 지난날 정치적으로 암둔하여 남조선으로 드나들면서 거기에 공장을 하나 지어주기로 약속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잘못이였다고 얼굴을 붉히며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조국의 부강발전에 기여하려는 자기의 소망에 어긋나기때문에 남조선에 지으려던 공장을 공화국북반부에 지을 생각이라고 말씀올렸다.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머리를 저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인정넘치는 음성으로 남조선도 조선사람의 남조선이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남조선에 공장이 하나라도 더 서면 조선사람에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것이 없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동포상공인을 자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앞으로 통일되면 남조선에 세운 공장도 조선사람의 재산일것이고 나라의 장래발전을 위해 유익할것이라고, 그러니 남조선에 공장을 세워주는것이 좋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동포애와 넓으신 도량앞에 상공인은 탄복을 금치 못하며 자신의 진정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수령님, 수령님은 참으로 이 나라 만백성을 굽어살피시는 조선의 하느님이십니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은 한평생 한치의 간격도 없이 온 민족을 따뜻이 보살피는 숭고한 애족애민의 사상과 동포애를 지니시고 곁에 둔 자식보다 먼곳에 있는 자식에게 더 마음쓰는 어머니심정으로 온 겨레를 따뜻이 품어 안아주신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뜨락또르공장을 찾으시여서는 남녘인민들에게 보내줄 뜨락또르를 더 많이 생산할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치시고 관개공사장을 찾으시여서는 통일된 다음 남조선의 관개건설에 이바지할 기술자들을 더 많이 양성해야 한다고 하시던 우리 수령님,
전후복구건설의 그 어려운 시기에 일본땅 한복판에 민족교육의 최고전당인 조선대학교를 덩실하게 세워주시고 해마다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여 재일동포자녀들이 근심걱정없이 마음껏 배울수 있도록 극진히 보살펴주신 위대한 어버이의 그 사랑을 우리 무슨 말로 다 전하랴.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각에도 온 겨레의 숙원을 가슴에 안으시고 조국통일을 앞당길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며 통일문제와 관련한 문건을 보아주시고 그 문건에 후세에 길이 전할 력사적친필을 남기신 우리 수령님 아니시던가.
정녕 열화같은 민족애와 동포애를 지니시고 온 겨레를 한품에 따뜻이 안아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전설들과 더불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영생하신다.(전문 보기)
■련 재
김일성 사회주의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항일혁명투사들 , 혁명가유자녀들과 한 담화 1992년 3월 13일, 1993년 1월 20일, 3월 3일-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나와 함께 투쟁하여온 오랜 전우들과 이미 우리의 곁을 떠나간 혁명가들의 유자녀들을 이렇게 만나니 매우 반갑고 감개무량합니다.
동무들이 나의 건강을 념려해주고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는데 감사합니다.
나는 혁명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오늘까지 언제나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의 지지와 사랑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내가 80살이 넘은 오늘까지 건강한 몸으로 혁명사업을 해올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동지들과 인민들이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적극 보호해준 덕분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혁명의 길은 매우 준엄하고 시련에 찬 길이였습니다. 우리가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로 주체적인 혁명대오를 준비하면서 조선혁명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해나가던 초기혁명활동시기도 어려운 나날이였고 아무러한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자체로 유격대오를 조직하여가지고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면서 강대한 일제의 100만대군과 맞서 싸우던 항일무장투쟁시기는 말할수 없이 간고한 나날이였습니다. 항일혁명투쟁의 나날에는 언제나 위험이 뒤따랐으며 사선의 고비도 수없이 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때마다 동지들과 인민들은 나를 적극 도와주고 위험에서 구원해주었으며 성심성의로 보호해주었습니다.
내가 얼마전에 한영애의 딸을 만나보았는데 한영애는 초기혁명활동시기에 나의 혁명사업을 도와주고 나의 신변을 보호해준 잊을수 없는 은인의 한사람입니다. 한영애는 우리가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하여 투쟁할 때 내가 적들에게 체포되지 않도록 보호해주었으며 5. 30폭동후 내가 파괴된 혁명조직을 복구하기 위하여 교하를 거쳐 할빈에 가서 활동할 때에도 모든것을 다하여 나를 적극 도와주었습니다. 그후 그는 할빈에서 내가 준 혁명임무를 수행하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였는데 적들의 고문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청년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내가 준 혁명임무에 충실하였을뿐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도 서슴없이 바쳤습니다.
오중흡동무는 항일유격대의 지휘관으로서 언제나 사령부의 안전부터 먼저 생각하였으며 나를 목숨으로 보위한 충직한 혁명투사였습니다. 내가 백두산지구에서 활동하던 어느해 겨울 홍두산밀영에 가서 얼마 안되는 대원들과 같이 음력설을 쇠고있었는데 거기에 적은 인원밖에 없다는것을 내탐한 적들이 사령부를 포위소멸해보려고 5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가지고 불의에 기습해왔습니다. 그때 오중흡동무는 부대를 거느리고 림강쪽으로 행군해가고있었는데 도중에 적《토벌대》가 사령부가 있는 홍두산밀영쪽으로 이동해갔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사령부가 위험에 처할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즉시 부대를 돌려세워가지고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그는 사령부를 기습해오던 적들을 배후에서 공격하여 완전히 소멸해버렸습니다. 이렇게 되여 사령부는 위험을 면하고 무사하게 되였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자기 목숨을 아까와하지 않고 나의 신변을 보호해주고 나를 위험에서 구원해준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나는 제1차 북만원정을 끝마치고 돌아올 때에도 대원들과 인민들의 희생적인 노력에 의하여 구사일생으로 구원되였습니다. 북만에서 돌아오던 도중 내가 촉한을 만나 사경에 처하였을 때 목재소에서 만난 김로인과 로야령에서 살던 최일화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살아나지 못하였을것입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나를 보호해준 은인들가운데는 장울화를 비롯한 중국사람들도 있습니다. 장울화는 나와 련계를 가지고 지하활동을 하던 도중에 변절자의 밀고로 적들에게 체포되여 고문을 받았는데 혹시 무의식중에 헛소리라도 하여 내가 있는 사령부의 위치를 루설할가봐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잊을수 없는 나의 혁명동지이며 은인입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동지들이 생기고 어려운 때 은인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나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실지 겪은 체험을 놓고 그렇게 말하고싶습니다. 우리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는 과정에 언제나 동지들의 방조를 받았고 어려운 고비에 처할 때마다 인민들의 구원을 받았기때문에 끝까지 싸워 혁명에서 승리할수 있었습니다. 속담에도 독불장군이라는 말이 있지만 혼자서는 결코 장군이 될수 없으며 인민들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수도 혁명에서 승리할수도 없습니다.
동무들이 텔레비죤을 통하여 나의 건강한 모습을 볼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였는데 나는 아직 건강합니다. 나는 앞으로 한 10년은 더 일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60청춘, 90환갑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60환갑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와 동무들은 아직 90살이 되지 못한것만큼 환갑을 쇠지 못한셈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늙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희망과 락관에 넘쳐 일을 더 많이 할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오래 살면서 혁명을 하려면 승리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락관적으로 생활하여야 합니다. 나는 인민대중을 위한 위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있기때문에 사업과 생활에서 비관을 모릅니다. 나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든든한 배심과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언제나 락관적으로 생활해왔으며 오늘도 여전히 락관적으로 생활하고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의 하나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내가 몇해전에 북남고위급회담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온 남조선 《국무총리》를 만나주었는데 그때 그는 나에게 주석님께서 이처럼 건강하신 비결이 무엇인가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내가 건강한것은 비관을 모르고 락관적으로 생활하기때문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언제나 비관을 모르고 락관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나는 오늘 동무들이 모두 건강한 모습을 보니 매우 기쁩니다.
동무들은 자신들이 건강한것이 나의 덕분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나의 덕분이라기보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덕분이고 당의 옳바른 령도의 덕분이라고 하여야 할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진정한 인민의 사회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력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이 모든것의 주인으로 되여있으며 모든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국가주권도 생산수단도 다 인민의 수중에 장악되여있으며 전체 인민이 먹고 입고 쓰고살 걱정을 모르고 무료교육, 무상치료의 혜택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당과 국가의 모든 정책은 어떻게 하면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와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겠는가, 어떻게 하면 인민대중의 창조력을 더 높이 발양시키겠는가 하는데로부터 출발하고있으며 여기에 전적으로 복종되고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중심의 세계관이며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구현한 사회주의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 나라 사회주의를 가리켜 주체의 사회주의 또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라고 하는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진정한 인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지난 수십년동안 온갖 간난신고를 다 겪으며 주체의 기치밑에 굴함없이 투쟁하여왔습니다. 우리는 력사상 처음으로 주체사상을 사회주의건설에 구현하여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를 훌륭히 건설하여놓은데 대해서와 오늘 동방에서 사회주의기발을 튼튼히 지켜나가고있는데 대하여 응당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이전 쏘련과 동구라파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지자 우리 나라 사회주의를 허물어보려고 더욱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를 허물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이전 쏘련이나 동구라파나라들의 무너진 사회주의와 같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주체성이 강하고 인민대중속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주의입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위하여 투쟁하는 전과정에 일관하게 주체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였으며 모든것을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우리 식대로 하였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 -1946년 3월 5일-
제1조
북조선토지개혁은 력사적 또는 경제적필요성으로 된다.
