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완벽하게 아무것도 안한 반기문》
지난 11일 남조선언론에 반기문이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적라라하게 까밝힌 글이 실리였다.
글 내용을 소개한다.
곧 있을 《대선》에서 《령혼없는 <대통령>》이 뽑힐 가능성이 혹시라도 없겠는가.
다가오는 《대선》에 뛰여들겠다고 발표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기문은 지난 1970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무공무원으로 관료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22년동안 《유신》독재와 전두환독재, 로태우《정권》을 거치면서 주미대사관 참사관, 본부 《미주국》 국장, 장관특보 등 출세의 발판을 닦았다. 특히 1985년 로신영《국무총리》의 의전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권력핵심과 줄이 닿아 장래의 출세를 예약하였다. 로신영 전 《국무총리》는 지금도 반기문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라고 한다.
1960년대 박정희독재가 강화되던 시절 그가 학생때에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없다. 공무원으로서 그는 《유신》독재를 《<한국>적민주주의》라고 미화하는 당국의 훈령을 충실히 홍보했을것이다. 마찬가지로 광주학살을 감행하고 이른바 《북의 사촉을 받은 불순세력의 폭동》이라고 한 전두환의 궤변을 충실히 홍보하였을것이다.
그는 관료로서 독재《정권》에 부역하고있다는 현실에 대해 아무런 량심의 거리낌이나 가책도 없이 오로지 승진과 출세의 코스만 바라보고 우로 달리는 인생을 걸었다. 김영삼, 김대중《정권》에서도 그는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외교통상부 차관을 력임하는 등 승진가도를 달렸다. 한마디로 모두의 《부러움》을 살수밖에 없는 인생코스였다.
김대중, 로무현《정권》은 이 땅의 외교정책사에서 《꼬뻬르니꾸스》적인 전환기였다. 이 시기의 반기문은 그저 실무적으로만 존재하는 외무관료였다. 정책의 철학이나 생각의 전환은 그의 관심밖이였다.
흔히 하는 말로 《령혼없는 실무자》였던셈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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