토지개혁의 과업은 일본인토지소유와 조선인지주들의 토지소유 및 소작제를 철페하는데 있으며 토지리용권은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있다. 북조선에서의 농업제도는 지주에게 예속되지 않은 농민의 개인소유인 농민경리에 의거한다.
제2조
몰수되여 농민소유로 넘어가는 토지는 다음과 같다.
ㄱ. 일본국가, 일본인 및 일본인단체의 소유지.
ㄴ. 조선민족의 반역자, 조선인민의 리익에 손해를 주며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관에 적극 협력한자의 소유지와 일제의 압박밑에서 조선이 해방될 때 자기 지방에서 도주한자들의 소유지.
제3조
몰수하여 무상으로 농민의 소유로 분여하는 토지는 다음과 같다.
ㄱ. 한 농호에서 5정보이상 가지고있는 조선인지주의 소유지.
ㄴ. 자기가 경작하지 않고 모두 소작주는 소유자의 토지.
ㄷ. 면적에 관계없이 계속적으로 소작주는 모든 토지.
ㄹ. 5정보이상을 가지고있는 성당, 승원 기타 종교단체의 소유지.
제4조
몰수되지 않는 토지는 다음과 같다.
ㄱ. 학교, 과학연구기관, 병원의 소유지.
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특별한 결정으로 규정하는,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공로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속하는 토지, 조선민족문화발전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속하는 토지.
제5조
제2조, 제3조에 의하여 몰수한 토지는 모두 무상으로 농민의 영원한 소유로 넘긴다.
제6조
ㄱ. 몰수한 토지는 고용농민, 토지없는 농민, 토지적은 농민에게 분여하기 위하여 인민위원회의 처리에 위임한다.
ㄴ. 자기 로력에 의하여 경작하는 농민의 소유지는 그대로 둔다.
ㄷ. 자기 로력으로 경작하려는 지주들은 본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에 의하여 농민들과 같은 권리로써 다만 다른 군에서 토지를 가질수 있다.
제7조
토지를 농민의 소유로 분여하는것은 도인민위원회가 토지소유권에 대한 증명서를 교부하며 그것을 토지대장에 등록함으로써 완결된다.
제8조
본 법령에 의하여 농민에게 준 토지는 일반 부채와 부담에서 면제한다.
제9조
본 법령에 의하여 토지를 몰수당한 지주에게서 차용한 고용농민과 농민의 모든 부채는 취소한다.
제10조
본 법령에 의하여 농민에게 분여된 토지는 매매하지 못하며 소작주지 못하며 저당하지 못한다.
제11조
본 법령 제3조 《ㄱ》항에 의하여 토지를 몰수당한 지주의 축력, 농기구, 주택의 모든 건축물, 대지 등은 몰수하여 인민위원회의 처리에 위임하되 인민위원회는 본 법령 제6조에 의하여 토지를 가지게 되는 고용농민, 토지없는 농민에게 분여한다. 몰수된 모든 건물은 학교, 병원 기타 사회기관의 리용으로 넘길수 있다.
제12조
일본국가, 일본인 및 모든 일본인단체의 과수원 기타 과목들은 몰수하여 도인민위원회에 맡긴다. 본 법령 제3조 《ㄱ》항에 의하여 토지를 몰수당한 조선인지주의 소유인 과수원 기타 과목들은 몰수하여 인민위원회에 맡긴다.
제13조
농민들이 가지고있는 적은 산림을 제외하고 모든 산림은 몰수하여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처리에 위임한다.
제14조
본 법령에 의하여 토지를 몰수당한 소유자에게 속한 모든 관개시설은 무상으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처리에 위임한다.
제15조
토지개혁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지도하에서 실시된다. 지방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할 책임은 도, 군, 면 인민위원회에 맡기며 농촌에서는 고용농민, 토지없는 소작인, 토지적은 소작인들의 총회에서 선거된 농촌위원회에 맡긴다.
제16조
본 법령은 공포한 때로부터 실행력을 가진다.
제17조
토지개혁실행은 1946년 3월말일전으로 끝낼것이다. 토지소유권증명서는 금년 6월 20일전으로 교부할것이다.(전문 보기)
김일성 산림조성사업을 전군중적운동으로 힘있게 벌리자 -문수봉에서 식수에 참가한 일군들과 한 담화 1947년 4월 6일-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산좋고 물맑은 금수강산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통치로 말미암아 오래동안 우리 나라는 자기의 아름다운 빛을 잃고있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나라의 오랜 력사와 찬란한 민족문화를 무참히 짓밟았을뿐아니라 우리의 풍부한 자연부원을 닥치는대로 략탈하여갔습니다. 특히 일제는 침략전쟁을 확대하면서 우리 나라의 산림자원을 강도적으로 략탈하여갔으며 우리의 조국산천을 혹심하게 파괴하였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이 우리 나라의 산림자원을 얼마나 혹심하게 략탈하고 못쓰게 만들었는가 하는것은 문수봉을 보아도 잘 알수 있습니다. 원래 이 산은 비단에 수놓은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문수봉이라 불리웠습니다. 그러나 일제놈들에 의하여 문수봉은 자기의 옛모습을 잃고 보기 흉한 벌거숭이 산으로 되여버렸습니다. 보는바와 같이 지금 문수봉에는 나무 한대 제대로 서있는것이 없으며 눈에 뜨이는것은 일제침략군놈들이 쓰던 병영과 마구 파놓은 방공호들뿐입니다.
일제침략자들은 문수봉뿐아니라 우리 나라의 산들을 거의다 벌거숭이로 만들었습니다. 일제놈들에 의하여 벌거숭이로 된 산을 보니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는 조림사업을 잘하여 일제식민지통치가 남겨놓은 이 후과를 하루빨리 가셔야 합니다.
산림은 나라의 귀중한 재부입니다. 나무는 공업을 비롯한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자재와 원료로 널리 쓰이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조림사업을 힘있게 벌려 산림자원을 잘 조성하는것은 인민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높이며 나라의 부강발전을 이룩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집니다.
산에 수림이 우거지게 하는것은 조국강토를 보호하고 나라의 풍치를 아름답게 하는데서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산에 나무를 많이 심어야 풍수해로부터 농토와 산천을 잘 보호할수 있으며 우리 나라를 풍치좋고 살기 좋은 인민의 락원으로 만들수 있습니다.
모든 산들을 나무가 무성하고 풍만한 자원을 가진 산으로 전변시키면 우리 인민들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고 그들의 애국심을 더욱 북돋아주게 될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민들은 우리 조국을 외래제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튼튼히 지키겠다는 높은 각오를 가지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을 벌리던 그 간고한 나날 언제나 조국산천을 그리워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느해 가을 일제《토벌대》놈들을 족치고 압록강기슭을 지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석양이 비낀 조국산천의 정경은 참으로 아름다왔습니다. 그곳 산들에는 곧게 자란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섰는데 그것이 하나의 아름다운 화폭을 이루고있었습니다.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이러한 조국의 자연풍경을 볼 때마다 반드시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조국광복을 이룩하고야말겠다는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지군 하였습니다.
우리 일군들은 조림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을 똑똑히 알고 이 사업을 잘하기 위하여 적극 힘써야 하겠습니다.
동무들은 오늘의 식수사업을 하나의 단순한 행사로만 생각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고있는 이 식수사업은 악독한 일제식민지통치의 후과를 가시고 민주수도를 록음이 우거지게 만들기 위한 보람찬 자연개조사업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군들이 오늘의 식수사업에 열성적으로 참가하여야 합니다.
문수봉은 아주 좋은 곳에 자리잡고있습니다. 문수봉에 나무가 우거지면 참으로 좋을것입니다. 우리는 일제놈들이 못쓰게 만든 문수봉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수도시민들의 문화휴식터로 만들어 모란봉에서와 같이 여기에서도 근로자들이 즐겁게 휴식할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문수봉을 잘 꾸리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나무를 많이 심고 잘 키워야 합니다. 나무를 어느쪽으로 보나 줄이 곧고 보기 좋게 심어야 하겠습니다. 나무모는 어린애와 같이 조심히 다루어 뿌리와 줄기가 상하지 않게 하여야 하며 정성들여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심은 나무들이 다 잘 살도록 물도 자주 주어야 합니다. 나무에 물을 주지 않고 비가 오기만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깨지 못한데로부터 《기우제》를 지내면서 비가 오게 해달라고 《하느님》에게 빌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 비를 보내달라고 빌것이 아니라 대중을 동원하여 나무에 물을 주는 운동을 벌려야 합니다. 이 사업에 특히 청년들과 학생들이 앞장서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나무를 꺾지 않게 하며 심어놓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사업을 잘 조직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문수봉에 심은 나무들이 하나도 죽지 않고 다 살아서 잘 자라도록 하여야 합니다.
평양시민들은 보통강개수공사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던것처럼 식수사업에도 적극 참가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산들에 나무를 많이 심고 가로수도 보기 좋게 심어 민주수도를 록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평양시에서뿐아니라 온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산림조성사업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해방된 조국의 산들에 나무를 심어 잘 가꾸는것은 인민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마련하여주며 후대들에게 풍만한 산림자원과 아름다운 조국산천을 넘겨주기 위한 만년대계의 사업입니다. 우리는 조국의 앞날과 후손들의 행복을 생각하고 한그루의 나무라도 더 많이 심어야 하며 온 나라의 산들을 수림이 무성하게 만들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산림조성사업은 결코 몇해동안에 쉽게 끝낼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 사업은 자연을 개조하는 어려운 사업이며 장기적으로 해야 할 방대한 사업입니다.
이 어렵고 방대한 사업을 잘하기 위하여서는 전체 인민을 동원하여야 합니다. 인민대중을 발동시키면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광범한 대중이 떨쳐나서 한 10년동안 계속 산에 나무를 심고 잘 가꾸면 벌거숭이산들은 다 없어질것이며 온 나라의 산들에 수림이 우거지게 할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닦아질것입니다.
우리 일군들은 올해부터 조림사업에 군중을 조직동원하기 위한 사업을 잘 짜고들어야 하겠습니다. 인민들에게 조림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을 잘 알려주어 그들이 높은 애국심을 가지고 이 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나무 한대를 베면 열대를 심으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식수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것입니다. 우리는 대중교양사업을 잘하여 모든 사람들이 나무를 베여쓸 생각만 하지 말고 나무를 심는데 앞장서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일군들은 당면한 봄철식수를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봄철식수사업을 군중적운동으로 힘있게 벌려 적기를 놓치지 말고 짧은 기간에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할것입니다.
산에 나무를 심는다고 하여 아무 나무나 심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나라에는 산이 많고 경지면적이 적은 조건에서 산림조성을 질적으로 하여 산을 잘 리용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민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할수 있는 경제적으로 유익한 나무들을 많이 심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지대적특성에 맞게 심어 나무가 잘 자라도록 하여야 합니다.
조림사업을 힘있게 벌리려면 나무모키우는 사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조림사업은 장기적으로 하여야 할 사업인것만큼 지금부터 각 지방들에서 나무모밭을 잘 조성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나무모밭에 좋은 나무종자를 많이 심어 요구되는 나무모를 원만히 보장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산에 나무를 많이 심는것과 함께 산림보호사업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인민들에게 산림을 아끼고 사랑하는 정신이 부족합니다. 산림이 인민의 소유로 된것만큼 그것을 애호관리하여야 하겠으나 일부 사람들은 나무를 망탕 찍어 산을 못쓰게 만들고있습니다. 산림을 애호하지 않고 나무를 망탕 베여쓰기만 한다면 지금 좀 있는 나무마저 얼마 못가서 다 없어지고말것이며 우리 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수 없을것입니다.
산림을 애호하는가 안하는가 하는것은 애국심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과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부강한 새 조국 건설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그루의 나무라도 아끼고 사랑하며 산림을 잘 보호하기 위하여 힘써야 할것입니다.
산에 나무를 심는것은 산림을 조성하는 사업의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무를 심어만 놓고 그것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조국산천을 록음이 우거지게 하려면 나무를 많이 심을뿐아니라 심어놓은 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애호관리하여야 합니다. 인민정권기관들에서는 산에서 나무를 무질서하게 베내는 현상들과 강하게 투쟁하며 산불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단속사업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병충해를 막기 위한 투쟁도 잘하여야 합니다. 우리 일군들은 대중속에서 교양사업을 강화하여 전체 인민이 주인다운 자각을 가지고 산림을 애호관리하는 사업에 적극 참가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전군중적운동으로 식수사업을 힘있게 벌리고 산림보호사업을 잘함으로써 모든 산들을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이게 하며 우리 나라를 더욱 아름다운 인민의 락원으로 만들어야 할것입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조선인민군창건에 즈음하여 -조선인민군열병식에서 한 연설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군관, 하사, 전사 여러 동무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진정한 인민의 정권인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창립 2주년을 경축하면서 조선력사에서 처음으로 인민자신의 정규적무장력인 조선인민군의 창건을 선포하게 됩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총칼앞에서 갖은 박해와 탄압을 당하던 조선인민은 해방후 자기 손에 정권을 틀어쥐고 행복한 새 생활을 창조하는 길에 들어섰으며 이제는 조국과 민족을 보위하는 당당한 자기의 정규군대를 가지게 되였습니다.
나는 해방된 조선인민의 커다란 민족적긍지와 기쁨을 가지고 인민군대의 창건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이제는 남북조선의 전체 인민이 조국의 자유와 영예를 위하여 싸울 자기의 현대적인 정규군대를 가지게 되였다는것을 전세계에 자랑할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인민군대를 창건하는것은 조국의 민주주의적완전자주독립을 더욱 촉진하기 위해서입니다.
해방후 2년 남짓한 기간에 우리 인민은 북조선에 민주주의적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정치, 경제, 문화적토대를 닦아놓았습니다.
우리는 인민의 정권을 수립하고 민주주의적개혁을 실시함으로써 광범한 인민대중의 절실한 민족적숙망을 실현하였으며 우리 사회의 새로운 광활한 발전의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또한 작년에 인민경제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훌륭하게 완수함으로써 자주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쌓는데서 커다란 첫 성과를 달성하였습니다. 화페교환을 통하여 우리 인민은 자기자신의 화페를 가지게 되였으며 나라의 자주적재정토대를 튼튼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북조선에서의 민주개혁과 민주건설의 성과를 법적으로 확인하며 장차 수립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적기초로 되는 조선림시헌법초안이 작성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이 모든 성과를 무력으로 보위할만 한 조선인민의 정규군대가 없었습니다.
어떠한 국가를 물론하고 자주독립국가는 반드시 자기의 군대를 가지고있는것입니다. 자기의 군대를 가지지 못한 나라가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될수 없는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조국이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강점되였던것도 그 당시에 조선인민이 일본제국주의침략군대를 격파할만 한 자기의 군대를 가지고있지 못하였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조국이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되기 위하여서는 나라와 민족을 보위하며 어떠한 원쑤들의 침범도 능히 물리칠수 있는 강력한 인민의 군대를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더우기 우리 민족을 분렬시키고 우리 조국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는 미제국주의자들과 그의 주구들의 흉악한 책동으로 말미암아 해방후 2년이 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의 통일과 자주독립이 지연되고있는 엄중한 형편에서 조선인민이 자기의 군대를 창건하는것은 매우 긴급하고 절실한 문제로 나서게 되였습니다.
우리 인민은 미제와 그 주구들의 민족분렬정책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수 없으며 또한 어느 누가 우리를 독립시켜주고 우리의 군대를 조직하여주기를 기다리고있을수 없습니다. 조선인민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힘으로 민주주의적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하며 자기의 손으로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또한 조선인민은 자기의 손으로 자기의 군대를 조직하여 통일되고 독립된 민주조국의 창건을 촉진하여야 할것입니다.
인민군대를 창건하는 과업이 북조선에서 실현된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민이 국가의 주인으로 된 북조선에서만 조국과 민족을 보위하는 인민군대의 창건이 가능하기때문입니다. 미군정이 실시되고있으며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정권》을 잡고 자기의 테로단을 양성하고있는 오늘의 남조선에서 조선인민의 진정한 민족적군대를 창건한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입니다.
북조선에서 민주주의적개혁을 실시하고 경제문화건설을 성과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전조선이 나아갈 길을 용감히 개척하고있는 우리 인민은 이번 조선인민군대의 창건을 통하여 북조선민주기지의 위력을 더욱 강화하게 될것이며 멀지 않은 장래에 창건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력의 튼튼한 기초를 닦아놓게 될것입니다. 북조선의 민주건설에서 무한한 용기와 희망을 얻고있는 남조선인민들은 오늘 창건되는 우리 인민군대를 자기의 군대로 알며 자기의 힘으로 알게 될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인민군대의 창건은 미군정과 반동적매국도당의 탄압밑에서 신음하고있는 남조선의 부모형제자매들을 조국의 민주주의적통일독립을 위한 투쟁에로 힘차게 고무할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인민군대를 창건하는것은 통일적민주주의인민공화국수립의 토대인 북조선의 민주기지와 민주개혁의 성과를 원쑤들의 침해로부터 튼튼히 보위하며 북조선인민들의 행복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다 아는바와 같이 미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의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우리 북조선의 민주주의적발전과 평화적건설을 방해하기 위하여 다만 비방과 허위선전만을 일삼고있는것이 아니라 살인, 방화, 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테로단을 대량적으로 북조선에 파견하여 우리의 귀중한 국가재산을 파괴하며 북조선인민들의 생활을 혼란시키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고있습니다. 물론 적들의 이러한 시도는 우리 인민의 단결된 힘과 높은 혁명적경각성에 의하여 걸음마다 철저히 폭로분쇄되고있습니다. 그러나 북조선의 민주기지가 공고화되고 우리 인민이 더욱 큰 승리를 달성하면 할수록 미제와 남조선반동파의 발악은 더욱 심하여지며 북조선의 민주개혁과 경제건설의 성과를 파괴하려는 원쑤들의 책동은 더욱 악랄하여지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민군대를 창건함으로써 북조선에 수립된 민주제도와 우리 인민의 행복한 생활을 굳건히 수호하며 어떠한 반동세력과 파괴분자도 해방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서 북조선인민들이 달성한 모든 고귀한 성과들을 털끝만큼도 해칠수 없도록 하여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이 강하고 민주세력이 절대로 우세할 때에만 진정한 평화가 유지되고 조국과 인민의 자유가 보장될수 있으며 적들이 함부로 덤벼들수 없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북조선에서의 민주력량의 강화와 인민군대의 창건은 반동분자들이 악선전하고있는바와 같이 동족상쟁의 내란을 일으킬 위험성을 조성하는것이 아니라 도리여 미제와 남조선반동파들이 그러한 내란을 도발하지 못하도록 미리 방지하는것으로 될것입니다.(전문 보기)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인민군대를 강화하며 군사를 중시하는 사회적기풍을 세울데 대하여》(1992.2.4)
김일성 민주주의적이며 인민적인 헌법을 작성하자 -조선림시헌법제정위원회 제1차회의에 참가한 일군들과 한 담화 1947년 11월 20일-
북조선인민회의 제3차회의에서는 림시헌법을 제정할데 대하여 토의하고 조선림시헌법제정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오늘 진행한 림시헌법제정위원회 제1차회의에서는 헌법제정위원회 상임서기장을 선거하고 헌법초안작성사업을 맡아 할 일군들도 선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헌법초안을 작성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헌법을 제정하는것은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크나큰 경사이며 완전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우리 인민들의 투쟁과 사회정치생활에서 일대 사변으로 됩니다. 우리는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우리 당의 령도밑에 해방후 새 민주조선건설에서 달성한 제반 성과들을 법적으로 고착시키고 우리의 민주주의적국가사회제도를 공고발전시키며 미제와 남조선반동들의 민족분렬책동을 분쇄하고 통일적민주주의완전자주독립국가건설을 가일층 촉진시키게 될것입니다.
다 아는바와 같이 얼마전에 미제국주의자들은 남조선반동파들을 사촉하여 남조선《립법의원》에서 소위《림시헌법》이라는것을 조작하였습니다. 남조선반동들의 이 《헌법》조작은 전체 조선인민의 의사와 리익을 무시하고 한줌도 못되는 남조선의 친일친미파, 민족반역자들과 반동분자들의 리익을 옹호하는 반민주주의적이고 반인민적인 책동입니다. 미제와 그 주구 남조선매국역도들은 이 《헌법》에 기초하여 남조선에 단독적인 반동정부를 세움으로써 전체 조선인민이 그토록 갈망하는 통일적민주주의정부수립을 가로막으려 하고있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또한 남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야망으로부터 모스크바3상회의결정실행을 위한 쏘미공동위원회를 파탄시키고 조선문제를 비법적으로 유엔에 끌고가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날조해내는 음모를 꾸미였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소위 남조선 《림시헌법》과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조작은 우리 나라에서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의 위험이 얼마나 엄중한 단계에 이르고있는가 하는것을 말해줍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하루속히 민주주의적인 조선림시헌법을 제정하여 남북조선 전체 인민들에게 통일된 조선인민이 가져야 할 헌법은 어떤것으로 되여야 하며 우리가 앞으로 세우려는 통일적민주주의정부는 어떤 정부로 되여야 하는가를 똑똑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헌법은 나라의 기본법으로서 국가사회제도, 공민의 권리와 의무, 국가기관들의 조직과 활동원칙 같은 국가사회생활의 근본문제들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게 됩니다. 그런것만큼 헌법초안을 내용있게 잘 작성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제정하려는 헌법은 철저히 전체 조선인민의 요구와 리익에 부합되는 민주주의적이며 인민적인 헌법으로 되여야 합니다. 우리의 헌법에는 착취계급의 리익을 옹호하는 자본주의국가의 헌법요소가 추호도 반영되여서는 안됩니다.
해방후 북조선에서는 인민정권이 수립되고 제반 민주개혁이 성과적으로 수행됨으로써 우리 인민이 념원하던 참다운 민주주의제도가 확립되였으며 과거 착취받고 압박받던 근로인민대중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으로 되였습니다. 나는 해방후 민주건설에서 달성된 성과들을 법적으로 고착시키고 공고발전시키는 방향에서 헌법을 작성한다면 우리의 헌법이 의심할바없이 광범한 인민대중의 리익을 옹호하는 가장 민주주의적이며 인민적인 헌법으로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에 우리 국가사회제도의 민주주의적이며 인민적인 성격을 명확히 규제하여야 합니다.
헌법에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되여야 하며 모든 주권은 인민대중에게 속하여야 한다는것을 규제하여야 합니다.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는것은 우리 당의 정치로선입니다. 우리 당은 지난 기간 민주주의 제 정당, 사회단체들과 힘을 합쳐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하여왔습니다. 앞으로 창건될 우리 나라를 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규정하는것은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이며 념원입니다.
헌법에 인민들은 각급 주권기관을 통하여 자기의 주권을 행사하며 주권기관은 인민들이 직접 선거한 대의원들로 구성된다는것을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대의원들이 자기 사업에 대하여 선거자들앞에서 책임지며 인민의 신임을 상실하였을 때에는 선거자들에 의하여 소환되여야 한다는것도 규제하여야 합니다.
헌법에 나라의 경제제도를 명백히 규제하여야 합니다. 북조선에서 민주개혁이 성과적으로 수행된 결과 과거 일제와 민족반역자들의 소유였던 중요산업이 다 국가의 소유, 전체 인민의 소유로 되고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의 소유로 되였는데 헌법에 이런 경제제도를 그대로 규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가 협동단체소유와 개인소유도 법적으로 보호한다는것을 밝혀야 합니다. 헌법에 국가가 나라의 모든 자원을 인민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합리적으로 리용할수 있도록 인민경제를 계획적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것도 반영하여야 합니다.
헌법에 공민의 권리와 의무를 옳바로 규제하여야 합니다. 헌법의 민주주의적성격은 공민의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규제하는가 하는데서 집중적으로 표현됩니다.
우리 인민은 주권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성별과 사회적지위, 성분과 신앙, 재산과 지식의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한 민주주의적권리와 자유를 향유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극소수의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모든 공민은 누구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며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고있습니다. 또한 로동과 휴식에 대한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과학예술활동의 자유를 비롯한 제반 민주주의적권리와 자유를 보장받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이 보장받고있는 이러한 제반 민주주의적권리와 자유를 그대로 헌법에 반영하여 법적으로 고착시켜야 합니다.(전문 보기)
《김일성전집》증보판 제16권 출판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년대순에 따라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집대성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총서인
《김일성전집》증보판 제16권을 출판하였다.
전집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39(1950)년 1월부터 6월까지의 기간에 발표하신 력사적인 연설, 담화, 결론을 비롯한 94건의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로작들이 발표되던 시기는 공화국북반부에서 민주개혁의 성과를 더욱 공고발전시키고 미제와 리승만반역도당의 무분별한 전쟁도발책동을 짓부셔버려야 할 투쟁과업이 나서고있던 력사적시기였다.
조성된 정치정세와 우리 혁명발전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발표하시여 통일적민주주의독립국가를 건설하는데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들에 심오하고 독창적인 해답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로동당과 그가 지도적력량으로 되여있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와 그 두리에 뭉친 전체 조선인민은 자기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향하여,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힘차게 나아갈것이며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고야말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작《통일적민주주의독립국가건설을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에서 민주주의독립국가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 인민이 이룩한 빛나는 성과들에 대하여 분석총화하시였다.
당과 정부의 두리에 굳게 뭉친 전체 조선인민은 자기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향하여,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힘차게 나아갈것이며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할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군인들은 조국을 보위하는 투쟁에서 영웅적위훈을 떨쳐야 한다》, 《전투준비를 더욱 강화하자》, 《현정세와 경비대의 과업》등의 로작들에는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모든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며 부대의 전투력을 더욱 강화할데 대한 사상이 명시되여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개년인민경제계획수행을 위한 증산경쟁운동을 전개하며 농기구와 농약의 생산공급사업을 개선할데 대하여》, 《인민경제계획수행에서 나타난 결함들을 시정할데 대하여》, 《로동자들에게 좋은 집을 많이 지어주어야 한다》를 비롯한 여러 로작에서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제시하시였다.
우수한 민족간부를 많이 키워내고 근로자들의 건강을 보호증진시키기 위한 치료예방사업에 전심전력하며 우리의 우수한 민족예술에 대한 대외선전사업을 잘할데 대한 사상이 《대학교육의 수준을 높이자》, 《곡산광산병원 일군들과 한 담화》, 《우리의 우수한 민족예술을 대외에 광범히 소개선전하자》를 비롯한 로작들에 밝혀져있다.
전집에는 이밖에도 혁명가유자녀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훌륭한 일군이 될데 대한 문제, 문화적인 농촌을 건설할데 대한 문제, 강하천정리와 간석지개간사업을 잘하여 농업을 발전시키고 국토의 면모를 일신시킬데 대한 문제, 조선어문법교과서편찬사업을 잘할데 대한 문제 등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들에 완벽한 해답을 주는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김일성전집》증보판 제16권에 수록된 로작들은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 결정과 공화국정부의 시정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산악같이 떨쳐나선 우리 인민의 혁명적대진군을 고무추동하는 위력한 사상정신적무기로 될것이다.(전문 보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멸의 군건설업적에 대하여 하신 교시 (발취)
주체110(2021)년 12월 24일 《우리 민족끼리》
《김정일동지는 문무를 겸비한 걸출한 지도자입니다. 김정일동지는 다재다능한 재사이며 무적의 장군입니다.》
《김정일동지는 백두산의 장군입니다. 김정일동지는 백두산의 기질과 기풍으로 인민군대를 일당백의 무력으로, 당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켰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그의 군사적기질과 조직적수완은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는 주체적인 군건설방침에 따라 인민군대안에서 당정치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고 당의 령도밑에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주체적인 령군체계를 세워 인민군대를 참다운 당의 군대, 혁명의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현대전의 요구와 우리 나라의 구체적조건에 맞게 주체전법을 발전시키고 강력한 현대적국방공업을 건설하여 인민군대의 전투력과 무장장비를 끊임없이 강화하도록 하였습니다.》
《그의 령도밑에 우리 인민군대는 당과 혁명을 위하여 한목숨바쳐 싸울수 있는 충성의 전투대오로, 현대적인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다 갖춘 무적의 강군으로 자라나게 되였으며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하는 전인민적방위체계가 튼튼히 서게 되였습니다.》
《인민군대가 오늘과 같이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되여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보위자로서의 영예로운 사명을 다하고있는것은 전적으로 김정일동지의 옳바른 령도의 결과입니다.》(전문 보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혁명생애에 대하여 하신 교시 (발취)
주체110(2021)년 12월 24일 《우리 민족끼리》
《김정숙동무는 언제나 자기자신보다도 조국과 인민, 동지들을 먼저 생각하였으며 조국의 자주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쳤습니다.》
《김정숙동무는 조국의 광복과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열렬한 혁명가였습니다.》
《그는 자기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을 지니고 조국의 광복과 건국위업에 무한히 헌신하였으며 뜨거운 인간애와 강의한 혁명정신, 고매한 인민적풍모를 지닌 녀성혁명가의 전형입니다.》
《김정숙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지들을 위해 한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남달리 조국을 사랑하였고 동지들을 사랑하였으며 혁명의 리익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왔습니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동지를 위한것이였지 자기를 위한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김정숙은 인간을 불처럼 사랑하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남을 위한 희생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동지들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해내는것이 그의 성품입니다.》
《김정숙의 관념속에는 자기라는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굶어도 좋고 얼어도 좋고 아파도 좋다, 그러나 동지들이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다, 내가 죽는 대가로 동지들을 살릴수 있다면 나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웃으면서 죽음의 길을 택할것이다 하는것이 바로 김정숙의 인생관이였습니다.》
《그는 늘 받는 재미보다 주는 재미가 더 좋다고 하였습니다. 남들의 정을 받는것도 좋지만 남들에게 자기 정을 줄 때가 훨씬 더 좋다는것이 바로 김정숙의 인생철학입니다.》
《그가 일생동안 해놓은 그 모든것은 다 동지들을 위하고 인민을 위하고 혁명을 위한것이였지 자신을 위한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평생 동지들과 인민들을 위해 모든것을 송두리채 바치고 세상을 떠나간 김정숙이였지만 자녀들을 위해서는 한푼의 돈도 재산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성품이 온순하고 인정이 깊으면서도 이악하고 강의한 의지를 가진 녀성혁명가였습니다.》
《김정숙동무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김정일동무를 미래의 령도자로 키워 당과 조국앞에 내세워준것입니다.》
《동무들은 내가 김정일동무를 후계자로 키워냈다고 하지만 사실 그 기초는 김정숙이 쌓아놓은것입니다. 그가 혁명앞에 남긴 가장 큰 공로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김정숙동무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조국과 인민앞에 남긴 고귀한 업적은 길이길이 빛날것입니다.》(전문 보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위대성에 대하여 하신 교시 (발취)
주체110(2021)년 12월 16일 《우리 민족끼리》
《김정일동지는 문무충효를 겸비한 참다운 인민의 령도자입니다. 그는 탁월한 사상리론가, 정치가이고 군사전략가이며 조국과 인민에게 무한히 충실하고 효성이 지극한 충신, 효자의 귀감입니다.》
《나는 우리 혁명의 요구와 새로운 자주시대 인민들의 지향을 반영하여 주체사상을 내놓고 그것을 지침으로 하여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여왔으나 주체사상의 원리를 종합체계화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김정일동지에 의하여 빛나게 실현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의 령도밑에 우리 혁명은 새로운 앙양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김정일동지의 령도가 시작된 때로부터 당사업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의 여러 부문사업에서 새로운 전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커다란 혁신과 앙양이 이룩되였습니다.》
《당과 인민대중이 하나의 사회정치적생명체로 결합된 강력한 주체를 이루게 하고 주체의 위력으로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위대한 력사적변혁을 이룩할수 있게 한것은 김정일동지의 특출한 공적이라고 말해야 할것입니다.》
《김정일동지의 령도는 혁명무력건설에서도 새로운 전변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인민군대가 오늘과 같이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되여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보위자로서의 영예로운 사명을 다하고있는것은 전적으로 김정일동지의 옳바른 령도의 결과입니다.》
《김정일동지는 인민의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훌륭한 풍모를 다 갖추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지 기어이 해내고야맙니다.》
《김정일동지는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합니다.》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김정일동지의 정치에서 기본특징을 이룬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김정일동지는 그가 지니고있는 령도력과 풍모, 그가 발휘한 충실성과 헌신성, 그가 이룩한 업적으로 하여 인민의 지도자로서 인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있으며 높은 권위를 지니고있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하여 -연길현 명월구에서 진행된 당 및 공청 간부회의에서 한 연설 1931년 12월 16일-
동무들!
오늘 조성된 정세는 우리들로 하여금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시급히 조직전개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대륙침략의 길에 들어서면서 《후방의 안전》을 위하여 조선인민에 대한 반동공세를 전면적으로 강화하고있습니다. 놈들은 지금 조선인민의 혁명적진출을 무력으로 탄압하고있으며 이르는곳 마다에서 무고한 우리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검거, 투옥, 학살하고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일제와 조선인민간의 민족적 및 계급적모순은 극도로 첨예화되고있습니다.
일제의 야만적탄압에 항거하는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대중의 반일투쟁은 더욱 강화되고있으며 점차 폭력적투쟁으로 발전하고있습니다.
원산부두로동자들의 총파업, 신흥탄광, 평양고무공장 로동자들의 파업투쟁, 단천농민들의 폭동과 룡천 불이농장 농민들의 투쟁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우리 나라 로동자, 농민들은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와 맞서 폭력투쟁을 벌리기 시작하였으며 광주학생사건을 계기로 청년학생들의 진출도 급격히 강화되고있습니다.
국내인민들의 폭력적진출에 발맞추어 동만에서도 조선농민들의 투쟁이 급속히 앙양되고있습니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지도밑에 일어난 동만의 10여만 농민들의 대규모적이며 조직적인 추수투쟁은 폭력적투쟁으로 진전하였으며 일제와 반동지주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고 빛나는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조선의 로동계급을 비롯한 농민, 청년학생 등 애국적인민들은 혁명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서는 망국노의 운명을 면할수 없으며 초보적인 생활상 요구도 관철할수 없다는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앙양되는 대중의 폭력적투쟁을 조직화하여 무장투쟁에로 발전시키는것은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절박한 요구로 제기됩니다.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는것은 일제의 식민지적예속으로부터 조국을 광복하고 민족을 해방하기 위한 유일하게 정당한 길입니다.
강도 일본제국주의는 무력으로 우리 나라를 강점하였으며 반혁명무력에 의거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유지하고있습니다. 일제는 조선인민의 모든 애국적투쟁을 폭력으로 탄압하기 위하여 2개 사단이상의 병력을 상시적으로 우리 나라에 주둔시키고있으며 2, 000여개소의 경찰, 헌병 기관과 수십개소의 감옥을 설치하였습니다. 놈들은 각종 파쑈적인 악법을 조작하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박탈하고있으며 조선인민의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고있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조선인민을 자기들의 영원한 식민지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갖은 방법과 수단을 다하고있으며 놈들은 자기들의 침략무력이 격파되기 전에는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을것입니다.
일제놈들이 우리 나라에서 순순히 물러가리라고 기대하는것은 어리석은 환상입니다. 지난 20여년간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의 력사적경험이 이것을 확증하여주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일제의 조선강점을 전후한 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종 형태의 반일투쟁을 끊임없이 전개하여왔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일제는 무력을 동원하여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습니다. 우국지사들이 망국을 통탄하고 나라의 독립을 열렬히 호소하였으나 아무런 효과도 나타내지 못하였으며 고루한 민족주의자들은 인민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어리석게도 《청원》의 방법으로 독립을 달성해보려고 시도하였으나 일제는 이에 류혈적인 탄압으로 대답하였습니다.
그뿐아니라 의병투쟁, 독립군운동과 같은 무장활동도 있었으나 이 투쟁도 역시 맑스-레닌주의적전략전술에 의하여 지도되지 못하고 분산적으로 진행된 결과 일제의 반혁명무력에 의하여 각개격파되고말았습니다.
경험은 일제의 침략무력을 소탕하지 않고서는 조국광복의 민족적숙원을 도저히 실현할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습니다.
강도 일본제국주의 침략무력을 격파하고 조국을 광복하기 위하여서는 맑스-레닌주의적전략전술에 의거한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여야 합니다.
조국의 해방을 누구에게 의탁하거나 구걸할수 없다는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우리는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여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해방을 반드시 조선인민자신의 힘으로 달성하여야 합니다.
동무들!
오늘 일제놈들의 만주강점으로 하여 조성된 긴박한 혁명정세는 우리들로 하여금 손에 무장을 잡을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무장투쟁을 전개하여 대중적인 반일전쟁을 일으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국민당통치가 와해되고 일제통치기구가 아직 서지 못하여 전만주는 무정부상태에 처해있으며, 둘째로 중국인민들이 대중적으로 일어나 반일투쟁을 전개하여 일대 혁명의 폭풍시대를 열어놓고있기때문입니다. 지금 광범한 중국인민들은 일제의 만주강점을 반대하여 도처에서 반일구국운동을 전개하고있습니다. 반일구국운동을 전개하고있는 무장부대들가운데 중국공산당의 령도를 받는 진보적인 무장부대는 아직 적지만 만약 우리가 모든 반일무장부대들과 합세하여 투쟁한다면 그 투쟁을 더 힘찬 투쟁에로 이끌어나갈수 있습니다.
모두다 손에 무장을 들고 조국광복을 위한 성전에 떨쳐나설 때는 왔습니다. 빈부와 귀천, 당파와 종교를 가리지 말고 일제를 반대하는 모든 애국력량을 무장투쟁에 총동원합시다. 총있는 사람은 총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며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여 전민족이 반일무장투쟁에 총궐기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공동의 적 일제를 반대하는 중국인민의 민족해방투쟁을 지지하며 그들과 통일전선을 형성함으로써 비단 조선인민뿐아니라 만주에 있는 광범한 중국인민의 대중적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광범한 조중인민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밑에 반일무장투쟁을 승리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무장대오를 조직하고 적의 무기를 빼앗아 자신을 무장하면서 자체의 무장력량을 확대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조선의 국경지대와 광활한 만주의 유리한 자연지리적조건을 잘 리용한다면 적은 력량을 가지고도 적의 무력을 부단히 소멸약화시켜 최후승리를 달성할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유격전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여야 합니다.
유격전은 자체의 력량을 보존하면서도 적에게 커다란 정치군사적타격을 줄수 있고 적은 력량을 가지고도 능히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세한 적을 소멸할수 있는 무장투쟁방법입니다. 우리는 인민대중의 적극적인 지지성원과 유리한 자연지리적조건에 의거하면서 유격전의 방법으로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여야만 강도 일본제국주의 침략무력을 능히 격파할수 있을것입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소년들은 혁명조직에 굳게 뭉쳐 나라찾는 싸움에 떨쳐나서자 -새날소년동맹결성회의에서 한 연설 1926년 12월 15일-
오늘 이자리에는 무송시내와 주변부락들에서 온 조선인소년대표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된것은 소년들의 혁명조직을 내올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모인 동무들은 모두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쫓겨와서 나라없는 민족의 설음과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있는 동무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다 왜놈들을 증오하며 조국이 광복될 그날을 간절히 바라고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자면 망국노의 처지를 한탄만 하지 말고 일제를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하며 우리 소년들도 나라찾는 싸움에 떨쳐나서야 합니다.
지금 조국땅에서는 무고한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간악한 일제침략자들에게 억울하게 매맞고 잡혀가고 학살당하고있으며 말할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있습니다. 일제강점자들에 의하여 우리 조국은 말그대로 온 강토가 하나의 인간생지옥으로 전변되였습니다.
나는 조국에 나가 평양가까이에 있는 칠골 창덕학교에서 공부할 때 평양시내와 농촌의 여러곳을 다니면서 일제가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학대하며 착취하고있는가 하는것을 수없이 보았으며 우리의 부모형제들의 기막힌 생활형편도 목격하였습니다. 평양에 있는 보통강기슭의 빈민촌주민들은 숨도 제대로 쉴수 없는 게딱지같은 집에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홍수걱정과 먹고 살 걱정으로 한숨속에서 세월을 보내고있었으며 농민들은 일년 내내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등뼈가 휘도록 농사를 짓지만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목숨을 이어가고있었습니다.
일제와 그 주구들의 착취와 억압에 못이겨 우리 인민들은 조상의 뼈가 묻혀있는 고국산천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나고있으며 괴나리보짐을 걸머지고 어린 자식들과 늙은 부모들을 거느리고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오는 동포들의 행렬은 어느 하루도 그치는 날이 없습니다.
이국땅에 건너온 우리 동포들의 처지도 조국인민들의 생활처지와 별로 다른것이 없습니다. 동무들도 체험하고있는바와 같이 우리 부모들은 여기 이역땅에 와서 소작살이와 품팔이를 하고 처서판과 광산, 공사장에서 피땀을 흘리며 일을 하여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고있습니다.
우리의 많은 소년들이 공부할 나이가 되여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있으며 공부는커녕 빚값에 팔려 머슴살이를 하고있습니다.
무엇때문에 우리 동포들이 아름다운 조국과 정든 고향산천을 떠나 낯설은 이국땅에 와서 이처럼 원한과 설음을 안고 피눈물을 뿌리며 살아야 합니까. 우리 민족이 불행과 고통을 겪고있는것은 《팔자》탓이 아니라 간악한 일제침략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겼기때문입니다.
민족의 이 가슴아픈 참상을 끝장낼수 있는 길은 오직 일제침략자들을 조국강토에서 몰아내고 빼앗긴 나라를 찾는데 있습니다.
일제를 몰아내고 조선의 독립을 이룩하자면 조선사람들모두가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단결하여 투쟁하여야 합니다. 단결하여 투쟁하는 길만이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고 우리 민족이 망국노의 처지에서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어떤 투쟁에서나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지 않고서는 승리할수 없습니다. 동무들도 알고있는바와 같이 안중근렬사는 반일감정은 높았으나 민중의 힘을 불러일으킬 생각을 하지 못하고 몇사람의 힘만으로 나라를 찾아보려고 하였기때문에 이등박문 한놈을 죽이는데 그치고말았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늘 적은 힘이라도 그것을 합쳐야 큰 산도 허물고 바다도 메울수 있다고 하시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하려면 모두가 합심하고 단결하여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나라를 찾기 위하여서는 2천만 조선동포가 하나로 굳게 단결하여야 하며 어른들뿐아니라 우리 소년들도 한데 뭉쳐야 합니다. 우리 소년 한사람한사람의 힘은 비록 약하고 보잘것 없지만 모두가 한데 뭉치면 큰 힘을 낼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한데 묶어세우려면 반드시 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조직이 있어야 사람들을 묶어세우고 그들을 투쟁에로 이끌어나갈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년들을 하나로 묶어세우고 그들의 투쟁을 바로 이끌어나갈 소년조직을 내와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뭇게 되는 소년조직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조선소년들을 한데 묶어세워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나아가서 가난한 사람들이 다같이 잘살수 있는 새 사회를 세우기 위한 소년들의 투쟁조직으로 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이 조직의 이름을 조국광복의 광명한 새날을 위하여 싸우는 새 세대들의 혁명조직이라는 뜻에서 새날소년동맹이라고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오늘 결성하게 되는 새날소년동맹의 임무는 소년들을 선진사상으로 무장시키고 광범한 군중을 계몽하고 각성시켜 그들이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도록 하는것입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군정학습을 조직진행하여 부대의 전투력을 더욱 강화하자 -몽강현 마당거우밀영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한 연설 1937년 11월 30일-
동무들!
우리는 조성된 정세의 요구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을 위한 군정학습을 조직진행하려고 합니다.
혁명군대의 전투력은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이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될 때 강화되게 되며 혁명군대의 정치사상적 및 군사기술적준비는 학습을 통하여 더욱 성과적으로 갖추어지게 됩니다.
학습은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이 혁명을 위하여,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할수 있는 사상정신적준비를 튼튼히 갖출수 있게 하며 적과의 투쟁에서 무비의 영웅주의와 희생성을 발휘할수 있게 하는 중요한 방도의 하나입니다. 학습은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을 자기의 본분을 다할수 있도록 준비시키며 혁명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학습은 혁명군대내에서 한시도 소홀히 할수 없는 문제이며 혁명군대가 언제나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중요한 사업입니다.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한 첫 시기부터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강대한 적과 싸우는 간고한 투쟁속에서도 항상 학습에 일차적인 의의를 부여하고 학습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내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의 정치사상적 및 군사기술적수준은 현저히 높아졌으며 부대의 전투력도 비상히 강화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만족할수 없습니다.
오늘 조성된 혁명정세는 우리들로 하여금 학습을 실속있게 하여 우리의 혁명대오를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더욱 강화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전중국령토와 아세아대륙을 강점할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제놈들의 침략정책수행에 커다란 장애로 되고있는 우리 인민혁명군을 《소멸》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감행하고있습니다.
한편 일제는 《후방의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우리 나라 북부국경일대와 장백일대에서 대규모적인 검거선풍을 일으키고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을 파괴하고있으며 수많은 혁명가들과 무고한 인민들을 검거투옥, 학살하고있습니다.
오늘의 혁명정세는 국제공산당내의 일부 좌경모험주의자들이 주관주의에 사로잡혀 만주일대에서 활동하고있는 항일련합군부대들에 열하방면으로 원정할것을 내리먹임으로써 더욱 긴장하게 되였습니다. 항일련합군부대들이 열하지방으로 진출하는것은 적아간의 력량관계로 보나 남만일대의 자연지리적조건으로 보나 매우 무모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항일련합군부대들이 남만의 평야지대에 진출함으로써 적들로부터 심대한 손실을 당하고 항일무장투쟁발전에 엄중한 후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를 기화로 하여 일제침략자들은 항일련합군이 《소멸》되였다고 미친듯이 떠벌이고있으며 이로 인하여 혁명군중들과 대원들속에서는 승리의 신심을 잃고 동요하는 현상이 발로되고있습니다.
조성된 혁명정세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들과 대원들로 하여금 혁명승리에 대한 필승의 신념을 가지며 그 어떤 난관과 시련이 앞을 가로막아도 그것을 용감히 뚫고나가는 백절불굴의 투지를 소유하며 조선혁명을 자신이 책임지고 수행하는 자주적립장을 튼튼히 견지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우리는 혁명정세의 이러한 절박한 요구에 따라 군정학습을 조직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군정학습을 조직진행하는것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오내에 신입대원들이 많아진 사정과 관련하여서도 절박한 문제로 제기됩니다.
우리는 지난해에 백두산근거지를 창설한 후 국내와 백두산서남부일대에서 군사정치활동을 과감히 전개하는 과정에 수많은 애국청년들을 인민혁명군에 입대시켰습니다. 신입대원들은 우리의 혁명로선과 방침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할뿐아니라 초보적인 군사리론과 유격전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있습니다. 우리는 군정학습을 조직진행하여 신입대원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시켜 구대원의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그들이 혁명가로서의 본분을 다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군정학습은 조성된 정세의 요구와 우리 인민혁명군의 내부형편에 비추어볼 때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됩니다.
이번 군정학습은 정치학습을 위주로 하면서 거기에 군사훈련을 배합하여 진행하려고 합니다.
정치학습에서는 모든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을 항일구국의 길에서 확고한 투쟁목표를 가지고 신심에 넘쳐 굴함없이 싸워나가는 정신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그들이 조선혁명의 주인으로서의 높은 자각을 가지도록 하는데 깊은 주의를 돌려야 하겠습니다. 혁명승리의 신심이 있고 혁명에 대한 주인다운 자각이 높아야 혁명에 끝까지 충실할수 있습니다.
정치학습에서는 모든 대원들로 하여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혁명정세를 조선혁명의 리익의 견지에서 분석판단할줄 알며 사령부의 명령과 지시를 제때에 철저히 집행하는것이 조선혁명의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것이라는것을 명확히 알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모든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을 백절불굴의 투쟁정신과 자주정신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려면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에 대한 학습부터 실속있게 조직진행하는것이 필요합니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는 조선혁명의 성격과 임무로부터 우리 혁명의 전략전술들과 혁명에서 확고히 견지하여야 할 자주적립장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여있습니다.
또한 정치학습을 통하여 대원들에게 계급적원쑤를 증오하며 그를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는 혁명정신을 넣어주어야 하겠습니다. 혁명정신은 계급적원쑤를 증오하는데로부터 생기게 됩니다. 계급적원쑤를 증오하는 정신이 높으면 높을수록 혁명에 더 충실할수 있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을 계속 전진시키자 -남패자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한 연설 1938년 11월 25일-
동무들!
오늘 우리는 혁명의 앞길에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조선혁명을 계속 전진시켜나가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게 됩니다.
동무들도 아는바와 같이 지금 우리앞에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정세가 조성되여있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적극적인 정치군사활동과 조선인민의 대중적인 반일투쟁에 의하여 도처에서 타격을 받고 혼란상태에 빠진 일제침략자들은 저들의 참패를 만회하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를 겹겹이 포위하고 대규모적인 《토벌》공세를 기도하는 동시에 혁명조직과 애국적인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책동을 감행하고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에 전례없는 장애가 조성되였으며 도처에서 혁명조직들이 파괴되고 수많은 혁명군중들이 검거투옥, 학살되고있습니다.
일제의 발악적책동으로 인하여 오늘 우리 조선혁명은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되였습니다.
최근에 혁명의 앞길에 난국이 조성되게 된것은 무엇보다도 국제당에 있는 일부 사람들의 모험주의적인 책동의 후과와 주요하게 관련되여있습니다. 좌경모험주의에 물젖은 일부 사람들은 실정도 모르면서 정세를 그릇되게 판단하고 국제당의 이름으로 중국 동북지방에 있는 항일무장부대들에 무모한 지시를 주었습니다. 그들의 지시에 의하면 만주의 무장부대들이 《만주국》의 수도 장춘을 반달형으로 포위공격하고 열하방면으로 나가 북상하는 팔로군부대와 합세하여 중국관내로 쳐들어가는 일제침략군을 타격하게 되여있었습니다.
이것은 조성된 군사정치정세로 보나 유격전쟁의 원칙으로 보나 매우 무모한 계획이였습니다. 당시 일제침략자들은 중국관내에 대한 침공을 확대하기 위하여 만주에서 관동군을 비롯한 제놈들의 침략무력을 급격히 증강하고있었습니다.
특히 중국관내침공의 관문이라고 볼수 있는 열하지방과 봉천평야일대에는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춘 일제의 대병력이 집결되여있었습니다. 적아간의 력량관계로 보아 열하원정은 전혀 무모한 작전이였습니다.
유격전의 기본요구는 자체의 력량을 최대한으로 보존하면서 적을 각방으로 소멸약화시키는것입니다. 유격전의 이 요구를 관철하자면 정규군이 마음대로 활동하기 어려운 지대인 산악과 밀림을 리용하여 적을 무력하게 만들고 림기응변의 령활한 전술로써 적을 부단히 소멸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항일련합군부대들이 진출하게 되여있는 장춘지구와 봉천평야는 무변광야입니다. 그러니 산악에 의거하여 불의의 진공전, 매복전을 해오던 항일련합군부대들이 이런 평야지대에 나가서 《정예》한 일제침략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는것은 유격전술의 기본요구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행동입니다.
원정과정에 항일련합군의 일부 부대들이 입은 손실은 열하원정계획이 유격전의 기본요구에 배치되는 군사모험주의의 산물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봉천평야에 진출한 항일련합군의 일부 부대들은 위력한 포화력과 기동수단을 가진 관동군의 추격을 받아 별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큰 손실을 보았으며 얼마 남지 않은 병력을 수습해가지고 산악지대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열하원정계획이 무모한 작전이였다는것은 또한 열하원정이 군중의 적극적인 지지성원을 받을수 없는 지역을 대상으로 하였다는것을 놓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혁명군중의 적극적인 지지성원은 우리가 일제침략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수 있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동만과 남만의 광대한 지역에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축성하여놓았기때문에 광범한 반일군중의 물심량면의 지지성원속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줄기차게 발전시키고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줄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항일련합군의 일부 부대들이 열하원정계획에 의하여 군중적지반을 닦지 못한 생소한 지역에 진출하다보니 조직군중의 지지성원을 받지 못하고 고립무원한 상태에서 활동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열하원정의 무모성은 명백하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열하원정과 같은 무모한 작전을 처음부터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류하, 통화 일대에서 여름한철 야산에 의거하여 평야지대에 집결된 적들을 유인기습하는 기동작전들을 적극 전개함으로써 놈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이 일대에서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배후타격작전을 강화하였습니다. 이것은 열하원정에 참가하여 난관을 겪고있던 항일련합군부대들을 위기에서 구원하는 투쟁으로도 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겨울에는 장백일대에서 새로 받은 대원들을 비롯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을 정치군사적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시키기 위하여 집중적인 군정학습을 조직진행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적들에게 커다란 군사정치적타격을 주면서 자체의 력량을 계속 보존하였을뿐아니라 더욱 확대강화하였습니다.
그러나 놈들이 열하원정의 길에 오른 부대들에 대한 《공세》를 취하고 혁명조직들과 혁명군중들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을 강화함으로써 우리 혁명의 앞길에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게 되였습니다.
다 아는바와 같이 남호두회의가 있은 이후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압록강연안에 진출하여 백두산근거지를 창설하고 군사정치활동을 강화함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은 새로운 앙양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보천보전투를 비롯하여 국내와 국경일대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진행한 군사정치활동은 우리 인민에게 조국광복의 서광을 휘황히 비쳐주었으며 우리 인민의 반일기세를 비상히 높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국내와 백두산서남부의 광대한 지역에 조국광복회 산하조직들이 결성되고 각계각층의 광범한 반일군중이 결속되였으며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은 더욱 높은 단계에로 발전하게 되였습니다.
중일전쟁과 관련하여 《후방의 안전》을 보장하여야 하였던 일제는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이 앙양되고있는데서 커다란 위구를 느끼고 조선과 백두산서남부일대의 혁명조직과 혁명군중에 대한 전면적인 《토벌》을 감행하였습니다. 놈들은 인민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면서 특히 지하혁명조직을 파괴하기 위한 대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이 일대의 수많은 공산주의자들과 조국광복회 회원들이 검거투옥되고 혁명조직이 파괴되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관주의자들에 의하여 강요된 열하원정은 중국인민의 반일무장투쟁에는 물론, 우리 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에도 엄중한 후과를 끼쳤으며 일제침략자들로 하여금 더욱 기승을 부리게 하였습니다.
혁명앞에 난국이 조성되게 된것은 또한 열하원정에서 일부 항일련합군부대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된 기회를 리용하여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을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하고있는 사정과 관련되여있습니다.
일제는 최근에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을 저지시키지 않고서는 중일전쟁을 《속전속결》할수 없다고 하면서 관동군주력사단들의 대부분과 봉천, 안동 경비사령부관하의 위만군부대들, 심지어 지방의 무장경찰들까지 총동원하여 동변도지방의 군사전략상 주요지대들에 배치하였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이번 《토벌》작전의 주되는 목표를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에 두고 수다한 병력으로 남패자를 이중삼중으로 포위하고있으며 련일 비행기로 우리 인민혁명군을 모독하고 유혹하는 삐라들을 살포하고있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최근에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전술도 바꾸었습니다. 놈들은 《집중토벌》의 전술로 나오면서 인민혁명군을 발견만 하면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추격함으로써 우리 인민혁명군으로 하여금 기아와 피로 속에 주저앉게 하려 하고있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무력에 의한 《대소탕전》을 진행하면서 우리 인민혁명군을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고 혁명의 변절자들로 《귀순공작반》, 《선무반》과 같은 간첩주구단체까지 조직하여 도처에 파견하고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마을과 산판들에는 장사군, 사냥군으로 가장한 주구들과 그밖의 여러가지 너울을 쓴 밀정들이 싸다니고있습니다.
동무들!
오늘 우리앞에는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일제의 대규모적인 《토벌》공세를 분쇄함으로써 열하원정의 후과를 하루빨리 가시고 조선혁명을 계속 전진시켜야 할 무겁고도 영예로운 과업이 제기되고있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진정한 인민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2차확대집행위원회에서 한 연설 1945년 11월 15일-
동지들!
나라의 완전자주독립을 이룩하며 조선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정권문제를 해결하여야 합니다. 지금 각 지방에 인민위원회들이 조직되여 활동하고있으나 아직도 중앙정권기관이 조직되지 못하였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각계각층 인민들은 하루빨리 중앙정부를 세우고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것을 열망하고있습니다. 우리는 건국열의로 불타는 광범한 대중을 옳게 조직동원하여 중앙정부를 세우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권문제를 빨리 해결한다고 하여 아무 정부나 망탕 조직하여서는 안됩니다. 정권문제를 옳게 해결하기 위하여 투쟁하는것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일제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된 우리 나라에 어떤 정권을 세우는가 하는 문제는 나라와 민족의 장래운명과 관련되는 매우 중대한 문제입니다. 만일 조선에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주장하는것과 같은 반인민적인 정권을 세운다면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이룩할수 없을뿐아니라 우리 조국은 또다시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되고말것입니다.
해방후 새 조국건설의 길에 들어선 전체 조선인민은 조국의 륭성발전을 이룩하며 자기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보장하여줄수 있는 진정한 인민의 정권을 수립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오래동안 일제침략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가혹한 압박과 착취를 받아온 조선인민에게 있어서 응당한 요구입니다. 우리는 충분한 준비밑에 전체 인민의 의사에 맞는 민주주의정부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인민대중의 요구를 무시하고 반인민적인 정부를 세우려 하고있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서울에서 몇몇 사람이 조작한 소위 《인민공화국》을 승인하여야 한다고 말하고있는데 우리는 결코 그러한 《정부》를 승인할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것은 그것이 조선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정권으로 될수 없기때문입니다.
《인민공화국》은 우리 인민의 지지를 받을수 없는자들로 구성되여있습니다. 거기에는 반공분자이며 친미분자인 리승만을 비롯하여 친일파, 민족반역자들과 가짜혁명가인 파벌분자들이 들어가있으며 참다운 애국자인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은 들어가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부》가 인민대중의 리익을 옹호하는 정권으로 될수 없다는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인민공화국》은 소수 특권계급을 위한 반인민적인 부르죠아정권이라고밖에 인정할수 없습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이러한 《정부》를 지지할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인민공화국》을 우리 인민의 정권으로 인정할수 없으며 또 인정할 의무도 없습니다. 《인민공화국》을 지지할것을 주장하는것은 결국 혁명의 기본무기인 정권에 대한 당의 령도를 포기하고 반동들에게 정권을 넘겨주려는 우경투항주의적행동이며 참다운 인민의 정권을 세우는것을 방해하는 반인민적행위입니다.
우리는 정권을 세우는데서 제국주의자들의 모략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제국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앞잡이를 내세워 우리 나라에 반동정부를 세우고 우리 인민을 또다시 식민지노예로 만들려고 꾀하고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만일 우리가 반공적이며 반인민적인 정부를 찬성한다면 그것은 조선인민의 민족적념원을 저버리는것으로 될뿐아니라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예속화정책을 도와주는것으로 될것입니다.
우리는 정권을 세우는데서 반인민적인 우경적경향을 철저히 배격하며 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의 음모책동에 대하여 경각성을 높여야 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좌경기회주의자들의 주장도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합니다. 지금 좌경기회주의자들은 우리 나라에 당장 프로레타리아독재정권을 세우고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떠들고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 사회발전의 객관적요구와 인민대중의 준비정도를 고려하지 않는 극좌적인 행동으로서 우리 당으로부터 대중을 리탈시키며 민족적단결을 파괴하는 아주 위험한 행동입니다.
공산당은 정권수립문제에서 나타나고있는 그릇된 좌우경적견해와 태도를 철저히 반대하고 당의 정치로선에 기초하여 정권문제를 옳게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여야 합니다. 우리 당은 이미 우리 나라의 구체적현실과 인민대중의 요구에 맞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울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는 참다운 인민의 정권인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여야 합니다.
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는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제외하고 공산당대표를 비롯한 진보적이며 애국적인 각 정당들과 각계각층 인민의 대표들로 구성되여야 합니다. 이 정부에는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성실히 일할수 있으며 인민들의 리익을 충실히 옹호할수 있는, 대중의 신망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러한 정권만이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수 있는 혁명의 강력한 무기로 될수 있으며 광범한 인민대중의 리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애국적이며 인민적인 정권으로 될수 있습니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